수앙 이에 홍 위 알 위에 후아(霜葉紅於二月花, 서리 맞은 단풍 잎 2월의 꽃보다 더 붉구나).


김영삼 대통령 시절 한국을 방문한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청와대의 단풍을 구경하며 읊조린 시구이다(중국어로 읊조렸을거라 중국어 음으로 써 보았다). 두목(杜牧, 803-852)의「산행(山行)」마지막 구로, 가을에 널리 회자되는 시구이다. 단순히 "단풍이 아름답군요!"라고 말하는 것 보다 중층 의미를 전하기에 품위있어 보인다. 단풍이 아름답다는 의미는 당연히 들어가 있고, 두목이 감탄했던 그 단풍 못지 않을 것 같다는 의미도 있고, 두목이 봤다면 그 역시 나만큼이나 감탄했을 것 같다는 의미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이 임진왜란 후 강화와 포로 송환 협상을 위해 일본에 건너가 1604년부터 이듬해까지 교토에 머물 당시 남긴 고쇼지(興聖寺) 유묵(遺墨)이다. 최근 국립박물관에서 이 유묵 전시회가 열렸는데, 거기서 찍은 것이다. 활달하고 기운 넘치는 글씨가, 서예에 문외한이 사람이 봐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글씨의 내용은 고운 최치원(崔致遠, 857~?)의「등윤주자화사산방(登潤州慈和寺上房)」시의 일부분이다.


畫角聲中朝暮浪 화각성중조모랑   뿔피리 소리 속에 물결 끝없이 일렁이고

靑山影裏古今人 청산영리고금인   푸른산 그늘 속에 명멸(明滅)자취 어른거리네


고저원근(高低遠近)의 풍경이 공감각적 표현을 통해 잘 묘사되었다. 그런데 이 시는 단순한 풍경 묘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유상한 자연과 무상한 인생의 대비를 통해 삶의 비애를 말하고자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이 시구의 앞 구절 내용을통해서도 방증된다.


登臨蹔隔路岐塵 등림잠격로기진   산에 올라 잠시 잠깐 세상사 거리두고

吟想興亡恨益新 음상흥망한익신   흥망 자취 읊노라니 왠지 모를 서글픔이 새록새록


사명대사는 최치원의 시구 인용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중층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고쇼지가 최치원 선생이 올랐던 자화사같은 풍모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가 그 하나이고, 최치원 선생이 느꼈던 삶의 비애를 자신 역시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한발 더 나아가면 이런 무상한 삶에서 선승이 지녀야 할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려나 저 해설판의 단순한 설명―고쇼지의 기풍이 자화사처럼 탈속적이라는 뜻을 담아 이 시구를 남긴 듯하다―만으로 이 인용 시구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 소박한 이해이다. 타인의 시(구)를 인용한 의사 표현은 확실히 품위있어 보인다.


낯선 한자를 두어 자 자세히 살펴보자.


聲은 耳(귀 이)와 殸(磬의 약자, 경쇠 경)의 합자이다. 경쇠가 울릴 때 나는 것처럼 분명하고 확실하게 귀를 통해 들리는 그 무엇이란 의미이다. 소리 성. 聲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聲樂(성악), 音聲(음성) 등을 들 수 있겠다.


影은 景(볕 경)과 彡(形의 약자, 형상 형)의 합자이다. 빛이 비치는 쪽에 드러나는 형상이란 의미이다. 그림자 영. 影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陰影(음영), 影像(영상) 등을 들 수 있겠다.


裏는 衣(옷 의)와 里(마을 리)의 합자이다. 옷 속이란 의미이다. 衣로 뜻을, 里로 음을 표현했다. 속 리. 裏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裏面(이면), 表裏(표리)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장쩌민 주석의 한시 인용 단풍 감상에 그를 초청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아무런 화답을 못했다. 그래서 당시 모 신문에는 김 대통령의 무교양을 탓하는 약간 조롱조의 칼럼이 실렸었다. 당시에는 그 칼럼의 논조에 긍정을 표했는데, 지금은 좀 생각이 다르다. 대통령의 무교양보다 장 주석의 무교양을 되려 탓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장 주석의 무의식 속에는 아직도 우리나라를 조공국으로, 자신을 천조국으로 보려는 의식이 남아 있었기에 과거와 같은 응구첩대(應口輒對)를 통해 상대(의 원수)를 테스트하려는 언행을 했다고 보는 것. 그가 진정 교양있는 인물이라면 우리나라의 명시를 인용해 단풍 감상을 말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김대통령이 아무런 응대를 못했다면, 그건 정말 조롱받아 마땅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칼럼을 쓴 기자도 그의 무의식속에 과거 조공국 의식이 잔존해 있었기에 그런 칼럼을 쓴 것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족자의 낙관은 사명송운(四溟松雲)이라고 읽는다. 사명은 유정의 당호, 송운은 유정의 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제 값을 치렀으니, 저 문짝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되죠! 여보, 가서 때려 부숴요!”

 

전세 재계약을 하러 집주인이 찾아왔다. 그간 집을 어떻게 썼나 확인하겠다며 집을 둘러보다 안방 문 하단에 작은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인이 눈을 똥그랗게 뜨며 문 값을 물어내야겠다고 했다. 흠집을 낸 건 사실이기에, 수리비를 낼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을 말했다. “저 문은 사람을 사서 맞춘 문이여. 다른 집처럼 그냥 입주할 때 있던 문이 아녀. 문 전체를 갈아야 되겄어.”

 

그간 벽지 교체 등 집수리를 제대로 안 해준 것도 있었지만 그대로 지냈는데 그런 것 좀 감안하고 수리비만 받으면 좋겠다고 완곡히 얘기했지만, 주인은 들은 채 만 체하며 싫으면 나가든가계속 자기주장만 폈다. 당장 전세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뜻밖의 암초였다. 언제 또 집을 새로 구하고.

 

아내는 옆에서 계속 지켜만 하고 아무 말도 안 했다. 사실 우리 내외는 간밤에 사소한 일로 다퉈 냉전 중이었다. 문의 흠집도 사실은 아내 때문에 화가 나서 물건을 던진 것이 맞아 생긴 흠이었다. 아내는 내가 주인 앞에서 쩔쩔매며 사정하는 것을 보면서도 계속 모른 척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계속 다그쳤다. 빨리 결정하셔. , 가야 되니까. 결국, 문짝 값을 주기로 하고 전세 재계약 도장을 찍었다. 도장을 찍고 나자, 갑자기 아내가 집주인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값을 치렀으니, 저 문짝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되죠! 여보, 가서 때려 부숴요!”

 

주인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아내는 두 사람의 시선을 무시한 채 다용도실에 있는 공구함을 가져와 망치를 꺼냈다. 그러더니 나보고 어서 문을 부시라고 했다.

 

문짝 값 냈고 새로 문을 해 달 거니 저 문짝은 이제 쓸모없잖아요. 어서 부숴요!”

 

주인은 갑자기 얼굴색이 하얘지더니, 뭐라 말을 못 했다. 나는 아내에게 망치를 받아들고 문짝 앞으로 갔다. 그때 주인이 말했다.

 

, 처음에 얘기하던 수리비만 받을 테니 그만두세요~” 맥없이 수그러든 모습이었다. 집주인은 찌그러진 얼굴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현관문을 나섰다.

 

그날 속으로 다짐했다. “여보, 앞으로 당신을 위한 일이라면 내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꼭 해줄게.”

 

사진은 공감(共感)’이라고 읽는다. 함께 느낀다는 뜻이다. 간판을 보니 문득 십수 년 전 일이 떠올랐다. 당시 아내는평소엔 그다지 말을 많이 하는 성격도 아니고 겁도 많다 무슨 용기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지지 혹은 공감의 힘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닐까?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스물 입)(의 약자, 손 맞잡을 공)의 합자이다. 많은 사람이 손을 맞잡고 병렬로 서 있다는 의미이다. 함께 공.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共同(공동), 共和

(공화) 등을 들 수 있겠다.

 

(다 함)(마음 심)의 합자이다. 대상과 주체가 일치될 때 느끼는 마음의 공명이란 의미이다. 느낄 감.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共感(공감), 好感(호감)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여인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화장하고, 지사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라는 말이 있다. 자기 이해에 대한 처절한 갈망을 나타낸 말이다. 달리 표현하면, 자신에 대한 절절한 공감 욕구를 나타낸 것이다. 나는 그날 아내에게 절절한 공감을 받았다. 그날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아내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생길 때면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마음을 추스른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아내 앞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인용문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큰 바람 일어나니 구름이 나는도다

위엄을 해내에 떨치고 고향에 돌아왔도다

어떻게 하면 용맹스런 군사 얻어 사방을 지킬 수 있을까

 

한 고조 유방(劉邦, 재위 BC 202195)대풍가(大風歌)이다. 제왕의 기상을 드러낸 시라고 평가받는다. 유방은 제왕의 기상이 있었기에 이런 시를 지은 것일까, 아니면 제왕의 위치에 있었기에 이런 시를 지은 것일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질문과 유사하다. 그런데 닭과 달걀의 선후 문제는 답이 있다. 달걀이 먼저라고 한다. 그렇다면 제왕의 기상이 먼저냐 제왕의 위치가 먼저냐의 선후 문제도 답이 있을까?

 

사진은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3대 황제인 티에우찌의 시이다. 후에 왕궁을 방문하여 찍은 것이다.

 

 

御製夏咏 어제하영    황제께서 지으심    여름날의 노래

梅亭陣雨 매정진우    매정에서  소나기를 만나다

 

五月江南菓熟時 오월강남과숙시   오월이라 강남땅 과일 익어가는 때

斜陽倒峽驟來施 사양도협취래시   석양 녘 노을이 골짜기로 밀려드네

溟濛山館生煙篆 명몽산관생연전   비 내려 어둑한 정자엔 향 연기 피어오르고

格礫林坳標朹枝 격력임요표구지   우거진 숲 담장엔 산사 가지 우뚝 솟았네

邨樹飄零黃爛綬 촌수표령황난수   촌락의 나무들 샛노란 잎 줄줄이 떨어뜨리고

農溝湧漲白參差 농구용창백참치   논 도랑엔 물 불어나 흰 물결이 넘실거리네

幾回倏飮長空靜 기회숙음장공정   몇 번 인가 휘몰아치다 하늘 고요해지니

無限淸凉萬物宜 무한청량만물의   가없는 청량감에 만물은 흡족한 듯

 

紹治乙巳恭錄 소치을사공록   소치 을사년에 삼가 쓰다

 

 

정자에서 만난 소나기를 소재로 지은 시이다. 소나기 오기 전의 풍경과 소나기가 오는 무렵의 풍경 그리고 소나기가 개인 후의 풍경을 그렸다. 이 시에서 제왕의 풍모가 느껴질까? 섬세하게 소나기 전 · · 후의 모습을 그렸기에 그다지 큰 기상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황제의 시다운 면모가 보인다. 마지막 구 가없는 청량감에 만물은 흡족한 듯(無限淸凉萬物宜)”이 바로 그것. 개인적으로 느끼는 청량감의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황제의 시라는 것을 감안하면, 만물()을 생각하는 지도자의 면모가 느껴지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맹자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노나라 군주가 송나라에 갔는데 성문에서 큰 소리로 사람을 불렀다. 그 소리를 들은 문지기가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 사람은 우리 임금이 아닌데 어찌 이리도 우리 임금과 목소리가 비슷할까?” 맹자는 이런 풀이를 한다. “다른 이유가 없다. 처한 위치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제왕의 기상이 먼저냐 제왕의 위치가 먼저냐의 선후 문제도 답이 있을까? 맹자의 견해를 빈다면 제왕의 위치가 먼저라고 볼 수 있다. 한 고조 유방의 시나 응우옌 왕조 3대 황제 티에우찌의 시에 천하/만물을 생각하는 내용이 등장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들이 천하를 생각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데, 허언(虛言)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설혹 자리에 어울리는 기상을 갖지 못했다 해도 계속 그 자리에 있게 되면 점차 그 자리에 맞는 기상을 갖게 되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견강부회(牽强附會)한 생각일까?

 

낯선 한자를 서너 자 자세히 살펴보자.

 

(물 수)(덮을 몽)의 합자이다. 가랑비가 내려 시야가 흐릿하다는 뜻이다. 로 뜻을 표현했다.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무엇인가에 덮여 답답한 것처럼 가랑비와 안개가 뒤섞여 시야가 흐릿하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가랑비 올 몽. 흐릿할 몽.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濛漠(몽막, 어둑어둑한 모양), 濛昧(몽매, 안개 같은 것이 자욱하여 어두운 모양) 등을 들 수 있겠다.

 

(대 죽)(판단할 단)의 합자이다. 글자를 쓴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죽간(竹簡)에 글자를 썼기에 으로 뜻을 표현했다.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은 본래 (돼지 시)와 같은 의미로 돼지머리와 주둥이를 강조하여 표현한 것이다. 돼지가 주둥이로 땅을 파헤치듯 계속 글자를 써나간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지금은 글자를 쓴다는 의미보다 글자체의 한 종류인 전자를 의미하는 뜻으로 주로 사용한다. 전자 전.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篆烟(전연, 전자 모양으로 꼬불꼬불 올라가는 향로의 연기), 篆刻(전각, 전자를 새김. 어구의 치레에만 힘쓰고 실질이 없는 문장을 뜻함) 등을 들 수 있겠다.

 

(진칠 둔)(고을 읍)의 합자이다. 마을이란 뜻이다. 으로 뜻을 표현했다.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군인들이 모여 진을 치듯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사는 곳이 마을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마을 촌.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邨落(촌락), 鄕邨(향촌) 등을 들 수 있겠다.

 

(물 수)(날랠 용)의 합자이다. 샘솟다라는 뜻이다. 로 뜻을 표현했다. 은 음을 담당하면서 본뜻을 보충한다. 샘솟을 용.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湧出(용출, 물이 솟아 나옴), 湧沫(용말, 솟아 나오는 거품)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티에우찌 황제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박()한 평가 일색이었다. 박한 평가의 주 근거는 다가오는 제국주의 세력을 쇄국으로 저지하려 했고 그 와중에 프랑스군과의 전투에서 패해 불평등 조약을 맺고 개항한 사실이었다. 구한말(舊韓末) 실질적 군주 노릇을 했던 대원군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대원군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 평가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긍정적 평가도 있다. 티에우찌 황제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후에 왕궁 사진을 한 컷 소개한다. 후에 왕궁은 자금성을 모방하여 건축했다고 한다. 4~6구의 해석이 흔쾌하지 않다. 사진의 한자가 흐릿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보태어 시를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읽는 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금 전에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고 오늘 할 일은 끝났구나 릴렉스 하고 있었는데... , 너무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었는데, 영화 공부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 말을 하셨던 분이 누구였냐면... 책에서 읽은 거였지만. 그 말은 우리의 위대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말이었습니다. (관객 기립박수) 일단 제가 학교에서 마티의 영화를 보면서 공부했던 그런 사람인데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도 너무 영광인데 상을 받을 줄 전혀 몰랐었고요. 저의 영화를 아직 미국의 관객들이나 사람들이 모를 때 항상 제 영화를 리스트에 뽑고 좋아했던 우리 쿠엔틴 형님이 계신데 정말 사랑합니다. 쿠엔틴 아이 러브 유. 그리고 같이 후보에 오른 우리 토드나 샘이나 제가 너무나 존경하는 멋진 감독들인데 이 트로피를 정말 오스카측에서 허락한다면 텍사스 전기톱으로 이렇게 다섯 개로 잘라서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과 함께 그의 수상 소감도 화제다. 유머와 위트 그리고 감동이 있어서다. 자신의 감독상 수상 기쁨을 홀로 누리지 않고 함께 경쟁했던 감독들과 나누면서 감동을 이끌어내는 봉감독의 수상 소감은 그것을 지켜보는 많은 이들을 감동의 물결에 젖게 했다. 그가 감독상에서 언급한 마지막 멘트도 많은 이들을 웃음짓게 했다. 기쁘다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땡큐! 아이 윌 드링크 언틸 넥스트 모닝, 땡큐! (Thank you! I will drink until next morning. Thank you!)"

 

방송 매체에 등장한 한 평론가는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봉감독에게 스피치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독설과 비아냥 그리고 냉소의 언어에서 유머와 위트 그리고 감동의 언어로 치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유머와 위트 그리고 감동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수용과 배려에서 나오지 않을까? 봉감독과 작업을 함께 했던 배우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그의 배려와 수용 태도를 언급한다. 결코 아부성 발언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수용과 배려의 반대는 자기 중심이다. 정치인들의 언어가 독설과 비아냥 그리고 냉소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는 것은 그들이 수용과 배려보다 자기 중심에 더 쏠려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정치인들은 저 평론가의 말을 깊이 새겨 들어야 할 것 같다.

 

사진은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 - 846)의 「청명야(淸明夜, 청명절 밤에)」란 시이다.   

 

好風朧月清明夜  호풍농월청명야   살랑살랑 봄바람 몽롱한 달빛 청명절 늦은 밤

碧砌紅軒刺史家  벽체홍헌자사가   푸른 섬돌 붉은 난간 자사 거처

獨繞回廊行復歇  독요회랑행부헐   홀로 회랑 서성이며 흥얼거리고

遥聽弦管暗看花  요청현관암간화   아득한 풍악 속 이윽토록 꽃을 보네

 

홀로 조용히 청명절 밤을 보내는 장면을 그렸다. 고고한 사군자(士君子)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목민관의 마음 자세를 그린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둘째구에 등장하는 자사라는 직명(職名) 때문에 후자 해석에 더 무게가 실린다. 백성들은 흔쾌하게 봄밤을 즐겨야 한다. 그러나 목민관은 그것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목민관의 소임이자 기쁨은 백성들이 흔쾌하게 봄밤을 즐기게 하는 것이지, 자신이 그같이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럴려면 백성이 흔쾌하게 즐기는 봄밤에도 목민관은 자기 성찰의 고독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이 시의 미덕은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산뜻하게 그렸다는데 있다. 목민관의 고독이나 성찰을 홀로 노래하고 꽃을 감상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 그것. 봉감독이 사용한 유머나 위트와 같다. 그래서 이 시는, 봉감독의 인터뷰나 수상 소감이 청중을 감동케 한 것처럼, 독자에게 청신한 감흥을 준다. 이러한 청신한 감흥은, 봉감독의 유머나 위트가 그의 인격과 관련깊듯, 백거이의 인격과 관련 깊다. 무지한 늙은 노파도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쓰려고 했던 이가 바로 백거이이다. 시어의 정련(精練) 이전에 배려와 수용의 마음이 있었기에 이런 시를 지었다고 말해도 대과(大過)없을 것이다. 사진은 어느 중국식 안마 업소 창문에 붙어있는 것을 찍은 것이다.

 

낯선 한자 서너 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朧은 月(달 월)과 龍(용 룡)의 합자이다. 달빛이 흐릿하다는 뜻이다. 月로 뜻을 표현했다. 龍은 음(룡→롱)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용처럼 달빛이 구름에 가려 흐릿하다는 의미로. 흐릿할 롱. 朧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朦朧(몽롱), 朧月(몽월, 흐린 달) 등을 들 수 있겠다.

 

砌는 石(돌 석)과 切(온통 체)의 합자이다. 섬돌이란 뜻이다. 石은 뜻을, 切은 음을 담당한다. 섬돌 체. 砌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砌階(체계, 섬돌), 砌甓(체벽, 섬돌에 놓은 벽돌) 등을 들 수 있겠다.

 

繞는 糸(실 사)와 堯(요임금 요)의 합자이다. 끈이나 천으로 둘러싼다란 의미이다. 糸로 뜻을, 堯로 음을 표현했다. 두를 요. 繞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繞帶(요대), 環繞(환요, 빙 둘러 에워 쌈) 등을 들 수 있겠다.

 

遙는  辶(걸을 착)과 䍃(항아리 요)의 합자이다. 거리가 멀어 왕래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辶으로 뜻을 표현했다. 䍃는 음을 담당한다. 멀 요. 遙가 들어간 에는 무엇이 있을까? 遙遠(요원), 逍遙(소요)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식에서 투자 배급을 담당한 CJ측의 이미경씨가 수상 소감을 말한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못했다는 평들이 있다. CJ측이『기생충』의 수상에 있어 든든한 뒷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서 그쳤어야 했다는 것이다. 투자 배급 관계자가 영화인들의 축제장에까지 나와 수상 소감을 밝힌 것은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니라며 봉감독이나 주연인 송강호가 수상 소감을 말했으면 좋았겠다고 했다. 수상식을 보면서 이미경씨의 수상 소감이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전문가들의 평을 듣고 모호했던 생각의 정체를 알게 됐다. 만일 이미경씨가 봉감독이나 송강호에게 소감 언급을 양보했다면 그의 절제된 언행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을 것 같다. 이미경씨는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다. 그러나 그 말은 하지 않으니만 못했다. 좋은 말에는 유머와 위트도 필요하지만 절제―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 까지 포함하는―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아차 생산 '올스톱'… 신종 코로나 영향에 中 부품 수급 문제 발생"

 

 2월 7일자 한 인터넷 뉴스 제목이다.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계가 홍역을 치루고 있는데, 보건 분야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이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의 나라 문제가 결코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고 바로 우리 나라 문제라는 것을 절감한다. 세계가 거미줄처럼 조밀하게 연결된 탓일 것이다.

 

 사진은 '풍조우순국태민안(風調雨順國泰民安)'이라고 읽는다. '비바람 순조로우며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기를!'이란 뜻이다. 정초(正初) 사찰에 가면 많이 보게 되는 기원문들 중 하나이다. 이것은 국내에서 찍은 것이 아니고 베트남 다낭의 영응사(靈應寺)라는 사찰에서 찍은 것이다. 패방(牌坊, 일종의 장식문)에 새긴 문구중 하나이다. 영흥사는 보트 피플로 희생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다시는 그런 희생자들이 생기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이 문구에 스며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사진을 보며 위 기사 제목을 대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세계가 한 몸이 되어 돌아가는 지금 자신의 나라만 안락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아니 어리석은 행위이지 않을까? 외려 타국(인)의 행복을 우선 기원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현명한 행위 아닐까? 그것이 곧 우리(나)의 행복일 터이니 말이다.' 앞으로 정초 사찰에서는 이 기원문을 내걸 때 '국(國)' 대신 '세(世)'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굳이 그대로 쓰겠다면 '국'을 '나라'보다는 '나라들'로 확장 해석하든지.

 

 調와 順 그리고 泰가 약간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調는 言(말씀 언)과 周(두루 주)의 합자이다. 의사가 잘 소통되어 화목하다란 의미이다. 言으로 의미를 표현했다. 周는 음(주→조)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화목하여 사이가 긴밀하단 의미로. 일반적으로 '고르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고를 조. 調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調和(조화), 調節(조절) 등을 들 수 있겠다.

 

 順은 頁(머리 혈)과 川(내 천)의 합자이다. 머리를 숙여 공손한 태도를 취한다는 의미이다. 頁로 의미를 표현했다. 川은 음(천→순)을 담당한다. 순할 순. 順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順從(순종), 順序(순서) 등을 들 수 있겠다.

 

 泰는 大(큰 대)와 艸(拱의 약자, 두손맞잡을 공)과 水(물 수)의 합자이다. 물을 두 손으로 움켜 잡으면 물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듯 미끄럽다는 뜻이다.  艸과 水로 뜻을 표현했다. 大는 음(대→태)을 담당한다. 미끄러울 태. 일반적으로 '크다'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미끄러져 잘 잡히지 않는 것은 크기가 크다는 의미로. 클 태. 泰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泰平(태평), 泰山(태산)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영응사에는 거대한 해수관음보살상(海水觀音菩薩像)이 세워져 있다. 이 해수관음보살상이 바라보고 있는 지점이 바로 보트 피플 희생자들이 생긴 지점이라고 한다. 해수관음보살상을 보며 속으로 농을 했다(충분히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보살님, 이제 다른 곳도 좀 보셔요!' 사진을 올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