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런 고된 훈련을 받아야 하지?"

 

 신병 훈련소에서 고된 훈련을 받을 때 문득 들었던 생각이에요. 목표나 목적없는 일은 회의가 생기기 마련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고된 훈련을 받아야 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어요.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왠지 이것만으론 제 자신을 설득하기 힘들었어요. 회의는 신병 훈련소를 퇴소할 때 까지 계속됐어요.

 

 사진은 한겨레 신문 인터넷 싸이트에 뜬 것을 캡쳐한 거예요.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7.19일 까지 AP특파원이 찍은(기록한) 사진(기록)을 전시한다는 안내와 함께 소개한 사진 중 하나예요.

 

사진 속의 병사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외국 군인으로 보여요. 문득 사진 속의 병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저 병사는 무슨 생각으로 자국의 전쟁도 아닌 남의 나라 전쟁에 참여했을까? 모든 전쟁에는 명분이 있기 마련인데 저 병사는 무슨 명분으로 전쟁에 동원된 것일까?" 사진 속의 병사를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다 그럴듯한(?) 해답을 찾았어요. 그 해답은 바로 사진 속에 있었어요. 사진을 보면 간판이 하나 보여요. '평화사진관(平和寫眞館)' 이 간판에 나온 '평화'가 바로 그 해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평화'라는 가치와 목표가 저 외국 병사가 낯선 이국 땅에서 포화 속을 누비는 동력이 되었고 저 병사를 동원한 명분이 되었을 것 같더군요.

 

싸움 혹은 전쟁을 의미하는 한자 중에 '武(무)'라고 하는 글자가 있어요. 武는 戈(창 과)와 止(그칠 지)의 합자로, 싸움과 전쟁[戈]을 그치게[止] 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 바로 싸움이요 전쟁이란 의미예요. 이 말을 바꾸면 '평화'를 위해서 벌이는 것이 바로 '전쟁'이란 의미가 되죠. 전쟁의 또 다른 얼굴이 평화요, 평화의 또 다른 얼굴이 전쟁인 셈이지요. 武는 전쟁이 갖는 자기 부정의 성격을 잘 표현한 글자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자기 부정이란 결국 그 행위 자체의 존립 근거가 희박하다는 말도 돼요. 달리 말하면 전쟁이란 그 자체는 결코 용인되기 어려운 행위라는 말이지요. 전쟁이 평화를 목표로 내거는 것은 다분히 기만적인 목표일 뿐이며, 전쟁은 그 무엇으로도 용인되기 어려운 '악(惡)'이에요. 이 경우 자국을 방어하기 위해 치르는 전쟁도 예외일 수 없어요. 다만 이 경우 '차(次)'라는 말을 '악'앞에 붙일 수 있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죠.

 

내일이 6. 25 전쟁이 발발한지 66년이 되는 날이에요. 다시는 이 땅에 어떤 외국 병사가 와서 '악'을 위해  혹은 자국의 병사가 '차악'을 위해 피를 흘리는 일이 없어야 겠어요. 저는 결코 군대를 해체하거나 군사력을 축소하자는 말이 아니예요. 전쟁 그 자체의 의미를 결코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원론을 얘기한 거예요. 현실적으로 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평화란 공허하기 그지 없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잖아요?

 

처음으로 잠시 말을 돌려 볼까요? 신병 훈련과 군생활중에 회의감이 든 때가 있었다고 그랬죠? 그때 만일 훈련을 지도하는 교관이 훈련의 목표 내지 가치로 '평화'를 얘기했다면 어땠을까요? 왠지 저는 그 나름대로 설득이 됐을 것 같아요.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평화사진관의 한자를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은 于(어조사 우)와 八(여덟 팔)의 합자예요. 于에는 기가 펼쳐진다는 의미가 있고, 八에느 넷씩 둘로 나뉜다는 의미가 있어요. 두 의미가 합치면 '기가 고르게 분산되어 펼쳐지다'란 의미가 되요. 구체적으로는 말을 할 때 발산되는 기운히 화평하다란 의미에요. 평평할 평. 平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公平(공평), 平等(평등)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口(입 구)와 禾(벼 화)의 합자예요. 마음이 잘 맞아 상호간에 말이 잘 통한다는 의미예요. 口로 뜻을 표현했어요. 禾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禾는 벼 이삭이 잘 익어 아래로 늘어진 모양을 그린 것인데 이 속에는 막히지 않고 잘 통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요. 이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화할 화. 和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和合(화합), 和睦(화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宀(집 면)과 舃(신발 석)의 합자예요. 다른 곳에서 옮겨 온 물건이란 의미예요. 장소의 뜻을 나타내는 宀으로 의미를 나타냈어요.  舃은 음을 담당하면서(석→사)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땅 위를 디디고 밟는 것이 신발인데 옮겨온 물건을 그같이 받침 위에 올려 놓았다란 의미로요. 둘 사. 베끼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다른 곳에 있는 내용을 자신에게로 가져왔다란 의미로요. 베낄 사. 寫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筆寫(필사), 寫經(사경)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匕(化의 약자, 화할 화)와 目(눈 목)과 ㄴ(隱의 고자, 숨을 은)과 기초의 의미를 담은 八의 합자예요. 눈에 보이는 본 모습을 변화시켜 하늘로 숨어버린 사람이란 의미예요. 신선이란 의미지요. 참이란 의미는 본뜻에서 나온 거에요. 참 진. 眞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眞實(진실), 眞理(진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食(밥 식)과 官(관청 관)의 합자예요. 관청에서 외래 손님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장소란 의미예요. 후에 일반인의 집이란 뜻으로 의미가 확대됐어요. 집 관. 館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食館(식관), 體育館(체육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평평할 평    화할 화    베낄 사  眞 참 진   집 관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食(   )   (   )合   筆(   )   (   )實   (   )等

 

3. 군 생활중 가장 힘들었던 점을 한 가지 소개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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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들이여, 책 좀 많이 사주소."

 

딱 이런 말투는 아니었지만 이와 유사한 말을 했던 것 같아요. 누가 이런 허접한(?) 말을 했냐구요? 김훈 선생이 『자전거 여행』에서요. 선생이야 이런 구차한 문구까지 들먹이며 얘기 할 필요도 없는데, 선생까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책이 잘 안팔린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주는 거겠죠? (그러나 이런 절박한 호소 덕분이었을까요? 『자전거 여행』은 많이 팔렸죠. 물론 이에는 선생의 필력과 산뜻한 편집이 더 큰 몫을 했겠지요.)

 

저명한 저자의 산뜻하게 편집된 책 조차 이렇게 안 팔릴 정도인데 그에 상대가 안되는 책이야 말해 뭐할까요? 제가 『길에서 주운 한자』라는 책을 냈는데 판매가 부진해서 전전긍긍(?)하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거예요. (사실 판매에 비중을 두기보다 책을 냈다는 그 자체에 초점을 두긴했지만 책 판매가 부진하니 좀 그래요. 하하하.)

 

제 책은 호불호가 갈려요. 한자에 다소 익숙한 분들은 책 내용에 호감을 표한 반면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비호감을 표해요. (사실 저는 한자 초심자를 대상으로 책을 썼는데 예상했던 것과 빗나간 셈이에요.) 그리고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결점은  미흡한 편집과 질 낮은 종이의 사용 그리고 다소 산만한 내용이에요. 다행히 문체를 그다지 흠잡지는 않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책에 한없는 애정과 긍지를 갖고 있어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쁜 법이라죠?) 한자 관련 책을  여러 권 읽어 봤지만 많은 경우 실속없는 내용에 과도하게 칼라 만이 난무하거나 혹은 깊은 고민없이 여기저기서 짜집기한 것으로 내용을 채웠거나 혹은 과도하게 전문적인 내용을 가진 것이었어요. 

 

제 책은 이런 단점을 극복해보려 노력한 책이에요. 일상에서 취재한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자료의 내용에 대한 성찰과 함께 취재 자료에 나온 한자에 대해 상세한 자원 설명을 곁들이고 있어요. 취재한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진 않았지만  -- 이 때문에 내용이 산만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것 같아요 -- 이리저리 조합해 보면 그 나름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지요.

 

제가 제 책에서 가장 긍지를 갖는 점은 한자에 대한 자원 설명이 비교적 정확하다는 점이에요. 제가 자원 설명에서 주로 참고한 자료는 『형음의 종합 대자전』이란 중국 원서인데, 이 책은 임어당(林語堂, 중국의 저명한 문인이자 언어학자) 선생이 서문을 쓸 정도로 자원 설명에 관한 한 권위를 인정받는 책이에요. 그런데 의외로 시중에 나와있는 책들 중에 이 책을 참고한 책이 별로 없더군요.

 

그러나 제가 진짜 긍지를 느끼는 부분은 단순히 이 책을 참고하는데 그치지 않고 제 생각을 덧붙였다는 점이에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의 뜻과 한자 제작 당시의 뜻이 서로 다를 경우 그 의미의 변천이나 연관성을 설명해야 하는데 『형음의 종합 대자전』에서는 한자 제작 당시의 뜻만 소개하고 이후의 다른 의미들은 그냥 병렬식으로 소개만 하고 있어요. 일례로 曲을 『형음의 종합 대자전』에서는 단순히 대나무나 풀 등을 엮어 만든 그릇을 의미한다고만 소개하고 이 글자가 '굽다'라는 의미로는 왜 사용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부가 설명이 없어요. 그저 '굽다'라는 의미도 있다고 소개만 하고 있지요. 이 부분에서 저는 '굽다'란 의미는 그릇들의 둥그런 모양에서 연역된 의미라는 설명을 덧붙였어요. 이런 연역 설명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글자의 원뜻과 변화된 뜻을 연결지을 수 있기에 한자를 체계적이고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는좋은 설명이라고 볼 수 있어요. 간혹 견강부회한 설명도 있지만 대부분 원뜻에 기초하여 풀었기 때문에 특별히 무리한 설명은 없어요. 

 

『길에서 주운 한자』는 쉽게 빨리 읽을 수도 있고 천천히 오래 읽을 수도 있어요. 취재 자료에 대한 성찰 부분은 쉽게 빨리 읽을 수 있지만 자원 설명에 대한 부분은 다소 시간을 투자하여 천천히 읽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천천히 읽어야 하는 것은 꼭 한자 초심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한자에 익숙한 분들에게도 해당돼요. 한자를 많이 알더라도 그 한자의 구성 원리를 알고 있는 분은 많지 않기 때문이죠. 속도가 강조되는 시대에 천천히 읽기를 요구하는 책이 있다는 것은 좀 별스런 것이지만 때로는 그런 별스런 것이 가치를 지닐 수도 있다고 봐요. 천천히 읽기를 통해 성찰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죠. 성찰을 통해 기존에 알고 있던 한자를 새롭게 본다는 것은 그 나름의 의미있는 독서 행위가 아닐까 싶어요.

 

『영어 실력 기초』란 책이 있어요. 안현필 선생이 쓰신 영어 참고서죠. 장정도 허술하고 편집도 답답하기 그지없으며 무엇보다 정말(!) 오래된 책이예요. 하지만 영어의 기초를 닦는데는 여전히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닌 좋은 책이죠.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저는 그 중의 하나로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진심과 성실성을 들어요. 이건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이 책을 접해봐야 알 수 있어요. 음, 『길에서 주운 한자』를 감히 이 책에 비견하진 못하겠어요. 그러나 제 책에도 나름의 진심어린 성실성이 담겨 있어요. 이건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제 책을 접해봐야 알 수 있어요. ^ ^

 

 

"벗들이여, 책 좀 많이 사주소." 『길에서 주운 한자』. ^ ^

 

 

오늘 제 책 선전의 핵심어는 '판매'와 '성실'이에요. 이것을 한자로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은 貝(조개 패)와 反(뒤집을 반)의 합자예요.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의미예요. 팔 판. 販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販路(판로), 販促(판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出(날 출)과 貝(조개 패)의 합자예요. 돈이 될 만한 물건을 내놓고 판다는 의미예요. 팔 매. 賣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賣買(매매, 사고 팔다), 賣渡(매도, 팔아 넘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言(말씀 언)과 成(이룰 성)의 합자예요. 말과 행실이 일치하도록 노력한다란 의미예요. 정성 성. 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精誠(정성), 誠意(성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宀(집 면)과 貫(꿸 관)의 합자예요. 돈 꿰미가 집에 가득하다란 의미예요. 實의 일반적 의미인 '충만하다' 혹은 '참되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찰 실. 참 실. 實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充實(충실), 實相(실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보실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팔 판    팔 매    정성 성    찰 실

 

2. (   )안에 들어 갈 알맞은 한자를 허벅지에 써 보시오.

 

   充(   )  (   )渡  (   )促  (   )意

 

3. 자신의 책을 광고한다고 가정하고 광고 카피를 작성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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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23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 취준생들이 영어 공부에 치중하게 되니까 한자 공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자 공부를 고리타분한 시대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마법천자문을 제외하면 한자를 소재로 한 책이 많이 팔리는 사례가 적은 것 같습니다.

찔레꽃 2016-06-23 19:39   좋아요 0 | URL
네, 정확히 잘 보고 계신 것 같습니다. ^ ^ 항상 임의 관심에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 ㅇ^

무심이병욱 2017-03-01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특한 구성과 내용이 알차고 재미가 있습니다.

찔레꽃 2017-03-01 11: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무심 선생님 칭찬이라 더욱 기분이 좋습니다. ^ ^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skchung926/220742230275

 

 

신임 정세균 국회의장이 세균맨 인형을 선물 받았다는 기사가 있더군요. 정의장의 애칭은 세균맨인데 에니메이션 '호빵맨'에 나오는 캐릭터 세균맨과 정의장 이름의 발음이 동일해 붙여진 애칭이라고 해요. 정의장 본인은 자신의 성씨가 정이기에 정을 '바를 정[正]'의 의미로 풀이해 스스로를 '좋은 세균(맨)'이라고 부르고 있더군요(널리 알려진 사실같은데,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혹자는 농담으로 세균이 국회의장이 됐으니 이제 대장균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세균이 됐든 대장균이 됐든 본인이 말한대로 '좋은' 균이 되어 부패한 것들을 일소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국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사진은 세균맨 인형을 놓고 흐뭇해 하는 정의장을 찍은 것이에요. 정의장 앞에 국회의장 명패가 있는 것을 보니 국회의장 집무실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저는 정의장이나 세균맨 인형 보다는 정의장 뒤에 있는 병풍이 눈에 먼저 들어 왔어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정의장 뒤에 있는 병풍에는 무슨 내용이 써있는 걸까요? 음, 사실 별 내용 아녜요. 별 내용 아니란 의미는 내용들이 하찮다는 의미가 아니라 널리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내용을 써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의미예요. 어떤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창작한 내용을 쓴 것이 아니라 유명 글귀들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한 나라의 국회의장 집무실에 놓인 병풍치고는, 생각 밖으로, 허술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정의장께서는 이 병풍의 내용을 알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만약 아신다면 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병풍의 내용을 하나씩 읽어 볼까요? 사진의 오른 쪽에서 왼쪽 순으로 읽어 보도록 하죠.

 

 

秋風惟苦吟 추풍유고음    가을 바람에 괴로이 읊조리나니

世路少知音 세로소지음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적구나

窓外三更雨 창외삼경우    창 밖엔 한 밤의 비 내리는데

燈前萬里心 등전만리심    등불 앞 내 마음 만리를 달리네

 

 

최치원 선생의 '추야우중(秋夜雨中)'이란 시예요. 자신의 꿈을 펼칠 시대를 만나지 못한 불우한 지식인의 슬픔 자화상을 그린 시이지요.

 

 

獨坐幽篁裏 독좌유황리    깊은 대나무 숲속에 홀로 앉아

彈琴復長笑 탄금부장소    거문고 타며 때로 휘파람도 부누나

深林人不知 심림인부지    깊은 숲이라 사람들 찾지 않고

明月來相照 명월래상조    밝은 달만 찾아와 바라 본다네

 

 

당대의 시인 왕유의 '죽리관(竹裏館)'이란 시예요. 은거자적하는 시인의 고요하고 맑은 마음을 노래한 시이지요.

 

 

採藥忽迷路 채약홀미로    산에서 약을 캐다 길을 잃어나니

千峰秋葉裏 천봉추엽리    온 산이 가을에 물들었구나

山僧汲水歸 산승급수귀    산승은 물 길어 돌아가고

林末茶煙起 임말다연기    숲 끝에선 차 달이는 연기가

 

 

이이 선생의 '산중(山中)'이란 시예요. 산중의 가을 풍경에 동화된 물아일체의 경지를 노래한 시이지요.

 

 

衆鳥高飛盡 중조고비진    뭇 새들 다 날아가고

孤雲獨去閑 고운독거한    외로운 구름만 한가로이 떠가네

相看兩不厭 상간양불염    서로 보며 싫증나지 않는 건

只有敬亭山 지유경정산    경정산 뿐

 

 

당대의 시인 이백의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이란 시예요. 세속에 물들지 않고 고고한 기절을 간직한(하려는) 기상을 노래한 시이지요.

 

 

日落沙逾白 일락사유백    해 떨어지니 모래 더욱 희고

雲移水更淸 운이수경청    구름 옮기니 물 더욱 맑아라

高人弄明月 고인농명월    고인(高人)이 명월을 희롱하나니

只缺紫鸞笙 지결자란생    아쉬운 건 자란생(피리의 일종)이 빠진 것

 

 

이색 선생의 '한포농월(漢浦弄月)'이란 시예요. 앞서 읽은 왕유의 '죽리관(竹裏館)'과 유사한 풍모를 그린 시예요.

 

 

江碧鳥逾白 강벽조유백    강 푸르니 새 더욱 희고

山靑花欲然 산청화욕연    산 푸르니 꽃 불타는 듯

今春看又過 금춘간우과    올 봄도 또 그렇게 보냈나니

何日是歸年 하일시귀년    어느 해나 고향에 갈런지

 

 

당대의 시인 두보의 '절구(絶句)'중 한 편이에요. 타향에서 봄을 맞이했다 보내는 나그네의 쓸쓸하고 고단한 심사를 노래하고 있어요.

 

 

春雨細不滴 춘우세부척    봄 비 가늘어 방울지지 않더니

夜中微有聲 야중미유성    한밤중 희미하게 들리는 빗소리

雪盡南溪漲 설진남계창    눈 다 녹아 남쪽 시내 불어 났으리니

艸芽多小生 초아다소생    초목의 싹들은 하 많이 돋았으리

 

 

정몽주 선생의 '춘흥(春興)'이란 시예요. 봄 날 생명의 눈부신 발아를 그린 시예요.

 

 

千山鳥飛絶 천산조비절    온 산에 새 나는 것 그치고

萬徑人蹤滅 만경인종멸    온 길에 사람 자취 없어라

孤舟蓑笠翁 고주사립옹    외로운 배 삿갓 쓴 늙은이

獨釣寒江雪 독조한강설    홀로 찬 강에 낚시를 드리우다

 

 

당대의 시인 유종원의 '강설(江雪)'이란 시예요. 견결하고 고고한 지사의 뜻을 한폭의 풍경화를 통해 표현한 시예요.

 

 

어떠신가요? 이상의 내용을 읽으신 소감이. 한중의 대가 작품들을 하나씩 번갈아 소개한 것 빼고는 딱히 어떤 일관된 주제 의식을 느끼기 어렵죠? 민의의 전당인 국회 그리고 그곳의 수장이 있는 집무실에 어울릴만한 내용이라고 보기엔 좀 부족한 감이 있어요. 적어도 국회의장의 집무실에 놓일 병풍이라면 이런 탈속적이고 개인적인 취향의 시 말고 민의를 대변하는 그 어떤 내용을 담은 병풍이 놓여야 할 것 같아요. 너무 과한 생각일까요?

 

 

오늘은 정리 문제를 내지 않겠어요. 시 감상의 여운을 간직하시라고... 대신 국회의장실의 병풍에 써놓았음직 한 한시를 한 편 읽어 보도록 하시죠(이보다 더 좋은 것은 우리 말 시이겠는데 얼른 생각나는게 없네요. ㅠㅠ).

 

 

蒼生難蒼生難 창생난창생난   백성들의 어려움이여 백성들의 어려움이여
年貧爾無食 연빈이무식   흉년이 들어서 너희들은 먹을 것이 없구나
我有濟爾心 아유제이심   나에겐 너희들 구제할 마음 있어도
而無濟爾力 이무제이력   너희를 구제할 힘이 없구나
蒼生苦蒼生苦 창생고창생고   백성들의 괴로움이여 백성들의 괴로움이여
天寒而無衾 천한이무금   날씨는 추운데 너희는 덮을게 없구나
彼有濟爾力 피유제이력   저들은 너희를 구제할 힘이 있어도
而無濟爾心 이무제이력   너희를 구제할 마음이 없구나
願回小人腹 원회소인복   내 바라는 것 소인의 마음 돌려서
暫爲君子慮 잠위군자려   잠시 군자의 마음으로 바꾸고
暫借君子耳 잠차군자이   잠시 군자의 귀를 빌어다
試聽小民語 시청소민어   백성의 말을 듣게 하는 것
小民有語君不知 소민유어군부지   백성은 할 말 있으나 임금은 아지 못해
今歲蒼生皆失所 금세창생개실소   금년엔 백성들 모두가 살 집 잃어
北闕雖下憂民詔 북궐수하우민조   대궐에서 백성들 근심하는 조서를 내려도
州縣傳看一虛紙 주현전간일허지   주현으로 내려오면 공허한 종이일 뿐 
特遣京官問民瘼 특견경관문민막   서울 관리 보내어 백성의 고통 묻고자
馹騎日馳三百里 일기일치삼백이   역마로 날마다 삼백 리를 달려도
吾民無力出門限 오민무력출문한   백성들은 문턱을 나설 힘도 없는데
何暇面陳心內事 하가면진심내사   어느 겨를에 마음 속 일을 맞대 말하리
縱使一郡一京官 종사일군일경관   한 군에 한 사람의 서울 관리 온다 해도
京官無耳民無口 경관무이민무구   서울 관리는 들을 생각 전혀 없고 백성들은 말할 근력 없으니
不如喚起汲淮陽 불여환기급회양   차라리 회양태수 급암을 되살려 
未死孑遺猶可救 미사혈유유가구   그나마 남은 이들 살리는게 낫겠네

 

魚無迹(어무적), 「流民嘆(유민탄)」/ 인용 출처 http://snayper4502.blog.me/150093664774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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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산. 사진 출처 : http://snayper4502.blog.me/150093664774

 

 

개눈에는 똥만 보인다죠?

 

지난 주 보령 남포에 있는 지인을 방문했어요. 지인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지인의 서가에 있는 책 중에 『보령의 한시』란 책이 눈에 들어 오더군요. 대화 중간에 살짝 책을 떠들어 봤더니 낯익은 분의 반가운 시가 실려 있더군요. 정약용 선생의 '등오서산절정(登烏棲山絶頂)'이란 시였어요. 오서산에 오른 적이 있었기에 나의 느낌과 선생의 느낌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해지더군요.

 

 

碧落苕嶢石作臺 벽락초요석작대    하늘 높이 솟은 산 석대에 올라오니

山河萬里鬱盤回 산하만리울반회    만리에 펼친 산하 얼기설기 얽히었네

錦川秋色橫雲斷 금천추색횡운단    금강의 가을 빛은 구름 가려 끊기었고

吳粤天光過海來 오월천광과해래    오월의 하늘 빛은 바다 넘어 비쳐드네

魯聖乘桴良有以 노성승부양유이    뗏목 타고 오시려던 공자님 까닭이 있고

周王遷國亦悠哉 주왕천국역유재    주왕의 천국 또한 깊은 생각 있었다네

神京北望知何處 신경북망지하처    북쪽 하늘 바라보니 서울은 어드메뇨

煙靄蒼蒼數雁哀 연애창창수안애    푸르스름 안개 속에 기러기 소리 애달파라

 

 

1구와 2구는 그다지 특별한 느낌이 없어요. 높은 산에 오르면 일반적으로 보게 되는 풍경을 그렸거든요. 본 내용을 시작하기 전 호흡을 고르는 단계라고 볼 수 있어요. 호흡을 고른 선생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3구에서 6구까지는 선생의 바라본 본격(?) 풍경과 생각을 그린 것인데, 재미있는 것은 선생이 동서남북 방위별로 풍경과 생각을 드러냈다는 점이에요. 시 어디에도 방위를 표현한 단어는 없지만 내용상 방위를 드러내고 있어요. 3구는 오서산에서 바라 본 고즈녁한 금강의 가을 경치를 표현했는데 이는 남쪽의 풍경이에요. 4구는 서해 건너 손에 잡힐듯한 중국 땅을 그렸는데 이는 서쪽의 풍경이에요. 5구는 실물 풍경이 아니라 관념의 풍경을 그렸는데 이는 동쪽의 풍경이에요. 공자는 도가 땅에 떨어진 자신의 시대를 한탄하며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고 싶다 했어요. 그런데 공자가 가고 싶어했던 곳은 동이(東夷)였어요. 따라서 공자 운운의 내용은 동쪽 풍경을 그린 것이죠. 6구 역시 실물 풍경이 아니라 관념 풍경인데 이는 북쪽의 풍경이에요. 백제의 문주왕은 한성[서울]에서 웅진[공주]으로 수도를 옮겼는데 한성은 남쪽의 웅진과 상대가 되는 북쪽에 있어요. 따라서 주왕 운운의 내용은 북쪽 풍경을 그린 것이죠.

 

사방으로 바라 본 실물 풍경과 관념 풍경을 통해 선생은 은연중 자신의 시대를 비판하고 있는 듯 보여요. 더없이 아름다운 산하이지만[3,4구] 떠나고 싶을 정도로 도(의)가 땅에 떨어진 세상이며[5구] 기득권의 발호가 극심하기에 천도(遷都)같은 과감한 개혁이 필요한 때라고 보고 있는 것 같거든요[6구]. 이런 해석이 다소 견강부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다소 뜬금없이 등장하는 5, 6구의 관념 풍경은 이런 해석을 전제하지 않고는 이해가 쉽지 않아요.

 

이런 연장선에서 이 시의 매듭 부분인 7, 8구를 보면 단순한 물리적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선생의 마음을 담은 추상적 풍경을 그린거라 여겨져요. 그렇다면 이 추상 풍경에 담긴 선생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그건 한 마디로 '서글픔'이 아닐까 싶어요. 보이지 않는 서울과 푸르스름한 안개로 표현된 답답한 현실에서 선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죠. 애달픈 기러기 소리는 바로 선생의 서글픈 처지를 대변한 것이라 보여요.

 

선생의 이 시는 오서산 등반 그 자체에 비중을 둔 서경시라기 보다는 오서산 등반을 빌미로 답답한 현실과 서글픈 자신의 위상을 반추한 서정시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 싶어요.

 

저는 오서산에 올랐을 때 탁 트인 서해 바다 풍경에만 마음을 빼앗겼지 선생처럼 시대를 고민하진 않았어요. 아니 고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경치좋은 산정에 올라서도 시대를 걱정하며 자신을 반추하는 선생의 시를 대하니 과시 선생은 시대의 양심이었다란 생각이 들어요. 어설프게 산에 오른 느낌을 비교하려 했던 것이 부끄러웠어요.

 

어려운 한자가 많네요. 너무 많이 공부하면 머리가 아프니 조금만 공부해 보도록 하죠. 苕, 盤, 桴, 悠, 靄만 좀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죠.

 

는 艹(풀 초)와 召(부를 소)의 합자예요. 능소화라는 뜻이에요. 艹로 뜻을 나타냈어요. 召는 음을 담당하면서(소→초)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능소화는 고목(高木)을 타고 높이 올라가는데, 이것이 흡사 바람을 부르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는 의미로요. 능소화초. 높다라는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능소화가 고목을 타고 높이 올라가는데서 나온 의미예요. 높을 초. 苕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陵苕(능초, 능소화의 별칭)와 苕苕(초초, 높은 모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皿(그릇 명)과 般(옮길 반)의 합자예요. 쟁반이란 의미예요. 皿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般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쉽게 옮길 수 있는 것이 쟁반이란 의미로요. 쟁반 반. 서리다(헝클어지지않게 빙빙 둘러서 포개어 감다)란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쟁반의 외형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서릴 반. 盤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小盤(소반), 盤松(반송)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木(나무 목)과 孚(孵의 약자. 알깔 부)의 합자예요. 마룻대(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나무)란 뜻이에요. 木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孚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알을 깔 때 어미 닭이 알 위에서 알을 품듯 마룻대는 기둥 위에서 서까래를 걸게하는 물건이란 의미로요. 마룻대 부. 뗏목이란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마룻대가 기둥위에 있듯 뗏목은 물 위에 떠있는 물체란 의미로요. 뗏목 부. 桴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棟桴(동부, 마룻대), 桴筏(부벌, 뗏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心(마음 심)과 攸(아득할 유)의 합자예요. 생각이[心] 길고 멀다[攸]란 의미예요. 근심할 유. 멀 유. 悠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悠長(유장, 길고 오램), 悠久(유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雨(雲의 약자, 구름 운)과 謁(藹의 약자, 우거질 애)의 합자예요.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오른다란 의미예요. 피어오를 애. 靄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靄靄(애애, 구름이 피어 오르는 모양),  靄散(애산, 구름이 흩어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능소화초. 높을 초   쟁반 반. 서릴 반    뗏목 부     근심할 유. 멀 유   피어오를 애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苕   (    )松   (   )筏   (   )長   (   )靄

 

3. 다음을 읽고 풀이해 보시오.

 

   神京北望知何處  煙靄蒼蒼數雁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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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에 'ㄷ' 2개와 'ㅇ' 1개를 더하면 뭐가 될까요?

 

 답은 '똥떡'이에요. 인터넷에서 학생들이 교과서 이름에 낙서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똥떡'은 '도덕' 교과서에 낙서한 것이었어요.

 

 왜 '도덕'이란 이름을 '똥떡'이란 이름으로 만든 것일까요? 그저, 아무 생각없이, 손쉽게 바꿀 수 있는 형태이기에 그리 했을까요? 왠지 그런 것 같지 않아요. 모든 행위가 잠재 의식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똥떡'이란 장난 속에는 '도덕'을 '똥'이나 '(개)떡'같이 생각하는 의식이 들어있는 것 처럼 느껴져요.

 

그러면 왜 이런 의식이 생겼을까요? 그건 아마도 현실과 괴리된 도덕 교육 때문일 거예요. 학생들도 보고 듣는 것이 있는데 현실과 괴리된 '도덕' 얘기를 하니 '똥떡'처럼 여기는 거겠지요. (제 말이 결코 이 낙서를 옹호한다거나 도덕 선생님을 비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님은 잘 아시죠?)

 

사진은 목포 유달산의 소요정 근처에서 찍은 거예요. 기존의 내용에 '똥떡'처럼 장난을 쳤어요. 사발면의 '발'을 이용해 '발악 한 잔'이란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냈어요. 그런데 왜 새로운 메뉴에 '발악'이란 말을 추가했을까요? 단순히 '발'로 시작하는 적절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 그랬을까요? 제가 보기엔 그보다는 '술'에 대한 잠재적 혐오 의식 ― 술은 사람을 미치게[발악]하는 흉한 것이라는 ― 이 작용한 것 아닌가 싶어요. 너무 침소봉대했나요?

 

동양[중국]에서 술에 관해 가장 이른 시기에 등장하는 경계는 우임금과 관계된 것이에요. <맹자>에 보면 "우임금은 맛있는 술을 미워하고 선한 말을 좋아했다(禹惡旨酒而好善言)"란 말이 나와요. 술이 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이른 시기에 ― 우임금은 거의 전설속의 임금으로 보고 있거든요 ― 이미 경계했던 것이죠. 사진의 입간판에 장난을 친 사람은 은연중 우임금처럼 술을 경계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따금 <명심보감>을 뒤적일 때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어요. 술과 관련한 구절인데, "술취한 가운데 말이 없는 자, 그 이가 진정한 군자이다(醉中不言 眞君子)"란 구절이에요. 술을 마시면 긴장이 풀리고 긴장이 풀리면 횡설수설하여 실수가 많아지기에 경계한 말이지요. 술이란 횡설수설을 가정하고 마시는 것인데 그러지 않으려면 뭐하러 마시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횡설수설후 꼭 후회를 한다는 점이죠. 하여 그런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라고 경계하고 있는 것이지요. 좀 과도한 경계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충분히 음미할 가치가 있는 구절이에요. 이 구절이 생각나서 그랬을까요? 전 유달산에서 이 '발악 한 잔'을 마시지 않았어요. 마시면 왠지 발악할 것 같아서... ^ ^

 

'발악 한 잔'을 한자로 살펴 볼까요? 發은 필 발, 惡은 악할 악, 盞은 잔 잔이에요. 발악(發惡)의 의미는 잘 아시죠? 그래도 사전에 나온 정의를 한 번 알아 볼까요? 사리를 가리지 않고 온갖 것을 다 하며 버둥거리거나 악을 씀. 한자를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은 弓(활 궁)과 癹(짓밟을 발)의 합자예요. 풀을 짓밟아 길을 평탄하게 만들듯이 활 시위를 평탄하게 잘 유지하여 활을 쏜다는 의미예요. '피다'라는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활을 쏘듯이 꽃봉오리가 열리거나 일이 시작된다는 의미로요. 쏠 발. 발할 발. 發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發火(발화), 發射(발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心(마음 심)과 亞(곱사등이 아)의 합자예요. 의도적으로[心]으로 저지른 나쁜 행동이란 의미예요. 亞는 음을 담당하면서(아 →악)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의도적 저지른 나쁜 행동은 곱사등이처럼 추하다란 의미로요. 악할 악. 惡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惡漢(악한), 惡行(악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皿(그릇 명)과 戔(옅을 잔)의 합자예요. 깊이가 그리 깊지 않은 술이나 장을 담은 그릇이란 의미예요. 잔 잔. 盞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洗盞(세잔, 잔을 씻음), 燒酒盞(소주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플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필 발    악할 악    잔 잔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洗(   )   (   )火   (   )漢

 

3. 술과 관련한 실수담이 있으면 소개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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