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아왔니?"

 

영화 '황산벌'을 보면 김유신이 화랑 관창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장면이 나와요. 백제군에 사로 잡혔다 풀려난 관창을 비겁한 자로 몰아 세우는 것이지요. 그러나 속셈은 다른데 있어요. 그가 죽어야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 백제군을 칠 수 있기에 죽음을 강요하는 거예요. 계백은 김유신의 전략에 말려 들지 않으려 애를 쓰지요. 하여 다시 붙잡힌 관창을 어떻게든 살려 보내려 해요. 하지만 죽기를 처절히 원하는 관창의 결기에 휘말려 결국 그를 죽여서 보내죠. 김유신의 술수에 지고 만 것이죠. 비록 영화 속의 가상 이야기지만 실제도 다르지 않았다고 봐요.

 

청년은 순수해요. 그러나 순수한 만큼 무모하며, 노회한 이들은 그 무모함을 이용하죠. 지금도 국지전 혹은 테러에서 많은 경우 청년들이 소모품으로 사용되는 것은 그들의 자발적인 지원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순수함을 이용한 노회한 이들의 교묘한 술수 때문이죠. 저는 이런 점에서 청년(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거나 그럴듯한 명분으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을 몹시 증오해요.

 

청년수당 지급을 놓고 설전을 벌이는 우리의 현실은 너무도 답답해요. 당연히 지급해야 할 돈을 놓고 왜 설전을 벌이는지 모르겠어요. 먹고 살 길을 찾을 동안 그가 생계에 연연하지 말라고 지원해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닌가요? 제 자식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굶어 죽을 판인데 어느 부모가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이에요. 모든 기성 세대는 부모이고, 청년은 자식 아니던가요? 우리는 아직도 청년들에게 저 옛날 관창에게 강요했던 희생을 여전히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사회)는 아직도 미개함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에요.

 

사진은 '조국의 미래 청년의 책임'이라고 읽어요. 가만히 내용을 들여다 보면 앞서 말한 노회한 이(들)의 술수가 묻어나는 문구예요. 이 문구는 이렇게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조국의 미래, 청년!'

 

지금 우리 사회는 조국의 미래인 청년을 위해서 과연 무엇을 해주고 있을까요? 저는 청년을 위해 정부에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요. 모든 학생들 -- 나이에 관계없이 -- 에게 우리나라의 모든 미술관과 박물관 -- 공사립에 관계없이 -- 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특권을 주라고. 모든 것이 기계화 자동화 되어 가는 세상에 우리가 간직하고 길러야 할 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휴머니즘과 예술 향유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아마도 이런 특권을 청년 세대에게 준다면 우리의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모습으로 달라질 것 같아요.

 

 

祖와 責과 任이 좀 낯설어 보이는군요. 자세히 알아 볼까요?

 

는 두 가지로 설명해요. 하나. 본래 이 글자는 且 하나로 표기했으며, 且는 남근을 그린 것이다. 이는 생식 혹은 생산을 주관하는 신을 표현한 것이다. 둘. 示(神의 약자, 귀신 신)과 且(버금 차)의 합자로, 시조신을 모신 사당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示으로 뜻을 나타냈고, 且는 음을 담당한다(차 -->자). 두 글자에서 공통된 의미는 신이고, 일반적으로 이 글자는 시조신이란 의미로 사용해요. 조상 조. 祖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祖上(조상), 始祖(시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貝(조개 패, 재화의 의미)와 朿(刺의 약자, 찌를 자)의 합자예요.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상대를 압박한다는 의미예요. 꾸짖을 책. 責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責務(책무), 自責(자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人(사람 인)과 壬(맡을 임)의 합자에요. 본래 壬 하나로 표현하다가 일을 맡는 주체가 사람이란 의미로 人을 추가해서 사용하게 됐어요. 任과 壬은 통용해요. 맡을(길) 임. 任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任務(임무), 赴任(부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祖 조상 조    꾸짖을 책    맡을(길) 임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自(   )  (   )務   (   )上

 

3. 다음 밑줄 친 부분을 한자로 써 보시오.

 

   조국미래,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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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먹고 갑니다! ㅇㅇㅇ"

 

 

이따금 음식점에서 유명인의 싸인을 보게 될 때가 있어요. 워낙 가짜가 판을 치는지라 "진짜 그 사람의 싸인이 맞을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대체로는 "아, 이 음식점 괜찮은 음식점인가 보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돼요. 유명인을 직접 본 것도 아니고 단지 그의 필적만 본 것인데도 그것이 붙은 집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을 보면 후광 효과가 크긴 큰가 봐요.

 

 

이따금 이와 유사한 경험을 유적지에서도 하게 돼요. 얼마 전 장성의 백양사를 찾았다가 쌍계루에 올랐는데 여기에는 우리가 익히 들어온 옛 분들의 시가 여러 개 걸려 있더군요. 시의 내용은 차치하고 우선 그 분들의 이름을 대하니 쌍계루가 남다르게 느껴지더군요. 왠지 쌍계루 주변의 풍광이 더 멋있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이 역시 후광 효과겠죠?

 

사진은 쌍계루에 걸려 있는 옛 분들의 시 중에서 포은 정몽주 선생의 시와 하서 김인후 선생의 시를 찍은 거예요. 고려 말과 조선 중기를 살았던 두 분은 쌍계루에서 무엇을 느끼셨을까요?

 

 

求詩今見白巖僧 구시금견백암승     백암사 스님 시를 구하나

把筆沈吟愧不能 파필침음괴불능     붓 잡고 쩔쩔매니 부끄럽기 가없네

淸叟起樓名始重 청수기루명시중     청수 스님 중창하며 이름나기 시작했고

牧翁作記價還增 목옹작기가환증     목옹 기문 덧보태어 더더욱 이름났지

煙光縹緲暮山紫 연광표묘모산자     노을 지니 저물 녘 산 자색으로 젖어들고

月影徘徊秋水澄 월영배회추수징     달 그림자 배회 속에 가을 물이 맑아라

久向人間煩熱惱 구향인간번열뇌     오랫동안 세속 번뇌 시달렸거니

拂衣何日共君登 불의하일공군등     언제나 다 잊고 함께 오를 것인지

 

 

포은 정몽주 선생의 시예요. 제목은 '쌍계루에 부치다[寄題雙溪樓]'예요. 백양사 스님의 요청을 받고 시를 짓게 됐다고 운을 뗐어요. 스님의 요청은 무엇이었을까요? 쌍계루를 돋보이게 해달라는 것 아닐까요? 그러자면 쌍계루의 두드러진 내력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야 겠지요. 선생은 그 요청을 기꺼이 수용했어요. 청수 스님의 중창과 대문호 이색의 기문을 받은 일로 쌍계루의 두드러진 이력을 드러내고 여기에 몽환적이고 탈속적인 풍경을 덧붙였지요.

 

마지막 결구는 쌍계루에서 느끼는 선생의 마음을 담았는데, 범상치 않아요. 얼핏보면 상투적인 글귀처럼 보이지만 선생이 현실 정치에 몸담았던 인물이란 것을 생각하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이에요. 복잡다단한 현실에 눈을 감고 싶지만 눈을 감아서는 안되는 지성인의 자의식이 강하게 느껴져요. 선생은 쌍계루의 아름다운 풍광에 동화되지 못하고 있어요.

 

조선 중기를 살았던 하서 김인후 선생은 어떤 느낌으로 쌍계루를 찾았을까요?

 

 

樓頭識面兩三僧 누두식면양삼승    누각에 오르니 낯 익은 두 세 스님

持守前規喜爾能 지수전규희이능    전대의 전통을 아름답게 잇고 있다네

絶澗言因淸叟懇 절간언인청수간    청수 스님 부탁을 절간공이 전하여 목옹 기문 얻었고

烏川句爲牧翁增 오천구위목옹증    오천공의 시를 얻어 목옹 기문에 덧붙였네

曾聞寫記菴爲幻 증문사기암위환    듣자니 기문 적은 이 아호가 환이라는데

今見隨行號偶澄 금견수행호우징    살펴보니 따른 이는 아호가 징이었네

扶病懶經頑石路 부병나경완석로    지병이라 돌길을 천천히 거니는데

春風不負少年登 춘풍불부소년등    춘풍은 소싯적과 다름 없어라

 

 

시 제목은 '삼가 포은 선생의 쌍계루 시에 차운하다[雙溪樓敬次圃隱韻]'예요. 동일한 운을 밟으면서 선생은 어떤 느낌을 노래했을까요? 낯익은 스님을 만나는 것으로 운을 뗐어요. 그런데 이 시 역시 쌍계루를 돋보이게 하는데 목적이 있기에 쌍계루에 얽힌 독특한 내력을 그리고 있어요. 포은 선생의 시와 다른 점은 풍경 묘사가 빠졌다는 점이에요. 이미 포은 선생이 풍경을 핍진하게 그렸기에 더 보탤 것이 없다고 여기지 않았나 싶어요. 대신 독특한 내력을 드러내는데 중점을 뒀지요. 쌍계루의 독특한 내력은 시문과 관계된 이들의 아호에 '물[水]'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에요. 목옹[이색]에게 기문을 요청했던 절간(絶澗), 그리고 스님의 요청으로 시를 지은 오천(烏川, 정몽주를 지칭. 오천은 정몽주의 출신지), 현암에게 쌍계루기 글씨를 부탁한 징공(澄公, 청수 스님)의 아호에는 공통으로 '물'이 들어가 있어요. 이런 우연의 일치는 쉽지 않기에 의미를 부여할만 한 가치가 있지요. 선생은 이런 사실을 통해 쌍계루의 남다른 점을 드러냈어요.

 

마지막 결구는 쌍계루를 찾은 소회를 그렸는데, 포은 선생의 결구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에요. 처사의 여유로운 마음이 느껴져요. 병든 몸으로 이곳을 찾았지만 소싯적 느꼈던 온화한 봄바람을 다시 느낀다는 기쁨을 노래하고 있거든요. 현실 정치에서 한 발 비껴섰던 선생인지라 포은 선생과는 다른 느낌으로 쌍계루를 대했던 것 같아요. 쌍계루의 풍광을 노래하진 않았지만 선생은 이미 풍광의 일부분이 돼있어요.

 

동일한 대상과 동일한 운으로 시를 지었지만 처한 시대가 다르고 선택한 삶의 방식이 다르기에 시의 풍모도 확실히 달라요. 이 시대 어느 유명한 문인이 이 쌍계루에서 시를 짓는다면 그는 어떤 풍모의 시를 지을지 궁금해지네요.

 

※ 하서 김인후 선생의 시는 해석이 어렵더군요. 인터넷을 참고해도 납득이 안되는 부분이 많아 결국 자의적으로 해석을 했어요. 혹 눈 밝은 분께서 시의 해석을 보고 이상하다고 지적하면, 위에서 이야기했던 김인후 선생 관련 내용은 모두 구라가 돼요. ㅠㅠ 자신없는 글을 게재해셔 죄송해요. ㅠㅠ

 

 

낯선 한자를 몇 자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는 糸(실 사)와 票(漂의 약자, 떠다닐 표)의 합자예요. 공중으로 튀어 이리저리 날리는 불똥의 색깔과 흡사한 옷감의 색깔이란 의미예요. 본뜻의 일부를 취해 휘날리다란 뜻으로도 사용해요. 옥색 표. 휘날릴 표. 縹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縹瓦(표와, 옥색의 기와), 縹縹(표표, 휘날리는 모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糸(실 사)와 眇(작을 묘)의 합자예요. 지극히 작다란 의미예요. 일상의 물건 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작은 물체가 실이기에 糸로 뜻을 표현했어요. 眇는 음을 담당하면서 그 자체의 의미로 본뜻을 보충하고 있어요. 작을 묘. 아득하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지극히 넓어 그 끝을 알 수 없는 것을 지극히 작아 대상을 파악하기 힘든 것과 유사하게 본 것이지요. 아득할 묘. 緲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緲然(묘연, 지극히 작은 모양), 緲緲(묘묘, 한없이 넓은 모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緲는 渺와 통용해요.

 

는 糸(실 사)와 此(이 차)의 합자예요. 옷감의 색깔이 자줏빛이란 의미예요. 糸로 의미를 나타냈고 此는 음을 담당해요(차→자). 자줏빛 자. 紫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紫霞(자하, 자줏빛의 구름 기운. 신선이 사는 곳에 떠돈다는 구름 기운), 紫氣(자기, 자줏빛의 상서로운 기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扌(손 수)와 弗의 합자예요. 부정한 것을 털어 제거한다는 의미예요.  扌로 뜻을 표현했어요. 弗은 음을 담당하면서[불]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이 글자는 본래 구부러진 화살을 펴는 교정 장치를 의미하는 글자인데, 이 교정 장치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 주고 있어요. 교정 장치는 잘못된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인데, 그렇듯 부정한 것을 제거하고 바르게 한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털 불. 떨칠 불. 拂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拂拭(불식), 拂去(불거, 털어 버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口(에워쌀 위)와 甫(씨 보, 남자의 미칭)의 합자예요. 남자의 미칭(美稱)처럼 맛있고 색깔 좋은 채소가 자라는 밭[口, 밭의 테두리를 의미]이란 의미예요. 채마밭 포. 圃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圃翁(포옹, 밭농사 짓는 노인), 圃囿(포유, 채마밭 혹은 궁중의 동산이란 뜻)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心(마음 심)과 貇(돼지 간)의 합자예요. 돼지가 먹이를 밝히며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일체의 잡념없이 한 가지 일에 전념한다는 의미예요. 정성 간. 간절할 간. 懇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懇切(간절), 懇願(간원, 간절히 원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氵(물 수)와 登(오를 등)의 합자예요. 물이 고요하고 맑다란 의미예요. 氵로 뜻을 표현했지요. 登은 음을 담당하면서(등→징)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흐린 물이 정화되면 맑고 깨끗한 물은 위로 올라오고 탁한 이물질은 아래로 가라앉는다는 의미로요. 맑을 징. 澄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澄淸(징청, 맑고 깨끗함), 澄高(징고, 맑고 높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忄(마음 심)과 賴(힘입을 뢰)의 합자예요. 남에게 의지하는 나약한 마음이란 뜻이에요. 나약할 라. 나약한 사람은 대개 게으르기 쉽다는 의미로도 쓰여요. 게으를 라. 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懶怠(나태), 懶性(나성, 게으른 성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頁(머리 혈)과 元(으뜸 원)의 합자예요. 머리가 둔하다는 의미예요. 元은 음을 담당해요(운→완). 무딜 완. 완고할 완. 頑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頑强(완강), 頑固(완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옥색 표    아득할 묘    자줏빛 자   떨칠 불   채마밭 포   간절할 간  

   맑을 징   게으를 라    완고할 완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怠   (   )切   (   )固   (   )拭   (   )縹   (   )淸   (   )霞   (   )囿   (   )然

 

3. 다음을 읽고 풀이해 보시오.

 

   煙光縹緲暮山紫  月影徘徊秋水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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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12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한시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을 솔직하게 밝히는 모습이 좋습니다. ^^

찔레꽃 2016-06-12 20:48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ㅠㅠ 좋게 이해해 주시니 감사할 뿐이에요. ^ ^
 

질문 1. 이 그림의 배경이 되는 시간대는 언제일까요?

 

질문 2. 이 그림에는 배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사진은 지난 주말 지인의 자제 결혼식에 갔다가 찍은 거예요. 지인이 잡아 준 숙소에 있던 그림이에요.

 

멋진 그림인데 화제(畵題)를 보고 그만 실소(失笑)하고 말았어요. 왜 그랬냐구요? 화제를 읽어 보면 알 수 있지요.

 

풍주재월부추수(風舟載月浮秋水), 바람 맞은 배 달빛을 싣고 추수(가을 물)위에 떠있네.

 

이 그림의 배경이 되는 시간대는 달이 보이는 저녁이 아니예요. 낮이거나 저물녘이에요. 그리고 바람 맞은 배는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아요. 그림과 화제가 맞지 않는 거죠. 실소가 나올 밖에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풍주재월부추수'는 가을 풍경을 그린 동양화에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글귀더군요. 이 그림을 그리신 분께서 자신의 그림이 가을 풍경이다보니 이 화제를 별 생각없이 갖다 쓰신 것 아닐까 싶어요. 멋진 그림에 어울리지 않는 화제를 써서 그림의 가치를 반감시킨 격이 됐어요. 화제는 동양화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2%인데, 이 그림에서는 그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어요. 아쉬워요.

 

외람되게 이 그림에 어울리는 화제를 하나 지어 봤어요. 寒岸鷗去來 客心自蕭蕭(한안구거래 객심자소소), 가을 해안에 기러기 오락가락 하니 나그네 마음 절로 스산해지네. (잘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림의 내용과 어긋나지는 않아 원 화제보다는 나은 듯.)

 

※ 혹 이 그림의 작가 분께서 이 글을 읽으셨다면 기분이 대단 불쾌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코 작품의 가치를 훼손시키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 아니고 단순히 한자 공부를 위한 한 자료로써 사용한 것이니, 너른 이해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그림은 더없이 훌륭하다는 점을 고백합니다.

 

사진의 한자를 알아 볼까요? 風은 바람 풍, 舟는 배 주, 載는 실을 재, 月은 달 월, 浮는 뜰 부, 秋는 가을 추, 水는 물수 예요. 載가 좀 낯설어 보이는 군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죠.

 

는 수레에 올라 타다란 의미예요. 車(수레 거)로 뜻을 표현했지요. 나머지 부분은 음을 나타내는데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이 글자는 무기로 ― 글자 안에 戈(창 과)가 들어 있죠 ― 상대를 찔로 상처를 입힌다는 의미예요. 여기서 '찌른다'는 의미로 본뜻인 '타다'란 의미를 보충하고 있어요. 무기를 상대에게 찔러 넣듯이 수레 안에 올라탄다는 의미로요. 탈 재. '타다'라는 본뜻에서 연역된 '싣다'라는 뜻으로도 사용해요. 실을 재. 載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記載(기재), 揭載(게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오늘은 정리 문제가 필요 없겠죠? 내일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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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예뻤다? 아니, 그녀는 살벌했다!

 

신영복 선생의 책에서 어떤 책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따라서 이하의 내용도 다소 정확성이 떨어져요. 그러나 큰 뜻은 틀리지 않아요  어떤 창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보통 창녀들은 이른 바 기둥 서방을 갖고 있는데, 한 창녀는 그런 기둥 서방이 없었다고 해요. 기둥 서방은 창녀를 보호해 준다는 빌미로 그녀들을 등쳐 먹고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죠. 그런데 이 창녀는 그런 기둥 서방을 두지 않았던 거예요.

 

그러다보니 기둥 서방을 자처하려고 그녀를 집적 거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녀를 무시하고 함부로 하려는 사내들이 나타났죠. 그녀는 그런 자들을 대할 때 마다 서슬퍼런 자해 행위를 통해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 물리쳤다고 해요.

 

선생은 이 이야기의 말미에 이런 여인에게 보편적 요조숙녀의 덕목이 과연 적용될 수 있겠냐는 질문을 해요. 그러면서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지 않고 내뱉는 말이나 행동은 폭력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지요.

 

집 주변에 선생이 말한 그 여인과 비슷한 꽃이 있어요. 과도할 정도의 자기 방어를 하는 날선 꽃이지요. 무슨 소리냐구요? 잎새와 줄기에 가시가 있어 만지기도 어렵고 키는 야생화답지 않게 멀대처럼 크고 꽃도 짙은 보라색에다 바늘같은 모양이거든요. 

 

눈치 채셨나요? 그래요, 이 꽃의 이름은 엉겅퀴예요. 이름도 참 그렇죠? 상처의 피를 엉키게 한다해서 엉겅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고 하여 좋은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엉킨다는 것은 순리에 어긋난다는 의미도 있고 또 엉성하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어 꼭 좋은 의미로만 봐주기도 그렇거든요. 언제부턴가 벽채 한쪽에 꽃을 피우기에 ― 엉겅퀴는 다년생이에요 ― 자라기 전에 얼른 자르거나 뽑아 버렸는데 올해는 바빠서 내버려 뒀더니 너무 커버려 손을 대기 어려울 정도가 됐어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지켜만 보게 됐죠.

 

그런데 이 꽃을 바라보다 문득 신영복 선생의 한 창녀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어쩌면 엉겅퀴도 그 여인과 같은 꽃이 아닌가 싶더군요. 싹을 띄우고 꽃을 피워야겠는데 어설프면 사람(동물)들이 다 뽑거나 먹어 버릴까봐 자기를 지키기 위해 가시를 돋우어 날선 모습으로 변한 것이 아닌가 싶은 거예요. 사람들의 사랑을 차지하는 순화된 꽃들과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된 것을 그의 입장에서 한 번 헤아려 본 것이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일반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초의 기준으로 이 꽃을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 평가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각이 바뀌니 이상하게 꽃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지더군요. '그래, 그럴수도 있겠구나! ' 이런 마음으로 엉겅퀴를 보니 왠지 겉보기와 달리 속정이 깊은 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도 접근을 막는 가시를 빼고는 사람에게 해를 주는 것이 없더군요. 확실히 겉만 보고 이 꽃을 평가했던 제가 미숙했어요.

 

하여 오늘 화해(?)의 기념으로 엉겅퀴 사진을 한장 찍었어요. 재미난 건 사진을 찍는데 이 꽃이 왠지 수줍어 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는 거예요. 그토록 날서 보였던 모습은 어디가고...

 

엉겅퀴는 한자로 대계(大薊), 산우방(山牛蒡), 야홍화(野紅花) 라고 해요. 계(薊)는 엉겅퀴라는 뜻이고, 우방(牛蒡)은 우엉이란 뜻이에요. 계앞에 대(大)를 붙인 것은 엉겅퀴의 키가 크다는 의미로 붙인 것이고, 우방앞에 산(山)을 붙인 것은 엉겅퀴의 뿌리가 우엉과 비슷하지만 본래의 우엉만 하지는 못하다는 의미로 붙인 거예요. 야홍화는 엉겅퀴가 피는 장소와 꽃 색깔의 특징을 표현한 이름이예요.

 

薊만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艹(풀 초)와 魝(다듬을 결)의 합자예요. 생선의 비늘을 다듬 듯 잎새와 줄기의 가시를 다듬어야 쓸모가 있는 풀이란 의미예요. 엉겅퀴 계. 薊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일상적인 예로는 들만한게 없고 약초의 하나인 山薊(산계, 백출의 원 재료)와 방금 나온 大薊(대계)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한자가 하나 뿐이라 굳이 정리 문제를 풀 필요는 없겠죠? 대신 민영 시인의 유명한 '엉겅퀴 꽃'을 읽어 보도록 하시죠.

 

엉겅퀴야 엉겅퀴야 / 철원평야 엉겅퀴야 / 난리통에 서방 잃고 / 홀로 사는 엉겅퀴야 / 갈퀴손에 호미 잡고 / 머리 위에 수건 쓰고 / 콩밭머리 주저앉아 / 부르느니 님의 이름 / 엉겅퀴야 엉겅퀴야 / 한탄강변 엉겅퀴야 / 나를 두고 어디 갔소 / 쑥국 소리 목이 메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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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공부할 때는 자리에서 일어날 때 뼈마디에서 오도독 소리가 날 정도로 공부해야 합니다."

 

 

출향하여 타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 공부를 하자니 여러가지로 힘든 점이 많았어요. 무엇보다 타지까지 나와서 공부를 하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긴 하는데,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에서는 다른 친구들도 다 열심히 하기 때문에, 성적이 오르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평소 마음 속으로 좋게 생각하고 있던 '세계사' 선생님께서 위와 같은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세계사 선생님은 제 눈에 좀 특별하게 보였어요. 어쩌다 교무실에 가면 다른 선생님들은 담배를 피시거나 한담을 나누시는데 선생님은 교안을 열심히 보고 계셨거든요. 그래서 그랬는지 선생님의 수업은 무척 알찼어요. 판서 글씨도 필체가 좋아서 공책에 필기 하기가 좋았구요. 자연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무척 성실하시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마음 속으로 그 분을 좋아 하게 되었지요. 이런 선생님께서 공부 자세에 대해 말씀을 해주시니 남다르게 들리더군요.                                                                                  

 

 

이후 정말 선생님의 말씀처럼 공부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노력 덕분이었을까요? 성적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고 나름대로 고등학교 생활도 정상궤도(?)에 오르게 되었죠.

 

                                                        

사진의 한자는 대현(大炫)이라고 읽어요. 大는 큰 대, 炫은 빛날 현으로, 말 그대로 '크게 빛난다'라는 의미예요. 길거리에서 만난 빌딩 이름인데 고등학교 때 세계사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의 함자와 똑같아 남다르게 느껴지더군요. 혹 이 빌딩에서 일하는 분들도 앉았다 일어날 때 뼈마디에서 오도독 소리가 나도록  일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 ^                                                 

 

 

제 나이를 기준으로 선생님의 연세를 헤아려보면 아마도 선생님의 지금 연세는 70을 바라볼 것 같아요. 어디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연락을 하면 되잖냐구요? 하하, 선생님이 절 아실리 없을 것 같아서 연락을 드릴 수가 없네요. 전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거든요. 당시도 절 모르셨는데 어찌 저를 아시겠어요? 서운하잖냐구요? 뭔 말씀을... 선생님의 말씀이 저를 구했는데 어찌 서운할리가 있겠어요! 감사할 뿐이죠.                     

 

 

大는 잘 아실테니 炫만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은 火(불 화)와 玄(검을 현)의 합자예요. 사방을 환하게 비춘다란 의미예 요. 火로 뜻을 표현했지요. 玄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으슥하고 먼 곳까지 환하게 비춘다란 의미로요. 비출 현. 빛날 현. 炫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炫燿(현요, 밝게 빛남), 炫炫(현현, 빛나는 모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참고로 玄이 들어가는 글자는 대개 '현'으로 읽어요. 예를 들어 볼까요? 鉉(솥귀 현), 弦(활시위 현), 絃(악기줄 현), 眩(아찔할 현)...             

 

 

이번엔 정리 문제를 아니 내도 괜찮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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