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재에 가보셨나요?

 

주인잃은 궁을 돌아볼 때 마다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지는데 낙선재에서는 그 슬픔이 좀 더해요. 그리 멀지 않은 시기까지 이곳에 박제된 역사의 인물이 아니라 동시대를 호흡했던 인물이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가까운 시기까지(1989) 낙선재에 살았던 주인은 이방자 여사죠. 일본명으로 마시모토 마사코인 이분은, 잘 알려진 것처럼,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 이은과 정략 결혼을 했던 여인이죠. 정략 결혼이란 정치적 계산에 의해 맺어진 것이기에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당사자들의 운명은 춤을 추게 돼죠. 일제 강점기와 해방이란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두 사람은 한 · 일 양국 어디로 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 시련의 세월을 보내죠.

 

1963년 이방자 여사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게 돼요. 이승만 정권 시절 입국을 거부당했던 것과 달리 박정희 정권의 배려로 귀국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이 배려라는 것도 다분히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이전 이승만 정권은 혹여 모를 정치적 부담때문에 이들의 입국을 거부했는데, 이 당시는 이미 이은 황태자가 병자의 신세였기에 정치적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이후 이방자 여사는 낙선재에 기거하며 시누이였던 덕혜옹주와 병자가 된 남편을  수발하며 지내죠. 이방자 여사는 돌아가기(1989) 전까지 자선사업에 전력을 기울였고 자신을 일본인 마시모토 마사코 보다는 조선의 황태자비 이방자로 인식하며 살았죠.  (어렸을 때 이분의 자선 사업을 보도하는 방송을  본  기억이 나요.) 그래서 그럴까요? 한국인에게 이 분은 몇 안되는 호감가는 일본인으로 꼽히죠. 

 

사진은 '낙선재' 현판이에요. 좀 이상한 것 같다구요? 하하, 눈치 채셨군요. 그래요, 이 현판은

이방자 여사가 머물던 그 '낙선재' 현판이 아니예요. 그 낙선재 현판은 이렇게 생겼지요.

 

 

앞에 나온 '낙선재'는 이 '낙선재'와 동음이의(同音異義)의 현판이에요. 일부러 동음이의를 취한 것인지, 모르고 한자를 다르게 쓴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네요(처가 취재해 온 것인데, 별 생각없이 그냥 찍어왔다고 하더군요).

 

앞에 나온 '낙선재'의 한자와 이방자 여사가 머물던 '낙선재'의 한자를 읽어 볼까요?

 

洛은 물이름 낙, 善은 착할 선, 財는 재물 재, 樂은 즐거울 락, 齋는 집 재예요. 앞에 나온 '낙선재'는 의미 풀이가 잘 되지 않지만, 굳이 풀이한다면 '낙양에서 생산되는 좋은 재화'라는 의미로 풀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여기에는 '낙양'을 차를 생산하는 장소로, 그리고 '차'를 투자 가치가 있는 재화로 볼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요. 또 하나의 전제는 커피집에서 차도 판매해야 한다는 점이구요(이 현판을 쓰는 집은 커피 집이거든요. 현판 아래에 Coffee House라고 써있는 것 보이시죠?). 이런 세 가지 전제가 다 가능하다면 이 '낙선재' 현판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현판일 거예요. 좋은 차를 판매하는 곳이란 의미가 될 테니까요.

 

이방자 여사가 살던 '낙선재'의 의미는 '선한 일 하기를 즐거워하는 집'이란 의미예요. 쉬운 말로 바꾸면 '선행의 집' 정도로 풀이할 수 있어요. 이방자 여사는 한국에서의 생애를 봉사와 자선 사업에 바쳤는데 집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자를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은 氵(물 수)와 各(각각 각)의 합자예요. 지금의 감숙성 합수현 백어산에서 발원하여 황하로 유입되는 물을 가리켜요. 물이름 락. 낙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洛陽(낙양), 洛書(낙서, 낙수의 거북 등에서 얻었다고 전해지는 주역과 관계있는 특별한 그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羊(양 양)과 言(말씀 언)의 합자예요. 양처럼 순하고 온화하게 말한다는 의미예요. 여기서 '착하다, 좋다'란 의미가 연역되었죠. 착할(좋을) 선. 善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善惡(선악), 善意(선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패(조개 패)와 才(재주 재)의 합자예요. 재물이란 의미예요. 조개는 고대에 화폐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貝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才는 음을 담당하죠. 재물 재. 財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財産(재산), 財力(재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거치대에 올려 놓은 북을 그린 거예요. 木(나무 목)이 거치대이고 위에 있는 白은 큰 북, 幺幺는 작은 북을 그린 거예요. 보통 '음악 악'으로 사용하는데 음악 연주시 대표적인 악기의 하나인 북을 그려 음악이란 의미를 표현한 것이지요. '즐거울 락, 좋아할 요'로도 사용하는데 모두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음악을 연주하면 즐겁고, 또 음악은 대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잖아요? 음악 악, 즐거울 락, 좋아할 요. 樂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音樂(음악), 娛樂(오락), 樂山樂水(요산요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示(神의 약자, 귀신 신)과 齊(가지런할 제)의 합자예요.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전 몸과 마음을 절제하고 깨끗이 한다는 의미예요. 示으로 이 의미를 표현했죠. 齊는 음을 담당하는데(제→재),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몸과 마음을 절제하고 깨끗이 하면 심신(心神)이 흩어지지 않고 가지런해진다는 의미로요. '집'이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몸과 마음을 절제하고 깨끗이 하기 위해 머무는 공간이란 의미로요. 집 재. 齋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위에서 나왔던 樂善齋(낙선재), 愼獨齋(신독재, 조선의 유학자 김집의 호로 '삼가하고 조심하는 집'이란 의미예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洛 물이름 낙    착할 선    재물 재    즐거울 락    집 재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娛(   )   (   )力   (   )意   (   )陽   愼獨(   )

 

3. 개업을 가정하고 한자로 상호를 지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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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6-05-25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1,2번은 수월케, 3번은 주관식엔 약해~~ 하며 위안중입니다.

2016-05-25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6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6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네의 '수련' 같지 않나요? 뭔 헛소리냐구요? 얼핏 보면 모네의 '수련'을 연상 시켜서... 죄송합니다.

 

 

 일요일 아침 인근의 팔봉산을 갖다 오는 길에 찍은 사진이에요. 폴더폰으로 먼 거리에서 찍다보니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어요. 꽃이 선명하게 나왔으면 꽤 괜찮은 사진이 되는 건데... 아쉬워요.

 

 

 

 연꽃은, 잘 알려진 것처럼, 불교에서 깨달음을 설명할 때 상징적인 매체로 많이 사용하는 꽃이죠. 진흙탕에서 피운 화사한 연꽃처럼 처절한 현실에 발을 두고 이상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란 의미로요. 연꽃을 보고 있자니 오랫동안 보관해 왔던 액자 하나가 생각나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고 사진을  찍었어요(아래 왼쪽 사진).

 

 

 

친척 한 분이 생전의 아버지께 선물했던 그림이에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제가 오랫동안 보관했는데, 집에 마땅히 걸어 놓을데가 없어 전시는 못하고 보관만 하고 있어요.

 

 

 

그림에 화제가 있어요(오른 쪽 사진). 무슨 내용인지 한 번 알아 볼까요?  "관차화만 여견염계 동문지지 함담공자(觀此花蔓 如見濂溪 東門之池 菡萏孔子)"라고 읽어요. "이 꽃 줄기를 보니 염계선생을 본 듯 하고, 동문 못가의 연꽃 봉오리 공자님 같아라"라고 풀이해요.

 

('동문지지 함담공자'의 문장이 왠지 어법에 잘 안맞는 것 같아요. 해석이 잘 안돼요. 약간 추측성으로 번역했어요. 아울러 '화만'의 '만'도 '蔓(덩굴 만)'인지 '萬(일만 만)'인지 확실히 구분을 못하겠어요. 서체에 익숙칠 않아서요. 염계선생의 '애련설'을 참고하여 '蔓(덩굴 만)'으로 보긴 했는데, 썩 자신이 없어요. 이하 이 화제에 관한 군말은 이상의 내용이 약간 불확실하기 때문에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어요. 죄송합니다.)

 

 

밑에 있는 정사하(丁巳夏)는 정사년(1977) 여름이란 뜻이고 범석(凡石)은, 이 그림을 그린 친척 분의 호인데, '평범한 돌'이란 의미예요.

 

 

 

공자를 모를 분은 없을 것 같고, 염계는 모를 분이 있을 것 같군요. 염계는 북송시대 사람으로 '태극도설'을 지어 성리학의 본격적 시원을 마련한 사람이에요. 성명은 주돈이라고 하는데 호가 염계라 흔히 주렴계라고 불리죠(염계는 주돈이가 거처하던 장소의 시내 이름이에요). 이분의 글 중에 '애련설'이 있는데, 자신이 왜 연을 좋아 하는지에 대해 쓴 짧은 에세이예요. 화제에서 연 줄기를 보고 염계 선생을 떠올렸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죠. 연꽃 봉오리를 보고 공자를 떠올린 것은 아무래도 이 그림의 중심이 연꽃이다보니 그렇지 않았나 싶어요. 공자는 유학의 종주(宗主)되는 분이니 마땅히 꽃에 비유해야 겠지요.

 

 

 

요컨데 이 그림을 그린 친척 분은 연 줄기와 연꽃을 바라보며 유학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지 않았나 싶어요. 『중용』에선 유학의 핵심을 '극고명이도중용(極高明而道中庸)'으로 표현하죠. 높고 밝음을 지극히 하되 중용을 따르는 것, 즉 이상을 추구하되 철저히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으려는 사상이 바로 유학이라는 거죠. 어쩌면 친척 분은 이런 유학의 핵심에 대한 사색을 통해 예술의 의미에 대해서도 사색하지 않았나 싶어요. "철저히 현실에 발을 딛고 추구하는 아름다움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다!" 라고 말이지요. 꿈보다 해몽이 좋은가요?

 

 

 

한자를 읽어 볼까요? 간지와 아호는 빼도록 하죠. 觀은 볼 관, 此는 이 차, 華는 꽃 화, 蔓은 덩굴 만, 如는 같을 여, 見은 볼 견, 濂은 내이름 렴, 溪는 시내계, 東은 동녘 동, 門은 문 문, 之는 어조사 지, 池는 못 지, 菡은 연꽃 함, 萏은 연꽃 담, 孔은 구멍 공, 子는 아들 자예요.

 

 

 

觀, 池, 菡, 莟만 좀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할까요?

 

 

 

은 見(볼 견)과 雚(황새 관)의 합자예요. 황새가 물고기를 잡을 때 예리하게 쳐다보듯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한다는 의미예요. 볼 관. 觀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觀察(관찰), 觀望(관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氵(물 수)와 也(匜의 약자, 대야 이)의 합자예요. 대야에 물이 고여있듯 땅을 파서 물을 가두고 고여있게 만든 곳이란 의미예요. 못 지. 池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池魚籠鳥(지어농조, 연못의 고기와 새 장의 새라는 뜻으로 자유롭지 못한 몸을 비유하는 말이에요), 池塘(지당, 못의 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艹(풀 초)와 函(함 함)의 합자예요. 함(상자)처럼 닫혀있는 연꽃[艹]이란 의미예요. 연꽃 봉오리를 말하는 것이지요. 개화한 연꽃이란 의미로도 사용해요. 연꽃(봉오리) 함. 菡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菡萏(함담, 연꽃 혹은 연꽃 봉오리) 정도 외에는 달리 들만한 예가 없네요.

 

 

 

은 艹(풀 초)와 閻(이문 염)의 약자의 합자예요. 연꽃이란 의미예요. 艹로 뜻을 표현했고 閻의 약자는 음을 담당해요(염→담). 閻의 약자는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열었다 닫았다 하는 이문처럼 연꽃도 꽃을 피웠다 닫았다 한다란 의미로요. 연꽃 담. 萏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앞서 菡의 예처럼 菡萏(함담, 연꽃 혹은 연꽃 봉오리)외에는 달리 들만한 예가 없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볼 관   못 지   연꽃(봉우리) 함   연꽃 담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魚籠鳥   (   )望   菡(   )

 

 

 

3. 다음을 읽고 느낌을 말해 보시오.

 

 

 

물이나 뭍에 있는 초목의 꽃으로 사랑할 만 한 것이 자못 많다. 진의 도연명은 홀로 국화를 사랑하였고, 당 이래로 세상 사람들은 모두 모란을 몹시 사랑하였다. 그러나 나는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 연꽃은 뻘땅에서 났어도 뻘땅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살에 씻겨도 빨리 죽지 않으며, 속은 비고 겉은 곧아서 넌출도 나지 않고 가지도 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많아서 쑥쑥 빼어나 깨끗이 서 있으니, 이것은 좀 떨어져서 바라볼 수는 있을지언정 가까이 친하여 구경할 수는 없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국화를 꽃의 은일한 것이라 하고 모란을 꽃의 부귀한 것이라 한다면 연은 꽃의 군자라 할 것이라고." 애달프다. 국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도연명이 간 뒤에 듣기가 드물거니와 연을 사랑하기 나만한 사람은 누구인고? 모란은 그저 여러 사람이 사랑하기에 마땅할 것이다.                                                          

                                                                                                    <주돈이 '애련설(愛蓮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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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6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찔레꽃 2016-05-26 13:07   좋아요 0 | URL
아, 이거 참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너무 과찬을... 지난 번 제 책에 대한 서평을 써주신 것을 읽으면서 느낀 점인데 이번에도 그와 유사한 느낌을 받네요.

막연히 인지하고는 있으나 정확히 모르는 저 자신에 대한 것을 일깨워주시는 그런 면을 느낍니다. 혹시 독심술사....ㅎㅎ 고맙습니다. ^ ^
 

 

 

서애류선생시

서애 류성룡 선생의 시

종송 병서

소나무를 심으며 /  서문을 붙임

이십구일 영자제급제승수배 종송능파대서 삼사십주

29일에 자제들과 집에 있던 중(僧) 여러 명에게 능파대 서쪽에 소나무 3, 40주를 심게 했다.

여상독낙천종송시운

내 일찌기 백낙천의 '소나무를 심으며'란 시를 읽은 적이 있다. 시에 이르길

여하년사십 종차수촌지 득견성음부 인생칠십희

"어이 나이 사십에 / 이 작은 소나무를 심었나 /

그늘을 볼 수 있을까? / 예로부터 칠십 먹는 늙은이 드물다는데"

금여년육십

이제 내 나이 육십하고도

 

 

삼 이시종 차가자소

셋인데 어린 소나무를 심었으니 이는 절로 실소가 나올 일이다.

우작수구어위희

뜻없이 몇 구절 장난삼아 지었다.

촉토북산하 종송서암각

북산 아래 흙을 파다 / 서쪽 바위 모퉁이에 소나무를 심었네

토부불영궤 송단불영척

덮은 흙은 한 삼태기 안되고 / 나무 크기 한 자도 안된다네

이피난석간 각대상근색

어지러운 돌틈 사이 헤집고 심었나니 / 저마다 뿌리 상한 흔적 있네

득지종상개 자신소윤택

자리는 흔쾌하나 / 자라기엔 험하겠네

지지우로유 삽삽상풍급

우로(雨露)는 적고 / 칼바람만 많겠네

노부강호사 방인소기졸

늙은이는 좋은 일이라 억지 부리나 / 지켜 보는 사람들은 졸렬함 비웃으리

여하노대년 양차난성물

어찌 나이 많은 늙은이가 / 보람 얻기 힘든 물건 기른단 말가

 

 

음성고불망 봉식지수력

그늘 보기란 기대하기 어렵지만 / 나무 심은 뜻 아는 이 있으리

앙소회천재 유여난봉숙

천년 뒤 하늘 찌를 듯 하면 / 난새와 봉황의 보금자리 되리라

을유유하

을유년(2005) 여름 5월에

심삼대손 시정 근수

13대손 시정이 삼가 세우고

십일대방손 세영 근서

11대 방계손 세영이 삼가 쓰다.

 

혹 읽고 싶은데 끝내 못읽은 책이 있으신지요? 제겐 그 책이 『징비록』이에요. '자유교양문고'로 나온 것을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었는데, 끝내 못읽고 시립도서관에 기증했어요. 한학에 조예있는 이재호씨가 번역한 좋은 책이었는데,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더군요.

 

『징비록』의 저자는, 아시는 것처럼, 서애 류성룡이죠. 이분의 고향은 그 유명한 하회마을이구요. 이곳은 류씨 일가 집성촌이죠. 임께서도 한 번 가보시지 않았을까 싶네요. 저도 여러 해 전 겨울에 이곳을 찾은 적이 있어요. 하회 마을에서의 추억은 아이들과 한 방에서 잔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초가집(민박) 따뜻한 온돌방에서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잠들었던 그 때 기억을 떠올리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돌아요.

 

사진은 당시 하회마을에서 찍은 거예요. 사진을 찍은 기억조차 희미한데, 아내가 우연히 발견하고 건네 줬어요. (요즘 아내가 더없이 적극적인 취재원이 됐어요.) '성년의 날'을 맞은 딸 아이에게 의미있는 선물을 해주겠다고 묵은 사진을 뒤적이다 찾았다고 하더군요. 비록 아이들 모습은 없는 돌덩이 사진이지만, 응시하고 있자니, 당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피어 나더군요.

 

사진의 내용은 서애 유성룡 선생이 늙으막에 소나무를 심은 소회를 읊은 거예요. 선생은 왜 소나무를 심었을까요? 성장한 나무의 그늘을 당대에 맛보지 못할 줄 뻔히 알면서도 말이지요. 게다가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까지 사면서요. 해답은 마지막 구절에 있어요. "천년 뒤 하늘을 찌를 듯 하면 / 난새와 봉황의 보금자리 되리라"는 구절 말이에요.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그렇죠! 다분히 후손들에게 교훈을 주고자하는 의도지요. 나처럼 살 날이 멀지 않은 사람도 먼 후일을 위해 이렇게 어린 나무를 심는데, 젊은 너희들은 당연히 나보다 더 원대한 뜻을 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가르침인 것이지요. 선생이 후세를 위해 임진왜란 비망록인 『징비록』을 남겼다면, 집안 자손들을 위해서는 이 '종송(種松)'이란 시를 남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후손들이 돌에 시를 새긴 것 아닐까 싶어요.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車(수레 거)와 非(排의 약자, 늘어설 배)의 합자예요. 수레(전차)가 차례대로 제 위치에 도열해 있다는 의미예요. 많은 전차가 차례대로 도열해 있다는데서 '무리'라는 뜻이 연역되었어요. 무리 배. 輩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謀利輩(모리배), 暴力輩(폭력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冫(얼음 빙)과 夌(언덕 릉)의 합자예요. 언덕처럼 돌출하여 얼은 얼음이란 뜻이에요. 본뜻보다 '건너다, 범하다'란 의미로 더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돌출한 얼음은 일반 얼음의 상태를 뛰어넘은 것이란 의미로요. 그런 것이 '건넌' 것이요 '범한' 것이지요. 건널(범할) 릉. 凌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凌室(능실, 얼음 저장고), 凌駕(능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禾(벼 화)와 希(드물 희, 바랄 희로도 많이 사용하죠)의 합자예요. 모[禾]를 뜨문뜨문 심었다는 의미예요. 보통 '드물다' 의미로 사용하는데, 본뜻을 축약하여 사용하고 있는 거예요. 드물 희. 稀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稀少(희소), 稀微(희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亻(사람 인)과 禺(원숭이 우)의 합자예요. 나무나 흙을 이용하여 만든 사람의 형상, 즉 허수아비란 의미지요. 禺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원숭이가 사람을 닮은 것처럼 허수아비도 사람을 닮았다란 의미로요. '마침(우연)'이란 의미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허수아비가 사람과 마침맞게 닮았다란 의미로요. 허수아비(마침) 우. 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偶像(우상), 偶發(우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병기를 활용한 유희란 뜻이에요. 오른 쪽의 戈(창 과)로 뜻을 표현했고, 왼쪽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놀 희. 戱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遊戱(유희), 戱曲(희곡)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刂(칼 도)와 屬(이을 속)의 합자예요. '깎다'란 의미예요. 刂로 뜻을 표현했고, 屬은 음을 담당해요(속→촉). 깎을 촉. 劚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玉(촉옥, 옥을 깎다), 石(촉석, 돌을 깎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襾(덮을 아)와 復(돌아올 복)의 합자예요. '덮는다'란 의미예요.  襾로 뜻을 표현했고, 復으로 음을 나타냈죠(복→부). 덮고 열기를 반복한다란 의미로도 사용해요. 덮을 부, 풀이할 복. 覆가(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掩覆(엄부, 덮어 가림), 反覆(반복, '反復'으로 표기하기도 하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皿(그릇 명)과 夃(더할 고)의 합자예요. 물건이 담긴 그릇에 추가로 물건을 더하여 그릇을 가득 채운다는 의미예요. 찰 영. 盈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盈昃(영측, 차고 기움), 盈尺(영척, 한 자 남짓. 협소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竹(대 죽)과 貴(귀할 귀)의 합자예요. 흙을 담아 나르는 바구니란 의미예요. 竹으로 뜻을 나타냈고, 貴로 음을 나타냈어요(귀→궤). 貴는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흙이 새나가지 않도록 조밀하고 정성스럽게 바구니를 짰다란 의미로요. 죽롱(삼태기) 궤. 簣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단어로는 들만한게 없고 사자성어로 널리 알려진 功虧一簣(공휴일궤,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아홉 길이나 되게 산을 쌓은 공이 무산됐다는 의미로 오래 쌓은 공이 최후의 실수나 마지막 노력 미흡으로 무산되는 경우를 이름)를 들 수 있겠네요.

 

는 扌(손 수)와 皮(가죽 피)의 합자예요. 가죽을 벗겨내듯[皮] 헤짚어[扌] 드러나게 한다란 의미예요. 헤칠 피. 披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披瀝(피력), 披肝膽(피간담, 진심을 털어 놓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土(흙 토)와 豈(어찌 기)의 합자예요. 높고 환한 땅이란 의미예요. 土로 뜻을 나타냈고, 豈는 음을 담당해요(기→개). 시원한땅 개. 塏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塏(개개, 언덕 같은 것이 높은 모양), 爽塏(상개, 앞이 탁 틔어 밝은 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氵(물 수)와 玆(불을 자)의 합자예요. 불어났다란 의미예요.  氵로 뜻을 표현했고, 玆로 음을 나타냈어요. 玆는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이는 본래 초목의 개체수가 늘어났다란 의미인데, 이 의미로 본뜻인 '불어났다'의 의미를 보충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불을 자. 滋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滋養(자양, 몸의 영양을 좋게 함), 滋雨(자우, 오래 가물다가 내리는 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氵(물 수)와 睪(엿볼 역)의 합자예요. '윤택하게 한다'란 의미예요. 사물을 윤택하게 하는 것의 대표적인 것이 물이기에  氵로 뜻을 표현했어요. 睪은 음을 담당해요(역→택). 윤택하게할 택. 澤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潤澤(윤택), 恩澤(은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辶(걸을 착)과 犀(무소 서)의 합자예요. 무소처럼 천천히 걸어간다란 의미예요. 더딜 지. 遲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刻(지각), 遲滯(지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氵(물 수)와 需(구할 수)의 합자예요. 지금의 하북성 이현에서 발원하여 내수라는 강으로 유입되던 물이름이었어요.  氵로 뜻을 나타냈고, 需로 음을 나타냈지요(수→유). 후에 '적시다'란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흘러가는 유수(濡水)가 대지를 적신다는 의미로요. 적실 유. 濡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濡濕(유습, 적심), 濡需(유수, 구차하게 눈앞의 안일만을 취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風(바람 풍)과 立(설 립)의 합자예요. 급하게 이는[立] 바람[風] 소리라는 의미예요. 바람소리 삽. 颯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颯(삽삽, 바람이 쌀쌀하게 부는 소리), 爽(삽상, 바람이 시원하여 마음이 상쾌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亻(사람 인)과 旁(두루 방)의 합자예요. 이 사람과 저 사람 간의 간격이 멀지 않다란 의미예요. 곁 방. 傍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觀(방관), 傍點(방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扌(손 수)와 出(날 출)의 합자예요. 솜씨가 거칠다란 의미예요.  扌로 뜻을 표현했고, 出로 음을 표현했어요(출→졸). 出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이는 땅에서 풀들이 중구난방으로 막 올라오는 것을 표현한 것인데, 일정하지 않게 올라 온다는 의미로 '거칠다'란 본뜻을 보충해 주고 있는 것이지요. 졸할 졸. 拙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拙稿(졸고, 자신의 글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 拙劣(졸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日(날 일)과 卬(바랄 앙)의 합자예요. '들리우다'란 의미예요. 들리운 것 중에서 가장 높이 들리운 것이 해이기에 日로 뜻을 표현했고, 卬으로 음을 나타냈어요. 卬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들리운 것은 대개 바라보고 기대하는 대상이란 의미로요. 昻은 '높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들리운 것은 높은 곳에 있다란 의미로요. 들(높을) 앙. 昻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昻低(앙저, 높고 낮음), 昻聳(앙용, 높이 솟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雨(霰의 약자, 싸라기눈 산)와 肖(消의 약자, 사라질 소) 합자예요. 본래 싸라기 눈이란 의미예요. 雨로 뜻을 표현했고, 肖로 음을 나타냈어요. 肖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싸라기 눈의 특징은 물체에 닿으면 곧바로 녹는 것이다란 의미로요. 霄는 지금은 싸라기 눈이란 의미로는 사용하지 않고 '하늘'이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싸라기 눈이 내리는 곳은 하늘이란 의미로요. (싸라기 눈은 霰(싸라기눈 산)으로 표현해요.) 하늘 소. 霄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月(소월, 하늘에 걸린 달), 霄峙(소치, 하늘 높이 우뚝 솟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田(밭 전)과 卯(토끼 묘)의 합자예요.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 머문다는 의미예요. 농사짓는다는 의미의 田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농경은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 머물러야 가능한 일이잖아요? 卯는 음을 담당해요(묘→류). 머무를 류. 留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保留(보류), 留學(유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鳥(새 조)와 變(변할 변)의 약자가 합쳐진 거예요. 봉황과 유사하나 성장하면서 털 빛깔에 변화가 생겨 봉황과 다른 모습이 되는 새란 의미예요(난새의 털빛깔은 오색을 띄는데 그 중 청색이 두드러진다고 해요). 난새 란. 봉황이나 난새나 모두 상상의 새죠. 鸞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鸞鳳(난봉, 난새와 봉황이란 의미로 뛰어난 선비를 비유하는 말), 鸞駕(난가, 천자가 타는 수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宿은 宀(집 면)과 夙(일찍 숙)의 변형과의 합자예요. 쉬면서 잔다란 의미예요. 쉬면서 자는 곳이 대대 집이기에 宀으로 뜻을 표현했고, 夙으로는 음을 나타냈어요. 夙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이는 온 밤을 지내고 이른 새벽이 됐다는 의미인데, 온 밤을 지내고 이른 새벽까지 쉬면서 잤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하고 있는 것이지요. 잘 숙. 宿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寄宿(기숙), 宿食(숙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木(나무 목)과 留(머무를 류)의 합자예요. '석류'란 의미예요. 木으로 뜻으로 표현했고, 留는 음을 담당해요. 留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석류를 먹을 때 씨가 꼭 돌조각 같아 넘기지 못하고 입안에 남겨 두게 된다란 의미로요. 석류 류. 榴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石榴(석류), 榴花(유화, 석류꽃)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堅(굳을 견)의 약자와 立(설 립)의 합자예요. 말 그대로 흔들림없게[굳게] 세운다는 의미예요. 豎로도 표기해요. 세울 수. 竪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立(수립), 宦(수환, 환관이란 의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무리 배     건널(범할) 릉             드물 희     허수아비(마침) 우    놀 희   

   깎을 촉    덮을 부, 되풀이할 복    찰 영        죽롱(삼태기) 궤       헤칠 피   

    불을 자    시원한땅 개               더딜 지     윤택하게할 택        적실 유   

    곁 방        졸할 졸                     하늘 소     들(높을) 앙             난새 란  

   宿 잘 숙        석류 류                     세울 수     바람소리 삽            머무를 류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像   (   )駕   (   )微   (   )玉   掩(   )   (   )養   (   )昃   (   )瀝   爽(   )   遊(   )   (   )鳳  

   潤(   )   (   )聳   (   )滯   (   )濕   (   )爽   (   )點   (   )月   (   )食   (   )學   石(   )   (   )

   (   )劣   暴力(   )  功虧一(   )

 

3. 자식(손)에게 남겨 주고 말을 100 내외로 써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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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②                                            ③

 

유명 조선국 현록대부남연군겸오위도총부도총관 증시충정 완산이공휘구지묘 군부인여흥민씨 부좌

 

② 성상원년칠월 영의정조두순계언 남연군사판의시부조 역의개정미시 대왕대비교왈 충경독지지성 근

   신겸약지행 누조예우 금일 종사지뢰지 막비적선여 부조개시충정 이현양덕미 영세무두 시희이유현각 

   금자별수표비 이기시부조명 비후인첨모징신 세세무궁운이 숭정기원후사 을축 삼월 일 립

 

③ 남 흥선대원군 하응 근서

 

 

혹 징크스 있으신지요? 전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시험보는 날은 세수도 안하고 손톱도 안깎았어요. 세수하고 손톱 깎으면 공부한 것들이 다 날아가 버린다고 생각해서 그랬지요. 하지만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에 자신있는 날은 일부러 세수도 하고 손톱도 깎았어요. 

 

징크스에 연연했던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시험 성적은 차이가 있었을까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일부러 징크스를 깬 날 시험을 더 잘 봤던것 같아요. 징크스는 스스로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 만들어낸 미신이었던 셈이죠.

 

 

풍수지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어요. 어디 어디에 터를 잡으면 발복하고 어디 어디에 터를 잡으면 흉사가 생긴다는 것은 일종의 징크스를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 싶은 거죠. 발복한다는 곳에 터를 잡으면 왠지 실제 발복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이와 반대의 경우엔 괜히 불안할 것 같아요. 이른바 지관이란 사람들은 이런 징크스를 건드려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아닐까 싶구요. 정말 발복할만한 일을 한다면 그 어떤 곳에 터를 잡더라도 복을 받지 않을까요?

 

 

대원군은 풍수지리에 관한 징크스를 믿었던 사람이죠. 그랬기에 경기도에 매장된 그의 아버지 남연군의 시신을 충청도에 옮겨 매장했죠. 2대 천자가 나온다는 지관의 말을 믿고서 말이죠. 그리고, 알려진 것 처럼, 이후 실제 2명의 천자(고종, 순종)가 나왔죠. 하지만,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보면, 굳이 충청도에 이장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의 아들은 왕좌에 오를 가능성이 많았어요. 하지만 대원군은 이런 상황조차 이장 덕분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지난 토요일 덕산에 있는 가야산을 찾았다가 남연군 묘에 들렸어요. 사진은 남연군 묘 옆에 있는 비석을 찍은 거예요. 음은 위에서 소개했으니 뜻만 좀 알아 볼까요? ①은 남연군의 벼슬 이름과 그의 부인 여흥 민씨를 소개한 내용이라 딱히 풀이할 것이 없고, ③도 묘비명을 쓴 대원군 자신을 소개한 것이라 딱히 해석할 것이 없네요. ②만 한 번 풀이해 보도록 하죠.

 

 

"성상(고종) 원년(1864) 칠월에 영의정 조두순이 상소했다. "남연군의 신주는 마땅히 부조묘(일정한 기간이 지나도 폐기하지 않고 계속 제사를 받는 신주. 나라에 큰 공이 있는 경우 특별히 허가)로 하여야 할 것이며 시호도 새로 아름다운 시호를 내려할 것입니다." 이에 대왕대비(조씨)께서 전교를 내리셨다. "(남연군의) 충경 · 독지한 성품과 근신 · 겸약한 행실은 여러 조정에서 예우를 받았다. 금일 종사가 그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은 그 적선의 여택 아님이 없다. 부조묘로 하고 시호를 충정으로 바꿔 덕의 아름다움을 현양하여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게 하라." 이전에 (영)희라는 시호로 세워진 묘비가 있기에 이제 여기에 별도의 비를 세워 부조묘에 들고 시호를 바꾸게 한 (대왕대비의) 명을 기록하여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우러러 사모하고 신뢰하도록 하게 하나니 길이 영원하길 빌 뿐이다. 숭정 기원후 4년 을축(1865) 모일에 세우다."

 

 

대원군은 자신의 아들 고종이 왕좌에 오른 이듬 해 이 비를 세웠어요. 당시 대원군은 고종의 후견인으로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으니 얼마나 기세 등등 했겠어요! 그런데 대개 권력을 잡게 되면 자신의 가계를 미화하죠. 이 비문에서도 남연군에 대한 미화를 엿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남연군은, 여기 기록된 내용과 달리, 흠결이 많은 사람이더군요. 남연군은 자식 잘 둔 덕에 우상화(?)됐다고 봐야 할 거예요.

 

아마도 대원군은 이 비를 세우던 날 너무도 감격에 겨워 잠을 못 이뤘을 것 같아요. 지난했던 이장의 결단 과 실행 그리고 숨죽이며 파락호처럼 살아온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거예요.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이장이 정말 잘한 일이었노라 다시 한 번 확신을 가졌겠죠.

 

대원군이 권력을 잡은 것은 정말 이장의 영향이었을까요?

 

 

 남연군묘 앞에 있는 석등 구멍으로 바라 본 풍경을 하나 찍었어요. 전하기로 이 석등은 정밀한 계산하에 세워진 것으로, 사방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풍수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게 세운 것이라고 하더군요.

 

 지금 남연군 묘는 잡초만 무성해요. 대원군 집권 당시와 고종 순종 때는 결코 지금과 같지 않았을 거예요.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세월의 힘을 실감케 하죠.

 

 

어려운 한자가 많아서 다 공부하기는 그렇고 핵심 한자들만 몇 자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 , , , , 만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죠. , , , ,은 비문의 핵심 내용이고 , 은 비문을 쓴 대원군의 이름이라서요.

 

 

은 示(神의 약자, 귀신 신)과 兆(窕의 약자, 으늑할 조)의 합자예요. 으늑한 곳에 마련한 시조신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란 뜻이에요. 祧는 후에 신주를 옮긴다는 의미의 '천묘할 조'로 사용하게 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것이죠. (시조신의) 신주를 옮겼다는 의미로요. 천묘할 조. 祧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祧廟(조묘, 먼 조상을 합사(合祀)하는 사당), 宗祧(종조,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言(말씀 언)과 皿(그릇 명)과 兮(어조사 혜)의 합자예요. 먼저 皿과 兮에 대해 설명해야 겠네요. 皿은 器(그릇 기)와 같은 의미로 남에게 양도하지 않는 물건이에요. 여기서는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됐죠. 兮는 감탄의 종결사인데 여기서는 고인에 대한 감탄과 현창(顯彰)의 의미로 사용됐어요. 종합해 볼까요? 諡는, 고인에게 부여하는, 후세에 길이 전할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는 뛰어난 호칭이란 의미예요. 시호 시. 諡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諡號(시호), 諡法(시법, 시호를 정하는 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화려한 머리 장식이란 의미예요. 頁(머리 혈)로 의미를 표현했고,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드러나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머리 장식이 두드러져 보인다는 의미로요. 드러날 현. 顯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顯著(현저), 顯考(현고, 돌아간 아버지의 존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손으로 물체를 높이 들어 잘 보이게 한다란 의미예요. 扌(손 수)로 뜻을 표현했고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드날리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드날리려면 물체를 높게 들어 올려 잘 보이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드날릴 양. 揚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揭揚(게양), 擧揚(거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日(날 일)과 正(바를 정)의 합자예요. 夏(여름 하)의 옛 글자예요. 여름 하. 夏 모양으로 들 예는 많지만 이 글자 모양으로 들만한 예는, 대원군처럼 특별히 이름자에 쓴 경우를 빼고는, 딱히 없네요. 대원군의 이름에 夏의 옛 글자를 쓴 것은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렇지 않고서 굳이 많이 사용하지 않는 옛 글자를 사용할리 없잖겠어요? 그 특별한 의미는 뭘까요? (알아서 알려 드려야 하는데... 죄송. 임께서 아시면 좀 알려 주셔요.)

 

은 心(마음 심)과 雁(기러기 안, 모양이 약간 변했죠)의 합자예요. 무리지어 날면서도 질서를 잘 유지하는 기러기처럼 상호간에 마찰없이 생각이 잘 합치된다는 의미예요. 응할 응. 應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應答(응답), 應援(응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천묘할 조   시호 시   드러날 현    드날릴 양   여름 하   응할 응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擧(   )   (   )答   (   )著   (   )號   (   )廟

 

 

3. 다음을 읽고 풀이해 보시오.

 

 

   改諡忠正  以顯揚德美  永世無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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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5-1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고 갑니다~^^

찔레꽃 2016-05-18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드려요~ ^ ^

cyrus 2016-05-18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묏자리를 잘 골라야 대손 운세가 좋아진다고 믿는 사람이 많아요. 조상 묘 관리 제대로 못해서 안 좋은 일을 연달아 겪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찔레꽃 2016-05-19 0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생각도 그러신가요? ^ ^
 

정토수련원과 마음수련원.

 

하나는 29살에서 30살로 넘어가는 시기에 찾았던 곳이고, 하나는 39살에서 40살로 넘어가는 시기에 찾았던 곳이에요. 마음이 심란해서 찾았던 곳이죠. 고비에는 늘 좀 그렇잖아요?

정토수련원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를 화두로 수련을 했고, 마음수련원에서는 '죽이고 버리기' 수련을 했어요. 뭔가 깨우쳤냐구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평소와는 다른 신비 체험 비슷한 경험을 하긴 했는데 이후 지속적으로 그 경험을 확충시키지 않아서 그런지 도로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되더군요.

49살에서 50살로 넘어가는 시기엔 아무곳도 찾지 않았어요. 대신 일상에 충실하고 평범하게 살기로 다짐했죠.

 

사진은 한 전시회에 나온 작품을 찍은 거예요. 유화 작품인데 한자가 있기에 찍었어요. 한자는 '인우구망(人牛俱忘)'이라고 읽어요. '사람과 소를 다 잊었다'란 뜻이에요. 절에 가면 이따금 보게 되는 심우도(尋牛圖, 십우도(十牛圖)로도 사용)의 한 내용이죠. 여기 '사람'은 불성(본성)을 탐구하는 주체를 의미하고, '소'는 불성(본성)을 의미해요. '사람과 소를 다 잊었다'는 것은 궁극의 깨달음을 지칭하는 것으로, 노력끝에 찾은 소[불성(본성)]와 그 소를 찾으려했던 주체 모두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의미예요. 이 상태는 소와 사람을 등장시켜 표현할 수 없기에 원으로 표시한 거지요. 원 그자체가 무슨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예요. 하나의 상징적인 기호일 뿐이죠.

 

심우도는 본래 8개의 그림이었고 '인우구망'은 그 여덟번 째 그림이었어요. 그리고 심우도는 도가에서 사용하던 그림이었죠. 그러던 것이 불가에 차용되었고, 본래 8개의 그림에, 대승불교의 영향으로, 2개의 그림이 더 추가 되었어요. 대승불교는 개인의 깨달음을 넘어 그 깨달음의 대사회 실천을 강조하죠. 그래서 9번째 그림은 '반본환원(返本還源: 근본으로 돌아감)'이고 10번째 그림은 '입전수수(入廛垂手: 세속으로 들어감)'예요. 중생교화를 위해 속세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죠. 개인의 구도와 득도를 넘어선 대 사회 실천이 있어야 구도와 득도의 진정한 완성이 이뤄진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구도와 득도의 과정을 그린 1~8번 그림 까지는 소를 찾는 사람이 '동자'로 표현되고, 대사회 실천의 모습을 그린 9~10번 그림에서는 실천하는 사람이 '어른'으로 표현돼요. 어른은 성숙과 완성을 상징하는 모습이죠.

 

이렇게 보면 49살에서 50살로 넘어가는 시기에 아무곳도 찾지 않고 일상에 충실하고 평범하게 살기로 한 제 다짐은 왠지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의 모습처럼 보여요. 하하. 그러나 저는 '~처럼'이지 '~이다'는 아니예요. 비슷하긴 하지만 본질은 아닌, 사이비(似而非)인 거죠. 하하.

 

위에서 말한 '8~10도'를 포함하여, 심우도를  한 번 나열해 볼까요?

 

  1도: 심우(尋牛: 소를 찾음)

  2도: 견적(見跡: 소의 발자취를 봄)

  3도: 견우(見牛: 소를 발견함)

  4도: 득우(得牛: 소를 붙듦)

  5도: 목우(牧牛: 소를 길들임)

  6도: 기우귀가(騎牛歸家: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 옴)

  7도: 망우존인(忘牛存人: 소를 잊고 사람만 남음)

  8도: 인우구망(人牛俱忘: 사람과 소를 모두 잊음)

  9도: 반본환원(返本還源: 본래 자리로 돌아 옴)

10도: 입전수수(入廛垂手: 시정에 들어와 행동함)

 

저 유화를 그린 분은 이제 깨달음의 대사회 실천만을 남겨두고 있으신 것 같아요. 어쩌면 저 유화 자체가 이미 깨달음의 대사회 실천중의 하나인지도 모르겠네요.

 

한자를 읽어 볼까요? 人은 사람 인, 牛는 소 우, 俱는 다(함께) 구, 忘은 잊을 망이에요. 俱와 忘이 좀 낯설어 보이죠?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할까요?

 

는 人(사람 인)과 具(갖출 구)의 합자예요. 여러 사람이 함께 일을 한다는 의미예요. 具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具는 貝(조개 패, 재물의 의미)와 廾(손맞잡을 공)의 합자로 두 손 가득 보화를 들고 신에게 바치며 풍족하기를 기원한다는 의미예요. 여기서는 풍족하길 기원하는 것처럼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일이 잘 이뤄지길 기원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하고 있어요. 다(함께) 구. 俱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俱備(구비), 俱樂部(구락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아, 사진의 '구'는 한자를 잘못 썼어요. 어디가 잘못 됐을까요? 한 번 찾아 보셔요. ^ ^

 

은 心(마음 심)과 亡(도망할 망, 망할 망으로도 많이 사용하죠)의 합자예요. 인식한 것이 마음 속에 남아있지 않고 도망했다는 의미예요. 잊을 망. 忘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勿忘草(물망초), 忘却(망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다(함께) 구    잊을 망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却   (   )備

 

3. '인우구망'을 한자로 써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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