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뺑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김승옥의 '무진기행(霧津紀行)' 일부예요. 시각을 통해 안개를 묘사하고 있지만 그 속에 청각과 후각을 가미시켜 매우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죠. 여기의 안개는 1960년대 한국 사회의 불안과 혼돈을 상징하고, '무진기행'은 그러한 한국 사회에서의 무기력한 개인을 그린 것으로 보고 있죠.
사진은 아침 산책길의 안개를 찍은 거예요. 안개 풍경을 대하며 문득 '무진기행'이 떠올라 인용해 보았어요. 여담. 전 무진이 실제 지명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부끄). 순천만과 인접해있는 대대포를 염두에 두고 만든 가상의 지명이더군요.
보통 안개는 모호의 상징으로 사용돼죠. 그러나 제게 안개는 은유의 상징처럼 느껴져요. 모호와 은유는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르죠.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정체를 드러내기 싫어서 드러내지 않는 것이 모호인 반면 드러낼 수 있지만 일부러 감추고 있는 것이 은유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모호는 주로 사회 현상과 관련이 있는 반면 은유는 주로 예술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봐요. 안개를 모호보다 은유의 상징처럼 보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전 예술 취향인가 봐요. 하하하.
'무진기행(霧津紀行)'의 한자를 한 번 알아 볼까요? 霧는 안개 무, 津은 나루 진, 紀는 벼리 기, 行은 다닐 행 이에요.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霧는 雨(비 우)와 務(힘쓸 무)의 합자예요. 습기가 냉기를 만나 가는 비처럼 내리는 것이란 의미예요. 務는 음을 담당해요. 안개 무. 霧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海霧(해무), 煙霧(연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津은 氵(물 수)와 聿(붓 율)의 합자예요. 물을 건널 수 있도록 설비를 해놓은 곳이란 의미예요. 聿은 '붓, 혹은 붓에 가한 장식물'이란 의미인데 '밝다'라는 의미로도 사용해요. 장식물은 대개 화사하다는데서 나온 의미지요. 여기서는 바로 '밝다'란 의미로 사용됐어요. 나루터가 물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곳이기에 밝음을 준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지요. 종합하면, 津은 물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밝은 기쁨을 안겨주는 장소란 의미예요. 나루 진. 津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津岸(진안, 나룻배를 댈 수 있는 일정한 곳), 津梁(진량, 나루터에 있는 다리. 건널 수 있는 시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紀는 糸(실 사)와 己(몸 기)의 합자예요. 각각의 실들을 한 곳에 모으는 곳이란 의미예요. 己는 음을 담당해요. 벼리 기. 紀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紀綱(기강), 紀律(기율, 도덕적으로 사회의 표준이 될 만한 법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行은 彳(걸을 척)과 亍(자축거릴 촉)의 합자예요. 彳은 오른 발로 걷는 것을, 亍은 왼 발로 걷는 것을 의미해요. 왼 발 오른 발을 교차하며 걸어간다는 의미예요. 行을 사거리를 표현한 글자로 보기도 해요. 이 경우도 사거리로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란 의미로 사용한 것이죠. 다닐 행. 行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通行(통행), 行步(행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霧안개 무 津나루 진 紀벼리 기 行다닐 행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쓰시오.
海( ) ( )步 ( )岸 ( )綱
3. '무진기행'으로 사행시를 지어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