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가 아파서 한약을 지었어요. 한약을 달인 팩에 한자가 있길래 찰칵! 韓藥(한약)은 자연입니다 -- 참 멋진 은유에요. ^ ^ 모든 화학적 인공을 배제하고 자연이 베푼 재료를 선택해 사람의 손으로 직접 만든 약이란 의미인데, 화학적 인공에 염증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더없이 어필할 수 있는 광고란 생각이 들어요. 이보다 더 한약을 잘 광고할 수 있는 문구는 없을 것 같아요. ^ ^ 처가 이 자연이 내린 치료제를 먹고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 났으면 좋겠어요.
韓藥은 전에 漢藥으로 표기했어요. 제 기억으로는 1980년대 부터 韓藥으로 표기한 것 같아요. 전에는 韓醫院(한의원)도 漢醫院(한의원)으로 표기했지요. 비록 중국의 영향을 받았을지라도 우리의 의학인만큼 중국을 의미하는 漢보다는 韓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바꾸게 된 것 같아요. 주체성의 자각이란 측면에서 환영할만한 표기라고 생각되요.
그런데 우리나라를 의미하는 韓이란 글자의 연원에 대해 최근에 소설가 김진명씨가 '古朝鮮(고조선)의 원래 국호는 韓이었다'란 주장을 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어요. 저도 흥미있어 읽어 봤는데, 외람되지만, 견강부회한 내용이 있더군요. 무슨 말이냐구요? '고조선의 원래 국호는 한이었다'란 말은 나름 일리가 있지만 단정할 순 없으며 아울러 이 주장을 하기 위해 인용한 내용들에 오류가 있다는 거에요.
김진명씨는 韓이란 단어가 최초 등장하는 문헌이 "시경" '대아 한혁편'이라고 말해요. 그러면서 이 시에 나오는 韓侯(한후, 한나라의 제후)가 바로 고조선의 왕이라고 주장해요. 그런데 시경의 원문을 찾아보면, 내용상으로 봤을 때, 이 韓侯는 주나라의 일개 제후일 뿐 고조선의 왕이라고는 보기 어려워요. 시경의 내용을 읽어 볼까요?
奕奕梁山 維禹甸之 有倬其道 韓候受命 王親命之 纘戎祖考 無廢朕命 夙夜匪解 虔共爾位 朕命不易 榦不庭方 以佐戎辟 (이하 생략)
크고 큰 양산을/ 우임금이 다스리셨도다/ 밝은 그 길에/ 한후가 명을 받았도다/ 왕이 친히 명하시되/ 너의 조고의 뒤를 잇게 하노니/ 내 명을 폐하지 말아서/ 밤낮으로 게을리하지 말아/ 제 지위를 공경히 수행하라/ 내 명은 변치 않으리라/ 조회오지 않는 방국들을 바로 잡아서/ 네 군주를 도우라 (성백효 역)
잘 알다시피, 주나라는 혈연 관계에 의한 봉건제를 실시했기 때문에 제후국에 새로운 지도자가 세워지면 천자를 알현하게 되있어요. 이 시는 새로 등극한 한후가 주나라 천자를 알현하는 내용이에요. 따라서 이 한후가 고조선의 왕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더구나 이 시에 대해 주석을 단 주희는 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韓 國名 侯爵 武王之後也(한은 나라이름이다. 후작의 나라로 무왕(주나라를 건국한 왕)의 후손이다)" 김진명씨가 주장하는대로 韓侯을 고조선의 왕으로 보기는 확실히 어렵겠죠?
김진명씨는 이어 韓이란 성씨의 유래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왕부의 '潛夫論(잠부론)'이란 책에서 그 유래를 찾게 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해요.
'씨성편'에서 왕부는 한씨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데, 바로 여기에 한후가 언급되고 있다. 그대로 옮기자면 '<시경>'에 나오는 한후의 후손은 위만에게 망해서 바다를 건너갔다'라고 쓰여있다. (인용 출처: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700)
그런데 잠부론을 찾아 보면 김진명씨가 언급한 것과 내용이 좀 달라요. 원문을 한 번 읽어 볼까요?
凡桓叔之後 有韓氏言氏禍餘氏公族氏張氏 此皆韓後姬姓也 昔周宣王亦有韓侯 其國也近燕 故詩云 普彼韓城 燕師所完 其後韓西亦姓韓 爲衛滿所伐 遷居海中
환숙의 후예에는 한씨와 언씨(한언씨를 나눠서 잘못 표기한 것이라는 설도 있음) 화여씨 공족씨 장씨가 있다. 이들은 모두 韓땅의 후예들로 희(姬) 성이다(지금은 '성'과 '씨'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지만, 춘추시대이전까지만 해도 성과 씨는 다른 개념이었다. 성은 혈족을 나타내며, 씨는 그 성의 계통을 표시하는 말이었다. 전국시대 이후는 씨가 성처럼 변화한다. 여기의 내용은 성과 씨가 구분되던 시기의 내용을 나타내고 있다. 즉 씨는 다르지만 성은 같은 것이다). 과거 주나라 선왕때에 또한 韓侯가 있었는데 그 나라는 연나라에 가까웠다(앞에 등장한 韓은 중원지역이고, 여기 등장하는 韓은 북방지역이다). 하여 시(詩, 시경)에 이르길 "큰 저 韓나라의 성이여/ 연나라 군대가 완전히 해준 바로다" 하였던 것이다. 그 뒤에 韓나라의 서쪽 또한 韓이란 성을 썼는데 위만에게 정벌되어 나라를 해중(海中, 바다 가운데)으로 옮기게 되었다.
잠부론에 등장하는 한후가 시경 대아 한혁편에 등장하는 한후인 것은 맞지만 위만에게 망한 것은 한후가 아니고 한후가 다스리던 나라 서쪽에 있던 나라에요. 이 나라도 한이란 성씨를 사용했지요. 그런데 우리 고대사에서 위만에게 망한 나라는 고조선으로 보기 때문에 김진명씨는 고조선의 원래 이름은 韓이었다고 주장하는 거에요. 인용하는 내용에 오류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결론으로 도출한 내용은 나름 일리가 있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잠부론에 주석을 단 왕계배는 한후가 다스리던 나라의 서쪽이란 의미의 韓西가 朝鮮(조선)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는 점이에요. 주석을 잠깐 볼까요?
案韓西蓋卽朝鮮 朝誤爲韓 西卽鮮之轉 故尙書大傳 以西方爲鮮方
살펴보건데 韓西는 朝鮮이 아닐까 싶다. 朝를 잘못써서 韓으로 표기했고, 西는 鮮을 달리 쓴 것으로 보인다. 상서대전에서도 西方(서방)을 鮮方(선방)으로 표기하고 있다.
왕계배의 견해를 100% 신뢰한다면, 김진명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고조선의 원래 이름은 韓이 아니고 그냥 朝鮮이었다고 할 수 있을 거에요. 다만 그 지배자의 성씨가 韓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왕계배 역시 추측을 한 것뿐이니 그의 말을 100% 신뢰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분명한 것은 주나라 제후국의 하나인 韓나라 서쪽에도 韓이라는 성을 사용하는 나라가 있었으며 그 나라는 주나라와는 무관한 나라이고 후에 위만에게 멸망당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앞선 말한 것처럼 고대사에서 위만에게 멸망당한 나라는 고조선이라고 하니 이 韓이라는 성을 사용한 나라는 고조선일 가능성이 크죠. 그러나 김진명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고조선의 원래 이름이 韓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韓이란 말을 우리 국호로 처음 사용한 것은 대한제국(大韓帝國)때 부터죠. 국호에 韓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 김진명씨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어요.
가장 처음 '한'이라는 글자를 국호에 쓴 건 대한제국이다. 왜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쓰게 되었는지는 <조선왕조실록>중 <고종실록>에 잠깐 나와있다. 확고한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의의인즉 '삼한을 잇는다'는 뜻으로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택한다고 기록하고 있다.(인용 출처: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700)
김진명씨는 대한제국이 왜 별볼일 없는 삼한을 잇는다는 의미로 한이란 국호를 사용하게 됐을까라는 의문을 가졌어요. 국호는 대개 선대의 훌륭한 나라를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는데 말이지요. 해서 '한'이란 국호에는 그렇게 별 볼일 없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란 생각으로,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나름의 추적을 한 것이지요. 하여 내린 결론이 韓에는 고조선의 의미가 들어있다고 본 것이고, 대한제국이 '한'을 국호에 사용한 것은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던 중국 동북방의 대국이었던 고조선을 계승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보는 것은 좋은데,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고조선의 옛 이름이 한이었다고 하는 단정적 주장이나 인용하는 내용에 있어서 오류가 있는 것은 비판받을 여지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韓藥의 韓을 설명하다 삼천포로 빠졌군요. 韓藥의 韓은 나라이름한, 藥은 약약이이라고 읽어요. 韓은 전에 다뤘으니 藥만 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할까요?
藥은 艹(풀초)와 樂(즐거울락)의 합자에요. 질병을 치료하는 풀이란 의미에요. 樂은 음을 담당하면서(락-->악)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질병이 있으면 괴롭지만 약을 복용해 질병을 치료하면 기쁘고 즐겁다란 의미로요. 藥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藥效(약효), 藥局(약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오늘은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피곤하실 것 같아요. ^ ^ 연습문제는 아니 낼테니 푹 쉬셔요. 내일 뵈용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