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대머리 귀신 얼굴 적막 옥방의 잠자리에 생각나는 것은 님 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술자리에서 젓가락 두드리며 유행가를 부르는 것도 괜찮지만 판소리를 배워 한 대목 부르면 꽤 멋지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기회가 되서 춘향가 '쑥대머리'를 배우게 됐는데, 확실히 이상과 현실은 차이가 있더군요. 그냥 젓가락 두드리고 유행가를 부르기로 결심했어요. 좋은 추억 하나 만들었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판소리 하면 떠오르는 분이 동리 신재효 선생이죠. 그 자신이 중인 출신으로 예인들과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던데다 음악과 문학에 남다른 조예가 있어 판소리를 가치를 알고 이를 정리하고 체계화했죠. 그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데는 그가 가진 경제적인 부가 큰 역할을 했어요. 천석군이라 불릴 정도로 큰 부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지장받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이죠. 만년에 있었던 제자 진채선과의 애틋한 연담은 문학과 음악을 사랑했던 그다운 아름다운 이야기예요.

 

사진의 내용은 "동리국악당"이라고 읽어요. 고창읍성내에 있어요. 동리 신재효 선생이 고창에서 사셨기 때문에 이곳에 마련한 것 같아요. 동리 국악당 글씨는 석전 황욱 선생이 썼어요. 악필 -- 붓대를 주먹 쥐듯이 잡고 글씨를 쓰는 법 -- 로 유명하신 분이죠. 글씨가 힘이 넘치요. 낙관을 보니 90이 넘어서 쓰신 것 같은데, 나이를 초월한 느낌이에요. 동리는 신재효 선생의 호인데, 오동나무 마을이란 의미에요. 혹자는 오동나무 마을이란 의미가 새날을 기다리는 의미가 있다고 풀기도 하는데 -- 오동나무는 봉황이 깃드는 나무이고 봉황은 성인이 출현하는 새로운 세상이 올 때 나타나는 새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 그렇게 풀기 보다는 원의 그대로 소박하게 푸는게 어떨까 싶어요. 그게 더 음악과 문학을 사랑했던 신재효 선생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요. 오동나무 마을이라고 하면 왠지 푸근하고 정겨운 느낌이 들거든요.

 

한자를 읽어 볼까요?

 

오동나무동(桐),  마을리(里),  나라국(國),  음악악(樂),  집당(堂).

 

낯선 한자를 자세히 알아 볼까요?

 

오동나무동(桐)은 나무목(木)과 통할통(同, 洞의 약자. 洞을 보통 고을동으로 사용)의 합자에요. 키가 크고 줄기의 내부가 비어있는 나무라는 뜻이에요. 桐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碧梧桐(벽오동), 梧桐島(오동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음악악(樂)은 두 가지로 설명해요. 하나. 양 쪽의 幺는 작은 북을 그린 것이고 가운데의 白은 큰 북을 그린 것이며 아래의 木은 북을 거는 틀을 그린 것이다. 둘. 양 쪽의 幺는 악기의 줄을 그린 것이고 가운데의 白은 줄을 고르고 누르는 손을 그린 것이며 木은 악기의 틀을 그린 것이다. 둘 다 일리가 있어요. 악기 혹은 악기를 연주한다는 의미예요. 樂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音樂(음악), 絃樂(현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음악악(樂)은 즐거울락(樂) 혹은 좋아할요(樂)로도 읽어요. 둘 다 본뜻에서 연역된 것인데, 구별짓기 위해 음을 달리 사용했어요. 즐거울락의 경우 오락(娛樂), 좋아할요의 경우 요산요수(樂山樂水)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집당(堂)은 숭상할상(尙)과 흙토(土)의 합자예요. 토대를 높이 쌓아 올리고 정남향을 향하여 지은 집안의 가장 핵심적인 건물이란 의미예요. 堂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北堂(북당, 어버이가 기거하는 장소), 明堂(명당)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오동나무동,  음악악,  집당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쓰시오.

 

    絃(   ),  碧梧(   ),  北(   )

 

3. 다음을 읽어 보시오.

 

    桐里國樂堂石田黃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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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엿 먹어요."

 

 "?..."

 

 중국어 학원 첫 수업. 2교시가 시작될 때 원어민 선생님이 조그만 과자 하나를 주면서 하신 말씀이에요. 그 과자에 해당하는 우리 말이 엿이라는 것을 아시고 한국 말로 하신건데, "엿 먹어요"의 함의를 모르신 채 사용하다 보니 그 말을 듣는 학생들이 당황할 밖에요. 학생들이 크큭대니 선생님이 좀 당황한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시간이 지나 그 함의를 아시게 되면 더 당황하실 것 같아요.

 

사진은 "북경황성. 수. 수심당. 화생미"라고 읽어요. 북경황성은 북경에 있는 황제의 성이란 뜻이고(자금성), 수는 연유라는 뜻이고, 수심당은 부드럽고 잘 부서지는 간식용 엿이란 뜻이고, 화생미는 땅콩 맛이란 뜻이예요. 먹어보니 우리의 엿과는 차이가 크더군요. 쉽게 부서지고 끈적꺼리질 않아요. 이것과 유사한 것은 엿 보다는 오히려 땅콩 사탕이 해당될 듯 싶더군요. 중국 엿이니 중국어로 한 번 읽어 볼까요? 베이징후앙청, 수, 수신탕, 후아성웨이.

 

한자를 읽어 볼까요?

 

북녘북(北), 서울경(京), 임금황(皇), 성성(城), 연유수(), 마음심(心), 엿당(糖), 꽃화(花), 날생(生), 맛미(味).

 

낯선 한자를 자세히 알아 볼까요?

 

수(酥)는 술주(酉, 酒의 약자)와 벼화(禾)의 합자예요. 타락(우유 또는 양유를 끓여 만든 음료)이란 뜻이예요. 타락을 끓일 때 위에 뜨는 유지가 탁주와 흡사해서 술주로 뜻을 삼았어요. 벼화는 음만 담당해요(화-->수). 연유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타락을 농축시켜 만든 제품이란 의미로요. 酥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酥燈(수등, 부처님 앞에 켜놓은 등불), 酥酪(수락, 우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당(糖)은 쌀미(米)와 클당(唐, 나라당으로 많이 읽죠)의 합자예요. 쌀을 고아서 만든 식품(엿)이란 뜻이예요. 클당은 음을 담당하는데,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엿은 본래의 재료인 쌀보다 그 부피가 더 커진 식품이란 뜻으로요. 糖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糖尿(당뇨), 無加糖(무가당)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미(味)는 입구(口)와 아닐미(未)의 합자예요. 다섯가지 맛이란 뜻이예요. 맛은 입을 통해 느끼기 때문에 입구로 뜻을 삼았어요. 아닐미는 미라는 음만 담당해요. 味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調味料(조미료), 無味乾燥(무미건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연유수,  엿당,  맛미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쓰시오.

 

    無加(   ),  調(   )料,  (   )燈

 

3. 다음을 읽고 풀이해 보시오.

 

    北京皇城,   酥心糖花生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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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

 

 "아~"

 

 "음..."

 

 좋아요의 추천 수를 볼 때 나오는 탄성 소리예요. "앗!"은 기대 이상의 추천이 나왔을 때, "아~"는 기대 이하일 때, "음..."은 추천이 없을 때. 제 글은 대부분 "아~"거나 "음..."이에요. "앗!"이 나오면 뽕맞은 느낌이 들어요.

 

 좋아요에 일희일비하는 것 같아 어떤 때는 일부러 외면하기도 하지만 글을 쓰고 난 다음에는 저 자신도 모르게 좋아요에 눈길이 가요.

 

 재미있는 것은 좋아요의 추천 수와 쓴 글의 완성도가 대부분 일치한다는 거에요. 혹자는 누리꾼들이 별 생각없이 좋아요를 누른다고도 하는데 제 글의 경우에는 절.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사진의 한자는 "고심인천불부"라고 읽어요.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을 하늘은 저버리지 않는다"라는 뜻이예요. 우리가 잘 아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의미와 상통하는 말이죠. 제 경우 인터넷에 올리는 글이 이 말과 부합해요. 고심하여 쓴 완성도 높은 글은 좋아요의 추천 수가 많거든요. 민심이 천심이니 추천 수가 많은 것은 하늘이 저버리지 않는 것과 진배없죠. 이 사진도, 지난 번 처럼, 중국어 학원 입구에 있는 간판을 찍은 거에요.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격려의 의미겠죠. 중국어로 한 번 읽어 볼까요? 쿠우 씬 런 티엔 뿌 푸.

 

한자를 읽어 볼까요?

 

괴로울고(苦)  마음심(心)  사람인(人)  하늘천(天)  아니불(不)  저버릴부(負).

 

낯 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괴로울고(苦)는 풀초(艹)와 옛고(古)의 합자예요. 쓴 맛나는 약초라는 뜻이예요. 구체적으로는 도꼬마리의 맛을 지칭해요. 옛고는 고라는 음만 담당해요. 괴롭다라는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맛이 쓰면 먹을 때 괴롭다, 힘들다란 의미로요. 苦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苦痛(고통), 苦悶(고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저버릴부(負)는 사람인(人)과 조개패(貝)의 합자예요. 두 가지로 설명해요. 하나: 사람이 조개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둘: 사람이 재물에 의지한다는 뜻이다. 둘 다 설득력이 있어요. 저버린다란 의미는 두 번째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믿었던 재물에게 배신당했다란 의미로요(돈이 다가 아니죠). 負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負債(부채), 負恃(부시, 의뢰함 · 믿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괴로울고,  저버릴부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쓰시오.

 

    (    )恃,  (    )痛

 

3. 다음을 읽고 풀이해 보시오.

 

    苦心人天不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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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1-12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만 공들여 쓴 글의 `좋아요` 수가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반면에 대충 쓴 글이 `좋아요` 수가 많을 때가 있어요.

찔레꽃 2016-01-12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가요? 음... 님께서도 `좋아요`에 반응을 하시는군요? ^ ^

하양물감 2016-01-13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찔레꽃님 오랫만에 공부하고 갑니다^^

찔레꽃 2016-01-13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랫만이네요. 조금은 여유가 생기신 듯? 하지만, 저의 무관심 더 문제였네요. 부끄. 따님 이름과 저의 딸 이름이 똑같아 왠지 더 님이 정겹게 느껴집니다. 따님 이름은 어떻게 정하셨는지요? 제 딸 이름은... `어떤 회사 이름`에 적어 놨어요. ^ ^

하양물감 2016-01-13 16:42   좋아요 0 | URL
저는 큰 소나무라는 뜻으로 지었답니다. 짓고 보니 너무 많더라는^^

찔레꽃 2016-01-14 0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좀 흔합니다. ㅎㅎ 좋으니까 흔하겠죠? ^ ^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연락이 왔네."

 "네에?"

 "어서 길 떠날 채비를 하게."

 "아닙니다. 스승님. 저는 집에 가지 않겠습니다. 아니, 갈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고향을 떠날 때 어머니와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성공하기 전에는 고향에 돌아 가지 않겠다고요."

 "아니 그래도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닙니다. 스승님. 저는 집에 가지 않겠습니다."

 "..."

 

 사내는 고향을 향하여 피를 토하는 격한 곡을 한 뒤 바로 돌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사내의 이름은 오기, 스승은 증자예요. 증자는 오기의 냉혹한 태도에 질려 그를 파문했어요. 오기는 이후 병학을 배웠고 노에서 출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제가 노를 공격할 때 노에서 그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려 한거죠. 그러나 일부 반대 세력이 있었어요. 오기의 처가 제 출신이라는 것을 문제 삼은 거죠. 오기는 자신의 처를 죽여 결백을 입증했어요. 오기는 노의 총사령관에 임명되었고 제와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어요. 마침내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킨거죠.

 

사진의 한자는 "유지자사경성"이라고 읽어요. "뜻이 있는 사람은 일을 마침내 이룬다"라고 풀이해요. 오기가 이 말에 꼭 들어맞는 경우죠. 보편적 정서에 어긋나는 아쉬움은 있지만, 일의 성취라는 면에서만 보면 더없이 훌륭한 사례예요. 사진은 중국어 학원 입구에 써붙인 간판이예요.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여 목표를 달성하라는 의미겠죠. 중국어 학원 간판이니 중국어로 한 번 읽어 볼까요? 여유 찌에 즈어 씨 찡 청.

 

한자를 읽어 볼까요?

 

있을유(有)  뜻지(志) 사람자(者) 일사(事) 마침내경(竟) 이룰성(成).

 

낯선 한자를 자세히 알아 볼까요?

 

뜻지(志)는 마음심(心)과 갈지(之)의 합자예요. 마음이 가는 곳이란 뜻이죠. 志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意志(의지), 志士(지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사람자(者)는 말할백(白)과 무리려(耂, 旅의 약자)의 합자에요. 대상들을 구별하는 말이란 의미예요. 사람이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사람의 이외의 대상과 구별되는 존재라는 의미로요. 者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他者(타자), 絶對者(절대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일사(事)는 사관사(史)와 갈지(之)의 합자에요. 사관이 정도를 따라 빠트림없이 사실을 기록하듯 일을 처리한다란 의미에요. 事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事業(사업), 事態(사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마침내경(竟)은 음악음(音)과 사람인(人)의 합자에요. 사람들이 음악 연주하던 것을 끝마췄다란 의미예요. 마침내란 부사적 의미는 본뜻에서 온 거예요. 마침내는 끝내다, 최종적이다란 의미거든요. 竟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畢竟(필경), 究竟(구경)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뜻지   사람자   일사   마침내경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쓰시오.

 

   (   )態,   意(   ),   他(   ),   畢(   )

 

3. 다음을 읽고 풀이해 보시오.

 

   有志者事竟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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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 아파서 한약을 지었어요. 한약을 달인 팩에 한자가 있길래 찰칵! 韓藥(한약)은 자연입니다 -- 참 멋진 은유에요. ^ ^  모든 화학적 인공을 배제하고 자연이 베푼 재료를 선택해 사람의 손으로 직접 만든 약이란 의미인데, 화학적 인공에 염증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더없이 어필할 수 있는 광고란 생각이 들어요. 이보다 더 한약을 잘 광고할 수 있는 문구는 없을 것 같아요. ^ ^ 처가 이 자연이 내린 치료제를 먹고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 났으면 좋겠어요.

 

 

韓藥은 전에 漢藥으로 표기했어요. 제 기억으로는 1980년대 부터 韓藥으로 표기한 것 같아요. 전에는 韓醫院(한의원)도 漢醫院(한의원)으로 표기했지요. 비록 중국의 영향을 받았을지라도 우리의 의학인만큼 중국을 의미하는 漢보다는 韓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바꾸게 된 것 같아요. 주체성의 자각이란 측면에서 환영할만한 표기라고 생각되요.

 

 

그런데 우리나라를 의미하는 韓이란 글자의 연원에 대해 최근에 소설가 김진명씨가 '古朝鮮(고조선)의 원래 국호는 韓이었다'란 주장을 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어요. 저도 흥미있어 읽어 봤는데, 외람되지만, 견강부회한 내용이 있더군요. 무슨 말이냐구요? '고조선의 원래 국호는 한이었다'란 말은 나름 일리가 있지만 단정할 순 없으며 아울러 이 주장을 하기 위해 인용한 내용들에 오류가 있다는 거에요.

 

 

김진명씨는 韓이란 단어가 최초 등장하는 문헌이 "시경" '대아 한혁편'이라고 말해요. 그러면서 이 시에 나오는 韓侯(한후, 한나라의 제후)가 바로 고조선의 왕이라고 주장해요. 그런데 시경의 원문을 찾아보면, 내용상으로 봤을 때, 이 韓侯는 주나라의 일개 제후일 뿐 고조선의 왕이라고는 보기 어려워요. 시경의 내용을 읽어 볼까요?

 

奕奕梁山 維禹甸之 有倬其道 韓候受命 王親命之 纘戎祖考 無廢朕命 夙夜匪解 虔共爾位 朕命不易 榦不庭方 以佐戎辟 (이하 생략)

 

크고 큰 양산을/ 우임금이 다스리셨도다/ 밝은 그 길에/ 한후가 명을 받았도다/ 왕이 친히 명하시되/ 너의 조고의 뒤를 잇게 하노니/ 내 명을 폐하지 말아서/ 밤낮으로 게을리하지 말아/ 제 지위를 공경히 수행하라/ 내 명은 변치 않으리라/ 조회오지 않는 방국들을 바로 잡아서/ 네 군주를 도우라 (성백효 역)

 

 

잘 알다시피, 주나라는 혈연 관계에 의한 봉건제를 실시했기 때문에 제후국에 새로운 지도자가 세워지면 천자를 알현하게 되있어요. 이 시는 새로 등극한 한후가 주나라 천자를 알현하는 내용이에요. 따라서 이 한후가 고조선의 왕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더구나 이 시에 대해 주석을 단 주희는 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韓 國名 侯爵 武王之後也(한은 나라이름이다. 후작의 나라로 무왕(주나라를 건국한 왕)의 후손이다)" 김진명씨가 주장하는대로 韓侯을 고조선의 왕으로 보기는 확실히 어렵겠죠?

 

 

김진명씨는 이어 韓이란 성씨의 유래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왕부의 '潛夫論(잠부론)'이란 책에서 그 유래를 찾게 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해요.

 

 

'씨성편'에서 왕부는 한씨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데, 바로 여기에 한후가 언급되고 있다. 그대로 옮기자면 '<시경>'에 나오는 한후의 후손은 위만에게 망해서 바다를 건너갔다'라고 쓰여있다. (인용 출처: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700)

 

그런데 잠부론을 찾아 보면 김진명씨가 언급한 것과 내용이 좀 달라요. 원문을 한 번 읽어 볼까요?

 

凡桓叔之後 有韓氏言氏禍餘氏公族氏張氏 此皆韓後姬姓也 昔周宣王亦有韓侯 其國也近燕 故詩云 普彼韓城 燕師所完 其後韓西亦姓韓 爲衛滿所伐 遷居海中

 

환숙의 후예에는 한씨와 언씨(한언씨를 나눠서 잘못 표기한 것이라는 설도 있음) 화여씨 공족씨 장씨가 있다. 이들은 모두 韓땅의 후예들로 희(姬) 성이다(지금은 '성'과 '씨'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지만, 춘추시대이전까지만 해도 성과 씨는 다른 개념이었다. 성은 혈족을 나타내며, 씨는 그 성의 계통을 표시하는 말이었다. 전국시대 이후는 씨가 성처럼 변화한다. 여기의 내용은 성과 씨가 구분되던 시기의 내용을 나타내고 있다. 즉 씨는 다르지만 성은 같은 것이다). 과거 주나라 선왕때에 또한 韓侯가 있었는데 그 나라는 연나라에 가까웠다(앞에 등장한 韓은 중원지역이고, 여기 등장하는 韓은 북방지역이다). 하여 시(詩, 시경)에 이르길 "큰 저 韓나라의 성이여/ 연나라 군대가 완전히 해준 바로다" 하였던 것이다. 그 뒤에 韓나라의 서쪽 또한 韓이란 성을 썼는데 위만에게 정벌되어 나라를 해중(海中, 바다 가운데)으로 옮기게 되었다.

 

 

잠부론에 등장하는 한후가 시경 대아 한혁편에 등장하는 한후인 것은 맞지만 위만에게 망한 것은 한후가 아니고 한후가 다스리던 나라 서쪽에 있던 나라에요. 이 나라도 한이란 성씨를 사용했지요. 그런데 우리 고대사에서 위만에게 망한 나라는 고조선으로 보기 때문에 김진명씨는 고조선의 원래 이름은 韓이었다고 주장하는 거에요. 인용하는 내용에 오류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결론으로 도출한 내용은 나름 일리가 있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잠부론에 주석을 단 왕계배는 한후가 다스리던 나라의 서쪽이란 의미의 韓西가 朝鮮(조선)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는 점이에요. 주석을 잠깐 볼까요?

 

 

案韓西蓋卽朝鮮 朝誤爲韓 西卽鮮之轉 故尙書大傳 以西方爲鮮方

 

살펴보건데 韓西는 朝鮮이 아닐까 싶다. 朝를 잘못써서 韓으로 표기했고, 西는 鮮을 달리 쓴 것으로 보인다. 상서대전에서도 西方(서방)을 鮮方(선방)으로 표기하고 있다.

 

 

왕계배의 견해를 100% 신뢰한다면, 김진명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고조선의 원래 이름은 韓이 아니고 그냥 朝鮮이었다고 할 수 있을 거에요. 다만 그 지배자의 성씨가 韓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왕계배 역시 추측을 한 것뿐이니 그의 말을 100% 신뢰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분명한 것은 주나라 제후국의 하나인 韓나라 서쪽에도 韓이라는 성을 사용하는 나라가 있었으며 그 나라는 주나라와는 무관한 나라이고 후에 위만에게 멸망당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앞선 말한 것처럼 고대사에서 위만에게 멸망당한 나라는 고조선이라고 하니 이 韓이라는 성을 사용한 나라는 고조선일 가능성이 크죠. 그러나 김진명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고조선의 원래 이름이 韓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韓이란 말을 우리 국호로 처음 사용한 것은 대한제국(大韓帝國)때 부터죠. 국호에 韓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 김진명씨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어요.

 

 

가장 처음 '한'이라는 글자를 국호에 쓴 건 대한제국이다. 왜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쓰게 되었는지는 <조선왕조실록>중 <고종실록>에 잠깐 나와있다. 확고한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의의인즉 '삼한을 잇는다'는 뜻으로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택한다고 기록하고 있다.(인용 출처: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700)

 

 

김진명씨는 대한제국이 왜 별볼일 없는 삼한을 잇는다는 의미로 한이란 국호를 사용하게 됐을까라는 의문을 가졌어요. 국호는 대개 선대의 훌륭한 나라를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는데 말이지요. 해서 '한'이란 국호에는 그렇게 별 볼일 없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란 생각으로,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나름의 추적을 한 것이지요. 하여 내린 결론이 韓에는 고조선의 의미가 들어있다고 본 것이고, 대한제국이 '한'을 국호에 사용한 것은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던 중국 동북방의 대국이었던 고조선을 계승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보는 것은 좋은데,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고조선의 옛 이름이 한이었다고 하는 단정적 주장이나 인용하는 내용에 있어서 오류가 있는 것은 비판받을 여지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韓藥의 韓을 설명하다 삼천포로 빠졌군요. 韓藥의 韓은 나라이름한, 藥은 약약이이라고 읽어요. 韓은 전에 다뤘으니 藥만 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할까요?

 

 

은 艹(풀초)와 樂(즐거울락)의 합자에요. 질병을 치료하는 풀이란 의미에요. 樂은 음을 담당하면서(락-->악)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질병이 있으면 괴롭지만 약을 복용해 질병을 치료하면 기쁘고 즐겁다란 의미로요. 藥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藥效(약효), 藥局(약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오늘은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피곤하실 것 같아요. ^ ^ 연습문제는 아니 낼테니 푹 쉬셔요. 내일 뵈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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