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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끝
미나토 가나에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평점 :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은 잔혹하기로 유명해 접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녀의 신작 <이야기의 끝>은 매운맛 없이도 결말이 궁금해지는 소설로 표지의 은방울꽃처럼 잔잔하면서도 행복을 찾아 떠나는 홋카이도 라벤더 밭 여행길로 안내하며 섬세한 감정선 묘사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결말 없는 이야기는 여행의 동반자로 안성맞춤일지 모른다." p.48
소설 <이야기의 끝>은 「하늘 저편」이라는 단편 추리 소설을 중심으로 서사를 이끌어 간다. 소설을 쓰라는 친구의 권유로 추리 소설을 쓰기 시작한 주인공 에미는 소설가의 꿈을 안고 아무도 몰래 떠나려 했으나 기차역에서 약혼자를 마주하며 장면이 끝난다. 클라이맥스에서 열린 결말로 끝난 채 여러 사람의 손에 건네지며 읽힌다. 새 생명을 품었으나 정작 자신의 생명은 사그라지고 있는 여인, 가업을 잇기 위해 꿈을 접은 청년 등등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이들의 손에 닿을 때마다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기도 하고 지지해 주기도 하면서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주인공들의 사연에 녹아들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의 끝을 마주하게 되는데...
행복이란 필시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닐 것이다. 자신이 아니라 오히려 소중한 누군가의 행복을 얻기 위한 것이, 더 노력할 수 있게 하고 얻었을 때의 기쁨도 훨씬 클 것이다. 그것을 위해 자신이 다소 희생하더라도 당연한 일이다. 행복이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성립하는 것인데 모두가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니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무엇이 옳은지 몰라 그 대답을 찾아 떠난 여행이다. p 203
은방울꽃을 좋아하기에 책 커버를 보자마자 너무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의 끝>. 은방울꽃은 기쁜 소식, 행복 '틀림없이 행복해지리라'라는 꽃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하얗고 탐스러운 아리따운 자태 안에 독을 품고 있어 심부전으로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극독 식물이라 주의해야 하는 반전 있는 꽃이기에 소설에는 어떤 반전이 숨어있을지 궁금해졌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여왕답게 소설 안에 미스터리 소설 한편을 등장시켜 등장인물들에게 내가 에미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자문하게 한다. 독자 입장에선 드넓게 펼쳐진 홋카이도의 라벤더 밭에서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한 입하며 미에의 이야기와 동행하는 기분이 들어 몰입도가 높았다. 마지막에는 반전 있는 결말로 마무리하니 「은방울꽃 특급」의 숨겨진 이야기는 직접 읽어보시기를. 만약 꿈을 좇는 여정의 기로에 서있다면 <이야기의 끝>을 손에 쥐고 차분히 책장을 넘겨보기를 추천한다.
보랏빛이 펼쳐진 라벤더 밭 언덕 벤치에 앉아 단편을 읽는 상상을 하게 하는 미나토 가나에의 <이야기의 끝>은 홋카이도 라벤더 밭에서 라벤더 아이스크림 한 입 베어 물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누군가의 희생의 결과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기 보다 소중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하루하루가 되도록 살아야겠다.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안고 나의 이야기의 끝에는 행복함을 만끽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