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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날씨 - 위기가 범람하는 세계 속 예술이 하는 일
올리비아 랭 지음, 이동교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12월
평점 :
올리비아 랭을 감동시켰던 예술가들은 누가 있을까라는 생각만으로도 호기심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올리비아 랭이 10여 년에 걸쳐 쓴 에세이를 엮은 책 <이상한 날씨>는 환대를 통해 예술가가 되는 것의 의미를 가르쳐준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이 속했던 시대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조하는 그녀의 삶이 녹아 있어 매력적이다.
나는 예술이 아름답거나 희망적이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나를 사로잡은 예술 작품은 대개 그 두 가치의 거래를 거부한다. 나의 더 큰 관심사는, 따라서 여기 모은 거의 모든 에세이와 비평을 통해 드러난 일관된 관심은 예술이 저항과 회복에 관련을 맺는 방식에 쏠려있다. p.15
에드워드 호퍼는 작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통해 인간이 활기찬 도시 환경에서 살아가는 방식, 도시가 사람들을 한데 모으면서도 작고 노출된 공간 속에 가두는 방식에 주목한다. 고독의 구도를 완성한 그의 그림에서 재생산된 사무실 한 칸이나 원룸 아파트 등 폐쇄적 공간에서는 의도치 않게 노출광이 된 사람들이 영화 스틸 사진처럼 유리 창틀 속에서 사적인 삶을 공개한다.
올리비아 랭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그려진지 70여 년이 훌쩍 넘었지만 관계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아울러 우리가 비록 '좋아요'를 끌어모으는 온라인 시대를 살아가지만, 고독은 관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발견되고 포용되어야 치유가 가능함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이 그가 지금껏 힘써온 일이며 보는 행위가 행복의 원천일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배웠다. 몇 년 전, 그는 인생에서 사랑하는 부분에 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실은, 일이 사랑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편지의 말미에 늘 이렇게 쓰죠. '삶을 사랑하는, 데이비드 호크니로부터." p.128
<이상한 날씨>는 에드워드 호퍼, 데이비드 호크니, 드가처럼 이름만 들으면 바로 작품이 생각나는 작가부터 생전 처음 들어보는 예술가들까지 그녀의 삶에 영향을 끼친 예술가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작품 사진이 같이 수록되었다면 더 재밌었겠지만, 올리비아 랭의 담담하고도 수려한 필력이 책장을 넘기는데 주저하지 않게 만든다. 그녀가 <살림 비용>서평에서 데버라 리피의 필력을 매 문장이 신중하고 야단스럽지 않다고 묘사했는데, 내가 올리비아 랭의 글을 읽으며 느낀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있어서 놀라웠다.
예술은 마음의 문을 열고 '나'라는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예술은 바로 그런 것이다. 세상을 사는 사람이 만든 것이고, 그들의 상상력도 함께 따라온다. 시대와 역사와 개인의 인생사를 막론하고 다가올 인생은 제압할 수 없다. 마치 세상에 빛과 어둠이 깔리는 것처럼. 그러나 때가 되면 우리는 활기찬 상상력과 함께 그 빛과 어둠을 넘나들 수 있을 것이다. p.292
예술 속 풍경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올리비아 랭의 에세이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삶과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를 독자로 하여금 마주 보며 사색에 빠지도록 안내한다.
저자가 책에서 소개한 단순히 책을 펼치는 것도 독자들에게 친절한 마음과 영민한 사고를 전할 수 있는 창작 행위로 본다는 앨리 스미스의 작품들과 올리비아 랭이 최근 몇 년 간 읽은 최고의 작품이라 꼽은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을 두루 섭렵해 보고 싶어진다.
<이상한 날씨>는 평소 예술을 좋아하고, 지적인 에세이를 즐겨 읽는 독자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