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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로드
조너선 프랜즌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평점 :
<인생 수정>으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손꼽히는 조너선 프랜즌의 신작 <크로스로드>는 1970년대의 미국 가정을 그려내며 가장 위대하고 완벽한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소설 <크로스로드>는 대림절과 부활절로 구성되어 있다. 대림절은 크리스마스 4주 전 일요일을 시작으로 예수의 성탄과 재림을 기다리는 절기로, 교회력으로 1년의 시작을 알린다. 성도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참회와 순종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기도 하다. 부활절은 십자가에서 세상을 위해 죽으신 예수가 다시 살아난 날을 기념하는 날로 죽음의 어둠 속에서 그리스도가 부활함으로써 빛의 상징이 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미국 중서부 시카고 교외의 한마을에서 부목사로 일하는 러스 힐데브란트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무려 870여 페이지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들 셋, 딸 하나를 둔 사모 매리언은 평범해 보이지만 상처 많은 과거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고, 러스는 매리언과의 삶을 무료하게 느끼던 중 미망인 프랜시스 코트렐 부인에게 연모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첫사랑의 경험으로 자신을 마주하고, 아버지의 위선에 치를 떠는 장남 클렘, 이모에게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은 딸 베키는 예쁜 외모에 학교에서 인기 있는 것은 물론 미래가 유망한 소녀로 동네 밴드 리더 태너와 사랑에 빠지고, 똑똑하지만 누나에게 자격지심이 있는 페리는 엄마의 신경쇠약을 닮아 약에 의존하고, 막내 9살 저드슨까지 얼핏 단란해 보이는 가족이지만 저자는 힐데브란트 가족의 삶과 심리를 상세하게 묘사하며 붕괴 직전인 가족의 외줄 타기 삶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우리가 과연 이기심에서 탈출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하나님을 끌어들이고 그분을 선량함의 척도로 삼는다고 해도, 하나님을 숭배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사람을 여전히 자신에게 이로운 무언가를 바라죠. 자기가 정의롭다는 느낌을 즐기고, 영생이든 뭐든 원한다는 거예요. 이런 점을 생각할 만큼 똑똑한 사람이 보기엔, 모든 행동에 늘 이기적인 측면이 보인다는 거죠." p.385
러스는 목사의 삶을 살아가지만 릭 앰브로즈 전도사에게 질투심을 가지고, 성도에게 흑심을 품으며 위선자의 표본을 보이며 결국 목사도 연약한 인간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남편의 외도에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된 매리언, 아버지에 대해 실망하고, 가족에게서 의미를 잃은 클렘, 종교에 새롭게 눈을 뜨고 자신의 사랑을 만들어가는 베키, 천재적이면서도 약물 중독인 페리는 자살을 시도하며 가족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가지만, 이 고난을 겪고 극복하면서 용서와 화해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인생의 목표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이 허영이었다. 성공도 허영, 특권도 허영, 유럽도 허영, 아름다움도 허영이었다. 허영을 벗겨내고 신 앞에 홀로 서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뿐이었다. 이번 일요일에도, 그다음 일요일에도 주님을 섬기는 것뿐이었다. 80년만 산다고 해도, 인생의 지속 시간은 극미했다. 80년 분량의 일요일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인생에는 길이가 없었다. 그저 인생의 깊이에만 구원이 있었을 뿐이다. p.819
저자는 부활절이 어둠을 밝히는 빛이듯, 신앙심과 구원에 대해 짚어본다. 러스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가족이 이사 가고, 베키의 단란한 가정 그리고 부활절을 맞아 집으로 돌아오는 클렘까지 위태로웠던 가정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며 <크로스로드>는 마무리된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가정의 표본인 목사관에서 벌어지는 위선과 인간의 연약함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인생이란 무엇인지, 가족의 사랑의 힘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크로스로드>를 벽돌 책이지만 저자의 필력과 역자의 깔끔한 문체 덕분에 몰입해 완독에 성공했다. 처음 책을 받아 펼쳐보면서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오는 주일이 바로 대림절이기 때문이다. 한 주간 나의 삶을 돌아보며 나의 말과 행동은 뜻하지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사랑을 흘려보내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크리스천이라 더 재밌으면서도 탄탄한 스토리가 영상처럼 그려지는 소설인 동시에 신앙에 대한 저자의 일갈에 찔렸던 책이다. 드라마화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