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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치고지에 오비오마의 <어부들>이 찬사를 받는 이유는 작품성과 더불어 긴장감 넘치는 복수로 삶이 무너지는 비극의 서사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는 어부들이었다'라는 첫 문장을 시작으로 한 아들을 둔 아버지가 된 6남매의 넷째 벤저민이, 9살 인생과 세상이 바뀌어버린 시절을 회상하며 형들과 어부가 된 그 강의 기억으로 소설을 전개해 나간다.
아버지는 독수리였다.
다른 새들 머리 위 높은 곳에 둥지를 틀고,
왕이 왕좌를 지키듯 어린 독수리들 위를 맴돌면서 그 녀석들을 지켜보는 막강한 새.(중략)
아버지가 아쿠레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우리 집이 약해질 이유도 없었을 테고,
우리에게 닥친 것 같은 역경도 일어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p.32
나이지리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식들에게 서구적인 교육을 받도록 애쓰는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아이들은 아쿠레 마을의 주민들에게 오래전 버려진 저주 받은 강 오미알라에서 낚시를 하며 어부가 되어간다. 아버지가 타지역으로 발령받아 아쿠레를 떠나면서 첫째 이켄나에게 동생들을 잘 이끌라고 당부하지만, 형제들은 몰래 낚시하다 광인 이불라와 마주치고 '이켄나가 어부의 손에 죽을 것이다'라는 비극의 예언을 들으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데...
'내가 너희들에게 바라는 모습은 좋은 꿈을 낚는 어부,
가장 큰 고기를 잡기 전까지는 쉬지 않는 어부들의 집단이 되는 것이다.
나는 너희들이 거대 조직이 되기를, 위협적이고 막을 수 없는 어부들이 되기를 바란다.'p.52
나이지리아의 불안정한 치안 상황 속에 공존하고 있는 기독교와 이보족의 문화는 위태로운 벤저민 가족의 실상과 닮았다. 자신의 둥지를 지켜야하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 견고하던 가족의 믿음이 흔들려 끈끈한 형제애에 금이 가면서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 불과 광인의 세 치 혀에서 비롯된 예언이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러나 이 비극은 첫째 이켄나와 둘째 보자의 죽음에서 그치지 않고 셋째 오벰베가 형들의 복수를 하겠다며 거머리 같은 증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벤저민과 함께 광인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더욱이 군인들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오벰베는 마을을 떠나고, 화자인 벤저민은 감옥으로 끌려가게 된다. 이는 광기 어린 예언에 사로잡히면 인간의 운명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처절하게 그려냄으로써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원수를 심판하겠다는 복수의 결말이 결코 아름다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세계 5대 문학상 수상, 맨부커상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어부들>은 '아버지는 독수리다'를 시작으로 이켄나는 비단뱀, 어머니는 매부리에 비유한다. 이 외에도 수많은 메타포 수사법 덕분에 등장인물의 성격과 이미지를 그려내기 수월했고, 가족들에게 닥칠 운명을 암시할 수 있었다.
오벰베가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읽는 것도 우연은 아니었던 터, 인간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예고한다. 그러나 저자는 <어부들>을 예언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삶을 무너뜨린 가족 이야기로 끝내지 않는다. 비록 권위적인 아버지의 부재로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그린 꿈 역시 허공에 날아갔지만, 두 아들을 먼저 보낸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에게 돌아오면서 무너진 세계를 바로 세우는 것 역시 사람임을 강조한다. 아버지가 두 아들의 이름으로 새로운 터전을 재구축하며 가장의 자리를 지키면서 아픔을 딛고 극복하는 것은 가족의 사랑에 있음을 이로써 희망의 불꽃을 타오르게 한다. 정신적 지주의 부재가 사람에게 미치는 파장은 실로 엄청나다. 인간의 무력함을 극복할 수 있는 것도 나의 믿음, 그리고 가족의 사랑과 지지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지금의 나는 사람이 뭔가를 믿으면
그것이 종종 영구적인 존재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영구적인 존재로 변한 것들은
파괴할 수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도.'p.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