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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살인 - 죽여야 사는 변호사
카르스텐 두세 지음, 박제헌 옮김 / 세계사 / 2021년 7월
평점 :
죽여야 사는 변호사<명상 살인>은 읽어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작가 카르스텐 두세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소설의 초입부에 주인공 비요른은 마흔두 살에 처음으로 살인을 했으며 일주일 뒤 여섯 건이 추가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자신이 한 모든 일은 최선의 행위였다고, 인생의 전환점에서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맞추려 집중을 택한 자의 논리적 결과였다고 변호한다.
주인공 비요른은 대형 로펌의 10년 차 형법 전문 변호사로, 그의 의뢰인 마피아 보스 '드라간' 때문에 쉴 새 없이 바쁘게 살고 있다.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가족과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던 차에 아내의 권유로 '명상 수업'을 듣게 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마주하게 되는데...
"당신이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꼭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비요른은 딸아이와 호숫가로 1박 2일 첫 여행을 가는 길에, 드라간의 전화를 받게 된다. "아이스크림 먹자"라는 비상시 암호와 가정을 위협하는 드라간을 무시할 수 없던 비요른은 비밀 장소로 찾아간다. 본의 아니게 트렁크에 100kg의 거구 드라간을 숨긴 채 딸과의 주말여행을 떠나며 그의 도주를 돕게 된다. 도착 후 잠시 트렁크를 열어야 하나 갈등하는 비요른에게 딸아이는 소풍에 집중하라며 '명상 수업'을 상기시키고, 비요른은 모처럼 시간의 섬을 만끽한다.
그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굳이 하지 않는 자유를 맛봄으로써 타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목숨을 빼앗았음에도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를 낸다. 명상은 '삶이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명상은 '살아남아라!'라는 명령이라는 그에게 생존에 대한 절실함을 느끼는 한편, 주인공 역시 사이코 패스인가 따져보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첫 살인에 만족하는 이유는
그 순간을 평가하지 않고 애정을 갖고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 살인은 순간적으로 일어난 욕구를 자유의지로 따른 결과였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주 성공적인 명상 연습이었다." p.25
명상 이론을 살인에 합리화시키는 인간의 이기심, 마피아 관리자들을 설득하는 변호사 다운 면모를 마음껏 발휘하는 비요른에게 혀를 내두르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체를 훼손하고 유기하는 끔찍한 장면을 블랙코미디로 승화시키는 저자의 노련함이 돋보인다. 그런데 트렁크는 안쪽에서도 비상탈출 버튼이 있을 텐데 거구라 움직일 수 없었던 걸까? 란 의문이 들었지만, 소설 감상을 방해할 수 있으니 깊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 역시도 저자의 해학적인 연출 중 하나였을까. 아무튼 <명상 살인>을 읽는 동안 피식피식 웃게 하고, 촘촘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전개는 그의 작품들을 다 만나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비요른의 방식으로 사건이 일단락 수습된 듯 첫 살인은 막을 내렸지만, 그의 삶에는 아직 풀어야 할 실타래가 남아있다. 게다가 아직 끝나지 않은 비요른의 살인 욕구는 후속작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살인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찝찝하지 않은 마법 같은 이야기 <명상 살인> 영화도, 후속작도 빨리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