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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 - 내 것이 아닌 아이
애슐리 오드레인 지음, 박현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7월
평점 :
'엄마와 딸'은 하늘의 축복이라 하지 않는가. 엄마와 아이는 서로에게 우주가 되는 천륜이라 한다. 그러나 <푸시: 내 것이 아닌 아이>는 자신의 몸에서 내보낸 아이가 엄마를 밀어내는 안타까운 관계를 통해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며 비극의 서사를 마주하는 주인공의 삶에 함께 아파하며 위로하게 된다.
'우리가 자궁 속에서 듣는 첫 번째 소리는 어머니의 심장 박동 소리라고들 한다.. (중략) 한 여성이 지니게 될 난자는 모두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4개월 된 태아일 때 형성된다. 난자로서 우리의 세포적 삶은 할머니의 자궁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 어머니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 피의 리듬에 맞춰 진동한다.' p.9
소설 <푸시: 내 것이 아닌 아이>는 한 여인은 태어나기도 전에 할머니의 자궁 속에서 이미 형성되고 리듬을 탄다는 레인 레드먼드의 <북 치는 이들이 여자들이었을 때>의 문장을 인용하며 복선을 깐다. 한때 자신의 남편이었던 이에게 '진실'을 전하려고 찾아온 여인이 단란한 가정을 밖에서 쳐다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는 시작한다.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했지만 자신의 아이를 원했던 여인 블라이스는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 낳은 것이 인생 최고의 잘한 일로 여겼지만, 딸 바이올렛은 엄마보다 아빠를 원했고, 심지어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하며 엄마에게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블라이스는 남편에게 아이 양육에 대해 토로하지만, 엄마의 모성애가 부족한 탓이라며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
"아이는 내가 매달려 버틸 수 있는 만큼 여유를 주었고, 나는 다시 붙잡고 올라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 어쨌든, 잠시 동안은, 내가 다시 한번 그 애의 작지만 질서 정연한 세계 속에 있는 자리를 깨달을 때까지는."p.121
블라이스는 딸 바이올렛이 마냥 예쁜 천사 같은 아이가 아님을 알지만, 보모 외에는 동조하는 사람이 없다. 남편과 시어머니조차 엄마의 문제로 치부하는데 블라이스는 다른 아이 샘을 낳으면서 엄마와 아이와의 유대감을 회복해간다. 바이올렛과도 어느 정도 안정된 관계를 찾아간 듯했으나, 바이올렛은 엄마가 자신보다 샘을 사랑한다며 자신은 더 이상 샘이 필요 없다고 혼잣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샘의 유모차를 끌고 바이올렛과 외출했던 블라이스는 바이올렛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유모차를 놓치게 되고, 샘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블라이스는 바이올렛이 유모차를 밀친 것으로 보았다고 하지만 충격에 의한 소설 쓰기 정도로 간주할 뿐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그 애는 나에게서 나왔지. 내가 그 애를 만들었어. 내 옆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존재, 내가 그 애를 만들었어. 그리고 그 애를 원했던 때가 있었어. 그 애가 나의 세계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때. 그 애는 이제 어른 여자처럼 보였어. 그 애의 눈에서 자라는 여성적 지혜는 나 없이 무럭무럭 커지려 하고 있었어. 나 없어도 잘 살아가겠지. 그 애는 나를 포함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려 하고 있었어. 나는 뒤에 남겨지겠지. p.382
엄마들은 '가끔 내 속에서 나왔지만 속을 알 수가 없다'라고도 하지만, 뱃속에서 아이가 자라면서 생긴 유대감이라는 게 있어서인지 아이에게 변화가 생기면 무언가 낯선 느낌을 감지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부성애는 자신의 혈육이라는 이유로 완전함을 강조하고, 이상함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부정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푸시: 내 것이 아닌 아이>에서도 남편 폭스는 딸 바이올렛의 이상 행동을 알면서도 묵시하고, 아내에게 모른 척으로 일관하다가 바람마저 피우는 뻔뻔함을 보인다. 아이의 죽음을 감당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는 블라이스의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동시에 현실감이 넘쳐 더 무섭게 몰입된다.
'모성'은 엄마의 사랑을 온전히 받은 사람에게 타고나는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자신의 집안 여인들은 다른 여인들과 다르다며 모성이 없는 엄마에게 외면당했던 블라이스는 편견을 깨주고 싶었지만, 딸 바이올렛에게 외면당하고 남편마저 정신 이상자로 간주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놓이고 만다.
당신은 내게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았어. 한 번도 내 것인 적 없었던 삶 속의 등장인물같이 느껴졌지. 나는 당신의 턱에 손을 뻗고 싶었어. 당신을 만지고, 내 손가락 사이에서 당신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알아보고 싶었어. 당신은 이제 다른 사람을 사랑하니까. 당신은 이제 우리의 것이 아닌 아이의 아빠니까. p.393
<푸시: 내 것이 아닌 아이>는 엄마라는 이유로 모성애의 강박에 시달리고, 딸아이의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엄마의 가슴 떨리는 심리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소설이다. 출산하며 내 몸에서 아이를 밀어내는 쾌감을 느낀 주인공과 아이가 엄마를 밀어내는 감정의 대비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중의적인 제목의 뜻을 와닿게 한다. 심리 묘사에 흠뻑 빠져 들었더니 남은 페이지가 없었다.
책을 덮으면서 만약 블라이스의 관점이 아닌 바이올렛의 관점에서 소설을 각색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블라이스의 시선과는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비티> 제작사에서 영상화 예고되어 있던데 영상물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