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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퍼 네트워크
챈들러 베이커 지음, 이동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평점 :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리스 위더스푼 북클럽 선정도서이자 오프라 윈프리 매거진 선정 최고의 책 <위스퍼 네트워크> 은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드라마틱 하게 묘사한 시의적절한 심리 스릴러 책이다.
어느 날, 대기업 트루비브의 대표가 심장마비로 급사하고, 능력 있는 에임스가 차기 CEO로 거론된다. 에임스는 여성편력이 심한 대표 변호사로 회사 내에는 그의 피해자들이 숨죽이고 있었으나 그가 절대 권력을 지닐 미래를 불안해한다. 때마침 댈러스 법조계 여직원들 사이에 '배드맨 리스트'라는 구글 스프레드시트가 공유되는데...
트루비브의 수석 부대표 변호사 슬론 글러버 역시 한때 상사인 에임스와 부적절한 관계를 지니면서 그로 인해 에임스에게 절대 약자의 위치다. 자신의 커리어와 자리 때문에 침묵했던 슬론은 부하직원 캐서린이 에임스의 눈에 들어 앞으로 어떤 결말로 치달을지 알았기에 '위스퍼 네트워크'에 에임스의 이름을 올리기로 결심한다. 슬론의 동료 변호사인 아디 밸디즈 역시 과거에 에임스에게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었으며, 에임스는 얼마 전 출산 후 복직한 그레이스에게도 접근한다. '위스퍼 네트워크'의 확산은 에임스의 투신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슬론과 아디 그리고 그레이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오랫동안 이 문제의 본질을 알고 있었다. 직장에서는 여자라는 사실 자체가 핸디캡이었고 그걸 만회해보고자 우리는 딱 맞는 해결책으로써 여성성을 지우려고 무던히 애써왔다... (중략) 성희롱은 여자한테만 일어나는 일이었기에, 믿거나 말거나지만, 성희롱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인정하면 우리가 여자라는 사실이 문제가 되니까. 그러니 이제 와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단서이기도 했다. 앞으로 우리는 문제 삼을 것이다."
소설은 진실을 폭로하고 더 이상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선봉장에 선 슬론 글로버, 아디 벨디즈, 그레이스 스탠턴이 캐서린의 배신으로 자신들의 사적 이익과 불만 때문에 차기 CEO 에임스의 명예를 실추하고 죽음으로 이르게 했다며 회사와 에임스의 유가족에게 보상금까지 토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러나 에임스에게 성폭행당하고 그의 유전적 증후군을 물려받은 아들을 키우고 있던 여성이 "진실을 말한 대가로 이분들이 직장과 돈과 모든 것을 잃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라며 진실을 폭로하며 상황은 역전된다. 그러나 소설 말미에는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사회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본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살인 피해자를 탓할 수 없듯이 동물적인 본능으로 가장 어리거나 가장 취약한 자를 건드리거나 사회적 약자의 성공을 향한 야심을 이용하는 가해자의 잘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대중화되며 많은 조직이 조심하고 있지만, 아직도 조직 내에 만연한 남성 우월주의는 공공연하게 성차별을 하고,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성희롱적인 발언이 존재한다. 침묵하고 문제를 키우고 싶어 하지 않는 보수적인 조직문화가 피해자들이 숨죽여 비밀로 버텨온 진실들을 고발하기까지 그들의 내적 갈등을 위로하고 적극적으로 구조하는 문화로 변화해야 한다. 아직도 약자인 피해자들은 숨죽여 울고 있을 테니 말이다.
"당신이 우리 말에 귀 기울였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야."
소설 <위스퍼 네트워크>는 성희롱과 성 추문에 대수로워하지 않은 남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액 연봉의 아내 슬론이 상사를 고발한다고 하자 남편 데릭 역시 회의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딸아이가 학교에서 남자아이의 장난이라는 이유로 성희롱을 묵인당하고, 정당방위를 폭력 가해자로 몰아세우자 아내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인다. 학교에 슬론의 변호사 다운 통쾌한 지적은 우리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이는 근본적인 교육과 인식의 변화가 필요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남성보다 인사고과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직장인 여성의 삶과 고충을 이보다 더 잘 그려낼 수 있을까. <위스퍼 네트워크>는 주인공들의 시선으로 사건을 면밀하게 재구성한 매력적인 스릴러, 페이지터너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