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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페스트 ㅣ 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션 (오디오북) 9
알베르 카뮈 지음, 한수민 옮김, 원종준 외 낭독 / 별글 / 2020년 2월
평점 :
3년째 코로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한 시점에 읽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지독한 전염병이 점령한 세상을 겪은 적 없었던 학창 시절에 읽은 《페스트》와는 감회가 너무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p.59
페스트는 전염병으로 도시가 고립되었다면, 코로나는 너무나도 세상이 발전한 탓인지 순식간에 온 세상이 고립시켰고, 그만큼 진통도 컸다. 우리의 사회는 하루하루 세상의 변화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지만, 전염병의 수순은 백여 년 전과 소름 끼칠 정도로 비슷했다.
《페스트》는 프랑스의 평화로운 '오랑 시'를 배경으로 페스트에 점령당한 인간 사회의 전형을 담아냈다. 어느 날, 쥐의 사체들이 도시 곳곳에서 넘쳐나는 것을 시작으로 원인도 모른 채 무차별하게 가해지는 공격을 속절없이 당하던 인간은 환자들을 격리하고 도시를 봉쇄하기에 이른다.
전염병이 장기간 이어지며 사람들은 단절과 고립에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점차 무뎌진다. 그러나 동일한 상황에서도 고통 속에서도 은혜를 찾고 나아갈 길을 찾는 종교인이 있는가 하면 자신만의 행복을 바라는 이기심으로 현실 도피를 꾀하는 이가 있고, 또 연대의 힘을 강조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려내며 절망을 대처하는 인간상이 저마다 다름을 보여준다.
재앙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도 없지만 알베르 카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 즉 자신의 직무를 다하는 것이라 말한다. 우리가 절망을 이겨내는 힘은 행복에 대한 희망과 의지에서 비롯됨을 강조하는 것이다.
《페스트》가 고전 중의 고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허구가 더해진 실존주의 소설 정도로 여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지난한 3년여의 시간을 겪고 다시 읽은 《페스트》는 명불허전 고전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페스트가 휩쓸고 간 당시의 상황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을 시작으로 타인의 죽음과 자신에게 언제 닥쳐올지 모를 두려움과 공포가 도사린 인간의 심리 묘사는 물론, 시련에 맞서 싸워나가는 인간의 의지까지. 상황에 따라 다른 감동을 주는 고전 문학의 가치를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눈뜨자마자 날씨와 더불어 코로나 확진자를 체크한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 이미 코로나 일일 확진자 수에 연연하지 않는 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 현실은 아직도 매일 수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는데도 말이다. 익숙해지고 무뎌져버렸다는 사실이 무서우면서도 소설에서처럼 사회가 다시 안정되는 엔데믹으로의 현상이기를 바라는 바.
코로나의 피로감에서 해방되면 또 어떠한 바이러스가 우리를 공격해올지 모르지만, '인간이 페스트와 인생의 도박에서 얻을 수 있는 것, 그것은 인식과 기억뿐인 셈이다.'라는 카뮈의 말처럼 전염병의 기간 동안 우리가 겪으며 느꼈던 것, 기억들을 잊지 않고, 순간순간을 의미 있게 살아가자 다짐해 본다.
"사람은 각자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세상의 어느 누구도 페스트로부터 무사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에요.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 조심해야 하죠. 잠깐 방심하다가는 다른 사람의 얼굴에 숨을 내쉬어서 그에게 전염병을 옮겨주고 맙니다. 자연적인 것, 그것이 바로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과 청렴결백, 순진함 등은, 이렇게 표현해도 괜찮다면, 바로 인간이 가진 의지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코 멈춰 서는 안 될 의지의 결과물이요.
올바른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을 전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긴장을 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결코 긴장을 풀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의지와 긴장감이 필요한 것이죠!
그래요, 리외 선생님.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한층 더 피곤한 일이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피곤해 보이는 겁니다." p.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