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인간혐오자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5
몰리에르 지음, 김혜영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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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사회의 이슈 중 하나가 혐오 사회라서 일까. 몰리에르의 대표작 《인간 혐오자》가 400년이라는 긴 시간이 무색하게 괴리감 없이 다가온다.

 

비열한 아첨과 부당한 행위, 배신, 교활함에 치를 떠는 알세스트는 위선이 팽배한 세상을 혐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교태를 부리고, 다른 사람들을 헐뜯기를 일삼는 요즘 세상 사람의 모습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여인, 사교계의 많은 귀족들에게 구애받는 아름다운 어린 과부 셀리멘을 사랑한다.

 

"완벽한 이성을 지니고 싶다면 생각이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게 절제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해. 아득한 옛날의 미덕을 고집하면서 너무 뻣뻣하게 버티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와 충돌할 수밖에 없어. 사람들에게 완전무결하기만 바라면 안 돼. 아집만 내세우지 말고 시대에 유연해져야지. 세상을 고쳐 볼 생각만 하고 관대해지지 않는다면 그건 그저 미쳐 날뛰는 광기에 불과해" p.18

 

한편, 불편한 소송에 휘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알세스트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침착하라는 친구 필랭트의 조언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셀리멘의 도움을 청하려고 셀리멘의 살롱을 방문한다. 예상치 못한 손님들과 맞닥뜨리면서 얽히고설킨 관계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오롱트와의 소네트 논쟁은 법원에 제소되는 빌미가 되고, 셀리멘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알세스트는 어장관리하며 배신을 일삼는 셀리멘의 진면목을 마주하며 사교계를 떠나고 싶어지는데...

 

스무 살 셀리멘의 살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희극 《인간 혐오자》는 사랑과 권력, 배신 등 당대 사교계의 민낯을 들춰낸다.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지 않고 사람의 감정을 저울질하는 셀리멘, 자신의 부와 권력을 이용해 사랑을 경쟁하려는 귀족, 이득을 위해서라면 기만과 배신을 일삼는 인간들의 전형이 녹아있다.

 

비록 귀족 신분임에도 사교계의 관습과 부패한 사회에 분노하며 인간을 혐오하는 알세스트지만, 타락한 여인을 자신의 사랑으로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 여기는 것 또한 연약한 인간의 한 단면인 교만함이 아닐까. 교만의 끝은 외로운 결말임을 예상할 수 있는데... 과연 셀리멘은 어떤 귀족을 택할는지, 몰리에르는 《인간 혐오자》를 열린 결말로 마무리한다.

 

《인간 혐오자》는 짧은 운문 형태라 쉽게 읽혀 가독성도 좋지만, 귀족들의 오가는 멘트가 현재와 다를바 없다는 사실에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올해가 17세기 프랑스 고전 희곡의 완성자 몰리에르의 탄생 400주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몰리에르 400주년을 기념해 「타르튀프」, 「인간 혐오자」의 희극 공연이 연출되었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 위선 없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을 테니 몰리에르의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두고두고 회자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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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않은 형제들
아민 말루프 지음, 장소미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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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된 문명의 형제들과 현대인의 만남,머지않아 우리가 겪을 현실일것만 같다. 어쩌면 이미 어디선가는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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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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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 문뜩 엄마가 그리워지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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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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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무라 겐키 감독의 영화 <백화>의 원작 소설 《백화》는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휴먼 소설로, 아픔 속에서 마주한 행복한 기억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백화 百花

 

하얀 배경에 만개한 꽃 커버라 하얀 꽃과 관련된 이야기일까 했는데, 한자를 보니 일백 백이다. 즉, 백 개의 꽃. 유리코가 아프기 전에 늘 예쁜 꽃이 있던 유리코의 식탁을 떠오르게 하며 유리코와 이즈미의 수많은 추억들을 '백화'로 표현한 것 같다.

 

어느덧 일흔이 된 피아노 선생님 유리코는 홀로 아들 이즈미를 키운 싱글맘이다. 인생의 나침반이 아들에게 향해 있는 듯 보이지만, 이즈미에게는 어릴 적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가 있다. 어린 시절 유리코가 1년간 사라지면서 엄마에게 거절당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그때의 1년이라는 시간을 통 편집하고 살아왔으나, 유리코가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고 기억을 서서히 잃어가면서 유리코와 이즈미의 균형이 또다시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엄마가 또 멀리 떠나 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유리코의 묘연했던 1년의 기록을 마주한 이즈미는 유리코가 엄마이기 이전에 한 여성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데...

 

잃는 게

곧 어른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유리코는 아들을 얻었으나 가족을 잃었고, 이즈미는 결혼해 아들을 얻는 동시에 엄마를 잃게 된다.

 

이 아이러니한 인생의 여정을 보니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잃어야 한다'라던 가와무라 겐키의 전작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 떠올랐다. 당연하다 여기던 것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이야기하던 저자는 내게 주어진 당연하다 여기던 것들이 나를 나답게 만든다고 이야기했었다.

 

《백화》에서는 인간이 암을 정복해 나가자, 치매 환자가 늘어났으며 미래에 치매가 정복된다 할지라도 인간은 무언가와 싸워야만 한다고 말한다. 우리네 인생사가 그렇듯 무언가 하나를 해결했다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니까. 저자는 잃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억'에 대해 파고들어 엄마와 아들이 같은 일을 겪어도 다른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리코는 절반 불꽃이 보고 싶다고 하지만 이즈미는 절반 불꽃의 의미를 도통 생각해 내지 못하고 불꽃놀이를 관람한다.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살려내는 유리코와는 달리 현재의 상황에만 몰두하는 이즈미의 모습은 기억의 단편을 보여준다. 결국 유리코가 세상을 뜨고 나서야 이즈미는 절반 불꽃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는다. 이즈미는 잊어버릴 거라고 했던 유리코의 말과 함께 추억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차례차례 올라오는 절반 불꽃.

이즈미와 유리코가 살던 집에서 피었던

수백 송이의 꽃처럼,

불꽃은 아름다웠다는 것만을

기억에 남기고 이윽고 사라진다.

백화, p376

 

치매에 걸린 엄마는 계속 기억하고 있었으나 자신이 잃어버렸던 '절반 불꽃'의 추억에 전율하는 이즈미의 장면은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바뀌는 치매가 뇌를 점령해올지라도 행복했던 추억이 깃든 기억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는 울림을 준다.

 

유리코가 하늘을 수놓는 불꽃들을 보며 백화요란이 따로 없다는 대목이 있다.

 

'백화요란'

온갖 꽃이 불이 타오르듯 피어 매우 화려함을 나타내는 뜻으로 인생 역시 수많은 기억들이 수놓은 불꽃 축제와 같은 게 아닐까. 행복과 슬픔 등 여러 추억이 교차되어 화려하게 피어나다 사그라드는 불꽃처럼.

 

무언가를 잃어가는 게 인간의 필연이라면, 소중한 존재를 사랑하고 화려하게 수놓으며 살아가는 것. 이를 기억하는 것 또한 인간의 몫이 아닐는지. 비록 잊혀질 인생이라 할지라도 행복한 기억으로 화려하게 수놓는 인생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

 

순식간에 책장이 넘어가는 눈물과 감동의 드라마 소설 《백화》는 식구가 적은 요즘 아픈 가족을 돌보며 세상을 살아가기 쉽지 않기에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유리코의 모습이나 뒤늦게 엄마와의 추억이 떠오른 이즈미를 보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소중한 사람은 곁에 있을 때 더 잘하자 다짐해 보며, 가족에게 상처받아 소원해졌거나, 가족을 간호하느라 지친 분들에게 《백화》를 일독하시기를 추천한다.

 

그 뒤엔 관계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얼른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내가 잊고 있었던 기억 안에서 행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번외로 분문에 ˙ ˙ ˙ 강조된 표기를 따라 다시 읽어 보아도 또 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다.

 

그때 > 연기 > 상정된 미래 > 또다시 > 망가진다 >일부러 미아가 되었다 등등 따라가다 보면 이즈미의 심경 변화가 도드라져 책의 여운이 짙어진다. (편집에 신경쓴 부분은 이유가 있는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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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소설, 잇다 1
백신애.최진영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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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를 이어주는 작가 정신의 새로운 시리즈, '소설, 잇다'의 첫 번째 도서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사랑'을 소재로 한 백신애 작가의 세 작품과 최진영 작가의 작품 한편이 수록되었다.

 

시대 불문 인생사 살아가는 근원이 '사랑'이라서 일까. 과도기 상황에서의 신여성 작가와 현대 작가는 백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여성 그리고 사랑에 대한 담론이 가능하다니. 소설에는 요즘 잘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단어가 보이기도 하지만, 백 년 전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지루함이 없었다. 다만, 남녀의 관계에서 여성의 입지가 현재와는 차이가 있을 뿐.

 

우선, 첫 번째 「광인 수기」에는 현모양처의 삶을 살아온 며느리에게 아이를 키우고 남편을 챙겨야 한다며 타박하는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현재도 간간이 목도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가부장적인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 미친 여성으로 몰아가는 상황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저자는 이를 해학적으로 승화시켰고(차마 옮겨 쓰기는 애매한 문장이라 패스), 사랑은 결코 영원할 수 없는 찰나의 연장선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사랑이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찰나가 연장해가는 것이니까

이 순간 아무리 사랑하지마는 다음 순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라지요. "p.47

 

「혼명에서」는 신념의 중요성을 깨우쳐준 S라는 연정의 상대가 갑작스러운 죽으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이혼녀를 그려낸다. 사회에서 당당해지기 위해 '신념'을 강조하는 동시에 우연이 인생을 바꿀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세상에 우연이란 것이 없어요. 피차 또박또박 제가 지나야 할 코스를 밟아온 결과로 서로 그 코스가 한데 교차되었던 것에 불과하니까 그것은 가장 자연적 결과입니다. 만일 이것을 이름 지어 우연이라 한다면, 그 우연이 또한 인간 일생을 좌우하는 중대한 계기가 될 수 있어요. 때로 인간이란 우연에 좌우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p.88

 

「아름다운 노을」 가족의 대를 잇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사람에게 재혼 예정인 여인은 청첩장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린다. 과부 화가를 흠모하는 소년과 사랑에 대한 여인의 욕망을 그려내며 괴로움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울지 말아요. 사람의 삶이란 괴로움인 것이에요. 괴로움이 즉 삶이란 말이지요." p. 114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시대를 넘어 이어가는 여성들의 사랑 실험이라는 카피처럼, 백신애의 소설 3편의 여성들은 하나같이 눈물이 많지만, 점점 과감해진다. 현모양처의 삶이 당연한 시대상에서 일탈을 꾀하고, 이혼녀에 대한 사회의 인식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딸이 가독을 이어가는 설정이나 혼인을 앞두고 10대 소년에게 마음을 둔 욕망 등 다소 파격적인 신여성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윽고 최진영 작가는 '사랑'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가간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초반부에 여성이 범죄의 타깃이 되는 다소 어두운 배경으로 시작하며 긴장감을 고조시켜 페미니즘 소설로 전개를 예상케했다. 저자는 100여 년 전 백신애의 소설 「아름다운 노을」의 주인공이었던 30대 순희와 10대의 정규를 이어받아 40대 순희와 20대 정규로 재해석한다. 전통적인 사랑이라기보다는 '사랑'에만 포커스를 맞춘 여성과 여성의 러브 라인으로.

 

"내가 간절하게 원하는 건 바로 이런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보고 웃는 것. 비슷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 나에게 기쁜 마음을, 심심한 마음을, 힘든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을, 외롭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망하고 계속 망할 뿐이라는 평범한 삶을 기꺼이 살아갈 수 있다." p. 229

 

 

21세기를 살아가고는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사랑'의 대상에 대해서도, 남녀 간의 역할에 대해서도 전통적인 프레임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다. 누군가에게 귀속되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의미 있는 사랑을 하며, 삶을 괴로움보다 기쁨으로 충만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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