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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 오베르쉬르우아즈 들판에서 만난 지상의 유배자 ㅣ 클래식 클라우드 30
유경희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평점 :
오베르쉬르우아즈 들판에서 만난 지상의 유배자 《반 고흐》는 20여 도시에서 노마드 인생을 산 네덜란드 출신인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 마지막 종착점 오베르쉬르우아즈까지 그의 자취를 짚어본다.
프랑스 남부 여행을 계획하는 이라면, 반 고흐의 자취를 따르는 여행을 꿈꿔보았을 테고, 반 고흐의 노란 집에 대한 환상이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노란 집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포기하지 못하고, 이미 존재하지 않는 노란 집이 있던 자리를 찾는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반 고흐》는 위대한 거장 반 고흐의 자취를 저자가 직접 밟아가며 작품과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저자가 고흐의 자취를 따라 이동했듯 독자 역시 마치 고흐가 파리의 화려함에 염증을 느껴 아를로 향하고, 또 파리에서 오베르쉬르우아즈로의 여정에 동참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목회자 아버지 슬하에서 자라 교역자의 길을 걷던 고흐는 화가로 전향해 부모의 원조 없이는 작품을 그릴 수 없던 흑역사가 있었다. 이에 아버지는 빈센트를 자신이 짊어질 십자가로 여겼고, 고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의절하기에 이른다. 아버지 사후에는 동생 테오에게 의존해 살아가는 스토리는 고흐의 명성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사연이다.
그러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에서 반 고흐의 작품 <성서가 있는 정물화>를 보면서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조금은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 아버지와의 불화만으로도 죄책감이 컸을 테지만, 아버지가 남긴 성경에서 아마도 두 번 상처를 받았을 것 같다.
우선 아버지는 자신의 유품인 성경을 장자가 아닌 테오에게 남겼고, 어머니는 이를 테오에게 건네주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빈센트는 테오에게 건네기 전에 빈센트는 성서를 소재로 작품을 그려낸다. 자신이 성공해 돌아온 탕아처럼 아버지에게 돌아갈 날을 꿈꾸었을 테지만, 끝내 기다려주지 않고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회상했던 것이다. 펼쳐진 성경은 이사야 53장이라고도 하고, 이사야 1장 2절이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자식이라고 기르고 키웠더니 도리어 나에게 반항하는구나."라고 적혀있다.
이는 빈센트를 향한 아버지의 일갈이었을 것이다. p. 55
또한 펼쳐진 성서 앞에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을 배치해 아버지와의 물리적인 헤어짐이라기 보다는, 아버지의 신앙과 신념으로부터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해석에서 그냥 작품 감상만 했다면 놓쳤을 부분인데 또 다른 시각으로 고흐의 작품을 해석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고흐는 자화상과 프랑스 남부의 작품으로 대부분 기억되는데 고흐의 작품에는 유독 책이 많이 등장하고 있었다. 이는 빈센트를 만든 것의 8할이 독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맹렬한 탐서가 기질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더욱이 그는 당대의 삶과 사랑, 고통과 고뇌를 섬세하게 묘사한 현대 소설은 성서를 대체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재정의 결핍 가운데도 책을 구입하는 데 아끼지 않았다고 하는 빈센트. 그의의 작품에 깊이가 있었던 것도 독서의 내공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고흐의 작품을 감상할 때는 아련하면서도 강렬하다는 느낌이 들고는 했었다. 낮은 이를 섬기고 싶어 하는 깊은 내면에서 빚어 나온 연민의 감정에서 였을 수도 있고, 인간에게서 신의 모습을 발견하려는 오디너리 세인트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유는 중요치 않다. 그의 천재적인 감수성과 빠른 손의 재능이 더해진 결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로 자리매김한 것은 분명하니까.
유목민 화가의 삶을 살았던 반 고흐는 그를 사랑하는 이들 역시 한곳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의 자취를 따르기 위해서는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을 시작으로, 네덜란드의 반 고흐 미술관이 있는 암스테르담으로 향하게 한다. 또 그의 그의 작품은 남프랑스로 발걸음을 향하게 만드니 말이다.
프랑스 남부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고흐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과 더불어 그가 심취했다던 에밀 졸라의 책들을 읽어 보기로 다짐해 본다. 코로나로 보류되었던 고흐의 자취를 따르는 남프랑스 여행은 저자의 동선과 흡사했다. 당초에는 파리, 아비뇽, 아를, 니스 그리고 라벤더 밭이 펼쳐지는 발랑솔이었는데 오베르쉬르우아즈가 추가될 예정이라 루트를 다시 짜봐야겠다.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빈센트 반 고흐를 깊이 이해하고 싶은 독자, 그리고 프랑스 남부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 꼭 읽고 가기를 추천한다. 클라우드 클래식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읽는다면 예술적 인문학적 소양이 많이 쌓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