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용소군도 2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59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김학수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1월
평점 :
수용소 군도
(Архипелаг ГУЛАГ)
알렉산드르 솔제니찐
[ 2 ]
혁명과 내전을 겪은 1920년을 전후해서는 아직은 원시적이나마 간혹 어떤 경우에는 법이 움트고 자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도 명목뿐이었다.
여러 재판 사례들을 예로 들며 재판에서의 법 집행의 진화 과정을 얘기하지만 여전히 사회 변혁을 위한 혁명적인 분위기가 압도하였다.
내전 말기에 볼가강 연안 지방에 발생했던 기근은 부모가 자식을 먹기에까지 이른 가공할 만한 것이었는데 당국은 성직자들로 그들을 먹여 살리게 한 다음 거절하면 책임을 그들에게 전가시켜 교회를 파괴했고, 동의해도 교회를 깨끗하게 쓸어버릴 작정을 했다.
그리고 기근으로 죽어가는 인민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교회의 성물을 뺏으면서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성직자들에게 소비에트 정부와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 재판 속에 종교의 말살을 기도했다.
공산당과 교회는 양립할 수 없었던지 전국에 걸쳐 수십 개의 교회재판이 열렸다.
혁명 이후 새로운 법률의 초안이 마련되면서 총살형을 없앴다고 하지만 그것은 명목뿐이었고 총살형의 대상 가운데는 허가 받지 않은 해외로부터의 귀국도 포함되었으며, 교회재판 이후에는 볼셰비키와 혁명을 같이했던 사회 혁명당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었다.
나중에는 같은 당원도 숙청하는 마당에 사회 혁명당의 처단이 뭐가 그리 대수였겠나?
마찬가지로 산업 부분의 재판에 있어서의 피고들의 혐의는 대부분이 검사의 자의적인 기준을 초과하거나 미달로 생길 수 있는 해독행위들이었으며, 심지어 그 증거들이 검사들에 의해 조작되었다.
1918년 5월부터 1922년까지 크릴렌코가 전러시아 중앙 집행 위원회의 혁명 재판소의 의장이었고 그는 혁명 재판소 검사단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지냈다가 후일 대숙청 때 처형되었는데 그가 스탈린을 도와 이 숙청과 재판을 지휘했던 배후였던 것 같았다.
희망에 부풀었던 NEP(신경제 정책)는 1927년에 종적을 감추었다. 신경제 정책은 파렴치한 기만임이 드러났고 비현실적이며 불가능한 계획과 임무가 무리하게 추진된 결과였다.
1920년에 사형이 폐지되었다고 하지만 총살형은 곳곳에서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었고 심지어 6명의 집단 농장원들이 농장의 풀베기 작업을 마친 후 자기 집의 소를 위해 약간의 풀베기를 했다고 전원이 사형선고를 받는 일까지 있었다.
1920년대만 해도 형무소에서의 단식투쟁으로 개인적인 요구를 얻어내기도 한 것 같은데 1930년대부터는 그런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탄압은 더욱 심해졌는데......
제2권에서는 제1권에 이어서,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숙청과 재판 사례들이 예시되면서 인권의 말살과 공산당의 무자비한 횡포를 고발하고 있으며 소련의 수용소 체제의 역사와 구조 및 그 내막들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 죄수들이 1,200백만이나 1,500백만 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이들을 관리하기 위한 소련의 감옥은 미결수 수용소, 형무소 ⇒ 중계 형무소 ⇒ 수용소 군도로 나누어서 배치, 운영되고 있었는데 죄수들은 그런 과정을 거쳐 수용소 군도로 보내지고 또 노동력의 필요에 따라 군도에서 군도로 서로 이동되었다.
그런데 그 이동 과정에서 이용하는 열차나 비좁은 수용소의 환경이 너무 열악하여 사람이 아닌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 알맞은 표현일 것 같았으며 그들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했을까를 짐작케 했다.
작가는 이런 상황을 기술하면서 ‘러시아 역사가 부서지고 있었다.’고 쓰고 있지만 러시아는 부서지고 있었지만 역사는 기록되고 있었다고 말해야 옳았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