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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돈강 1 - 정선세계문학 68
미하일 숄로호프 지음, 정태호 옮김 / 청목(청목사) / 1993년 9월
평점 :
절판
고요한 돈 강
미하일 숄로호프
미하일 숄로호프(Michail Sholokhov 1905. 5. 24 - 1984. 2. 20일) 러시아 돈강 인근인 카자흐마을에서 태어났다. 1923년 모스크바로 가서 석공, 하역인부 등 다양한 일을 하다가 교사가 되었다. 이후 문학으로 관심을 돌려 1924년 『점(검정 사마귀)』이란 작품으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1937년 소련 최고회의 대의원, 1961년 제22회 소련공산당대회 중앙위원을 지냈다. 1941년 스탈린상, 1960년 레닌상, 196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러시아 공산혁명을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과 운명을 묘사하고 있는 이 소설은 장장 15년에 걸쳐 완성되어 숄로호프를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 시켰다. 또한 이 작품으로 숄로호프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소련 당국의 압박으로 수상을 포기하고 돈 강 근처의 한 농장에서 생애를 마감한다. 인터넷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역자가 일부분 삭제 편집하여 완역본을 읽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돈 강변의 성실한 청년 그리고리 멜레호프. 그는 악시냐에게 끈질기게 애정을 기울인다. 악시냐는 16살 때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했고 이 사실을 안 오빠와 어머니가 아버지를 때려 죽인다. 그 후 악시냐는 스테판과 결혼하지만 결혼 첫 날부터 폭력에 시달렸다. 스테판은 매일 밤 악시냐를 감금하고 난봉 질을 하기 일쑤였다. 아이까지 하나 낳았지만 악시냐는 남편에게 애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아이마저 일년도 못 살고 죽어버렸다.
풀베기 이후 둘은 가까워졌고 어느 날 마을의 목장지기가 동틀 녘 귀리 밭에 나란히 누워있는 두 사람을 본 후 삽시간에 온 동네로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리의 아버지 판델레이는 이 소문을 듣자 악시냐와 그리고리에게 화를 낸다.
야영에서 소문을 듣고 돌아 온 스테판이 악시냐를 사정없이 내동댕이치는 모습을 본 그리고리는 형 페트로와 함께 스테판에게 달려든다. 이 때부터 멜레호프 형제와 스테판 사이에는 깊은 원한의 매듭이 얽힌다. 스테판은 악시냐를 거의 밤마다 두들겨 패고 그리고리는 악시냐에게 둘의 관계를 끝내자고 얘기한다.
그리고리는 코르슈노프의 딸 나탈리야와 혼인한다. 나탈리아는 부지런하여 시부모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고리는 지아비로서 도리에 점차 익숙해 갔으나 악시냐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털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무렵 스테판도 아내와 화해를 하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그 무렵, 저녁이면 슈토크만을 중심으로 프리스토냐, 발레트, 다비드카, 이반, 필리카, 코셰보이 등이 매일 모였다. 어느 작가가 쓴 지나간 역사 - 즉, 카자흐의 가난한 생활을 비웃었으며, 질서와 통치에 대하여, 차르 정권에 대하여 그리고 왕자의 근위병으로 고용된 카자흐에 대하여 한껏 조소를 퍼부은 - 에 대하여 흥미를 가졌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들 모임은 오랫동안 신중하게 골라낸 끝에 카자흐 핵심이 형성되었다. 슈토크만이 중심이 되어 아직은 혼자만이 알고 있는 어떤 목적을 향하여 끈기 있게 모임을 이끌어 나갔다. 그는 벌레가 나무를 파먹듯이 그들에게 뿌리박힌 소박한 사고와 관습을 허물어 나갔으며 현존 제도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불어 넣었다.
마을 집회 후 선서를 마치고 집에 돌아 온 그리고리는 나탈리아가 친정으로 돌아가겠다는 얘기를 듣는다. 화난 아버지와 말다툼 끝에 집을 나온 그리고리는 악시냐를 만나고 모호프네 집에서 둘은 함께 일자리를 구한다. 악시냐가 사라진 것을 안 스테판은 분을 참지 못하고 장검을 휘두르며 사시나무 떨 듯 떨어댄다. 나탈리아는 친정으로 돌아갔고, 그리고리에게 편지를 써지만 답장은 혼자 살아라는 것이었다.
악시냐는 여자 아이를 낳았지만 스테판을 닮은 것 같아 그리고리는 자신의 아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나탈리아의 자살은 미수에 그친다. 낫으로 심장을 찔렀는데 빗나가 일곱 달 동안이나 누워 있었다. 그리고리는 입대했다. 어느 화창한 봄 날 나탈리아는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어 시댁으로 돌아왔다. 그 즈음 슈토크만과 그 일당들이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저격 사건이 발생하고 나흘 후 1차 세계대전 발발하였다. 그리고리는 레시뉴프 시 부근에서 오스트리아와의 전투에 참여했다. 페트로도 스테판도 소집되었다. 독일이 선전포고를 하고 전장에서 그들은 잠시 서로 만난다.
그리고리는 전투 중 머리에 일격을 받고 의식을 잃었다. 그러나 죽지 않고 깨어나 부상당한 중령을 구하여 게오르기 십자훈장을 받고 진급까지 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랑스럽지만 악시냐에 대한 마음만은 돌리지 못한다. 나탈리아는 악시냐를 찾아 그리고리를 돌려 줄 것을 요구하지만 모욕을 당하고 돌아온다. 악시냐의 딸은 성홍열로 죽고 악시냐는 젊은 주인 예브게니에게 몸을 바친다.
병원에서 만난 부상병 가란자는 이때까지 그리고리가 가졌던 사상을 집요하게 깨뜨렸다. 전쟁이 일어난 진짜 원인, 전제정권, 황제와 조국 등에 관하여 얘기하고 전세계에 노동자 농민의 정권이 들어서야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가란자와는 헤어졌지만 병원을 방문한 대공이 적으로 느껴졌다.
휴가를 받아 고향에 온 그리고리는 악시냐와 예브게니의 관계를 듣고 예브게니를 짓이겨 놓고 악시냐에게 분풀이를 한 다음 집으로 돌아온다.
1916년 10월 어느 날 밤 전장에서 볼셰비키인 분츄크 소위는 이 전쟁에서 져서 차르의 전제가 붕괴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브게니 대위는 그를 체포할 것을 상신하지만 이튿날 분츄크가 탈주하고 “전세계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불온 삐라가 살포된다. 부대 장교들에 대한 검색이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허사였다. 1915년에는 한 중대가 공격 명령에 불복하고 진지를 이탈해 후방으로 퇴각해 버린 일이 있었다. 카자흐들이 눈에 띄게 예전과 달라졌다.
1915년 7월에는 전투 중 그리고리는 크게 부상당한 스테판을 구해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리는 깨달았다. 손에 쥔 게오르기 십자훈장 네 개와 메달 네 개보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아나는 웃음을 웃을 수 없게 되었음을. 썩은 고기 스튜가 배급되고 군대 내에서도 불만이 싹트기 시작했다.
3년이나 계속되고 있는 전쟁으로 여자들만 남은 마을에서도 살림은 어려웠다. 전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을 어디나 똑같이 황폐하게 스러져가고 있었다. 나탈리아는 쌍둥이를 출산했다. 페트로도 십자훈장 두 개를 받았으며 상사로 진급하고 사관학교 입학추천을 받기 위하여 애쓰고 있었다. 어느날 스테판은 페트로 옆에 아내 다리야가 수놓은 손수건을 슬쩍 떨어뜨려서 스테판을 분노케 한다. 스테판은 독일군을 급습하러 갔다가 부상을 당하고 돌아오지 못한다. 페트로는 속 시원해 하며 다리야를 흠씬 두들겨 패주리라 작정했다. 판달레이 노인은 행실이 나쁜 며느리 다리야를 두들겨 패지만 그녀는 시아버지를 유혹하는 듯 안고 넘어져 다리를 쫙 벌리고 모욕을 준다.
1917년에는 세상이 온통 어수선하고 2월에 혁명이 일어난다. 폭동이 일어나 니콜라이 2세 황제가 퇴위하고 정권은 국회의 임시위원회로 넘어 갔다. 병사들은 전선에서 철수하여 군중대회로 몰려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전선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7월에는 반혁명 세력인 코르닐로프가 최고사령관에 임명되어 최고사령부와 임시정부가 분열될 조짐이 나타났다. 장교들과 병사들이 분열되고 내전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코르닐로프 군의 수송 열차에 나타난 볼셰비키 탈영병 분츄크는 병사들을 선동하고 칼미코프를 총살한다. 8월 31일 케렌스키가 크리모프 장군을 호출하자 그는 자살하고 만다. 알렉세예프가 총사령관에 임명되고 코르닐로프, 루콤스키, 로마노프스키가 체포되고 다음날 데니킨 장군과 마르코프, 완노프스키, 에르델리 장군이 체포되어 코르닐로프의 반혁명 음모는 와해되었다.
11월 초순에 카자흐들에게도 혁명에 관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얼마 후 임시정부가 전복되고 볼셰비키가 노동자, 농민을 대표하여 정권을 잡았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전선은 무너졌다. 10월에는 병사들이 저마다 흩어져서 비조직적으로 전선을 이탈했다면 11월말에는 중대, 대대, 연대별로 조직적으로 달아나 버렸다.
1917년 가을도 저물어 갈 무렵, 카자흐들이 하나 둘 전선에서 돌아오기 시작했다. 돌아온 사람에 대한 기쁨은 반대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에 대한 서러움을 더욱더 격렬하고 무자비하게 짓눌렀다.
그리고리 멜레호프는 소위로 임관되고 10월 혁병 직후에는 중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의 정치 상황에 대하여 몹시 혼란을 겪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분츄크는 당위원회에서 노동자들을 지휘했다. 반혁명세력인 백위군과 혁명세력인 적위군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그는 티푸스에 걸려 세 주일이나 혼수상태에 있다 깨어난다. 그동안 간호를 맡았던 안나와 사랑에 빠진다. 분츄크는 혁명재판소에서 일하면서 매일 밤 적위병을 이끌고 혁명의 적을 총살하였다. 그 후유증으로 말라가고 예민해지고....결국 혁명위원회로 자리를 옮긴다.
군중대회가 열리고 카자흐 군사혁명위원회가 구성되고 위원이 선출되었지만 돈 군관구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혼란이 계속되었다. 그리고리는 적위군 편에서 전투에 참여하여 다리에 총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전쟁에 지쳐있었고 일상생활로 돌아가고 싶었다.
식량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의 횡포를 부리던 적위군들이 세트라코프에서 조직된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2백 명도 넘는 병력이 전멸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적위군의 횡포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페트로를 지휘관으로 정하고 지원자를 모집했다. 그들은 적위군을 타도하기 위해 마을을 떠났다. 카자흐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던 안나가 죽었다. 분츄크를 포함한 파견대는 카자흐 반란군에게 포위, 생포되어 총살당했다.
1918년 4월 돈 관구의 상류지방과 하류지방은 완전히 둘로 갈라져버렸다. 그리고리는 중대의 반을 이끌고 보센스카야로 남은 신병들은 페트로의 지휘하에 알제노프스카야를 향해 이동해 갔다. 미시카 코셰보이는 도망가다 붙잡혀 목장의 목부일을 하게 되었다. 스테판이 코셰보이에게 나타났다. 그는 죽지 않고 독일에서 포로로 억류되었다 풀려났다고 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악시냐를 만난다.
그리고리는 적위군과 전투를 계속하면서 볼셰비키에 대한 타오르는 증오심에 사로잡힌다. 날이 갈수록 모두 거칠고 포악해지고 포로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그리고리는 포로를 죽이거나 발가벗기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유약하다는 불평을 들었으며 결국 사단사령부로 호출되어 중대를 인도하고 강등되고 말았다
1918년 가을에는 장교와 카자흐를 갈라놓았던 적의가 전에 없이 고조되었다. 백위군이 밀리면서도 멜레호프 가족은 도망가지 않고 마을에 남았다. 적위군이 마을로 들어왔다. 적위병들은 카자흐들을 모조리 불러 모았다. 집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던 적위군 병사를 때려눕히고 그리고리는 탈출한다. 백위군에 근무했던 카자흐들은 모조리 재판에 회부되어 총살되고 있었다.
어느 날 카자흐 부자들에 대한 과세와 징수가 시작되고 몇몇 카자흐는 체포되어 모두 총살되었다. 슈토크만이 유배지에서 혁명을 맞고 적위군을 조직해 싸우다 군 정치부와 함께 돌아왔다. 그는 조직력 강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폭동이 일어났다. 미시카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밤에 마을을 떠났다. 반면 친척집에서 숨어 지내던 그리고리는 돌아와 반란군에 가담한다. 전투가 벌어지고 페트로는 코셰보이에게 생포되어 사살된다.
그리고리는 반란군 보센스카야 연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받았다. 그는 보센스카야를 거쳐 고향에 도착했다. 카자흐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이 타타르스키는 텅 비어버렸다. 대지는 메마르고 씨를 뿌리지 못해 다음해엔 굶주림에 허덕일 것이다.
적위군 세르도프스키 연대의 전향 움직임에 집회가 열리고 천명이 넘는 병사들이 모인 광장에서 연설을 하던 슈토크만이 총격으로 사망한다. 세르도프스키 연대는 투항했고 공산당들이 색출되어 이송된다. 그들은 이송대들에게도 몹시 당했으며 그들에게 가족을 잃은 마을 사람들은 본때를 보여 주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이반 알렉세예비치는 사살되었다.
3개월 동안 반란은 적위군 전선의 후방을 전염병처럼 먹어 들어갔다. 그러나 5월 22일 반란군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피란민 행렬들이 물결쳐 이어졌고 악시냐도 피란 행렬에 끼었다. 보센스카야에 주둔하고 있던 그리고리와 악시냐는 또 다시 만났다. 마을에 다시 적위군이 나타나고 코셰보이는 마을에 불을 지르며 그리고리를 잡아 죽이겠다고 공언하고 다닌다. 병이 났던 나탈리아는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그리고리는 갑자기 나탈리야에 대한 애틋한 연민에 사로 잡힌다. 그녀도 그것을 느낀다.
마을에 돌아온 나탈리야의 오빠 미티카는 자기 집을 불지르고 할아버지까지 죽인 코셰보이의 가족들을 모두 죽여 복수를 한다. 다리야는 페트로 사망에 대한 보상금 5백 루블과 훈장을 받고는 밤마다 나가서 바람을 피우더니 매독에 걸렸고 그리고리가 악시냐와 다시 만난 사실을 고자질하여 나탈리야를 낙심하게 만든다. 나탈리야는 악시냐를 찾아가 그 사실을 확인하고는 아이를 지운 뒤 과다 출혈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리고리는 자신의 책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괴로워했다.
군에서는 모자라는 병력들을 보충하기 위해서 새파란 청년들과 쉰을 넘긴 노인들을 대량으로 동원해 갔다. 그러나 적의 우세한 병력에 압도되어 점차 남방으로 후퇴해 갔다. 다리야는 물에 빠져 자살해 페트로와 나란히 묻혔다. 그리고리는 티푸스에 걸려 집으로 돌아와 한 달이나 걸려 겨우 운신할 수 있었다. 타타르스키 남자들은 모두 12월 12일을 기해 마을을 떠나기로 결의했다. 그리고리와 함께 가던 악시냐가 티푸스에 걸리자 그녀를 민가에 맡기고 떠난다. 그리고리의 아버지도 티푸스에 걸려 돌아가셨다.
부두에서는 철수가 한창이고 마지막 수송선이 떠나갔다. 악시냐는 다시 회복되어 보센스카야로 향했다. 스테판은 크리미아로 갔다고 했다. 카자흐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미시카는 두냐시카와 그녀의 어머니 일리니치나의 일을 도운다. 두냐시카와 미시카의 혼인날이 잡혔다. 코셰보이는 이제 떳떳하게 멜레호프의 집에 들어갔다. 일리니치나가 숨을 거두고 그리고리의 아이들은 악시냐가 데리고 갔다. 코셰보이는 마을 혁명위원회 의장이 되었고 타타르스크 마을의 생활은 하루하루 고달프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리는 적위군 지휘관의 예우를 받으며 고향으
로 돌아왔다. 그러나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도주한다.
1920년 늦가을, 식량징발령이 내리자 카자흐 주민 사이에 동요가 일기 시작한다. 그들은 곡물 마차를 탈취하고, 공산당원이나 소비에트 정권에 충성하는 카자흐들을 살해했다. 그리고리는 포민의 반란군에 합류했다. 기회를 보아 악시냐를 데리고 남쪽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들은 쫓기고 그리고리는 대열에서 이탈하여 타타르스키 마을 근처에 다다랐다. 악시냐와 함께 마을을 떠났으나 적위군의 총격을 받고 악시냐는 그리고리의 팔에 안겨 죽어갔다. 그는 총을 버리고 집으로 가다가 놀고있는 아들을 끌어안고 집 문 앞에 우뚝 섰다. 잠 못 이루던 밤마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작은 소망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혁명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잔인성이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한 마을에서 자란 친구, 이웃들이 적이 되어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서로 죽이고, 죽는 장면은 처연하고 소름이 끼친다. 돈 강의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아주 섬세하게 기술하고 있으면서도 지루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며 전투 장면은 너무 사실적이고 참혹하게 묘사되어 끔찍하기까지 하다. 비교의 대상이 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느낌은 비슷한 소재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보다 더 평가 받아야 할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