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보이지 않는 - 2024 뉴베리 대상 수상작 오늘의 클래식
데이브 에거스 지음, 숀 해리스 그림, 송섬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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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많음 주의)

다니엘 페나크의 『까보 까보슈』나 강정연 작가님의 『건방진 도도군』을 떠올리게 하는, 개가 화자이며 인간에게 종속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비슷한 이야기라고 느껴지기에는 상당한 독특함을 갖고 있었다. 주인공 개의 주체성 면에서는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공간적 배경도 매우 특색있었다.

요하네스라는 이름의 개가 화자이다. 이 개는 주인이 없으나 유기견이라 할 수는 없다. 사람들에게 호의는 있지만 독자적인 삶을 즐긴다. 사는 곳은 바닷가에 위치한 매우 넓은 자연공원 같은 곳이다. 자신의 은신처도 있는가 하면, 놀이나 휴식을 위해 공원에 나온 인간들의 모습도 지켜볼 수 있고, 다양한 종의 동물 친구들도 있는 곳이다. 그의 출생 배경이 살짝 나오는데, 엄마가 반려견이었다고 한다. (아빠가 누구였는지는 후반부에 반전으로 나옴) 엄마는 무슨 이유에선지 이 공원의 숲속을 출산 장소로 택했고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그중의 한 마리를 데리고 주인집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중 세 마리는 인간들이 데려갔다. 요하네스만 끝까지 남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개의 자부심은 인간에게 종속되지 않았다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의무감과 사명감을 갖고 있다. 그의 역할은 바로 이 책의 제목에 나온다. ‘The Eyes’(눈)이다. 이 임무는 이 공원에 사는 매우 늙은 세 마리의 들소가 의뢰한 것이다. 개는 이 들소들을 매우 존중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자연의 모든 공간이 모두 그렇듯, 이 공원에도 균형이 존재하며, 들소들은 이를 지켜보고 지키는 존재다. 들소들은 균형의 수호자다. 균형이 깨지면 문제가 생긴다.
..... 우리의 체계는 썩 괜찮다. 내가 무언가를 보고 들소들에게 알리면, 그들이 해결 방법을 궁리한다.”
이렇게 이 개는 자신의 빠른 발과 관찰력으로, 이 생태계의 ‘눈’이 되는 역할을 기꺼이 맡아 수행하며 살고 있다. 그의 다소 높은 자존감은 귀엽기도 하고, 하지만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인간 못지않다. 아니 나보다 훨씬 낫다.

그의 빠른 발과 예민한 감각은 그의 자부심이었는데, 얘도 예외적으로 허당일 때가 있다. 그건 바로 그림을 볼 때다. ‘사각형’ 안에 인간들이 표현해 놓은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개라니. 결국 또 넋을 놓은 순간, 못된 인간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하지만 그 때가 바로 이 책의 재미 요소중 하나인 친구들의 활약이 펼쳐지는 때였다. 갈매기(버트런드), 펠리컨(욜란다), 다람쥐(소냐), 너구리(앵거스) 등.... 겨우 그들의 마수에서 벗어났지만, 개는 다른 일로 인간들의 눈에 제대로 띄게 된다. 바로 연못에 빠진 어린아이를 구해 준 일이다. 위험이 예측되는 일이었지만 생명 앞에서 다른 선택은 없었다. 결국 개는 친구들이 주워 온, 그토록 혐오하던 반려견옷을 입고 일종의 변장(?)을 하고 다니게 된다.

그사이 공원도 많은 변화가 있다. 당연히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에게는 좋지 않은 쪽으로.... 그리고 인간들이 데려온 새로운 종과의 만남도 있었다. 바로 염소였다. 염소들은 요하네스와 친구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풀들을 맹렬히 뜯어먹는다. 그중에 왕따인 염소 헬렌. 개에게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하나 더 생겼다. 그런데 염소들과의 만남에서 알게 된, 개에게는 인생을 뒤흔드는 새로운 사실. “우린 메인-랜드에서 왔어.” 개와 친구들의 세상이던 이곳이 사실은 아주 작은 섬이라는 것. 바다 건너에 아주 큰 세상인 육지(메인-랜드)가 있다는 것이다.

개는 들소들을 울타리에서 풀어주려는 계획을 수정하여, 아예 섬 밖으로 내보내주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게 가당키나 한 계획인가? 더구나 염소들을 태우고 갈 배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 이때 그동안 책에 등장했던 거의 모든 친구들이 일사불란하게 역할을 수행하며 목표를 향해 간다. 과연, 그들이 도모하던 일은 어떤 방향으로.....?

마지막 장까지는 쓰지 말아야겠다. 나는 들소들의 선택도 이해한다. 이 책은 어린이들에게, 또 모든 독자들에게 주체적인 삶을 아주 극적으로 보여준다. ‘주체적’ 이것은 요즘들어 아이들에게 거의 소멸되어버린 가치나 마찬가지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른 독자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들소들과 개를 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다. 주체적인 삶에 꼭 공간의 확장이 필수인 것은 아니라고. 공간도 광활하면 물론 좋지만 자기주도성, 자기선택성의 유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요즘 아이들의 주체적인 삶은 고사된 것이나 다름없다.

남겨진 들소들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 개나 그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생이 어차피 그런 것이다. 그러니 두려우려면 한없이 두렵고, 기대하려면 한없이 기대되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나는 주로 두려워하는 편이었다....;;; 이런 내가 요하네스의 거침없는 전진을 보니 느껴지는 게 많네... 어린이 독자들도 그랬으면 한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산다는 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사족1) 이 책도 영화, 특히 애니로 만들면 아주 괜찮겠다. 첫째로 각각의 동물 캐릭터들이 확실하고, 유머 캐릭터를 담당할 동물도 있다. 둘째로 장엄한 풍경을 구사하기에 적당하고, 그랬을 때 엄청 멋질 것 같다. 셋째로 유머코드와 교차하는 감동코드도 아주 묵직하게 배치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족2) 이 책을 읽고 코요테를 검색해봤다. 코요테와 개의 잡종을 코이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늑대와의 잡종은 울프독...) 흥미롭네.

사족3) 제목의 번역에 약간 의문이 있다. 영어를 못해서, 설명을 들어보고 싶다. 제목이 좋은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해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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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한글 깨치는 맨 처음 한글 동시
김영주 지음, 김선배 그림 / 휴먼어린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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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교장선생님의 페북에서 이 책 출간 소식을 보고 바로 구입해봤다. 올해 저학년을 맡다보니 한글 교육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어서. 32년 경력에 놀랍게도 1학년을 한 번도 안해봐서 한글교육에 몰두해 본 적이 없었다. 2학년은 몇 번 해봤지만 한글 기초교육은 1학년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별히 지도한 적은 없었다. 올해 오랜만에 2학년을 맡았는데... 옛날 2학년과는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특별히 힘든 케이스를 맡은 것도 있고, 요즘 2학년은 옛날 1학년이다 뭐 이런 말도 들린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고 한다면 과장이겠으나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일 것이다. 일단 아이들을 만나서 생활해봐야 느낌이 올 것 같다.

일단 이 책은 너무 맘에 들었다. 와~ 천재시다.ㅎㅎㅎ 웃음과 함께 책장을 넘겼다. 구성이 매우 짜임새 있는데 구성과 내용 모두가 좋다. 130쪽 정도의 얇은 책이지만 130쪽이 그냥 130쪽이 아닐 것이라 짐작한다. 그 갈피 갈피에 들어간 궁리와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이 책은 모두 4부로 되어 있다. 홀소리가 1부로 먼저 나오고, 닿소리는 2,3부로 나누어서 나온다. 4부는 복잡한 것들 총집합이라 할까? 된소리, 겹홀소리, 겹받침을 모아 놓았다. 각각의 소리에 펼친 화면 두 쪽을 할애하였고, 두 편의 시가 나온다. 왼쪽은 말놀이 동시, 오른쪽은 겪은 일 동시다. 이것도 무릎을 쳤다. 와 너무 적절해! 저학년 시 단원에는 말의 재미를 느끼기 위한 말놀이 동시의 비중이 고학년에 비해 높다. 그렇다고 경험시를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말놀이도 중요하고 문학 본연의 역할인 공감도 뺄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우 적절한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게 글자의 제한이 있다는 것 아니겠어? 글자를 살리면서도 내용이 너무 무의미하지 않게 시를 지어야 하는 것에 이 책 작업의 난이도가 있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금방 생각나는 것도 있었겠지만 마지막까지 고민해야 하는 글자도 있었을 것 같다.^^

닿소리에서 첫 장은 첫소리, 둘째 장은 끝소리(받침)로 구성한 것도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보통 첫소리는 연상을 잘 하지만 받침을 떠올리는 것은 조금 더 어렵다. 받침으로 자주 나오지 않는 ㅋ이나 ㅍ 같은 글자도 알뜰히 다 챙겨서 들어있다. 마지막 4장 겹받침들도 마찬가지다. 이 부분은 한글 기초 단계인 저학년 뿐 아니라 중학년도 활용할 여지가 있겠다.

이제 나의 문제는, 한글 기초교육은 받았으되 아직 완전하지는 않은 2학년 어린이들에게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이다. 너무 좋아서 꼭 활용은 하고 싶다. 일단 하루에 소리 하나씩 필사하면서 해당 글자에 색깔로 표시하고 그림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하단에는 그 글자가 들어가는 낱말을 스스로 생각해서 적어보고.... 칸 국어 공책은 칸이 모자라서 안되고, 종합장을 충분히 준비해놓긴 했는데 줄공책이 나으려나 고민이 되네. 느린 아이들은 딱 거기까지만 하고 빨리 한 아이들은 같은 글자를 넣어 다른 시를 써보는 활동도 좋을 것 같다.

국어 시수가 가장 많긴 하지만 여러 가지 활동을 충분히 하려면 늘 시간이 부족하다. 하지만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 시간이 국어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해보면서 잘 조정을 해나가야겠지. 힘들 것이 뻔한 일상이지만 이런 즐거운 궁리가 조금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좋은 책이 나와서 참 고맙고 기쁘다. 널리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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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3-0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가 ‘한글’을 찬찬히 짚으면서 배우는 길잡이는 여러모로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그런데 ‘ㄱㄴㄷㄹ’이나 ‘ㅏㅓㅗㅜ’만이 아니라, ‘우리글씨에 담는 우리말씨’를 더 짚고 헤아리는 길을 열어야 할 텐데 싶습니다. 적잖은 길잡이(교사)나 어버이(부모)는 그저 ‘한글 배우기’에 마음을 많이 쓰는데, ‘한글로 담는 우리말 익히기’에 넓고 깊게 마음을 담을 때에 비로소 아이도 어른도 기쁘게 삶·살림·사랑을 맞아들일 만하다고 봅니다. ‘한글쓰기’에 너무 매이면 ‘말장난’에 그치기 쉽습니다. ‘우리말을 한글로 담기’를 살펴야 비로소 ‘말놀이·말노래’로 나아갈 텐데, 이 책은 퍽 아쉬워 보입니다.
 
야드라, 떠나보니 살겠드라 - 65살, 여자, 혼자, 세계 여행자 쨍쨍으로부터
쨍쨍 지음 / 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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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쨍의 두번째 여행 에세이가 나왔다. 첫번째가 나온 후 거의 10년만이다. 그사이 쨍쨍은 또 수많은 곳을 여행했을 테니 책은 몇권이라도 나오고도 남았겠다. 그러니 이 책은 수많은 여행기록 중 엄선한 이야기일 것이다. 어린아이가 할머니 무릎에서 이야기 한개만 더 들려달라고 조르는 느낌으로, '아~ 책이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책을 덮었다. 실리지 못하고 짤린 이야기들도 듣고 싶다는 느낌^^

나와 같은 직종(초등교사)이던 쨍쨍이 50세에 퇴직하고 본격적인 여행가가 되었을 때, 적당한 때에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근데 남의 세월은 왜이리 빨라. 벌써 15년이 지났고, 나는 퇴직 당시 쨍쨍의 나이를 넘어 아직도 현장에 있다. 작년부터 퇴직 시기를 훅 앞당겨 계획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올해 아이들이 마지막? 늘 그랬지만 올해는 더더욱 빡세게 봄방학을 보내고 있다. 매일 출근해 교실 이사하고 청소하고, 학기초 필요한 안내와 서식들을 준비하고, 교육과정 살펴보고 자료 만들고 등등으로 꽉채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이 책을 구입했다. 오늘은 오후에 병원진료도 있어 하루 쉴까 고민하던 참에, 잘됐다 하고 이 책을 들고 병원 근처 까페에 왔다. 그리고 새학기 준비와 전~~~혀 상관없는 이 책을 읽었다. 쨍쨍 페북에 한 교사 독자분의 소감을 공유하셨던데, 한마디로 "해로운 책"이었다.ㅋㅋㅋㅋ 느낌 알겠지? 지금 이런 책 읽고 앉았을 때가 아니라는 거야.ㅎㅎㅎ 하지만 궁금해서 읽었다. 저분도 물론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지만, 전혀 해롭지 않았다. 나의 마지막 해를 불태운 다음에 나도 자유로워지리라. 꿈을 예약하고 현실에 매진하는 건 그나마 현실의 고통에 마취약을 놔주는 효과가 있으니까....^^;;; 단 쨍쨍의 여행은 좋은 숙소에서 잘먹고 노는 럭셔리 여행이 아니라서 사실 내가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덥썩 저지르는 본인의 성격 탓도 한몫을 하지만서도....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고 본문에 다 있다. 사서 고생한 이야기들.^^

무계획이 특징인 쨍쨍의 여행기는 그래서 여행 가이드북으로는 적절치 않다. 어느 코스가 시간을 절약하며 어디서 뭘 하는게 가성비가 높고 편한지 그런 것들을 이 책을 보고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재밌다. 쨍쨍의 필력은 원래부터 좋았는데 더 좋아지신 느낌이다. 가독성이 매우 좋았다. 한자리에서 다 읽었다. 물론 아껴서 천천히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치고 우울할 때마다 꺼내 한꼭지씩 읽는 것도 좋겠다. 여행할 때 한권을 휴대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집중력을 요하지 않으면서도 느낄 것들은 많은 책이라 딱 맞춤일 것 같다.

인생이 여행인, 여행이 인생인 쨍쨍이므로 이 책은 어쩌면 쨍쨍의 인생 이야기라고도 하겠다. 만남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쨍쨍이므로 만남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만남은 사랑이기도 했고 우정이기도 했고 잠깐 스쳐지나가는 감정이었는가 하면, 신의이기도 했고 친절, 유쾌함, 여유 등등 온갖 삶의 태도이기도 했다. 보통 여행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보러' 가는 경우가 가장 많다. 먹으러 가는 경우도 있고. 다 합하면 경험하거나 느끼러 간다고 할까? 타지의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그들과 친구 맺기 위해 여행을 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쨍쨍 여행의 차별성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쨍쨍의 여행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쨍쨍만의 것이다.

쨍쨍은 sns도 활발히 하시는 것 같은데, 몇 종류를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페이스북에서 친구다. 언제부터인가 쇼츠도 올리시더라고. 그런거 잘 못하는 내 눈에는 퀄리티도 상당해. 그리고 배아픈 점은 갈수록 젊어지신다는 거. 저렇게 꼿꼿한 근육질의 몸매에 매끈한 피부가 60대 중반이신거 실화? 아직 난 60대도 아닌데 같이 있으면 내가 연장자로 보이겠...;;; 이것 또한 그의 라이프 스타일과 관계있을 것 같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인생을 즐기며 도전하는 태도. 자주 걷고 수영이나 요가를 꾸준히 하시는 것도 관계가 있겠다. 하여간에 이렇게 젊게 인생을 즐기며 그 장면들을 공유하시는 영상에 부러움과 찬사의 댓글이 주로 달리지만 '주책이다' 등의 댓글도 달리는 것 같더라고. 하긴 당연한 거다. 세상엔 별별 꼰대가 다 많으니까. 그 옛날 쨍쨍이 현직에 있을 때 그의 공개수업에 "청와대에 보내야 합니다" 라는 후기를 쓴 쌤도 있고 "수업이 개판" 이라고 쓴 쌤도 있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ㅎㅎ 의외로 여린 쨍쨍은 가끔 상처도 받는 것 같지만 꿋꿋하게 자신만의 인생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멋진 책도 펴냈다.

쨍쨍의 쇼츠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야드라~"로 시작한다는 점인데, 나는 서울말이 섞이지 않은 그의 순수 사투리가 참 듣기 좋다. 그게 책의 제목이 된 것에도 찬성이다.
"야드라~ 떠나보니 살겠드라."
쨍쨍같은 사람이 있듯이, 나처럼 굳이 타지에 모르는 사람을 만나러는 가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목적이든 떠나는 볼 생각이다. 그게 비행기를 타고 가는 곳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안가본 곳은 태어난 한국, 심지어 서울 내에서도 천지 삐까리니까. (쨍쨍 사투리 흉내내 봄) 나는 다시 내일부터 출근해서 일한다. 유예된(예약된) 즐거움은 일에 활력을 줄 수 있으리. 그런 면에서 당장 떠날 수 있는 자, 당장은 어려운 자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한다. 영 어려운 사람도 괜찮다. 이 책을 읽은 것도 일종의 떠남이 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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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너머 신기한 마을
가시와바 사치코 지음, 모차 그림, 고향옥 옮김 / 한빛에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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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에 출간되었다는 이 작품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년 전쯤 번역되었다가 절판되었는데, 이번에 이렇게 새롭게 옷을 입고 복간된 것이라고 한다. 많은 동화들이 20년 이상 지나고 보면 주제든 소재든 뭔가 더 이상 가치롭지 않은 부분이 느껴져서 아쉬워지곤 한다. 그 세월에도 변함없이 살아남는다면 명작에 가까운 작품이라 하겠다. 읽어보니 이 작품이 그렇다. 세월의 퇴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새로운 느낌의 이야기였다. 이 작가는 최근 귀명사 골목의 여름이라는 책도 냈다는데, 그 책도 궁금해졌다. 50년을 한결같이 신비한 느낌을 구현해 낼 수 있는 작가라면 믿고 읽어볼 만할 테지.

 

이 책을 거론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얘기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프가 된 작품이라는 것인데, 그 영화를 상당히 인상깊게 봤음에도 기억에서 거의 사라졌다.....^^;;; 시간 여유 있을 때 한번 다시 보면서 이 작품과 비교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첫 번째 공통점은 이 책의 제목인 안개가 아닐까.

 

새로운 세상으로 건너가는 것과 돌아오는 것. 거의 모든 작가들이 설정해보는 상상의 구조가 아닐까. 작가 뿐 아니라 상상을 즐기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그리는 세상에 상상 속에서 다녀왔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런 작품을 읽을 때 뭔가 아련하다. 어디엔가 진짜 있을 것 같고, 어딘가 통로만 찾는다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세상이 여러 겹으로 되어 있다는 상상은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들을 낳았고 그리운 느낌으로 우리 곁에 머무른다.

 

6학년 리나의 아빠는 리나에게 여름방학을 보내고 오라면서 안개 골짜기 마을을 설명하고 먼 길을 보낸다. 아빠가 말한 역에 도착했지만 리나는 그 마을을 찾을 수 없어 울상이 된다. 하지만 아빠에게 물려받은 우산을 따라가다보니, 안개를 통과해 어떤 마을에 오게 되었다. 아주 작고 예쁜 마을이었다. 상상 속에서 가보기에 딱 알맞은 마을이다. 작지만 마법이 가득해 지루하지 않은 마을.

 

가장 먼저 도착한 집에는 퉁명스러운 할머니가 있었고, 거기가 리나가 묵을 하숙집이었다. 할머니는 리나에게 일을 해서 하숙비를 벌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리나는 마을의 여러 집을 순례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들은 자기 마을을 뒤죽박죽 거리라고 부른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 겪는 일들이 이 책의 내용이라 하겠다. 무서운 음모에 휘말리거나 엄청난 모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결국 남는 느낌은 진실됨과 따뜻함? 그리고 이 세상으로 다시 건너왔을 때 리나는 훌쩍 성장해 있었다. 모든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작은 마을의 몇 안되는 집에는 각각의 개성있는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나타, 배와 관련된 물품을 취급하는 토마스, 그 집에서 사는 욕쟁이 앵무새 바카메, 도자기 가게의 시카, 도자기로 변신당해 있던 왕자와 그의 어머니, 장난감 가게의 먼데이와 가면을 벗지 않는 그의 아들 선데이 등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하숙집에서 일하는 잇 씨와 요리사 존도 중요한 인물이다여기 사람들은 자신을 마법사의 후손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인간세계와 많은 면에서 다르지만 희로애락의 감정 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어보인다. 그래서 리나가 짧은 기간 그렇게 찐한 경험을 하고 돌아올 수 있었겠지. 돌아오는 길, 선물 보따리에 담긴 한 명 한 명의 선물이 감동이다. 가장 큰 감동은 욕쟁이 앵무새 바카메의 선물. 어디서나 마음을 나눈 곳에 감동이 있다. 나는 그걸 점점 줄여가며 살고 있고.

 

리나의 다음 방문이 가능하다는 암시를 남기며 작품은 끝나는데.... 50년이 지나도록 이 책의 2권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독자들의 상상 속에서는 가능하겠지....

이 마을은 여러 곳과 이어져 있거든. 거리와 상관없이 말이야.”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한 걸음만 내디디면 뒤죽박죽 거리에 올 수 있다는 말이야.”

이런 상상이 어린 시절에 주었던 그 환상적이고 신비한 느낌은 얼마나 무한했던가. 그리고 나이 든 지금 느끼는 것은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그 모든 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눈물겹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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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회화나무
오월실천교사 지음 / 푸른칠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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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도모하는' 교사의 영향력은 강하다. 특히 '함께 도모하는' 경우, 그 힘은 더욱 강하고 널리널리 퍼진다. 나는 이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 부러움의 눈빛도 약간 담아서.... 교직의 막바지에 이른 지금 '나도 그런 모임 속에서 열심히 해봤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성향대로 사는 것이니 돌이켜도 어쩔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교직의 문화는 이 '함께 도모하는' 교사들이 굴린 큰 바퀴가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바로 이런 멋진 책을 펴낸 이분들처럼 말이다.

이 쌤들 중 한 분이 페친이어서 광주실천교사의 활동을 자주 접하게 되었는데, 그 창의성과 스케일에 항상 놀라곤 했다. 어떤 자리에서 우연히 같은 모둠에 앉게 되어 잠시의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는데, 이분의 아이디어는 좀 천재 같았고, 추진력도 대단했다. 페북으로 간접적으로 보는 것도 대단했지만 이렇게 실물을 손에 쥐고 보게되니 진짜 실감이 난다. 그동안에 추진했던 프로젝트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고, 아니, 그림까지도 의뢰하지 않고 직접 그리시다니! 선생님들의 능력이 놀랍다. 표지부터 너무 멋지다.

본문의 그림은 흑백으로 되어있고 5.18의 역사가 간결하게 담겼다. 감정을 담지 않은 사실의 기록인데도 아픔과 슬픔이 배어나온다. 화자는 제목의 '회화나무'로, 전남도청 앞에 있던 나무다. 이 나무가 지켜본 일들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10여년 전, 나도 기억하는 그 해의 큰 태풍에 뿌리째 뽑혀 넘어진 후, 다시 심었지만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극적인 일이 있었다. 그나무 아래 싹이 튼 어린나무를 가져다 키우던 한 시민이 어린나무를 기증한 것이다. 두 나무는 지금 나란히 서서 공원의 일부가 되어 있다고 한다.
"아기 회화나무는 앞으로 어떤 기억들을 씨앗에 담을까요?" (32쪽)
이 마지막 문장에서 희망이 느껴진다. 저자들은 5.18을 비극으로만 그려내지 않았다. 더구나 어린이들과 함께 이야기할 5.18은 더욱 그렇다. 과거의 아픔을 딛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갈 희망을 얘기하려 하는 것이다. 역사를 퇴행시킨 작금의 사태들이 우리를 슬프고 화나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 회화나무가 상징하는 희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어서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읽을 때 유용할 듯한 활동자료가 첨부되어 있고, 그 유명한 방탈출을 비롯, 뮤지컬과 노래도 큐알코드로 연결되어 있다. 뮤지컬 큐알코드를 찍어서 감상해 보았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노래도 너무 잘하고, 함께 만드는 과정 자체가 아름다워서 감동이다. '어린이시 노래가 되다' 라는 프로젝트를 페북에서 보았는데, 그 열매가 역시 멋지구나. 이렇게 진취적인 선생님들의 의욕이 꺾이지 않는 현장이길 바라는 마음이 솟아난다.

학생들과 함께 한 프로젝트의 최종 산물이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책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멋진가! 그 산물을 귀하게 보고 출판해 주신 편집자의 밝은 눈에도 감사한다. 교육도서에 특화된 푸른칠판에서 그림책은 첫 출판인거 같은데, 계속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은 널리 읽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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