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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너머 신기한 마을
가시와바 사치코 지음, 모차 그림, 고향옥 옮김 / 한빛에듀 / 2025년 2월
평점 :
50년 전에 출간되었다는 이 작품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년 전쯤 번역되었다가 절판되었는데, 이번에 이렇게 새롭게 옷을 입고 복간된 것이라고 한다. 많은 동화들이 20년 이상 지나고 보면 주제든 소재든 뭔가 더 이상 가치롭지 않은 부분이 느껴져서 아쉬워지곤 한다. 그 세월에도 변함없이 살아남는다면 명작에 가까운 작품이라 하겠다. 읽어보니 이 작품이 그렇다. 세월의 퇴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새로운 느낌의 이야기였다. 이 작가는 최근 『귀명사 골목의 여름』이라는 책도 냈다는데, 그 책도 궁금해졌다. 50년을 한결같이 신비한 느낌을 구현해 낼 수 있는 작가라면 믿고 읽어볼 만할 테지.
이 책을 거론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얘기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프가 된 작품이라는 것인데, 그 영화를 상당히 인상깊게 봤음에도 기억에서 거의 사라졌다.....^^;;; 시간 여유 있을 때 한번 다시 보면서 이 작품과 비교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첫 번째 공통점은 이 책의 제목인 ‘안개’가 아닐까.
새로운 세상으로 건너가는 것과 돌아오는 것. 거의 모든 작가들이 설정해보는 상상의 구조가 아닐까. 작가 뿐 아니라 상상을 즐기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그리는 세상에 상상 속에서 다녀왔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런 작품을 읽을 때 뭔가 아련하다. 어디엔가 진짜 있을 것 같고, 어딘가 통로만 찾는다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세상이 여러 겹으로 되어 있다는 상상은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들을 낳았고 그리운 느낌으로 우리 곁에 머무른다.
6학년 리나의 아빠는 리나에게 여름방학을 보내고 오라면서 ‘안개 골짜기 마을’을 설명하고 먼 길을 보낸다. 아빠가 말한 역에 도착했지만 리나는 그 마을을 찾을 수 없어 울상이 된다. 하지만 아빠에게 물려받은 우산을 따라가다보니, 안개를 통과해 어떤 마을에 오게 되었다. 아주 작고 예쁜 마을이었다. 상상 속에서 가보기에 딱 알맞은 마을이다. 작지만 마법이 가득해 지루하지 않은 마을.
가장 먼저 도착한 집에는 퉁명스러운 할머니가 있었고, 거기가 리나가 묵을 하숙집이었다. 할머니는 리나에게 일을 해서 하숙비를 벌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리나는 마을의 여러 집을 순례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들은 자기 마을을 ‘뒤죽박죽 거리’라고 부른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 겪는 일들이 이 책의 내용이라 하겠다. 무서운 음모에 휘말리거나 엄청난 모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결국 남는 느낌은 진실됨과 따뜻함? 그리고 이 세상으로 다시 건너왔을 때 리나는 훌쩍 성장해 있었다. 모든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작은 마을의 몇 안되는 집에는 각각의 개성있는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나타, 배와 관련된 물품을 취급하는 토마스, 그 집에서 사는 욕쟁이 앵무새 바카메, 도자기 가게의 시카, 도자기로 변신당해 있던 왕자와 그의 어머니, 장난감 가게의 먼데이와 가면을 벗지 않는 그의 아들 선데이 등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하숙집에서 일하는 잇 씨와 요리사 존도 중요한 인물이다. 여기 사람들은 자신을 ‘마법사의 후손’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인간세계와 많은 면에서 다르지만 희로애락의 감정 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어보인다. 그래서 리나가 짧은 기간 그렇게 찐한 경험을 하고 돌아올 수 있었겠지. 돌아오는 길, 선물 보따리에 담긴 한 명 한 명의 선물이 감동이다. 가장 큰 감동은 욕쟁이 앵무새 바카메의 선물. 어디서나 마음을 나눈 곳에 감동이 있다. 나는 그걸 점점 줄여가며 살고 있고.ㅠ
리나의 다음 방문이 가능하다는 암시를 남기며 작품은 끝나는데.... 50년이 지나도록 이 책의 2권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독자들의 상상 속에서는 가능하겠지....
“이 마을은 여러 곳과 이어져 있거든. 거리와 상관없이 말이야.”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한 걸음만 내디디면 뒤죽박죽 거리에 올 수 있다는 말이야.”
이런 상상이 어린 시절에 주었던 그 환상적이고 신비한 느낌은 얼마나 무한했던가. 그리고 나이 든 지금 느끼는 것은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그 모든 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눈물겹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