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아빠의 몰락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황해선 옮김 / 창비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부자들을 위한 세금 완화'는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뿐이다!  



  대학시절 학교앞에서 동기 두 사람과 자취를 할 때, 주말이면 '영양보충'을 한답시고 삼겹살을 끊거나 삼계탕을 끓여서 먹곤 했다. 사내녀석 세 놈이 무슨 청승이냐 하겠다만 저 멀리 거제도에서 서울로 대학생활을 하는 동기 한 명에게는 '외식'은 학생식당에서 식권으로 사먹는 밥이면 충분하다는 철칙 탓이었다. 상추 깻잎 씻고, 통마늘을 가로로 썰어서 만찬을 준비하면 마지막에 꺼내놓는 것은 두꺼비 그림이 그려진 소주 한 병과 포도주였다. 와인? 아니다. 말 그대로 포도주. 두꺼비 그림이 그려진 마트에서 파는 '두꺼비표 포도주'다. 검붉은 색과 덜덜한 맛을 가진 이 포도주는 1,500원 안팎이었으니 소주 두 병과 섞어서 마시면 그럴싸한 와인소주가 되어 호사를 할 수 있었다(양도 700밀리리터다). 

  대학을 졸업한 후 녀석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장거리 고속버스를 타고, 배타고 들어가 결혼식을 참석하러 갔을 때는 5리터 들이 종이상자에 담긴 '진짜 와인'을 꺼냈다. 외국인들이 평범한 식사를 할 때 마시는 일종의 하우스 와인이라면서 '학생딱지'를 뗐으니 업그레이드된 셈이라며 나이를 먹을수록 와인의 급도 높아져서 나중에 호호 할아버지가 되서는 진짜 좋은 와인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녀석의 노후는 와인의 질로 가늠하겠다는 말 같아서 와인을 무척 좋아하는 가보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 읽은 책에서 찾아낸 문장에서 친구의 말은 '와인 애호가'가 한 말이 아니라 '부자되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 아닐까 생각 되었다.  

  "지금부터 25년 전 코넬 대학의 동료였던 딕 탈러가 나를 와인시음클래스에 초청한 적이 있다. 이 초청은 거절하면서, 나는 한 병에 6달러짜리 와인에 충분히 만족하는데 굳이 그것이 그리 좋은 제품이 아니라는 이유를 알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딕은 재능있는 응용심리학자이지만, 내가 참석을 거부하는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지금 되돌아봐도 내가 미각 훈련을 게을리한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쉰줄에 들어서서 스탠포드대학의 고등행동과학연구센터에서 안식년을 보낼 때, 더 이상 예산에 제약을 받지 않게 되었으니 이제 와인에 대해 더 공부할 때가 되었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여러분이 30대 초반에 처녀수확한 포도로 만든 (값비싼) 보르도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그리 좋은 계획으로 보이지 않는다. 벌써 그렇게 앞서 간다면 나중에는 어떤 와인을 마실 수 있겠는가?" (121 쪽)

  <이코노믹 씽킹>, <승자독식사회>등의 저서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고, 지난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을 비롯해 벤 버냉키, 맨큐 등과 함께 명성높은 쉬운 경제학 교재의 저자로 잘 알려진 로버트 프랭크의 새로운 책 <부자아빠의 몰락>에 실린 글이다. 이 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현재 영유하는 것들이 미래에 영유할 것들의 '참조틀'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예로 설명했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인간이기에 '인지상정'으로 느끼는 질투심이 아니라 '정황'과 '가치평가'가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제목은 Falling Behind, 낙오落伍를 뜻하는 제목이겠다.   


  이 책은 1970년대 이후에 심화된 '빈부의 불평등 심화'즉 부의 양극화(편재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자가 필립 쿡과 공저로 썼던 전작 <승자독식사회>에서 세계 최고의 오페라 가수가 100곳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었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CD와 DVD로 전세계 어느 곳이든 원하면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수백만 달러의 수입을 얻는 반면 엇비슷한 재능을 가진 두 번째 세 번째 가수들은 그저 버티기에도 곤란을 겪게 되는데, 이같은 승자독식Winner- takes - it - all 급여구조는 수많은 다른 노동시장의 최상위 수준에도 널리 퍼져 있고, 이들이 소득분배의 상위 5%에서 막대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데 1970년대 이전에 비해 오늘날 불평등 심화를 낳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부의 정도가 높아진 이들 상위 5%들은 '문명의 이기' 덕에 쏟아지는 넓고 좋은 집, 최신형 자동차, 수많은 신제품과 고가의 물건등을 거리낌없이 사며 생활하는데, 상대적으로 적은 부를 가지고 있는 중산층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동시에 '욕망'을 느끼게 되어 과도한 지출을 하게 된다. 품질 자체를 소유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친구나 이웃보다 앞서고 싶은 혹은 뒤처지고 싶지 않은 욕망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것은 마치 '트렌드나 유행'처럼 빈곤층에 까지 번지게 되어 심각한 경제 문제를 낳는 요인이 되는데, 결국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정당하지만 유독 많은 부를 가진 사람들'의 소비활동이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키는 주요인이 되는 셈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승자 독식사회에서 중산층의 과도한 소비에 대해 런던 정경대 리처드 레이어드 교수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가난한 국가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장미 한송이를 선물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할 수 있지만, 부유한 국가에서는 12송이를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상위 5%의 부자들을 제외한 중산층와 그 하류층의 소비는 무조건 그들을 추종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광고업자에게 속는 얼간이도 아니고, 유혹에 쉽게 빠지는 사람도 아니며 의지박약한 존재도 아니다. 그리고 사회비평가들이 말하듯 비합리적인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의사결정은 군비경쟁에서 벌어지는 것과 같은 종류이다. 어떤 나라도 어리석기 때문에 폭탄을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국가가 폭탄을 보유할 대 자기네만 없으면 불리하기에 폭탄을 사들이는 것이다." 부자를 좇는 과소비는 정황과 가치평가에 근거한 '상대적 박탈감'의 발로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승자 독식의 미래를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누진소비세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누진소비세는 좋은 물건을 사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망을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모든 사림이 소비를 줄이도록 동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치품이나 귀금속에 부과하는 특별소비세보다 더욱 무거운 세금인데 소득에서 저축액을 뺀 나머지를 소비한 것으로 보고 세금을 물리자는 의견이었다. 그리고 부시의 법인세, 배당금, 자본소득세등의 인하등 부자들의 감세정책에 대해 맹비난했다.  

  <부자아빠의 몰락>은 오늘날의 부의 불평등 심화 문제를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특유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점이 특이했다. 이러한 불평등은 중산층에까지 무척이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오늘날 미국을 위기로 몰고 있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내집마련의 꿈에 빠져버린 중산층의 몰락을 잘 말해주는 것 같았다. 또한 이 책은 부시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잘 말해주는 듯 했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상속세, 법인세, 특소세 인하, 양도세 완화등 '경기 부양책'이라는 이유로 정책을 추진중이다. 이 책의 말대로라면 부자에게 혜택을 주면 줄수록 경기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부자이외의 국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안겨주지 않을까 우려가 되었다. 저자는 공공정책을 통해 '경쟁의 낭비적 요소와 불평등을 동시에 줄여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목소리가 국회의사당의 여당 의원들과 청와대에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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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의 사장학 - 대한민국 사장들을 위한 생존전략
공병호 지음 / 해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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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만만치 않은 사장의 길을 알려주는 대한민국 [사장학 원론] 


  "난 나중에 사장이 되고 싶어요." 대학을 다니다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중퇴를 하고 '여행사'에 계약직으로 입사한 22살 동생의 포부였다. 어떤 사장이 되고 싶냐고 묻자, 그냥 사장이 되고 싶단다. 그것도 '뽀대'나는 사장. 넓고 멋들어진 사장실에 외제 고급승용차를 타고 접대를 한답시고 골프를 치면서 '사장입네'하는 제 여행사의 사장이 마냥 부러웠던 모양이다. 동생의 눈에 비친 '뽀대나는 사장'이란 그런 모습이었다. 이제 서른이 된 동생의 꿈은 '스페셜리스트'다. 당장의 벌이는 둘째치고 여생을 후회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덤벼들고 있다. 사장이 되고 싶은 꿈은 어디갔냐고 물었더니 "그 어려운 일을 아무나 하는 줄 아느냐?"고 오히려 묻고 있었다. 사장 해먹기 어려운 줄 아는 동생은 이제야 사장될 첫 발을 띤 것 같았다.

  직장생활을 하는 모든 직장인의 로망은 '내 회사의 대표이사'면서 나만의 구멍가게 '사장'이다. 그렇다고 보면 이 땅에 살고 있는 비즈니스맨이라면 누구나 '사장님'소릴 듣고 싶어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대한민국에서 사장을 하기는 정말 쉬우면서도 어렵다. 사업자등록증만 내면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사장이요, 사업을 잘 일으켜서 제대로 '사장'소리를 듣고 살기는 어려운 것이 또 이 땅이다. 신문사 기자 생활을 하다가 창업을 해 사장의 길을 걷고 있는 서광원 사장이 <(사장이 차마 말하지 못한) 사장으로 산다는 것>이란 책을 쓴 적이 있다.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사장으로 살아가는 괴로움'을 저자가 직접 경험하면서 잘 표현해 한 때 화제가 되었던 책이었다. 말로만 사장이 되었다고 사장이 아니다. 사장의 꿈이 '속 편한 신입사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믿어지겠는가? 

  "직원들은 회사의 이익은 상관없이 다른 회사로 옮기면 되지만 오너에겐 다른 데로 갈 때가 없다. 회사가 곧 내 집이요 자식이기에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침 전에도 회사 생각, 식사할 때도 회사 생각, 가만히 있어도 회사 생각이 들어 마치 온 몸을 회사라는 것에 씌어 있는 지도 모른다. 항상 잘 되어야 한다는 마법의 주문에 걸려 한평생 살아가는 것이 사장의 인생인 것 같다." 서핑중에 발견한 어느 블로그의 글이다. 대한민국 사장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어느 의류업체 사장의 블로그(몬테밀라노 대표 오서희)의 글인데, 그는 사장의 인생을 일러 '항상 잘 되어야 한다는 마법의 주문에 걸려 한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장이라는 이름을 콕 집어 잘 표현했는데, 덧붙여 '하루 24시간을 한평생 동안' 이라고 하면 더욱 가까운 답일 듯 싶다. 

  <공병호의 사장학>은 고독하고 힘겨운 '사장'의 길에 도움을 주고자 만들어진 책이다. 저자는 소기업 사장들이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 사장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려주고 싶어서', 대기업의 사장, CEO를 위한 것이 아니라 10인 이하의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을 위해 이 글을 썼다고 했다. '자영업자 위기의 시대'라고 일컫는 요즘에 맞춰 시의성있게 나와준 책, 그래서 반가웠다.

 



 
  이 책은 크게 '대한민국 사장이 꼭 갖추어야 할 생존전략'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현장 사장학'으로 나누었다. '대한민국 사장이 꼭 갖추어야 할 생존전략'은 진정성, 전문성, 판단력, 실행력, 생존과 성장력, 선견력, 유연성, 신념, 몰입, 수양, 학습력, 지구력, 동력, 통찰력 등으로 세분하였는데 '사장으로서의 자질론과 인성'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대기업의 오너조차 모두 갖추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듯 하고 다소 원론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이 상당하지만 '아이템과 자본'만 있으면 누구나 사장질(?)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여기는 사장아닌 사람들에게는 한 번은 짚고 넘어야 할 내용들이 수록되었다. 오히려 10인이하의 소규모 사장(창업자, 오너)이기에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사항들이었다.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사장이라면, 사장이 될거라면 어느 부분이 부족한 지를 점검할 수 있는 부분이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후반부인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현장 사장학'이었다. 이 부분은 '실전편'이라 볼 수 있는데 기업의 수장으로서 상품, 세일즈, 조직 운영, 재무, 인재 관리등 사업에 필요한 기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불경기 요즘과 같은 전반적인 불황의 조짐이 있는 때에 창업자나 사장들은 경쟁업체의 흥망을 지켜보며 '나만 불경기가 아니구나'하며 위안삼기 쉬운데, '스스로를 먼저 돌봄으로써 위기를 돌파할 줄 아는 자 만이 진정한 리더'라며 전체적으로 자신의 기업을 돌볼 수 있는 안목을 제시하고 있었다. 현재 독자가 사장이라면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자신의 기업과 점포에 필요한 부분은 무엇이고, 리더로서 당장 추진해야 할 덕목들은 무엇인지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저자의 경영담'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1인경영이지만 스스로 기업을 운영하면서 경험했던 부분들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했더라면, 아니라면 부인이 운영하시는 음식점에 대한 생생한 운영담이 포함되었더라면 독자들이 더욱 체감하듯 '사장학'을 익힐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것은 내가 독자로서 저자 공병호의 <사장학>을 대하면서 가졌던 기대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책에 제시된 사례들 또한 대기업이나 세계적인 CEO들의 것들이 많았는데, 우리나라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소기업의 사장이나 창업자들의 사례들이 수록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국내 저자에 의해 '사장학'을 처음으로(내가 알기론) 언급된 책이라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구멍가게지만 7년 째 자기사업을 하고 있는 내가 사업을 시작하는 동료나 후배들을 만나면 선물하곤 했던 책은 일본인 기업가 이하라 류우이치의 <사장의 제왕학>이었는데, 이 책을 선물하면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우리나라 저자가 쓴 사장학'은 없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작은 바람이 해결된 것 같다(이하라 류우이치의 <사장의 제왕학>은 현재 절판되었는데, 곧 재발간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출간된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무나 하기 힘든 것도 사장이지만, 또 아무나 해서도 안되는 것이 사장이기도 하다. 사장이라면, 사장이 되고 싶다면 일독해봐야 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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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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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치이, 디지털 문자 세대가 겪는 '소통의 연애'을 말하다


당신은 분명 말을 못하지만

나는 항상 생각했어요.  

우리들은 많은 말들을 하지만  


말하면 말할수록 정말 진심에서 멀어져 가는 건 아닐까 하고...


  배우지망생하는 여주인공 히로코와 청각을 잃은 화가 코지의 가슴아픈 사랑이야기를 그린 일본 드라마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줘>에 나오는 대사다. 사람 사이의 간격을 좁혀주는 친밀감은 대화를 통해 얻는다. 더우기 연인관계에 있어서 대화는 관계를 맺고 이어주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의사전달수단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 만도 아니다. 무뚝뚝한 사내로 잘 알려진 경상도 사나이도 애인이 있으며, 가정을 꾸민다. 오리마냥 한 시도 입을 그만 두지 못하고 주절대는 사내보다 할 말만 짧게 내뱉는 과묵한 사내를 좋아하는 여자들도 있으니까. 대화를 많이 하고 적게 하고를 떠나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있는 만으로 연인 관계가 성립되는 건지도 모른다. 

  만약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만난다면 그들의 사랑은 어떨까? 그에 대해 고민했던 드라마가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줘>다. 원만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연인에게는 많은 벽이 존재함을 보여줬다. 사람은 말이 아닌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들은 하지만 정작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느끼는 안타까움과 좌절감은 좋아하는 감정 못지 않게 크게 다가온다는 것을 드라마내내 보여줬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온전함에 감사하고, 제 경우가 아닌 것에 안도하며 그들의 사랑을 애타게 볼만한 것도 아니었다. 불완전한 소통 속에서 서로의 '진실한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이해'와 '오해'가 엇갈리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소설 <사랑을 말해줘> 또한 위의 드라마와 비슷한 관계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다큐멘터리 제작가로 취재를 통해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것을 일로 하는 슌페와 소리를 잃어버린 쿄코의 아이러니한 만남은 공원에서 였다. 소리듣기가 직업인 남자의 무성無聲 연애는 <악인>과 <동경만경>으로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의 펜끝에서 펼쳐졌다. 원작은 静かな爆弾 -조용한 폭탄 이다. 
 
 

 




  슌페이와 쿄코의 공원에서의 만남 장면은 연애의 시작이 늘 그렇듯 어설프고 재미있다. 그래서 순수해 보인다. 부끄러움, 당황스러움, 그리고 묘한 흥분이 이 작품이 순애소설임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짧은 질문, 상상을 부르는 대답. 그리고 시적인 배경묘사는 요시다 슈이치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듯 하다. 희극배우가 생활에 돌아와서는 오히려 과묵하듯, 소리를 모으는 슌페이는 무의미한 일상의 대화에 '시끄러워' 외치며 귀를 닫고 싶어한다. 그런 그에게 조용히 나타난 '쿄코'는 그녀 앞에 나타났던 떠돌이 고양이처럼 '신의 다른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독실한 신자가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신에게 '살려주기'를 희망했다. 남자, 여자, 노인과 아이가 도와주려 했지만 '신'이 구해줄꺼라며 도움을 받지 않다가 결국 익사하고 말았다. 저승으로 올라간 '독실한 신자'는 당당하게 '신'을 찾아가 '나의 믿음이 이토록 깊은데 당신은 왜 나를 구해주지 않았는가?'하고 대들었다. 그러자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신은 되물으셨다. "너에게 도움을 주려고 남자, 여자, 노인과 아이의 모습으로 다가갔는데 네가 물리쳤지 않았느냐?"고. 

  여기서 신은 절대자가 아니라 '내가 필요한 무엇을 가진 자'이리라. 슌페이 앞에 나타난 쿄코는 외롭지만, 조용한 연인을 원했던 것인지 모른다. 쿄코가 떠돌이 고양이에게 햄을 주며 '신일지도 몰라. 신중하자, 신중해야 해'라고 생각한 건 내 옆에 있는 '반쪽이라는 존재'에게 신중하기를 권하는 소리로 들렸다. '내가 필요했던 그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두 사람의 유일한 대화수단은 '메모'다. 적어서 보여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대화법은 일상에서 전화할 수 없는 때에 나누는 우리의 '문자 메시지'를 닮았다. 글로써 표현함은 생각을 정리함을 전제로 하기에 말보다 시간을 잡아먹는다. 하지만 그 잠깐의 고요함이 '올바른 전달'로 이어짐을 우리는 안다. 조금은 오랜 시간을 머금은 문자는 진중한 듯 정겹고, 대화하듯 날아드는 문자는 가볍다. 떨어진 거리를 메우기 위한 '메모' 또한 시간의 거리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일까? 두 주인공의 대화는 시적이고 드라마틱하게 들렸다. 

  갑작스런 업무와 오해로 둘은 떨어지게 되고, 슌페이는 쿄코를 미치도록 찾게 된다. 존재감을 재확인하는 시간은 '부재의 시간'이요, 이 순간은 부족한 인간이 늘 말하는 '시행착오'일게다. 찾았던 시간 만큼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많을 테지만 그녀의 반가운 문자에 던지는 대답은 '보고싶어'다. 연애를 하면서 상대에게 느끼는 오만가지 감정과 감각의 표현을 모두 모아 고백하는건  결국 싱글일 적 흔하디 흔하고, 천박스럽기까지 하다며 눈흘기며 내뱉은 '사랑해'란 단어가 아니던가? 들리지 않는 핸디캡을 안은 연인의 사랑이나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연인의 사랑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내 이야기인듯 주인공이 곧 나인 듯 추적하게 만든다. 오늘도 수도 없이 찢어지고 이어지는 우리들의 어설픈 사랑에 대해 '찾아왔거든 '만나고 싶었던 신을 대한 신중하게 대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진중하게 고백하라'고 소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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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의 달인 - 성공하는 사람은 일하는 방법이 다르다
주잔네 라인커 지음, 최경인 옮김 / 청림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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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본적인, 그래서 더 중요한 신입사원의 <비즈니스 매너책>

 

  어느 유명한 저자이자 명강사이기도 한 분이 대기업의 신입사원 100여 명을 대상으로한 강연회에서 '당신은 어떻게 취직했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강연회의 시작인 탓도 있지만, 강의식 수업에 익숙한 신입사원들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강사 분이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성적이 뛰어나서 취직이 되었다고 생각한 사람?" 두 명이 손을 구부정하게 들었다. "토익 성적이 좋아서 취직 되었다?" 만점을 맞은 두 사람이 또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이런 저런 스펙이 훌륭해서 취직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했더니 모두 합해 스무 명이 채 되지 않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강사는 질문했다. "그럼 나머지는 뭐죠? 낙하산인가?" 좌중은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이 강사가 나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훌륭한 스펙으로 취직한 사람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다시 말해 대학가나 취업현장에서 말하는 '스펙'은 사설학원이나 소위 각종 취업관련 전문가들이 말하는 기준일 뿐 사실 입사와는 큰 차이가 없는 '허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성적과 학생생활 커리어(굳이 따진다면 이를 스펙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대기업의 취업담당자들은 토익만점과 우수한 성적에 혹할 만큼 바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회사가 필요한 사람은 진취적이고, 능동적이고, 개성있는 '젊은이 다운 사람'을 찾는다고 말했다. 첫 사회생활의 관문인 만큼 취업준비생들은 꼭 확인해서 준비해야 할 일이다. 

  한편 소수의 일원이 수십 수백 대 일의 경쟁상대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취업을 했다. 하지만 이들 새내기들은 직장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막연하다. 눈에 익은 선배들에게 답을 들으려해도 그저 '잘 하면 된다'고 말할 뿐이다. 물론 잘하고 싶다. 시키는 대로 말 잘 듣고 성실하게 일만 할 것이 아니라 보란듯이 훌륭하게 직장생활을 하며 인정받는 사원이 되고 싶은 생각이 모든 신입사원들의 꿈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직장생활의 달인>은 인정받는 신입사원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 주잔네 라인커라는 외국인 저자에 의해 쓰여진 책이라 '과연 우리 실정에 맞을까?'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마치 저자가 우리나라에서 근무를 한 듯(번역이 훌륭하게 의역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실정에 그대로 적용되는 조언들이 많이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직장생활의 달인'은 특별한 사람이 되거나, 많은 노력을 해서 되는 방법을 말하지 않는다. 딱 꼬집어서 말하면 '직장상사들이 바라는 신입사원상'이랄까? 책의 내용을 쫓다 보면 '상사들이 원하는 바람직한 신입사원이 되는 법'을 알게 된다. 그리고 좋은 상사, 나쁜 상사와 함께 일하는 법도 알려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직장생활의 가장 기초적이고 당연한 매너들이 적혀 있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 아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대상이 '신입사원'이 아니던가? 상사들이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을 '짧은 시간'에 제대로 배울 수 있다면 실용서로서의 책무는 다하는 것이다.  

  몇 가지 주목되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신입사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실천사항 네 가지 즉, 항상 보고하라, 메모하라, 모르면 질문하라, 마지막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는 조언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쉬운가? 실전에서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실행한다면 상사들은 '제대로 군기잡힌 신입사원'이라고 칭찬할 것이다. 이 밖에도 메모의 중요성, 놓치기 쉬운 전화통화의 기본법칙, 이메일 작성법,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10가지 법칙 등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블로그나 메일로 신입사원을 위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주저없이 구본형님의 <세월이 젊음에게>와 <The Boss 쿨한 동행>, 그리고 기타오 요시타카의 <일,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를 추천했었다. <세월이 젊음에게>와 <일>이 인생에서의 일과 직장의 의미를 말하고, <The Boss 쿨한 동행>은 상사와의 관계론을 이야기한 책인데, 사랑받는 신입사원이 되기 위해서 이 책 <직장생활의 달인>을 하나 더 추가해서 추천해야겠다. 특별한 법칙도, 비법도 없다. 단지 가장 기본적인 사원수칙들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신입사원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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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그리고 그 이후
자크 아탈리 지음, 양영란 옮김, 이종한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머지 않아 미국 국채와 달러는 상대해서는 안될 기피 품목이 될 것이다!  



  지난 2008년 10월 9일 기준 미국 부채시계의 자리수가 모자라는 역사적인 기록 순간이 있었다. 자리수가 모자라는 것을 억지로 수리해서 $가 들어갈 sign 옆에 1자를 끼워 넣어 $10 Trillion을 만들었다. 미국 정부의 현재 빚은 10.2 Trillion Dollar 이상이다. trillion은 1조, 즉 10.2조 달러. 우리돈으로 대략 1경 6300조원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의 빚을 지고 있다. (사진출처는 데일리 헤럴드 지) 세계는 지금 미국 달러로 인해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는 여전히 '아메리카 대마불사大馬不死'를 믿는다?"

  지난 달 25일 미국 재무부는 320억 달러 규모의 만기 5년 짜리 국채를 발행했다. 이는 2006년 이후 최대 물량이었는데, 이 국채는 시장에 각국 중앙은행과 기관투자가들이 앞다퉈 사들여 나오자마자 동이 났다. 사실상 '제로 금리' 상태인 미국 국채가 이처럼 불티나게 팔려나간 것은 그만큼 국제 금융 시장이 불안하다는 방증이고, 손실을 보느니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안전자산에 일단 묻어 놓겠다는 투자자들의 심리가 발동했다. 역설적이게도 마구 찍어대도 '몸값'이 치솟는 달러의 이유는 대안이 없는 현 경제상황에서 미국이 국채를 다량으로 발행해 달러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다른 나라들도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돈이 갈 곳은 달러 외에는 금밖에 없다는 전문가의 지적이다(2009. 3.3 일자 중앙일보 기사 요약). 세계금융위기의 진앙지 미국은 과연 대마불사일까?

  그에 대해 응답하는 글을 만나 보자. "이쯤에서 일단 한번 정리를 해두자. 전 세계 은행들의 보유 자산 총액인 4테라 달러에 대해서, 현재 국제통화기금은 1.4테라 달러, 루비니 교수는 2테라 달러 정도의 손실이 있다고 추정한다. 이는 미국 내의 손실에만 국한된 수치이다. 여기에다 불투명한 미국 소비 관련 신용 액수인 4.5 테라 달러를 더해야 한다. S&P는 국내총생산의 10포인트, 즉 1 테라 달러를 납세자들이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금까지 공금된 자금은 0.8 테라 달러이다. 주식시장의 폭락과 부동산 하락으로 액면가 37 테라 달러가 증발했다. 신용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돈은 어디에서 마련할 수 있을까? 납세자들의 주머니에서? 그럴 경우, 그나마 유지되는 거의 명목뿐인 성장마저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다면 적자 재정을 통해서? 이경우, 미국 국채와 달러는 머지않아 더 이상 상대해서는 안 될 기피 품목으로 전락할 것이다."(P 106) 

  이처럼 미국 국채와 달러에 대해 무시무시한 발언을 한 사람은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는 자크 아탈리가 한 말이다. 그에 대해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재기와 상상력, 추진력을 겸비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지식인"이라 평하기도 했다. 그가 이번 세계금융위기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의 책 <위기 그리고 그 이후>를 통해서다. 세계금융위기를 바라보는 유럽 지식인의 책이라 더욱 주목되었다. 원제는 La crise, et après 이다. 자크 아탈리는 이 책에서 "이번 위기를 계기로, 적절한 시기에 세계 정부가 창립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고, 이렇게 되기까지는 적어도 1세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며,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전쟁의 위협도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무시무시한 전망의 이유를 추적해 봤다. 
 

 


  이 책은 프랑스의 최고 지성 자크 아탈리가 이번 세계금융위기를 분석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예측해 본 책이다. 지금껏 지구상에 있었던 경제 위기들을 살펴보고, 이번 세계금융위기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를 재검토함으로써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위협과 그 대책, 무엇보다 당장 세계가 강구해야 할 긴급대책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닥쳐올 금융 위기에 대한 경고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될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170여 쪽의 짧은 글은 세계금융위기를 다룬 그 어느 장서보다 자세하고 솔직하게 적혀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 위기를 유럽의 시각으로 바라봤다는데 그의 해석은 더욱 냉철하고 대담했다. 

  저자는 이번 위기는 인류에게 닥친 여러 위기중 하나라면서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12세기경 벨기에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부터 더듬으며 과거의 위기를 전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이번 위기는 미래에서 보면 방향의 선회라기보다는 진행의 가속화로 기록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2002년 미국이 수요가 둔화되자 미국 정부가 소득 증가 정책을 쓰는 대신 주택금융업기관을 비롯, 여타 부동산 관련기관을 통해  지불 능력이 낮은 고객들에게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최상의 금리로 대출해줄 것을 부추겼는데,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헤지펀드 운영자들의 총아였던 하이먼 민스키는 이때 심각한 금융 위기가 몰려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익성 높은 혁신(또는 경제 정책의 변화), 경제 호황, 낙관주의 팽배, 이익의 유출, 그리고 '민스키 모멘트'라고 하는 패닉상태가 닥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시기를 2009년쯤으로 내다봤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는 그의 말에 귀기울인 경제학자들은 극소수였다는 것이다. 

  전반부의 내용에 해당하는 인류 역사상 이번 위기보다 먼저 닥쳤던 위기들과 세계금융위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짧게 조망한 부분은 한 편의 프리젠테이션처럼 컴펙트했다. 미국의 현실과 함께 동조하여 변화했던 유럽의 상황도 함께 볼 수 있어 전체를 이해하기가 더욱 용이했다. 이 책의 백미는 후반부 [앞으로 닥칠 위협]부터였다. 이번 금융위기는 실물 경제 위기로 번져 대부분의 기업과 소비자, 근로자, 예금자, 대출자, 국가들을 모조리 곤경에 빠뜨리게 될 것이고 몇몇 나라는 사회불안과 정치불안의 요인으로도 작용될 것이며, 현대의 이데올로기는 도마위에 올라 어쩌면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주의의 경제주의로 알려진 '신자유주의 경제주의'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컸는데, 이번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존립위기'에 놓였다고 봐야 할텐데, 아직 그 대안이 없어 세계의 입장에서 미국은 '무너져서는 안되는 나라' 격이다. 다시 말해 한 줄을 선 도미노의 첫 블록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경기침체, 불황,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경제위기의 진행으로 전세계적으로 외환 위기까지 겪게 되고, 이는 사회적, 이념적, 정치적 위기로까지 번지게 될 것으로 저자는 내다보았다. 그 해결책으로 저자는 법치를 통한 시장의 균형 되찾기 즉, 정보가 공평하게 그리고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이를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기제가 확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반 규칙을 어기는 자들을 감독하고 제재를 가할 수 잇는 진정한 의미에서 전 세계적인 경찰과 사법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해결책이 한편으로 유토피아적이기도 하지만, 유일한 해결책은 이것 뿐이라고 덧붙였다. 전작 [미래의 물결]에서 처럼 '하이퍼 민주주의'실현을 주장했던 자크 아탈리다운 의견이다. 

  하지만 소수의 선점자만이 시장의 정보를 공유했던 작금의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이번 금융위기를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제 2, 제 3의 세계금융위기가 올 것은 자명하고, 기축통화인 달러를 만드는 미국에서 비롯된 이번 위기인 만큼 세계 또한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도 사실이기에 그 대안의 필요성은 불가피하다. 분명한 것은 자크 아탈리 역시 1929년에 내 놓은 뉴딜정책을 지금 다시 사용한다면 훨씬 더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은 앨빈 토플러의 [불황을 넘어서]에서 뉴딜 정책은 더이상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말한 경고와 일치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오늘날은 그만큼 경제의 간섭 현상이 광범위해졌으며, 분업도 훨씬 강도 높게 진행되었을 뿐 아니라 자본시장, 재화와 노동력의 시장까지도 빈틈없이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근에 본 외국 석학들의 세계금융위기를 보는 전망은 무척이나 어둡다. 해결책에 대한 논의는 차치로 두고라도 이번 위기는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데는 입을 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위기의 폭과 넓이를 아직까지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책을 덮으면서 우리의 소비국들이 이럴진대 수출주도국가인 우리나라는 그 파장은 얼마나 될 지 심란해서 생각조차 하기 두려웠다. 우리가 이번 위기를 넘어설 대안은 무엇일까? '그린 뉴딜'정책일까? 외국과의 끊임없는 FTA 체결일까?  한국이라는 배는 제대로 항로를 잡고 나아가고 있는 지 고민하게 했다. 금융위기 이후에 다가올 최후의 시나리오는 무섭기 그지 없고, 그 해결책은 막연하다. 하지만 오늘까지의 전모를 파악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가늠하고 싶다면 꼭 넘겨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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