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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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사랑을 안 멋진 사내 오스카 와오, 몸으로 답했다 



  미지未知. 알지 못함은 암흑이다. '모른다'는 말은 '안다'는 말과 늘 동행하면서 '앎'을 추앙한다. 앎의 대상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관심이 없다는 '상관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관심은 있으면서 모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알고 싶어 답답해지고, 괴로워진다. 나아가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럴 땐 '뭘 모르는 지 조차도 모르는' 것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아는 것도 정도가 있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알 수도 있고, 지나가는 행인의 속삭임처럼 한 번 들어봤음도 있다. 이런 어설프니들의 '앎'은 차라리 모르는 것 만도 못하다. 그래서 뭔가 확실하게 아는 자는 멋지다. 

  누군가 사랑을 아는가? 라고 묻는다면 아직도 대답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대상을 생각함에 잠시 숨이 멎고, 먹먹해지는 가슴통痛이 그것 아닌가 물을까, 비올 듯 흐린 하늘에서도 꽃만 꽂으면 딱 광녀일 것 같은 흐드러진 미소를 품게 하는 것이라 말할까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했던 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것이 사랑일까, 내가 아는 것이 과연 사랑일까, '사랑은 이거다'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아직 모르겠다. 

  여기 뜨거운 사랑을 하고 알아 낸 젊은이가 있다. 받아주는 이 한 명 없지만 순간 순간 자신의 사랑을 던진 청년. 거부하고 싶은 사랑고백은 추태이고, 원하지 않는 구애는 스토킹이라 했던가? 모두가 그 청년의 사랑을 거부했지만 그만두지 않았다. 결국은 사랑을 경험한 사람. 사랑과 열정의 나라, 밥은 굶어도 사랑은 해야 하는 나라 도미니카 청년 오스카 와오의 사랑을 들어 봤다.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원제는   이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2008년 퓰리쳐 상을 수상했다.The Brief Wondrous Life of Oscar Wao
  





  소설가의 가능성에 대해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밀란 쿤데라"소설가에게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헨리 필딩처럼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귀스타브 플로베르처럼 이야기를 묘사하거나, 로베르트 무질처럼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이다." 고 말한 바 있다. 밀란 쿤데라의 말대로 라면 주노 디아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묘사하고, 생각하는 힘을 지닌 독특한 소설가다. 뒤집어지는 웃음 속에 페이소스가 뭍어나게 하고, 신파극의 변사처럼 일인다역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독자를 청중인 듯 말을 걸기도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스무 페이지짜리 주석과 네 페이지 짜리 감사의 글(정말 순수하게 이름만 부르며 고마워하고 있다)이 달린 소설이라니, 거듭된 파격에 어리둥절하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제목에도 언급된 주인공 오스카 와오다. 오스카 데 레온은 시셋말로 전형적인 비호감이다. 140킬로그램의 몸무게와 여드름투성이, SF 장르소설과 롤플레잉 게임, 만화책, 판타지 소설에 빠져사는 오타쿠 청년은 모든 여성들의 혐오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는 단지 사랑을 하고 싶은 남자다.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무작정 달려 들어 '판타지 소설'의 대사같은 대화로 사랑을 고백하며 접근해 변태 찌질이 취급을 받아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 키스 한 번 해보지 못했지만 오스카는 단지 사랑을 하고 싶은 남자이다. 

  소설은 화자 유니오르가 마음 내키는 대로 시간을 거슬르며 인물을 불러내고, 빠른 장면 전환과 낯선 사건과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독자의 눈을 휘둥그레 만든다. '오스카 가족 3대에 걸친 푸쿠와 사랑의 이중주적 서사시'라 할 만큼 소개되는 주인공들은 모두 독특한 사랑을 하고 불쌍한 비극을 맞이한다. 그들에게 펼쳐진 불행의 원흉은 푸쿠, 즉 실제로 도미니카를 31년간 독재로 휘두른 라파엘 트루히요의 저주 때문이라고 유니오르는 말했다. 처음 듣는 지명, 어려운 이름, 그리고 독특한 오스카의 성향 덕에 엄청난 SF 소설 대사와 의미들을 추적하고 인내하며 읽은 이유는 오스카 가족의 불행한 연애사가 한국의 여염집 과거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냉전체제의 1960년대 제 3 세계 국가들 중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이끌고 있는 국가들의 특징은 '군부' 그리고 '독재'였다. 통치자들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밀고자'로 만들었고, 반대세력에게는 '응분의 조치'를 취했다. 소설 속에 언급된 트루히요의 푸쿠처럼 이 땅의 자식들도 '인권'을 주장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지금도 실종인 채로 남아있다. 독재자를 위한 성상납도, 누명에 의한 숙청도 이 땅에 엄연히 존재했던 불행한 과거였다. 트루히요의 독재 뒤에는 미국 정부의 비호가 있었는데, 미국과 트루히요가 내린 저주에 희생된 가족이야기가 미국인들에 의해 '상을 받다'니 얄궃은 아이러니다. 그가 미국으로 이민하지 않고 이 작품을 도미니카에서 냈다면 과연 퓰리처 상이 돌아갔을까? 트루히요의 저주로 출간마저 불투명하진 않았을까? 궁금해졌다. 

  억장 무너지듯 가슴 아픈 오스카의 가족사는 이야기꾼 유니오르(사실은 저자 주노 디아스가 되겠지만)에 의해 영화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웃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로 희화된다. 그리고 그의 입을 통해 푸쿠로 인한 가족의 불행 속에서도 '사랑'이라는 명제 때문에 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녹여내고 있다. 주인공 오스카 와오이 과연 사랑을 할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은 점점 더해져 독자로 하여금 화가 날 만큼 고조시키지만, 어처구니 없는 반전은 '역시!'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한참 낄낄거리며 웃다 보면 불행과 행복의 구분, 사랑과 단순한 욕정의 구분은 모호해지고 보이지 않는 독재의 저주와 이루고 말겠다는 사랑에 대한 열정에 모를 듯 알 것 같은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독자인 나는 작가의 이야기 솜씨에 빠져 들어 단 둘이 앉아 귀를 세우고 듣고 있는 듯 하고, 그가 질문하면 답을 하고, 그가 외치면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또한 남녀 상열지사에 중요한 모티브를 두고 그 속에서 진정한 '사랑'은 누가 했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물론 승리자는 오스카 와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사랑의 다른 이름은 '인생'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생의 기쁨에 대해 오스카는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게 바로 이런 거로군! 젠장!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되다니, 이토록 아름다운 걸!" 라고 고백했다. 
 

"인생이란 그런거다 아무리 열심히 행복을 모아봤자 아무것도 아닌 듯 쓸려가버린다.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난 세상에 저주 따윈 없다고 대답하겠다. 삶이 있을 뿐. 그걸로 충분하다고."
 

  결국 일생을 두고 사랑을 추적했던 추하고 못한 오스카는 잘나고 멋진 가족들이 이루지 못한 사랑을 찾았다. 절대로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오스카는 "결국이라고? 결국이란 없어. 세상에 진정한 결말이란 없거든." 언젠가 자신과 같은 사랑을 찾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지독한 루히요의 푸쿠도 진정한 사랑은 어쩔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희망은 사파(푸쿠의 역주문) 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유쾌하다 할까, 슬프다 할까 감히 딱히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소설이 품어내는 놀라운 흡인력과 매력은 지금까지 내가 답을 내지 못하는 '알 듯 모르는' 사랑을 경험한 오스카 와오가 있기 때문이란 것은 확실하다. 오스카 와오는 몸으로 사랑을 말했다. 사랑을 경험하고 알아낸 오스카는 멋진 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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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포노포노의 지혜 - 하와이에서 전해지는 비밀의 치유법
이하레아카라 휴 렌.사쿠라바 마사후미 지음, 이은정 옮김, 박인재 외 감수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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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의 답은 스스로를 먼저 정화하면 풀린다, 호오포노포노 

  호오포노포노. 정확한 명칭은 '셀프 아이덴티티 호오포노포노. 하와이 주의 인간문화재인 전통 의료 스페셜리스트 '모르나 날라마쿠 시메오나에 의해 개발된 문제 해결 방법을 읽은 것은 지난 해 여름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에서 였다. 개인이 각각의 신성의 지혜와 하나가 되어 영감을 얻는다는 이 방법은 '미안해요, 용서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라는 말을 고백함으로써 실현되는 문제 해결 방법이다.  

  우연하게 읽은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에서 뜻하지 않은 불행을 만났거나, 기분 나쁜 일을 만났을 때 위의 네 마디를 외워 스스로를 정화하는 습관을 가졌더랬다. 호오포노포노는  제로 상태에서는 어떤 생각도, 말도, 행동도, 기억도, 고정관념도, 믿음도,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데,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독자는 온전한 책임, 스스로를 치유한다는 것의 의미, 치유와 정화를 가져오는 '미안해요' , '용서해요', '고마워요(감사해요)', '사랑해요'라는 말의 힘, 그리고 '평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의 의미를 가슴으로 느끼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학생들도 아는 기본적인 예의어들인 이것들이 스스로를 치유하고 정화를 가져온다는 말이다.  

  이 책의 '범죄를 저지른 정신장애자 수용 병동에서의 정화'편은 호오포노포노의 과정을 잘 설명해준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범죄자들의 수용소에서 그가 치유사로 근무하면서 얼마 되지 않아 난동등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교화되는 모습들을 보여 더이상 족쇄와 수갑등이 필요없게 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치유자가 그들에게 한 것은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내내 마음속으로 '미안해요' , '용서해요', '고마워요(감사해요)', '사랑해요'라는 말을 되풀이한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목적 즉, 교화를 바라거나, 그로 인해 자신이 유명해지거나, 편해지려고 한 것이 아니라 치유자가 접하게 된 정신병동의 환자들을 보게 된 그 순간부터 그들의 모습이 자신의 탓으로 놓고, 내가 그들이 느끼는 것을 함께 느끼며 그들의 고통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함께 공유하는 그 아픔을 비워낸다면 그들에서도 그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미안해요, 용서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호오포노포노]라고 하는 하와이안들의 신비로운 주문의 문제 해결 방식은 자신과 타인의 고민과 고통을, 그리고 희망과 소원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를 알려준 것 같다. 진정 알아야 그것을 얻을 수 있고, 치료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어떤 문제나 상황 앞에서든 온전한 책임을 지고 치유를 선택할 힘이 나에게 있다는 것은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치유자인 휴 렌은 "호오포노포노는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인류로서 우리의 삶의 목적에 대한 더 넓은 이해와 깊은 통찰의 문을 열어줍니다"라고 말했다.  

  이 책은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에 이어 좀 더 자세하게 호오포노포노를 설명하고,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를테면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에 대처하기 위한 뫼비우스의 띠 명상법'이라든지, 고혈압 치료에 효과적인 명상법 등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호오포노포노를 직접 체험한 사람들의 증언들을 실어서 다양한 케이스에서 활용되고 실제로 입증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었다.  

  저자 역시 처음에는 너무나 황당하고 단순해서 '사이비종교'가 아닌가 많은 의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여러 번 경험하고 체험하면서 누구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화'하는 또 다른 '명상법'임을 확인하게 되고, 이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모든 형이상학적인 것이 그렇듯, 종교가 그렇듯 믿고자 하면 믿을 수 있고 의심하고자 하면 터무니없는 눈속임같다. 믿고 믿지 않고는 나름의 선택이지만 이 책을 읽은 나로서는 지난 해 읽은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이 개인적 마음수양에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이 책을 집게 된 동기를 부여했다. 마음의 괴로움을 털고 싶다면 '호오포노포노'를 부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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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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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살다 간 '맏이'들을 위한 훌륭한 진혼곡 

  죽음을 대함은 하루만에 다섯 살의 나이를 먹는 것과 같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부질없고, 희로애락이 거짓같다. 태어나면 죽을 것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을, 익히 알아 왔건만 이를 목격함은 이미 알던 것과 생판 다름이다. 죽음을 대하면 누구나 훌쩍 늙어짐을 느낀다. 그리고 슬프게도 무척이나 어른스러워진다. 단순한 죽음이 이정도인데 피를 나누고, 정을 나눈 가족과 지인의 죽음을 대할 때라면 어떨까? 하늘이 무너짐이 이보다 더 할까? 하늘이 무너진다면야 함께 세상을 마감하니 차라리 다행이다. 이승에 남겨져 이미 없고 난 사람을 기억함은 '천벌'만큼 힘들다. 그런 죽음을 대한 이들이 그 무거운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어쩌면 아픈 자들의 세상인지 모른다. 없고 난 이를 내가 애절하게 추억하는 만큼 내가 없는 세상에 날 추억할 사람들과 부대낌이 무엇보다 소중한 줄 알았음이리라. 그래서 이 세상을 사는 아픈 자들은 불쌍한 자들이다. 그리고 독하디 독한 자들이다. 

  소설가 김정현은 참 독한 사람이다. 둘도 없이 친한 친구의 죽음을 대하고 난 후 한없이 안타깝고, 섭섭한 마음을 풀을 길이 없어 글로써 그를 살려내었다. 그리고 또 다시 죽였다. 그 과정은 그리 쉬웠을까?  "술 먹고 컴퓨터에 써놓은 원고를 지워버린 게 7번. 친구의 영혼도 방해한 책을 꼬박 1년이 걸려서 완성했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 다시는 소설은 쓰지 않을 것"이라며 쓴웃음을 졌다는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를 보면 그의 괴로움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낱 인세를 생각하고 이 괴로움을 담당했을 리 만무하다. 단지 김정현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도 아니다. 고향 영주에서 '고향 사진관'을 운영했던 친구 서용준은 사랑많은 아들이었다. 가슴 가득한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고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었다. 김정현은 아들의 사랑, 대한민국 자식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의 장편소설 <고향 사진관>을 읽었다.  

 

  소설가 김정현은 얄미운 사람이다. 10년을 거슬러 IMF 때에는 췌장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해 이 땅에 '신드롬'을 일으키며 그 시절의 아버지를 대변했었는데, 이번엔 50대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뇌졸증을 앓아 수족도 못 쓰고, 정신을 놓은 아버지를 17년간 병간호한 이 땅의 '아들'을 그렸다. 전도유망한 청년이 제대와 동시에 병을 앓는 아버지를 돌보며 시절 지난 사진관과 가족을 떠 맡다가 아버지를 보낸 후 그 역시 간암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 그의 삶을 추적하는 내내 아리고 먹먹해 지는 가슴을 쓸을 새가 없도록 만들었다. 소설가 김정현은 얄밉고 독한 사내였다. 동시에 책을 읽는 독자가 이럴진대 글을 그린 저 사내는 오죽했을까 싶어 손이라도 잡고 쳐진 어깨를 토닥이고 싶어졌다.
 

  한편으로 얄궃게도 이 책을 왜 썼을까, 어떻게 써나갔을까 작가를 추론해 본다. 소설을 쓰기 전에는 강력계 형사였던 그인지라 말없고, 자신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성격인 친구 서용준을 그리기 위해 용의자를 보듯 추억했을 테고, 그의 가족과 친구들과 만나 탐문하듯 그와의 일들을 더듬었을 것이다.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이제는 없고 난 친구를 불러 눈에 보듯, 이야기듯 하듯 그렸을 테니 이게 어디 소설인가 싶다.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이 글을 마칠 때까지 작가에게 이승은 저승만 못한 나날이었으리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 역시 그리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직도 자신은 아버지의 대리인에 불과했다. 아버지의 심장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었고 모든 것은 아버지가 일군 것들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오직 지켜가야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작가 김정현이 보는 친구 서용준의 모습은 '아버지의 대리인'이었다. 동안인 탓도 있지만 좀처럼 나이들지 않는 그에게 이유를 묻자 좀처럼 대답하지 않다가 뱉어내는 비결이란게 '아버지가 깨어났을 때 늙으면 못알아볼까봐 스스로 늙음을 멈추었다'고 말한다. 동생의 문제로 서울에 가서도 '혹시'라도 임종을 지키지 못할까 늦은 밤기차를 타고 내려오고, 친구와 술한잔 마실라치면 단란주점의 아가씨와 앉아 있을 때 조차도 아내에게 자신의 거처를 밝히는 친구 서용준, 그는 천상 아버지를 위한 '대리인'이었다. 

 문득 어디 '병환중인 아버지를 둔 그'만 그럴까 싶어졌다. 제 뜻을 펼치기 전에 부모를 먼저 생각하고, 가족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이 땅에 숱하게 존재하는 '맏이'들 또한 그렇지 않을까 싶다. 경중輕重의 차이야 있겠지만, 제 뜻을 펼치느라 앞만 보기에 앞서 나도 모르게 눈을 들어 위를 쳐다보고 먼저 생각하는 이 땅의 '맏이'들 역시 서용준을 닮았다. 작가 김정현은 오롯이 아버지의 아들이자 또 자식들의 아버지였던 친구 서용준을 그렸는지 모르지만, 그는 이 땅의 '맏이'의 전형이었다. 맏이는 알 수 있었다.

  이제 다시는 소설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작가의 변이 마음에 와 닿는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사람의 일생을 다시 그려내기란 결코 쉽지 않지만, 글 쓰는 동안 추억했던 기억 때문에 아직도 힘들지도 모를 것 같아서다. 서용준에게 늦게 나마 수고했다 전하고 싶다. 그리고 작가에게도 애썼다 말하고 싶다. 이 소설은 이 땅에 살다 간 '맏이'들을 위한 훌륭한 진혼곡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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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서 찾아낸 행동경제학
다치바나 아키라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Biz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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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의 재미있는 경제소설

   표준 경제학(주류경제학)과 인간본성에 대해 지극히 이성적이라는 낙관론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은 행동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은 언제나 이성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아서 의사결정에 있어 빈번하게 잘못된 선택을 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인간이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에 얼토당토 않는 영향을 받는 존재이고, 개연성 없는 감정과 근시안적 생각등 여러 형태의 비이성적 행동을 곧잘 저지른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인간의 그러한 비이성적 행동에 착안하여 많은 기업이 이를 이용해 소비자는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마케팅에 속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경제학의 대안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학문영역인 이 '행동경제학'은 경제주체인 소비자가 오늘까지 저지르고 있는 경제적 선택의 오류를 짚어주고 있어 소비자들로 하여금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소설 <골목에서 찾아낸 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등 최신 경제 이론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설명한 책이다. 신주쿠 가부키초 뒷골목의 유흥가 건물의 허름한 연구실에 골룸과 비슷한 외모의 아쿠무 미타로 박사는 철학, 정치경제학, 수학,물리학, 생물학 등 자신의 학식을 무기로 어두운 사회 속에서 시름을 앓고 있는 불행한 사람들을 돕는다. 원제목 亜玖夢博士の経済入門 - 아쿠무박사의 경제입문이다. 저자 다치바나 아키라는 <돈세탁>과 <부자가 되는 황금 깃털을 줍는 법>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빚에 허덕이며 사채업자에 쫓기는 슈카이에게는 인간의 비이성이 신용위기를 몰고 온다는 것을 '행동경제학'을 통해 알려주고, 야쿠자의 세력다툼에 빠져든 헤비누마에게는 '죄수의 딜레마'를 적용해 윈윈 전략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알려준다. 왕따 초등학생 겐타를 통해서는 인간관계의 불평등을 만드는 네트워크 경제학을, 피라미드 판매에는 사회심리학이 들어있음을, 삶의 의미를 찾는 가출소녀에게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적용해 고민을 해결해 주기도 한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사무실을 찾을 때 손에 들린 전단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상담무료, 지옥을 보았다면 아쿠무(박사이름)을 찾으라" 상담자 스스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말하도록 유도하는 아쿠무 박사의 조언은 냉정하고 섬뜩하기까지 한데, 미국 드라마 <하우스>의 닥터 그레고리와 <CSI 라스베가스>의 길 그리섬 반장을 떠올리게 했다. 비교적 탄탄한 스토리와 재미까지 더하고 있어 소설적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고, '그들만의 리그'로 생각되는 경제학 원론을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현실에 맞는 사회문제와 법률등이 결합되어 있어 한 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아무리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문제점의 해결책 또한 과장되어 있어 환타지 소설에 버금간다. 재미있는 시도의 경제소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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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와 나 - 한 초보 부부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의 가족 만들기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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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와는 모양 다른 친구 이야기

  우리집에는 개가 한 마리 있다. 엄연한 '찌비'라는 이름과 가족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시츄종의 이 개와 5년 째 함께 동거를 하고있다. 어느 친절한 수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엄연히 개이기에 애완견답게 키워야 할 것을 버릇을 잘못 들여놔 베개가 없으면 잠을 자지 않고, 밥과 물을 달라고 냉장고 앞에서 의사표시를 하고, 용변을 볼라 치면 사람 개똥 피하듯 식겁을 하고 도망가는 녀석이다. 제가 사람인 줄 아는 개. 더 이상 애완동물이라 부르지도 않는다. 개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찌비' 또는 '요년, 조년'으로 불린다. 남들 눈에는 그냥 개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안보면 보고싶은 가족과 다름없다.

영화와 책이 동시에 나와 회를 동하게 한 책이 있다. 로맨틱 코미디물의 주인공으로 자주 나오는 오웬 웰슨과 제니퍼 애니스톤이 나와 중박의 흥행은 보장된 것 같은 영화보다는 책에 관심이 더 갔다. 실화라는 사실이 그 이유였다. 존 그로건의 <말리와 나>다. 원제는 Marley & Me: Life and Love with the World's Worst Dog 다.  



 
  제목부터 말썽쟁이 개의 이름 ‘말리’가 먼저 등장한다. 가족의 심오한 뜻을 알아서 라기 보다는 서로가 너무 좋아서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게 된 초보부부 존과 제니는 우연한 기회에 신문광고에 나온 강아지(말리)를 사게 된다. 즉흥적으로 구입하긴 했지만 ‘말리’는 맹인안내견으로 쓰일 만큼 사람들과 친화력이 강하고 온순한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이었기에 둘은 안심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천만의 말씀. ‘말리’는 집안의 모든 물건을 물어뜯고, 먹어버리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말썽쟁이 그 자체, 심지어 애견학교 교관도 포기한 그런 개였던 것. 사고뭉치 말리와 티격태격하면서 존과 제인은 인내심과 애정으로 말리를 돌보며 가족이 점차 가족이 되어갔다. 제인이 아이를 가지면서 한 두 차례 가족에게 위기가 찾아오지만 비온 뒤 땅이 단단해 지듯 말리를 포함한 그들의 가족애는 더 깊어간다. 불행히도 인간과 개의 삶의 시계가 같지 않으므로 점점 ‘말리’가 가족들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서 지켜주는 말리의 죽음은 생각보다 슬프지만은 않으리라. 누구보다 행복한 죽음인지 모른다. 



 
   2009년 한국에도 애완견에게 인식표나 마이크로칩 같은 일종의 애완견 주민등록증이 생겨났고 이제는 애완견이라는 표현보다는 가족의 의미를 지닌 반려견이라는 말이 퍼지고 있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개는 그저 된장국에 남은 밥이나 말아주면 먹고, 마당에서 꼬리나 흔들다가 복날 조용히 사라지는 서글픈 존재였었지만 이제 이 땅에 존재하는 개는 그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는 엄연히 가족인 것이다.

  집에 들어가면 누구보다 빨리 그리고 어김없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애완견을 보면 ‘이 세상 어디에 저 개만큼 평생 배신하지 않고 날 반겨주는 이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고 내가 아는 어떤 분이 말했다. 가족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어가는 요즘 현대인들에게 애완견은 단순한 개 이상의 의미를 넘어 사람들을 사람이라고 재확인하게 해주는 어쩌면 가족보다 나은 동반자로 거듭나고 있다.   

  이나라의 개주인들은 자신들이 아이를 가지면 기르던 애완견을 다른 곳으로 보내거나 천덕꾸러기 유기견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아이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일부러 임신 중 또는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계획적으로 애완견을 입양한다. 특히 최소 10년은 같이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종별 특성, 환경, 자신들의 상황 등을 꼼꼼히 따져서 입양한다. 말 그대로 가족이 되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하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하는 것이다. 어리고 귀여울 때 예뻐하다가 나이 들어 병들었다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 우리에게 웃음을 주고 사랑을 주었기에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 가족이 되어 그 곁을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최소한 '제사상이라도 차려줄 사람'으로 자식을 보고 그의 일생에 간섭하는 한국의 부모와 성년이 될 때까지 부모에게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 자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가도록 독려하는 서양의 부모가 차이가 있음과 다름없다. 필요에 의한 사랑이 과연 사랑일까?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인간과 개의 삶이 아름다워 보였던 것은 가족으로 동일시하며 서로 위로받고 살았기 때문은 아닐까? 평생 꼬리를 흔들며 '귀여움'을 받아야 밥을 얻어먹는 개. 인간보다 백만배의 후각을 지니고, 흑백의 컬러만을 볼 수 있는 개는 인간들의 가장 친한 동물이다. 아니 친구다. 가슴 훈훈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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