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코스키가 간다 - 제2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한재호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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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잉여인간의 수상한 발걸음  

  한 남자가 남자를 쫓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정확히 아침 9시에 '슈퍼' 문을 닫고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을 쫓아 그(부코스키)를 몰래 미행하고 있다. 언뜻 들으면 '섬뜩한' 이야기는 소설 <부코스키가 간다>의 중심 사건. 부코스키를 쫓는 이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백수 '나'와 그에게 우연히 얹혀 살고 있는 애인 비슷한 여성 '거북이'다.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 평범한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첫장부터 시큰퉁했지만 눈은 의지와 달리 활자를 쫓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활자를 따라 미행에 참여하고 있었다. 신예 작가 한재호의 소설 <부코스키가 간다>이다.  

  특별한 날이 생기면 오히려 이상한 백수의 하루에 우연히 끼어든 소문은 '비가 오는 날이면 가게 문을 닫고 나가는 남자' 였다. 누가 시킨 것도 딱히 궁금한 것도 없었지만, '나'는 그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런 이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를 추적하게 된다. '나'의 집에 얹혀서 기생생활을 하는 애인 비슷한 여자 '거북이'는 추임새를 놓듯 호기심만 북돋으며 '오랜만에 얻은 나의 일'에 동참한다. '별 희안한 놈도 다 있다'며 비웃었지만, 딱히 할 일도 없는 백수라면 나도 그럴껄? 하는 동조감도 교차했다. 눈은 여전히 작가 한재호의 글을 미행하고 있었고...왜냐고? 궁금하니까. 

  '나'는 부코스키를 왜 쫓고 있을까? 그는 백수이기 때문이다. '노느니 염불한다'고 했던가? '할 일'이 없는 그는 스스로 할 일을 만들었다. 늘 변함없이 구직생활을 하고 있는 '나'지만 늘 그렇듯 '합격소식'은 없다. 그에게 구직활동은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희망도 긴장감도 없다. 무료함이 일상이 된 백수인 '나'에게 '부코스키'라는 인물의 이력은 귀에 감기는 이름이요, 다른 별나라 사람의 행동이다. 이제 사실을 밝히는 것은 그의 당면과제가 되었고, 누가 시키지도 돈도 주지 않지만 그를 쫓기 시작한다. 급기야 그가 가게 문을 닫는 비가 오는 날을 기다리게 된다. 

  '나'와 함께 부코스키를 쫓으면서 일하는 인간, 호모 에르가스터Homo ergaster 가 되고 싶은 백수'의 욕망을 엿본다. 그가 부코스키의 정체를 추적함은 이력서를 기업에 던지고 채용소식을 막연히 기다리는 것보다 즐겁고, 스스로의 힘으로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스스로' 답을 구하려고 하는 의지는 청년백수가 가진 마지막 자존심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익히 알고 있는 서울의 번화가를 걷는 그들을 쫓음은 눈에 보이는 듯한 사실감도 있었고, '나'를 쫓아가는 또 다른 한 사내는 독자인 나 같아서 약간의 스릴이 따랐다.  

  이 소설은 백수소설이다. 2000년 이후부터 [백수소설]이 우리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잡고 있는데, 문학평론가 황종연은 "민주화 이후 한국에 양산되고 있는 빈곤층을 포함한, 새롭게 형성된 하류사회의 정치적 무의식의 한 표상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백수소설을 '신빈곤층 문학'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부코스키를 붙잡고 '당신은 왜 비만 오면 9시에 밖을 나가는가'하고 직접 물음직도 하고, 그를 끝까지 추적해서 밝혀낼 수도 있건만 오히려 '사실'을 알게 되면 더 이상의 '일'은 없어질까 그냥 추적하는 과정을 즐기는 듯한 '나'를 따르며 무력감과 답답함을 느꼈다. 부코스키의 정체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어쩔려고? 라고 묻는다면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사보타주같은 푸념이 그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 전해졌다. 

  읽으면서 손창섭의 '잉여인간'이 계속되서 오버랩되었다. 자기 현실에서 제대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하여 외면하는 현실세태를 역설적으로 비판한 작품이 '잉여인간'이라면 이 시대에 일하지 못하는 젊은 청춘들을 시니컬하고 격하게 표현한다면 21세기의 잉여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생각 못하고 또 다시 '나'를 미행하게 하는 작가의 흡인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비오는 날 아침 9시면 이 소설이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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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 - 미래를 위한 자기발전 독서법
안상헌 지음 / 북포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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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만끽하며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책 

  일찌기 르네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책을 읽는 여러가지 장점 중에서 '언제 어디서든 공서고금의 인물들과 단 둘이 책을 통해 대화할 수 있음'을 말한 내용이다. 저자가 죽었거나 살았거나, 멀리 살거나 코 앞에 살더라도 책장을 펴면 그와 만날 수 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저자가 백과사전에 등재될 만큼 위대한 인물이나 직접 대면했다면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이라면 그 놀라움은 한층 더한다. 그럴 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에도 들어가는 '책'의 위력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때는 일면식識도 없는 저자를 만날 때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 쓴 책을 우연히 읽었는데, 내가 큰 깨달음을 얻었거나, 늘 생각했던 공감들을 만날 때다. 그럴 때면 그런 영감을 준 저자도 놀랍지만, '한낱 종이 한장에 활자 몇 자들이 새겨진 묶음'인 책에 더욱 놀란다. 그런 책을 만날 때면 '한없이 정적精的'이어서 다이내믹한 요즘에 맞지 않을 것 같은 나의 '책읽기' 습관이 큰 보람으로 다가온다. 흔하지 않지만 이렇게 책읽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책을 만나면 행복해진다.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은 내게 그런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서재에는 꼭 꽂혀 있었고, 많이 읽히며 사랑받더라'는 지인의 말씀을 듣고 일말의 의심도 없이 주문한 책이다(이런 경험은 몇 번 없는데, 그런 소개로 만나는 책은 실패한 경우도 거의 없다). '책읽기는 자신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라고 말하는 저자 안상헌은 이 책에서 책을 읽는 이유를 들어 ' 자신의 생활과 책읽기를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들을 찾아가기 위해서'라고 자신의 소개에서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책읽기, 이렇게 하라], [책읽기,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지름길 독서, 입장을 바꿔보면 책읽기가 쉬워진다], [책읽기, 그 속에 길이 있다] 는 큰 제목으로 책읽기에 관한 서너 페이지의 짧은 글들이 총 50 편이 수록되어 있다. 좀 더 책을 잘 읽고 싶은 마음에서 나는 지금껏 십여 권의 '책읽기'에 관한 책을 읽었었는데, 이전의 책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전에 읽은 책들이 하나같이 책읽기에 대한 예찬론이 가득했다면, 이 책은 책읽기보다는 '책즐기기'에 가까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저자의 생활이 뭍어 있는 글 속에서 항상 존재하는 책 이야기, 그리고 책을 통해 얻고 있는 느낌들이 에세이 형식으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한 편 한 편의 막간마다 한 페이지로 정리된 <책 리뷰>를 읽는 맛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여러 장르의 좋은 책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앞의 글을 보충하는 듯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는 책 내용은 '찾아 읽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500 자 짜리 리뷰를 써야 한다면 이처럼 써야 하지 않을까? 50 편의 글들도 저자의 말대로 그의 책읽기는 자신의 생활에 잘 녹아들어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조용하고 잔잔하게 읽히는 맛은 어느 수필집 못지 않았고, 책읽기에 어려움을 표하는 독자들에게 청량감을 줄 만큼 쉽고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설득력을 더하고 있었다. 

  저자는 '책을 읽어도 바로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독자들의 불안에 대해 '학습된 무력감'이 작용되어 '읽어봤자 별 소용없다'는 느낌을 준다면서 '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고' 한 권, 두 권 늘려가다 보면 어느날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변해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며 안심시킨다. 이것은 나 역시도 책을 읽는 초심자들에게 ' 빈그릇이 넘치려면 어느 정도 물이 차야 한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그 밖에도 책을 온전히 소화하기 위해서는 책을 사서 읽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읽으면서 외우고 싶은 말을 표시하고, 논평하고 싶은 부분에는 낙서를 해서 또 다른 '나만의 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점, 독자인 내가 비록 저자보다 생각은 짧다 하더라도 느끼기에 건강하지 못한 책에는 과감하게 '아니다'라고 거부해야 한다는 것, 때로 슬럼프나 생활 면에서 의미있는 시간들과 열심히 책읽기에 브레이크가 걸린다면 한쪽으로 치우치지(주로 책읽기에 치우쳤지만) 말고, 균형잡힌 시각을 갖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등 책을 읽으면서 고민했던 부분들을 잘 짚어주고 있었다. 책읽기에 대한 깊은 내공이 아니라면 이런 대답들은 이렇게 편하게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미래를 위한 자기발전 독서법'이라는 부제는 이 책을 잘 설명하는 말이다. 책읽기를 하면서 '읽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인지, 아니면 서재에 책을 꽂는 재미에 빠져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또 한 때는 '리뷰쓰는 재미'에 빠져 리뷰를 쓰기 위해 소재용으로 책을 읽었던 적도 있었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 '책읽는 행위'는 건전하고 건강하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책'을 읽는다면 이보다 더 생산적인 일이 또 있을까? 특히 요즘같은 불황에 자기발전적 책읽기는 더할 나위없이 경제적이고 바람직한 문화활동이요, 자기계발 활동이 아닐 수 없다.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 책을 읽고 싶다'면 가장 먼저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책읽기가 더욱 의미있고 재미있어 질 것이다. 페이지마다 새기고 싶은 말들이 가득했던 책, 책좋아하는 이 놈을 행복하게 만든 책이었다. 그가 쓴 또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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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니뿌니 2009-03-16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을 읽은지 얼마되지않은 한사람으로써..리치보이님의 글이 아주..공감이 갑니다.

단지 책읽기가 좋은책을 소유하기 위해서..올한해 목표로 몇권의 책읽기를 마음먹은 저에게.

소유보다는..진정한 책읽기의 의미와 방법을 깨우치게 한 책이기도 합니다..

그 속에 소개된..49권의 책 또한 읽어보고 싶다는..욕심또한 살짝 생겼구요^^;

늘 보고만..혼자 생각하고 지나치는.저에게..이런글을 쓸수 있는 용기를..줄만큼의..

좋은책이라 생각합니다...저 혼자만이 아닌..많은분들이 이 책을 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부자 매뉴얼 - 위기를 기회로 삼는 부자들의 투자전략 부자학 연구학회 총서 4
한동철 외 지음 / 북웨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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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어울리지 않는 실망스러운 책
 

  요즘같은 불경기에 '부자'는 없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에 어쩌면 늘 없을지도 모르지만, 지난 해 상반기와 비교해 부가 증가하기보다는 거의 줄었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안정적이지 못해서 스스로를 부자인지 아닌지 평가하기조차 힘든 지금, '부자' 운운하는 것은 쌩뚱맞고 바보같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부자 매뉴얼>을 만났을 때도 '지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나온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쏟아지는 지난 하루의 소식인 신문은 마치 투자자들에게 있어 시체공시소의 열람일지처럼 '악재'로 가득한 요즘 부자 매뉴얼이라니... '위기를 기회로 삼는 부자들의 투자전략'이라는 부제가 출간에 즈음 한 변辯 이라고 하지만 고개는 여전히 갸우뚱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부자학을 만든 한동철 교수와 좀처럼 책에서 만날 수 없는 서기수 씨의 이름이 여섯 명의 저자에 등재되어 있어 펼쳐보기로 했다.

  이 책은 주요투자종목인 주식, 증권, 채권, 펀드, 부동산의 전문가와 부자학 전문가 여섯명이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터득한 부자되는 기술을 컴팩트하게 구성한 책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이미 나온 투자서들에서 언급했거나 비슷한 내용들을 주를 이루고 있었다. <부자학 연구학회 총서 4편>이라는 제호같은 표시처럼 '부자학 원론' 수준을 벗어나질 못했다. 신문에서나 만날 것 같은 평이한 내용, 불분명한 사례, 특별할 것 없는 구성은 저자들의 명성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실망을 안겨줬다. 뭔가 특별할 것을 바랐던 마음이 애당초 틀린 생각일지 모르지만, 해도 너무 했다.

  요즘같은 세계경제위기 상황에 갖추어야 할 투자마인드를 기대한 것도 사실인데, 아예 언급조차 없어 오래전에 원고를 마련해 두었던가, 혹은 '강의용' 교재로 사용할 목적으로 출간된 것 같았다. 특히 제 5장 <부자들에게 배우는 투자전략>은 서술방식이나 글의 내용이 무척이나 조악하고 유치해서 앞서 충실하게 읽은 내용까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개개인으로 본다면 재테크와 부자학에 있어서 뛰어난 전문가이자 자문위원일지 모르지만, 이 책은 아고라와 경제카페의 논객들의 글보다 수준이 낮았다. 독자들로 하여금 현실에서 직접 활용할 수 있는 현실의 방법들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는 저자들의 말이 의심스럽다. 눈 여겨볼 만한 몇 군데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전체적인 조악함에 그마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정말 실망스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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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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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사랑을 안 멋진 사내 오스카 와오, 몸으로 답했다 



  미지未知. 알지 못함은 암흑이다. '모른다'는 말은 '안다'는 말과 늘 동행하면서 '앎'을 추앙한다. 앎의 대상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관심이 없다는 '상관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관심은 있으면서 모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알고 싶어 답답해지고, 괴로워진다. 나아가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럴 땐 '뭘 모르는 지 조차도 모르는' 것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아는 것도 정도가 있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알 수도 있고, 지나가는 행인의 속삭임처럼 한 번 들어봤음도 있다. 이런 어설프니들의 '앎'은 차라리 모르는 것 만도 못하다. 그래서 뭔가 확실하게 아는 자는 멋지다. 

  누군가 사랑을 아는가? 라고 묻는다면 아직도 대답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대상을 생각함에 잠시 숨이 멎고, 먹먹해지는 가슴통痛이 그것 아닌가 물을까, 비올 듯 흐린 하늘에서도 꽃만 꽂으면 딱 광녀일 것 같은 흐드러진 미소를 품게 하는 것이라 말할까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했던 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것이 사랑일까, 내가 아는 것이 과연 사랑일까, '사랑은 이거다'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아직 모르겠다. 

  여기 뜨거운 사랑을 하고 알아 낸 젊은이가 있다. 받아주는 이 한 명 없지만 순간 순간 자신의 사랑을 던진 청년. 거부하고 싶은 사랑고백은 추태이고, 원하지 않는 구애는 스토킹이라 했던가? 모두가 그 청년의 사랑을 거부했지만 그만두지 않았다. 결국은 사랑을 경험한 사람. 사랑과 열정의 나라, 밥은 굶어도 사랑은 해야 하는 나라 도미니카 청년 오스카 와오의 사랑을 들어 봤다.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원제는   이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2008년 퓰리쳐 상을 수상했다.The Brief Wondrous Life of Oscar Wao
  





  소설가의 가능성에 대해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밀란 쿤데라"소설가에게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헨리 필딩처럼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귀스타브 플로베르처럼 이야기를 묘사하거나, 로베르트 무질처럼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이다." 고 말한 바 있다. 밀란 쿤데라의 말대로 라면 주노 디아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묘사하고, 생각하는 힘을 지닌 독특한 소설가다. 뒤집어지는 웃음 속에 페이소스가 뭍어나게 하고, 신파극의 변사처럼 일인다역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독자를 청중인 듯 말을 걸기도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스무 페이지짜리 주석과 네 페이지 짜리 감사의 글(정말 순수하게 이름만 부르며 고마워하고 있다)이 달린 소설이라니, 거듭된 파격에 어리둥절하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제목에도 언급된 주인공 오스카 와오다. 오스카 데 레온은 시셋말로 전형적인 비호감이다. 140킬로그램의 몸무게와 여드름투성이, SF 장르소설과 롤플레잉 게임, 만화책, 판타지 소설에 빠져사는 오타쿠 청년은 모든 여성들의 혐오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는 단지 사랑을 하고 싶은 남자다.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무작정 달려 들어 '판타지 소설'의 대사같은 대화로 사랑을 고백하며 접근해 변태 찌질이 취급을 받아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 키스 한 번 해보지 못했지만 오스카는 단지 사랑을 하고 싶은 남자이다. 

  소설은 화자 유니오르가 마음 내키는 대로 시간을 거슬르며 인물을 불러내고, 빠른 장면 전환과 낯선 사건과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독자의 눈을 휘둥그레 만든다. '오스카 가족 3대에 걸친 푸쿠와 사랑의 이중주적 서사시'라 할 만큼 소개되는 주인공들은 모두 독특한 사랑을 하고 불쌍한 비극을 맞이한다. 그들에게 펼쳐진 불행의 원흉은 푸쿠, 즉 실제로 도미니카를 31년간 독재로 휘두른 라파엘 트루히요의 저주 때문이라고 유니오르는 말했다. 처음 듣는 지명, 어려운 이름, 그리고 독특한 오스카의 성향 덕에 엄청난 SF 소설 대사와 의미들을 추적하고 인내하며 읽은 이유는 오스카 가족의 불행한 연애사가 한국의 여염집 과거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냉전체제의 1960년대 제 3 세계 국가들 중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이끌고 있는 국가들의 특징은 '군부' 그리고 '독재'였다. 통치자들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밀고자'로 만들었고, 반대세력에게는 '응분의 조치'를 취했다. 소설 속에 언급된 트루히요의 푸쿠처럼 이 땅의 자식들도 '인권'을 주장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지금도 실종인 채로 남아있다. 독재자를 위한 성상납도, 누명에 의한 숙청도 이 땅에 엄연히 존재했던 불행한 과거였다. 트루히요의 독재 뒤에는 미국 정부의 비호가 있었는데, 미국과 트루히요가 내린 저주에 희생된 가족이야기가 미국인들에 의해 '상을 받다'니 얄궃은 아이러니다. 그가 미국으로 이민하지 않고 이 작품을 도미니카에서 냈다면 과연 퓰리처 상이 돌아갔을까? 트루히요의 저주로 출간마저 불투명하진 않았을까? 궁금해졌다. 

  억장 무너지듯 가슴 아픈 오스카의 가족사는 이야기꾼 유니오르(사실은 저자 주노 디아스가 되겠지만)에 의해 영화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웃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로 희화된다. 그리고 그의 입을 통해 푸쿠로 인한 가족의 불행 속에서도 '사랑'이라는 명제 때문에 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녹여내고 있다. 주인공 오스카 와오이 과연 사랑을 할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은 점점 더해져 독자로 하여금 화가 날 만큼 고조시키지만, 어처구니 없는 반전은 '역시!'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한참 낄낄거리며 웃다 보면 불행과 행복의 구분, 사랑과 단순한 욕정의 구분은 모호해지고 보이지 않는 독재의 저주와 이루고 말겠다는 사랑에 대한 열정에 모를 듯 알 것 같은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독자인 나는 작가의 이야기 솜씨에 빠져 들어 단 둘이 앉아 귀를 세우고 듣고 있는 듯 하고, 그가 질문하면 답을 하고, 그가 외치면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또한 남녀 상열지사에 중요한 모티브를 두고 그 속에서 진정한 '사랑'은 누가 했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물론 승리자는 오스카 와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사랑의 다른 이름은 '인생'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생의 기쁨에 대해 오스카는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게 바로 이런 거로군! 젠장!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되다니, 이토록 아름다운 걸!" 라고 고백했다. 
 

"인생이란 그런거다 아무리 열심히 행복을 모아봤자 아무것도 아닌 듯 쓸려가버린다.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난 세상에 저주 따윈 없다고 대답하겠다. 삶이 있을 뿐. 그걸로 충분하다고."
 

  결국 일생을 두고 사랑을 추적했던 추하고 못한 오스카는 잘나고 멋진 가족들이 이루지 못한 사랑을 찾았다. 절대로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오스카는 "결국이라고? 결국이란 없어. 세상에 진정한 결말이란 없거든." 언젠가 자신과 같은 사랑을 찾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지독한 루히요의 푸쿠도 진정한 사랑은 어쩔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희망은 사파(푸쿠의 역주문) 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유쾌하다 할까, 슬프다 할까 감히 딱히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소설이 품어내는 놀라운 흡인력과 매력은 지금까지 내가 답을 내지 못하는 '알 듯 모르는' 사랑을 경험한 오스카 와오가 있기 때문이란 것은 확실하다. 오스카 와오는 몸으로 사랑을 말했다. 사랑을 경험하고 알아낸 오스카는 멋진 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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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포노포노의 지혜 - 하와이에서 전해지는 비밀의 치유법
이하레아카라 휴 렌.사쿠라바 마사후미 지음, 이은정 옮김, 박인재 외 감수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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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의 답은 스스로를 먼저 정화하면 풀린다, 호오포노포노 

  호오포노포노. 정확한 명칭은 '셀프 아이덴티티 호오포노포노. 하와이 주의 인간문화재인 전통 의료 스페셜리스트 '모르나 날라마쿠 시메오나에 의해 개발된 문제 해결 방법을 읽은 것은 지난 해 여름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에서 였다. 개인이 각각의 신성의 지혜와 하나가 되어 영감을 얻는다는 이 방법은 '미안해요, 용서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라는 말을 고백함으로써 실현되는 문제 해결 방법이다.  

  우연하게 읽은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에서 뜻하지 않은 불행을 만났거나, 기분 나쁜 일을 만났을 때 위의 네 마디를 외워 스스로를 정화하는 습관을 가졌더랬다. 호오포노포노는  제로 상태에서는 어떤 생각도, 말도, 행동도, 기억도, 고정관념도, 믿음도,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데,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독자는 온전한 책임, 스스로를 치유한다는 것의 의미, 치유와 정화를 가져오는 '미안해요' , '용서해요', '고마워요(감사해요)', '사랑해요'라는 말의 힘, 그리고 '평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의 의미를 가슴으로 느끼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학생들도 아는 기본적인 예의어들인 이것들이 스스로를 치유하고 정화를 가져온다는 말이다.  

  이 책의 '범죄를 저지른 정신장애자 수용 병동에서의 정화'편은 호오포노포노의 과정을 잘 설명해준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범죄자들의 수용소에서 그가 치유사로 근무하면서 얼마 되지 않아 난동등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교화되는 모습들을 보여 더이상 족쇄와 수갑등이 필요없게 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치유자가 그들에게 한 것은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내내 마음속으로 '미안해요' , '용서해요', '고마워요(감사해요)', '사랑해요'라는 말을 되풀이한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목적 즉, 교화를 바라거나, 그로 인해 자신이 유명해지거나, 편해지려고 한 것이 아니라 치유자가 접하게 된 정신병동의 환자들을 보게 된 그 순간부터 그들의 모습이 자신의 탓으로 놓고, 내가 그들이 느끼는 것을 함께 느끼며 그들의 고통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함께 공유하는 그 아픔을 비워낸다면 그들에서도 그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미안해요, 용서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호오포노포노]라고 하는 하와이안들의 신비로운 주문의 문제 해결 방식은 자신과 타인의 고민과 고통을, 그리고 희망과 소원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를 알려준 것 같다. 진정 알아야 그것을 얻을 수 있고, 치료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어떤 문제나 상황 앞에서든 온전한 책임을 지고 치유를 선택할 힘이 나에게 있다는 것은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치유자인 휴 렌은 "호오포노포노는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인류로서 우리의 삶의 목적에 대한 더 넓은 이해와 깊은 통찰의 문을 열어줍니다"라고 말했다.  

  이 책은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에 이어 좀 더 자세하게 호오포노포노를 설명하고,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를테면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에 대처하기 위한 뫼비우스의 띠 명상법'이라든지, 고혈압 치료에 효과적인 명상법 등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호오포노포노를 직접 체험한 사람들의 증언들을 실어서 다양한 케이스에서 활용되고 실제로 입증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었다.  

  저자 역시 처음에는 너무나 황당하고 단순해서 '사이비종교'가 아닌가 많은 의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여러 번 경험하고 체험하면서 누구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화'하는 또 다른 '명상법'임을 확인하게 되고, 이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모든 형이상학적인 것이 그렇듯, 종교가 그렇듯 믿고자 하면 믿을 수 있고 의심하고자 하면 터무니없는 눈속임같다. 믿고 믿지 않고는 나름의 선택이지만 이 책을 읽은 나로서는 지난 해 읽은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이 개인적 마음수양에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이 책을 집게 된 동기를 부여했다. 마음의 괴로움을 털고 싶다면 '호오포노포노'를 부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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