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한 그녀의 에로틱한 글쓰기
이요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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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에로틱한 사람도 로맨틱하게 만든다? 

  중학 시절, [하이틴]이라는 학생잡지를 즐겼던 때가 있다. 그 책에 무슨 내용이 들어 있었길래 열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잡지 한가운데 두꺼운 마분지로 만들어진 당대의 아이돌 스타들 사진은 책을 펴면 제일 먼저 봤던 기사였다. 피비 케이츠, 브룩 쉴즈, 소피 마르소등 세계 최고의 하이틴 배우들의 야릇한 미소는 사춘기를 막 벗어난 여드름투성이의 중등이에겐 울렁거리는 모습이기에 충분했다.

  잡지의 하이라이트는 후반부에 있는 로맨스소설. 처음에는 그냥 지나치다가 우연히 읽은 후엔 과월호를 뒤져서 찾아 읽을 만큼 재미있고, 흡인력이 강했다. 통속소설을 난생 처음 읽은 느낌은 설탕맛을 알게 된 어린아이의 느낌이랄까? 귀가 번쩍 뜨이고 눈이 커지는 듯한 놀라움 자체였다.

그후로 박범신, 김홍신, 이규형등 당시의 청춘소설을 섭렵했었는데, 어찌나 즐겨 읽었던지 읽어가는 소설 수에 반비례하는 학과성적 때문에 아버지의 몽둥이에 못이겨 결국은 소설읽기를 그만 두었다. 나의 통속소설에 대한 기억은 그렇다. 우연히 제목에 끌려 집어든 소설, 『로맨틱한 그녀의 에로틱한 글쓰기』를 집어들었을 때 그 시절이 생각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에로소설계의 톨스토이’로 불리는 유명한 32살의 예쁘지 않은 노처녀 에로작가 오자인과 옆집남자 완소남 장호수. 그 둘의 만남은 우연치고는 얄궃기만 하다. 장호수의 직업은 배우이며 배경 또한 심하게 착한데, 그는 에로작가인 그녀의 열렬한 팬이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데는 에피소드도 많고 시간이 걸렸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풋풋하고 예쁜 사랑을 그려냈다. 박장대소보다는 신웃음, 감동보다는 느낌으로 다가와 읽는 내내 잔잔히 스며드는 설레임과 애틋함은 어린시절의 그때같아서 기분이 묘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주인공과 소설의 내용이 동경의 대상이었던 어린시절과 달리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면 잘 될까?’, ‘나름 콘텐츠로 쓰이면 괜찮겠다’ 등 읽는 내내 잡생각으로 얼룩졌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을 수 있던 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가슴 저 깊이 꿈꾸는 로맨스가 있기 때문일게다. 

마치 60의 어머니가 인기리에 방영중인 “꽃보다 남자” 라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시간에 맞춰 티비 앞에 최대한 가까이 앉으시고, ‘어머머...저를 어째!’ 등등의 감탄사를 연발하시며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세대와 나이를 떠나 모두에게 ‘꿈꾸는 로맨스’는 남아있을게다. 

전형적인 로맨스소설, 그래서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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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저작권 침해 중 - 재밌고 이해하기 쉬운 저작권 이야기
오익재 지음 / 성안당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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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저작권 침해중 일지도 모릅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 봤을 법한 '저작권 문제'를 다룬 '저작권법'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스토리텔링 기법을 사용하여 사례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학습도 겸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 오늘날을 Web 2.0 시대라 할 만큼 글과 그림을 통해 자신의 의사나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많은 이때에 '저작권'에 대한 전반을 알지 못하면 자칫 '범죄자'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어 유심히 읽어 보았다.

  전체적인 구성은 인터넷, 사진, 출판, 만화, 게임, 마케팅, 캐릭터, 콘텐츠 수출, 음악, 영화, 방송과 관련된 저작권을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창작활동을 위한 저작권도 따로 마련해 두었다. 포털사이트의 '검색'을 통해 '~라 하더라'는 근거없는 '저작권'의 소문들을 불식시키고 구체적으로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출판과 저작권]에 관심이 많았는데, 오래된 작품의 저작권, 출판계약의 프로세스, 소설의 표절시비, 유머집/백과사전등은 과연 저작물인가, e-book의 저작권등 평소에 궁금했던 내용들을 속시원히 알 수 있었다. 

  최근 저작권 관련 소송에 휘말리게 되면 소송취하비용만 50~100 만원이 든다고 한다. 잘 몰라서 사용했다고 사정해서 취하한다고 해도 그정도라고 한다면, 약간의 비용과 시간을 들여 한 번쯤 읽어보는 것이 경제적이고 현명한 판단이 아닐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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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있다고, 하루키가 고백했다 - 말의 권위자 다카시가 들여다본 일본 소설 속 사랑 언어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윤정 옮김 / 글담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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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소설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대화' 모음집...
 

  인류 최대의 관심사, 그것은 '사랑'이다. 사람들은 '사랑'하면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다른 이유로도 행복해지지만 가장 행복할 때는 '사랑을 할 때' 즉, 사랑하고 있을 때, 사랑받고 있을 때(이 둘을 동시에 취하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당장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할 때라고 이야기한다. "나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짜 '사랑'하고 죽는다면 소원이 없겠다." 칠순 넘어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살아 생전 늘 하시던 말씀이다.

   사랑은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사랑은 무한정 오래지도 않은 듯도 하다. 무한하다고 말하고 또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를 설명할 길은 많지 않다. 사랑은 보이질 않아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대상과 유효기간을 떠나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행복해 보여 부러워진다. '이 사람은 누굴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 하지만 전혀 부럽지 않을 때가 있다. 아예 상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을 때다.

  갈구하면 할수록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어려워서 오래 살수록 그만큼 소중해지는 것 또한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하고 있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사랑'을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운운하는 사랑이나, 시답지 않은 노래속에 들어 있는 것들과 '도매급' 취급 받을까 두렵고, 입밖으로 꺼내 놓는 순간 퇴색되어버릴까 두려워 고백하기 힘든지도 모른다. 그중에는 슬픈 사랑도 있는데 '내가 느낀 사랑을 상대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두려워(고백하기 전까지는 혼자서 사랑할 수 있었지만, 고백한 후 거절받았다면 그 후에도 사랑하게 되면 범죄자 취급도 받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병이 날 만큼 앓기도 한다. 사람들은 사랑하지 못해 애를 태우기도 하지만, 사랑을 온전히 전하지 못해 애를 태운다. 아무도 "당신은 지금 사랑하고 있고, 온전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은 정답이 없는 때문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사람들도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언어(말)에서 만큼은 소극적인 사랑을 한다. 알게 되고 자주 만나면 보통 '사귄다'고 느끼는 우리네와는 그들의 교제에는 '(나와) 사귀어 줄래(요)?つきあってください’(츠키앗떼 쿠다사이) 고백의 절차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사랑 愛あい이라는 엄연한 단어를 두고도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는 '좋아하다'는 단어인 すきだ(스키다)를 사용한다. 우리는 '애인'이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일본에서 그렇게 드러내놓고 愛人あいじん(아이진)이라고 말한다면 '불륜상대'를 뜻한다. 그래서 그들은 '애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혹은 그녀라는 표현의 그(彼かれ・彼氏かれし) 라고말하고 그녀(彼女かのじょ)라고 표현한다. 그런 탓에 일본의 애정소설이나 영화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찾기는 매우 힘들다. 대놓고 '사랑한다'고 말하면 속시원할텐데 쫄이는 듯 뜸들이는 그들의 사랑에 대해 필자는 늘 답답하고 멍청하다고 느끼면서도 결국 '색다르다' 혹은 '순수하다'고까지 생각하게 하는데, 필자가 일본소설과 일본영화를 즐기는 매력은 이때문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드러내놓고 사랑을 말하는 일본 책'을 한 권 만났다. 혼자였을 때라면 '사랑? 흥, 그 따위 것은 지나가는 개나 줘버려!' 하며 일본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 結婚できない男'의 주인공 쿠와노 신스케(아베 히로시 분)처럼 빈정가득한 썩은 미소로 지나쳤을 테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그 어느때보다 많이 사용하고 있고 느끼고 있는 지금(필자는 연애중이다)은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랐다. 

  일본문학 특히 대학시절 그의 작품이라면 단편집까지 모두 찾아 읽었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중심으로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랑을 논하는 책인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전차남'같은 소설, 드라마,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일본의 국민소설들도 소개되었다. 사이토 다카시의 <사랑하고 있다고, 하루키가 고백했다>이다. 원제, 恋愛力―「モテる人」はここがちがう 연애력 - (애인을) 가진 사람은 여기가 다르다 이다.  





  이 책에 소개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상실의 시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이다. 그리고 이 소설들에 숨어 있는 사랑에 대해 '이제 됐다고, 배가 터질 것 같다고, 잘 먹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랑(상실의 시대)', '네가 내 안에 들어왔고, 그런 너를 내 안에 품었지만 네가 떠나고 싶으니, 잘 가라고 말하는 사랑'(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사랑했던 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이미 죽고 없다는 것도, 결국 무엇 하나 끝나지 않는 사랑(1973년의 핀볼)' 이라고 저자는 정의했다. 저자는 하루키의 소설에 푹 빠져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이 책을 쓴 것만 같았다. 

다른 책들도 소개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는 '발꿈치에 밀리고 발끝에 채이다 언젠가 세상 끄트머리로 밀려날 것 같은 사랑' 이 있다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속에는 '자신의 가슴 깊은 곳이 시큼해질 정도로 자신의 사랑에 질투를 느끼는 사랑'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실화'이고, 오늘날 일본인의 (실제로 표현하지 못하는)사랑을 잘 표현했다고 하는 <전차남>에는 '화염방사기로 단숨에 숲을 태우는 게 아니라 한 그루 한 그루 묘목에 불을 붙여 나가는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소설 속 사랑을 한 줄의 문장으로 표현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텐데, 소설들을 이미 읽어 본 필자의 입장에서는 구구절절 잘 표현한 문장들이라고 생각됐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우선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을 '영화소개 프로그램'의 나레이터처럼 소개하면서 그 속에 숨어있는 '결정적 사랑 장면'을 보여주며 소설 속 주인공들의 다양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설<상실의 시대> 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대화 장면를 살펴보자.

 

"더 멋진 말을 해줘요."

"네가 너무 좋아, 미도리."

"얼마만큼 좋아?"

"봄날의 곰만큼 좋아."

"봄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처럼 털이 보드랍고 눈이 또랑또랑한 귀여운 새끼 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안 하겠어요?" 하고. 그래서 너와 새끼곰은 부둥켜 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그거 참 멋지지?"

"정말 멋져."

"그만큼 네가 좋아."


  이 장면에 대해 저자는 '끔찍하게 간질이는 것도 아니고 축 처져 느슨해지는 것도 아닌 적당하게 알맞은 정말 특별한 사랑의 언어'를 사용했다며 '봄날의 곰같은 사랑스러운 언어'는 실제로 이 표현이 광고 카피로 사용되면서 <상실의 시대>는 폭발적으로 팔려 나갔다고 전했다. 하루키의 멋진 표현, '옳거니' 느껴지는 저자의 해설이었다. 

  게다가 이 소설의 여주인공 미도리가 '배 터질 것 같은 사랑'을 말해 줬던 '딸기 쇼트케이크, 때론 초콜릿 무스와 치즈케이크의 관계'도 소개되고, 드라이하고 쿨한 대사들의 대명사 <바람 노래를 들어라>, 부족한 사람의 넘치는 사랑을 이야기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녀의 사라짐은 육십 억 인류에서 보자면 분명 사소한 일이지만, 그녀의 없음으로 나 또한 육십 억 인류속에서 없어지는 것과 말하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사랑의 실패에서 오는 상처는 청춘의 한 그늘이라며 그 순간 느낀 모든 희로애락이 모두 사랑이라고 말했던 <전차남>의 명대사들이 소개되고 맛깔나게 해설되고 있었다. 일본문학 속에 숨은 그들의 사랑은 우리의 그것만큼이나 다양하고 열정적이며 아름다웠다.  

 그 밖에도 <금각사>, <산시로>, <겐지 이야기>, <선생님의 가방> 등 유명한 소설들도 등장하는데, 읽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어 그냥 넘겨버렸다. 절반을 약간 넘는 양을 읽는 맛으로도 이 책은 제 값을 다했기 때문이다.

'남의 사랑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 만큼 바보같은 짓은 없다'고 말을 하지만, 이 책에서 만큼은 말의 권위자라고 알려진 저자의 일본소설 속 사랑훈수는 '연애박사의 카운셀러'같았다. 다만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들이 이 명대사들을 만끽하기에는 부족할 만큼소설이 소개된 점은 아쉽다. 하지만 일본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한다면 소설을 다시 추억하고, 명대사들을 음미하기엔 충분한 책이었다. 사랑의 힘이 무엇인지, 사랑의 힘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랑을 주고 떠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저자도 이 책에서 이야기했지만, 다양한 모습, 다양한 상황의 사랑얘기를 통해 '어떤 모습이든 사랑한다면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을 했다.

  '애정소설을 말하는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신기한 필자는 이 또한 '사랑력' 때문이 아닐까 애써 변명하고 싶다. '사랑할 때는 누구나 시인詩人이 된다'고 세익스피어가 말했다. 벅차고 채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 힘들기에 뭉뚱그려 시詩라고 말했는 지 모르겠지만, 연애하는 이가 두근대고 울렁대는 연애의 감정을 누구든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정말 생기는 것 만은 확실하다. 새벽녘에 깨어 아침을 볼 때까지 궁싯대며 이 글을 쓰는 것도 필자에게 씌인 '시인의 욕망'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은 '알 다가도 모를 것'이고, 그래서 표현하기는 아직 서툴고 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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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미술관 -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주는 그림치유 에세이
김홍기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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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불이 켜진 약국 같은 미술관'을 소개합니다!

 
  흐리거나 비가 내린 오후엔 어김없이 인사동을 갔던 때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화를 구경하기 위해서-제가 감히 관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입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 공부할 방이 마땅치 않아 식당을 찾아주시던 서예원의 원장님 배려로 묵향 가득한 서예원에서 숙제와 시험공부를 했었는데, 그 인연으로 한국화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다가 고개를 쳐 들면 창문틀을 제외하고 사방이 붓글씨와 한국화로 그득한 묵향으로 얼룩진 벽을 둘러보는 재미에 빠져 넋을 놓은 적도 있었죠. 제가 공부를 할 땐 그림이 절 봐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장남에다가 살림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때라 '예술이 밥먹여주냐?'는 추호秋虎같은 아버지의 일갈에 붓을 놓았지만, 중학교 시절엔 사생대회에 나가 앨범과 상장도 받았던 터라 일말의 미련이 아직 남아 있나 봅니다. 제가 굳이 흐린 날을 택해 나가는 이유는 인사동 거리의 상점에 걸린 한국화를 보려면 유리에 비치는 반사광이 없어야 하거든요. 멀뚱히 서서 유리창 너머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머리 속에 묵향이 피어 납니다. 그리고 그림을 쫓다 보면 화가가 어디 쯤에서 붓을 들고 다시 먹을 찍었는지도, 무슨 색을 덧입혔는지도 알게 됩니다. 가만히 그림을 보고 있자면 어린시절의 내모습이 보인답니다. 어쩌면 흐린 날에 인사동을 찾는 이유는 '조금씩 잃어가는 나'를 주으러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해 부터는 미술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카페의 주선으로 우연히 참석하게 된 후 자주는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찾아가 '구경'을 합니다. 정말 즐거운 경험이에요. 주말이나 방학땐 아이들이 많아 정신이 없더군요. -그랬던 적이 없는 저에겐 어린 나이에 명화들을 구경하는 아이들이 마냥 부럽기도 한 순간이죠- 그래서 평일 점심시간을 전후로 찾아가 마음껏 구경을 하곤 합니다. 작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멍청히 서서 그림을 쳐다보고 있자면 '막연한 감'마저 듭니다. 누가, 언제, 무엇을 그렸는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휴대용 마이크를 들고 무리를 이끌며 설명하는 분을 쫓아서 구경하긴 싫더군요. 그 분이 설명하는 만큼만 보여서 입니다. 내가 시간을 들이고 발품을 팔아 찾아온 이유는 그냥 구경하러 온 것이지 설명들고 외우러 온 것은 아니거든요. 말 그대로 바보스럽게 '구경'하고 싶어서 거든요. 내 맘대로 구경하고 내 맘대로 느끼다 가면 그게 '좋은 구경' 아닐까요? 예,예. 저 진짜 어쩔 수 없는 예술맹盲 입니다.^^;

  지난 해 정말 멋들어진 책 한 권을 만났더랬습니다. 포털 사이트 Daum에서 1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블로그,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 쥔장 김홍기씨가 쓴 책 인데요, [샤넬, 미술관에 가다]라는 책입니다. 세계적인 명화에 대한 시선을 갸우뚱하게 쳐다 보며  '최고의 화가가 당시 첨단 패션으로 무장된 최고의 모델을 그린 화보'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명화속에서 당대의 복식과 패션을 찾아낸 그림과 글이 가득한 책이었죠. Daum의 파워블로거인 저자의 실력답게 엄청난 구독자와 언론에게서 작년에 많은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주는 그림치유 에세이'라는 부제로 [하하 미술관]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명화를 설명할 정도의 심미안과 깊은 감성을 가진 김홍기씨를 다시 만날 기회인데, 예술의 문외한인 제가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흥미롭습니다. 이번에는 '국내작가들의 작품'으로만 구성했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정서를 한국미술가들의 작품으로 감성의 공감대를 만들어보려고 했다는데, 멋들어진 기획과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책 읽어주는 남자'를 진행하고 있는 저자가 이번엔 '그림 읽어주는 남자'로 변신한 겁니다. 



Daum 블로그에서 파워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는 김홍기님의 블로그 


  아는 것도 많고, 실력도 월등하고, 게다가 인물도 훌륭한 동년배 비슷한 이런 치(?)들을 보면 그림을 구경하는 수준의 저는 은근히 부화가 납니다. 하지만 어쩝니까? '적이지만 훌륭하다'고 한마디하고 한 수 배울 수 밖에요. 사흘 전 읽기 시작해서 오늘 밤을 하얗게 새우면서 이 책을 덮었습니다. 이 책 역시 '멋진 책'입니다. 저로서는 '적'으로조차 여길 수 없는 놀라운 '깜량'의 대단한 인물이 만든 책이었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은 웃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내 인생의 화양연화, 거울 앞에 선 당신에게, 세상의 모든 시름들아 우리의 희로애락을 말하는 듯한 주제로 모두 27 편의 작은 제목에 27 명의 한국 미술작품을 소개했습니다. 한 쪽 한 쪽 마다 멋지고 놀라운 그림과 글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꿈보다 해몽' 이라 했나요? 저로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작가들의 작품들이 제 눈을 사로 잡았지만, 어느 분의 말처럼 저자인 김홍기씨는 '아름다움을 마음 가득 느끼며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바를 명확하게 글로, 말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린 작가들을 직접 찾아가 작가노트를 베끼고, 작품 설명을 들은 저자답게 한 작품을 오롯이 다시 글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글을 읽다가 보면 그림을 읽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으니까요. 저자는 '그림 읽어주는 남자'이기를 자청했지만 자세히 보면 자신과 주변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피곤하고 고독한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구경'하면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실 미술관에서 한 작품 앞에서 몇 분 동안 서 있는 '관람객'을 보고 '빨리 빨리 비켜주지 않고 예의없이 멀뚱거리고...쯧쯔..' 하며 불평을 했더랬는데, 이제야 그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작품을 들여다 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작품 속에서 자신을 치유하고 있었습니다. 작품을 보고 울고, 웃고, 미소짓고, 끄덕이며 '나'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저도 이 책에서 '나와 내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6년 전 우울증에 빠졌던 제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면서 지었던 이름이 Richboy였는데, 온라인 속에서라도 한없이 넉넉한 마음을 갖고 있는 소년이 되고 싶어서 였습니다. 그래서 소년을 그린 그림들도 거의 웃는 모습이었죠. 우울해서 그린 그림은 웃는 모습이었고, 그림을 모두 그리고 미소지었습니다. 이 책의 표지에서 등장하는 [이순구님의 웃는 소년]은 마찬가지로 저로 하여금 미소를 번지게 합니다. 마음도 1도 따뜻해 졌습니다. 그리고 [전영근님의 여행]"낚시의 즐거움이란 월척을 낚는 기쁨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여행장비를 모두 갖추고 세상을 잊고 떠날 채비를 모든 끝내고 설래는 마음으로 대문을 나설 때"라는 존경하는 형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김순철님의 About Wish 0890]은 한도 끝도 없이 손만 넣으면 튀어나오는 '화수분'같아서 '희망'을 느끼게 했고요, [조장은님의 기억이 안 납니다]를 비롯한 그분의 그림들은 지금은 50을 넘긴 '골치덩이'였던 우리 고모의 처녀시절을 기억나게 했습니다. [주정아]님의 작품들은 어떻구요? 저 역시 '싱글천국 커플지옥' 을 외치며 길거리를 매운 가득 매운 '쌍쌍커플'들을 마구마구 저주(?)했던 얄궃은 때를 기억나게 합니다. 





  이 책 속에서 그림을 읽고, 글을 보고 있으면-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여인女人이 아니라 餘(남을 여)人이 되어버린 울 엄니도 나오고, 밖에서는 상사와 고객의 눈치만 보는 능력 모자란 고문관일 지 모르지만 집에 오시면 호랭이같은 울 아버지도 나옵니다. 김연아 선수가 요정처럼 스케이트 타는 모습도 나오고요, '얼짱' 트렌드의 완결편 '플라스틱 걸Plastis Surgered Girl'도 등장합니다. 바비 인형, 고양이, 여자 아이 등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말 그대로 '없는 것 빼고' 모두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미술관을 관람하기는 참 멋진 문화생활입니다. 하지만 '시간과 비용'이 만만ㅎ지 않아 좀처럼 하기 힘든 문화생활이기도 하죠. 그래서 장사꾼인 제가 '경제학적 측면'에서 '장사치다운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바람이 있다면 '밤을 새워 문을 여는 화랑이나 미술관'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미술작품'이 보다 많은 관객에게 보여야 할텐데, 이들에게 정작 시간이 허락되는 '7 시 이후'에 볼 수 없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요? 개그맨 전유성씨는 '심야 볼링장'을 열어 볼링이라는 스포츠를 대중문화의 하나로 새로운 장을 열었고, 정동에 있는 스타식스 영화관은 밤 12시 부터 새벽까지 단돈 일 만원에 영화를 무려 세 편을 보여주어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심야 영화의 명소로 각광을 받은 바 있습니다. '미술관과 화랑'은 안될까요? 제가 '천박한 상업적 발상'으로 감히 예술을 들먹인 것인가요?

 
  늦은 밤까지, 아니면 편의점처럼 24시간 동안 운영되는 미술관이나 화랑이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미술 구경하기에 맛들린 저같은 사람들이나 미술을 사랑하는 많은 애호가들이 좋아할 겁니다. 미술가들도 좋아할 것 같습니다. 무슨 좋은 방법 없을까요? 
 

아직은 없으니 아쉬운 대로 제가 대안을 제시할께요. 미술관을 옮겨 놓은 책을 구하세요. 그래서 허락되는 시간에, 지하철, 공원, 심지어 화장실까지 어디든 내키는 장소에서 그 책을 펴세요. 펴는 순간 여러분은 미술관에 온 겁니다. 마음껏 만끽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책을 볼 지 모르겠다면 제일 먼저 이 책을 권하고 싶네요. 마음에 담겨진 응어리도 풀어줄 책이니까요. 24시간 불이 켜진 약방같은 미술관, 바로 이 책을 보고 읽으면서 생각난 말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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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역마살 인생 김병택의 대화체 소설 1
김병택 지음 / 이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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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뚱한 한국인 사업가의 좌충우돌 미국 성공스토리!

 

  모처럼 참 유익하고 반가운 책을 만났다. 자신의 잘 나지도 않지만 평범하지도 않은 60 평생의 이야기를 한 권으로 엮은 일종의 자서전인데 재미있기가 말할 수 없을 만큼이다. 이 책을 만든 동기 또한 재미있다. 자수성가로 사업에 성공한 중년의 저자는 어느 날 우울증에 걸리고 정신과 의사인 닥터 주를 만났는데, 의사는 자신의 삶을 글로 쓸 것을 권유 받는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저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토해 놓음으로써 스스로 치유하게 하는 정신치료 방법중 하나인 '치유의 글쓰기'의 산물인데 일정 정도 거리감을 둔 대화체의 글로 써져서 더욱 친숙하게 읽혔다. 
 

  한국전쟁을 겪은 직후의 어린 시절과 하고 싶은 것 많은 젊은 시절, 그리고 머나 먼 외국에서의 이민생활 등 한 곳에서 머무르지 못하는 장똘뱅이의 '역마살'처럼 살아온 중년 사내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김병택 사장[엉뚱한 역마살 인생]이다. 그는 지금 서울에서 2곳의 온천과 최초로 미국 뉴욕, 댈러스, 시카고에서 King Sauna라는 대형 불가마를 운영하고 있는 사업가다. 

 



  처음 책장을 몇 장 넘기지 못하고 한 권의 책이 계속 오버랩되어 생각났다. 지난 해 이맘 때 읽은 [부자본능, 원제 How to get Rich]이라는 책인데, 저자는 영국의 괴짜 재벌 버진 그룹의 리차드 브랜슨 회장과 쌍벽을 이룬다는 같은 나라의 출판 재벌 펠릭스 데니스의 자서전이다. 이 책을 읽었을 때 단숨에 읽은 후 리뷰를 썼는데, 제목을 '솔직담백하고 건강한 진짜 부자 이야기'라고 할 만큼 솔직한 자서전이었다. 

 
좀 더 소개하자면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무일푼 히피 청년이었던 그는 1973년 자신의 출판 사업을 시작, 이소룡 자서전 발간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면서 사업적 기반을 마련하고 그후 승승장구하여 수많은 유럽의 유명잡지를 낳는 거대 잡지 기업으로 자리 잡았으며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남성 라이프스타일 잡지인 <맥심>의 소유주가 되면서 재벌이 되었다. 그의 솔직한 자서전은 대화체에 반말로 써졌는데, 읽는 맛이 다른 책과 달라 신선했다. 어스름 저녁 편하고 좋은 분위기의 술집에서 젊은이 몇 몇을 앉혀두고, 술을 사면서 던지는 재미있는 부자의 충고를 듣는 기분이랄까? 귀에 감기듯 잘 읽히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부자본능]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배움은 짧지만 자수성가한 부자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삶을 털어놓는 책들이 우리나라에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리뷰를 쓰면서 한국인 부자들의 이야기가 없는 이유는 '부자되는 방법'을 자식에게만 알려주고 싶거나, '국세청 세무조사'를 두려운 때문은 아닐까 억측하기도 했다. 그런 글을 쓴 후 일년이 지난 지금 이 책 [엉뚱한 역마살 인생]을 만나니 내 불평에 대한 대답을 만난 듯 반갑기만 했다. 게다가 재미있게도 파란만장한 인생이나 편안한 문체 또한 그를 꼭 닮았다.

  저자는 자신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했는데, 대학노트로 7권 분량의 글을 숨김없이 기록한 때문일까? 문학 장르의 형식을 완전히 무시했다. 마치 어느 기자가 MP3 플레이어를 놓고 인터뷰를 하듯 넌즈시 질문을 던지면 이에 편하게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여느 책의 저자처럼 고상하고 인텔리함도 보이질 않는다. 질문에 안맞게 '삼천포 빠지듯' 전혀 다른 대답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독자의 수위를 조절해야 할만한 내용과 천박한 욕설도 등장하지만, 자연스러운 그의 문체가 저자와 독자의 간격을 더 좁히고 생동감있게 읽히는 매력으로 다가왔다글의 곳곳에 숨은 유머와 우스개 소리들은 책을 읽는 또 다른 맛이고, 저자의 유머 감각과 위트를 짐작하게 했다. 

  많은 이야기중에서 필자가 중점을 둔 부분은 그의 사업이야기였다. 그가 사업에 대해 처음 꺼낸 말은 '외할머니 떡도 커야 사 먹는다'는 말이었다.

"목사님의 어느 설교 중에 '외할머니 떡도 커야 사먹는다'는 말이 기억이 나. 얼핏 들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지만 나의 마음을 크게 움직여 놓았지. 외할머니 떡도 사먹는다? 원래 외할머니 떡은 그냥 먹는 거잖아. 그렇지만 돈 주고 사먹으라면, 외할머니 떡도 작으면 안 사먹는다 이런 얘기야. 정말 무서운 말이지 않니?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다 알겠지만, 실천할 수 없다면 사업이나 인생에 큰 성공은 절대 기대하지 마."

  교육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도 무엇을 하든 성공하는데 부족함은 없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만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힘'이라고 저자는 강조했다. 그는 도둑질, 고물(탄피)수집, 무림고수로의 수련, 제주도 목장사업, 의류사업, 불가마사업까지 다양한 직업을 넘나들며 경험했지만, 이들의 한가지 공통점은 '끊임없이 실천'하는 삶이다. 그는 지금 서 있는 현실은 그가 만든 역사의 소산물임을 알았다. 그래서 평생의 모든 것을 부끄럼없이 당당하게 밝힌 게 아닐까? 직업의 귀천을 떠나 꾸준하고 성실한 실천으로 오늘까지 살아있음을 증명한 그의 삶이 부러워지는 대목이었다.

  이어서 그는 '물건값은 손님이 매긴다'고 말한다.

"좋은 물건을 사 가야 그 가게가 기억에 남지, 걸레를 사 가면 좋은 기억나겠어? 경제학자가 모르는 게 바로 그런 거야. 그런 건 학교에서도 안 가르쳐 주거든. 경제학자가 경제흐름은 잘 알아도 실제적인 건 몰라. 경제학자더러 장사해 보라고 해봐. 아마 젬병일걸? 나는 물건값은 주인이 매긴다고 생각 안 해. 물건값은 손님이 매겨 주는 거야. 그리고 손님이 매기는 값이 정확한 거야. 장사꾼이 손해야 보겠니? 손님에게 기분 좋게, 싸게 공급하는 거지...(중략)... 장사가 잘 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또 깨달았지.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잖아. '결과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 멋지지 않니? 뒤집어 생각하면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자연히 따라오게 된다는 뜻이니,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지?"

오늘날 '소비자 권장 가격'이라는 이름으로 제 맘대로 제품에 가격을 매긴 기업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 같았다. 소비자는 어느 누구도 가격을 정하지 않았는데, 생산자가 맘대로 정해 놓고는 팔리지 않을 때 '할인', '세일'이라며 가격을 낮추고는 기업들을 생색을 내고 있다. 잘 팔리는 제품은 가격이 내려가는 법이 없다. 소비자는 가격보다 더 높고 많은 기쁨과 행복을 누릴 것 같은 제품과 서비스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저자는 생산자는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결정할 때 비용과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경제학자적 사고를 버리고, 손님과 행복을 먼저 생각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반가운 손님'을 집에 모시듯 정성을 다하고 노력해서 손님을 대접하면 좋은 결과가 따를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확실히 경제학자를 이길 수 있는 장사꾼이었다. 

  '장사꾼의 이윤 남기는 법'에 대해 말하면서 다시 한 번 강조했다 .

 "돈을 벌기 위한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손님에게) 정성을 다한다는 건 말이 안돼.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정성스럽게 대할 때 순리적으로 돈도 따라오고 좋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게 되는 거라고.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지켜 왔어. 진실하자! 내가 먼저 진실하면 상대도 진실하게 나온다고. 사람들은 흔히 '돈에도 눈이 있다'고 말하잖아.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항상 '돈에는 눈이 있다'고 말해. '도'와 '는'은 한 자 차이지만 남들 다 있는 눈이 돈에도 있는 게 아니라, 돈에 달려 있는 눈은 좀 더 다른 눈, 사람의 진심 같은 걸 꿰뚫어 보는 그런 눈이라고 생각하게 됐지."

   그가 훌륭한 장사꾼 임을 보여주는 백미는 책의 출판수익에 관한 부분이다. 이 책이 만들어진 목적은 자신의 치료목적이었고 그래서 집필하는 동안 오랜 기억을 더듬으며 숨쉴 틈 없이 써내린 글들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와 새로운 영감을 주었기에 출판에 대한 저작권료는 한국의 청소년 재단에 판매대금 전부에다 또 그만큼의 액수를 보태어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면서 저자가 망해도 좋으니 책이 팔려서 많은 금액을 청소년 재단에 기부하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게다가 책을 구매한 독자들을 위해 책 속에 자신이 서울에서 운영중인 사우나 쿠폰 2장을 선물로 첨부했다. 그는 출판에 있어서도 기부방법이나 마케팅 방법 모두 탁월한 장사꾼이었다.  

  성공한 인물의 자서전이란 자신의 살아온 과정을 더듬는 내용이 주를 이루어 다소 미화되는 경향도 없잖고, 자화자찬으로 버무려져 읽을 필요가 없다고 혹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자서전에는 성공한 저자가 자신보다 젊고 경험적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철학, 그리고 따끔한 충고를 아낌없이 담고 있어 '자기계발'을 목적으로 하는 독자들에게는 좋은 참고서와 같다. 또한 성공한 인물을 만나기는 시간적 기회나 비용면에서 쉽지 않아 책으로 만나는 방법이 가장 쉽고 경제적이다. 이 책은 그 효과를 느끼게 해 주었다.  


  새로운 업종을 통해 제 2의 인생을 살아보려고 준비하는 필자에게 작금의 '세계금융위기'는 '몇 년간 하던 것이나 지키며 가만히 있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발목을 잡고 있었다. 엊그제 가장 측근에 있는 지인이 '모두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지금이야말로 움직여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충고해 줘 화두로 삼아 고민하던 차에 김병택 사장의 [엉뚱한 역마살 인생]은 '네가 생각한 대로 당장 움직여라.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지만, 네가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아무튼 실천해야 얻을 수 있다.'라고 말해주어 망설이는 내게 힘을 보태주었다. 그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었다. 한 권으로 만들어지면서 잘려버린 나머지 대학노트 7권 속 이야기가 궁금했다. 기회가 된다면 내가 만든 질문으로 그와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필자를 비롯해 자신이 꿈꾸는 인생을 온전히 살고 싶은 사람,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 행복한 이민생활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사람의 목소리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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