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흡혈귀를 퇴치하는 유쾌한 방법
댄 S. 케네디 지음, 서영조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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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시간을 빨아먹는 흡혈귀가 있다고?
 
  어느 날, 하느님이 인간세상을 내려다 보시니 생지옥이 따로 없더란다. 하느님께서 생각하시길 나름 꽤 신중하게 만든 작품이 인간세상이거늘 왜 이리 혼탁할까 곰곰히 살펴보시니 모든 것의 원인이 이더란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돈을 모두 압수하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백 만원씩 공평히 나눠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 인간들이여. 내가 너희에게 모두 공평하게 돈을 나누어 주었으니 평등해졌다.
더 이상 아귀다툼하지 말고 잘 살아야 한다."
 
  돈을 거두고 나눠주고 한 일에 피곤하셨던지 하느님은 곤히 낮잠을 주무셨다. 몇 시간 쯤 지났을까? 잠에서 깨신 하느님은 오늘 하신 일로 '지상낙원'이 되었을 인간세상을 보시고 싶어 구름아래를 내려다 보시곤 기함을 하셨다. 잠깐 사이에 갑부가 생겼는가 하면, 거지도 생겼고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남을 속이고 헐뜯는 것이 오히려 전보다 더 혼탁해진 것이다. 하느님은 혀를 차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쯔쯔쯧, 내가 헛수고를 했구나. 문제는 돈이 아니라 거울보고 혼자서 고스톱을 쳐도 돈 잃었다고 악다구리하는 너희 인간들의 탐욕 때문이었구나. 평생 너희들이 만든 생지옥에서 살거라. 나도 이젠 모르겠다."
 
  끝없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꼬집는 우스개소리지만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돈을 나눠준다면?' 하는 의문이 참 재미있다. 정말 이야기처럼 생지옥으로 변할까? 아니면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과연 어떨까?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의 한켠을 살펴보면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신 한 가지는 있다. 바로 '시간'이다. 빌 게이츠에게 있는 하루 스물 네 시간은 내가 가진 하루와 똑같다.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두 세 배를 가진 것이 절대 아니다. 똑같다. 하지만 빌 게이츠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미국인 A씨가 LA 거리에서 노숙자로 살고 있다면, 빌 게이츠와 A씨의 차이는 뭘까? 그리고 그 이유는 뭘까? 
 
  난 그 차이가 뭔지 오늘 확실히 알았다. 그것은 벰파이어, 바로 시간흡혈귀라는 '시간잡아먹는 귀신' 때문이다. 사람들의 개인적인 성공, 재정적인 성공, 사업상의 성공을 있게 하는 한 가지 '비밀'은 바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시간 흡혈귀에게 쪽 빨리지 않고, 얼마나 시간을 잘 사용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 특히 '시간이 없어 죽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옆에는 항상 시간흡혈귀가 그들의 시간에 빨대를 꼽고 빨아먹고 있다. 그렇다면 시간흡혈귀는 도대체 무엇이냐? 이것들을 퇴치하는 법은 무엇인가? 그 해답을 알려주는 책은 댄 케네디의 [시간흡혈귀를 퇴치하는 유쾌한 방법]이다.
 
 


 
  이 책의 저자는 서로 다른 직업군의 일을 자유자재로 하면서 한 달에 3억원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시간흡혈귀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는 우리 옆에 존재하는 시간 흡혈귀의 정체를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가는 곳마다 튀어나오는 ‘시간 있으세요’씨,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회의’씨, 웃는 얼굴로 이빨을 꽂는 ‘중언부언’씨, 우선순위를 무너뜨리는 ‘하찮은 일’씨, 감정의 틈을 파고드는 ‘침소봉대’씨, 절대 비켜주지 않는 ‘막무가내’씨, 순식간에 리듬을 끊는 ‘급해요’씨, 파렴치하게 강탈해가는 ‘늦었습니다’씨...
 
  누군가 했더니 이름만 들어도 알것 같고, 모두가 길지 않은 내 인생에 한 번쯤 거쳐간 시간 흡혈귀 들이고, 이들 중 둘 셋은 여전히 내 시간에 빨대를 꼽고 있었다. 가장 귀찮은 존재는 바로 '하찮은 일'씨와 '회의'씨. 우선 해야 할 일들을 다짐했건만 하루를 뒤돌아 보면 가장 중요한 일만 뺀 채 하찮은 일만 그득 했고, 돈도 되지 않는 회의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게다가 무슨 시간을 그리 오래 잡아먹는지 정말 '피가 마를 지경'이다.
 
  이 책은 제한된 시간 안에 동시다발적인 수많은 요구들을 처리해야 하는 바쁜 사람들, 즉 리더나 기업가들이 실제로 너무나 시간이 없다는 것에 주목했다. [포춘Fortune]지 선정 500대 기업의 CEO들에 대한 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의 하루중 생산적인 시간은 단 28분 뿐이라고 한다. '시간은 가장 많을 것 같은 사람들이 사실은 시간이 제일 없단 말인가? 저자가 말하는 28분은 '생산적인 시간' 즉, 진짜 일같은 일을 하는 시간을 말한다.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시간 가운데 몇 시간이 정말로 생산적인가? 즉 수익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시간은 몇시간인가? 반대로 말하면 출퇴근, 잡무처리, 쓰레기통 비우기, 화장실 출입, 휴식 등 수익을 만들어내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일을 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저자는 그 시간에 대한 가치를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우리가 시간당 실제 벌어야 할 수입액을 산출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기본수입목표 0000원÷연간 근무시간(연평균 근무일수*일평균 근무시간=총 근무시간)
=시간당 수입목표000원*생산성vs비생산성 비율=시간당 실제 벌어야 할 수입액000원
*생산성 대 비생산성 비율:총 8시간 중 4시간을 생산적으로 일한다고 했을 경우, 4/8 즉 1/2가 된다.
 
  즉 월급을 총 30일로 나누고 다시 24시간으로 나누었을 때 월급에 맞는 나의 시간당 가치가 나오지만 24시간 중 8시간만 일하고, 실제로 일하는 시간이 4시간이라면 나의 시간당 가치는 엄청난 가격이 되는 것이다. 만약 독자의 월급이 300 만원이고, 생산적인 시간이 4시간이라면? 당신의 시간당 가치는 49,500원인 셈이다.
 
  10여 년 전 재벌기업 S그룹이 1시간 짜리 회의를 할 때 회의 참석인원과 회의시간을 정해 놓고 회의가 시작되기에 앞서 "오늘 이 시간의 회의는 00백만원 짜리 회의입니다."라고 말하고 시작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인간인 직원들을 포드나 테일러식 경영에 어울리는 기계처럼 평가한다고 말들이 많아 없어졌다는데, 나 스스로에게 매기는 나의 시간당 가치는 확실히 의미가 있고, 긴장감을 더했다.
 
  이처럼 비싼 시간은 돈으로 살 수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방법은 단 하나, 시간흡혈귀를 처치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생산적인 시간으로 돌리는 방법 뿐이다. 이 책은 시간흡혈귀들을 퇴치하는 방법, 내가 시간흡혈귀가 되지 않는 방법, 아무리 노력해도 없는 시간을 늘려주는 7가지 방법들을 제시해준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시간의 절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미 성공한 기업가나 리더들, 다시 말해 시간관리를 잘 해서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간리의 천재들을 벤치마킹하는 8가지 방법은 이 책의 알짜배기 부분이었다. 그 밖에도 리더들에게 이르기를 모든 것을 혼자 하려 하지 말고 나보다 그 일을 더 잘하는 사람, 나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혀서 결국 내가 없어도 되는 존재가 되도록 스스로를 해고할 수 있어야 비로소 '생산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시간 낭비 요인'을 '시간 흡혈귀'라고 재미있게 이름지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생활에 존재하는 시간낭비사례와 그 대책에 대해 책 전반에 걸쳐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나의 시간당 가치는 얼마 일까? 내 목에는 몇 개의 빨대가 꽂혀 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올해가 가기 전에 독자들이 풀어야 할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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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 세계 유명 작가 32인이 들려주는 실전 글쓰기 노하우
몬티 슐츠.바나비 콘라드 지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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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명 작가 32명의 스누피 작가만들기 대작전!
 
  스누피가 글을 쓴다고? 정말 뜬금없는 소리였다. 그 말은 '개 풀 뜯어먹는 소리'와 견줄 만큼 황당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다른 책을 찾다가 우연히 재미있는 제목과 귀가 솔깃한 부제에 끌려 선택한 이 책을 읽고 보면서 스누피의 개집 지붕에 타자기가 있었단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책을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누피가 작가 지망생이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껏 스누피와 피너츠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머슥해지는 순간이다. 스누피를 창조한 아버지 찰스 M. 슐츠의 아들이면서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몬티 슐츠와 스누피가 엮은 책,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이다.
 
 




 
  책이 참 재미있다. 스케치 북 모양의 긴 가로모양의 책도 그렇거니와 한 쪽 면 가득 스누피가 글을 쓰는 그림들로 채워져 있어 그림책을 보는 듯 책을 읽는 듯 한 기분이 든다. 자신의 집 지붕 위 끝에서 끝을 걸어다니며 고민하고, 심사숙고 하는 열 칸 정도의 장면에 스누피가 쓴 글은 딱 한 문장. "어둡고 바람부는 밤이었다." 그러면서 스누피는 느낀다. '역시 글을 잘 쓰는 건 힘든 일이야.' 몇 장을 넘기자니 역시 스누피는 글을 쓸 준비를 하고 구상을 하고 있었다. 잔뜩 인상을 쓰고 짜낸 단어는 '바로'. 그리고 또 혼잣말을 한다. '훌륭한 작가라면 적절한 단어 하나를 찾는데만 몇 시간씩 허비하는 법이지.' '개가 땅과 바다와 하늘에서, 어쩌면 이 우주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체 중에서 가장 뛰어난 까닭'이라는 엄청나게 긴 제목을 본 루시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렇게 긴 제목이 어딨어?" 그러자 스누피는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을 빼야겠군."
 
  전혀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초보자 스누피가 글을 쓰는 모습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나의 글쓰기 작업을 닮았고, 개집 지붕위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창작의 고통에서 신음하는 모습도 도대체 무엇부터 써야 될 지 감이 잡히지 않아 고민하는 나와 닮았다. 말도 되지 않는 몇 줄을 써놓고는 우쭐대는 모습, 팔랑거리는 귀를 가져서는 주변 사람들의 한마디에 혹해 가차없이 손질해대는 줏대없는 모습 또한 나였다. 목언저리까지 쳐진 귀만 갖지 않았을 뿐 나를 보는 듯해 재미있지만 뜨끔하기도 했다.
 
  얼마를 썼을까? 스누피는 얼마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이 되는 꿈도 잠시 출판사로부터 답장이 왔다. "투고자(스누피)귀하. 보내주신 원고는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한테 보내신 거죠? 우리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겁니까?"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쓰고 원고를 보냈다. 그러자 또 답장이 왔다. "투고자 귀하, 원고를 돌려 드립니다. 우리 출판사와는 맞지 않는군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소설이더군요. 또 보내지 마세요. 제발, 제발, 부탁합니다." 그러자 스누피는 하늘을 보며 흐믓해 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편집자가 사정할 때가 있네?"
 
 

 

 

 
 
  이렇게 작가 지망생 스누피가 어떠한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글을 써서 원고를 만들어 출판사에 보내는 낯두꺼운 뻔뻔함과 끈질긴 근성은 작가될 자질을 갖춘 듯. 하지만 써도 써도 늘지 않는 실력에 대해 이 책이 준비한 것이 있다. 시드디 셀던, 잭 캔필드, 다니엘 스틸 등 세계 유명 작가 32인이 스누피의 습작에 관한 에피소드를 보고 '실전 글쓰기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다니엘 스틸은 글쓰기는 엄청나게 힘든 일이라며 어느 때에 떠오르는 영감에 기대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습작하라고 조언해 준다. 미국 미니 시리즈의 대가였던 시드니 셀던은 자기가 정말, 진짜로 좋아하는 글감을 택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글감을 발전시키고, 모든 단어들이 빛을 발할 때까지 1년이고 2년이고 다시 쓰는 것. 이것이 베스트셀러를 쓰는 공식이라고 말해준다. 레슬리 딕슨은 글을 쓰든가 죽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사생결단을 내라고 말하고, 캐서린 리안 하이드는 출판사의 편집자를 일러 '거절하기 위해 원고를 읽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들 손에 의해 작가가 될 확률은 복권에 당첨되는 확률 보다는 높다고, 그렇지만 '차라리 많은 복권을 사라'고 충고한다.
 
 

 

 

 

 

 
 
  귀여운 그림과 생각을 던지는 그림 속 글, 게다가 세계적인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유머러스한 조언이 결합해 수업같은 분위기가 흘러야 할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는 꽁트를 생각나게 한다. 번번히 루시의 태클에 굴복해서 종이를 구겨버리는 스누피의 표정과 독백은 그림을 보는 맛을 더한다. 전체적으로 책의 주인공인 지망생 스누피를 통해 창작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고통을 알게 되고, 맛깔난 스토리로 독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글쓰는 이들이 벌이는 하루하루의 투쟁을 엿볼 수 있었다.
 
  글쓰기는 참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지금 글을 쓰기는 고사하고 독서 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내가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며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행위 면에서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멍청하기 그지없던 내가 하니까.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소질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내용이지만 말을 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말하는 것은 녹음이나 녹취를 하지 않는 이상 듣는 이의 귀에 남겨질 뿐 담배연기처럼 사라져 버리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그것이 기록으로 남겨지게 된다. 이 '내가 생각한 것의 결과물이 남겨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로 하여금 말은 잘 하면서 글쓰기는 주저하는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는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오늘 하루에도 많은 글을 썼을테다. 내 휴대전화에 온 문자에 대해 최소한의 용량에 맞게 적절한 단어를 써서 답장을 보냈고, 내 홈피에 들린 사람들의 댓글에도 리플을 달았다. 온갖 메일과 서류를 작성했고, 보고서도 올렸을 것이다. 독자들도 이미 어떤 의미에서는 '글쓰는 사람'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직접 얼굴을 대하며 생활하던 시대를 넘어 말과 함께 글로써 스토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웹 2.0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글쓰기의 괴로움이 사로잡힌 독자라면 나와 같이 분투하는 스누피를 만나 보기를. 스누피는 개 밥그릇에다 개밥을 만들 때는 물을 먼저 부을 수도 있고, 마지막에 부을 수 있는 '어짜피 개밥'에 대한 요리비법에 대한 책도 고심하여 쓰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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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처럼 일한다는 것]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잡스처럼 일한다는 것 - 위기에서 빛나는 스티브 잡스의 생존본능
리앤더 카니 지음, 박아람.안진환 옮김 / 북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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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 더욱 빛나는 스티브 잡스의 특별한 업무방식
 
  "우리나라에도 들어온다며?" 며칠 전 만난 사람마다 꺼낸 이야기는 단연 '애플의 아이폰i-Phone' 이다. 지난 11일자 신문에 내년 4월 1일부터는 아이폰을 비롯해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거물급 휴대폰을 우리나라에서도 상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국책사업으로 추진했던 이동전화 단말기의 표준 플랫폼 규격인 위피('Wireless Internet Platform for Interoperability)의 준수 의무를 해제하고, 사업자가 위피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전기통신설비의 상호접속기준' 고시를 개정하기로 하면서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거의 15년 동안 외국계 회사인 M사의 제품을 쓰고 있다. 휴대전화가 보급될 당시 가장 먼저 소개된 제품이어서 우연히 쓰게되었는데, 그런 인연으로 타사의 훨씬 더 좋은 제품들이 있다고 하지만 꾸준히 써 왔다. 휴대전화를 한 번 바꾸면 아주 보기 흉할 만큼 낡거나,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을 때까지 평균 2-3년을 쓰기 때문에 M사에게도 그리 탐탁치 않은 고객일지도 모르지만 손에 익은 익숙함과 내 취향에 딱 맞는 디자인이라 다소 떨어지는 기능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용하는 충성고객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왔지만, 내년엔 아이폰으로 등을 돌려야 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고 있다. 아이폰은 이제껏 만나 보지 못한 '대단한 물건'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디자인'과 '가격에 있다. 예전에는 없었던 그래서 상상하지 못했던 제품을 만나는 것은 소비자에게 큰 즐거움이다. 이미 출시만 했다 하면 세계의 디자인상을 모두 휩쓰는 것이 애플 제품이 아니던가? 그런 멋진 디자인의 휴대전화가 내 손에 넣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종전의 휴대전화 신제품의 반가격에 제공된다면 사지 않으면 손해 볼 것 같은 느낌마저 주지 않을까? 최근 미국에서 8G가 199달러, 16G가 299 달러에 판매되고 있는 아이폰이 이번 크리스마스 전후로 월마트를 통해 4G 용량으로 99달러에 판매한다는 소식에 올 연말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는데, 우리나라엔 어떻게 공급될 지도 궁금하다. 올 해 안에 국내에 출시된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말썽투성의 휴대전화로 앞으로 4개월을 더 버틸 심산이다. 어제 서점에서 만난 [잡스처럼 일한다는 것 Inside Steve's Brain]은 그런 지루한 기다림을 흐믓한 설렘으로 만든 책이다.
 
 


 
  'Cult of Mac'이라는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며 스스로 맥 예찬론자라고 이야기하는 저자 린더 카니는 12년 넘게 취재한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이야기를 이 책에 생생하게 담고 있다. 21세기의 대표적인 기업모델로 부상한 애플의 화려한 이력 속에는 '스티브 잡스'가 존재하고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평가하는 사람만큼 분분하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일러 사업가라기보다는 예술가에 가깝다고 할 만큼 창의적인 제품을 상품화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고 말하는가 하면, 픽사의 관계자들은 문화적 엘리트주의자이자 탐미주의자이며 반물질주의자라고 평한다. 그의 수하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채찍질만 안하는 독재자와 다름없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내가 주목하고자 한 것은 그의 범상치 않은 어떤 점들이 '애플'을 빛나게 하고, 그 결과물들은 전 세계의 소비자들을 열광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세계를 놀라게 할 물건들을 쏟아내는가? 이것이 내가 궁금해 하는 점이었다.
 
  이 책은 지금의 스티브 잡스가 있기까지를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그 속에서 사업가로서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를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괴팍한 창조자'가 아닐 수 없다. 스티브식 종결Getting Steved라고 해서 해고 대상인 직원들을 구석에 몰아세우고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캐묻고 그에 대해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지 못하면 해고했다는 소문이 들릴 만큼 그는 경영자로서 직원 한 명 한 명을 챙기는가 하면, 잡스 자신이 개발자가 되어 직원들과 함께 숙식을 하며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의 괴팍한 성격과 업무스타일은 오늘날의 아이팟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는 또한 소비자를 아는 기업가다. "애플의 핵심은 기업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또 하나의 델이나 컴팩이 아니다."고 말했는데, 기업을 대상으로 주문를 얻는 기존의 컴퓨터업체들의 생각을 벗어나 이윤이 적고 까다로운 소비자를 직접 공략하는 방식을 채택해 그들이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해 낸다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델과 부딪힐 필요도 없고, 고급화 해 더욱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2등만 해도 어딘가? 하는 무사안일한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사람(개인소비자)을 위한 컴퓨터'에 대한 생각이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아이팟이다. 이미 레드오션이 되어버린 시장에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디자인에 음원을 제공하는 플랫폼인 아이튠즈itunes을 결합한 제품을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를 공략해 2007년 4월까지 아이팟 제품라인은 1억 개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기까지는 5억 개의 아이팟이 팔릴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소비자 전자제품의 히트작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무엇보다 인상깊은 것은 그의 '디자인관觀'이다. 그는 디자인을 단순히 외관을 의미하는 사람도 있지만 좀 더 깊이 파고 들면, 사실 작동방식을 의미하고, 무언가를 진정으로 적절하게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하며, 본질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파악해야 가능하다고 보았다. 한 제품의 멋진 디자인은 제품의 본질 정확히 이해해야 가능하다는 그의 말은 아이팟에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말해주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하고 날카로운 눈을 가진 오늘날의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기업이 제품 디자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지루함을 모르는 직장, 도전정신으로 꽉찬 편집광적 직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던 인텔의 앤드루 그로브 회장의 말이 생각났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스티브 잡스를 보면서 그처럼 쉼 없이 도전하고 모험하는 진행형이며 빈틈없는 밀봉이 아니라 그 틈을 뚫고 나오는 활화산 같은 역동의 에너지 즉, 정진홍교수가 말했던 [완벽에의 충동]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각 장의 말미에 잡스의 업무스타일과 경영방식을 요약해서 정리해 놓은 '스티브의 교훈'은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지금까지 파격적이지만 완벽한 프리젠테이션을 자랑하는 '괴짜 경영자'로만 여겨왔었는데, 아이팟의 성공이 가능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그의 기업이념과 경영방식이 충분이 녹아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설보다 흥미진진한 제품개발 스토리와 주변사람들의 생생한 육성은 300 페이지의 책이었다는 것을 잊게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이렇게 귀기울이게 했던 것은 성장동력을 찾지 못해 애태우는 오늘날 우리 기업들의 모습들을 안타깝게 지켜보며 느꼈던 절박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직접 소비자를 대면하는 나의 일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은 저마다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판단'이었을 뿐 '소비자의 판단'을 유보한 것이었다. 그래서 매출이 늘어나면 '우리가 그렇게 훌륭한 제품과 서비스를 내 놓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고 하고, 매출이 줄어들면 '바보같은 소비자들이 우리의 제품을 몰라준다'고 원망하는 것이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의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80년대 초반 잡스는 가구가 거의 없는 저택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잠을 침대없이 매트리스 위에서 잘 정도였는데, 그 이유는 수준 이하의 가구를 구입하는 자신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세탁기 하나를 고르기 위해 가족이 2주 동안 토론을 벌였을 만큼 잡스는 소비자로서 정말 괴팍하고 깐깐한 사람이다. 자신이 그런 사람인지라 제품을 생산할 때도 소비자의 입장이 되어 완벽을 추구했다. '과연 내가 소비자라면 이 제품을 기꺼이 살 것인가?' 항상 되물으며 완성도를 높였던 것이다. 부실한 매출의 원인을 소비자의 탓으로, 시기를 잘못 만난 탓으로만 돌렸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앤드루 그로브가 말했던 지구 종말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편집광'이란 무엇인가를 알게 했다. 소비자의 아낌없는 사랑을 갈망하는 기업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애플의 제품과 스티브 잡스의 업무방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지난 2005년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만족을 누리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대단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단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비즈니스맨, 철저하게 고객 중심의 경영을 펼치는 경영자, 우주에 흔적을 남기겠다는 열정을 가진 인간, 이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었던 스티브 잡스의 모습이었다.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과연 내가 소비자라면 이 제품을 기꺼이 살 것인가?' 항상 되물으며 완성도를 높였던 것이다. 부실한 매출의 원인을 소비자의 탓으로, 시기를 잘못 만난 탓으로만 돌렸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앤드루 그로브가 말했던 지구 종말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편집광'이란 무엇인가를 알게 했다. 소비자의 아낌없는 사랑을 갈망하는 기업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애플의 제품과 스티브 잡스의 업무방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애플의 법칙

딜리셔스 샌드위치

편집광만이 살아 남는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기업가

직장인

애플제품 매니아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을 존경하는 사람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애플의 핵심은 기업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또 하나의 델이나 컴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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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를 읽는 기술 - 비즈니스맨과 트렌드세터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트렌드 입문서
헨릭 베일가드 지음, 이진원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인간은 트렌드를 만들고, 트렌드는 인간을 분해한다?
 
  "유행하고 트렌드의 차이가 뭐지?" 동료들과의 대화중에 튀어나온 말이다. 하루에도 골 백 번을 듣는 말이면서도 자리에 있던 사람 그 누구도 그 차이를 명확하게 말하지 못했다. 한글과 영어로 쓰여졌다는 것 정도? 유행이란 말이 20세기에 주로 쓰여진 단어라면, 트렌드는 21세기에 사용되는 단어가 아닐까? 한 명씩 입을 섞어 대답을 했지만 처음 질문으로 비롯된 새로운 질문이었을 뿐 확실한 정답은 찾을 수 없었다. 곧이어 다른 화제로 넘어가버리고 말았지만, 세상에 뿌려진 '핫 트렌드Hot treend' 일색의 광고 문구를 접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질문은 하나였다. '트렌드가 무엇일까?' 
'트렌드가 정확하게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며, 그것이 기업과 사회 차원에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내가 이 책을 찾은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명쾌한 제목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뢰가는 저자의 이력때문이었다. 저명한 트렌드 분석가이자 트렌드 분석에 '사회학'을 접목해 '트렌드 사회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헨릭 베이가드가 쓴 책, [트렌드를 읽는 기술 Anatomy Of A Trend]이다.      
 
 


 

  내가 미래서라 불리는 이런 종류의 책을 찾는 개인적인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른 바 '밀레니엄 신드롬'이라 해서 새로운 21세기에 대한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커갈 때 즈음 미래를 팔아 성공하고 있는 마케팅 컨설턴트, 페이스 팝콘이 내놓은 책 [클릭, 미래속으로]는 앞으로의 미래에 대두될 17개의 트렌드를 소개한 책으로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1년, 선후배와 힘을 합쳐 사업체를 시작하려고 했을 무렵 창업아이템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던 때에 이 책이 제시한 '전문성을 추구하라'는 메시지의 도움으로 '한가지 음식만 제공하는 전문식당'을 차리기로 했다. 당시에는 되도록 많은 메뉴를 포함시키는 것이 전반적인 창업경향이었는데, 위험천만했지만 과감했던 이 선택은 적중해서 전문성을 갖춘 집으로 소문나 재미를 톡톡히 봤었다. 그 후에 비슷한 점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성공창업을 하는데 큰 아이디어를 제공한 책이어서 이후에도 새로운 사업이나 마케팅을 준비할 때 다시 한 번 점검하게 하는 실용서다.
 
  물론 팝콘의 미래예측이 모두 적중했다고는 보기는 어렵지만 그 중에서도 개인화와 핵가족화 그리고 안전을 희망하는 시대적 요구로 코쿠닝(누에고치)족이 생기고, 동호인클럽을 위주로 한 유유상종의 집단화가 진행되고, 주머니 한도 내에서 작지만 최고의 사치를 즐기는 명품족이 탄생하고, 멋진 남성상은 유니섹스형의 부드러운 남자가 되고, 건강과 장수에 대한 바람은 그 어느 때 보다 크고, 소비자를 의식하지 않으면 안되는 생산시스템이 될 것이라는 등 저자가 제시한 미래예측의 상당부분이 8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실에서 확인하고 있을 만큼 대단한 예측력을 지녔다.   
 
  하지만 이 책은 미래서적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저자가 내 놓은 미래예측들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밝히지 않고 있어 객관적 판단이 어렵다는 것이다. 팝콘이 제시한 미래예측들이 과연 맞을까 하는 것은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에 판단할 문제이고, 어디까지나 제 3자적 독자로서 그것을 지켜보는 것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트렌드를 직감하고, 판단할 수 있어서 그 트렌드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까지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얻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부족함을 없애주기에 충분했다.
 
 

 
 
  이 책의 저자는 흔히들 트렌드 하면 '뭔가 새롭거나 최근 유행하는 것' 또는 '가볍고 신비로운 것' 혹은 '완전히 예상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트렌드란 '신제품'을 만드는 '제품 개발'로 인해 생기는 '변화 과정'으로 보면 된다고 말한다. 새로운 트렌드는 생겨날 때마다 특정 패턴이 반복적으로 되풀이 되는데 이 패턴은 일정한 틀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의 행동에 깊이 관계가 있다. 그래서 실제로 트렌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게 예측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근거는 트렌드는 인간의 행동을 수반하는 사회 문화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트렌드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저자의 장담은 그 해답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책을 읽는 열정에 박차를 가하게 한다.
 
  트렌드를 확산시키는 주인공에는 트렌드 창조자, 트렌드 결정자, 트렌드 추종자, 초기 주류 소비자, 주류 소비자, 후기 주류 소비자, 보수적 소비자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중 트렌드의 확산에 가장 넓고 깊은 영향을 끼치는 부류는 '트렌드 결정자' 즉, 트렌드 셰터trendsetter 들로 시각적으로 민감한 집단, 젊은이, 디자이너, 예술가, 부자, 유명인사, 남성 동성애자 그리고 스타일을 의식하는 하부 문화부류 중 하나 이상이 새로운 트렌드를 수용할 경우 그것이 트렌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뉴욕, 파리, 런던, 밀라노, 도쿄 등의 특정적인 세계적인 도시에서 발생하는 유행일수록 트렌드로 생겨날 가능성은 더 커진다.
 
  어떤 트렌드가 트렌드 결정자로부터 주류 소비자들에게 전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제품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화장품은 1-2년, 의류는 2-3년, 액세서리 2-3년, 홈 디자인 5-7년, 스포츠 장비는 6-8년 정도 걸린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확산 과정이 보통 저가의 제품에서 더 빠르게 일어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 글의 처음에 언급한 질문, "유행과 트렌드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또 하나는 "트렌드가 가장 유행할 때는 언제인가?"이다. 우선 유행과 트렌드의 차이는 새로운 무언가가 일시적 유행에 그칠 경우 그것은 시장에서 매우 짧은 기간 동안만 생명력을 유지한다. 하지만 트렌드의 어느 한 정점에서도 유행을 감지할 수 있고, 일시적 유행과 트렌드 모두에 '트렌디trendy하다'고 칭하기 때문에 일정한 시점을 놓고 그것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다시 말해 트렌드 결정자가 전파시킨 그 무엇이 트렌드 추종자에서 그칠 경우 그것은 유행일 뿐이고, 주류 소비자를 거쳐 보수적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확산된다면 그것은 트렌드라는 것이다. 
 
  저자는 트렌드 포착에 필요한 주요 단서 열 가지를 제시한다. 주류에 대항할 때, 서로 다른 분야의 트렌드 결정자들이 받아들일 때, 많은 트렌드 결정자들이 받아들일 때, 트렌드 결정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주요 도시에서 등장할 때, 트렌드의 확산 초기에는 제품과 디자인의 발전이 계속될 때, 제품이나 스타일의 모방 혹은 복사가 가능할 때, 유명인사 혹은 언론들이 주목할 때, 헐리우드 영화에 등장할 때 등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될 때 주류로 편입될 가능성이 가장 커진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스타등과 같은 유명인이 주목하고, 그들을 추종하는 팬들이 따르고, 이것을 언론이 세상에 알린다면 그것은 트렌드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이 된다는 것인데, 케이블 TV등에서 유명인의 의상이나 집 그리고 생활이 공개되는 방송들을 보곤 했는데, 이 모든 것이 트렌드의 전파과정이었고, 그것들을 보면서 주류 소비자인 나는 그 트렌드를 따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트렌드를 직감해서가 아니라 '보기 좋더라'는 느낌과 '그들도 경험하고 있는데..'하는 신뢰감 그리고, 그들과 닮으려고 하는 마음이 트렌드를 쫓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미래의 트렌드는 어떤 모습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기술의 발전과 운송과 여행수단의 변화에 힘입어 트렌드의 변화는 빠르고 점차 더 짧은 모습을 띨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모방과 위조, 인터넷과 인쇄 매체 에 의해 그 속도는 더 가속을 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렌드 결정자가 얼마나 변화를 많은 변화를 추구할 것인가, 그리고 트렌드 추종자와 주류 소비자들이 그들을 얼마나 따를 것인가가 우선될 뿐, 가속 수단들은 차후의 이야기라며 가까운 미래에 트렌드의 패턴은 지금보다 극적으로 변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 책이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 부분이기도 하다.
 

  트렌드의 시작은 스타나 유명인과 같은 소수의 트렌드 결정자들에 시작되고, 언론은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을 돕고, 보수적 소비자에게까지 수용될 때 트렌드는 생명을 다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지금도 수많은 트렌드가 생겨나는데, 이는 트렌드 결정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데 이미 알고 있는 유행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어 약간 힘이 빠진다. 하지만 이것은 소비자의 경우일 뿐, 제품의 공급자의 입장에서는 그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소비자들의 외형과 소비성향을 꾸준히 파악한다면 트렌드의 진행정도를 감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수동적으로 어디에서 왔는지 조차 모르고 막연히 따라가야만 하는 흐름으로만 여겨졌던 '트렌드'에 대해 이 책은 트렌드가 유행과는 어떻게 다르고 얼만큼의 생명력과 힘을 지녔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오늘을 시점으로 유심히 그리고 꾸준히 관찰한다면 트렌드의 흐름도 알 수 있겠다하는 느낌을 심어준 책이다. 비슷한 류의 트렌드 관련서인 [마이크로 트렌드], [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가 페이스 팝콘의 [클릭 미래속으로]와 같이 현존하는 트렌드와 앞으로 다가올 트렌드 경향을 콕 짚어서 제시하고 있다면, 이 책은 과연 트렌드 속에서 우리의 삶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고민하는데 있어서 속 시원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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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를 만나다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 지음, 문지혁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시와 글로 렘브란트의 그림을 만끽하다
 
  한 떼의 무리들이 미술작품 주위에 몰려 있다. 한 가운데는 조그만 확성기를 든 안내원이 작품을 설명하고, 무리들은 그녀의 귀를 기울이며 뭔가를 받아적고 있다. 나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사람 많은 곳에서는 돈벌 일이 없다'는 어느 부자의 말을 믿어 그들로부터 떨어진 것은 아니다. 작품을 보고 느끼기 위해 미술관에 온 그들은 안내원의 입을 보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어서 였다. '그런건 인터넷만 뒤져도 가득한데...' 그들을 본 느낌이었다. 난 미술을 모른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하지만 메모지에 긁적거리는 낙서수준이고, 남의 그림을 보기는 좋아하지만 미술가가 누구인지 그들이 무슨 사조인지도 모른다. 그냥 구경할 뿐이다. 그림을 보고 그림 속 이야기를 살피고, 그것을 느끼면 배가 불러지는 느낌. 그것이 좋아서 갈 뿐이다. 
 
  난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과는 이야기하고 싶지만, 미술을 아는 사람과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미술을 모르기 때문이다. 몰라서 알아듣지를 못하고, 몰라서 말할 수 없는데 굳이 그들과 입을 섞을 필요는 없잖은가? 건빵모자 뒤집어쓰고, 파이프 하나 물고 미술을 논하고, 미술가를 평하고 싶은 마음이야 왜 없겠냐마는 그만한 깜량이 되지 못함을 익히 잘 알고 있어서다. 그래서 그저 보고 느끼려고 한다. 누구에게 말할 수는 없지만, "와~좋다" 가끔은 혼자서 말하고 좋아한다.
 
  나와 비슷한 방법으로 미술작품을 구경한 사람의 책을 만났다. 방법만 비슷할 뿐, 그녀 또한 대단하다. 미술작품을 보고 시를 쓴다니. Don Mcclean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Starry Night'을 보고 동명의 노래를 만들었다더니, 시인은 작품을 보고 시를 썼다. 게다가 작품을 그대로 느끼는 해설까지 곁들여졌다.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을 이야기했다. 빛의 화가 렘브란의 작품을 이야기한 책,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의 [렘브란트를 만나다]이다.
 





























  고흐와 베르메르의 작품을 보고 시를 쓴 바 있는 저자는 이번에는 렘브란트의 작품 17점을 보고 시를 썼다. 가장 좋아하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자화상]과 [야경] 그리고 노년의 아쉬움을 보여주는 [자화상]등이 포함되어 반갑기 그지 없다. 렘브란트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20여 년 전인데, 그의 작품 속에서 빛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리고 인간의 다양한 표정을 담고 있는 작품은 그것으로도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위대한 화가의 작품이라지만 편안한, 그냥 일상을 엿보는듯한 작품의 격없음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려고 노력했다. 작품 속의 주인공의 행위와 표정 그리고 주위의 사물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별한 경험. 작품을 보는 또 다른 눈을 제시하는 듯 했다. 이 책에는 또 다른 재미도 있는 서양미술을 전공한 해설자가 일반인의 시선에서 작품을 거듭 이야기하고 있는데, 마치 나를 포함해 두 세 사람이 모여 작품을 이야기하는 듯 눈과 귀가 즐거운 느낌이 들었다. 곳곳에 숨은 삽화는 더욱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책은 미술가들을 위한 미술책이 아니라 일반인임을 확인하게 한다. 저자의 또 다른 책, [고흐를 만나다]도 찾아 읽고 싶다. '빛과 종교, 그리고 자기自己'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화가, 렘브란트를 새롭게 만나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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