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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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엄마가 있는 행운을 얻은 당신, 당신의 엄마를 부탁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쯤인가보다. 방학인지 휴일인지 모를 석양때의 늦은 오후. 잠에서 깨었다. 푸욱 잠이 들었던지 깨어나니 개운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는 적막. "엄마~엄 마아~" 대답이 없자 순간 내가 누워있던 안방이 주욱 늘어나서 세 배의 크가 된다. 높이도 마찬가지 크기로 높아지고 있다. 크나 큰 방에 홀로 남겨진 기분. 황.망.함. 어려서 알 수 없었던 헛한 기분의 단어일 듯 싶다. 눈물이 흘렀다. 흘러 턱 밑지나 떨어지는 것을 신호로 난 크게 울었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을까 알 수 없지만 어디 있는 지 모르지만 당신이 있는 그곳까지 들리게끔 목청껏 한참을 울었다. 한참만에 옥상에서 이불빨래 널고 뒤집고 있는데, 다 큰 녀석이 왜 우냐고 들어와 어깨를 때리신다. 호된 매가 아팠지만, 눈물은 흘렀지만 웃었던 기억. 안심해서 일거다.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작가가 그러라 시켰다면서,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쌍과부 넋두리가 필요하다며 지방에 홀로 계신 이모댁으로 내려 가셔서 한참 만에 올라오신 적이 있다. 밑반찬을 잔뜩 만들어 냉장고가 터지게 채워놓고, 아름드리 솥에는 사골을 가득 채워 끓여놓고 가셨지만, 잠이 깰 때만 되면 오십 센치씩 방이 커져서는 엄마가 오신 날 아침에는 콧구멍만한 방이 운동장만큼 커졌더라며 왜 이리 늦게 왔냐고 푸념하는 동생녀석의 말을 들었을 때, 어린 시절의 그때가 생각났다. 오십 센치는 녀석이 느끼는 엄마의 부재감이었다.
 
  잔치를 앞두고 상경한 노부모. 그리고 지하철 문이 닫히는 바람에 칠순의 아내를, 칠순의 어머니를 눈 앞에서 실종되는데 그 후에 벌어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소설가 신경숙의 손을 빌어 한 권 가득 엄마의 부재감을 말하고 있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을 당한 가족이 엄마를 찾으면서 저마다 느끼고 있는 엄마를, 아내를 더듬는데 구구절절 가슴이 시린 기억들로 가득하다.
 
"세상의 대부분의 일들은 생각을 깊이 해보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뜻밖이라고 말하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뜻밖의 일과 자주 마주치는 거은 그 일의 앞뒤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 (40 면)
 
  아버지는 걸음이 빨라 엄마보다 늘 앞서 걸으셨고, 종종걸음을 바알간 얼굴을 해서 뒤를 쫓았다. 그렇게 살아왔었다. 하지만 단지 엄마는 뇌졸증을 앓아 몸이 성치 못해 그날은 그렇게 하질 못했던 뿐. 당연히 쫓아올 줄 알았던 아버지는 지하철을 탔고, 엄마가 타기 전에 문이 닫힌 것 뿐이다. 그리고 엄마는 머리가 아파 아들 집을 찾지 못하고, 연락처를 몰랐던 것 뿐이다. 자식들은 저마다 바빠서 서로 마중나가지 못했던 것 뿐이다. 그것 뿐인데 엄마는 온 데 간 데 없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상을 엉망으로 만든 것은 아버지와 엄마를 갈라놓은 지하철 문 때문이었다.
 
"아내를 지하철 서울역에서 잃어버리기 전까지 당신에게 아내는 형철 엄마였다. 아내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당신에게 형철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였다. 베어지거나 뽑히기 전에는 어딘가로 떠날 줄 모르는 나무. 형철 엄마를 잃어버리고 당신은 형철 엄마가 아니라 아내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오십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잊고 지낸 아내가 당신의 마음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149 면)
 

함께 있을 때는 의식하지 못한 당신의 말과 행동을 추억하고,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고 탓하고, 그동안 하지 못한 말과 행동을 탄식한다.
 
  "당신은 이 집을 내키는 대로 떠났다가 돌아오면서도 아내가 이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말한 아버지의 말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존재의 부재를 경험하는 가족들의 마음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공허감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생각을 되돌려 엄마와 함께 했던 순간의 그녀를 더듬으며 '어쩌면 엄마를 잃어버리기 전부터 내 마음 속에는 엄마를 잃어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후회를 거듭한다. 육 년전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보내고 난 회한이 작가의 손에서 되살아나 '당신의 글이 내 맘 같았다'고 자꾸만 말하게 했다.
 
  울컥대는 마음을 끝까지 잡지 못했던 대목은 '처음보는 새'로 변한 엄마의 가족에 대한 마지막 인사 장면이었다. 아쉬움이 남아 차마 저세상을 가지 못하고 가족 모두를 마음으로 나마 보듬는 그녀는 내 엄마를 닮았고, 세상의 엄마를 닮아서 언젠가 있을 내 이야기만 같아 시선을 고정하게 된다.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뭍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낸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언니, 언니는 엄마를 포기하지 말아줘. 엄마를 찾아줘."(262 면)
 
  너의 여동생이 이탈리아로 떠나는 언니에게 보낸 편지의 말은 나에게 우리에게 말하는 듯 하다. 나의 하루만 힘든 것이 아니라 당신의 하루 또한 두 세배의 나이만큼 힘들고 고된 하루였던 것을 알라 말하는 듯 하다. 그리고 알고 있음을, 공유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 조금은 덜 후회스러운 하루가 될 것임을 명심하라 말하는 듯 했다. 책을 덮으며 전화해 보니 최근에 재미붙인 외국드라마를 시청하다 쇼파에서 곤히 잠든다 동생이 말했다. 추우실라 이불 꺼내 덮어드리라 말하고 안심하며 수화기를 내렸다. 틈이 나는대로 당신의 하루를 공유하고, 순간을 기억하리라 마음먹었다. 기회가 닿는대로 사랑도 전해야겠다. 곧 당신이 떠난 나중에 거듭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같아 얄궃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해야겠다 굳게 다짐하게 된다. 엄마라는 이름의 나무가 한껏 커진 기분, 이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 가득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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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 읽기보다 한 권을 써라 - 직장인 책 쓰기 프로젝트
추성엽 지음 / 더난출판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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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직장인의 브랜드가치를 최고로 높이는 방법은 '책쓰기'다!
 
  책은 더 이상 지식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양한 삶의 기록과 흔적들이 책으로 만들어져 쏟아지고 있다. 혹자들은 '쓸모없는 책들이 너무나 많이 쏟아진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책으로 만들어진 이상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틀림없고, 그래서 많은 책이 쏟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 무엇이든 자신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미니홈피와 블로그에 기록하는 일이 많아졌고, 수많은 사람들의 호응과 팬을 확보하면서 자연스레 책으로 출판되는 경향은 '블룩Blook = Blog + Book'이라는 신조어를 양산한 만큼 발전하게 되었다. 너도 나도 책을 만들어내는 시대, 나도 책 한 번 써 볼까? 하는 충동이 들 때, "좋은 생각이야! 꼭 한 번 써봐!"라고 격려하는 책을 만났다. 마케팅 전문가 추성엽의 책 [100 권 읽기보다 한 권을 써라]이다.
 
  이 책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 경험한 것, 지금 실천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으나 방법을 몰라 마음속으로만 책을 써왔던 사람들에게 단지 글을 쓴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누구나 책을 쓸 수 있고, 저자 스스로 '나도 해보니까 되더라'는 식의 자기 경험을 솔직히 이야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직장인이었던 저자가 책을 쓰면서 책 쓰기가 고통이 아니라 자기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풀어내는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 쓰기,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에서는 전문가와 직장인이 책을 써야 하는 이유와 독자들도 책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저자가 책 쓰기를 권하는 이유는 우선 책 쓰기는 단순히 남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정보 속에서 자신만의 체계적인 지식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고, 둘째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인세'라는 저작권료 또한 적잖은 부수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책 쓰기 무엇이 핵심인가 에서는 책을 쓰기 위해서는 책의 콘셉트와 독자를 사로잡을 제목, 그리고 넘치는 아이디어와 출판사와 편집자들의 전문성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히트 상품이 되기 위한 7대 원칙 콘셉트와 브랜드가 일치한 히트상품, 훌륭한 제목으로 소화한 베스트셀러등,  자신의 특기인 마케팅 사례들을 이용하여 콘셉트와 제목, 그리고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쉽도록 도와주었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에서는 우선 독자가 원하는 것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실용서의 경우 책을 집필하면서 저자들이 자신의 경험담이나 이야기를 무작정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지식이나 정보를 얻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독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넋두리에 불과하다며 저자가 쓰고자 하는 바를 철저하게 독자의 관점에서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 시장인 서점을 찾아 독자들이 사랑하는 책을 살펴보고, 왜 사랑받는지를 먼저 분석하기를 권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핵심 역량을 고려해서 차례를 정하고, 책 또한 상품인 만큼 마케팅에 입각하여 전략적으로 상품을 만들것을 주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스스로 활용했던 책을 쓰는데 필요한 여러가지를 설명하면서, 점점 전문가만이 대접받는 요즘같은 시대에 직장인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 쓰기임을 강조했다. 
 
  이 책은 저자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무기인 마케팅을 사용하여 책 쓰기를 권하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마케팅기법들을 적용하여 책 쓰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 직장인만을 위한 책임을 강조하는 듯 했다. 실제로 이 책을 내면서 시장을 분석할 때 이미 나온 비슷한 책 [일하면서 책 쓰기]를 전략적으로 분석해 기존에 나온 제품의 시장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차별화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으며, 앞으로 내고자 하는 책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고민한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 쓰기를 떠나 마케팅 관점에서의 제품 탄생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자의 전문성과 차별화가 두드러졌다. 
 
  세계화에 힘입어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세계 구석구석을 탐험한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듣고 배운 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전달수단은 미니홈피로, 블로그인데 이들에게 실린 글들을 보고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고 사랑을 받고 있으며, 나아가 책으로도 선보이는 시대가 오늘날이다.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글로 적고 있는 블로거들이 한 번 쯤은 생각할 수 있는 '나만의 책 만들기'을 위해 좋은 가이드가 아닐까 싶다. 특히 직장인들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도 같아 일독을 권하고 싶다. 좋은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어렵게 만난 좋은 책을 모두 소화하기는 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책을 읽고, 소화하는 쉽지 않은 과정을 보람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실천이다. 이 책을 읽고 '나만의 책 만들기' 꿈을 위해 한 달 내딛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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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경제학자
최병서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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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경제학자의 돋보기에 의해 해부된 재미있는 미술걸작 이야기!
 
  연말 모임준비에 즈음하여 오랜만에 대학동기들과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강남 교보생명 사거리에 새로 자리를 잡은 특이한 모양의 Urban Hive 라는 건물의 1층에 있는 커피숍이었는데요, 건물 별명이 일명 '빵빵이 건물'이라고 해서 구멍이 뚫려 있는 매우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도심속 벌집'이라는 뜻인데, 신성건설이 시공을 맡았고 설계는 중앙대 교수이면서 아르키움 대표인 건축가 김인철씨가 맡은 작품이라는군요. 독특하고 멋져서 눈에 띄는 건물이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건물을 본 친구들의 한마디가 제각각이었다는 겁니다.
 

 
 
  부동산 중개업자인 친구 '박'은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 역할을 해서 최고가로 임대하는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고, 땅값도 많이 올랐을 것'이라고 말하고, 건설사 과장으로 있는 친구 '이'는 '훌륭한 만큼 건축상 애로점이 참 많았을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 '정'은 말이 필요없다는 듯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만 했죠. 끝으로 함께 나온 '정'의 아내는 '커피숍 분위기가 좋다'며 친구들과 자주 와야겠다고 하더군요. 저요? 그들을 지켜봤죠.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직업의식은 속일 수가 없구나' 하고 말입니다. 성현들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고, "보고자 하는 것만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하나의 사물에 대한 느낌은 그것을 보는 사람의 수만큼 다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저마다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어쩌면 '어떤 것에 대해 서로 공감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현상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래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행위'에 친숙감을 느끼게 되고, '여러사람의 공감'을 소중하게 여기는 지도 모릅니다. 
 
  여기 한 명의 경제학자가 미술관에서 미술품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눈으로는 작품은 감상하면서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합니다. 재미있게도 그림 속에서 경제원리를 발견하고 있는 거죠. 미술과 경제 이야기. 전혀 상관없는 것 같은 두 학문이 '경제학자 P씨'에 의해 서로 어울리기 시작합니다. 저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 바로 최병서 교수의 [미술관에 간 경제학자] 입니다.  
 
 

 
 
  제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몇 개월 전에 읽은 다른 책 때문입니다. Daum에서 파워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는 김홍기씨의 책 [샤넬, 미술관에 가다]인데요, 이 책 또한 '미술작품에서 찾는 패션 이야기' 였거든요. 사진도 없던 수 백년 전의 패션 경향을 미술 걸작 속에서 찾는다는 저자의 의도가 놀랍지 않습니까? 게다가 당대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델로 섰으니 지금으로 말하면 '스타들의 화보집'을 능가할 만큼 훌륭한 기획물 이었던 거죠. 패션과 패브릭에 관심이 많던 저자는 자신의 관심을 미술 작품 속에서 찾았고, 이것을 책으로 만들어낸 겁니다. 훌륭한 기획과 더 훌륭한 글솜씨에 빠져 한동안 그 책 속에서 살았었는데 그 기억이 사라질 때 즈음 나타난 것이 바로 '경제학자가 바라본 미술작품'인 겁니다. 이 모두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자라는 사실이 더욱 반갑고, 놀라운 점입니다.
 
  이 책의 저자 최병서 교수는 얼굴조차 뵌 적이 없지만, 그의 면면을 살펴보면 참 재미있는 분 같습니다. 우선 이름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목소리 흉내의 달인' 개그맨과 이름이 같고, 그의 전작前作들 모두 <영화로 읽는 경제학>, <최병서의 Cine Balade: 경제학자의 미시적 영화 산책>, <로빈슨 크루소 경제 원리: 호모 이코노미쿠스에서 몽키 이코노미쿠스로> 로 이름만 들어도 '재미있게 배우는 경제학'의 뉘앙스를 갖게 합니다. 안타깝게도 여대의 교수님으로 재직중이시니 청강을 할 수는 없을테고, 전작들을 추적함으로 그 서운함을 달랠까 합니다(실제로 강의는 지극히 딱딱한 재미없는 교수님일지도 모르는 일이죠). 
 
  저자는 그림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경제 이야기나 경제 원리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풀어내려고 포커스를 맞추었습니다. 경제학자 P씨는 한 그림을 보고 이에 얽힌 주제나 경제적 모티브를 생각하고 그에 연결되는 또 다른 그림을 찾아보는 과정을 이 책에서 보여줍니다. 미술작품에 있어서는 화가와 작품의 배경 그리고 숨은 이야기와 에피소드등도 소개되어 흥미와 재미를 더하고, 딱딱하게만 여겼던 경제 원리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어 작품의 소개에 버금가는 재미를 안겨줍니다.
 
 

 
 
  "고흐의 그림은 왜 비쌀까?" 라는 의문에 대해 예술가는 '독점 공급자' 다시 말해 그림은 그린 화가가 죽으면 그의 작품 역시 공급이 중단되는데, 이처럼 예술가가 창조한 하나의 작품은 그 자체로서 시장에서 유일한 것이므로 늘어나는 수요만큼 가격은 오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생전에 고흐는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고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 동생 테오 덕분에 겨우 붉은 포도밭Red Vinyard at Arles를 단 돈 4백 프랑에 팔았을 뿐인데, 1987년 일본의 한 보험회사에 팔린 '해바라기'가 2천 475만 프랑에 팔리고, 1990년 5월에 팔린 '가셔 박사의 초상Le Portrait de Docteur gachet'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8천 250만 달러에 팔렸는데, 고흐의 그림값은 백 년 동안 어림잡아 무려 백만 배 이상 뛴 셈입니다. 공급이 제한되자 희귀성이 높아져 고흐의 그림값이 그의 죽음이후 최고의 평가를 받는 것은 어쩌면 미술화가만이 느낄 수 있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는 ['샘'이라는 제목을 가진 소변기 작품]입니다. 바로 마르셀 뒤샹의 작품을 말하는데요, 뒤샹은 1917년 뉴욕의 한 상점에서 구이한 소변기를 '샘Fountain'이라 제목 짓고, 뉴욕의 독립 예술가협회의 전시회에 '리처드 머트Richard Mutt'라는 이름으로 출품합니다. 약간의 참가비만 내도 작품을 전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전시되지 못했는데요, 그 이유는 '천하고 창작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비도덕적이고 저속하다', '표절주의'라고 심사위원들은 평가절하했다는군요. 하지만 뒤샹은 '샘'에 대한 미학적 논쟁을 제기하면서 예술가가 의도적으로 직접 미술품을 제작하지 않았더라도 예술가가 지각知覺 하고 전시하는 행위를 통해 어떤 오브제라도 하나의 미술품으로 변용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직접 손으로 만들지 않았더라도 사물의 가치를 새로이 발견하고 예술가가 선택했다면 그것으로 새로이 탄생하는 것이어서 기존의 이름과 용도는 사라진다는 것이죠. 일본이 국보급으로 여기는 자기가 있다고 해서 확인해 보니 '여염집의 요강'이었더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는 것처럼 기존에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물일지라도 그것을 몰랐던 사람이 새로운 이름과 용도를 넣을 수도 있고,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예술가(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의 전환이 사물과 개념을 을 넘어 오늘날의 개념미술과 행위예술의 탄생을 불러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의 이러한 획기적인 안목은 재미있게도 경제학의 출발점과 맥을 함께 하는데 경제의 문제는 항상 그 출반선상에 선택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제학을 보통 '선택의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과 일맥상통하다는 것이죠.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우리가 몇 개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되면 그와 동시에 포기하는 다른 하나 혹은 둘이 생겨나게 되죠. 늘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후회를 합니다. 그래서 '기회비용'이나 '매몰비용'과 같은 경제학적 개념도 낳게 됩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만족 극대화의 원리' 혹은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게 되죠. 이 책의 주인공 경제학자 P씨는 "마르셀 뒤샹은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것이다."라고 결론을 짓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가장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마르셀 뒤샹과 같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선택이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우리 모두는 자신만은 늘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죠.
 
  가장 재미있게 본 부분은 렘브란트를 이야기한 '야경과 야경국가' 입니다. 몇 주전 모임의 일환으로 '라틴 아메리카 거장전'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요, 실내가 그리 어둡지 않은데도 일부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어두워서 잘 안보일 정도인 작품들이 꽤 있었습니다. '질이 나쁜 물감을 사용했거나, 잘못된 보관으로 변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미술 분야에 계신 어떤 분이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렇겠다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듯 잘못된 보관으로 오명(?)을 입은 작품이 제가 좋아하는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에도 있더군요. 바로 그의 작품 '야경The Night Watch'가 그것입니다.
 
 

 
 
  렘브란트가 붙인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프란스바닝 코크 대장의 부대'로 네덜란드의 시민 자위대가 156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전쟁에 출동하는 장면이며, 배경이 밤이 아닌 낮이었다는군요. 그렇다면 대낮에 출동하는 부대를 그린 그림이 왜 '야경'이 되었을까? 하는 질문에 저자는 중요한 부분은 강조하기 위해 밝게 표현하고 배경이 되는 주변은 어둡게 채색하는 특징을 보이는 렘브란트의 독특한 화풍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그가 죽은 후 작품의 소유자들이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니스로 덧칠을 해서 더욱 어둡게 변색되었다고 하는군요. 이것 또한 1975년에 되어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림의 복원 작어을 하던 중 니스가 벗겨지자 본래의 색채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그림의 배경이 밤이 아니라 낮이라는 사실이 3백여 년이 지나서야 밝혀진 셈인거죠.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 부분을 읽게 되면서 그동안 눈에 담아 두기만 했던 책 [미술관에 간 화학자, 과학의 프리즘으로 미술을 보다]를 읽기로 마음먹게 만듭니다.
 
  아무튼 그 덕(?)에 경제학자 P씨는 제도학파의 경제 이론 중에 나오는 '야경국가'를 설명합니다. '야경Night Watch' 이란 국가가 국민들에게 치안과 재산권의 보호를 위해 야간에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즉 야경국가란 이처럼 국민들로부터 최소한의 조세를 징수하여 국가 조직을 유지하고 운영하는 '최소 국가Minimal State'의 형태로, 이때 국가는 최소한의 기능과 역할만을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국가는 국민과 일종의 계약 형태 즉 사회계약을 통해 '아나키적 상태'에서보다 높은 후생을 제공하는 것이 각 개인들의 이기심에 의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행동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 선택에 의한 의사결정 행위로 간주됩니다.
 
  이 같은 최고 국가의 형태가 바로 야경국가의 모습입니다. 최근 북구의 복지국가 들에서 이런 모습을 찾을 수 있는데, 이들에게 국가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정부의 목표는 국민 복지와 후생의 증진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이 적당한 후생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반 재원을 막대한 세금에 의존하고 있어서 복지 수준이 높아질 수록 세금 부담률 또한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금 부담의 증대는 민간 부분의 생산성을 약화시키고 실업을 증대시켜, 결국 경제성장마저 점차 둔화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데, 이런 현상을 북구의 여러 나라들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말년에 무일푼에 집 한 켠 없이 떠돌이로 지내다가 죽음을 맞이했던 렘브란트에게는 야경국가 체제에서 살기를 원했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 누구보다 자화상을 많이 남긴 렘브란트는 자신의 자화상에서 변해가는 자신과 주위를 모습을 그렸습니다. 다시 말해 작품 수만큼 자신을 돌아보며 살다 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집과 가족의 유무와 부귀영화를 떠나 평생을 '자신를 살피다가' 떠났다면 그것도 나름은 충실하게 삶을 산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책은 그 밖에도 많은 작품과 경제원리를 설명합니다. 마그리트의 '보이지 않는 선수'를 통해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설명하고, 베르메르의 '저울 든 여인'을 통해 당시의 중상주의와 행복의 무게를 가늠하는 '빈 저울'도 언급합니다. 미술가라기 보다는 최고의 사업가로 알려진 피카소는 그의 큐비즘과 일반균형이론이 소개되고, 현미미술의 거장 잭슨 폴락의 '액션페인팅'을 통해 카오스 경제 이론을 설명하는 등 이 책에만 무려 스무가지의 작품과 미술가, 그리고 경제원리들이 소개됩니다.
 
  정진홍 교수는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찾으라' 주문을 하고, 또 다른 책에서는 그림과 시에서 CEO가 갖추어야 할 경영 전반을 찾으라(시읽는 CEO, 그림 읽는 CEO)향은 문화를 통해 창의력과 통찰력을 얻으라고 이야기 하듯 최근의 경향은 문화 전반이 비즈니스에 결합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21세기는 컬처 비즈Culture Biz 의 시대임을 예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꼭 무엇을 얻는다기보다는 미술이든 음악이든 예술의 한 부분들이 '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떤 직업의 사람이든 제 입맛에 맛도록 해석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라 이 책은 말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를 살피는 의사도 나오고, 미술품 속에 나오는 건축물을 이야기하는 건축가의 작품도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느 한 쪽이든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재미있고, 유쾌한 경험을 안겨줄 멋진 책입니다. 지금까지 미술과 경제가 잘 어울려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 책, [미술관에 간 경제학자]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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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서의 좋은 점

이 책은 기존에 나왔던 경제학관련서와는 차별화를 추구했다. 즉 우리 일상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사건을 경제학적 측면에서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경제학 콘서트]나 [괴짜 경제학]류와는 달리, 경제학자들이 세상의 주요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경제성장, 교통, 환경, 범죄, 건강보험, 은퇴 계획, 심지어 행복 성취 방법 등과 관련된 문제들을 개인 차원이나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은지 경제학자들의 연구와 제안을 통해 살펴보고자 했다. 실제로 무담보 소액대출, 신중한 투자방법, 효율적인 경매방식, 피크 가격제, 직원의 복리와 주주의 이익 보장 등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어제와는 다른 경제활동들이 사실은 경제학자들이 만들고, 국가나 기업 혹은 단체에 제안하여 채택된 방법인 것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이 세계경제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이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대한민국 경제, 빈곤의 카운트다운>

 

 

 

 

•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경제학과 세계경제에 관심이 많은 독자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경제학자들이 준수해야 할 경제학의 7가지 기본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경제학의 7가지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책무성과 사용자 지불의 원칙 Accountability
2. 절약과 비용편익 분석 Economizing and cost-benefit analysis
3. 저축과 투자의 원칙Saving and investment
4. 인센티브 유인의 원칙Incentives
5. 경쟁과 선택의 원칙Competition and choice
6. 기업가 정신과 혁신의 원칙Entrepreneurship and innovation
7. 효율적 복지 원칙Welf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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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신장섭 지음 / 청림출판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한국경제 전반에 걸쳐 장단점과 대안을 제시한 책!
 
   세인들이 현실을 논論함에 있어 빠지지 않는 것 '경제'다. 나라경제의 옳고 그름과 나아갈 바에 대해 이야기들 하지만 정작 '경제학자'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은 듯 하다. 명망있는 경제학자들이 입각하여 '재경부'의 수장이 되기도 하지만, 업계(?)에서 알아주었던 명성만큼 현실경제를 잘 이끌지는 못하는 듯 하다. 그 어디서 무엇을 했던지 관직官職에 오르기만 하면 정치인이라는 '오명'을 씌워 도매금으로 넘기는 경향도 없잖지만, 학계에서 이론을 정립하는데는 유능할 지 몰라도 자신의 이론들을 현실에 적용하기는 쉬운 일이 아닌 듯 하다.   TV의 경제정책토론이나 신문의 컬럼만 보더라도 학자들보다 업자들의 목소리가 크고, 호응이 높은 이유는 뭘까? 현장에서 발로 뛰며 현실을 체득하고 있는 업자들의 현실론이 책상물림의 과거회귀형으로 대변되는 학자들보다 더욱 생동감있고, 구체적이라는 데 있다. 과연 경제학자들은 현실경제에는 약하기만 한 것일까? 현실의 당면한 문제점들에 대해 옳고 그름, 나아갈 바를 제시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만은 않은 것 같다.
 
  조목조목 짚어가며 한국경제에 대하여 이야기한 경제학자의 책을 만났다. 저 멀리 싱가포르 국립대학 경제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신장섭 교수가 경제와 한국 경제의 현안에 대해 무려 70가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몇 안되는 제도주의 경제학자이며, 좌파도 우파도 아닌 실용주의자라고 스스로를 말하고 있어 신선하기까지 하다.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가 그것이다.
 
  우선 이 책의 출간에 대해 반가움을 금할 수 없다. 이제껏 출간된 경제학관련서들이 '경제학 원론'을 읽기 쉽게 풀이했거나, 제도주의 경제학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행동주의 경제학'을 설명하는 책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들은 거의가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경제원리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쉬운 경제학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들은 학문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될 지 몰라도 실제로 경제상황을 살펴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이론들이어서 자못 아쉬웠었다. 몇 몇 현실경제를 이야기하는 학자들도 있었지만, 이 또한 정치경제학적 접근에 근거하고 있어 좌향좌냐? 우향우냐?의 정치적 논쟁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옛날이 그립다'고 말하는 세인들의 말이 있듯 하기 좋은 말로 국민된 입장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 그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잘못만을 논하는 게 경제학일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하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경제학자의 손에 의해 가장 '뜨거운 감자'로 거론되는 한국경제의 대해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 장단과 핵심을 지적하는 책이 나온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상식선에 던지는 경제문제들, 예를 들어 한국 경제는 어떻게 기적을 이뤄냈는가? 왜 갑자기 금융 위기에 빠졌는가? 삼성, 현대와 같은 기업들은 어떻게 그렇게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의 반열에 올랐는가? 한국 경제,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가? 한미 FTA는 왜 필요한 것인가? 공기업 개혁, 왜 ,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식시장은 투기꾼들이 지배하는가? 부동산 시장, 때려잡아야 하나? 환율, 왜 널뛰기를 하나? 등 70여 현안에 대해 학자의 입장에서 소신껏 응답하고 있다.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는 대답도 있고, 소신이 한껏 뭍어있는 용기있는 대답들도 발견하게 된다(외국에서 근무하고 있어 제 3자된 입장이 되서 일까? 아니면 국외에 있어 그런 용기가 생기는 것일까 읽는 내내 궁금했다).
 
  그중 인상깊은 몇 가지 질문을 살펴보면 글로벌 스탠더드, 누구에게 좋은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우며 한국 경제를 모두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국내외 학자들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모든 이익이 돌아갔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국 경제를 위한 처방이라면 한국 경제의 구체적인 현실에 기초해서 변경되어야 할 것인데, 글로벌 스탠더드를 들이대며 한국이 이에 맞춰 구조조정을 해야만 세계화 시대에 생존할 수 있는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바람에 수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고, 수많은 실업자가 양산되었고, 그로 인한 부실채권을 외국인투자자들에게 헐값에 넘겨야 했다.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하는 것들은 전 세계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에게 바람직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 경제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집단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데에 바람직하니까 만들어 놓고 남에게 따라오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며, 경제를 운용하는 시스템을 고를 때에도 국가 경제의 전체적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무엇이 더 바람직한지를 잘 살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했다.  
 
또한 한국경제가 그토록 폐쇄적이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수출 주도 국가가 폐쇄적일 수 가 있는가? 라며 되물으면서 아무리 자유무역을 하려고 한들 무역적자가 계속 쌓이면 금융 위기를 당하기 때문에 그 전에 수입을 줄일 수 있는 단기 대책을 허용해 줘야 한다며 실제로 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실행한 수입 규제 조치들도 내용을 따지고 보면 국내 산업 보호 보다는 무역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 더 많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한미 FTA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명시적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외부 충격을 통한 내부 개혁론을 내세우는 사람들이며, 한국경제의 현재 시스템은 아직도 문제가 많으니 한미 FTA라는 외부 강제 수단을 통해 한국 경제를 더 개방학 내부 시스템도 더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저자는 FTA에 마치 국운이 걸려 있는 듯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한국 경제가 개방에 관해 택할 수 있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고, FTA는 그중 한 가지일 뿐, 어느 나라와 먼저 하는 것이 좋은지, 어느 수준에서 체결할 지 등을 구체적으로 생각해서 주체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개방은 필요하지만, 갖고 있는 것을 송두리째 내 주는 것은 개방이 아니며, 우리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하고 개방을 통해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개방은 문제의 해결점이 아니라 어려운 협상 과정의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 밖에도 부동산 문제는 정치문제이고, 부자와 투기꾼은 엄연히 분리해야 하고, 앞으로 다가올 노령사회에는 이민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며 저자는 우리나라 경제현실의 문제점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설명과 해법 중 논쟁의 여지가 없잖지만, 경제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고 있는 경제학자의 모습이 보기 좋다. 그리고 새로운 시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기고 있다. 신문과 언론의 주장이 천편일률적이거나 양분화되어 여론을 몰아가는 습성이 있고, 그에 휩쓸린 여론은 혹시라도 그것에 어긋난 생각이나 주장이 제기되면 적대시하거나, 무시하는 풍조가 우리 사회에 적잖다. 판에 박힌 목소리와 주장 속에서 만난 반가운 목소리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우리에게 현실을 흐름대로 볼 것이 아니라, 조금 떨어져 보거나 거슬러 바라보기를 권한다. 대한민국 경제에 관심을 둔 독자들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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