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해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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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대소 속에 뭍어나는 삶의 페이소스, 성석제의 여행 단편모음집!
 
"걘 뭐해? 전화해서 나오라고 하지?"
 친구중에 그런 녀석 하나 꼭 있습니다. 세사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친구. 녀석의 하루가 슬랩스틱코미디인 듯, 만날 때면 이야기 보따리가 한가득인 친구가 있습니다. 표정과 말투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남이 했던 시시한 이야기도 녀석의 입을 통하면 박장대소를 부릅니다. "허 참, 내가 이런 일도 있었다니까?" 라며 말문을 열면 흩어져있던 이야기들이 잠잠해 집니다. 그리고 잠시 후 배를 움켜지고 쓰러지는 친구들의 웃음소리에 그냥 옅은 웃음으로 좌중을 지긋이 보는 녀석. 그래서 모임에 그 친구가 나오지 않게 되면 비빔밥에 고추장이 빠진 듯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아 도통 흥이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녀석이 보이지 않으면 누군가는 꼭 이런 말을 합니다. "걘 뭐해? 전화해서 나오라고 하지?" 
 
  어제 읽은 소설이 그 친구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아홉편의 단편 하나 하나가 어찌나 구성지고 재미있고,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지 그래서 눈물나게 웃다 보면, 그 웃음 속에 숨어 있는 아련한 인간적 비애감도 느끼게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소설가 성적제의 [지금 행복해]를 읽었습니다. 이번 소설은 절반 이상이 여행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엮었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넉넉하게 보내는 연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분명히 난 소설을 읽었는데 말이죠, 마치 만화가게에서 코믹만화 한 권을 집어든 사람처럼 조용한 북카페에서 편한 자세로 읽기 시작했다가 '크득크득' 웃느라 자세를 고쳐잡아야 했고,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채 웃음을 참느라 '끄윽끄윽'대다가 결국은 야외테라스에 나가 뒤집어지게 웃어야 했습니다. 물론 한 쪽 손에는 이 소설을 들고 말이죠. 내가 겪었던 어린 시절 여행생각도 나고, 함께 갔던 말썽장이 친구들이 생각이 나서 웃음 뒤엔 한참동안 옛날을 더듬게 했습니다.   
 

   
  성석제 만큼의 가벼운 소재와 오만 군상의 주인공들이 엮어내는 가벼운 사건 사고가 항상 즐거운 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도 아니고, 남의 이야기도 아닌 '내가 겪은 이야기'같아서 입니다. 나에게 있어 그분의 소설은 감탄과 찬사를 던지며 읽는 소설이기 보다는 한 겨울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조용한 겨울밤을 배경삼은 푸근하고 넉넉한 오뎅집에서 서너 살 위의 형님과 마주앉아 따끈한 정종과 안주 마시며 끌끌껄껄대는 그런 소설 이거든요. 웃다가, 혀를 차다가, 뒤집어지다가 책을 덮으면 '그래, 이런게 세상 사는 게 아니겠어?'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해주는 소설이거든요.
 
"여섯, 여섯, 여섯, 이래 논구고, 그래마 두 개가 남는다. 둘 나누기 셋은 영 점 육육육쩜쩜쩜. 하고 무한대다. 가위바위보나 홀짝으로 해서 맞히는 사람이 한 개비씩 가지는거 어떠냐."
 
"가위바위보나 홀짝이나 난 그렇게 우연에 맡기는 게 싫다."
 
"그래마 이래자. 두 개를 한꺼버네 불을 붙이가이고 돌아가민서 삼분의 이씩 피우마 되잖아."
 
"무슨 수로 삼분의 이를 피웠는지 아느냐고. 난 남의 침 묻은 담배 피우기 싫어."
 
"갑(담배케이스)를 담배 하나로 보고 두 사람은 담배 하나씩. 한 사람은 갑을 가지기로 하자고. 갑 있으마 담배 간수하기 좋지."
 
"갑하고 답배하고 같다는 논리에 반대한다."
 
"에에, 씨부랄. 그 새끼 더럽게 따지쌓네."
 
단편 [여행]은 배알 꼬일 일이 뭐가 그리 많은지 티격거리는 만재와 봉수, 그리고 영덕은 태양 담배가지고 싸움을 일으킵니다. 이렇게 서로가 못마땅하고, 다른 듯 하면서도 항상 같이 붙어다니는 무리, 그게 친구인가 봅니다. 아들과 친구 먹은 중독자 아버지 이야기(지금 행복해), 여행중에 한 여자에게 반해 그녀만을 쫓다가 생기는 이야기(설악 풍정), 바위에 잘못 올라갔다가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기적처럼), 남자 셋, 여자 셋 국민학교 동창들이 이십대가 되어 떠난 여행(피서지에서 생긴 일), 옴니버스란 이런 것이다 말해주는 듯한 이야기(톡), 낚시하다 일어난 이야기(낚다 섞다 낚이다 엮이다) 이런 저런 배꼽을 빼는 에피소드가 모두 아홉가지가 모여 성석제표 여행 9종 세트로 한 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자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웃음과 슬픔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 아닐까요? 실제 삶에 있어서는 슬픔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나 문학에 슬픔이 지나치게 들어가면 과장이 되기 쉽죠, 아홉 스푼의 웃음에 한 스푼 정도의 슬픔이 비극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놀라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고, 너무나 슬퍼서 우스운 일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억지로라도 웃어야 건강하다고 말들은 하지만, 억지 웃음처럼 사람을 비참하게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목구멍이 훤히 보이도록 가슴내어 뒤집어지게 웃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한  제 친구의 말이 생각납니다. 나이먹을수록 생각되고 계산된 웃음에 점점 더 익숙해지는 게 아닐까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이라도 마음껏 웃고 싶고, 마음껏 슬프고 싶어서 옛친구를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이 책을 만나보세요. 선배를 만난 듯, 친구를 만난 듯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공공장소에서는 읽을 때는 주의하세요. 거짓웃음에만 익숙한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사알짝 미쳤다'고 할 지도 모르니까요. 즐거운 친구의 이야기같은 소설, 성석제의 [지금 행복해] 이야기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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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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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부커스 -  저자? 독자? 누구를 말한 것인가?
 
 
  대학을 입학하기까지 운동과 놀이를 워낙 좋아하던 탓에 나는 '독서의 즐거움과 이로움'을 알지 못했다. 고교시절까지 내가 들여다 본 책이라고는 교과서와 참고서 그리고 사전이 전부였다. 교과서 속에 들어있는 문학과 인문, 역사 그리고 예술등 그 많은 활자들을 쫓아가기도 바빴던 나에게 교과목 이외의 책을 읽은 것은 열 손가락 안에 들었을 정도였음을 고백한다. 소위 말하는 '지성의 상아탑'이라고 하는 대학을 들어가면서는 '책을 읽지 않은 자신'이 대학에 들어갔다는 자기적 모순에 빠져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안될 당면과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은 박식해 보이는 선배의 손에 항상 들려 있던 F. 엥겔스의 '자본론 보론'을 쫓아서 산 것이 첫 번째 도서구입경험인데, 우리말로 쓰여진 문장임에도 활자를 쫓아 읽어갈 뿐,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어서 달랑 두 페이지를 읽고는 덮어버렸다. 그 뿐 아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쫓아 농활(농촌활동)을 떠나는 길에 열차에서 그녀에게 보일 요량으로 '헤겔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사서 앞에 앉아 읽었는데, 사람을 죽인다는 소린지 살린다는 소린지 분명 한글로 써져 있는데도, 내가 읽어가는 한 줄의 의미를 몰라 윗줄로 추적하기를 반복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모가지는 오후 세 시 방향으로 꺾은 채 입을 벌리고 잔 터라 흘러내린 침때문에 '조갈'을 느껴 깨어버렸다. 나의 '천사'는 건너편으로 건너가 예비역 선배의 기타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때의 비참함이란...그 시간 이후 지금까지 난 '헤겔'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읽기는 해야겠는데 무엇을 읽어야 할 지 몰라 강박으로까지 다가온 나의 '독서의 충동'이 답을 찾기 시작한 건 전공기초 과목이었던 '국어'교수께 상담하게 되면서부터다. 그 분은 책을 처음 접하는 내게 '칼 구스타프 융'의 '잠재의식'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수준과 종류를 따지지 말고 닥치는대로 읽기를 권했다. 책을 읽은 후 무엇을 읽었는가 되돌리려 하지 말고, 그저 다음 책에 몰두하며 수많은 카테고리가 담겨져 있는 두뇌라는 하드에 양적으로 저장하기를 권했다. 독서이후의 남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하셨다. 두뇌는 그릇과 같아서 내가 배운 지식들이 하나 하나 채워져 가고, 그것들이 숙성이 되면서 느끼게 되고, 쌓이고 느끼는 과정이 반복되면 발효되어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으로 다가온다고 말해주셨다. 그래서 그 작은 깨달음들이 그릇을 차고 넘치게 되는 순간, 나의 일상생활의 곳곳에서 그동안 읽고 배운 것들이 내가 의식하지도 않았음에도 현실에 적용되고 활용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경험은 무척 놀라운데, 그 맛을 느끼는 순간 '독서의 즐거움'이 시작될 거라고, 그 전까지는 조금은 수고로운 과정일 거라고도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분은 독서생활도 인간의 경험이라 누가 알려주기 보다는 스스로 익혀야 그것이 내 것이 되는 것이어서 처음 책읽기를 시작했으면 추천을 바라지 말고 나의 판단으로 무조건 다독하기를 권했다. 그야말로 닥치는대로 읽고 무조건 수용하라고 말씀하셨다. 읽고 난 정보와 지식이 나의 일상생활과 결합되면서 책에서 이야기했던 것을 분석하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 나에게 좋은 책과 나쁜 책은 무엇인지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책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그 분이 처음 권해주신 책은 '시드니 셀던의 통속소설'이었다. 미국 드라마의 미니시리즈나 영화의 원작이 될정도로 재미가 넘쳤던 책들인데, 국내에 나온 그의 소설을 전부 읽으면서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습관'을 배웠던 것 같다.
의심과 두려움이 사라진 그 때부터 책에 흥미를 붙이면서 지금까지 책은 둘도 없는 '친구'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고, 시드니 셀던의 소설에서 다른 작가들로, 다른 장르로 범위는 넓어졌고, 책을 읽는 양과 속도도 향상되었다. 물론 지금의 내가 대학새내기 시절보다는 지적으로 더 성숙해 진것은 틀림없는 사실이 되었다.
 
 하지만 좀 더 효율적이고, 알차게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갈망은 무슨 책을 읽어야 할 지 알만한 지금이 예전에 '당장 무슨 책부터 시작해야 하는 지 모르는 초보' 때 보다 더욱 더 큰 강박으로 다가온다. 한창 일을 할 나이인 지금은 쪼개고 쪼개도 나지 나지 않는 것이 시간인지라, '책을 읽은 후 후회하는 누'를 범하고 싶지 안아서였다. 지금도 서점을 가서 느끼게 되는 설렘과 두려움은 지식의 보고인 서점을 보물섬이라고 비유한다면 평생을 보고도 다 못볼 만큼의 쌓여있는 책들과 매일 쏟아지는 싱싱한 신간들을 목격하노라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책 [보물섬]에서 파란곡절 끝에 누런 황금이 가득한 보물들이 가득한 곳을 찾아가 눈앞에 둔 보물들을 어찌해야 할 지 모르는 소년 짐 호킨스의 마음과 다를 바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책 읽는 책' 혹은 '좋은 책 권하는 책'을 틈틈히 읽으며 나름의 좋은 방법을 아직도 찾아 헤매는 중이다. 오늘 만난 이권우씨의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도 그 맥락에서 만난 책이다.
 
  내가 '책 읽는 책' 혹은 '책 권하는 책'을 부러 찾아 읽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나보다 훨씬 내공이 많은 사람에게서 '보다 나은 책 즐기는 법'을 배우기 위함이다. 저자의 책읽는 습관을 엿들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 나만의 방법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욕심의 발로인 것이다. 두 번째는 '좋은 책을 소개받고 싶어서'다. 책을 말하는 저자인 만큼 필이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책을 읽었을테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끝에 언급하는 도서와 저자들의 이야기나 발췌부분이 있다면 기록해 두었다가 추적해서 읽고자 함이다. 마지막으로 '위로'받고 싶어서다. 스물 네시간이라는 하루의 한정된 시간 중에 '정중동靜中動'의 자세로 책을 읽음은 더 이상 남에게 '독서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함도 아니고, 낭비하는 시간에 대한 자위책自慰策 도 아니다. 부족함을 느껴서 책을 통해 만회하려는 노력의 과정일텐데, 인풋Input 에 비해 아웃풋Output 을 좀처럼 발견하지 못하니 독서를 하는 시간이 '또 다른 시간낭비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하는데, 대단한 내공의 고수들이 "자네, 지금 잘하고 있다네." 라고 위로해 준다면 지금보다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짧은 생각에서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는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다.
 
  스스로가 '책벌레'라 말하는 저자는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고수 책벌레'다. 이미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라는 책을 내어 많은 도서애호가들에게 회자된 바 있으며, 도서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니 이른바 '책읽기가 직업'인 그보다 더 나은 독서가가 몇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책의 내용 또한 고수답게 새로운 생각과 깨달음을 던져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글이 모였다지만, 제 집을 잘못 찾은 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우선 '호모부커스'에 대한 개념이다. 처음 들어보는 듯 한(책을 읽고난 지금도 이 단어가 이미 존재하는지조차 난 모르고 있다)당당히 이 책의 제목으로 소개되었다면, 그 개념에 대해 소개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이 책이 '호모부커스'를 설명한 책인지, 아니면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호모부커스가 되는지, 저자의 별명이 '책벌레' 뿐 아니라 '호모부커스'인지을 짐작하게 할 것인데, 제목을 빼고는 한 번도 언급하지를 않으니 '언제 이 단어가 나올지' 답답했다. 결국 책을 모두 읽고 나서 마지막 장을 덮으려 하니 출판사의 기획물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속에 들은 'Homo~ 시리즈'임을 알게 되어 한동안 허탈한 감마저 느끼게 했다.
 
  두 번째는 '첫머리에' 부분인데, 저자는 "이 책은 달인이 되는 지름길을 말해 주지는 못합니다. 제가 책읽기의 달인이 되는 왕도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달인이 되는 작은 길은 열어 놓으려 애썼습니다. 이 길을 편안한 마음으로 걸어 보십시오. 땅이 패어 있고 가끔 끊어지기도 하고 자갈도 여전히 널려 있지만, 한번 가고 나면 스스로 달인 되는 법을 깨우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라고 이 책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제목과 부제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 책을 읽고 '책읽기의 달인'이 되는지, '호모부커스'의 대열에 낄 것인지 궁금해서 책을 산 독자들에게는 무엇을 얻으라는 것인가? 이는 마치 '만명통치약' 라벨이 붙은 약을 팔면서 '약 사용설명서'에 "이 약은 만명통치는 아닙니다. 약이 독해서 머리가 빠질수도 있고, 위액이 모두 쏟아질 만큼 구토를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약을 모두 마시고 견디다 보면 내성이 생겨 병으로 인한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실 겁니다.'라는 것과 무에 다를 바가 있더란 말인가?
 
저자의 책에는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이 있다. "(...)이 정도 시간을 들였는데도(책의 표지에 담긴 광고성 문구드에는 책의 주제와 강조점이 들어 있고, 목차는 책 전체의 내용이 들어 있으니 그것만 살펴봐도 그 책이 좋은 책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데도)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서문을 보면 된다. 물론, 서문 가운데는 감사패를 늘어놓은 듯한 책도 많다. 그런 책은 안 보면 된다(그래서 감사의 글을 책의 맨 뒤에 놓았나 보다). 서문이란 본디 책을 쓰게 된 동기, 책에서 문제 삼고자 한 주제의식, 그것을 풀어 나가기 위해 부여잡았던 고민거리들을 함축적으로 풀어놓은 마당이다. 그러니, 읽어 보면 대략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게 된다. 그러니, 읽어 볼 만한 책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게 마련이다. 더욱이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서문은 그 책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다. 그런데 그 서문이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면, 속된 말로 볼 장 다본 셈이다. 문제의식이 없거나, 주제의식이 애매하거나, 문장이 인상적이지 않다면 그 책은 돈 들이고 시간 들여 읽어 볼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P 140 - p 141) 역시 고수답게 정확하게 '시간을 절약하면서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자가당착에 빠진 느낌이 들지 않는가?
 
저자의 말대로라면 제목에 대한 언급도 없고, 책을 쓰게 된 동기도 맞지 않으며, 이 책에서 문제 삼고자 한 주제의식까지 결여되어 있으니 책을 구입해서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참을 고민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마음을 고쳐 고수인 저자의 말대로 책을 산 이상 이 책의 '주인'인지라 마음껏 책과 씨름한다는 마음으로 끝을 보고 말았다. 많은 것을 배웠다. 읽고 싶은 책은 십 수 권을 소개받았고, 당대의 독서가들의 '독서예찬'들도 만날 수 있었다. 저자의 독서에 대한 애정과 독서가 부재로 인한 우리나라의 미래를 우려하는 바에도 충분히 공감하고 박수를 쳤다. 정말 책을 사랑하고 독서를 즐기는 '책벌레'임에 틀림이 없었다. 국내의 '독서 권하는 책'으로는 손색이 없는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제 집을 잘못찾은 훌륭한 이야기와 내용들은 이미 '빈정이 상해 버린 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제 직업에서 승승장구해서 제 흥에 못이겨 책을 내는 일부 '실용서의 저자'들도 아니고, 다름 아닌 '도서평론가'라는 직업을 가진 '책벌레' 저자가 독서고수의 또 다른 이름을 명명하는 듯한 '호모부커스'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산문집'을 내었으니, 과연 내 서재의 '인문학'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어야 하는 것인지 조차 의심이 간다. 게다가 시작과 말미에 담았던 '겸양의 자세'들은 너무나 인상적이고 '책을 많이 읽은 사람'다웠는데, 본문에서의 그것은 너무나 하대下待해서 표리부동함마저 느끼게 했다. 전작에서 만난 저자와 너무나 다른 터라 오히려 '내가 전에 잘못 읽었었나?' 하는 의심에 전작들을 뒤져보게 만들었다.
 
  저자의 말대로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구입한 하수下手의 부덕이 탓이라면 할 수 없겠다. 이 책으로 그것을 배웠으니 앞으로는 더욱 조심히 책을 집어들어야 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은 타인의 저서를 평하는 평론가가 자신의 책을 내는데 있어서는 여느 저자보다 몇 배 더 심사숙고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호평好評은 세 명에게 전하지만, 악평惡評은 일곱 명에게 전한다'는 마케팅 속담이 있다. 저자를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모르겠지만, 이전에 호감을 가졌던 독자들에게는 실망감을 안겼을 것이다. 최소한 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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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만경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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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고통, 현대인이 느끼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
 
  내 연애소설의 시작은 재미있게도 만화였다. 제목은 이현세의 만화 '까치의 오계절'. 중학교 1학년의 따뜻한 봄이었는데, 시간적 부담이 없는 토요일 오후에 직사각의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만화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군것질꺼리를 할 돈을 남겨둬야 하는데, 한 권 한 권 읽다보니 주머니를 털었던 기억,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눈물을 감추려 검정색 교복모자를 푸욱 눌러쓰고 훌쩍거렸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까치의 오계절'은 나를 울린 첫 만화였고, 첫 연애소설이었다. 그 책은 오혜성과 마동탁 그리고 엄지와의 갈등을 이야기한 만화였는데,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 때에 '만화가게 대여 1순위의 초고속 베스트셀러'였고, 일본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후문이 있던 책이다. 이 작품으로 이현세는 만화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 이관용씨의 작품인 '열아홉살의 가을(이청과 조용원이 출연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을 비롯해 박범신씨의 소설과 장총찬이 등장하는 김홍신씨의 '인간시장' 등 시간과 경제력이 허용하는 한 모두 읽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다. 때마침 '사춘기'도 찾아와 알 수 없는 우울한 감정을 털어내려 책에 꾀나 탐닉했던터라 서재에 늘어나는 책의 수량만큼 시험성적은 떨어졌고, 급기야는 추호秋虎 같은 아부지한테 '독서금지령' 처분을 당했다. 너무 억울하고 분통해 '가출'을 고려했던 것도 그때였던 것 같다.
 
  비슷한 스토리에 주인공과 시공간만 바뀌는 '연애소설'은 독자의 나이에 따라 감회는 다른 것 같다. 어릴 땐 '연애란 무엇일까?' 너무나 궁금해 '훔쳐보는 마음'으로 그것을 집어들었고,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주인공의 대사 하나 하나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내가 네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 동조하게 된다. 나중에 그것을 집어 들면 '그래 나도 그런 때가 있어봐서 아는데, 그러는게 아니야'라며 충고하게 될까 모르겠다. 무튼 아직도 이야기중에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가 '남녀간의 사랑이야기'인 것을 보면 그런 글을 써도 시원찮을 나이가 된 내 스스로가 아직도 부족한 어설프니 같기도 하고, 팔푼이 같기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 하루도 팔푼이가 되었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동경만경東京灣景]을 읽었다. 
 
 



 
  소설 [동경만경]은 전체적으로 화려하지도 심각하지도 않다. 누구든 보낼 수 잇는 잔잔한 하루의 일상을 평범한 필체로 그려낼 뿐이다. 오히려 나의 하루와도 같은 일상 때문에 편안한 일일 연속극을 한편 본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슴 뭉클하고 애뜻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던 일반적 연애소설과는 다소 밋밋한 연애소설이라 짐짓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것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동경만경]은 삶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타인과의 관계 중에서 가장 행복하기도 하지만 때론 가장 큰 아픔의 기억을 가슴에 남기기도 하는 ‘남녀관계’, 그들의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찾고자 한다. 때론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 자체가 무의미 할 수 있지만 작가는 그곳에 독자들을 초대함으로써 각자 해답을 찾을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에 입은 사랑의 상처로 사랑에 대한 회의적인 감정을 가진 료스케와 '그가 단지 몸뿐이기를 바란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단지 몸뿐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랑의 감정에 대해 이질감을 가진 미오. 연애관만 비슷할 뿐 그들이 가진 직업과 삶에선 어떠한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그들을 서로 끌리게 만든 것 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너무도 가벼워진 요즘의 남녀관계를 상징하는 한 미팅사이트를 통해 만나게 된다. 료스케는 현재 교재를 하고 있는 애인이 있음에도 빠르게 그녀와의 육체적 관계를 갖는다.
 
‘빠지다' 라는 말과 '탐닉하다' 라는 말은 전혀 다르다.
‘탐닉하다'는 감각적인 문제지만 '빠지다'라는 건 영혼의‘ 문제다. (P 120)
 
  료스케와 미오는 사랑의 감정을 알아가고 싶어 하지만 단지 서로를 탐닉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고통과 외로움, 사랑에 대한 모호함이 주는 혼란스러움을 제공하는 감정의 사치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부정할지 모를 그 사랑의 감정에 빠져 들어간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자기 뜻대로 꿈을 이뤄내는 것처럼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아. 누군가가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ON이 되지 않고 거꾸로 누군가가 그 스위치를 끄지 않으면 OFF가 되지 않는 거지. 좋아하기로 마음먹는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기로 작정한다고 싫어지는 것도 아니고... " (P 153)
 
  도쿄만을 배경으로 잔잔하게 펼쳐진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네 삶의 단편적인 삶과 닮았을지도 모른다. 일본인인 그들에게 만남의 계기가 됐던 미팅사이트가 우리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 가보지 못한 일본의 알 수 없는 지명들이 주는 답답함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오늘날 온라인에서의 만남이 '우연을 빙자한 필연'이 되었던, '인스턴트 러브'가 되었던 무엇인가 '대화상대가 필요한 두 사람'의 존재가 있음은 어제와 오늘이 매한가지다. 서로가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둘이 만든 세상에는 둘만 존재하니까. 우울한 그들의 잔잔한 이야기 속에 사랑은 무엇일까 라는 인류 최대의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살포시 겹쳐있을 뿐이다. 어제의 날씨와 기분에 딱 어울렸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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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t & Love - 섹스와 음식, 여자와 남자를 만나다
요코모리 리카 지음, 나지윤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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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사랑과 음식을 먹고(?) 싶어지는 소설!
 
 술과 음식을 이야기할 때면 항상 떠오르는 선배가 있다. 대여섯 살(가장 친한 선배이면서도 아직도 정확한 나이차이를 모른다) 차이가 나는 세 학번 위의 선배인데, 내가 선배의 집에서 자야하는 경우는 딱 하나, 그와 밤새고 술을 마셨을 때 뿐이다. 새벽 서너 시에 거나하게 취해 집에 들어갔다간 추호秋虎 같은 아부지한테 몽둥이찜질 당할 껀 뻔한 사실, 게다가 그시간에 학교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집을 가려면 필히 택시를 타야 하는데, 그 돈이 있으면 술로 바꿔먹을 판이었으니 어림없는 소리였다. 선배집에서 잠을 얻어자는 것은 고마운 일인데, 게다가 아침밥까지 얻어먹는다는 것은 정말 감지덕지할 일인데, 문제는 정확하게 새벽 6시에 머슴밥을 먹어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놋쇠그릇으로 하나 가득 보리밥이 산을 이루고, 젓갈과 시골된장으로 잘박잘박하게 지진 된장찌게, 어제 담근 듯한 풋풋한 총각김치 그리고 철마다 바뀌는 반찬 두어가지가 전부인데, 해가 꼭대기에 걸쳐진 점심만 같아도 꿀맛이겠지만, 술취해 한 두시간 자다가 일어나 먹어야 하는 선배의 아침식단은 '모래밥'을 씹는 듯 했다. 얻어먹는 주제에 게다가 노구老具를 이끌고 지으신 새벽밥을 물리칠 수 없어 꾸역꾸역 밥을 쑤셔넣고, 물을 마시고 있으면 할머니는 놋쇠밥공기의 절반 정도를 또 담으신다. "됐어요. 할머니, 저 배불러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는 "녀석, 밥 참 잘 묵네..."하시면서 꾹꾹 눌러 담으셨다. 그리고 난 또 꾸역꾸역 모두 먹었고...
 
  "뭘 좋아하세요?" 30대 초반까지 가장 난감해 하던 질문이다. 터지도록 배가 부르지 않다면 뭐든 먹는 것은 다 좋은 식성을 가지고 있어 웬만해서는 음식을 거절하지 못한다. 타고난 식성食性 과 '없어서 못먹고, 안줘서 못먹었던' 경험으로 키워진 후천적 식탐食貪 덕분에 남의 집을 가면 '남자답게 먹는다 혹은 복스럽게 먹는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밥상 앞에 앉았을 때 듣는 그 칭찬에 더욱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되도록 가리지 않고 먹었고 되도록 배가 부르도록 먹어 '뭘 좋아하냐' 물으면 '못먹는 것 빼고 다 좋아한다'고 선문답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까탈스러워짐을 느낀다. 얼마 전 드라마에서 말한 바 처럼 "음식은 곧 사람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비싸고 좋은 것을 먹기' 보다는 '제대로 만들어진 음식'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삼신할미는 사람을 세상에 내보낼 때 제 밥그릇 숫자를 정해주는데, 한 끼라도 적게 먹으면 그만큼 명命을 줄여서 다시 부른다' 는 우리 할머니의 섬뜩한 가르침을 깨닫게 되면서 되도록 '제 때에 잘 먹으려' 노력하게 되었다. 음식은 몸을 움직여야 할 남은 시간을 위해 배를 불려야 하는 '연료보충'의 의미도 있지만 맛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욕구충족'의 의미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이성異性과 같고, 사랑과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음식과 사랑(섹스)의 묘한 관계, 그것을 이야기 한 소설을 만났다. 요코모리 리카橫森 理香 의 소설 [EAT & LOVE]를 어제 읽었다. 원제목은 EAT&LOVE (イースト・プレスチュチュカラーズ) 이다. 
  
 

   
 묘하게 엮인 주인공 여섯 명을 음식의 소재와 또 다시 엮어 그들의 사랑과 섹스를 이야기한 소설이다. 음식을 소재로 한 소설이란 면에서는 조경란의 [혀]와 닮았지만, 주인공 한 명을 제외하곤 주제들이 경쾌하고 라이트해서, 무엇보다 다분히 주인공들이 이국적이라 다름을 감지한다. 주인공 여섯 중에 '라즈베리 무스' 속 주인공, 36세의 노자키 신이치로 한 명만이 남자이고, 그의 주위에 있는 여자 다섯 명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어떻게 보면 노자키 신이치로가 이 소설의 메인인 듯 하지지만, 실은 그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엮기 위한 이야기의 핵심소재 역할을 한다. '주제도 모르는 바람둥이에 호색한'이라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남자들에 대한 여성들의 관념이 그러하듯 저자는 노자키를 그런 남자로 등장시켰다. 그럴 법하고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지만, 저자가 여성이었기에 노자키의 깊은 내면을 밝히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웠다(독자는 나같은 남자도 있으니까).
 
  재미있는 점은 40대에서 20대에 걸친 다섯 명의 여자주인공이었는데, 소설의 구성 또한 40세의 에구치 미라이, 34세인 가와카미 야스요, 26세의 나카다 유코, 22세의 고지마 미키, 그리고 이제 갓 20살이 된 가시타 미오를 주인공으로 그녀들과 관계되는 음식과 그에 얽힌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이었다. 나이와 직업 그리고 살아온 배경이 다른 그녀들에게 있어 연상하고 찾게 되는 음식은 실로 다르고 다양했는데, 과연 '음식이 곧 사람이다' 란 말이 틀린 말이 아니구나 느끼게 된다. 나이마다 다른 여성들의 남성관과 섹스관 또한 '과연 그럴까?'하는 의문과 흥미를 던지는 부분이었다. 세계에서 미뢰(혀에 돋아나있는 자극을 담당하는 돌기)가 가장 잘 발달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일본인의 손에서 비롯된 음식과 사랑이야기이어서 일까 세밀한 묘사와 표현력은 대단히 감각적이었다. 특히 22세의 고지마 미키가 엄마의 유언대로 장례식을 찾은 문상객들에게 최고의 도시락과 점심을 제공하고, 타오르는 듯한 빨간색을 사랑하던 엄마를 기리기 위해 '빨간 한국 음식'을 저녁으로 찾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가까운 가족의 죽음 앞에서도 '배고픔'를 느끼는 동물적인 인간을 새삼 느끼게 되고, 그에 앞서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되고 싶은 듯 죽음 앞에서 '스시'를 맛있게 먹는 엄마의 모습에서 '먹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보게 된다.
 
  30대의 남성 노자키는 '라즈베리 무스'를 쳐다 보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마치 이런 느낌이지. 약간 달콤하고, 취한 듯 몽롱하고 둥둥 떠 있는 듯하고, 녹아버릴 것 같고, 먹으면 정말로 입 안에서 금세 눈처럼 사라져버리거든." 라스베리 무스가 먹고 싶어졌다. 정말 맛이 그럴까? 최고의 표현은 20세인 기시타 미오의 파파(나이든 애인)가 인간의 음식과 사랑에 대한 코멘트 일 것이다. "미오, 인간은 먹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먹는 것은 인간의 기본이야. 그래서 맛없는 것을 먹으면 안 돼. 늘 맛있는 것, 잘 갖춰진 것을 먹어야 해. 지나친 듯해도 그것이 바로 좋은 인생을 만들어가지. (...) 온갖 희귀한 걸 먹어보고 싶은 건 인간의 욕망이야. 욕망은 끝이 없는 법이지." 
 
  멋진 말, 하지만 50대가 아니면 잘 할 수 없는 말이다. 맛있는 음식이란 맛없는 음식을 먹어봐야 아는 것이고, 수많은 먹을 것을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음식경험이 풍부한 50대의 추천 요리들이 맛있고, 잘 만들어진 것일테지만 어리거나 미숙한 사람에겐 제 입맛이 길들여진 타인은 그 맛을 모르거나,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른다. 제 나이에 맞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제 나이에 맞는 사랑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음식의 맛도 사랑도 온전히 평가할 수 있는 사람도 '나'인 것 같다. 이 소설을 읽고 사랑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뭘지 생각해 봤다. 내겐 '늦은 새벽 사랑하는 여인과 침대에서 함께 떠 먹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통'이었다. 물론 먹은 다음(?) 먹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 맛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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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천재는 아니었다
김상운 지음 / 명진출판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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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두뇌개발을 위한 2008년 최고의 자기계발서!
 
  낯선 곳을 여행하거나, 방문했을 때 제일 곤란한 것은 '먹을 꺼리'다. 아무 곳이나 들려서 소위 말하는 '순대를 채우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면 더이상 할 말이 없지만, 그 지역에서 맛있는 집을 찾아가 '식사'할 수 있다면 오래도록 즐겁고 기억에 남는 추억꺼리가 될 수 있다. 이에 좋은 방법이 있다. 택시를 집어 타라. 그리고 기사님에게 여쭤라. "소문난 맛집이 어디에요?" 그 지역의 모두를 아는 사람들이 택시기사님인지라 틀림없이 좋은 곳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만약 주머니도 여의찮고, 일정이 바쁘거든 '기사님들이 잘 가는 기사식당'을 가는 것도 좋다. 저렴한 가격에 평균이상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책을 살 때도 광고나 마케팅에 속지 않고 양질의 책을 고르는 방법이 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선물할 책이라면 제일 좋은 방법이다. 무엇일까? 우선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아도 '생계'에 지장을 받지 않는 저자의 책을 읽는 것이다. 이를테면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과 같은 억만금을 가진 부자의 책이라던가, 스티븐 킹 이나 조앤 롤링과 같은 초베스트셀러 작가, 그리고 자신의 전문직으로 성공한 저자 등을 말한다('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로버트 기요사키는 책을 팔아 부자가 되었다는 후문도 있으니 제외시키자. 그리고 국회의원도 전문직에서 제외시키자). 그 다음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바로 저자가 자신의 가족에게 쓴 글로 만들어진 책을 사는 것인데,  자신의 가족에게 바치는(?) 글이기에 최고의 정수만을 모았을테고고, 독자에 앞서 가족에게 뒤통수가 따갑지 않도록 가급적이면 자화자찬이나 거짓말은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을 얻기가 쉽다. 특히 이미 나이들어 부모가 안계시거나, 자녀가 있지만 어떤 가르침을 줄 지 모를 때에는 읽어서 그대로 흉내를 내도 좋고, 아니면 자녀에게 선물로 주면 백 마디의 말보다 더 효과가 있다. 책의 첫장에 "너에게 하고픈 말 모두가 이 책에 들어있어 이 책으로 대신한다. 사랑한다, 딸아들아..."라고 말을 덧붙인다면 대대손손 물려줄 '가보家寶'로 여기지 않을까? 그런 책의 예는 찾아보면 적지 않은데, 기억나는대로 적어보면 ' 강헌구 교수님의 책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변화경영전문가 구본형님의 [세월이 젊음에게],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 등이 있다. 이 모두가 자신의 가족과 자녀, 그리고 제자들에게 쓴 글이어서 새겨들어야 할 좋은 말들이 가득하다. 꼭 참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서두가 길었던 이유는 오늘 소개하는 책 때문이다. 어느 날, 딸아이가 시험성적표를 가지고 아빠에게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왜 나를 천재로 낳아주지 않았죠?" 그것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같으면 집을 박차고 나가 하늘이 노랗도록 술 마시며 괴로워 할텐데, 이 아빠는 "천재들처럼 행동하면 천재처럼 이루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기가 막힌 딸, 더 기가 막힌 아빠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아빠는 '24시간이 짧다고 세상을 훑어보는 직업', 방송기자다. 저자와 책을 쓰게 된 사연에 이미 흥미는 가득 찼다. MBC 보도국 기자로 23년 동안 일하고 있는 김상운씨의 [아버지도 천재는 아니었다]가 그것이다. 부제는 '방송기자 아버지가 들려주는 평범한 10대가 천재 되는 법'이다. 


  
   

  
  책은 우선 딸에게 이야기 하듯 '대화체'로 진행된다. 그리고 10대의 자녀에게 하는 말인 만큼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힌다. 무엇보다 이 책까지 8 권을 저술했던 만큼 놀라운 문장력을 지니고 있어 재미와 배울꺼리를 이야기의 곳곳에 숨겨두었다. 저자는 전부터 관심을 둔 부분은 '천재적 성과', '천재라 불리는 인물들', '발상법', '사고법' 등, 다시 말해 '천재적 뇌 사용법'이었다. "천재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생각할까? 혹시 그들을 따라하면 뭐가 달라지지 않을까? 세상 살기, 꿈을 이루기가 훨씬 더 쉽지 않을까?'하는 궁금증은 그를 '천재적 사고'를 추적하게 만든 것이다.
 
  저자는 우선 '인류에 큰 일을 이룩한 위인들 중에는 선천적인 천재들은 없으며, 오히려 노력에 의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천재들이었다'고 그동안 그가 추적한 결과를 놓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딸을 비롯한 독자들은 이미 '천재'가 되어 '천재적 인생'을 살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데, 스스로 자신의 천재성을 깨워낼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아직 모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자신에게 숨겨진 천재성을 스스로의 힘으로 깨우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그 과정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었다.
 
1. 천재처럼 생각하면 천재처럼 이루어낼 수 있다. 
2. 천재적 능력이 발현되는 순간 - 몰입의 순간
3. 천재를 만드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목표의식이다.
4. 천재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쓸 줄 안다.
5. 올바른 심성도 천재가 되는 기술이다. 
그리고 끝으로 '천재처럼 성적을 높이는 공부법'을 심어두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이 많은 부분 오류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몰입, 끌어당김의 법칙, 노력, 목표의식, 긍정적 사고, 심지어 감사에 이르기까지 작은 요소 하나 하나가 '후천적 천재가 되는데 필요한 절대요소'임을 사례들을 통해 설명해 준다. 저자가 예로 든 사례들은 기존의 자기계발서의 그것보다 깊이가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부부의 [생각의 탄생]을 연상케 하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도 엿보였다. 단순한 흥미에 끌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폈다가, 연신 줄을 치고 표시를 해야 했다. 어느 자기계발서보다 깊이가 있고, 내용이 충실했던 좋은 책이었다. 특히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과 그에 대한 증거들은 '나도 노력하면 늦지 않았다'는 용기를 준다. 이 책을 산다면 부모가 먼저 깨끗하게 읽고, 자녀들에게 주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책으로는 최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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