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마나님
다비드 아비께르 지음, 김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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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을 사는 지적인 유부남의 슬프지만 유쾌한 자기고백!


   
  대학때 잘 어울리던 동기들과 '계契'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었다. 홀수 달 마지막 금요일저녁, 그럴듯한 장소에서 먹고 싶은 것 잔뜩 사놓고 만나 둥그런 원탁에 둘러앉아 친목도모로 조촐하게, 아주 조촐하게 카드놀이를 하는 모임이다. 동종업계의 소식도 듣고, 그간 나누지 못한 이야기도 나누자는 목적에서 만들었는데, 나름 유익한(?) 모임이었다. 그들이 결혼하기 전까지는. '하룻밤 술값'의 목돈을 놓고 열띤 승부수를 띄우고, 승자는 패자에게 술 한잔과 차비를 나눠주며 자신의 '남성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하룻밤의 전투였는데,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점점 그 수가 줄어들었다. '황야의 7인'이라며 시작한 모임이 2년을 간격으로 '독수리 오형제로', '서태지와 아이들'로 숫자를 갈아야했다. 그 뿐인가? 손을 털고(다 잃고) 일어나며 "자, 오늘은 누구한테 술을 얻어먹냐?"고 웃던 자식들이 한 판에 몇 푼 잃을라 치면 "에구구, 우리 애가 분유값 두 통 날라갔다. 쯧쯔..."라며 안타까운 얼굴로 머리를 쥐어 박고 있으니, 게임도 재미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밤 11시만 되면 심야할증으로 택시타면 마눌에게 맞아 죽는다며 하나 둘 일어나는 통에 밤을 하얗게 올나이트 모임이 미성년자 디스코텍처럼 변해버렸다. 마지막 두 명이 남은 지난 해, "우리 맞고 칠 순 없잖아?" 라며 그 계모임을 없애버렸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소중한 무엇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 때 둘은 맹세했다. "변해버린 녀석들 보기 싫어서라도 우리는 싱글로 살자"고. 지난 봄 나머지 한 녀석도 열 살 어린 신부에게 도둑장가를 들었다. 얼마전부터 '유부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만들었단다. 치사한 자식들.
 
 결혼해서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것과 싱글로 (마지못해)살아가는 것을 두고 '행복한 구속'과 '외로운 자유'라고 생각해 왔다. 제눈이 높은 건지, 능력이 모자른 것인지 혼자 살아가며 느끼는 것은 결혼해 '행복한 구속'에 속한 이들은 마냥 부러운 존재라는 것. 제가 죽을만큼 사랑하는 짝을 만났고, 사랑의 결과로 자신을 닮은 2세도 얻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게다가 잭이 심은 콩나무마냥 무럭 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밥 안먹어도 배부르겠다 하는 것이 솔직한 내 마음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외로운 자유'가 그립다 하니 이 또한 소모비용과 기회비용 사이에서 집착하는 전형적인 인간성이 아니겠나. 오늘 '행복한 구속'에 속한 녀석들이 왜 초라한 내 위치를 그리워했는지를 조금은 알것 같았다. 배를 움켜지고 웃게 만든 소설, 다비드 아비께르의 [오, 나의 마나님]을 읽어서 였다. 프랑스어인 원제목은 Le musée de l'homme : Le fabuleux déclin de l'empire masculin (인간 박물관: 남성제국의 가상적 몰락) 이다. 순차적인 진화의 끝이 남자 다음에는 여자라는 원작의 책표지가 이 책의 전부를 말하는 것 같다. 맞다, 이 책은 아내에게 눌려사는 현대 남성의 자조섞인 소설이다.   
 

   
 자신의 결혼 후 삶을 이야기한 이 책은 소설이라고 이야기하기도, 에세이라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애매한 장르다. 하지만 소설만큼 재미있고 유쾌하며, 에세이보다 더 깊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마치 프랑스의 빌 브라이슨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던질 만큼 페이지마다 폭소를 자아낸다. 결혼후 잃어가는 자신의 남성성에 반비례에 우성 유전자적 인간으로까지 보이는 아내를 비교하며 때로는 자기비판적인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아이러니로 가득한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웃지 않을 수 없다(곳곳에서 남성만이 느낄 수 있는 쓴웃음도 눈에 띈다). 아이의 공동육아를 기본으로 알고 있는 프랑스의 남자들은 우리의 그것보다 더 했다. 모든 것을 함께 하면서도 보다 효율적이고 능률적인 아내의 능력을 당해내지 못해 무시당한다. 나아가 이젠 마지막 보루인 월급마저 자신보다 아내가 더 받게 된다. 그러자  
 
 여섯 번 째인가, 일곱 번 째인가 보는 마피아 영화 [대부]에서 눈짓이나 턱만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딸들과 아내를 부엌으로 보내는 것을 보고 자신도 굵고 낮은 목소리로 흉내를 냈다. "혼자 거실에서 식사하고 싶어 그러니 당신은 부엌에서 먹어. 다들 아무 말 하지 말고, 행여 나를 바라볼 때면 눈을 깔아. 내가 손가락으로 탁 하는 소리를 니면 음식을 가져오라고. 골치아프게 따지지 말고." 한 시간 동안 깔깔거리는 아내의 웃음 이후에 돌아온 것은 한 컵의 적포도주 목욕, 그는 그날 저녁 혼자 부엌에서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 비교하는 건 정말 사내들이나 하는 짓거리다. 다섯 살 때는 장난감 트럭 크기를 비교한다. 열 세살 때는 성기 크기를 비교한다. 열 여덟 살이 되면 여자친구의 가슴을 비교한다. 서른 다섯에는 전자수첩을 비교한다. 그런 식으로 끝까지 계속한다. 아니다, 끝에 가면 더이상 비교하지 않는다. 멍청이처럼 세상을 뜨니까."(p62)
 
 그는 계속해서 아내와 비교하고 비교하지만 결국은 아내가 항상 이긴다. 그래서 비교하는 것도 포기한다. 자신의 남성성과 열정 모두를 반지에 녹여 아내에게 끼워주는 순간 자신은 죽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아내가 모두 빼앗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한 여성에 대한 사랑과 어여쁜 어린 두 딸, 그리고 버려지고 우스꽝스러운 자신을 비웃을 수 있는 유머는 남겨주었다고 한다. 불쌍할 만큼 자신을 이야기한 이 책도 아내의 허락을 받아 쓰게 되었다고 전하면서.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위해 그리고 아이를 위해 실수를 거듭하지만 분발하는 모습은 남자이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3 초마다 바뀐다고 했던가?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그의 수다스러움은 만만치 않다. 결혼후 왜소해지고 여성화되는 자신을, 그리고 변해버린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을 탓하지 않는다. 변해버린 자신을 웃음으로 해소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자신도 중첩되지 않을까 여유롭게 조명할 수 있게 한다. 씨니컬한 유머가 가득했던 책, 슬프지만 재미있었다. 추석이 지나고 동기들과 오랜만에 모이기로 했다. '행복한 구속' 수감자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잃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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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청소 마음 청소
가기야마 히데사부로 지음, 박재현 옮김 / 나무생각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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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40년 동안 맨손으로 변기를 청소해서 성공한 기업가 이야기!
 
 
 일본에도 기인열전에 출연해야 할 사람이 있다. 무려 4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청소만으로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있다. 그가 책을 냈는데, 투명할 만큼 깨끗한 한 남자, 가장 기본적이고 사소한 일, [청소]를 가지고 일본에서 알아주는 기업으로 성공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럼 저자는 '청소용역업체 사장인가?' 어쩌면 그래야하는 것이 당연한 대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다른 업종의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 굴지의 자동차 용품 판매회사연매출 1,000억 엔(우리돈 1조 원)이 넘는 업계 상위 그룹이면서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도 상장되어 있는 옐로우 햇Yellow Hat의 창업주 가기야마 히데사부로鍵山 秀三郎 이다. 소개하는 책은 2007년 11월에 일본에서 발간된 것으로 "청소는 처음에는 환경을 변화시키지만, 나중에는 사람도 변화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머리청소 마음청소], 원제목은 頭のそうじ心のそうじ―人生をキレイにする(머리청소 마음청소-인생이 깨끗해진다) 이다. 

 
 

  
 자동차 용품 판매회사를 처음 만들었을 때, 영업이 시원치 않아 직원들이 좌절하며 실의에 빠져 있었다. 사장인 저자가 직원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그는 회사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까칠해져 있는 직원들이 깨끗한 사무실에서 기분좋게 일하도록 하는 것 밖에는 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어째서 사장이 청소를...?" 시간이 나는 사람들이 하는 일, 중요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하는 허드렛일 정도로 인식되고 있던 청소를 사장이 직접 청소를 하는 것을 보고 직원들은 의아해했다.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관, 복도, 사무실, 심지어 화장실에 까지 회사가 깨끗해지면서 직원들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맨발에 맨손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묵묵히 변기를 청소하는 사장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하게 되었고, 그들도 동참하게 되었다. 사장은 누구에게도 권하지 않았다. 직원들 모두가 스스로 동참하기까지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하니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그는 회사를 깨끗하게 하고 나서는 회사가 위치한 동네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용품 회사다 보니 자동차들이 많이 드나들게 되었고, 지역주민들에게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답하는 마음으로 청소를 시작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행동하는 양심을 읽게 된다. 처음에는 단발성 쇼Show 로만으로 여기며 비웃던 주민들도 꾸준한 그의 청소에 감동받아 동참하게 되고, 회사에 대해서도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힘을 얻게되어 그의 '화장실 청소하기'는 기업 경영인과 자영업자가 동참하여 10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그래서 전국을 돌며 학교, 공원, 역 등의 화장실까지 청소하는 '일본을 아름답게 만드는 모임'까지 만들어 활동하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40년동안 청소를 실천해서 기업을 일으키고, 국민의 호응을 얻게 되는 멋진 '기인'의 이야기로 여겨지게 된다. 하지만 그것 뿐 아니다. 그 멋진 '기인'은 자신 뿐 아니라 청소를 하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변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깨끗하게 청소를 해놓으면 거기에는 청소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충만감과 상쾌함이 존재한다. 따라서 고민이 있을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청소로 주위를 깨끗하게 정리정돈하면 머리속도 말끔해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강조한다. '청소는 분명 사람의 머리속도 바꾸어 놓는다.' 가장 놀라운 점은 사장이 맨손과 맨발로 직접 화장실의 변기를 청소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눈은 겁쟁이지만 손은 용감하다." 그도 처음에는 장갑을 꼈지만 청소를 하다보면 귀찮아져서 벗게 된다며 용기를 내어 변기에 손을 대면 더럽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손을 움직여 청소를 하면서 변기에 대해 느꼈던 부정적이던 생각이 밝게 변하면서 더욱 깨끗하게 닦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데 그것은 자신 뿐 아니라 변기청소를 해본 사람은 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청소의 힘]이 나를 둘러싼 주위환경을 깨끗하게 변하게 하고, 나를 변하게 해서, 나아가 조직과 사회를 깨끗하게 변하게 할 수 있다고 전한다. [청소의 힘]에 대한 70개의 메시지는 책을 읽는 내가 놓치고 있었던 '사소하지만 소중한 가치'를 새삼 느끼게 했다. 현재 나에게 얽힌 수많은 고민과 문제의 시작은 청소, 즉 주위를 환기하고 나의 머리와 몸을 깨끗히 정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범사철저', 즉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기본에 충실할 수 있는 마음자세가 나중에 큰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70이 넘은 나이의 저자가 40년이 넘게 청소를 하며 기업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시대에 대한 유감 들이 이 책 전반에 대해 언급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모든 것들이 '아주 작은 마음가짐과 실천'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움직이면서 생각하라'고 말하며 '행동'을 강조한다. 성과가 너무나 비미해서 안해도 될 것도 같지만, 종이 한 장 정도의 얇은 결과라도 행동을 하면 생기게 된다고 하면서, '매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청소를 40년간 꾸준히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결과를 얻는 일은 누구든 할 수 있다. 얻는 것이 크면 클수록 누구든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얻는 것이 적으면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얻을 게 없으면 아무도 하려는 사람이 없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각을 바꿔 생각하면 세상은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만이 성장하게 되어 있다. 어려운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성장하는 사람은 없다. 어려운 일을 했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청소'라고 했지만, 사실 여기에는 경영의 핵심이 들어 있다. 의기소침해 있는 직원들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청소를 시작했고, 회사 주변의 지역주민을 위해 범위를 넓혀 청소를 했다. 자신이 직접, 제 마음에 스스로 일어나서 흔쾌히 '행동'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서번트 리더십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가 아닐까? 기업가가 직원을 그리고 고객을 위해 그렇게 흔쾌히 행동한다면 그는 무엇을 한다고 해도 성공할 것이다. 고객우선주의가 '주주의 이익'에 앞서 고려되어야 할 점이 바로 그것이다. 성과로서의 이익이 아니라 기업의 정체성이 확립될 수있기 때문이다. 40여년을 청소한 기업의 노회장에게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큰 깨달음을 얻었다. 노인老人을 두고 '살아있는 도서관'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해 여름,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유토피아라고 해서 TV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알려졌던 [미라이 공업]의 야마다 아키오 회장처럼 이 책의 저자 가기야마 히데사부로도도 소개가 된다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멋진 경영자, 정말 깨끗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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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셔널의 4가지 조건 - 세계적인 비즈니스 구루 오마에 겐이치가 말하는 조직을 이끄는 프로의 조건
오마에 겐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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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직을 이끄는 프로'가 되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세계의 사상적 지도자(경영분야)’ 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한 바 있는 그는 경영, 정치, 사회, 글로벌라이제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 Guru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이다. ‘Mr. Strategy’ 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그는 전략적 사고에 바탕을 둔 독창적인 컨설팅 기법으로 전 세계 기업들의 경영성과를 개선하였으며, 특유의 독설로도 유명한데, "그가 독을 품고 말(예언)하면 정말로 그렇게 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는 특히 지한파知韓派 로 잘 알려져 있어, 한국경제 성장의 전환점이 될 즈음이면 어김없이 '그의 특유의 독설'이 퍼부어지는데, 다음날 일간지에 대서특필될 만큼 우리 또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혹자는 그의 이러한 일본경제에 비교한 한국경제에 대한 독설을 두고 '우익적 성향이 강해 한국을 비꼬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며칠 전 (08.9.01) 신문에 따르면 그가 일본의 보수우익 성향 잡지인 <사피오>에 ‘독도에 대한 한국의 실효지배를 인정하자’는 취지의 글을 기고하기도 한 점등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가 한국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고 또한 우리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그는 이미 일본경제에 있어서 한국경제를 떼어놓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또한 동북아평화가 일본에 미치는 영향 또한 지대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어,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고 있고 그만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를 돌며 수많은 강연과 연설을 하고 있는 그가 현장에서 목격하는 세계경제의 변화되는 조짐을 누구보다 잘 간파하기 때문에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하는 일본과 한국에 대해 우려섞인 조언을 서슴치 않는 것이다. 발언의 강도가 높은 것은 사실인데, 아마도 그때문에 오히려 세상이 그를 주목하는 느낌도 든다.  
 
 "머지않아 프로페셔널 계층이 나타나서 산업계를 뒤흔들 것이다." 고 이번엔 직장인에 대해 큰 목소리를 냈다. 즉 프로페셔널리즘이 아마추어리즘을 능가하는 시대, 정확한 지식과 기술을 이용하여 우선순위에 따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즈니스맨이 일반화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곧 그런 시대가 올테니 대비하라고 강조한다. [프로페셔널의 4가지 조건] 원제목은 The Professional: A Manifesto for Business in the 21st Century 이다.
 
 



 
 고대부터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와 약사, 간호사 그리고 인간 행위의 선악을 판단하는 변호사등의 사자士字 가진 직업을 두고 우리는 '프로페셔널'이라 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어 더이상 직업의 종류로 그것을 판단할 수 없다. 그는 이 시대의 비즈니스 프로페셔널을 두고 '항상 고객을 생각하고, 앞으로 평생 자신의 기량을 연마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이며,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즉, '이미 어느 한 분야에서 자신의 기량을 완벽하게 연마했고, 자신의 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은 끝나지 않는 사람'이며, 소니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 IBM의 전 CEO 루이스 거스너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프로페셔널의 정의를 쉽게 좀 더 쉽게 하기 위해 제너럴리스트스페셜리스트를 정의하며 구분하였는데, 제너럴리스트가 어떤 직종에 있더라도 탁월한 업무능력을 가진 사람, 스페셜리스트를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여 그 자리에 정해진 방법을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면, 프로페셔널은 아무리 전제조건이 바뀌어도 그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변화의 본질을 읽어내는 누구보다 신속하게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어 자신이 맡고 있는 조직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발전시키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이와 같은 프로페셔널이 필요하고 그들이 미래를 이끌어 간다고 하는 이유는 21세기라는 신대륙은 예전과 같은 실체경제와 중국과 인도, 남미, 북유럽, 동유럽, 러시아 등 신흥국가의 등장에 의해 거의 상식화된 '보더리스Borderless 경제-국경이 없는 경제' 그리고 인터넷이 만들어낸 '사이버Cyber 경제' 의 특성들이 뒤얽혀 기하급수적으로 부富를 만들어내는 '멀티플 경제'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21세기라는 이름의 신대륙은 예전에 비해 너무나 빠르게 그리고 그 모습이 변화무쌍해서 '보이지 않는 대륙'으로 봐야하는데, 이 세상에서 '생존경쟁'의 주도를 해 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프로페셔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란 '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으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전문성이 필요한 지식과 기술, 높은 윤리관은 물론이고 어느 경우에나 고객제일주의로 생각하며 끊임없는 호기심과 향상심,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그러한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해서는 네가지 힘, 즉 앞을 내다보는 힘(선견력先見力), 구상하는 힘(구상력構想力), 토론하는 힘(토론력討論力), 모순에 적응하는 힘(적응력適應力)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을 내다보는 힘(선견력先見力)
20세기의 낡은 지식을 버리고 변화를 즐기며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대륙의 서바이벌에 필요한 후각을 키우는 기본 행동이락 한다면, 강한 긴장감과 건설적 의심은 선견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캡슐제라고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빠른 변화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렇게 조금 강한 약물도 필요할 것이다.
 
 구상하는 힘(구상력構想力)
현재진행형 예언과 사고방식을 포함하여 그 모든 것이 이미 과거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다음 세대를 구상하는 데 매우 중요한 출발선이 될 것이다. 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라 작은 과거의 축적 위에서 큰 비약이 있었을 때 중요한 흐름으로 나타나는 법이다. 즉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직시하고, 그것을 예측함으로써 미래사회와 장래사업을 구상할 수 있는 것이다.
 
 토론하는 힘(토론력討論力)
토론에 임할 때 자신의 생각을 감추거나 왜곡하는 것은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상대가 누구든 기가 죽어서는 안된다. 물어보고 싶은 것을 묻지 앟고 목적을 이룰 수는 없다. 하지만 똑같은 질문이라도 뭍는 바법에 따라 상대의 성격과 상황을 고려하여 각도를 바꾸는 식으로 질문에 성격을 부여할 수는 있다. 그때 자신의 목적을 그대로 질문으로 바꾸어서는 안된다. 자신이 끌어내고 싶은 결과를 염두에 두고 결과가 나올 만한 입구를 발견해서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순에 적응하는 힘(적응력適應力)
통솔이 효과적인 것은 환경 변화가 작고, 미리 정한 순서에 따라 직무를 수행함으로써 생산성이 높아지는 경우뿐이다. 오늘날처럼 환경 변화가 격심해서 순간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에서는 되도록 개인의 재량을 넓히는 편이 오히려 생산성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 권력의 집중에 따라 통솔이 강해지면 개인은 조직의 톱니바퀴로 전락해서 자유로운 발상이 태어나기 힘들다. 그렇게 되면 조직은 유연성을 잃어버리고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없는 체질로 바뀌고 만다.
 
 저자는 프로페셔널이 갖춰야 할 이 네가지 힘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함에 있어 오늘날의 뒤쳐져진 전문가 집단에게 독설을 퍼붓기를 서슴치 않는다. 뛰어난 전문지식과 행동력을 가지고 있는 스페셜리스트가 왜 진부해졌고, 주어진 조직을 정확히 움직이는 능력을 가진 슈퍼 제네럴리스트가 왜 좌절했는가 에 대한 대답은 '능력이 뛰어날수록 자신이 속한 집단을 짧은 시간 안에 잘못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보이지 않는 대륙의 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즉시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갖추기 위해서는 문제해결능력과 상황파악능력, 교착상태에서 빠져나오는 발상력 등의 높은 수준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5년 후 거실의 모습, 5년 후 자동차의 모습, 5년 후 지갑의 모습, 5년 후 서재의 모습 등 지금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바뀌어 있을 그곳에서 눈에 보이는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아내고 그런 큰 흐름 속에서 기업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집단이 바로 21세기가 필요한 프로페셔널 집단이라고 단언한다.
 
 지금껏 기업 전체가 한 몸이 되어 움직어야 하는 전략을 만들어내기로 유명한 저자가 이 책에서는 '개인'에 몰두하고 '시간적 타이밍'을 강조하였다. 그는 그 이유를 최근에 성공한 기업은 대부분 '기존의 기본을 파괴하는 곳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스스로 이 책에서 자신이 30년 전에 발표해서 호응을 얻었던 전략의 3C (오마에 겐이치는 ‘Gettting Back to Strategy’에서 Strategic triangle이라는 소위 3C 분석을 제안한다. 3C 분석에서 3C는 자사(Company), 경쟁사(Competitor), 고객(Customer)을 의미한다. 겐이치는 3C 분석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략의 핵심은 고객에게 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가치를 창출하여 제공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였고 이는 많은 기업의 전략 수립에 큰 영향을 끼쳤다)에 대해서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고, 기존의 비즈니스스쿨에서 가르치고 있는 프레임워크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기존의 프로페셔널 즉, '전문적 기술이나 지식을 갖춰 높은 보수를 얻는 일류 비즈니스맨'이라는 일반적인 단어의 소용에 대해 변화가 필요함을 이 책을 통해 제시한다. 일정한 틀 안에서 요구되는 기술을 처리하는 능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대륙'의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포착해 내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민감하고 섬세한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네 가지의 능력은 이제껏 전략 아래서 숨쉬고 있었던 직장인들이 갖추기에는 버겁기 그지 없는 사항들이다. 하지만, 그가 책을 통해 예를 든 성공한 외국의 수없이 많은 사례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이미 갖추고 있고, 그래서 21세기의 비즈니스 리더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날카로운 분석과 비평이 곁들어진 놀라운 혜안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과 대조해 봤을 때 그것들을 갖추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당면과제로 다가와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소화해야 할지가 난감하다. 기존세대는 차치로 두고 21세기를 이끌어갈 우리의 예비 비즈니스맨들이 그가 말하는 프로페셔널의 소양을 지닐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다분히 부정적이어서 두려운 걱정마저 들었다. 세상은 더이상 '시장을 읽어내는 힘'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읽고 만들어가는 힘'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았다. 21세기의 조직을 이끌어갈 프로의 조건을 생생하게 밝힌 책이었다. 오마에 겐이치의 입으로 나온 말이라 더욱 생생했다. 프로 비즈니스맨이 되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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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핑거
김윤영 지음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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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를 살아가는 세 여자의 우울한 러브스토리


  
 멀리 이국의 땅 토론토에서 정원을 화려하게 꾸며놓고서도 뭔가 부족하다고 항상 느끼는 써니, 전망좋은 집을 가지고도 항상 배부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인 혜령,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난 년들' 사이에서 보다 '난 놈'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 우영. 이렇게 세 여인과 그녀들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이야기, 아니 사랑이야기가 김윤영의 소설 [그린핑거]의 대략이다. 감히 사랑이야기라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사랑이야기, 즉 러브스토리라 불러야 할까를 고민해서였다(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남자가 여성 작가가 쓴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항상 꺼름직하다. 마치 거뭇거뭇한 솜털을 달고 제 정체를 몰라 두려워 하는 소년이 연신 두근대며 쓰레기통을 딛고 올라 여탕을 훔쳐보는 기분이랄까. 지금껏과는 표지도 달라 얼핏봐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아 감추듯 의식하며 읽어대는 나를 보면 아직도 솜털이 자라고 있나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읽는 이유는 지금 이 책을 읽고 난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다.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을 알기 위해서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간대를 보내는 이성異性의 생각들은 짐작도 못했던 것들이어서 지나가는 여성들을 붙잡고 '이 글의 표현대로 느낀 적이 있는가?' 묻고 싶을 정도다. 다름을 알게 하고, 그래서 더욱 알고 싶어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랑으로 맺어진 커플이 그들의 결실을 보려 함에 있어 두려워 하는 것들, 그리고 있어야 할 대상이 없어 부족함을 느끼는 커플과 소중한 결실을 잃어버린 커플의 마음이 전반부에 걸쳐 표현된다. 이것은 써니와 혜령만의 케이스가 아니라 노령화로 인해 미뤄왔던 아이갖기를 정작 바라게 될 때 느낄 수 있는 여성들의 심리를 대신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살아가는 남자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과연 내가 저렇다면...'하고 고민하게 된다. 후반부에 나타나는 '잘나가는 직장녀' 우영만큼만 '계산적'이라면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면 언제든 다시 낳을 수 있고, 잘못되면 서로 합의하에 중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자식에 대한 20세기와 21세기의 가치관의 차이인가? 계산력의 차이인가? 헛갈리게 한다. 또한 사람이 좋아지는데 있어서 학력과 배경을 베이스로 깔아야 한다는 이 억지스러운 현실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를 생각한다. 결혼이 끝이 아닐진대 우영이 써니와 혜령같이 되지 말란 법은 없는데, 그들의 계산에 의해 맺어진 사랑은 앞의 두 여인의 상황이 되면 또 그들의 계산법대로 해결되는 걸까? 혼란스러워진다.
 
  이 세사람의 공통은 '부족감'을 느낀다는 것이고, 그래서 불행하다는 것이다. 그 어떤 때보다 풍족한 이 시대는 오히려 '부족감이 더해가는 시대'인건가? 그런 그녀들의 절반인 남자들은 어떨까? 채워주고 싶지만 못하는 그것 때문에 낙심할까? 아니면 한없이 바라는 그들때문에 실망할까? 세 사람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하고 싶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게 하고 싶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이 책은 '우울'하지만 '러브스토리'인 것은 확실하다. 그 말은 이 시대가 충분히 공감하는 러브스토리라는 것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커플이 되면 우울해지는 것일까? 그런걸까? 많은 생각을 던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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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와 시인들 - 사랑의 이야기
클라우스 틸레 도르만 지음, 정서웅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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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위인들이 입모아 사랑한 곳, 베네치아를 말하다.
 
 
"모국을 떠날 수 없는 사람은 편견에 가득 차 있다.
여행은 정신의 젊음을 되돌려주는 샘물이다.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
 
 
 사람이 방랑을 떠나고 변화를 사랑하는 것은 그들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숨쉬고 살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느끼는 것이 사는 것이다. 하루 종일을 배우고 느끼는, 즉 살아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다. '베네치아Venezia'. 이탈리아 북부 아드리아해 북쪽 해안에 있는 항구도시로 118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곳. 수많은 운하가 있어 곤돌라와 다리를 이용해 교통하는 그곳은 7-8 세기 무렵부터 무역도시로 발전하여 중세 말에는 동지중해의 무역을 독점하기도 했던 곳이다. 산마르코 성당을 대표로 궁전, 박물관 등으로 관광업과 유리 및 섬유 제조업이 발달한 곳이기도 한 '베네치아Venezia'를 책으로 여행하였다. 클라우스 틸레-도르만이 쓴 책, [베네치아와 시인들 - 사랑의 이야기] 원제목, Venedig und die Dichter (2004)가 내가 여행한 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저자의 여행기가 아니다. 물론 저자도 사랑하는 도시지만, 그곳을 사랑하고 찬양한 수많은 세계적인 위인들의 찬양가를 한데 모아놓은 책이다. 저자는 괴테, 바이런, 스탕달, 조르주 상드, 마르셀 프루스트, 헨리 제임스, 헤밍웨이를 비롯, 총 스물아홉 명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혹은 사상가들이 이곳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체험을 했는지 그들이 남긴 작품이나 기록을 인용하여 지금과 다름없이 베네치아가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였는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그곳을 사랑했는지를 이야기한다.
 
 "반은 달빛에, 반은 신비한 그림자에 휩싸인 채, 퇴락했지만, 고색창연한 공화국의 집들은 마치 같은 순간에 같은 눈으로 그러한 사건들을 바라보는 듯한 인생을 주었다. 음악 소리가 물 위를 둥심 넘어 들려왔다. 베네치아는 완벽했다." 라며 비꼬길 좋아하고 트집잡기 좋아하는 시대의 괴짜, 마크 트웨인도 그곳을 보고 한 눈에 반해버렸다. 그뿐인가? "이곳은 기이하고도 음흉한 도시야. 이 지점에서 다른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십자말풀이를 푸는 것보다 재미있단 말이야."라며 자신의 소설 [강을 건너 숲속으로]에서 나이 든 대령의 입을 빌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베네치아의 복잡한 지형을 생각했다. 그는 전기 작가 A.E. 하츠너에게 "베네치아의 돌들은 태양빛에서는 작용을 하지 않는다네. 겨울에만 우리는 진정한 베네치아를 보는거야."라며 여러 차례 그곳을 방문했으면서도 여름은 피했다고 한다. 또한 늦은 나이에 만난 여신 뮤즈, 아드리아나 이반치크라는 미인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된 곳도 이곳, 베네치아였다.
 
 



 
  이 밖에도 수많은 인물들은 이곳에 반해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들었다. 그들의 손과 입을 거칠 때마다 베네치아는 동을 터서 해가 질 때까지 모습이 변하는 것처럼 다른 색과 질감으로 표현되었다. 책 속에 숨어 있는 멋진 베네치아의 풍경을 보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이었다. 릴케가 프로이트를 만나 꽃들이 만발하고 나비가 춤을 추는 아름다운 초원을 즐기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보고 걸었는데, 그 이유는 "이 모든 아름다움이 소멸할 운명이라는 것. 겨울이 오면 사라진다는 것. 인간의 모든 아름다움과 인간이 창조했거나 창조할 아름다움도 그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했단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언젠가는 소멸할 지 모르지만, 살아서 내가 보는 그 세상을 충분히 만끽하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영원할 수 있을 것 같다. 베네치아의 공기조차 햇살조차 느껴보지 못한 내가 그곳을 사랑하게 되고, 언젠가는 꼭 한 번 가고 싶은 곳으로 열망하게 된 것은 이 책과 베네치아를 사랑한 위인들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인간의 영원한 노스텔지어는 물이고 바다라 하지만 살아서는 존재할 수 없는 육상생물이 되었기에 그곳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던가. 그런 물 위에 내가 거할 곳이 있다면, 그래서 일생을 느끼며 살 수 있다면 노스텔지어는 돌아갈 수 없는 곳만은 아닌 것 같다. 수맥水脈 을 따지는 우리가 살만 한 곳인지 확인은 아직 못했지만 말이다. 지금껏 만들어진 것과는 조금 다른 여행지에 관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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