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삭제판 이다 플레이
이다 글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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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이다2da 의 유치하고 발칙한 일기장을 훔쳐보다
 
3초마다 쏟아진다는 생각. 넉넉잡아 8시간의 잠자는 시간을 뺀다고 해도 57,600가지의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계산. 절반 잡아 아무 생각없이 지내는 시간을 뺀다 쳐도 28,800가지요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한다 쳐서 또 반을 나눠도 14,400가지다. 하루 종일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 사고와 생각을 정리해 일기를 쓴다는 것은 애시당초 말안되는 소린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연히 '일기日記'라는 단어가 있고, 호랑이가 아니어서 가죽도 남기지 못하기에 일기를 쓴다. 그것도 아주 가끔.
 
하루를 더듬고, 다듬어 책상앞에 앉으면 커피 한 잔은 옆에 있어야 할 것 같고, 글 잘 써지는 펜을 찾아내어 앉았다. 잔잔하게 음악도 깔리면 좋겠다. 분위기 잡고 나니 담배 생각. 이런 저런 시간을 보내니 또 30분이 흐른다. 태양같이 많은 생각을 손이라는 돋보기로 줌인을 해서 펜에다가 초점을 맞춰 글을 태우려니 그게 영 쉽질 않다. 생각이 너무 많아 정리하고 싶어 앉은 자리가 오히려 더 소란스러워진다. 오랜만에 잡은 펜끝은 알콜중독을 의심하리만치 떨리고, 맞춤법도 의심스럽다. 궁싯거리기를 수십 분 단 세 줄로 일억 개 단어의 하루일을 정리한다. 일기를 쓴다는게 시詩를 써버렸다. 그것도 글자수만 시를 닮았다. 할 말 진짜 많았는데...
 

 
여기 부러운 여성이 한 명있다. 이다2da.
일상에서 겪은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토해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말 부러운 여성이다. 괴발개발, 삐뚤빼뚤, 엉망진창의 글씨에 종이도 뚫을 것 같은 굵은 머리카락 그리고 정리 안된 헤어스타일, 무엇보다 제대로 탄 피부색의 벗은 여자애의 그림이 한 장의 종이 위에서 종횡무진 난리를 친다.
어느 날은 드라마를 욕하고 하늘에 태클걸다가, 자신에게 울며 화내고, 달래며 웃는다. 구도도 없고, 수정도 없다. 처음 책을 접하면 드는 생각, 개판오분전開板五分前. 그 상태가 내 뇌와 닮았다.
 


 
 
다소 까칠한 듯, 소심한 듯 싸웠다는 소리보다 싸우고 싶었다고 말하고, 이겼다고 말하기 보다 이기고 싶었다고 말한다. 오만가지 표정을 짓고, 황당무게한 짓을 서슴없이 치루며, 울다가 웃기를 반복한다.
낙서라고 보기에는 구상적이고, 그림이라고 보기엔 황망하다. 거침없는 말투와 행동들이 여과없이 쏟아지는 말그대로 '무삭제' 그 자체다. 자신의 유치한 모습과 소심한 생활, 궁핍한 생각을 마구 마구 퍼붓는다. 그녀를 지켜보는 사람을 의식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어 그녀의 표현력이 대담하고 발칙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뭘 바랄까... 터럭지까지 보이도록 모두 벗은 그녀가 아니던가.
 

 
하지만 유치하다 말 못하고, 야하다 폄하하지 못하는 건 마치 내 머리속을 들킨 듯 며칠 전 아니면 그 이전에 나도 했던 생각들이 옮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위안을 얻고, 공감하며 응원하게 된다. 그 증거가 7년째 운영하는 그녀의 홈피(http://www.2daplay.net)에 보내는 네티즌의 폭발적 반응이 아닐까.
 
그녀의 풍부한 표현력과 끝이 없어보이는 상상력이 부럽기만 하다. 프리다의 작품을 닮은 그녀의 그림과 소산물들이 아직 할 말이 한참 남았다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이다가 살아온 5년의 성장이 이 책에 담겼다면, 그녀의 말대로 37살, 47살, 57살의 이다도 여전히 유치하고 허접할 지 보고 싶다. 그 때 만날 땐 웃음이 많아지는 모습이 날들이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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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행복한 인생학교 - 멋진 인생 가꾸기 편
쭈오샤오메이 지음, 김진아 옮김, 정예은 그림 / 혜문서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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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서당 훈장님이 챙겼을 법한 현대판 이야기책.
 
초등학교를 다니는 조카에게 보내는 선물로 준비한 책이다.  
중국의 교육전무가인 쪼오샤오메이가 쓴 시리즈물 중 하나로, 엄마 아빠가 행복한 인생학교의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에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가르치고 함께 배울 수 있도록 구성된 책인데,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읽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도록 잘 만들어져서 마음에 들었다.
 

 
선부론으로 시발된 급격한 '자본주의의 수입'으로 곳곳에서 부작용이 벌어지는 중국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중국 특유의 산아제한정책과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의 여파로 생겨난 도시에서 과보호를 받고 자란 외동아이, 이른바 '소황제帝'들이 성장한 이후의 중국의 미래이다.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차원이 틀릴 만큼 심각한 소황제 문제와 자본주의의 부작용으로 부각된 황금만능주의 무엇보다 공산주의 이후 '정신적 지주가 되는 사상의 부재'로 인해 혼란스러운 중국은 지금 심하게 몸살을 앓고 있다.
현재 정부가 나서서 국영방송에 대학의 인기강사나 학자들을 모시고 중국전통사상을 공부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적극 홍보하고, '사상관련 도서'를 쏟아내면서 중국국민의 윤리관을 심는데 주력하고 있는데, 이 책도 그 시류에 맞춰 발간된 것으로 간주된다. 좋은 성품과 마음의 힘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내용으로 사랑, 나눔, 우정, 신념, 긍정적인 변화 등을 꼽고 있는데, 이 책 [멋진 인생 가꾸기]에는 인품, 신념,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문자인 한자漢字가 제 스스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처럼, 중국사상의 바탕이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 만큼 아이들을 위한 책인데도 읽고 있는 어른인 내가 가르침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것을 보면 중국의 '가르침을 위한 스토리텔링'은 어느 나라보다 뒤지지 않고 재미있으며 교훈적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이 그것을 알려주었다. 인품, 신념, 긍정적인 변화라는 주제에 대해 아이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도 있는 방법론을 제시해준다. 
 



책의 구성은 [삶을 고귀하게 만드는 인품], [굳은 신념으로 변화시킨 인생], [인생을 새롭게-삶을 멋있게] 이렇게 크게 세 개의 마음의 힘으로 나누고 각 범주마다 소중한 동서고금의 이야기를 적고 이야기의 끝에는 선생으로서의 부모가 아이들에게 당부해야 할을 따로 준비해서 엮었다. 옛날 서당에서 훈장님이 도령들에게 수업의 막간에 들려주는 재미있고 교훈적인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듯 했다.
 

 
이 책을 소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스스로 선생이 되는 것이다. 먼저 부모가 이야기를 소화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한 후에 그 이야기가 남겨주는 교훈을 들려주고 그에 대한 느낌을 서로가 교감할 수 있다면 이 책이 만들어진 제 값을 모두 한 것이라 보겠다. 이야기과 교훈이 아이들의 뇌리에 얼마나 남겨질까 우려하기 보다는 부모와 아이가 한 주제를 놓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 계신 형님과 형수님께도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선물중에 가장 속 깊은 선물은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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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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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세계에 살게 된 어른공룡 '둘리'의 슬픈 이야기
 
아마도 830422-1185600 이라는 주민번호가 나오면서부터 인가보다.
까까머리에 중학생인 내가 매주 만나기를 기다릴 만큼 좋아했듯이, 소년소녀들의 영원한 친구인 줄 알았던 '아기공룡 둘리'가 구설수에 오른 건 2003년 4월 19일 오후 2시 30분 부천시민이 보는 가운데 아기공룡 ‘둘리’에게 부천시 명예시민증 전달식 및 명예시민증이 전달 된 후부터인가보다. 상상속의 동물이 의인화되어 '둘리'라는 이름을 갖더니 급기야는 어른취급을 해버렸다.  
 
 



 
자유롭게 살던 인간들이 저들이 만들어낸 시간에 얽매여 그 속에 구속을 받더니 그마저도 성이 차질 않는지 영원히 '아기공룡'으로 상상속에 그림속에 있어야 할 '친구'를 세상밖으로 꺼내어 놓아서는 달랑 '주민등록증'을 줘버린 것이다. "넌 이제부터 어른이야. 이제부터 알아서 살 길 찾아라." 말하듯.
 


 
어디 그뿐인가? 주민등록증의 프린트도 채 마르기도 전에 사람들은 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성인용싸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외쳤다. "이 주민등록증 위조다!! 감히 둘리에게 가짜 주민등록증을 주다니..." 정작 주인은 아무 말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 후 4년 후에는 '도봉구민 둘리' 호적 등본 떼 주세요!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으니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내 기억속에서는 바이올린 타고 우주별까지 여행해야 할 '둘리'를 주민등록증을 주면서 세상이라는 중력에 끌려 이 땅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인간들의 짓(?)이 여간 마득치 않았다. '둘리'에게 있어 창조주와도 같은 만화가 '김수정'씨도 부천시장과 함께 둘리에게 주민등록증 줄 때까지는 상상하지 못한 일은 단 열흘 후에 벌어졌다.
 





한창 젊고 실력있는 신인들을 '인디존'이라는 코너를 통해 발굴하던 격주간 만화잡지 '영점프'의 2003년 5월 1일자 단편만화에서 '둘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어른의 하루는 아이들의 수천일에 맞먹는가보다. 나이를 훌쩍 먹어서는 우리의 중년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그려진 둘리의 모습을 보고 원작자 김수정은 "숨이 턱 막혀왔고, 현기증이 일어났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둘리를 이렇게 만들어 놨어?"
 '아기공룡 둘리'가 아닌 '공룡 둘리'를 다시 생각하고는 자신의 둘리를 망쳐놓은 신인 만화가 최규석에 대해 '이제 막 만화를 시작하는 최규석씨는 그 상상력과 그 용기만으로도 충분히 만화가라는 호칭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다음에 또 누군가가 둘리를 그리겠다고 한다면 나는 단호히 거절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추측컨대 만화의 소재를 찾던 어느 신인 만화가가 '둘리의 주민등록증'을 보고 아이디어를 찾았고, 둘리의 하느님 '김수정'에게 '공룡둘리'를 소재로 단편만화를 그려도 되는가를 물었고, 하느님은 심드렁히 허락을 했을 것이다. 자신도 이지경(?)이 될 지는 상상하지 못했을 터, 그래서 그의 상상력과 용기를 칭찬했으리라. 김수정은 생활에 찌들어 폭싹 늙고, 변해버린 둘리와 주변인물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누군가가 또 둘리를 그리겠다고 하면 단호히 거절할 것'이라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대신했다.
 
 



 
['인간말종'은 아마도 하느님이 인간을 만드시다 잠깐 조는 사이에 만들어진 변종이다]는 우스개소리처럼 매주마다 자신의 손에 의해 세상과 만났던 둘리를 깊은 생각없이 다른 사람의 손에 잠시 맡긴 순간 이젠 더 이상 '아기공룡 둘리'는 사라지고 말았다. 아니 처음에 말한대로 그의 실수는 둘리에게 주민등록증을 줘버림으로써 '아기'의 이름을 떼어버린 순간부터인지 모른다. 그 여파은 너무나도 막강해서 '아기공룡 둘리'를 생각할라치면 첫 그림은 빌딩숲 속에 작업화와 모자, 그리고 소주병을 들고 구부정한 허리로 세상을 원망하는 듯 쳐다보는 둘리의 모습이 떠오르고 '호이 호잇~'하며 천방지축 뒤흔들며 매주 나를 웃게 했던 아기공룡의 모습은 그 뒤를 따르는 더 먼 기억이 되어버렸다. 김수정의 한마디 승락은 둘리를 지켜보며 함께 자라온 어른들에게서 '아기공룡 둘리'를 빼앗아 버렸다. 한낱 독자가 이럴진대, 원작자는 얼마나 원통하고 후회를 했을까. 안봐도 PMP다.
 
 



 
[공룡 둘리]가 다른 단편들과 함께 모여 책으로 만들어졌다. 제목 한 번 멋들어지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가 그것이다. 쌈마니 희동이, 사고를 친 희동이 때문에 도우너를 외계인으로 팔아버리는 철수, 동물원 타조우리에 갇혀서 몸을 파는 또치와 어린 시절 그 복장 그대로 밤무대를 뛰는 것 같은 마이콜, 늙은 고길동의 집을 사기친 도우너, 그리고 순간 어른이 되어버려 마땅한 직업이 없었던지 '일용직 잡부'로 변한 공룡 둘리의 모습은 우리 현실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닮아 있다. 만화속에서 '호이~호잇~' 주문과 함께 능력을 부리던 둘리의 손가락은 산업재해로 잃어버리기까지 한다. 아직 마음은 그대로라 해부의 위기에 빠진 도우너를 구출하기 위해 백방으로 나서지만, 따끔한 또치의 충고만 듣고 등을 돌리고 만다.
 

 
 
"거긴 살만 한가요? 여긴...만만치가 않네요.
 
아저씨, 저 조금만 누웠다 갈께요. 아저씨, 눈이 오네요.
 
다시 빙하기가 오려나 봐요."
 
아무런 손쓸 방법이 없자, 고길동의 묘에 찾아서 소주를 마시고 빙하기를 맞는 공룡 둘리의 말과 모습에서 많이 겪어봤던 나의 모습이 들어 있는 듯 했다. 냉정하리만치 날카로운 현실감각과 놀라운 필체로 그려낸 단편 [공룡둘리]을 그린 만화가 최규석에 대해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을 정도지만, 대단한 작가의 발견에 대한 기쁨보다는 상상속의 친구를 잃어버린 슬픔때문에 입을 다물게 된다. 한 날에 대단한 작가는 태어났지만, 절친한 친구는 죽어버린 듯한 기분... 씁쓸했다. 나에게 둘리는 죽었다.
 
 

 
 
최규석의 날카로운 시선은 다른 단편들 곳곳에서 나타난다.
"삶은 죽여서 먹음으로써 남을 죽이고, 자신을 달처럼 거듭나게 함으로써 살아지는 것"이라고 말한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말처럼, 살기 위해 살아있는 것을 죽여 먹는 것이 밥이라면, 삶은 하루하루 죽음을 먹는 것이기 때문에 지루할 수 없고, 빚지지 않은 것이 없고, 치열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세월이 젊음에게]에서 말한 구본형씨의 말처럼 끔찍한 삶의 먹이사슬과 지긋지긋한 밥벌이의 고통을 '배달시킨 치킨 한마리'로 잘 표현했다[사랑의 단백질].
특히 '배가 너무 곱파서 생명을 잇기가 힘이 드러 구걸을 함미다' 맞춤법도 틀리는 입간판을 내걸고 구걸하는 붉은 돼지저금통의 해학은 기발한 작가의 상상력과 관찰력을 충분히 입증시킨다. 이 또한 전국 최고의 판매량을 자랑하는 대구의 [금산삼계탕]사장이 삼계탕으로 변신해 소비자의 입으로 들어간 닭들을 추모하기 위해 위령제를 지냈다는 몇 년 전의 기사를 생각나게 했다.
 




이 밖에도 사회적 약자 위에서 군림하는 전형적인 강자들의 처세를 꼬집는 단편 [콜라맨], 끝이 없는 권력, 지배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그 허실을 이야기한 [리바이어던], 현실에 있어 무엇이 옳고 그린지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 고단한 삶을 그린 [선택]등 에서도 현실속 우리의 어두운 그림자를 잘 찾아 그려내고 있다. 사회고발적 스토리텔링을 겸비한 멋들어진 화력畵力은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하게 만든다.
 
책표지의 [공룡둘리]는 지명수배가 내려져 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님 누명을 썼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줬던 모습이라면 아무도 찾지 못할 어딘가에 꼭꼭 숨어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작자 김수정이 '절대 불허'한다고 이야기한 만큼 더이상 볼 수 없으리라. 저자 최규석도 더이상 공룡둘리를 그리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단백질]에서 치킨이 된 닭돌이을 보고 괴로워했던 '붉은 티셔츠의 청년'의 마음일테니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세상에 내려온 그가 안쓰러운지 모른다. 그래서 더 마음이 씁쓸한지도 모른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음직한 상상이 현실에 대비될 때 그 아득함이 이렇게 깊은 줄은 몰랐다. 때론 상상속에 그대로 남겨둬야 할 것들도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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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 맛의 제국
노부 마츠히사 지음, 오정미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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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계의 입맛을 사로잡는 일식요리의 현주소 !
 
얼마전 읽은 책 [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이 발단이었다. 21세기의 마케팅 트렌드가  '감성感性'이라면 고객의 눈과 입과 그리고 몸을 사로잡는 원초적인 감성의 대표상품은 '요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야말로 '감성 마케팅'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리사와 동시에 음식점의 주인이 직접 요리까지 하는 경우에는 실내 디자인은 물론 재료구입에서 요리의 품질 유지, 새로운 요리의 개발, 인력관리까지 모든 것을 총괄하게 되므로 자신만의 작은 감성제국을 실현할 수 있다는 묘한 매력에 빠졌다. 그래서 그들을 추적해 보기로 했다. 그 중 하나가 [노부, 맛의 제국]이다.
 

 
 

이 책은 일본 도쿄의 한 초밥집에서 요리사를 시작한 저자가 우연한 기회에 일본을 떠나 페루, 아르헨티나, 알래스카 등에서 요리를 하다가 미국 비벌리힐스에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해 현재 전 세계 12곳에 세계의 유명인사들이 모이는 최고의 명소 레스토랑 '노부'를 설립하게 된 요리사 노부유키 마츠히사의 이야기와 그의 요리세계가 담긴 책이다.
 
 

 
 

전에 읽은 책 [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를 쓴 저자 안효주가 자신의 일식레스토랑 '스시효孝'에서 펼치는 그의 요리가 '정통 일식'을 추구한다면, 이 책의 저자 노부유키 마츠히사(이하 노부)는 철저하게 세계인의 입맛에 맞춰 퓨전화 시킨 일식을 선보인다. 두 요리사 모두 우연히 요리를 시작하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안효주가 정통코스를 밟아 요리를 배웠다면, 노부는 정식으로 얼마 배우지는 못했지만 일식을 먹고 자라온 일본인이라는 점을 살려 외국에서 일본의 맛을 알리는데 주력했다는데 차이가 있다.  또한 안효주의 책은 자신의 자서전의 형식을 갖추면서 스시와 일식에 대한 참맛을 알리는데 주력했다면, 이 책은 자신의 이력은 짧게 소개가 된 반면, 노부에서 제공하는 퓨전일식의 레시피를 소개하는 부분을 거의 80%를 차지할 만큼 많이 할애했다는데 주목되었다.


 
 
특히 그가 뉴욕에 마츠히사라는 일식 레스토랑을 운영할 때 헐리우드 스타 [로버트 드 니로]가 그의 요리에 반해 자신과 합자해서 새로운 레스토랑을 열자고 제의했을 때 거절했지만, 수 년에 걸친 러브콜에 못이겨 결국 '노부Nobu'를 개업하게 된 스토리에서 그의 솜씨를 짐작하게 한다.
 
패류, 새우-바다가재, 오징어와 문어, 생선, 샐러드-채소-메밀, 초밥, 그리고 노부만의 소스와 기본재료 만들기와 후식, 청주와 드링크까지 [레스토랑 노부]에서 제공되고 있는 모든 레시피를 음식재료별로 나누어 모두 실었는데, 재료소개와 함께 만드는 법을 일체 공개 했는데, 고급 레스토랑의 레시피를 이렇게 자세하게 소개된 경우는 거의 없어 이만오천 원이나 하는 책의 가격이 아깝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의 지인들이 이렇게 모두 공개하면 비법을 모두 공개하는 것 아니냐고 만류했음에도 그는 자신만의 '손맛'을 자신하기 때문에 공개하였다고 말한다. 싱싱한 재료로 만들어진 요리의 사진들은 따뜻한 온기와 냄새가 느껴질 만큼 먹음직스럽게 페이지를 채우고 있었다.
와사비 페퍼 소스에 버무린 전복, 타불리 살사의 가리비 구이, 스파이시 레몬 마늘 소스의 가시발 새우, 마우이 양파 살사를 곁들인 아오리 오징어, 캐비아를 얹은 아귀 간 파테, 허브를 올린 칠레산 농어 구이와 유바 등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만 들어도 퓨전을 짐작케 하는 생소한 60여가지의 메뉴들이 사진과 함께 들어간 재료와 만드는 법이 어느 요리책보다 훌륭하게 소개되고 있다.
 

 
 
특히 초밥에 대해 소개하는 장에서는 초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초밥용 밥을 짓는 방법도 자세히 소개되었다. 레시피는 일반 초밥이 아닌 소프트 셸 크랩 롤, 하우스 롤, 연어 롤, 갯장어 드래곤 롤 등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롤 종류의 초밥을 소개하고 있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생선을 어떻게, 그것도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냐고 손사레를 쳤던 뉴요커들이 현재는 최고의 요리트렌드로 일식요리를 꼽고 있다는데 의아했던 나는 그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었다. 눈과 귀, 그리고 입 나아가 오감을 행복하게 하는 요리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노부는 이 책을 통해 그만의 요리의 비밀과 일본 요리의 정수를 밝히고 있다. 나아가 한 나라의 요리가 아닌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일식요리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요리의 제조법까지 공개할 수 있는 그의 자신감과 지금도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그의 창조성, 일본이 아닌 외국에서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인정받으면서 자국의 음식문화를 전파하는 그의 모습에서 '감성 시대, 글로벌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맛과 향은 모르지만 눈을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무엇보다 '창조성이란 바로 이런거야!'라고 나를 감전시킨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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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마음을 풀어야 낫지 - 암과 생활습관병 환자를 위한 마음 치유 가이드!
김종성 지음 / 전나무숲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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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나 가족들에게는 큰 위로와 용기를 심어주는 좋은 책!
 
대학시절에 절친하던 선배의 위암발병 소식을 지난 주에 접했다. 4년 전 발병했다가 2년여 동안 치료를 받아 완치했고, 다시 사업에 참여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선배의 말을 들은 후 또 2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다. 학창시절 수려한 외모와 적극적인 성격, 재미난 입담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스타일의 선배인지라 과내 활동도 왕성했고, 성적도 상위권을 달리던 선배의 이야기라 더욱 안타깝게 한다. 문제는 술이었다. 한 번 술을 입에 대면 끝까지 마시는 두주불사辭형이라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곤 했는데, 그 술버릇이 창창한 선배의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라 사업을 하면서 일주일에 하루 이틀 걸러 술을 마셨던 것이 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같은 술을 마셔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즐겁게 마실 때는 약술이었는데, 일하면서 마신 술은 독술이었나봐.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일이야기하면서 마신 술이 약이 될 리 만무하잖아. 너도 술마시려거든 일 생각하지 말고, 일이야기 하려거든 술을 마시면서 하지 말어." 또 다시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가 제 몸보다 사업을 걱정하며 던진 말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무엇인가 격려나 위로를 해 주고 싶었는데, 제 병을 알고 이해하는 듯 한 선배의 모습을 보니 할 말이 생각나질 않았다. 내 모습도 들어있는 것만 같아서 더욱 그랬다. 그러더 중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암은 대표적인 심인성 질환이기 때문에 성처 난 마음을 푸는 것이 치료의 지름길이라며 암에 걸린 환자들을 격려하고 '암은 나을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해 만들게 되었다는 이 책 [암~마음을 풀어야지]는 암 환자를 위한 심신의학의 원리와 치유 방법을 알기 쉽게 구어체로 풀어 소개한 책이다.
 
발암물질, 환경오염, 방사능, 유전적 요인등 암을 일으키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심리적 요인에 따른 잘못된 생활습관 그 중에서도 '스트레스'가 암발생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그런 만큼 현재의 질병 상황을 치유 상황으로 만드는 방법은 '마음을 풀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마음을 졸여 꼬여버린 유전자로 생긴 병을 마음으로 유전자를 풀어야 세포가 서서히 건강하게 살아남은 마치 고무밴드를 꽈배기모양으로 꼬았다가 힘을 풀었을 때 원상태로 돌아오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좀 더 빨리, 좀 더 많이 벌기 위해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받는 생활이 반복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하지만 상처받은 마음은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고 판단력이 없는 유전자는 마음이 시키는대로 신호를 받아 변질된 채 증식되어 암세포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현대 의학계의 암 치료 수단은 수술과 방사선 치료, 항암 약물 치료, 호르몬 면역 요법들을 해왔는데, 이는 모두 신체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약점이 있어 치료를 받게 되면 암세포 증식으로 인한 사망보다는 면역 저하와 영양실조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암선고 이후 '공황상태'에 빠진 환자와 가족이 통제력을 잃고 좀 더 나은 병원과 의사 그리고 음식과 약을 찾아 다니다 경제력과 체력이 소진되어 치료에 대한 의욕조차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전한다.
 
현대의학의 외과적 치료도 중요하지만, 그와 더불어 심리 치료 다시 말해 환자가 가지고 있는 의심과 두려움 그리고 지금껏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병인 스트레스를 풀어내지 못하면 암은 결코 나을 수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하지만 마음 먹은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이 내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아니던가? 그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후반부에 있는 [마음을 푸는 법]이다.
 
우리의 매순간 자신의 미래를 예언하는 것처럼 말하듯,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나의 말이나 행동에 세포들이 그대로 믿고 움직이므로 희망을 말하고(희망의 힘) 그에 맞게 행동하며, 참고 억제하는 것이 건강을 악화시킨다면, 털어놓아야 건강을 회복하고(털어놓기), 용서하고, 마음을 챙기라고 말하고, 그 방법론들을 상세히 설명해 놓았다.
 
책의 독자대상이 '이미 암에 걸린 암환자'인 만큼 환자와 상담하는 카운셀러처럼 궁금한 점이 생겨나지 않도록 상세히 설명한다. 환자의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생활에 남겨둔 일이나 미련, 집착등이 아니라 '완치에 대한 의욕'이다. 걱정과 두려움을 떨쳐내고 적극적으로 암세포와 싸우겠다는 큰 다짐이 없이는 제 아무리 의료기술이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환자의 병을 완치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최근 현대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에도 '암사망률'은 항상 최고인 이유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지 싶다. 책을 읽으며서 내 마음속에 담겨져 있는 스트레스를 풀어버리지 않으면 무서운 결과를 보겠다는 걱정이 계속 되었다. 병은 사람을 지정해서 찾아오는 것도 아니며, 예고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완치의 유일한 방법이 들어 있는 책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심신에 괴로움을 받고 있는 암환자나 그 가족들에게는 큰 위로와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투병을 하고 있는 선배에게도 읽어보라고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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