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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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가 조정래의 펜으로 되살아난 '독일군복 입은 조선인' 이야기.
 
소설 [은하영웅전설]에서 암리츠아전후 양 웬리 중장은 중위에게 이런 말을 한다.
"중위, 나는 역사를 공부한 적이 있어. 그래서 조금은 알고 있는데 말야...인간 사회의 사상에는 크게 두가지 조류가 있다네. 생명이상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학설과 생명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없다는 학설, 그 두가지지. 그런데 사람이 전쟁을 시작할 땐 전자를 택하고, 싸움을 그만둘 땐 후자를 이유로 내세우더군. 그것을 지금까진 수백 년, 수천 년 반복해 왔다 그 말이야."
 
전쟁을 겪은 세대들에게 '전쟁이야기'를 청하는 것은 '끝없는 연옥에 빠져 허우적대는 악몽'을 대낮에 꾸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빗발치는 포화속에서 살아났지만, 그들이 시름하는 이유는 죽은 자들의 망령을 항상 어깨에 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늙은이들이 전쟁을 선포하지만, 싸워야하고 죽어야 하는 것은 젊은이들이다'라고 미국의 H.후버가 한 말처럼 TV를 켜면 오늘 이시가에도 지구촌 어디에서 젊은이들은 총부리를 맞대고 싸우며 죽어가고 있다. 그들은 총을 들고 태어난 전사들이 아니라, 우리들과 같이 평범한 사람이었고, 어느 부모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이다.
 

 
소설가 조정래의 시선은 늘 인간을 향하고 있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원작가로 유명한 스티븐 앰브로스가 쓴 책 [D-Day]에서 언급한 '노르망디 조선인(한국인)'에 대해 TV의 한방송국이 다큐멘터리로 내놓자, 이를 바탕으로 한 편의 경장편을 써내렸다. [오 하느님]의 탄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주인공 신길만과 그와 생과사를 함께 했던 조선인들에게 '선택의 자유'는 없었다. 소련군의 괴물같은 탱크 앞에서도 총을 들고 뛰어 들라면 뛰어 들었고, 배가 고파도 식량보급을 하지 않으면 굶어야 했다. 처음부터 지원군 '지명'에 의해 일본군이 되었고, 살기 위해 그들은 소련군이 되었으며, 독일군으로 변신해야 했다. 군복을 갈아입을 때마다 바뀐 색깔만큼 고향땅에서 멀어졌음을 그들도 알고 있었지만, 전쟁이 끝나면...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다짐밖에 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은 2차세계대전이라는 큰 전쟁 속에서 이름없이 죽어간 우리 젊은이들의 7년여의 여정이 담겨있다. 하루 하루를 전투로 살아가는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육덕지고 구수한 우리네 농짓거리를 작가는 마치 함께 녹아서 경험한 듯 표현했는데, 그들의 빈웃음이 독자의 마음을 더욱 아리게 한다.
일본군포로에서 소련군이 되기 전까지의 고초는 마야자키 도오코의 소설 [불모지대不毛地帶]를 연상케하고 조선인들의 입담은 이광수의 단편소설 [무명無明]을 떠오르게 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과 의지로는 돌릴 수 없는 비극을 온몸으로 겪고 사라져간 이름없는 조선인들의 슬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소설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이 책은 재확인 해준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고 죽을 둥, 살 둥 헤엄쳐 나왔다면 좋으련만... 먹먹해진 가슴 달래느라 혼났다. 비극적 결말이 야속해 얼른 책을 덮었지만, "우리는 소련인이 아니다. 우리는 조선인이다. 우리의 국적을 고쳐 달라. 우리를 조선인이 많은 수용소로 보내 달라." 고 피를 모아 만들어낸 그들의 혈서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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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
달시 웨이크필드 지음, 강미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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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주는 감동적인 이야기!
 
  의욕을 잃은 사람들에게 '남대문의 새벽시장을 가라. 가서 그들에게서 활력을 얻으라'고 말하고, 세월을 낭비하는 이들에게는 '네가 무의미하게 보낸 하루는 사형수가 간절히 원했던 자유로운 하루였다'고 말한다. 많은 좋은 말을 듣고, 또 했다. 그 소리를 기억하는 횟수만큼이나 생에 대한 활력을 잃었었고, 무의미한 나날을 보냈다. 오늘 또 한 권의 책을 통해 '온전히 살아있음을 정말 감사함'을 배웠다. 소개하는 책,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가 그것이다.
 
 


달리기와 하이킹, 자전거 타기, 호수에서의 수영 등 야외 활동을 즐기고, 대학 강단에서 영문학과 작문을 가르치던 생기넘치던 한 여성이 꿈에 그리던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자마자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이 좋아하던 모든 것이 불가능하게 되는 온 몸이 굳어서 끝내 사망하는 불치병, '루게릭병'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남지 않은 생을 재촉하듯 그토록 원하던 아기를 임신하게 된다. 하루 하루 당연한 듯 자연스럽던 활동들이 불가능해지면서도 사랑과 출산, 그리고 남은 삶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던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달시 웨이크필드(Darcy Wakefield)가 직접 썼으며, 원제는
I Remember Running: The Year I Got Everything I Ever Wanted—and ALS 이다.

 
 
미혼이던 Darcy는 아이를 너무도 갖고 싶은데 지금(32살)이 아니면 점점 더 어려워질까봐 인공수정을 준비하던 중 신청했던 데이트 주선업체를 통해 재치와 정이 넘치는 이메일을 한 통받게 되고, 메일의 주인공 Steve은 그녀가 꿈에 그리던 남자였고, 그와 사귀게 된다. 어느 날 다리가 불편해 검사를 하다가 오히려 왼쪽 다리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운동뉴런증후군' 이른바 '루게릭병'이었다.
 

 
"루게릭 병이란 원래 정확한 이름이 근위축성 측색 (측삭) 경화증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 ALS)이라고 불리우는 병.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이란 병은 1930년대 미국의 유명 야구선수 이름을 따루 게릭이 이 병에 걸렸던 것에서 유래되어 흔히 루 게릭 병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요즘은 유명한 스티븐 호킹 박사 또한 이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우리나라에도 1200명 정도의 환자가 침상에 꼼짝도 못하고 누워 속절없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이 ALS란 병은 40세부터 60세 사이의 연령에 호발하며, 남자에서 여자보다 흔히 발병한다. 사지의 힘이 빠지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데, 사지의 끝부분에서 시작해서 점점 진행하여  점점 팔다리 전체와 몸통, 안면의 근육까지도 진행하게 된다.병의 초기에 환자들은 흔히 사지 말단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며, 이 병이 양측 비대칭적으로 진행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병의 진행에 따라 삼키는 근육이 약화되어 음식을 잘 삼킬 수 없으며, 목쉰 소리가 나는 등의 증세를 보이게 되며, 이로 인한 흡인성 폐렴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병의 마지막까지 눈동자를 움직이는 근육과 대소변의 괄약근은 기능이 유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ALS을 최종통보를 받은 후 그녀는 스스로 장례식 준비와 부고와 부고장을 준비하고그녀의 사후 법률적인 일들까지 모두 처리한다. '살아가는 일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ALS와 관련된 의학서적과 웹사이트를 뒤져 자신의 병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 모두 읽은 그녀는 ALS를 '루게릭병'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죽은 야구선수의 이름을 병명으로 한다는 것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격려나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며 자신의 병명을 DWAD(Darcy Wakefield Anti Disease)라고 재명명할 만큼 자신의 병과 대항하기를 마음먹는다.
 
"언젠가는 다 이상 삼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내가 저항하지 않는 한 의사들은 내 몸을 절개해 음식섭취용 관을 집어넣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두려움은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해준다. 삼키는 것 하나하나, 내 몸의 근육 하나하나까지 감사한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몸을 사랑하려고 한다. 몸에 대한 나쁜 말은 일절 하지 않겠다. 과식하는 것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뭔가 달라져야겠다는 욕심도 부리지 않겠다."
 
그녀는 서서히 진행되는 자신의 병에 대해 예전처럼 활동하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해 절망에 빠져있기 보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누릴 수 있는 현재를 만끽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절뚝거리지만 걸을 수 있을 때, 달릴 수 있을 때 늘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그 순간의 감각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또한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좀 더 일찍 포기한다는 뜻이라는 의사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ALS아니 DWAD가 새생명에게는 전이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난 후 Steve와의 사랑으로 잉태된 생명에 감사하며 아기를 낳기로 결심한다.
 
꿈에 그리던 연인을 만나고, 낳고 싶었던 아기를 가짐과 동시에 불치병에 걸린 그녀는 '대체 어떤 신이 네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했을까' 라고 스스로 수없이 질문도 던지고, 괴로워 하지만 '병을 낫는 기적'대신 '건강하고 새로운 생명을 자라게 하고 있는 기적'에 감사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된다.
 
"에베레스트는 도처에 있다. 요즘은 커피주전자를 들 수도 없을 정도로 오른팔이 약해졌다. 걸핏하면 뭘 떨어뜨리는 통에 유리 제품은 될 수 있으면 멀리한다. 외투를 옷장에 걸기도 힘들다. 외투가 언제 이렇게 무거워졌을까?"
"더 힘든 에베레스트는 타이핑 같은 것이다. 오른손이 굼뜨다 보니 자판을 누루는 것도 갈수록 힘들어져 아주 고민스럽다. ... 긴 메일은 받으면 바로 삭제하고 싶어진다. 어떻게 답장을 한단 말인가?"
 
후반부로 책장이 넘겨지면서 자신에게서 빠져나가는 기력에 대해, 자신의 부자연스로운 행동에 대해, 그리고 그 성치않은 몸에 대한 괴로움에 대한 독백이 늘어갔다. 그녀의 독백이 늘어날 때마다 온전하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세로 편하게 책을 읽어가는 나를 바라보며 다행이라는 한숨과 부끄러움이 교차해 나역시 별 수 없이 간사한 인간이라는 마음에 심란하기 그지 없었다. 가뜩이나 불편한 몸에 임신까지 해서 정글 무늬의 프레고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마지막으로 간절한 소원이었던 호수에서의 수영을 시도하지만 줄어든 폐활량과 늦은 오후의 물의 냉기에 수영은 포기하고 물속을 걷다가 넘어지고는 
주저 앉아 마음대로 수영하고 걸어다니던 176센치의 작년 모습을 기억하며 엉엉 우는 모습에서는 가슴이 함께 무너지는 듯 시리고 아팠다.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내 몸에 적응하기 힘들다. 요즘은 목소리도 거의 사라져 버렸고, 손도 움직일 수 없다. 먹의 근육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 내가 말하고 걷는 법을 잊어버리는 사이 샘(Darcy의 아기이름)은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는 법과 미소 짓는 법 다리를 움직이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    
 

 
무사히 아기를 낳았지만 급속히 악화되어 가는 자신을 보지만, 그 반대로 샘의 탄생은 자신에게 너무 완벽한 선물이어서 녀석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을 정도라며 글을 맺는 Darcy는 더이상 환자가 아니라 어머니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후 그녀는 Steve와 아들 Sam의 곁을 떠난다.   
원하던 행복을 누리기엔 너무 짧은 일년이어서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지만, 그녀의 친구가 말한 것처럼 그녀는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르고 모든 행복을 모두 누렸는지 모른다. 그녀는 순간 순간의 일상을 에베레스트 등반에 비유할 정도로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상이었고,  마지막까지 순간 순간을 기억하고 만끽하며 누리려 노력했다.
내 인생이 영원한 듯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고, 당연한 나날이 복이 겨워 태양이 뜨겁다고 투덜댔고, 내리는 비에 출근길을 걱정했었다. 조그마한 괴로움에도 잠자리에 누워 아침에 눈뜨지 않고 영원히 잠들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그녀를 만난 후로 그랬던 나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평범한 나날에 감사하고, 순간 순간을 만끽하기에 노력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그녀가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이 정말 부러워요. 달리기를 할 수 있으니 말이에요.
당신이 부러워요. 당신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힘껏 잡을 수 있어서 말이에요.
책을 읽고 글씨를 쓰니 얼마나 좋으세요?
노래를 부르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 나는 당신이 정말 부러워요.
 
짧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진정한 생명을 만끽하고 돌아간 그녀가, 오늘 우리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닐까?
 
"당신의 건강한 몸에 어울리는 그런 가치 있는 일을 하세요."
 
- 꽃그림 작가 백은하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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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의 비밀 - 행복한 인간관계의 답이 숨어있는
이충헌 지음 / 더난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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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격을 알면 행복한 인간관계가 보인다 !
 
  어릴적 어머니는 나의 모든 것을 아셨다. 내 뱃속으로 열 달을 안고 있다가 배아파 낳은 내 자식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당연하다고 모든 어머니는 말하실테지만, 또 당연하지만 내 어머니는 더 잘 아셨다. 왜냐하면 내가 잠든 머리맡에 앉아 계시면 그 날 있었던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잠꼬대때문이었다.
그 날의 대화내용을 낱낱이 고했다고 하니, 게다가 어머니가 대꾸를 받아주시면 그에 답까지 했고 심지어는 심지어 노래를 부르거나, 눈물도 흘렸다고 하니 섬뜩하기까지 하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느라 할머니의 손길에 컸었는데 그탓인지 꽤 내성적이었다 한다. 11살이 되자 해결책으로 '태권도 도장'을 보냈고, 이후엔 180도 바뀌어 너무 '활발해서 탈'이었다고 한다. 30대 초 사업을 하겠다고 회사를 나와 독립을 하면서 더욱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사다난한 경험을 하고 있는데, 그 시절보다는 덜 활발한 성격으로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주로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려 하고, 속내를 함부로 내놓지 않게 되었다. 업무상을 이유로 둬야 할 지, 나이탓을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변한 것만은 확실히 느낀다. 그리고 지금의 내 성격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 현재의 자가진단결과다.
 
'지피지기 하면 백전불패'라 했다. 그리고 행복은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나의 성격이 어떠한지 정확히 깨닫고, 수정할 부분을 수정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나를 찾게 되고, 좀 더 행복하고 느긋한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찾은 책이 바로 [성격의 비밀]이다.
 
 

 
 
  이 책은 정신과 전문의이자 방송계 최초의 의학전문기자인 저자가 쓴 책으로 정신과에서 실제로 환자를 진단할 때 사용하는 '미국 정신의학회 진단기준'을 사용해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성격의 유형을 경계성 성격, 히스테리성 성격, 자기애성 성격, 반사회성 성격, 편집성 성격, 분열성 성격, 분열형 성격, 강박성 성격, 회피성 성격, 수동 공격성 성격, 의존성 성격등 11가지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신경정신과'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 때문인지 11가지로 분류된 성격의 이름은 좋게 들리지 않아서 한군데도 내 성격이 포함되고 싶지 않을 정도지만, 모든 사람의 성격은 이 11가지 가운데 두 세 군데에 포함이 되며, 성격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환경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는 만큼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격의 비밀을 아는 것은 자신의 성격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해서 스스로 바라지 않는 행동이 어떤 이유에서 나오는지 알게 된다면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되고, 혹 있을지도 모를 성격장애로 인한 대인관계에서의 고통과 어려움에서 좀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가시 돋친 성격 때문에 상처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어 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유명해서 익히 봤거나 잘 아는 영화나 책 속의 주인공을 예를 들어 특성을 보이는 주인공의 행동들을 묘사함으로써 11 가지 성격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했는데,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에 충분했다. 예를 들어 영화 [위험한 정사]는 하룻밤의 정사로 여겼다가 혼쭐이 나는 변호사이자 가장 댄(마이클 더글러스)의 상대역을 열연했던 무서운 여인 알렉스와 영화 [얼굴 없는 미녀]에서 "나를 알게 되면 누구든 날 버려. 그리고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아.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라는 대사로 자신의 공허함과 '버림받은 상태'의 느낌을 떨치지 못하는 여인 지수(김혜수)는 경계성 성격의 전형적인 특성을 갖는다던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안 리가 열연한 스칼렛 오하라가 대표적인 히스테리성 성격의 소유자라던가, 영화 [굿 윌 헌팅]은 천재적인 두뇌와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우한 성장 환경 탓에 마음의 문을 닫은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주인공 윌 헌팅은 대표적인 자기애성 성격의 소유자라도 저자는 설명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경계성 성격의 소유자들의 대인관계는 처음엔 상대방에 대해 마치 완벽한 사람처럼 숭배하다가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극단적인 양상의 대인관계를 띠는데, 그들을 대할 때는 이들의 기분에 장단을 맞추거나 갈팡질팡하지 않고, 좋으나 싫으나 냉정을 잃지 않고 한결같이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스칼렛 오하라와 같은 히스테리성 성격의 소유자들에게는 이들의 애정 결핍을 모두 채워주기엔 역부족이므로 애정과 관심을 이해한다는 따뜻한 태도를 취하되, 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리고 영화 [굿 윌 헌팅]에서의 윌 헌팅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의 마녀상사 미란다와 같은 상사나 동료를 대할 때는 그들을 공격하기 보다는 연약한 아이를 다루듯 하면서 겉으론 상대에 대한 존중을 배로 더하고, 가급적 말을 삼가고, 감정도 적게 개입시키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이 밖에도 영화 [공공의 적]에서 싸이코패스의 전형을 보여주는 조규환(이성재 분)과 영화 [라이어 라이어]의 타고난 거짓말장이 플레쳐 리드(짐 캐리 분)을 통해서는 반사회성 성격을,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베트남 참전용사(로버트 드 니로)는 분열형 성격의 전형적인 예로 들었다. 한편 영화 [네버랜드를 찾아서]의 극작가 베리(조니 뎁 분)는 자신이 좋아한다는 확신이 없어 다가가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회피성 성격의 소유자라고 말하며, [파이란]의 강재(최민식 분)는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불만이나 적개심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수동 공격적 성향이 다분하다고 말한다. 영화 [터미널]의 매력적인 스튜어디스 아멜리아(캐서린 제타존슨 분)는 한 시라도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면 안될 것같은 즉 사람 또는 사랑에 중독되어 있는 듯한 사람들은 의존성 성격장애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의학적 용어와 소견이 나올 법해서 다소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을 영화에 책의 주인공의 예를 들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고, 각 성격들의 특징에 대처하거나 조절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코멘트를 해주었다. 읽으면서 내 성격은 이 책의 11가지 성격 중 다섯가지가 걸쳐 있고, 그중에는 심한 것도 있다는 데에 놀랐다. 그리고 그 성격이 지나치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경악하기까지 했다.
각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배경을 설명해주는 부분에서 이해할 수 있어서 고치는 데에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이 책은 '보다 나은 인간관계를 위하여' 만들어졌다. 자신을 보다 나은 성격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은 사람이나, 주위에 까다로운 성격의 상사나 동료 때문에 고민스러운 사람이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가볍게 읽히지만 배움은 크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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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 인생 - 나는 누구인가에서부터 경영은 시작된다!
찰스 핸디 지음, 강혜정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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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관리자의 [중년은퇴] 해법은 포트폴리오 인생에서 찾아라!
 
  가끔 책冊이 '계륵鷄肋'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모처럼 눈에 들어온 책을 두께나 가격에 질려 읽지 않고 피하자니 그 내용이 궁금하기도 하고, 읽고 난 후 손톱만큼이라도 변한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져버리는 것 같아서 또 누군가는 읽고 감탄했을지도 모를 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하는 상대적인 빈곤감도 생겨 애써 무시하기가 마득찮고, 책을 집어 들고 읽자니 활자 속에 숨겨진 저자의 무궁무진한 지식의 정도나 현란한 글솜씨에 기가 죽어 지금껏 나는 무엇을 했고, 무슨 생각으로 살았나 하는 '자괴감 비슷한 무엇'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어 배움의 크기만큼 자책의 크기도 큰 것도 사실이라 책읽기가 두려워지기도 한다. 발라먹기엔 시답잖고, 버리기엔 아까운 닭의 갈비, 계륵이 아니고 뭐겠는가?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것인 만큼 편하게 즐길 만도 한데, '시간과 공력을 들이는 만큼 하나라도 건져내야 한다는 배움의 강박'을 갖고 있는 미천한 내 독서에 대한 사고 탓도 없잖아 있다 하겠다. 조금이라도 내 마음을 흔드는 글을 발견하면 펜을 들어 줄을 긋고, 물결을 그리고, 핵심어에 동그라미를 새기며 읽어야 책읽는 듯 느껴지니, 게다가 그 버릇은 소설에까지 미치니 병중 큰병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때는 그 수고스러운 작업을 기꺼이 할 만큼 반가운 책을 만나기도 하는데, 구구절절 배움과 깨달음의 탄성을 짓게 만드는 글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책을 읽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새삼 깨닫게 되는데 소개하는 책 [포트폴리오 인생]은 그런 책 중 하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매니지먼트 사상가Management Thinker 이자,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 짐 콜린스와 함께 세계를 움직이는 비즈니스 사상가 50인에 올라 있는 찰스 핸디Charles Handy의 이 책은 70대가 된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사회생활의 절반을 차지한 포트폴리오 인생Portflio Life에 대해 2006년에 쓴 책으로, 원제목은 [ Myself and Other More Important Matters (2006)]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피터 드러커처럼 앞으로의 경제에 대해 미래을 내다보는 예언자적인 혜안을 제시하지도, 톰 피터스처럼 최고기업의 예를 들면서 "정신차려, 이 친구야!"라고 현재의 우리를 꾸짖지도 않는다. 자신이 살아온 70년 평생을 거슬러 돌아보고 잘잘못한 과거에 대한 후회와 반성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앞으로 생을 살아갈 독자들에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하는 인간 최대의 화두에 대해 답을 제시한다.
 
어려서는 아일랜드계 개신교도로서 영국에서 살아가면서 정체성으로 혼란을 겪기도 하고,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좋아하지도 않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전공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그리스철학을 접하면서 심취하게 되어 자신의 일생을 위한 기반이 되어주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Golden Mean 을 통해 '족하다'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되고, 덕德이란 지나침과 모자람의 양 극단 사이 중간지점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리스어로 행복이라고 번역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는 '상태'가 아닌 '행동'이라는 것을, 다시 말해 와인과 책을 들고 해변에 누워 있거나, 꿈에 그리던 이성과 질펀한 섹스를 즐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 '번영' 또는 '가장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느끼는 만족이 바로 행복임을 알게 되었다. 그의 옥스퍼드 대학시절은 자신의 삶의 후반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타인의 인정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삶의 초점을 '행복', 가족, 친구에 조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한다.  
 
'인생학교'인 세계적인 정유회사 셸에서의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낯선 이국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에서 업무적으로, 개인적으로 힘든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간이 처한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모범답안이란 없으며, 사람마다 다르므로 스스로상황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이를 옹호행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실업학교'로만 여겼던 경영학에 대해 미국 MIT 슬론대학원을 유학하게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고, 자본주의에 대한 미국적 삶의 사고방식과 경영기법에 매료되고 이를 전파하기 위해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맡게 된 세인트 조지 하우스 학장생활을 하면서 직장생활자가 아닌 제 3자적 시각으로 본 영국경제의 현실은 기업들의 노동자 해고, 실업률 상승, 노동조합의 득세등으로 통합된 기업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는 것처럼 각박해지는 영국경제를 통해 그는 새로운 직업, 새로운 경력, 개인의 삶을 준비하는 새로운 방식이 대두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바로 포트폴리오 인생Portfolio life 가 그것이다.
 

 
처음 IBM 중역들의 은퇴 준비 강연을 하면서 그는 비즈니스 라이프Business life로 뭉뚱그려지는 '일의 유형'에 대해 직장에서 '급여를 받는 일', 프리랜서로서 '수수료를 받는 일', 자원봉사등으로 '무료로 배푸는 일', 그리고 계산도 안 되고 보수도 지급되지 않는 '집에서 하는 일' 이 네가지의 일을 모두 포함하는 일'포트폴리오'라고 보았다. 그래서 포트폴리오 인생의 개념으로 보았을 때는 '일과 생활의 균형'이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고 '일의 균형'이라고 봐야하고 이는 프리랜서 뿐 아니라 '전일제 근무 노동자'도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직장생활(대가를 받는 일), 공부와 자기계발(무료로 하는 일), 쇼핑-요리-청소(적당한 집안일)등 서로 다른 유형과 성격의 일을 섞어놓은 생활을 한다고 보면 우리는 모두 '포트폴리오 노동자'라고 부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은퇴후 중년의 '독립적인 포트폴리오 생활'의 자유로운 매력에 빠져들고, 스스로 포트폴리오 인생을 선택했다. 그리고 강연활동과 저술로 경제력을 지녀야하는 그의 포트폴리오 생활을 통해 직장생활에서는 알 수 없었던  '밥벌이의 두려움'을 알게 되고, '벌이', '부富',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다.
 
그는 은퇴 후 20년, 은퇴 후 30년도 건강하게 살아가는 지금의 '은퇴'라는 단어가 잘못된 단어라며 '또 다른 단계이며 사회적 번영이 가져다 준 예상치 못한 보너스'라고 말한다. 그리고 포트폴리오 인생을 살라고 주문한다. 
"천수를 누리고 죽어가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가장 친한 친구가 추도식에서 여러분을 위해 읽어주었으면 하는 송덕문頌德文을 짧게 써보세요." 70대가 된 그는 독자들에게 '나는 죽을 때 누구에게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어떤 개인적인 유산을 남기고 싶은가?' 하는 화두에 대해 그가 50대부터 실행해 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임종시험' 을 해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포트폴리오 인생을 살면서 해야 할 일은 바로 '자신이 가장 잘 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라고 강조한다.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 사상가인 그가 생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자신을 돌아봄에 있어 '자신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학위'도, '자신이 펴낸 수많은 책'도 아닌 '사랑하는 가족과 몇몇 절친한 친구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 전부일 것'이라는 그의 솔직하고 소박한 고백이 자못 충격이었다. 그리고 '중년의 은퇴는 포트폴리오 인생을 살 수 있는 또 다른 삶의 보너스'라는 그의 말에 위로를 얻게 되었다. 이제 숙제는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는 '삶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 다름아니고, 자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진정 어떤 일에 재능이 있었는지를 끝내 모른 채 죽는다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분리되는 자신만의 독립된 정체성을 구축하고 싶은 욕구는 세상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유산을 남기고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결국 얼마를 벌어놓고 가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벌어놓은 얼마를 어떻게 쓰고 가는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영의 구루가 남기는 교훈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에 나를 남겨두고, 정직하게 살다가 좋은 곳에 유산을 남기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다. 나의 일과 삶 그리고 다가올 미래와 죽음에 대해 화두를 남긴 책이다. 그의 저서중 최고라도 단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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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오늘의 도시여성을 알고 싶은 남자들이 꼭 읽어야 할 책!
 
군제대후 대학복학을 할 때 즈음 우리나라에 전문적인 남성잡지인 E가 창간되었고, 그 후로 쏟아져서는 지금은 예닐 곱 개에 이른다. 지금은 트렌드라고 말하지만 그 시절 우리에게는 [유행]이란 단어를 썼고, 창간호에는 최소형의 삐삐가 한창 유행이었고, 미국 M사의 Tag시리즈의 휴대폰이 백만원 대의 가격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지금은 E, G, A, M으로 시작하는 남성잡지를 매달 구독하고 있는데, 3 부의 신문에는 없는 다뤄지지 않는 내용의 기사들, 이를테면 패션, 미용, 트렌드, 헬스, 심지어는 섹스까지 신문보다는 심도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잡지사 기자들 즉, 에디터들이 펼치는 현란한 언어마술을 경험하는 맛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그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지 늘 궁금했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사는지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유독 독설이 가득한 기사로 현세태를 날카롭게 꼬집는 어느 에디터의 팬이기도 한데 그들의 세계를 알려준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도시여성들의 트렌드를 한눈에 꿰고 있는 여성 잡지사 피쳐에디터의 일과 생활 그리고 사랑을 다룬 소설로 전직 여성 패션지 에디터이기도 했던 작가가 그녀의 풍부한 경험과 안목으로 도시여성의 판타지와 현실에 대해 여성만이 쓸 수 있는 섬세하고 맛깔난 글로 제 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책에 실린 저자 백영옥씨의 모습은 이 책의 주인공인 이서정의 묘사와 흡사해서 실물인 그녀를 주인공으로 놓고 읽어서 더 리얼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 책을 내기 전에 도시여성들의 문화, 패션, 트렌드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했던 산문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을 내기도 했던 실력파이기도 하다.
 
 



갤러리아 백화점앞, 압구정동, 고야드 백,마크 제이콥스 핸드백, 마놀로 블라닉 구두, 패션잡지, 커피, 담배, 수십 통의 전화, 그리고 다이어트 등... 패션지의 에디터로 활약하고 있는 주인공 이서정이 매일 만나는 업무속에 함께 하는 아이템들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 색스처럼 남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데 '웰빙 기사 쓰면서 컵라면 먹는 이중생활'이란 말로 그녀의 아이러닉한 일상을 대신한다.
 


 
 
주인공 이서정은 50킬로 중반대의 그녀는 몸을 옷에 맞춰야만 입는 남성복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의 '스키니진 체험기'를  써야 하고, 까다롭기 소문난 영화배우 정시연과의 1년 동안 공들인 인터뷰를 따내야 하며, 촌철살인의 뉴욕식 레스토랑 평가로 유명한 보이지 않는 거물 레스토랑 평론가 '닥터 레스토랑'을 찾아 인터뷰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좋아하는 패션에디터 김민준을 훔쳐보랴, 우연히 만난 7년 전의 '아픈 기억' 박우진과의 악연을 처리하랴, 그의 단짝 한재석과 티격태격 싸움하랴 정신이 돌아버릴 지경이다.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룸메이트인 최은영은 혼란한 그녀를 돕는 유일한 동지다. 그 밖에도 천하의 악녀 박기자(이름이 기자란다, 타고난 이름이다) 선배, 여성편집장, 앤드류 동(똥)등 그녀 주위의 조역들도 주연을 쩜쪄먹을 만큼 만만치않은 캐릭터들이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일상의 편안함은 뒤로 한 채 뉴스와 소문이 혼재된 상황속에서 일과 사랑 그리고 다이어트에 몰두하는 그녀를 따라가며 읽자니 내조차도 숨이 가쁘다. 그녀가 담배를 피우면 함게 담배를 피웠고, 커피를 마시면 함께 커피를 마셨다. 심지어 라면까지. 이유인 즉 말많은 사내녀석에게 우리는 딱 세가지로 묻는다. "너, 돈 필요하냐?" ,"집에 무슨 일 생겼냐?", "너, 연애하냐?"가 그것이다. 그리고는 그 이야기를 들으려 가까운 고기집을 찾는다. 그런 사내들은 상상할 수 없는 화제꺼리로, 그것도 맨입으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며 책을 매꿔 나간다. 그녀들만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지적 능력과 체력을 가진 여성들이고 모든 여성이 그렇다면 지금껏 내가 알고 있는 여성에 대한 정의는 고쳐져야 했다. 사내녀석이 여성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책을 읽는 것이 '일종의 관음증'으로 치부된다면, 앞으로는 책표지를 싸서 감추어가면서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륨을 높여달라는 이서정의 말에 길을 잘못 들어서 화났냐고 묻는 택시기사의 질문에 그녀는 '이 세상엔 지구 둘레만큼의 오해와 한줌도 안되는이해만 존재하는 걸까?'라고 혼자 묻고, 차를 빼기 위해 30미터 움직이다가 음주단속에 걸린 그녀의 운전면허정지에 대해 '불행이란 아귀를 딱딱 맞추듯 지독한 우연들이 몰려와 자석같이 들러붙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물론 그 우연의 조각들을 다시 꺼내어 맞추면 이런 문장이 완성된다. 재수 없게 왜 나냐고.'라고 하소연한다.

제니칼의 부작용으로 망쳐버린 김민준과의 키스, 예매한 영화관에서의 에피소드, 이탈리안 레스토랑 '어바웃'에서의 요리실습등 웃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들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능가하기도 하지만, 성수대교를 둘러싼 그녀의 트라우마 그리고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의 치밀함을 더해준다. 데이트 준비를 위해 전날부터 준비하고 10센티나 되는 힐을 신고 곡예하듯 몇 시간을 버티는 그녀들을 위해 식사값을 내는 것은 당연한 듯 아니냐는 이서정의 항변에 고개를 숙였고, 세상에 흔치 않은 잘 생기고 매력있는 남자는 왜 하나같이 유부남 아니면 게이냐는 그녀의 외침에 잡지두께의 뱃살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이서정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리고 그녀를 차지하게 되는 그 녀석에게 눈을 흘겼다.
 
저자가 말하는 제목 스타일StyleSexy Tiny Young Lady is Everything 을 줄인 말이 아닐까?
 
영화로 만들어지면 또 한 번 반갑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문학상이 이번에도 훌륭한 낙점을 했다. 지금 이서정은 '안나 윈투어'가 되어 있을까? 아님 박기자 선배처럼 되어 또 다른 이서정을 괴롭히고 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정말 재미있게 본 책이다. 저자의 입담을 쫓아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를 읽어야겠다. 물론 표지는 보이지 않게 포장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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