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사람공부 - 사람을 아는 것의 힘 정진홍의 사람공부 1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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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삶 속에서 나 다운 삶을 찾아라!

   “그렇게 10년 동안 500여 명 가까운 사람들을 마주했습니다. 때로 그 사람 생각에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 하고 그의 삶의 결정적 순간을 나의 삶의 한 순간으로 옮겨와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경우는 그의 선택과 결정에 그리 어렵지 않게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정말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통해 저는 조금씩 배우고 깨우쳤습니다. 바로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그 차이가 지속될 때 비로소 그는 어떤 삶을 살았든 관계없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그의 가치를 드러냈다는 사실을!“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로 국내 경영계에 ‘인문학 바람’을 몰고 왔던 정진홍이 이제 사람을 이야기한다. ‘인문의 끝은 결국 사람이다’는 부제로 <정진홍의 사람공부>라는 책을 폈다. 한눈에 보면 ‘어른들을 위한 현대판 짧은 위인전’이라 해야 할까? 주인공들은 ‘위대한 인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서고금의 저마다 굵직한 삶을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 배우에서 개그맨까지 소설가에서 기업가도 등장한다. 심지어 잘나가는 ‘나가수’의 인순이도 이 책의 주인공이다.  
   “결국 삶이란 사람과의 뒤엉킴이고 사람과의 뒤섞임이며 사람과의 씨름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든 삶을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알아가고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궤적에 다름 아닙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한 사람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문文, 사史, 철哲의 인문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이 더욱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 했던가? 국내 경영학이 인문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역시 ‘사람을 알고 싶어서’일 것이다. 소비자와 경쟁자를 보다 더 잘 알고 싶어서, 그리고 내 직원과 나를 알고 싶어서 틈만 나면 그들은 인문서를 펼쳤다.

   얼마 전 삼성그룹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채용키로 하는 등 인문학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그 발단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인문학이 경영을 바꿀 수 있다’라는 제목의 보고서, “기업이 기술과 가격 차별화만으로 경쟁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으며, 인문학이 새로운 돌파구로 등장하고 있다”고 이 보고서는 밝히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소비자가 아이폰과 페이스북에 열광하는 이유는 첨단기술과 새로운 기능 때문이 아니라 ‘단순하고 편하고 재미있는 것을 원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만족시켰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페이스북을 개발한 마크 주커버그는 20세의 젊은 나이에 페이스북을 만들어냈는데, 개발 초기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연결해 보자‘는 상상력으로 페이스북을 개발했다는 것. 전문가들은 마크 주커버그의 개발 배경에는 그의 인문학적 통찰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후에도 ‘우리는 기술 회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기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문학적 상상의 세계를 페이스북의 지향점으로 삼았다고 한다. 한편 애플의 스티브잡스는 지난 iPAD 2의 프레젠테이션에 “애플의 창의적인 IT 제품은 애플이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구글 역시 올해 신규 채용자 6000명 가운데 5000명을 인문학 전공자로 채우기로 하는 등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춘 인재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판단하고 있는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처럼 ‘인문학 공부’가 CEO나 임직원 뿐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맨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모두가 자연스러운 소통이 될 만큼 인문학적 이해가 충분할 때 비로소 인문학이 통찰력을 발휘해 비즈니스의 모든 영역에 가치를 제공할 만해진다.

   하지만 인문학의 경영 접목에 대한 국내의 현실은 국내 최고경영자(CEO) 다수가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정도랄까? 실제 접목사례는 임직원들에게 인문학 교육을 통해 소양을 쌓게 하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는 실정이니 ‘수박 겉핥기’요 그들의 아는 체란 ‘지식의 저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CEO나 임직원이 아닌 우리, 즉 평범한 일반인을 겨냥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백만원이 훌쩍 넘는 유료 교육 사이트 SERI CEO 에서 ‘정진홍의 감성리더십’ 코너를 진행중인 명강사 정진홍 교수. 그가 강의를 준비하고 공부한 내용들을 종합해 책으로 엮은 것이 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10년 동안 직간접적으로 약 500명의 사람을 ‘공부했다’고 말한다. 그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저마다 자신의 직업에서 궤를 뚫고 있는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궤적 속으로 들어가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차이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본 것이다.  

   “결국 사람공부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내가 나 되기 위한 것입니다. 결코 누군가를 닮고 따라하는 것에 그치자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 대한 경탄만으로 내 인생에 대한 박수를 대신하자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내가 나 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삶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 되기 위한 몸부림이 곧 인생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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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남을 보고 배우고 따름’은 곧 ‘내가 나 되기 위해서’라 말한다. 남 사는 것을 보는 과정을 포함하고 그 사람과 관련된 세계를 읽음으로써 배움과 깨달음을 내 안에 이식하고 뿌리내리게 하는 것, 이것이 곧 체화體化라고 말했다.

   흔히 우리는 ‘남들과는 다른 차별화 전략을 세워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차별화‘라는 단어를 쉽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이 무엇인가?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는 참으로 모호하다. 저자는 차별화를 ‘남들과 다름’이라고 해석하고 이 의미를 ‘튀는 것’과 비교했다. 즉 튀는 것은 다름을 모방하고 그 차이를 위장할 수 있지만 진정한 다름의 가치와 차이의 의미를 드러내진 못한다. 왜냐하면 ‘다름’이라는 것은 내 속의 것이 우러나서 드러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만나고 부딪치는 사람들 모두가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고, 각각의 사람들의 모습을 공부하고 체화함으로써 자신의 레퍼런스(reference)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레퍼런스는 단순한 지식이 아닌 그 사람을 규정하고 정의하는 총체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사람은 자신의 레퍼런스만큼 세상을 알고, 보고, 느낀다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레퍼런스를 키워야 하고 그것은 바로 사람을 공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을 공부하면서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해서 나만의 것을 만드는 것이 결국 사람공부가 것이다. 저자는 인문학적 지식을 갖췄다면 이를 바탕으로 ‘사람’에 주목하고 다양한 인간군의 삶의 통찰하고 그 엑기스들을 체화하라고 이 책에서 주문하고 있다. 

   그렇다면 체화란 구체적으로 뭘까?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수많은 위인들의 전기와 평전들을 읽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와 성공스토리에 귀를 기울이며 때로는 감동을 받기도 한다. 이런 글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이런 위인들을 마냥 부러워만 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아, 왜 나는 이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할까’하고 열등감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한테는 이런 ‘성공스토리’를 알면 알수록 괴로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두 번째는 훌륭한 인물 모두를 자신의 ‘스승’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공스토리를 접하면서 오늘의 그들이 있게 한 결정적인 ‘무엇’에 주목하고, 그것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또한 ‘성공은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위인들에게 자연스레 터득한다. 아울러 ‘오늘의 시련은 성공을 위한 단계일 뿐 영원하지 않을 것’이란 것 역시 역사적 사실을 통해 습득합니다. 읽어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습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체화’인 것이다. 

   "공부란 본래 몸공부입니다. 소림사의 선사들이 참선에 용맹정진하기 위한 몸공부의 일환으로 공부工夫 즉 쿵푸가 탄생했듯 이 모든 공부는 관념의 운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놀리는 행위를 포함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공부가 내 안에서 체화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읽어낸 우리는 크고 작은 모험과 도전을 통해 레퍼런스의 씨앗들을 발아시키고 그것을 내 안에 뿌리내리게 만듭니다. 체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이름난 일본의 소설가, 특이하게도 그는 매일 아침 달리기로 하루를 열고, 매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마라톤 매니아이기도 하다. 그는 “짧은 인생, 완전히 집중해서 살기 위해 나는 뛴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마라톤 풀코스는 20회 이상 완주를 했고, 100킬로미터 울트라 마라톤도 완주하는 대단한 실력자라고 한다. 그에 대한 이 정도의 정보는 하루키 마니아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정진홍 교수는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하루키는 왜 달리는 것일까?’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그는 ‘하루키에게 있어 달리기는 글쓰기와 닮았다’는 결론을 내린다. 흔히 우리가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듯 하루키는 마라톤 같은 인생을 어떻게 달릴 것인지 온 몬으로 느끼면서 그 느낌 그대로 세상에 수많은 책을 내놓았거라는게 그의 말이다. 그저 취미로만 보였던 하루키의 달리기가 ‘오늘의 하루키’를 있게 한 무기였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하루키에게 있어 달리기의 의미를 아는 것, 그래서 나도 그처럼 달려볼까? 시도한다면 이것이 독자인 내게는 체화體化가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마천의 <사기>가 떠올랐다. 물론 이 책이 2000년 전부터 수많은 선현들에 의해 읽힌 <사기>에 비할 바야 못되겠지만 여러므로 닮은 데가 많다. <사기>는 격동과 파란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온갖 인물들과 사건의 기록이며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역사적인 영웅들이 겪는 고충 들을 담고 있다. 인간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대립과 갈등, 배반과 충정,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등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러한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이야기한 것이 <사기>이다. 사기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고충을 거의 모든 사람들도 똑같이 겪어왔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보여준다.

   <정진홍의 사람공부>은 저자가 10여 년간 약 500여 명의 인물들을 직간접적으로 연구하면서 얻은 결과물이다. 65 명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남과 다름’을 알게 되고, 진정한 나다움을 알게 한다. 읽다보면 ‘현대인에게 사람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하고, 독자 개개인은 틀림없이 ‘나만의 체화할 무엇’을 사람공부하면서 찾게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한다면 ‘나다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찾을 수 있을까? 난 존 우드John Wood라는 청년을 공부하면서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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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제너레이션 - 다음 10년을 지배할 머니 코드
레이철 보츠먼 & 루 로저스 지음, 이은진 옮김 / 모멘텀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기업들이여, 협업과 공유를 기반으로 한 협동소비를 대비하라!

일본과 하와이 사이, 태평양이 끝나는 지점에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마치 섬처럼 떠다니고 있다. 텍사스 면적의 2배이며, 두께는 30미터 정도로 두껍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쓰레기 섬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전 세계 바다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쓰레기 더미를 연구하고 있는 환경운동가인 찰스 무어는 전체 바다의 약 40퍼센트가 쓰레기로 뒤덮여 있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면적은 어림잡아 “지구 면적의 1/4”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해외토픽에서 만날 법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 해양쓰레기 관리 기본계획에 의하면 2011년 국내의 바다쓰레기 발생추정량을 14만 톤으로 보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지난 해 1월 1일부터 11월 말까지 수도권에서 발생한 쓰레기양은 369만8천 톤이라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어마어마한 양이 그마나 전년인 2009년보다 9.2% 감소한 양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태평양 거대 쓰레기지대를 비롯한 쓰레기 처리로 인해 생기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은 현대 소비지상주의가 가져온 부정적인 결과를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무시해왔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과연 얼마나 많은 자원을 소비하는 것일까? 하고 연구를 한 기록에 의하면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한 명의 아이가 한 명 태어나서 평균 80년을 산다면, 물 250만 리터, 나무 1,000 그루, 가솔린 21,000톤, 강철 220,000 킬로그램, 전기 80만 와트를 쓴다고 한다.


 

   <위 제너레이션>(모멘텀)은 이러한 소비지상주의를 대체할 대안과 장기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알려주는 책이다. 빌려주는 사업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이야기한 책 <메시Mesh>(21세기북스) 같은 맥락에 있는 책인데, 저자는 그보다 한 발 더 앞서 다음 10년을 지배할 ‘머니 코드money-code'는 협업과 공유를 기반으로 한 ’협동소비‘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원제목은 What's mine is yours. ’내 것이 곧 네 것‘ 이다.  

소비지상주의의 대안, 협동소비

   요즘 들어 협업 즉 코웍co-work이라는 용어가 경제학자, 비즈니스 분석가, 트렌드 연구가, 마케터, 기업가들에게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공유, 물물교환, 대여, 바꿔 쓰기 등 새로운 소비 습관을 다루는 기사 역시 심심찮게 뉴스나 기사로 소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공유서비스인 집카Zipcar의 회원이 된다거나, 옥션이나 이베이를 통해 중고 물건을 팔거나 교환하고, 나에게 쓸모없는 물건을 아름다운 가게 등에 기는 하는 것처럼 개개인이 커뮤니티 집단을 이뤄서 공유하고 소비하는 활동을 이 책에서는 ‘협동소비’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기업은 결코 제품 생산하는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먼저 바뀌어야 할 대상은 소비자다. 어차피 쓰레기가 될 제품, 사는데 열중할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것들을 쓰는 것에 소비자들이 눈뜨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 협업이라는 용어는 경제학자, 철학자, 비즈니스 분석가, 트렌드 스포터, 마케터, 기업가들이 입에 달고 사는 유행어가 되었다. 공유, 물물교환, 대여, 바꿔 쓰기 등 새로운 소비 습관을 다루는 기사도 부쩍 늘었다. 그리고 이런 기사 제목에는 ‘함께’를 뜻하는 접두어 ‘co'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엑스세대와 와이세대를 위한 코하우징‘,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코워킹‘, ’카우치서핑: 단순한 숙소 이야기가 아니다‘, ’코뮌을 위한 소셜 네트워킹‘, ’글로벌 집단주의 사회가 온다‘, ’함께 살아가기, 코뮌의 현대식 해법‘, ’공유의 비극을 넘어‘ 와 같은 표제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트렌드를 살펴보면 일련의 행동과 개인의 경험, 사회 이론, 사업 사례들이 새롭게 떠오르는 사회 및 경제 현상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더욱 확신하게 된다. 바로 협력, 집단처럼 하나로 합치고 공유하는 활동이 협업과 커뮤니티라는 매력적이고 소중한 방식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현상을 협동소비라고 부른다.“ 

  책을 읽다가 보면 지난 IMF 시절 우리가 펼쳤던 ‘아나바다 운동', 즉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를 말하는 것 같았다.

P2P 대출, 도구 교환, 토지 공유, 의류 교환, 장난감 공유, 사무실 공유, 코하우징, 코워킹, 공용자전거 및 자동차, 카셰어링 등 전 세계적으로 협동소비를 통해 제품의 이용 효율도 높이고, 쓰레기도 줄이고,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도 줄어서 궁극적으로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례들은 소유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인 협동소비가 이 책이 말한 대로 ‘다음 10년을 지배할 머니 코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기술과 P2P 커뮤니티를 통해 재정립된 전통적인 나눔, 물물교환, 대여, 거래, 임대, 증여, 맞바꾸기, 즉 협동소비를 매일같이 하고 있다. 협동소비 덕분에 사람들은 단순한 소유의 개념을 초월하여 제품과 서비스에 접근할 때 어떤 놀라운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돈과 공간과 시간을 절약할 뿐 아니라 친구도 사귀고 적극적인 시민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소셜 네트워크, 스마트 그리드, 리얼타임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구시대적 방식인 과잉소비를 뛰어넘고, 공용자전거처럼 공동이용에 기반을 둔 획기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이 시스템은 이용 효율을 높이고 쓰레기를 줄이는 한편,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하도록 자극하고 과잉생산과 과잉소비에서 비롯된 잉여물을 없앰으로써 환경에도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

   저자는 찰스 리드비터가 쓴 책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We Think>의 내용을 빌려 ‘20세기 과잉소비 시대에 신용과 광고, 소유물이 우리를 규정했다면, 21세기 협동소비 시대에는 평판과 커뮤니티, 그리고 어디에 접속할 수 있고, 어떻게 공유하고, 무엇을 기부하느냐가 우리를 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동소비는 과학기술과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바, 이런 상호작용은 나누는 것을 즐거워하고 제2의 천성으로 여기는 인간의 습성을 발견하게 함으로써, 협력이 꼭 개인주의를 훼손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체감하게 해준다. 실제로 댓글을 달고 파일과 사진, 동영상을 공유하고 지식을 나누면서 온라인에서 이미 협동소비가 시작된 셈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깊이 공감했다. 

협동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네 가지 요인

  협동소비의 사례는 규모와 성숙도, 목적에 따라 아주 다양하지만, 근본 원리만큼은 비슷하다. 바로 임계질량, 유후생산력, 공공재에 대한 인식, 타인 간의 신뢰가 그것이다.

   임계질량은 사회학 용어로, 한 시스템이 자립자족하는 데 필요한 전환점을 설명할 때 쓴다. 이 개념은 핵연쇄 반응부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터치 스크린의 스마트폰을 대중이 받아들이는 과정까지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말콤 글래드웰은 자신의 책에서 임계질량에 이르는 지점을 ‘티핑 포인트’라고 명명했다.

임계질량은 협동소비의 핵심이다. 즉 협동소비가 전통적인 소비 행위와 경쟁을 하려면 소비자가 협동소비로 만족할 만한 물건을 구할 수 있을 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야 하기 때문이다. 임계질량은 그 수가 무조건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들이 만족감을 느끼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만 있다면 그 시스템은 성공이다. 

   자동차나 자전거는 타는 시간보다 차고에 방치되는 시간이 더 길다. 이는 전동드릴과 같은 도구들도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이 평생 동안 전동드릴을 이용하는 시간이 6~13분 정도라 한다. 그런데 미국 가정의 절반이 전동드릴을 구입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결론은 미국 전역에서 약 5천만 개의 전동드릴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쓰지 않고 놔둔 전동드릴 5천만 개의 잠재력이 바로 ‘유휴생산력’이다. 잠시 주위를 살펴보면 어마어마한 유휴생산력을 찾아볼 수 있다. 자동차는 하루 22시간 정도 놀고 있고, 잠옷은 입을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내 옷걸이에 걸려 있다. 충동구매로 사 놓고 읽지 않은 책이나 DVD 등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전체 소유물의 80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유휴생산력은 자전거와 자동차, 드릴 같이 물리적인 제품뿐만 아니라 시간, 기술, 전기 같은 무형 자산과도 관련이 있다. 

   공적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개개인은 경제 이론과 자유 시장에서 ‘사익과 공익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룰까?’ 하는 문제로 가장 빈번하게 토론되고 있는 주제다. 미생물학자인 개릿 하딘은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시나리오에서 이익만을 쫓는 개개인에 의해 남용되거나 오용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공유지의 비극’의 주요골자는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목초지를 상상해 보라. 그 땅에 가축을 풀어놓은 목동은 넓은 목초지에 더 많은 가축을 풀어놓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리고 다른 목동도 ... 그러다 공유지를 함께 쓰던 합리적인 목동들은 결국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 거기에 비극이 있다. ”

 

  쉽게 말해 사람들은 일부러 그러든 모르고 그러든 집단의 이익 혹은 장기적인 이익에 도움이 안 되는데도 너무 많은 가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딘은 공동의 자유는 모두에게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공유지의 비극’은 통하지 않는다. 플리커에 사진을 올리고, 위키피디아와 오픈 스트리트 맵, 퍼블릭 뉴스에 기사를 올리기 위해서 즉, 커뮤니티에 가입해 디지털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베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늘날은 ‘공공재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무료 저작권 라이선스를 제공하고 공유와 협업을 장려하는 한편, 창작자가 허락하지 않는 사항은 계속해서 사용을 규제하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스는 “관심사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처럼 협동소비는 대중매체나 언론 기사를 뛰어넘어 해결책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성과 비슷한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의 움직임까지도 활용하여 삶의 다른 영역에도 이 원칙들을 적용하려고 애쓰고 있다. 

   대부분의 협동소비 시장에서 우리는 모르는 사람을 신뢰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예전의 과잉소비 세계에서는 중간 상인이 있어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생산과 소비 사이에 다리가 되어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신뢰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협동소비 시장에서는 이런 형태의 중간 상인이 필요 없다. 대신 두 사람이 만나는 플랫폼과 두 사람(타인간)의 신뢰가 필요할 뿐이다. 자동차 함께 타기도 그렇고, 이베이나 옥션과 같은 시장에서 물건을 팔거나 교환하거나 기부할 때도 물건을 내놓은 사람이 설명한 대로 신뢰해야 참여할 수 있다. 플랫폼이 할 일은 두 사람이 거래에 익숙해지는 데 필요한 수단과 환경을 조성하고 신뢰를 구축하고, 무역과 커뮤니티를 잇는 절충안을 만든다. 

   한편 협동소비가 소비지상주의의 대안이라고 해서 기업이나 제품, 소비에 반대하는 개념이 결코 아니다. 사람들은 계속 쇼핑하고, 기업은 계속해서 팔아야 한다. 그러나 소비하는 방식과 대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과잉 개인주의 문화에서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과 행복을 가늠했다면, 협업과 공유를 기반으로 더 올바른 소비를 하는 사회로 소비태도를 바꾸자는 것이다. 

이제는 커뮤니티가 브랜드다

   지금껏 우리는 애플, 나이키, 스타벅스와 같은 글로벌 기업의 브랜드에 집착했다. 왜냐하면 이런 브랜드들이 우리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형성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같은 이유로 다양한 공유와 협업을 통해 떠오르는 협동소비 브랜드에 마음을 주고 있다. 그렇다고 협동소비 시대에 브랜드의 역할이 죽은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분명 브랜드를 구축하고 관리하고 퍼뜨리는 방식은 변했다.

   플리커, 스카이프, 페이스북 등 협동소비 브랜드 중 새로 부상하는 많은 브랜드가 Web 2.0이라는 인터넷 환경을 따른다. 커뮤니티에 권한을 부여하고(인터넷을 이용해 소비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한다), 광고가 아니라 커뮤니티가 브랜드를 만들어간다.

   에릭 퀼먼은 <소셜노믹스>라는 책에서 “단지 14 퍼센트의 사람들만이 광고 회사를 신뢰하는 반면, 78 퍼센트의 소비자가 같은 소비자의 추천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이제 브랜드의 진짜 주인은 소비자들의 모임인 커뮤니티인 것이다. 

위 제너레이션, 협동소비의 진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빨래방 브레인워시는 보통 빨래방과 다르다. 브레인워시는 카페, 특별 할인 시간대, 라이브 음악, 핀볼 기계, 무료 와이파이 그리고 ‘숙제를 할 공간’ 등을 제공하며 고객을 유혹한다. 최신 음악이 흐르고, 벽에는 파격적이고 멋진 미술품이 걸려 있고, 친절한 직원들이 시중을 든다. 어둡고 우중충한 대부분의 빨래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브레인워시’가 한마디로 대박을 치고 있다. 이 브레인워시는 협동소비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신개념의 빨래방을 성공으로 이끈 것은 단 하나의 통찰력 ‘고객들이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뭔가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브레인워시는 ‘깨끗한 옷, 재미, 친구, 적절한 요금, 환경에 대한 책임’ 등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한꺼번에 해결했다. 브레인워시는 소비자를 바꾸려고 애쓰지 않았다. 대신 개인에게 거의 부담을 주지 않고 더 지속가능하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소비자의 욕구와 필요에 부응하도록 시스템 자체를 바꿨다.

저자는 브레인워시처럼 협동소비는 사익을 좇는 소비자들을 아주 잘 대접해서 그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뭔가 다른 일, 또는 옳은 일을 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제 소비는 끊임없이 물건을 손에 넣으려는 뒤틀린 활동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고자 기부하고 협력하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협력하고 나누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된다. 협동소비는 소비자들에게 물질에 대한 자신의 욕구가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시민들에 대한 책임과 충돌하지 않고도 충족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소비자들이 비용 절감, 교제, 편의, 사회의식 고양, 환경보호라는 한결같고 명확한 동기를 가지고 협동소비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한 가지 더 주목을 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평판’이다. 평판은 다른 사람의 욕구를 존중하고 고려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개인적인 보상인데,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와 피드백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평판은 높아진다. 이러한 평판 자본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 신뢰를 구축하는 화폐라며 지금 ‘제 2의 화폐’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평판은 심리적 보상이나 심리적 화폐의 기능만 하는 게 아니라 평판 자본이라 불리는 실제 화폐의 역할도 한다. ... 평판 자본은 이제 아주 중요해졌다. 평판 자체가 제 2의 화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화폐는 ”저를 믿으셔도 됩니다.“라고 외친다. 앤디 홉스좀이 <차세대 혁신은 작은 것에 달렸다>에서 말한 대로 ‘온라인 평판 시스템은 전 세계 어디에 있든 개인들 간의 신뢰를 평가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이자 현대 경제의 주춧돌이 될 수 있다.”

다음 10년을 지배할 새로운 시장

   저자는 오늘날은 우리의 소비 시스템을 둘러싸고 ‘낙관적이고 중대한 변화의 시기’라고 말했다. 바로 공유와 협업을 기반으로한 ‘협동소비 시스템’을 말한 것이다. 이 시스템은 커뮤니티, 개인의 정체성, 인정, 의미 있는 행동을 하고자 하는 욕구 등으로부터 비롯된 시스템이다. 다시 말해 사익私益의 시대에서 공익公益의 시대로의 이동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가올 협동소비의 시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기업가와 CEO는 앞으로 재화의 재분배 및 교환을 위한 사업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일례로 자동차 회사들도 앞으로는 ‘운송수단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기동성을 제공하는 회사’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중고 자동차를 수리하고 개선하고 원하는 대로 바꿔주는 서비스 등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 불고 있는 ‘자동차 튜닝’ 열풍도 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자동차 튜닝 열풍은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불고 있다. 일본과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이미 자동차 튜닝 산업으로 정착되어 수출 효자상품이 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의 사정은 다르다. 자동차 개조에 대한 법규와 절차가 무척이나 까다로워서 법에 의하면 국내에 자동차 튜닝을 한 자동차 거의가 ‘불법 개조차’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법률이 ‘안전’이 아닌 ‘자동차 개조 반대’를 위한 법률은 없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미래는 지금 나의 비즈니스에 공유하고 재분배,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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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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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 근거 없는 긍정을 부정하라! 

   미국이 지금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 달 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14조 달러가 넘는 빚더미 위에 올라서 있는 미국의 국가채무한도 증액에 대해 언급하면서 "미국 국민들은 분수에 넘치게 소비하면서 국제 경제를 좀먹는 기생충처럼 살고 있다"고 말했을 때도 미국은 아무런 답변도 할 수 없었다. 모두가 사실이기 때문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이렇다 할 내부 위기와 외부의 위협 없이 사회적으로 이토록 진보와 번영을 구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던 최강대국 미국이 아니던가? 과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살펴보면 그간 사실이 덮어진 것일 뿐,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당시에는 빌 클린턴도 조지 부시도 거의 언제나 낙관론을 요구했으며, 비관론과 절망과 의심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은 풀어내야 할 현안들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더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앞에서 관료들은 불안과 침체의 가능성을 아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상처는 언젠가 곪아 큰 병이 되는 법. 그 후 닷컴 붕괴가 일어났고, 이듬해에 9.11 사태가 터졌다.

   세인들은 2008년 미국의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대공황 이후 최대의 사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틀렸다. 우리는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말처럼 금융위기를 부른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사실은 거대한 폰지 사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누구도 잔치의 흥을 깨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애써 외면했었다. 오늘날 미국 아니 전 세계는 수십 년 동안 스스로 훈련해온 근거 없는 긍정주의에 빠져 불편한 소식에 귀를 닫고 살았던 벌罰을 톡톡히 받고 있다. 
   다가올 위기에 대한 사전 경고를 묵살한 대가를 받고 있는 나라는 비단 미국뿐 아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도 오래 전부터 경고음이 울렸지만 무시했었고, 우리나라 역시 구제역 전국 확산이나 우면산 산사태 등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행정당국의 무관심과 늦장대응으로 피해를 키웠다. 

 

   <긍정의 배신 bright sided>(부키)은 자유시장경제의 신념 체계의 긍정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수십 년 전 미국의 주로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뒤 전 세계로 퍼져 신자유주의 사회의 관습과 미덕처럼 굳어져버린 긍정주의의 원리와 폐해를 하나하나 지적했다. 


   저자의 집필 동기는 어느 날 자신에게 찾아온 유방암 판정 때문이었다. 그녀는 유방암 환자 대부분이 유방암에 공포와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낙관적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환자들은 유방암을 치료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리고, 성적性的 자신감도 떨어지는 등의 고통을 호소해도 부족한데, 오히려 “암은 내게 일어난 일 가운데 가장 멋진 일이었다.”고 말한 고환암 생존자 랜스 암스트롱처럼 유방암을 ‘신이 준 선물’처럼 여기는 듯 말하는 것을 보고 저자는 충격을 받았다.

‘유방암이 축복’이라니...모두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 안가 환자들이 웃음 띤 얼굴로 암을 수용해야만 하는 절박한 사정을 알게 되었다. ‘긍정적인 태도’가 회복을 위한 필수요소였기 때문이었다. 유방암 문화에서는 생존이 전적으로 태도에 달렸다고 믿고 있었다. 환자들의 긍정적인 태도는 면역체계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녀가 8년간 받은 호르몬 대체요법이 유방암에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은 것처럼 긍정적 사고 역시 암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저자는 긍정주의라는 이 ‘대책 없는 이데올로기’가 사회전반에 걸쳐 확산되어 현실을 부정하고, 불행에 즐겁게 극복하고, 닥친 운명에 대해 오직 자신을 비난하라고 말한다는 점을 심히 우려했다.

   또한 자기계발서, 기업의 동기 유발 프로그램, 초대형 교회의 복음 설교사 등 여러 영역에 걸쳐 빈틈없이 촘촘한 그물망을 짜 가면서 거대한 산업으로까지 발전했음을 목격했다. 전통적으로 ‘비판적 사고’를 중시하는 대학마저 ‘긍정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할 정도이니 두 말하면 입 아픈 현실이다.  

   특히 자기계발서와 동기 유발 강사들 그리고 기업들의 커넥션을 밝힌 후반부는 인상적이다. 미국에서 1,000만부가 팔렸고, 국내에서도 한 때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알고 보면 ‘직장에서 쫓겨나도 남 탓 말고 입 다물고 재빨리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채찍질하라’는 기업의 다운사이징 선전을 위한 내용이었다. 

   무언가를 진실로 강력히 원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긍정적 메시지로 미국에서 찍어내자마자 380만부를 찍었고 한국에서도 올해의 책이 될 만큼 베스트셀러가 된 <시크릿> 역시 긍정 이데올로기 전도사인 오프라 윈프리가 띄운 작품이었다. 저자가 들여다 본 긍정주의 돋보기 속에는 자기계발의 선구자 나폴레온 힐도 세일즈맨의 우상 지그 지글러도, 심지어 긍정신학의 선구자 조엘 오스틴도 긍정주의 나팔수였다. 무엇보다 저자가 근거 없는 ‘긍정주의’를 가장 우려한 것은 쌍수를 들고 환영한 미국 기업(글로벌 기업) 때문이었다. 

   “긍정적 사고를 가장 환영한 것은 미국 기업계였다. 긍정적인 사고가 그 자체로 하나의 산업이 되었고, 기업들은 그 산업의 으뜸 고객으로 부상해 마음의 노력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좋은 뉴스를 게걸스럽게 소비했다. 혜택은 줄고 노동시간은 늘어난 반면 직업의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21세기의 노동자들에게 긍정주의는 유용한 메시지였다. 동시에 고위 경영자들에게는 해방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저자는 근거도 없고 대책도 없는 이 맹랑한 ‘긍정주의’의 대안은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 자기감정과 환상으로 채색하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는 위험과 기회가, 행복과 죽음의 확실성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현실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항상 브레이크를 밟을 준비를 하고 운전하는 운전자의 마음과 같은 ‘방어적 비관주의’다.  

   고개를 돌려 국내를 보니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지금 한국은 가계부채가 1,000 조 원에 육박하고 2011년 3월 현재 청년실업률은 9%를 상회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인 2050년대에는 10명 중 4명이 노인인구로 채워질 위기에 빠진 고령화 사회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가 직면한 위협은 엄연한 현실이며,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 자기몰입에서 벗어나 세상 속에서 행동을 취해야만 없앨 수 있다고 이 책을 통해 말한다. 지금은 정부에게,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 “그대, 아직 긍정의 마음으로 기도중인가?” 되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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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쁜 기억은 자꾸 생각나는가 - 뇌가 당신에게 보내는 메시지
김재현 지음 / 컨텐츠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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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멍청한 뇌는 없다. 해마를 깨워라!   

 

   왜 나쁜 기억은 자꾸 생각나는 걸까? 그리고 나쁜 기억이 나면 그것에서부터 헤어나오질 못하는데 이유가 뭘까 책의 저자는 뇌가 ‘나’에게 나쁜 기억을 생각나게 하는 이유는 ‘내’가 ‘뇌’를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뇌는 본래 탁월한 학습 능력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을 데이비드 챔버린 박사는 임상 실험을 통해 태아가 지닌 학습 능력을 증명한 바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자꾸 생각나는 ‘나쁜 기억’은 뇌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당신이 문제를 회피하거나 상처로부터 도망치려고 할 때 뇌는 되풀이해서 나쁜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나쁜 기억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나쁜 기억이 왜 자꾸 찾아오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이다. 왜냐하면 그럴 때 비로소 우리 뇌는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자신을 계발하고 싶다면 ‘나’로부터 ‘뇌’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나로부터 뇌를 해방시켜라 결국 나를 의식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하지만 왜 이런 현상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고 일부 사람들에 한해서만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일까? 그를 위해서는 ‘내’가 ‘뇌’를 방해하는 사례를 먼저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2000년 PGA투어에 데뷔한 탱크 최경주는 성적 저조로 퀄리파잉 스쿨을 치러야 했다. 퀄리파잉스쿨이란 PGA 진출권이 걸려 있는 대회로 일명 ‘지옥의 레이스’라고 불릴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신실한 기독교도인 최경주는 이 날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실력이 아니라 자꾸만 성적에 집착하는 자기 모습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교회를 찾아가서 “주여, 제가 타수를 생각하며 치지 않게 하시고, 제 마음을 비우고 치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다. 마음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달라고 말한 점에 유념하자. 

   한편 미국 메이저리그베이스볼에서 뛰고 있는 한국인 타자 추신수도 성적 부진으로 마음고생을 할 때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사실은 잘 아는데 그게 잘 안 된다.’고 말했다. ‘나 때문에 팀이 졌다, 나 때문에 아내가 고생한다, 내가 그들을 실망시켰다’

   그런 생각들이 마음을 괴롭히기 시작하면 야구공이 골프공처럼 작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스타 플레이어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일어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를 의식하는 순간 다음과 같이 위축되고 소심해지는 것이다. 

‘잘해야 해, 사람들이 보고 있어,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두려워, 나는 패배자야, 나는 끝났어, 도망치고 싶어’ 

하는 생각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뇌는 ‘나’에게 ‘나쁜 기억’이라는 신호를 보내오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꾸 ‘나쁜 기억’이 떠오르면 뇌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는 의미이고, 그럴 때가 바로 내가 문제를 회피하거나 상처로부터 도망치려고 할 때 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럼 이 나쁜 기억을 털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 일이 뜻대로 안 풀린 날, 어떻게 해도 방법을 찾지 못한 날, 그날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도 맛있는 줄 모르고, 예능프로를 보면서도 웃지 못한다.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뇌리에서 떠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를 떨쳐낼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지금보다 더 높은 곳에서 나쁜 기억을 바라보고, 지금이 아니라 훗날의 입장에서 나쁜 기억을 바라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보다 큰 나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 이를테면 이렇다. 조자룡은 스스로를 소개할 때 “나는 조자룡이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조자룡이다.”고 말했다. 나는”이 아니라 “내가”라는 뜻은 의미가 깊다. 바로 ‘너는 듣지도 못했느냐, 상산 조자룡이 누구인지?’ 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바로 대단한 자신감을 뜻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감히 내게 덤비지 말라’는 숨은 뜻이 숨어 있다. 
   다시 말해 조자룡은 시련이 닥칠 때마다 ‘내가 누구다’라고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넣은 것처럼 우리도 힘들고 지칠 때, 혹은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위축될 때마다 그처럼 자신감을 피력하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또 다른 방법은 바로 미래의 시점에서 오늘의 나를 바라보기 이다. 미래의 나는 분명히 지금보다 확장되고 커질 텐데 현재의 고통에 얽매여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 당대 최고의 미술가인 살바도르 달리에게 꿈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의 꿈은 살바도르 달리가 되는 것이다.” 

   바로 지금보다 더 나은 나를 향해 나가고 싶다는 뜻이다. 이렇게 미래의 나를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면 오늘의 고통이나 장애물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을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편 이 책에서는 뇌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마를 일깨워야 한다’고 말한다. 해마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꿔주는 뇌 기관. 망각되는 기억은 ‘단기기억’인데 해마가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장기기억으로 바뀐다.

   예를 들어 똑같은 책을 읽어도 누구는 저자와 대화를 나눌 만큼 깊이 이해하고 누구는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모르게 수박 겉핥기를 한다. 그 차이는 어디에 비롯될까? 바로 이 ‘해마’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다. 저자는 해마를 일깨우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위기의식, 낯선 경험, 그리고 질문이다.  첫 번째는 위기의식이다. 내일 중요한 시험이 있어 책을 보게 되면 해마는 비상모드가 되어 해마가 활발하게 활동한다. 찰스 다윈은 그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진화의 원동력은 ‘생존의 위협’에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류가 지구 위에서 번영에 성공한 이유 역시 바로 ‘위기감’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낯선 경험. 여행을 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해마가 깨어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질문이다. “나는 회의한다, 고로 존재한다.” 르네 데카르트는 자신의 철학을 펼치기 위해 모든 대상을 의심하는 방법을 취했다. 그리고 의심하는 것이 인간 존재의 본질임을 설파했다. 위기의식, 낯선 경험, 그리고 질문. 이 세 가지 마음가짐은 해마를 일깨우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 

   결론을 말하자. 사람들은 머리 회전이 둔해지는 이유로 나이와 스트레스, 피로를 꼽는다. 하지만 이 이유들은 과학적으로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한다. 뇌는 잠을 잘 때도 활동을 멈추지 않고, 나이가 들어도 활력을 잃지 않는다. 마치 지구가 365일 자전 운동을 하듯이 뇌는 한시도 쉬지 않고 운동을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뇌 활동이 둔해진다고 느낄까? 혹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문제는 '뇌'가 아니라 '나' 이다. '뇌'는 끊임없이 활동을 하지만 정작 '내'가 뇌의 활동을 방해한다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뒷부분에 있는 ‘책 먹는 뇌’. 정보의 흡수를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독서임을 설명하고, 독서란 세상을 다각적으로 조망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며, 배경지식을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 준다. 이 책을 통해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뇌과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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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고릴라 - 우리의 일상과 인생을 바꾸는 비밀의 실체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대니얼 사이먼스 지음, 김명철 옮김 / 김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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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고릴라 - 불완전한 인간의 인식 오류


  “우리가 사용한 ‘착각’이란 단어의 개념은 모리츠 에셔의 유명한 그림 속에 등장하는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에 비유해 생각할 수 있다. 그림을 전체적으로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계단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잘못된 점을 찾지 못한다. 일상 속의 착각도 이처럼 끊임없이 반복된다. 우리의 신념과 직관에 결함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좀처럼 생각을 고쳐먹지 못한다. 그야말로 매일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를 일상의 착각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우리는 운전 중에 후대전화로 통화할 때마다 여전히 도로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잘못 기억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역시 착각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 사람을 팀의 리더로 뽑으면서 그 프로젝트가 언제 완료될지 확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착각이다. 사실상 인간의 행동 중에 일상의 착각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분야는 하나도 없다.“ 8쪽 

   이 책은 한마디로 “눈에 보이는 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 책이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The Invisible Gorilla>(김영사)는 인간의 주의력과 인지능력에 대한 고정관념과 상식을 뒤집는다.(책 제목은 인간의 인지능력에 대한 독특하고 유명한 실험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테스트는 1분 정도가 소요되는 아주 간단한 실험으로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의 왕성한 호기심과 독창적인 통찰력으로 만들어냈다. 인간의 주의력과 인지능력에 대한 고정관념과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기념비적인 실험이자 심리학 분야에서 가장 유명하고 흥미로운 연구로 손꼽힌다고 한다.   

이 실험의 주목적은 흰 셔츠 팀의 패스 횟수가 아니다. "혹시 화면 가운데서 가슴을 치고 사라진 고릴라를 봤는가?" 신기하게도 이 실험에 참가한 국내외 참가자중 50%는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을까? 고릴라가 보이지 않도록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인식의 오류에 대해 이야기 한 책이다. 인식의 오류는 기대하지 못한 사물에 대한 주의력이 부족한 때문에 생긴 결과인데, 이것을 과학적으로는 '무주의 맹시'라고 부른다. '무주의 맹시'는 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사물이 나타나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향을 말한다. 

   실험에서는 '고릴라'가 될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교통사고가 한 예가 된다. 오토바이 교통사고자들의 대답이 “전혀 시야에 존재하지 않던 오토바이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충돌했다”는 한결같은 대답에서 무주의 맹시를 유추할 수 있다.
저자들은 당신이 눈으로 직접 보며 경험했지만, 당신이 보았다고 해서 모두 본 것은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운전 중에는 핸즈프리이건 아니건 통화를 절대 금해야한다고 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의 특정 부분을 아주 선명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당장 관심을 쏟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세상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생생한 시각적 경험 때문에 독특한 심리적 맹시 현상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대상이나 특이한 대상이 나타나면 관심을 갖게 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실제로는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일상의 착각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경험하는 착각에는 6가지 착각 즉, 주의력 착각, 기억력 착각, 자신감 착각, 지식 착각, 원인 착각, 잠재력 착각이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6가지 ‘일상의 착각’은 대부분 우리의 사소한 실수로 이어지지만, 재물이나 건강 심지어는 생명까지 위협하는 치명적인 손실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 책에서 사례로 든 내용 중에는 ‘주의력 착각’의 부족해 바로 앞의 오토바이를 못 보고 교통사고를 일으킨다거나, ‘기억력 착각’으로 무고한 사람을 강간범으로 몰아 무기징역을 언도하기도 한다. 

  6가지 착각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지식 착각’. 왜 사람들이 산 주식은 사자마자 떨어지고, 내가 팔면 신기하게 상한가를 치는 걸까? 이 책에서는 금융버블이 언제, 어떤 규모로 발생할지 알 수 있다는 생각도 지식 착각이라고 말한다. 

   흔히들 <화폐전쟁>의 쑹홍빙, <블랙 스완>의 나심 탈레브나 <위기의 경제학>의 폴 크루그먼 교수 같은 사람들이 지난 2008년 있었던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췄다고 이야기한다. 하짐나 그들이 언급한 수많은 예측 중 하나가 우연히 걸릴 것일 뿐, 정확하게 맞춘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만약 그들의 주장을 모두 종합해 본다면 ‘틀린 예측’이 열 배는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의 선구자 리처드 탈러가 한 실험을 했다. 두 사람이 A와 B 두 가지 종목으로 구성된 시장에서 100주를 가지고 25년 동안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는 모의실험 이었다. 이 실험자들은 A와 B 중 한 펀드에 주식을 모두 넣거나 A에 일부, 그리고 B에 나머지를 넣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각 펀드의 실적을 통지받고 주가 변동에 따라 주식 배분 비율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단서 조항이 하나 있는데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한 달마다, 1년마다, 5년마다’ 중에서 얼마나 자주 피드백을 받아 주식 배분을 바꿀 것인가 선택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매 달 한 번씩 피드백을 받는 실험자와 5년마다 피드백을 받는 사람을 실험했는데, 실험이 끝날 무렵 매달 피드백을 받는 사람보다 2배 이상 수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결과는 현실의 투자 결정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거래를 자주 하는 투자자는 자신이 주식에 대해 잘 알고 좋은 아이디어도 많으며, 시장의 움직임도 예측할 수 있어 거래마다 수익을 내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얻은 수익에서 거래할 때마다 드는 비용과 세금을 제하고 나니, 가장 활발하게 많이 거래한 사람의 수익은 가끔 거래한 사람의 수익보다 매년 1/3이나 적었다는 것이다. 전망 있는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것이 최고라는 금언을 실험으로 증명한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뻔한 진리를 정작 우리가 따르지 않는다는 것. 

   금융관련 용어나 개념의 표면적 의미에만 익숙할 뿐인데도 시장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펀드매니저 같은 태도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지식 착각’으로 자신과 회사를 파산에 이르게 하고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불러오기도 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일례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서브프라임 주택 담보대출이 일자리나 자산, 수입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도 돈을 빌려주는 ‘닌자론’까지 나왔다. 이러한 담보대출들을 한데 섞어 CDO라는 부채담보부 증권으로 포장되어 전세계의 투자자들에게 팔려나갔다. 하지만 나중에 CDO 판매자를 만나 상품 설명을 요구하니 하나도 모르더라는 것. 무시무시한 ‘지식 착각’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이 밖에도 사람들은 자신감 있는 의사가 능력 있는 의사이며, 자신 없는 의사는 의료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의사로 여긴다. 이것 또한 ‘자신감 착각’이다. 자신감이야말로 업무 능력, 직업적인 기량, 기억의 정확성 또는 전문 지식을 보여주는 정확한 신호라고 생각하지만 환자를 진단하면서, 외교 정책에 관한 결정을 내리면서, 법정에서 증언하면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자신감은 착각일 때가 너무나 많다. 

   승용차 사이드 미러에 적혀있는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한 말이 아닐까 싶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사이드 미러’를 보듯 해야 한다. 옆이나 뒤에 차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수단일 뿐, 보이는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일상의 6가지 착각’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예전처럼 자기 자신을 확고히 믿지는 못하겠지만, 자신의 정신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것, 그것이 더 나은 지혜를 위한 첫 걸음이 된다. 특히 투자자들이라면 자신의 판단과 투자결정에 있어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실수와 사고를 줄이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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