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 2010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작
에릭 파이 지음, 백선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유일한 벗, 고독마저 침범당한 한 사내의 이야기  



  취재차 일본을 자주 들리던 파란 눈의 한 사내는 어느 날 사건사고 기사를 보려고 신문을 읽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한다. “한 오십대 독신 남성이 부엌에서 음식물이 사라지는 걸 보고 놀랐다.” 평범한 듯 기괴한 기사의 헤드라인은 사내를 깊은 생각의 늪에 빠져들게 했다. 에릭 파이Eric Faye의 <나가사키>는, 그래서 태어났다.

  놀라운 건 작가가 ‘혼자된 자의 고독’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벽안(碧眼)의 서양인이 중년의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점은 뜨악할 만 했다. 오죽하면 책의 맨 앞장으로 돌아가기를 몇 번 저자가 프랑스인임을 확인할 정도였다.(고독을 아는 작가라면 그 역시 혼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 알 수는 없지만 몰라도 딱히 상관은 없다). 



  인간은 고독마저 친구가 되기에 결코 혼자일 수 없다. 충분히 고독을 만끽하며 생生을 흘리던 사내, 시무라 고보는 어느 날 냉장고에 변화가 생김을 감지한다. 처음엔 자신의 기억을 의식했고, 나중엔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15 센티 높이의 주스가 8 센티 정도로 줄었다는 것을 확인 했을 때(이 정도를 의식할 정도였다면 미치기 일보직전이었을 듯, 짠했다. 주인공이) 그는 두려움에 앞서 겁탈을 당한 듯 불쾌감을 느꼈다.   

 

   
 

“냉장고 속은 말하자면 끊임없이 다시 시작되는 내 미래의 동력이었다. 이어지는 나날에 힘을 줄 분자들이 그곳에서 나를 기다렸다. 가지나 망고 주스, 혹은 또 다른 모습을 하고서, 나의 내일의 세균들과 독소들, 그리고 나의 단백질들이 그 차가운 대기실에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데, 낮선 손이 임의로 선취해 나의 미래에 테러를 가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밑바닥까지 뒤흔들렸다. 그뿐 아니라 화까지 났다. 이건 더도 덜도 아닌 강간이었다.” 

 
   

    무당을 부르고 고스트버스터를 찾을 만큼 바보는 아니었던 주인공, 제 3의 눈으로 과학에 의지했다. 출근 이후의 빈 집을 여섯 개의 웹캠으로 감시했고, 며칠 후 침입자를 찾아낸다.  
한편 거의 일 년 동안 외딴 방 벽장에서 숨어 지냈던 중년의 여인의 고독은 집주인 사내의 그것과 닮았다. 거울에 비친 지금의 나 이외에는 나를 아는 이가 없는 과거는 망각의 감옥에 던져진 절대고독에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 이것 말고 우리를 근접시키는 건 없다’고 느끼며 같은 공간에서 고독했다.  

  벽장 속 여인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몇 년 전 찜질방에서 만난 중년의 사내가 생각났다. 잘 꾸려나가던 사업체가 부도를 맞자 공황상태가 되어버린 사내. 시쳇말로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려면 깊은 산 속 절을 찾는다지만, 사내는 시내 중심에 있는 입장권을 끊어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정신은 노숙자와 다름없다‘고 말한 그였지만, 몸뚱이마저 길거리에 내맡기기는 죽기보다 싫더란다. 밖을 나갔다 들어오면 또 다시 입장권을 끊어야하기에 이런 저런 방법으로 직원들의 눈을 속여 거의 사흘에 한 번 정도 밖을 나오는데 그 때만 햇빛을 볼 수 있다고 했다.(추운 겨울엔 거의 한 달 동안 두문불출한 적도 있다고 했다) 찜질방은 역전 광장처럼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만인의 공간이지만, 그에게 만큼은 자신만의 공간이고, 철옹성 같은 성이었다.   

  그 사내와 내가 알게 된 것도 내가 그의 자리(영역)를 ‘침범하면서' 였다. “찜질방에 니 자리, 내 자리가 어딨냐?”고 언성을 높이다가 끝내 그의 공간임을 ‘인정’하고 말았다. 그 날 사내에게 나는 ‘벽장속 여인’을 만난 기분이었으리라.

 적지 않은, 아니 꽤 많은 사람들이 찜질방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소줏잔을 기울이다 갑자기  "이렇게 많은 사람 가운데 외로움을 느껴본 적 있어?“ 웃어버린 그. 씁쓸한 웃음 뒤에 던지는 농담 같은 고백이 잊혀지지 않는다. 

  고독에 익숙해지면 타인은 시끄러운 잡음이자 방해꾼이 된다. 계속 ‘혼자’ 살고 있었다고 느꼈던 사내 시무라는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분노하게 된다. 스스로의 판단과 믿음조차 의심하게 되어버린 그. 제 3의 눈인 웹캠으로 그녀를 발견했듯이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되었다. 그는 재판장에서 이렇게 말하며 화를 냈다. “이젠 도무지 내 집에 있는 것 같지가 않아요.” 

  그의 분노를 이해할 법했다. 소설 뒤에 남겨진 벽장 속 그녀의 사연과 편지는 군더더기일 뿐.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구차한 변명이나 나와는 상관없는 그녀만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끝내 집을 팔기 위해 내놓고 살 곳을 이동해 버린 쉰여섯의 사내의 근황이 계속 궁금해지는 건 그 속에서 찜질방의 사내가 보였고, 그 나이 즈음이 된 미래의 내가 같은 고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슬픔 때문이다. 나만의 내 집에 누군가가 있었음을 알고 난 후 사내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나에겐 고독한 사내를 만난 오늘밤이 불면의 밤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서바이벌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관음증이 만든 핫hot한 소설!


 

  TV 프로그램 중에 ‘몰래카메라’라는 게 있었다. 스타를 데려다 황당한 사건과 에피소드로 장난을 치고는 그들이 놀라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담은 쇼 프로그램. 일요일이면 ‘누가 어떻게 당할까’ 기대하며 나는 TV 앞에 앉았고, 예의 한 두 시간 스타를 골려먹는 짓에 가담한 듯 희희낙락하던 때가 있었다.

 같은 맥락으로 영화 중에는 ‘트루먼 쇼’가 있다. 시청자들이 아예 한 사람의 생활을 ‘몰래 카메라’로 들이댄 설정이다. 1998년 당시만 해도 ‘트루먼 쇼’의 각본은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하지만 대단히 놀라운 설정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는 시청자들의 모습에서 미디어와 대중이 지닌 관음적 폭력성에 대해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오늘날은 변해 나 자신의 사생활도 언제 표적이 되어 인터넷에 공개될지 모르는 세상이 도래했다. 몇 걸음 가지 않아서 어딘지 모를 곳에 설치된 CCTV에 내 모습이 담기고(누가 보고 있을까?), 유희거리를 찾는 방송국 카메라를 대신해 시청자들이 직접 휴대전화에 부착된 카메라로 수많은 눈이 되어 주변에 번뜩이며 무료로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그들은 왜 담고 있을까?). 그리고 인터넷은 스타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사생활까지 모조리 쓸어 담아 세상에 뿌리고 있다.  

  나아가 이제는 각종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평범한 일반인들이 ‘스타되기’라는 명목으로 보여주기를 스스로 자처하며 카메라 앞에 서는 세상이 되고 있다. <헝거 게임Hunger Game>(북폴리오)같은 소설이 나온 것도, 그리고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이유도 관음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 때문일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라고 해 두자. 북미라는 대륙이 잿더미가 된 뒤 들어선 판엠은 캐피톨이라는 빅 브라더 같은 존재 아래 열세 개 구역이 주위를 둘러싼 나라다. 어느 날 열세 개의 구역이 판엠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고, 모두 패했다. 심지어 열세 번 째 구역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헝거 게임Hunger Game은 그런 암흑기를 기억하기 위한 일종의 계몽 이벤트다. 


  각 구역마다 남녀 청소년 각각 두 명이 ‘조공인’으로 선발되어 한 사람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이는 게임. 그리고 최종 생존자가 남을 때까지의 전 과정은 TV로 방송되는 리얼 서바이벌 게임이다. 우승자는 스타가 되어 평생 굶주림 없이 편히 살게(소설의 제목에 유념하자) 되고, 우승자가 탄생한 구역은 다른 구역 주민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동안, 고급 식량을 선물 받는다.  

  “각 구역에서 아이들을 데러가 서로 죽고 죽이게 하고,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 비해 얼마나 무력한지, 다시 한 번 반란을 일으켰을 때 우리가 살아남을 확률이 그 얼마나 희박한지 일깨워주는 캐피톨의 방식이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간에 진짜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명확하다.  

  “똑똑히 봐둬. 우리가 너희 아이들을 데려다 희생시켜도.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너희들을 마지막 한 명까지 박살내버릴 거야. 13번 구역에서 했던 것처럼 말이야.”“ 

  관음을 즐기는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지극히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설정에 읽기를 거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본성 때문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TV 앞에서 선 열 두 구역의 누군가가 되어 캣니스의 승리에 열광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나와 같은 권력에 복종하는 평민이고 일반인이었고, 마침내 현대인의 영웅, 스타가 된다.

  또 하나 매력인지 마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관객이 되어 참여하게 한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돈을 지출하며 스폰서가 되어 헝거 게임의 참여자들을 후원하는 시스템은 팬들의 스타 만들기와 다름없다. 독자로 하여금 가능하다면 후원하고 싶도록 만든다. 또한 그것을 은근히 의식하며 때로는 연출하는 주인공의 심리도 엿보게 된다. 발칙한 소설이 아닐 수 없다. 

  늘 그렇듯 결말이 뻔한 스토리지만 그 속에는 늘 같은 무게의 묵직한 카타르시스가 들어있다. 소설의 흥행요소를 모두 갖춘 전형적인 소설, 컨텐츠는 원소스 멀티 유즈로 활용되고 있다. 소설의 흥행은 영화로도 이어져 현재 한창 제작중. 그 때를 참지 못한 독자들은 자체적으로 팬메이드 무비fan-made movie를 제작해 유투브에 올리고 있다. 헝거 게임에 몰입하고 열광하는 독자들을 짐작케 한다.  

  이 소설은 단편이 아닌 3부작. 스타가 된 우승자 캣니스의 앞날은 그녀를 마득찮게 여기는 대통령의 시기에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또한 함께 참여한 12구역의 남자 조공인 피타와의 로맨스는 그림자 같은 오랜 친구 게일과의 삼각관계를 예고하고, 캣니스는 구역인들에 의해 우승자에서 영웅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 스티븐 킹은 이 책의 ‘강한 중독성’을 추천했고, 트와일라잇의 스테프니 메이어는 ‘헝거 게임’만이 가진 ’매력’을 칭찬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현대인의 관음증을 한탄하면서도 온라인 서점에서 2권 주문을 서둘렀다. 이런 아이러니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다.'고 할 밖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의 생각을 훔치다 - 박경철 김창완 최범석 용이… 생각의 멘토 18인
동아일보 파워인터뷰팀 지음 / 글담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내러티브가 있는 수필 같은 인터뷰집


 

  “동시대 사람의 얘기를 듣고 글로 남기는 것만큼 인문학적인 게 어디 있습니까?”  인터뷰어 지승호의 한마디 짜리 '인터뷰 예찬'이다. 생각해 보면 인터뷰처럼 애매모호한 장르가 또 없는 것 같다. 대화상대의 말을 온전히 받아적은 대필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자가 제 생각을 오롯이 담았다고 하기에도 뭐한...말 그대로 애매모호하다. 하지만 산해진미에 쌀밥이 없으면 안되는 것처럼 모든 장르의 글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글이 바로 인터뷰다.

  특히 사실을 담은 글에 있어 인터뷰의 중요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정확하고 알찬 뉴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터뷰 과정은 필수. 취재원인 당사자에게 가장 자세하고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글'은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으로부터 좀처럼 대우를 받지 못한다. 그건 왜 일까?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몇 마디 질문으로 캐내 글로 옮겨야 하는 이 일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 이라 글쓰기가 결코 쉽지 않다. 설령 어렵사리 글을 썼다고 하더라도 글(기사)이 나간 후 인터뷰를 한 사람, 즉 인터뷰이들이 '진의가 왜곡되었다'며 항의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어디 그 뿐인가. 비슷한 이유(인터뷰 함부로 하면 안된다)로 인터뷰이의 섭외도 어렵다. 

  최근 인터뷰 책이 쏟아지고 있다. TV의 어느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핫 이슈가 되는 '인물人物'들이 출연해 인터뷰를 해서 인기를 얻더니 신문 매체 할 것 없이 당사자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대담 형식의 글'이 늘었다. 급기야 단행본도 늘고 있다. <그들의 생각을 훔치다>도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좀 특별했다. 


  이 책은 세 명의 동아일보 파워인터뷰팀이 인터뷰를 한 열 여덟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매체들의 형사의 취조 같고 녹취록같은 인터뷰 기사에 정나미가 떨어져 이런 글을 읽는 것을 일부러 피했었는데, 평소 좋아하는 '시골의사 박경철'의 인터뷰가 책의 가장 먼저 들어 있어 처음 몇 장을 펴다가 마지막장까지 읽어 버렸다. 세 명의 인터뷰어 중에서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PART 1' 강렬한 자극으로 자신을 바꾸고 싶을 때'를 쓴 인터뷰어가 가장 인상적이다(그 중에서 박경철과 김창완은 정말 최고 였다).

  인터뷰어의 질문은 전혀 보이지 않고 내러티브, 즉 인터뷰이와 함께 한 현장과 순간에 치중한 이야기가 대신했다. 대략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내게 닿지 않는 것에 갖는 선의',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의'를 달리 표현하면 학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습'이다. "아기 새가 어미 새가 나는 것을 보는 것을 배움學이라 하고, 아기 새가 날 수 있을 때까지 수 백 번 반복하는 것을 익힘習이라고 한다."는 시 구절처럼 배움은 익힘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다. 그는 '습'에 매우 충실한 삶을 살아왔다. 그의 관심사는 미추美醜와 호오好惡를 가리지 않는다. 대신 단순히 소비할 것이 아니라면 철저히 연구해 반드시 정복한다. 그가 낚시에 입문한 과정은 '습'에 대한 그의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30대 초반 대전에서 고용의사를 하던 무렵이에요. 금강에서 누군가 대낚시로 잉어를 잡아 올리더군요. 저도 꼭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곧장 '찌맞춤의 원리' 등 10여 권을 사고 낚시 전문지 구독을 신청했어요. 빨간 줄 그어가며 이론서들을 독파한 거죠. 낚시의 원리를 깨우치고 나서야 낚시대를 구입했어요."
  얼마 동안의 인터뷰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얼마나 흥겨운 인터뷰 였을까 짐작하고 남는다. 책에서 인터뷰어는 귀를 열고 말동무가 되고, 또한 그(인터뷰이)가 되었다. 그리고 귀로 들은 이야기를 녹이고 내 생각을 담아 종이에 내려앉혔다. 함께 했더라면 좋았겠다 싶었다(인터뷰 글에서 이보다 더 나은 칭찬은 없으리라).  

  가수 김창완, 패션 디자이너 최범석, 수학자 김정한, 배우 안성기, 공무원 김가성 등 이어지는 인터뷰를 통해 배우고 얻는 것은 습習이란 무엇인가, 죽을 힘을 다해 배반할 것, 자학, 사랑, 한결같이! 와 같은 한 가지 화두들이었다. 화두를 받아들임은 둘째였다, 글맛에 취해 part 1 거듭 거듭 읽어야 했다. 글 속에서 리드하는 인터뷰어의 이야기는 옆에서 듣는 듯 했고, 인터뷰이들의 명쾌한 답변들은 빛을 발했다. 

  일본에서 지의 거장으로 알려진 논픽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의 인터뷰 에피소드 중에 '한 번의 인터뷰를 위해 60만 엔어치 책을 구입해 읽어가며 준비를 해서 인터뷰했더니 원고료가 60만 엔이더라'는 말은 꽤 유명하다.

  인터뷰에 임하는 인터뷰어의 자세를 잘 말해 주고 있는데, 인터뷰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열린 귀'와 '열린 질문'일 것이다. 익히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독자보다 못한 멍청이'가 되어 “그 이야기부터 해주시죠.” “제가 그 부분을 잘 몰라서요.” “그게 어떤 모양이었나요?”와 같은 질문으로 상대방이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내도록 유도해야 편하게 대답을 할 것이고, 기대 이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인터뷰들을 보면 '아는 체'를 하는 인터뷰어들이 많다. 그래서 질문을 하는 것인지, 인터뷰이에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것인지 헛갈릴 정도이다. 인터뷰 <그들의 생각을 훔치다>는 수필 같은 인터뷰 글의 진수를 보여준다. 최근 읽은 몇 권의 인터뷰 책중에서 으뜸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프라인 비즈니스 혁명 - 제조, 유통, 서비스의 미래 미래 비즈니스 키워드 4
정지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바일 스마트 혁명이 가져올 전통산업의 미래

  SF소설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은 "미래는 이미 우리가 사는 이곳에 존재한다. 다만 널리 확산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 미래도 살고 있다. 다시 말해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 내가 아는 세상은 현재가 되고,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세상은 미래가 되는 셈이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세계를 알게 되는 순간 미래는 현실이 되는 세상,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소셜 웹의 급속한 보급은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실시간 생활을 가능케 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공존감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제 미래는 노스트라다무스와 같은 예지력이 아니라 검색 능력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산업이 IT를 만나면서 펼칠 미래를 전망한 책 <오프라인 비즈니스 혁명>(21세기북스)도 그 결과물이다. 



  저자 정지훈은 현재 미래 칼럼니스트로 활약 중이다. ‘하이컨셉’이라는 닉네임으로 잘 알려진 파워블로거이기도 한 그는 지난 해 <제 4의 불>과 <거의 모든 IT의 역사> <아이패드 혁명>등을 내면서 IT업계와 미래 비즈니스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는 다가올 미래에 대해 ‘그동안의 10년이 IT가 만든 디지털 혁명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전통산업과 IT가 만나 비용 절감과 시공간 단축이 실현되는 제2의 산업혁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과거 에너지와 내연기관에 의한 생산성의 혁신은 철도 등의 교통인프라를 만들었고, 이것이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이끌어내는 인프라 역할을 했다는 것에 주목하고, 최근의 인터넷, 모바일, 소셜 웹, 스마트폰, 클라우드 등도 그러한 인프라로 작용해 파생혁신을 일으킬 거라고 보았다. 

  지난 해 필자는 저자와 함께 공동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는 강연에서 매일 새벽에 기상해서 즐겨찾기를 해 두었던 세계 주요 신문과 기관의 뉴스들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두 시간에 걸쳐 관련글을 쓴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사실은 트위터에 매일 올리는 그의 트윗을 살펴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가 매일 아침마다 살핀 미래의 총합인 셈이다.  

  우선 저자는 미래의 경제학을 나노nano(10억분의 1)의 개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수많은 개개인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재화, 노하우 등을 진보한 인터넷 환경과 기술 플랫폼들을 통해 프로슈밍prosuming함으로써 개개인의 역량이 모여 엄청난 결과를 만드는 매시업Mashup 등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량생산, 대량판매의 매스경제에서 아주 사소한 특정 소비자들이 주역으로 부상되는 나노경제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고 해서 나노경제학이라고 불렀다.     소비자 경험이 참여로 이어지는 프로슈밍과 오프라인에서는 결코 불가능한 롱테일, 그리고 웹상에서 소비자들이 직접 일으키는 일련의 입소문은 기업의 마케팅과 영업활동을 대체하는 바이럴 현상은 나노 경제학을 가능케 하는 세 가지 주요원칙이다. 프로슈밍이 전통적인 소비자와 공급자의 시각과 역할의 새로운 원칙이 된다면, 롱테일과 바이럴은 각각 유통, 시장과 광고, 마케팅의 새로운 원칙이 된다.  

   
  “나노경제학을 굳이 표현하자면 아마도 ‘롱테일 경제학+바이럴 경제학+링크(네트워크)의 경제학+매시업 경제학+알파’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중략) 소비자 중심의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이러한 나노경제학의 중요성을 배가시키고 있다.” 27쪽  
   

   이 책은 나노경제학을 기반으로 소셜 커머스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유통산업의 부상과 나아가 전통 서비스 산업과 경영방식의 변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폈다. 그 중 저자가 주목한 것은 ‘비용 절감’과 ‘시공간의 단축’, 바로 전통산업이 핵심가치로 여기는 부분이다. 저자는 세계에서 이미 적용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우리에겐 다가올 미래가 된다)를 통해 제조, 유통, 광고, 마케팅, 그리고 기업 경영 전반에 IT기술이 적용될 때 ‘비용 절감’과 ‘시공간의 단축’이 이뤄지는지를 보여준다.  

중국 소규모 공장들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든 알리바바, 버스를 개조해 점포로 만드는 햄버거 업체 4food.com, 위치기반 서비스인 포스퀘어를 활용한 뉴욕 패션위크의 특별한 이벤트, 최근 새로운 광고툴로 자리매김한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 등 주제별로 소개되는 다양한 사례들은 그 자체로 재미있고 유익했다. 

 미래학자답게 저자는 각각의 사례마다 QR 코드로 볼꺼리를 제공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더욱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변화하는 미래에 대해 기업경영은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해야 할까? 저자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눴다.   

 

   
 

1. 총체적 품질관리에서 총체적 경험관리의 시대로 전환하라.

2. 브랜드 관리, 제품이 아니라 사용자 혁신 플랫폼이다.

3. 기업의 내 외부 모두 소통이 적극적인 형태로 변화시켜라.

4. 작은 기업을 만들어 변화에 빠르게 즉응하고 협업이 가능하게 하라.

5. 보호와 관리하기보다는 혁신하고 외부와 협업하라.

 
   

책 전반을 통해 실감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이미 ‘신뢰와 경험경제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다양한 IT 기술을 통해 사실과 정보를 보다 빠르고 생생하게 전하려고 하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실제로 보고 만지듯 경험하게 하고자 함이다. 그래서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충분히 인지한 소비자가 구매욕을 일으키는데 목적이 있다.   

  여기까지의 과정이 ‘소비자를 어떻게 유혹하는가?’였다면 이제부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소비자를 끝까지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일 것이다. 저자 역시 ‘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소비자를 기만하고 얄팍한 속임수로 돈을 거두려 한다면 통하지 않을뿐더러, 진정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과 기업은 일반 대중에게 외면 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산업의 미래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QR 코드에 숨은 사례 속에서 당신이 찾던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 아이디어를 만날지도 모른다.  

 

이 리뷰는 여산통신에서 발행하는 출판전문잡지 [라이브러리 앤 리브로](2011년 5월호)  

<파워블로거 '리치보이' 김은섭의 경제경영서 읽기>에 실린 칼럼 원고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온워드 Onward - 스타벅스 CEO 하워드 슐츠의 혁신과 도전
하워드 슐츠 & 조앤 고든 지음, 안진환.장세현 옮김 / 8.0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변화무쌍한 21세기에서 위기에 빠진 글로벌 기업이 살아남는 법! 

 

  프랜차이즈업을 시작한 2년차인 1999년 여름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신화>를 읽으며 그 놀라운 성공스토리에 흥분되어 밤을 새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때 몇 명의 투자자와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업체 후터스와 벤 앤 제리 아이스크림을 국내로 들여오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던 때였는데, 이 책을 덮은 다음 날 나는 회의를 소집해 ‘스타벅스Starbucks’를 소개하며 국내에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본사에 연락해 보니 그 때는 이미 ‘신세계’와 자본금 100억 원씩을 투자해 ‘스타벅스 코리아’를 설립한 상태, 명동점 오픈을 앞둔 상태였다. 그 날 후로 나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심순애를 빼앗겨버린 이수일의 심정이 되어 거의 한 달 동안 심하게 낙담했다. 이후 ‘스타벅스’는 놓쳐버린 정말 아까운 ‘남의 떡’(떡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았겠지만)이 되었다. 

  그만큼 스타벅스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불어 스타벅스 코리아를 함께 설립한 ‘신세계의 혜안‘에도 큰 인상을 받았다. 그 후 오늘날까지 스타벅스는 트렌드를 보는 나의 안테나 속에 자리잡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스타벅스는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한마디로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거대한 공룡’ 느낌이 가득했다. 국내에서 외화유출로 비춰진 로얄티 문제라든가, 메뉴판에는 없는 숏사이즈 컵 문제, 심지어 된장녀의 필수 아이템에 이르기까지 국내 커피전문점으로 인한 문제점에는 항상 스타벅스가 들어 있었다. 국내 커피전문점 1위 업체이기에 어느 정도 ‘구설수’는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점들이 생길 때마다 나를 ‘뜨악‘ 놀라게 한 것은 답답할 정도로 늦고 미흡한 스타벅스의 대응이었다. 왜 일까? 무엇 때문일까? 내가 책<온워드Onward>를 집어든 이유는 바로 그 궁금증 때문이었다. 

 

 
  이 책은 스타벅스의 CEO인 하워드 슐츠(조앤 고든이라는 기자가 공저했다)가 CEO로 복귀한 최근 2 년의 스타벅스 재기再起를 이야기하고 있다. 전작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신화>에서 집 그리고 직장과 함께 ‘제 3의 공간‘으로 만들면서 스타벅스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창조적인 시각‘에서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책 전체를 아울러 새로운 디자인의 로고(잘 살펴보면 왼쪽 밤색의 로고는 울퉁불퉁한 수채 그림이다. 마치 냅킨 위에 묻은 커피잔 자국 같다)와 함께 '혁신과 리뉴얼‘을 외치며 스타벅스가 다시 태어났다고 강조하고 있다. 

 경영자(CEO)에게 자서전을 쓰는 일은 영화 ‘풀몬티’처럼 어려운 일이다. 성공스토리를 썼다고 하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자랑해야 하기에 솔직하게 털어놔야 하고, 순수한 자서전이라고 한다면 ‘과연 내가 자서전을 쓸 만한가?’ 하는 적당한 ‘염치(廉恥)’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자서전’에 대한 국내 시장의 생각이다. 

  외국의 기업가들은 자서전을 통해 ‘CEO로서의 자신과 기업을 널리 알리는 수단’으로 잘 활용된다. 미국의 경우는 이 책처럼 소비자와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활용되는 경향이 크다. 한편 일본의 기업가 자서전은 자사 임직원과 후학(後學)으로 대변되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담아두었던 말을 유언하듯 내 놓는다(마츠시타 그룹의 마츠시타 고노스케, 교세라 그룹의 이나모리 가즈오가 대표적이다).

  반면 국내 기업가들의 자서전을 읽다가 보면(눈을 씻고 살펴봐도 일 년에 몇 권 나오지도 않지만 - 그 이유도 궁금하다. ‘업무에 몰두하느라 바빠서‘라는 궁색한 변명이 아닌 솔직한 대답이 듣고싶다) ‘저자의 자화자찬’이 거의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책을 낸 아무런 목적이 없는 글, 그래서 아무도 감동시킬 수 없는 글들이다. 독자들은 기업의 총수 혹은 CEO의 이야기라고 해서 신문이나 언론에서 만날 수 없었던 솔직하고 유익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싶어서 책을 집어든다. 하지만 ‘모두 저 잘나서 회사가 잘 되었다’는 식이니(뒤집어서 본다면 CEO가 없어진다면 그 회사는 망한다는 말인가?) 실망스러울 밖에. 



  그 점에서 하워드 슐츠의 이번 책은 다분히 전략적이다. 그는 현재 전 세계를 돌며 이 책에 대한 '북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북미 지역 10개 도시와 캐나다 토론토 및 중국 상하이를 거쳐 내일(27일) 방한해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는 저자겸 스타벅스 CEO로서 스타벅스가 있는 나라들을 돌며 저자 강연과 사인회를 통해 자신의 책과 스타벅스를 알리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그는 국내에 도착해서 덕수궁 내 '정관헌靜觀軒(1900년경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궁중 건축물로 특히 고종 황제가 외교 사절들과 커피를 마시며 환담을 나눈 공간)'에서 언론 대상 브리핑 행사를 열고, 교보문고 저자사인회와 연세대 강연 등을 벌일 예정이다. 내일 그의 행보에 언론과 미디어가 주목할 것은 뻔한 일, 아무나 할 수 없는 얄밉도록 멋진 기획이 아닐 수 없다. 국내 CEO들이 자서전을 쓸 때 꼭 배워야 할 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을 살펴보자. 1982년 9월 7일, 미국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스타벅스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하워드 슐츠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본 아담한 커피바에 반해 1986년 ‘일 지오날레Il Giornale’를 창업해 작은 성공을 거둔다. 그 후 몇몇 투자자의 지원으로 1987년 일 지오날레와 스타벅스를 합병해 스타벅스 커피 컴퍼니를 설립했다. 그리고 2010년 가을 현재, 스타벅스는 창업 40년 만에 연매출 100억 달러, 54개국 1만 6,000여 개의 매장에서 20만 명의 파트너들이 매주 6,000만 명 이상의 손님을 맞는 거대기업의 성장했다. 

  창업에 성공한 하워드 슐츠는 2000년 CEO에서 물러나 이사회 회장직에 있으면서 글로벌 전략과 사업확장에 집중하며 스타벅스의 매장 수를 늘리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2007년, 스타벅스의 매출 기록행진이 멈추고 하향세에 접어든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끝없는 추락의 악몽을 겪게 된다.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성장에만 집착한 나머지, 기업의 핵심 가치는 점점 놓치고 있었다. 이는 결코 누군가 한 사람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다. 실오라기 하나가 느슨해져 스웨터 전체가 풀어져버리듯,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손실이 커져갔다. (중략)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부의 상황들마저 회사 내부의 문제들을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특히 당시 불어 닥친 세계 금융 위기는 신용 위기와 주택 시장 붕괴, 높은 실업률을 촉발시켰고 결국 전 세계가 불경기의 늪에 빠지게 됐다. 이와 동시에 소비자의 행동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은 커피 한 잔을 위해 지갑을 여는 일에도 신중을 기하기 시작했다.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환경을 의식하며, 윤리의식을 중시하는 등 정신적인 가치에 비중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뒤집어진다 할 만큼 빨라진 세상의 변화가 주요원인이었다. 스타벅스가 전 세계 54개국으로 지점을 넓히는데 주력하는 동안 스타벅스는 정지된 반면 세계 경기가 바뀌었고, 소비자가 바뀌었다. 그리고 스타벅스의 성공을 쫓아 미투me-too 개념으로 등장한 후발업체들의 무서운 추격이 뒤따랐다. 무엇보다 21세기의 10년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혁명’에 스타벅스는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그에 대한 하워드 슐츠의 답변은 인상적이다. 

  “디지털 혁명 역시 우리에게 위기를 가져다 준 결정적인 계기였다. 정보가 흐르는 방식에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온라인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가 급증하고 블로고스피어가 출현했다. 이제 전 세계인들은 실시간으로 막대한 정보와 의견을 교환한다. 이는 어느 특정 지역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일어나는 움직임 하나하나가 순식간에 전 세계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가 40년 동안 지녀왔던 핵심가치 즉 ‘사람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스타벅스 정신’의 본질이 사라졌음을 직감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리스타가 있는 안쪽에서부터 풍겨나는 갓 볶은 커피향, 몸을 감싸는 푸근한 공기, 그리고 자연스레 미소를 짓게 하는 바리스타들의 친절한 대화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타벅스에 실망한 누군가의 말처럼 ‘커피계의 맥도날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의 선택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밀라노 ‘커피 바’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을 그대로 옮기고자 창업했던 일 지오날레의 시절로 돌아가고자 했다. 

  “일 지오날레는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커피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는 고객들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생활하는 데 활력소가 될 최상의 커피와 그에 관련된 상품을 제공합니다.

또한 진실한 마음으로 고객의 삶을 충만하게 이끄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며, 이익만을 위해 윤리와 진실성을 희생시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일 지오날레는 커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을 것이며, 모든 매장에서 품질과 성과 가치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고객의 존경과 사랑을 얻게 될 것입니다.“

  CEO로 복귀한 하워드 슐츠가 가장 먼저 스타벅스의 영혼, 즉 핵심 가치를 해치지 않으면서 변화를 시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혁신이었고, 그 모델은 비틀즈였다. 그리고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들을 걸러줄 필터로 세 가지를 선택했다. 이것은 바로 새로운 핵심가치인 셈이다.


 

첫째, 스타벅스 파트너들에게 우리의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을 안겨주는 것인가?

둘째, 스타벅스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것인가?

셋째, 고객의 머리와 가슴 속에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강화시켜주는 것인가?



그들이 찾은 비전은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고 존경받는 브랜드의 하나로서 인간 영혼을 고취하고 자양분을 공급하는, 영속적이고 위대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전을 이루기 위해 일곱 가지 혁신 운동을 확립했다. 

 

1. 논의의 여지가 없는 커피 권위자가 되자.

2. 우리의 파트너들을 고무시키고 참여시키자.

3. 고객들과의 감정적 교감에 불을 지피자.

4. 각 매장을 해당 지역의 중심으로 만들자.

5. 윤리적 원두 구매와 환경적 영향의 리더가 되자.

6. 우리의 커피에 걸맞은 혁신적인 성장 기반을 구축하자.

7. 지속 가능한 경제 모델을 제시하자.

  이러한 혁신 운동의 일환으로 베스트셀러인 파이크 플레이스 로스트 블랜드를 출시했고, 보다 훌륭한 맛을 제공하는 탁월한 에스프레소 기계인 마스트레나로 교체했으면,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기존의 덩치 큰 커피머신을 버리고, 작은 커피머신 클로버로 교체했다.  한편 고객을 위한 보상프로그램으로 로열티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회원들의 제안과 아이디어를 모으는 온라인사이트인 마이스타벅스아이디어닷컴을 설립했다. 그리고 활발한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사업을 통해 24시간 고객과 함께 하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자 했다. 그 밖에 펼친 다양하고 많은 활동과 마케팅은 세계 커피전문점 재탈환을 위한 고군분투였다.

책 제목이기도 한 온워드Onward는 미래에 대한 스타벅스의 다짐이자 결의다. 하워드 슐츠가 경쟁사와의 전투에 임하는 전투태세였다. 

  “온워드Onward는 핵심 가치와 초심을 잊지 않고 미래에 집중하는 긍정적인 태도로 나아가는 끝없는 여정이다. (중략) 온워드Onward는 손이 진흙으로 더러워지더라도 결국은 깨끗한 순백색의 결말을 맞는 것, 주주에 대한 책임과 사회적 의식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그 무엇이다. 온워드Onward는 스타벅스가 가혹한 시련을 극복하고 번영하기 위한 섬세한 균형을 뜻한다.”

  이 책을 통해 살펴본 스타벅스의 제2의 도약 이야기는 속도와 변화의 21 세기에 있는 글로벌 기업과 국내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지난 세기를 주름잡았던 글로벌 기업들의 흥망성쇠를 조망해보면 놀랄만한 성장에 취해 잠시 자만하고 나태하다가 위기가 찾아왔는데 비해 스타벅스의 침체는 놀랍게도 세계 속에 지점을 심는 양적 규모의 확장 속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간과한 것은 ‘디지털 혁명의 도래’와 ‘소비자의 욕구의 변화’ 였다. 여타 기업들 역시 ‘우리는 그들에 잘 대응하고 있는가’ 점검해야 할 것이다. 스타벅스의 오늘과 내일이 궁금하다면 일독할 만하다. 특히 디지털 혁명의 21세기에 들어 글로벌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을 살펴야 할지 참고하기 좋은 본보기가 된다. 

P.S. -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스타벅스가 이미 제 2의 도약에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거의 매일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나로서는 여전히 그의 말에 공감하기 힘들다(아마도 미국에 있는 고객과 투자자들에게 호소한 말일 것이다). 글로벌 스타벅스 컴퍼니는 44%의 순이익을 남기며 성공했다고 하지만 국내의 스타벅스에서는 맛과 서비스에 있어 예전에 비해 탁월하게 바뀐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미 시장에는 커피 전문업체들이 즐비하게 쫓아 오고 있고, 가격과 품질 면에서 스타벅스보다 더 나은 평가를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는 업체들도 생겨났다. 과연 스타벅스가 재기에 성공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얼마의 기간 동안 유효할 수 있을까?

  하워드 슐츠가 이번에 시장 재탈환을 위해 들고 나온 카드 중에는 스타벅스의 인스턴트 커피 '비아Via)'와 캡슐 커피가 있다. 원두커피는 미국에서만 연간 650억 잔의 커피 가운데 고작 4% 정도 밖에 되지 않기에 인스탄트 커피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함으로써 시장을 확대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일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번 방한에서도 스타벅스의 인스탄트 커피의 한국 출시에 대한 논의가 있을거라는 언론의 전망이다. 스타벅스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주목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