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 밀레니엄 (뿔)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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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전 '밀레니엄'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시되었던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들이 새로운 출판사를 만다 다시 빛을 보고 있다.

 마치 소설이나 영화처럼 원래 10부작을 계획했지만 갑작스런 사망으로 3부작만을 만들고 저 세상을 떠난 '스티그 라르손'. 그리고 장난처럼 끼적이던 소설들이 북유럽을 비롯한 33개국에 약 5,300만부라는 경이로운 판매를 기록하며 지구반대편을 뒤흔들었다. 국내 출간 당시 사실혼의 아내와 부친과 인세를 두고 법정다툼이 있다고 들었는데, 결국 아버지에게 돌아간 듯하다. 누가 막대한 인세를 받았건 독자에게는 관심밖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이 소설이 '정말 엄청나게 재미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지난 주 개봉한 <제인 에어>를 빼고는 요즘 볼 영화가 마땅하지 않다. 줄거리가 뻔한 어설픈 영화를 보느니 맛난 커피 한 잔 사서 편안한 카우치에서 밀레니엄과 같은 멋들어진 소설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지...늘 하는 말이지만 책에 몰두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제일 아름답다(반면 책에 몰두한 남성은 어떤지 여성들에게 묻고 싶다. 아내는 매일 보는 모습이라 별로란다. 헐~).  -Richboy

 

참고로 지난 2008년 이 소설 시리즈의 1 부를 읽고 내가 쓴 리뷰를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시간을 잊게 만든 최고의 X등급 추리 스릴러소설 !

  한동안 즐거웠다. 유난히 더운 더위와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 16일을 환호하며 열광했던 북경올림픽을 보며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집합(集合), 기억(記憶), 광희(狂喜) 로 이어지는 채 끝나지 않는 폐막식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하나. '이젠 뭘 한다지?'...

  다행히 그 열광은 오늘까지 계속되었다. 섬뜩하게 쳐다보는 여자아이 그림의 심상치 않은 책 표지에 끌렸고, 지금까지 전유럽을 1,000 만 부를 눈앞에 둔 경이로운 숫자로 팔리면서 '어른들을 위한 해리포터'라고 불릴 만큼 놀라운 책이라는 소개글에 기꺼이 서재에 꽂게 만든 책을 지금까지 읽었다. 

"일요일 저녁에는 [밀레니엄]을 읽지 마라. 뜬눈으로 월요일 아침을 맞고 싶지 않다면." 이라고 언급했던 어느 프랑스 독자의 경고를 미쳐 알지 못했다. 폐막식이 끝난 바로 직후 읽기 시작했고, 난 월요일을 뜬눈으로 하얗게 지새워야 했다. 스티그 라르손Stieg Larsson 의 책, [밀레니엄I] 원제목은 les hommes qui n'aimaient pas les femmes (Millénium, T1) (Paperback)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상,하)이다.

  놀라운 작품에 어울리게 작가의 이력 또한 기이하고 신비롭다. 이 작품은 저자인 스티그 라르손의 데뷔작이자 유작인데, 2005년부터 3년 동안 세 편의 시리즈로 [밀레니엄]을 발표했다. 3부 집필을 마치고 12일 후 2004년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2005년에 출간되면서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했는데, 그 인세는 32년을 함께 한 동반자인 그의 아내에게 전해지 못했다는 것. 법적 혼인관계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아버지와 형제에게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현재 소송중이라고 하는데, 우습게도 그 시작은 '노후보장' 차원에서 10부작을 계획하고 쓴 작품이라고 한다. 그의 죽음이 정말 유감일 따름이다.

 

 



 

   책을 펴면 시작부터 풋내기 작가의 글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대기업을 상대로 폭로기사를 썼다가 억울하게 수감생활을 하게 된 베테랑 기자 미카엘 블로크비스트와 천재적인 해커지만 철저하게 반사회적인 생활을 하는 미스테리 여인 리스베트 살란데르를 주인공으로 스웨덴의 대기업 가문에 숨어있는 미스테리를 낱낱이 파헤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스웨덴 사회당의 열혈 당원이자 독립 언론사의 기자였던 이력만큼 대기업의 횡포와 하수인으로 전락한 언론사의 비리를 사실적으로 고발하면서 스토리를 이끌어나간다. 전체적으로는 전형적인 '밀실 미스터리'의 형식을 띄면서도 범상치 않은 두 주인공의 활약과 매 번 독자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들, 그리고 점점 커지는 스케일은 모래귀신의 늪에 빠지듯 깊이 깊이 빠지도록 만들었다. 현실과 가공을 넘나드는 리얼리티한 전개 또한 매력 중 하나인데, 주인공의 직업이 기자인데 저자도 기자였고, 진보적 성향의 사회고발적 폭로 기사를 주로 다루는 신문사의 이름이 [밀레니엄]이고, 이 책의 제목 또한 [밀레니엄]이다. 그렇기에 필연성과 정교함이 묻어난 생생한 '리얼리티'를 이 책을 읽으면서 경험하게 된다. 

  장르를 장편 스릴러 추리소설(1, 2, 3부를 합하면 2,000 페이지를 넘는다고 한다)이라고 해야 할까? 1부는 800 페이지 가량. 하지만 걱정할 것이 없다. 몰입도가 최고치에 달해서 책의 두께와 시간을 잊었으니까. 반지의 제왕과 같이 주인공을 골자로 다른 사건을 펼치기 때문에 현재 출간된 1부로 하나의 사건은 종결된다. 올 9월에 나올 2부와 내년 2월에 나올 3부가 마냥 기대될 뿐이다. 더 이상 말하면 스포일러라 욕먹을 것 같고, 조금 더 언급을 하자니 가슴만 답답하다.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또 다른 잠재독자에게 이 책을 소개시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쁠 따름이다. 여름의 끝에서 절대로 놓치면 안될 최고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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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이 이긴다 - 직선들의 대한민국에 던지는 새로운 생존 패러다임
유영만.고두현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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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을 찾고 싶거든, 먼저 곡선의 삶을 이해하라!

 

  지난 주 토요일 나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 새벽 KTX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아홉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 국립중앙도서관이 있는 서초역으로 가는 지하철은 역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올랐다. 2호선을 갈아타기 위해 사당역에 내릴 때 나는 사람들 물결에 휩쓸리듯 걸어야 했다.

  ‘역시 서울이다’ 하고 감탄하며 걷던 순간, 난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날은 평일이 아닌 토요일 오전이 때문이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달리기를 하듯 환승구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그리고 뒤질세라 뒤를 쫓는 사람들. '결국 그들은 환승역 어디에서 만날 텐데, 왜 그리 서두르는 것일까.' 나는 가만히 서서 그들을 한동안 한무리의 사람들을 지켜봤다. 

  주말 오전이라 그런지 정장을 입은 직장인은 없고 거의 대부분 평상복이거나 등산복 차림이었다. 하지만 발걸음과 행동은 평일과 다름없었다. 그들은 마치 함께 한 공간에 있었다는 것이 수치스러운 듯 자동문이 열리면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김없이 내다렸다.  

  어떤 상황이든 매일 반복된다면 그 상황은 평범한 일이 된다. 만약 내가 서울에서 계속 살고 있었다면 이런 각성은 없었을 것이다. 지방의 지하철은 다르다. 출퇴근을 하는 한 두 시간만 반짝 북적일 뿐, 놀랄 만큼 한산하다. 지하철을 타도 그렇다. 조용하다. 아니 한가하다. 시간이 멈춘 듯, 생각이 멈춘 듯, 움직임도 슬로우 비디오가 된다. 무엇이 정상일까? 한 쪽이 게으른 걸까, 아니면 다른 한 쪽이 유난스레 바쁜 것일까?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 날의 느낌이 통한 걸까. 지인으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곡선이 이긴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와 시를 모르는 사람도 기억하는 시인 고두현이 공저를 했다. 이 책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내게 있어 곡선은 여자이고 몸매다. 부드러움이고 돌아감이다. 급級이 아닌 완緩이고, 지루함이고 덜 떨어짐이다. 답답한 선이 곡선이다. 그런데 ‘곡선이 이긴다니?’ 어림없는 소리. 그래서 이 책은 ‘읽기’보다는 ‘싸움’이었다. 저자의 말에 실눈을 뜨고 반박하려 했다. 칼로리 소모가 많은 스파링 같았다. 

  어떤 책일까 살펴보려다 손에서 놓지 못한 이유는 고두현의 시 때문이었다. 이 책을 쓴 유영만 교수 역시 그 시로 인해 시(詩)가 갖는 곡선의 속도감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공감은 따스함이다. <버킷 리스트>를 통해 유교수의 글이 좋아졌지만, 묘한 인연 때문에 더욱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둘은 ‘늦게 온 소포’를 좋아하고 있었다.  



 

   
 

늦게 온 소포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도 하나씩 벗어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공고생 출신의 교수‘라는 수식어가 잘 말해주듯 학창시절부터 교수가 될 때까지 ’생각의 속도‘ 만큼 빠름을 재촉하며 바쁘게 살던 유교수는 어느 날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상황에 감옥 같았던 그의 병실생활을 위로해준 것은 시집(詩集)들이었다. 그 중에서 고두현의 <늦게 온 소포>는 그에게 ’살아 숨 쉬는 현재에 대한 감사‘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어느 책의 제목처럼 ’속도에서 깊이로‘ 사고하게 되었다. 

  <곡선이 이긴다>는 그 결과물이다. 그는 병상에 많은 시(詩)를 읽으며 이제껏 삶에서 시(詩)가 없었음을 알게 된다. 시를 짓는 과정은 오랜 고뇌의 흔적이 기록된 곡선의 여정이고, 시를 음미하는 것 역시 바쁨의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관망하는 곡선의 시간이 필요한 것인데, 그러한 시간이 없었다. 내달리는 직선뿐, 곡선이 없었던 것이다.

 



  

  올해 들어 서점가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다. 그 책이 마치 자욱한 안개 속을 걷듯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불안한 미래를 내딛고 있는 이 시대의 청춘들을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고 격려했다면, <곡선이 이긴다>는 30, 40대를 살아가는 청장년들에게 우리가 걷고 있는 오늘과 내일의 길이 과연 제대로운 길인가에 대해 고민한 책이다.  

 

   
    “인생의 곡선을 응시한다는 것은 생생한 꿈을 찾는 행위입니다. 삶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꿈입니다. 꿈은 직선으로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때로는 죽 뻗은 직선도로로 쇄도하다가도, 어느 순간 굽이굽이 높은 산을 홰홰 돌고, 비탈길과 오르막을 허위허위 오르다가, 다시 한 번 질주를 하는 것이 꿈의 행보 아닐까요?꿈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어쩌면 그것의 움직임이 단순한 직선이 아니라, 직선과 곡선이 복잡미묘하게 얽힌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곡선을 살아내는 법, 음미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직선을 질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곡선을 산책하며 삶의 모습을 온전히 바라보는 법을 배울 때, 꿈은 비로소 우리의 가슴에 스며들어 체화될 것입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유영만 교수는 지금까지 고찰한 자신의 삶과 자료들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지혜는 직선이 아닌 곡선에 있더라고 말한다. 나아가 직선화된 대한민국을 살아낼 생존법은 ‘곡선의 마음’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삶은 End 게임이 아니다 

  그는 우선 우리의 삶은 아주 빠르고 단호하게 결정짓는 End 게임이라기보다는 길고 넓게 봐야 하는 And의 향연이라고 말한다. ‘이게 마지막’이고 ‘이번이 안 되면 끝장’ 난다며 매 순간 마다 안달복달하고 불안해하며 살아가기에 인생이 행복할리 없다. 유 교수는 쉬는 법과 노는 법을 잊은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대나무를 가리킨다. 그리고 대나무의 마디는 ‘쉼’을 뜻하고, 그 마디의 힘으로 세찬 비바람에도 부러지지 않고 더 높이 자란다며 멈추고 잠깐 쉬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끝장나는 End가 아닌 말 그대로 쉼Pause인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즐기는 여유, 그게 바로 곡선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곡선은 여유를 갖고 속도를 줄이며, 가끔 멈춰 방향을 점검하는 삶, 그리고 쉽을 통해 풍요롭고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곡선형 삶입니다.” 48쪽  
   

 



 


에스프레소맨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한편 유영만 교수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갇혀 사는 우리의 의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즉 ‘나’를 스스로 만들어가기 보다 남에게 보여지는 ‘나’에게 규정지어져서 결국 그것이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람, 그 자리에 있으나마나 한 사람,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분류하고, 혈액형별 성격이 다르다고 서로에게 딱지를 붙인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그것이 최선일까?’ 

  그렇게 고정된 프레임에 갇혀 남에게 규정되고 스스로를 규정하기 때문에 위너Winner가 아니면 루저Llser가 되는 것이다. 나는 변한 것이 없는데 그렇게 보면서 나는 어느새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저자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미들맨middle man 정현욱 같은 사람, 골은 많이 넣지 못하지만 팀의 등뼈 역할을 하는 박지성 같은 사람, 커피로 따지자면 자체로는 인기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카푸치노, 카페모카, 카페라떼, 아메리카노에 꼭 들어가야 하는 에스프레소 같은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고, 이런 에스프레소맨은 누구나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곡선의 삶’에 주목해야 하고, 그 삶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미국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헨리 데이디스 소로가 ‘삶다운 삶’을 위해 월든 호수로 들어간 후 쓴 책 <월든>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자.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소로,<월든>에서 

 
   

 

  ‘사돈이 논을 샀다면?‘ 어른들은 배가 아프다는데, 아이들은 보러 간단다. 한 시가 아깝고 소중한 것이 내 삶이거늘, 틈만 나면 옆에 선 사람과 비교하고, 앞선 사람을 쫓아 살아가기 바쁘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수고‘를 담보잡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곧바로 ’달리기‘가 아니라, 잠시 ’멈춤‘이고 ’쉼‘인지 모른다. 터벅터벅 한 발을 내딛으며 ‘내 숨소리’ 한 번 들어보며 ‘이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인가?’ 생각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도쿄 타워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한 방법은 돈을 예쁜 엘리베이터 걸이 안내하는 엘리베이터에 돈을 주고 타는 것이고, 다른 방법은 타워 바깥에



있는 계단을 공짜로 걸어가는 것이다.

  돈을 주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약간의 귀막힘과 울렁거림만 있을 뿐 금방 정상에 오르지만, 돈 한 푼 들지 않고 계단을 오르려면 정상까지 꽤 많은 시간과 체력이 요구된다. 한 계단, 두 계단, 세 계단...이렇게 모두 515 계단을 오르면 심장의 맥박수 만큼 다리는 떨리고, 온 몸은 뜨거워진다. 이마와 등에 흐르는 땀도 많이 흐른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만날 수 없는 좋은 일이 있다. "여기까지 오르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쿄 타워에 근무하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반갑게 맞으며 마른 수건과 걸어서 도쿄타워를 올랐다는 인증서를 준다. 그보다 훨씬 더 좋은 선물은 나선의 원형으로 생긴 계단을 오르면서 만나는 360도의 도쿄 전경이다.  

  <곡선이 이긴다>를 읽으며 ‘도쿄타워를 걸어서 가는 법’이 생각났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살이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보다 빨리 승승장구하며 쾌속질주를 해서 정상에 오르면 행복하다. 하지만 그 뿐, 더 오를 것이 없다. 오래 즐기기엔 너무 심심하다.  

  만약 인생을 도쿄타워의 계단을 오르듯 천천히 하나씩 오르면 다리는 튼튼해지고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515계단을 오르면서 타워 전체를 돌며 도쿄 시내를 하늘에서 전부 관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쿄타워 도달'이라는 인생을 살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죽어라고 돈을 벌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의 목적은 도쿄타워의 꼭대기에 오르는 것인가? 아니면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것인가? 답을 알겠거든 이 책을 펴라. 인생을 쉬엄쉬엄 가면서도 만끽하는 법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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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팔도를 간다 : 서울편 - 방방곡곡을 누비며 신토불이 산해진미를 찾아 그린 대한민국 맛 지도! 식객 팔도를 간다
허영만 글.그림 / 김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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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만화 시장에 새로운 장을 연 <식객>시리즈 베스트 컬렉션! 

  진수와 성찬이가 엮어낸 요리 이야기가 무려 스물일곱 권이나 되는 장편만화 <식객>에 이어 <식객, 팔도를 간다>시리즈가 경기에 이어 서울에 이르렀다. 그저 허영만 화백(이 존칭을 들을 사람은 작고한 고우영 선생 밖에 없다)의 왕성한 작품 활동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식객을 읽으며 매 번 ‘이번에 리뷰 한 번 해 볼까’ 마음만 한가득. 스물아홉 번째 <식객>에 이르러서야 리뷰를 쓴다.

 



 

  만화<식객> 시리즈가 갖는 의미는 손으로 다 꼽을 수 없다. 우선 국내 출판계에서 ‘만화도 돈 주고 사서 읽는 책’의 수준으로 올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아동용 학습 만화를 제외하고). 그 전까지만 해도 만화는 ‘만화방에서 읽거나, 빌려보는 정도’ 였다. 이처럼 만화는 좋아하지만 사서 읽지는 않는 독자들 덕(?)에 ‘한국만화 시장’의 열악성은 빈곤의 악순환이었다. 하지만 독자들 탓만 할 것은 아니다.

  책을 소중하게 여기는 유교문화에 익숙한 독자들은 책이라는 물건을 사용개념이 아닌 소유개념으로 여겨 서재나 책꽂이에 모셔둬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 마당에 만화책은 언감생심 책꽂이에 꼽아둘 수 없는 불경한 물건이었다. 만약 볼라치면 만화방에 가서 읽거나 스포츠 신문을 보는 척 몰래 읽어야 했다. 

  또한 만화책을 살 바엔 진짜 책(?) 한 권을 사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 생각했다. 만화책이 팔릴 리 만무했다. 하지만 <식객>을 비롯해 <부자>, <꼴> 등 일련의 허영만 만화들은 만화와 함께 ‘정보적 요소’를 갖춰 ‘만화로 풀어놓은 전문서’ 형식을 갖췄다. 한국 독자를 제대로 읽은 것이다.

  독자들은 ‘유익하다’는 명분으로 주저하지 않고 만화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최근의 만화 시리즈들은 서재 한켠에 고이 모셔지는 특급대우를 받고 있다. 한마디로 음지에 숨어있던 만화가 책 대접을 받으며 드디어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한편 허영만의 만화들은 <부자>, <관상>, <한국음식> 등 국민 대다수가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들, 그리고 꼭 알아야 둬야 할 주제들을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몰래 숨겨서 읽던 만화, 혹 들키기라도 하면 ‘하라는 공부안하고 딴 짓 한다’고 욕을 먹어야 했던 만화가 이젠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책이 되었다. 또한 그의 만화가 갖는 스토리텔링은 우수해서 TV의 드라마, 영화의 원작이 되어 만화 컨텐츠가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auce Multi use로 활용되었다. 

  그렇다면 많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식객>의 비밀은 무엇일까? <식객, 팔도를 간다(서울 편)>에서 찾아보자.

 



 

  우선 생생한 현장감이다. 소설가들이 자신의 소설에 현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수시로 현장에 나가 그 모습을 메모해 둔다면, 허영만은 그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아 사각의 프레임에 옮겼다. 그리고 허영만의 펜 끝에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고, 음식이 향기를 품었다. 게다가 사진으로 현장의 모습을 대조하는가 하면 현실과 다를 경우 그 이유까지 설명하고 있어 무엇이 현실이고 허구인지 가늠하기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요즘 한 시간짜리 음식 다큐들이 많던데, 그에 비유한다면 <식객>은 ‘만화로 보는 음식 다큐여행’이라 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기획력이다. 책을 읽으면 알게 되겠지만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맛집을 수배하였고, 장소와 계절에 맞는 음식을 찾아냈다. 인상적인 점은 가급적 독자가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음식들을 찾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레시피도 소개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명 에피소드만을 골라서 엮었으니 <식객>을 읽지 않은 독자는 엑기스를 만나는 셈이고, 애독자에게는 베스트 컬렉션이 된다. 이렇게 가치 있는 책을 어떻게 안 살 수 있을까?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마케터로서 독자를 먼저 읽고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이 좋아할 수 있는 만화의 컨텐츠를 구상했다. 아울러 장편만화의 대가답게 인내력과 긴 숨을 요하는 작품을 토해내며 매 편마다 독자들을 들뜨게 한다. 특히 이번 <식객, 팔도를 가다> 시리즈는 독자들에게 고향의 맛을 전한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래서 고향에 있는 대로, 타향에 있는 대로 그 맛에 취하고, 그리워하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고향’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독자들에게는 고향을 알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럼 구체적으로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우선 서민들의 대표적인 보양식 '설렁탕'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실직자인 세 명의 친구가 설렁탕집을 차리기로 결심하고 서로 주방과 홀, 그리고 식재료 구매를 맡기로 한다. 설렁탕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주방을 맡기로 하고 유명한 설렁탕집에 위장취업을 한 서른 한 살의 청년이다. 

  처음엔 6개월 정도 주방에서 귀동냥을 하면 차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25년 경력의 조리장도 아직 설렁탕을 마스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전국을 돌며 설렁탕수련을 떠나며 끝을 맺는다. 

  설렁탕의 유래에서부터 설렁탕 상식 그리고 레시피까지 담긴 설렁탕 부분은 웬만한 주방장의 레시피 메모보다 자세하다. 찬찬히 읽고 나면 ‘나도 한 번 창업을...?’하는 용기도 날테지만, 글로 배운 키스가 엉터리인 것처럼, 읽어 배운 요리법은 허당이다. 나는 그 진리를 세 번째 이야기인 ‘타락죽’을 통해 배웠다.  이야기 끝에 소개된 열 두어 줄 짜리 '타락죽 만들기'는 땅 짚고 헤엄치기만큼이나 쉬워보였다. ‘나도 만들 수 있겠다’는 건방이 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케빈 씨가 먹은 성찬이의 ‘타락죽’을 먹고 싶었다. 성찬이의 밥상을 받기는 어려우니 혼자 만들어 먹을 밖에. 마침 집에 아무도 없어 잘 됐다 싶었다.

  찹쌀을 충분히 불리고, 선풍기에 바짝 말리고, 믹서에 곱게 갈아, 한지를 깐 프라이팬에 볶는 것까지는 좋았다. 한 컵 분량의 물을 부어 멍울을 풀고 쌀의 5-6배 만큼 우유를 넣는 부분에서 잘못된 것 같았다. 어설픈 쌀죽 위에 우유가 분리되어 훌렁거렸다. 초등학교 시절 급식시간에 우유에 밥을 말아먹는 아이를 보고 토악질하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채 반을 먹지 못하고 느끼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설탕대신 꿀을 넣은 것이 잘못이요, 많이 넣은 것은 큰 실수였다. 앞으로 수년간 ‘죽’이란 글자가 들어간 음식은 쳐다보지도 못할 것 같다. 

  맛있게 만들지도 못한 타락죽 경험담을 굳이 이야기한 이유는 재미는 기본이고 만화 속에 등장하는 음식과 요리들이 직접 해 먹을 만큼 독자로 하여금 먹고 싶게 만들었다 점이다. 정말 기회만 된다면 만화에 언급된 요리 모두를 먹어보고 싶다. 권말에 있는 ‘서울 전통의 별미를 계절별로 즐기자’에 소개된 잣국수, 두부새우젓찜, 전복찜 등 16가지 요리들은 주말마다 만들어 먹을 도전 요리들 되었다. 재미로 한 번 읽고 맛으로 두 번 읽은 책, 진짜배기 서울 맛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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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리 초보
    from 제발 제발 2011-04-20 19:23 
    타락죽 이야기 재미있습니다. ^ ^ 설탕 대신 꿀을 넣고, 더구나 '많이' 넣었다면, 님은 확실한 요리 초보십니다. 흐흣..(저도 자주 하는 실수라..^ ^;;)초보는 재료를빼먹기도 하고 더 넣기도 하고설익히기도하고 태우기도 하고, 온갖 실수를 하지만, 그 어떤 실수보다 돌이킬 수 없는건양념을'너무 많이' 넣는실수 같아요.소금, 간장, 설탕, 마늘, 식초, 고춧가루.. 모자랄때더 넣기는 쉬워도,많이 넣은 것을 덜어내기는 어려우니까요. ^ ^;;조금 덜
 
 
 
Hello! 멘토 - 감성이 있는 행복한 성공 이야기
곽숙철 지음, 설레다 그림, 윤푸빗 스토리 / 틔움출판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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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멘토 - 넷세대 직장인에 어울리는 특별한 자기계발서 

   
 

  “역사가 가장 뛰어난 농구 선수 중 한 명인 래리 버드를 아나요? 래리 버드가 한 제과회사의 광고 촬영을 위해 농구 코드로 왔어요. 촬영할 내용은 래리가 슛을 던질 찰나에 관중속 누군가 과자를 씹으며 와삭 소리를 내는 바람에 골을 넣지 못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촬영이 시작되고 어처누기 없는 일이 벌어졌어요.

  광고 내용에 따르면 슛이 빗나가야 하는데 던지는 공이 모두 골인이 되는 거에요. 래리는 치열한 연습을 통해 완벽한 슛 동작을 마치 로봇처럼 몸에 익혔기 때문에 골이 실패하는 것이 오히려 어려웠던 거지요. 이처럼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공이 자꾸 그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래리도 당황스러워했대요. 

  결국 수백 번이나 공을 던진 끝에  

겨우 두세 번 정도 공을 넣지 않는 데 성공했다고 하네요.

 
   

 골인이 습관이 된 래리 버드의 이야기에는 작은 성공이 반복되다 보면 습관이 되고 나중에는 오히려 실패가 어려워진다는 깨달음이 담겼다. 그리고 우리는 래리 버드라는 스타 플레이어가 있기까지에는 최선을 즐기며 농구를 마음껏 즐기는 그의 마음자세가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 솔개 곽숙철은 비즈니스맨들의 ‘멘토‘다. 그냥 스쳐지날지도 모를 ’소중한 이야기‘ 속에서 인생의 진리를 찾고 이를 재가공해서 블로그 속에서, 특강에서 그리고 정기적으로 회원들에게 메일을 보내며 직장인들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는 그는 나의 멘토이기도 하다. 금쪽같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80여 편의 이야기들이 책 한 권에 담겼다. 제목은 <Hello, 멘토>(틔움)다.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 설토와 열정적인 엘리트 사원 열토, 그리고 설토의 친구 당근과 직장상사인 먹구름이 만들어가는 고민들은 우리네 직장인의 무미건조한 듯한 일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저자 솔개는 이들의 고민을 풀어줄 대답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이야기를 찾아 두런두런 풀어준다.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마도 읽기 편하다는 것이다. 고민과 해답, 그리고 예쁜 그림 한쪽은 ‘어른을 위한 동화’와 같다. 이야기를 읽는데 1분 남짓, 그림 보기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독서는 두 쪽을 모두 읽고 난 후부터일 것이다. 평범한 직장인 설토의 방황과 고민은 엊그제 회사에서 내가 겪은 이야기를 닮았고, 감정기복 심한 먹구름은 직속상사인 팀장과 쌍둥이 같다. 읽다보니 내 이야기, 내 고민이더란 거다. 페이지마다 한쪽씩 접어두는 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알 게 뭐냐. <세상은 요지경>이란 노래처럼 잘난 놈은 잘난 대로 살고, 나처럼 못난 놈은 못난 대로 살면 되지.” 투덜댄다면 멘토인 솔개라도 해 줄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잘 하고 싶은데, 얼마나 잘 해야 하는 거냐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열렬한 추종자인 한 젊은이가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청했어요. 소크라테스는 그를 강으로 데려고 가서 물에 집어넣은 다음, 젊은이의 머리를 눌러 강물 속에 집어넣었어요. 젊은이는 머리를 물 밖으로 내밀려고 허우적거렸지만, 소크라테스는 있는 힘껏 그의 머리를 누르며 못나오게 했지요.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참지 못한 그 젊은이가 죽을 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 수 있었어요.

  바로 그때 소크라테스가 물었어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을 때 자네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가?”

  그러자 젊은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지요.

“공기였습니다!”

이 말에 소크라테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자네가 그 순간 공기를 원했던 것만큼 지혜를 갈구한다면 곧 얻게 될 걸세.” 

 
   

 

  잔소리 백 마디보다 이야기 한 편이 훨씬 낫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스크롤의 압박’이라 느껴지면 바로 스킵skip하는 것이 넷세대가 아니던가. 짧지만 깊고 큰 여운을 주는 이 책의 글들은 넷세대에 어울린다. 재충전의 기운이 넘쳐나는 봄철. 고민 많은 동료나 후배가 있거든 브랜드 커피  한 잔 대신 이 책 한 권 선물로 안겨준다면 ‘선배님, 짱!’소리 듣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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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창업을 한다
권민 지음 / ByUnitasbrand(유니타스브랜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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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창업자에게 브랜드의 개념을 잡아줄 필독서!

창업은 생계가 아닌 풍요한 삶을 위한 프로젝트다!
 

  2009년 9월 어느 취업 사이트에서 ‘창업’에 관한 직장인들의 생각을 설문하여 통계를 낸 자료에 의하면 응답자 10 명중 9.7명이 ‘창업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응답자 가운데 4.5명은 ‘상사 및 직장 동료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때’ 창업하고 싶다고 말했고, 희망업종으로는 음식점․카페 등 외식 분야가 4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이 창업 준비 기간을 3~6 개월 정도라고 답했다. 

  이 대답은 600만 자영업자 천국인 대한민국에서 한 해 평균 50만 명의 자영업자가 문을 닫는 이유를 잘 말해 준다. 창업을 단순히 생계를 위한 새로운 ‘취업이나 전업 쯤’으로 쉽게 여기기 때문에 오늘도 10개의 점포 중에 8개가 문을 닫고 있다. 철저한 준비 없는 개업은 폐업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런 우울한 현실에는 핫 트렌드 운운하며 몇몇 프랜차이즈 업체를 소개하며 ‘쉽게 창업해서 떼돈을 번다’는 식으로 예비창업자들을 현혹하는 언론매체와 미디어가 일조하고 있다. ‘사업 따위를 처음으로 이루어 시작함’이라는 창업創業의 사전적 의미도 모르고 ‘창업=체인점 가맹’으로 여기는 사람들, 대한민국은 지금 ‘프랜차이즈 가맹점 천국’이다.  

  그런 점에서 <아내가 창업을 한다>는 무척이나 반가운 책이다. 이 책은 60여 개의 브랜드를 런칭하거나 리뉴얼한 바 있는 전문가이자 브랜드 전문지로 잘 알려진 <유니타스브랜드>의 발행인 및 편집장인 저자가 썼다는 점에서 처음 흥미가 생겼다.

  몇 장 넘기지 않아 ‘제대로운 창업관련서가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창업을 정의하면서 먹고살기 위한 생계Living와 살기 위해 먹는 삶Life은 다르다며 창업은 개업이 아니라 브랜드를 세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본 설문처럼 사람들은 언제든 창업을 하려고 하고, 정부 역시 ’일자리‘를 만드는데 급급해 근시안적 정책을 남발한다. ‘창업創業은 쉽고 수성守成이 어렵다’는 말처럼 창업은 약간의 자본과 수완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전 재산을 투입을 해서 한 창업이 하루 이틀만 하다가 말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저자는 창업을 너무 쉽다고 오해하는 풍토에 대해 지적한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국가의 리더들은 ‘일자리’를 만들려고 혈안이다. 그러나 그냥 ‘자리’만 만들기 원하지 어떤 ‘일자리’를 만들지는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책들이 수천 개의 알 중에서 돌아올 확률 1~3%를 기대하는 바다거북의 어미처럼 무조건 창업만을 유도한다. 바다거북 새끼의 97%는 갈매기의 밥 혹은 물고기의 밥이 된다. 누군가의 밥이 되기 위해서 창업을 하거나 정책의 성과로 보여 주기 위해서 창업을 하는 것은 비극이다. 그런 비극이 바로 ‘창업’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시작된다. 그 누구도 창업의 이유인 가치와 결과인 브랜드를 가르치지 않는다.” 407쪽 

  이 책은 유명 프랜차이즈를 소개하거나 대박 가맹점이 되는 법과 같은 무책임한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맹점을 이끄는 프랜차이저가 될 수 있는 훌륭한 브랜드를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나이키, 아디다스, 이케아, 레고, 유니클로, 스타벅스, KFC와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들의 시작은 작은 매장 하나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본죽, 주노헤어, 석봉토스트와 같은 국내 유수의 프랜차이즈들도 하나의 점포에서 비롯되었다. 저자는 ‘창업은 곧 브랜드 런칭’이라며 창업을 위해서는 브랜드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먼저 익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브랜드를 창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저자는 세계적인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인 일리illy가 갖는 브랜드 직관력과 브랜드 완전성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일리illy는 몇 개의 독특한 숫자를 가지고 있다. 100%, 7g, 52, 250,000, 90°C, 9bar, 25sec, 25cc. 이것들은 일리를 일리답도록 하는 숫자들이다. 100% 아라비카 종으로 된 7g의 커피 플랜드blend는 52개의 완두콩을 의미하며, 이 완두콩을 그라인더가 25만 개의 입자로 분쇄시킨다. 그 입자를 90°C의 물, 9기압이라는 물의 압력으로 25초 동안 25cc의 에스프레소로 추출하게 되는데, 이러한 모든 조건 속에서 뽑아내는 한 잔의 에스프레소만이 일리답데 완벽하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공식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일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커피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 256-257쪽

  저자는 브랜드 전문가답게 ‘창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통해 ‘창업하려는 이유’에 접근한다. 그래서 창업 이전에 창업자 스스로 ‘나다움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비로소 ‘나만의 브랜드’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시장 조사를 통해 컨셉과 전략을 세우는 방법에서부터 창업 이후에 필요한 리더십과 파트너십, 나아가 비전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에 대해 친정엄마처럼 지적하고 조언하고 있다. 

   책 전반에 언급된 다양하고 풍성한 사례와 인용은 십 수 년 동안 현장에서 갖춘 저자의 실무 경험과 20여 권에 이르는 <유니타스브랜드>에서 비롯된 컨텐츠라는 이론이 녹아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창업을 계획한다면 일독할만하다. 

  400여 페이지 남짓을 읽고 덮으면서 느낌 소감은 한마디로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는 진리였다. 창업 역시 고3 수험생 못지않게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남이 만들어놓은 프랜차이즈에 가맹하는 것은 쉽게 말해 창업 전반의 노하우가 귀찮아서 머리가 아닌 돈을 썼다는 의미다. 문제는 가맹점이 모두 흥해야 할텐데 열에 아홉은 망하는데 가맹한 프랜차이즈 업체조자도 자세히 살피지 않은 때문일 것이다.

  창업으로 ‘판을 벌인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작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전 재산에 해당하는 수억 원에 이르는 거금을 투자한다는 의미다. 먹고 입을 것 못하고 모은 피와 살 같은 돈을 ‘귀찮다’는 이유로 ‘묻지마 창업’으로 남에게 내맡길 바에는 아예 창업을 하지 않는 것이 ‘돈 버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발단 역시 불쑥 창업을 하겠다는 아내를 위한 저자의 설득하고자 했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책 전반에 걸쳐 큰소리치고 가르치기 보다는 설명하고 설득하는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왜 아닐까. 순간의 선택으로 ‘억’ 소리가 나는 게 창업이 아니던가. 

  연말 구조조정에서 밀려난 직장인들에게 봄은 ‘잔인한 계절’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내몰린 그들을 유일하게 반기는 곳이 있으니 바로 창업시장. 벚꽃이 피는 3-4월만 되면 전국 이곳저곳에 ‘창업박람회’ 현수막이 내걸린다. 하지만 예비창업자들이 내 사업의 첫 발을 ‘이곳’에서 시작하려 한다면 '창업을 쉽게 시작하려는 마음‘부터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싶다.

  하나에서 열까지 내가 모든 것을 챙긴다는 마음 없는 창업은 백전백패다. 우선 최소한 창업관련서 30권은 읽으며 공부해야 하고, 관심업종이 생기거든 해당업체에 취직해 6개월 이상 직접 발로 뛰며 일해 봐야 한다. 그런 후 창업을 할지 말지 결정하고 ‘박람회’ 등에 기웃거려라. 그렇지 않으면 마음만 앞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종잣돈을 채 1년도 되지 않아 모두 날릴지도 모른다. 정말 창업을 하고 싶다면 그 모든 시작은 이 책부터 시작하고 볼 일이다. 창업자의 필독서로 손색이 없다.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격주간 발행하는 출판전문잡지 <기획회의>(294호)에 실릴 칼럼원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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