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일하라 - 성과는 일벌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제이슨 프라이드 & 데이비드 하이네마이어 핸슨 지음, 정성묵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지금까지 생각했던 일의 개념부터 바꿔라

 

  IMF 외환위기가 한창일 때 대학을 졸업한 나는 취직을 할 수 없었다. 잘 다니던 직장인도 하루아침에 구조조정되어 공원 벤치 신세가 되는 판국에 입사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희망사항이었다. 하루가 갈수록 점점 더 악화되어가는 국내경제와 마냥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를 외면하고 집안에서 무위도식하며 마냥 빈둥댈 수가 없었다. 일자리를 구하겠다고 한 짐을 싸서 집을 나섰다. 찾아간 곳은 중소기업에서 분양 업무를 맡고 있는 선배 두 명이 살고 있는 대학 주변 자취방. 그곳에서 밥 짓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며 더부살이를 했다. 

  취직한 선배들의 일터를 이곳저곳 아무리 살펴보고 부탁해 봐도 오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입사가 불가능하다면 이제 남은 것은 창업 뿐, 밥벌이를 궁리하기 위해 매일처럼 서점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 한 쪽에서 일본 맥도널드의 창업자이자 ‘긴자의 유대인’이라 불리는 ‘후지타 덴(藤田田)’이 자신의 성공담을 담은 책 ‘비즈니스에는 급소가 있다’를 읽다가 ‘사업’을 결심하게 되었다. 바로 저자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비즈니스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그 누구도 쉽게 따라할 수없는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가진 사업종목을 갖춰라. 싸게, 빠르게, 어디에서나 같은 맛으로..라는 니크한 아이덴티티는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사업의 핵심이기도 하다.”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갖춘 사업종목’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미 나는 그런 종목을 몇 년 전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학교 후문에 있는 조그마한 닭갈비집. 이곳의 ‘순살닭갈비볶음밥’은 가격 저렴하고 맛있어서 내가 거의 매일 찾던 메뉴였다. 이 맛이라면 사업을 위한 아이덴티티는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다. 

  이후 한 달여 동안 대형 서점을 뒤져가며 가맹점 사업에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해 기획서를 만들었고, 그 자료를 가지고 닭갈비집 사장님을 찾아가 가맹점 사업 동업을 제안했다. 단품메뉴가격 2,300원으로 일 매출이 200만 원이라는 놀라운 매상을 올리고 있었지만, 마땅히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매일 전투를 치르듯 하루를 보내고 있던 닭갈비집 사장님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며 흔쾌히 수락했다. 

  비슷한 처지의 선후배 몇 명과 합심해서 사무실을 얻고 두 달여를 준비해 당당히 ‘춘천골 닭갈비 체인사업본부’를 발족 했다. 그 후 약 20개월 동안 가맹점 60여 곳을 개설하며 ‘잘 나가는 닭갈비 회사’를 만들어냈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조직이라고는 들어가 본 적 없는 내가 회사를 차리고, 운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 읽었던 책들 덕분이었다. 창업을 한 후에도 거의 매주 대형서점을 들러 책을 읽었다. 기획서를 만드는 법, 전화 받는 예절, 마케팅, 영업, 홍보, 접객 매뉴얼까지... 질문이 생길 때 마다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답을 찾았다. 

 





 

   <똑바로 일하라REWORK>(21세기북스)을 읽는 내내 나의 ‘첫 창업’을 떠올렸다. 이 책은 웹 기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37signals(아마존 설립자인 제프 베조스가 투자자이다)의 창립자인 저자들이 시행착오를 겪은 회사의 경영의 핵심을 엮은 것이다. 짧은 글에 더할 말도 뺄 말도 없다고 할 만큼 군더더기 없다. ‘첫 창업의 그 시절에 이 책이 나왔더라면..’하는 아쉬움을 갖게 하는 책이었다. 원제목은 REWORK, 다 뜯어 고쳐라! 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한다면 경영經營은 백만사百萬事다. 경영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사줄 사람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영인은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조직 전체와 조직의 실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성과를 올리는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현대 경영학의 구루인 피터 드러커는 <자기경영노트>에서 성과를 올리고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인은 ‘지나치게 많은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전략적이고 근본적인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그들은 최고의 수준의 개념적인 이해를 필요로 하는 소수의 중대한 의사결정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주어진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상수들constants을 파악하려 한다.”

  업종에 따라 규모에 따라 경영기법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보다 ‘전략적이고 근본적인 경영’에 다가서면 모두 하나가 된다. 저자들은 열심히만 일하는 일중독자가 되지 말고 제대로 성과를 내는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과를 내고 싶다면 일의 지금까지 생각했던 일의 개념부터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들이 가장 경계한 것은 비즈니스 통념, 즉 ‘사업에 관한 전통적인 개념들’이다.  


 

  

 

 이를 테면 완벽한 계획은 본래 없고, 계획이란 추측에 불과하므로 시간과 공을 들여 장기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말한다. 또한 성장에만 연연해하지 말고 크든 작든 내실 있고 탄탄한 회사를 만들기에 힘쓰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어떤 사업을 하든 외부 자금의 비율을 최대한 줄여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마음껏 경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자들은 경영의 개념, 일, 성과, 경쟁, 차별화, 마케팅, 인사, 위기관리 등의 주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글을 읽다 보면 마치 일선에서 업무를 보다가 떠오른 생각들을 적어 놓은 것처럼 실전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사업 선정에 대해 트렌드에 연연하는 세태를 지적한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라’ 였다. 


   “본질이 아닌 덧없는 유행에 목을 매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영원한 것은 몰라보고 수시로 변하는 것만 바라보고 있다. 사업의 핵심은 변하지 않는 것들이다. 사람들이 오늘도 원하고 앞으로 10년 후에도 변함없이 원할 것들, 이런 것에 투자해야 한다. 아마존닷컴은 신속한 무료 배송, 다채로운 품목, 친절한 환불 정책, 적당한 가격에 올인한다. 이런 것은 언제나 귀하기 마련이다.“ 94쪽

  사업의 핵심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공기처럼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것, 그래서 좀처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음식점은 맛과 청결, 친절 이 세 가지면 더할 나위 없고, 무슨 업종이든 친절한 서비스와 미소는 기본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핵심가치들을 지닌 기업과 점포는 그리 많지 않다. 저자들은 300여 페이지 내내 이러한 실전 경영의 핵심을 거론하며 독자들의 폐부를 콕콕 찌르고 있다.

  이 책을 읽어야 할 독자는 ‘경영자’다.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 경영자를 꿈꾸는 비즈니스맨들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소자본 창업을 준비 하고 있는 예비창업자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머리와 가슴으로 배우고 익혀두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마케팅 구루인 세스 고딘이 ‘나는 당신이 이 책을 당장 사지 않아도 될 그럴듯한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상할 수가 없다’고 이 책을 평했다). 비즈니스맨의 필독서로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이 리뷰는 여산통신에서 발행하는 <라이브러리앤리브로>(2011년 4월호)에 실린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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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의 역사
리처드 실라.시드니 호머 지음, 이은주 옮김, 홍춘욱 감수 / 리딩리더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금리의 역사 - 이자율 보면 국가 흥망 보인다

 

  이자율은 저축의 꽃이요, 높은 이자는 달디 단 열매다. 예금자들이 시중은행 대신 저축은행과 같은 제2 금융권의 장기저축예금에 돈을 묻는 이유는 이자율이 단 0.1%라도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에서 인정한 5000만원 한도의 예금에 대해 지급보증을 한다는 예금보호법과 자기자본비율 8% 이상, 부실대출비율이 8% 미만인 우량 저축은행에 포상하는 8·8클럽제도 등 저축은행 예금자를 안심시켜주는 정책들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은 지난 1월 부산저축은행 등 8개 저축은행이 문을 닫는 저축은행 부실사태의 원인으로 드러났다. 예금보장한도를 방패삼아 고금리 예금상품을 남발했고, 그렇게 끌어들인 돈을 위험성이 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쏟아 붓는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부실을 키웠다. 또한 정책 실패와 감독 소홀이 정치권과 지역 토호들, 그리고 대주주들의 사금고화 같은 지극히 후진적인 금융부실과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다.  

  금융권 부실이 어디 하루 이틀된 이야기던가. 문제는 이자 몇 푼 더 받겠다고 자신의 노후자금을 전부 예금했는데 5000만원 초과 예금에 대해서는 지급보증이 안 된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해 있는 예금자 수천 명의 앞날이다. 

 



 

  리처드 실라의 <금리의 역사>(리딩리더)는 인류와 역사를 함께한 이자율을 주제로 한 책으로, 뛰어난 학자였던 시드니 호머가 1962년에 처음 낸 이후 리처드 실라가 2005년에 제4판으로 출간했다.

 

  금리를 주제로 한 문헌 가운데 단연 최고로 손꼽히는 이 책은 바빌로니아를 시작으로 그리스, 로마 그리고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자율의 장구한 역사를 담고 있다. 저자는 고대 바빌로니아와 그리스, 로마 등의 이자율 역사를 살펴보면서 국가 혹은 문화가 번성하는 시기에는 이자율이 낮고, 쇠퇴하거나 망하는 시기에는 이자율이 치솟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또 시간적 차원에서 볼 때 금리의 흐름에는 일정한 추세와 반복적 변동 패턴이 존재한다. 이러한 추세와 패턴은 한 국가와 전체 문명의 흥망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것이다.  
  책 전반에 걸쳐서 언급되는 단어는 ‘신용’이다. 신용이란 말은 새로운 신용 형태가 등장한 근래가 아니라 이자를 받고 뭔가를 빌려주는 행위가 있었던 신석기시대부터 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특히 기원전 1800년께 만들어진 최초의 성문법전이라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에는 최고 이자율이 제한되어 있다. 금리의 역사는 바로 신용의 역사인 셈이다. 

 

  이번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있어 정부는 대주주의 방만한 경영을 단죄하고 정책과 감독 실패와 부실 확산의 빌미를 제공한 기관에 책임을 묻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놓치고 있는 큰 것 하나가 있다. 바로 ‘정부에게 잃은 국민들의 신용’은 누가, 어떻게 치유해 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한편 이번 사태는 예금을 하나 들더라도 공부해야 하는 세상임을 새삼 깨우쳐준다.

 

이 리뷰는 3월 26일자 경향신문 [책으로 읽는 경제]에 실린 칼럼의 원고 입니다.

경향신문 바로가기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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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개 우기 - 기적을 선물한
래리 레빈 지음, 한세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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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으면 고슴도치가 되나 보다. 하나같이 자신이 키우는 동물은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하니 말이다. 또한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 역시 남다르다. 보호자들은 대부분 사람 대하듯 하는데 동물을 키우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유난스럽다’고 할 정도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한편 사람이 이토록 사랑이 많은 종족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혹시 사랑이 그리운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보호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얘들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 든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얘만 나를 반긴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필경 후자일 것이다. 사랑이 넘쳐서가 아니라 사랑이 부족해서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진다(참고로 나의 막내동생은 여덟 살짜리 시츄종 ‘찌비’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반려동물에 우호적이다(물론 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도 관심을 갖긴 하지만 대부분 1살 미만의 작고 예쁠 때일 뿐, 오히려 늙거나 아픈 동물에 관심을 주는 사람들은 거의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다).

  또한 내 동물에 관심을 주는 사람한테는 나 역시 우호적이다. 내 가족을 예뻐해 주면 기쁘고 즐거워진다. 혹시 내 동물에 대한 질문을 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성큼 대답을 하게 된다. ‘우리 가족을 좋아해주니까’라는 대답은 2% 부족하다. 

  마찬가지로 남의 동물에 나는 왜 관심이 가는 걸까? 눈길 한 번 더 주고 물리지 않을 것 같으면 가까이 가서 만져주고 싶다. 왜일까?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개 우기oogy>를 읽은 이유도 그 미스터리 때문이었다.

 



 

   이 책에 눈길이 간 건 적나라한 제목보다 표지에 실린 해괴한 그림 때문이었다. 주인공인 듯한 개 한 마리는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에서나 볼 법한 반쯤 찌그러진 모습의 얼굴인데, 반달 눈으로 웃고 있었다. ‘왜 이런 모습일까? 사연이 도대체 뭘까?’ 들춰보니 소설이 아닌 실화였다. 책을 덮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생후 5주 된 새끼 때부터 함께 살았던 고양이 버지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안 알게 된 래리네 가족은 슬픔에 빠진 채 동물병원을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더 없이 밝고 명랑한 개 한 마리를 만나게 된다. 한 쪽 귀는 물론 얼굴의 절반 정도가 없는 괴상한 외모의 4개월 짜리 핏불, 투견판에서 미끼견이었다가 가까스로 구출된 불쌍한 강아지였다.


 
  반려동물에게도 트라우마가 있을 법 한데 이 못생긴 강아지는 더 없이 밝았다. 거칠고 사납기로 소문난 핏불을, 게다가 흉측할 만큼 못생긴 이 강아지를 입양하게 된 이유 역시 이 밝은 성격 때문이었다. 우기oogy라는 이름으로 래리네 가족이 된다(우기는 나중에 핏불이 아닌 도고의 혼혈종으로 밝혀진다)

“도대체 녀석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거죠?”

아마도 화상을 입었을 거라고 짐작하며 던졌던 나의 물음에 피터 박사는 너무도 담담하게 대답했다.

“미끼견이었습니다.”

“네?미끼견이요?”

나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박사의 대답이 담고 있는 심각성을 가늠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기 때문이다.

“미끼견이 뭐죠?”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지만 뭔가 대단히 불쾌한 용어였다.

“녀석은 투견의 미끼로 쓰였어요. 개들에게 싸움을 가르치는 방법이죠. 업자들은 구할 수 있는 모든 걸 가리지 않고 미끼견으로 쓰죠. 푸들이든, 고양이든, 아무리 작은 강아지라도요.” 본문 92쪽

 

  이 책은 주인공 래리가 아내, 입양한 쌍둥이 아들 노아와 댄 그리고 우기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잔잔한 목소리로 담았다. 아이들과 우기를 입양하고 키우며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함께 살피며 그에게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이 실은 얼마나 잃기 쉬운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개구쟁이 우기의 표정과 행동은 물론 내 집이 좁다하고 뛰어다니며 말썽을 피우는 모습을 그린 대목은 눈에 보이는 듯 선하고, 쌍둥이와 우기에 대한 애정이 담긴 문장에서는 왠지 모를 뜨거움을 느끼게 한다. 실화를 적은 글이라 ‘소설’같은 사건, 사고도 감동적인 에피소드도 없다(우기의 존재 자체가 소설 같지만). 하지만 편안하고 자연스런 저자의 고백 글은 시선을 놓지 못하게 하고 마치 담장 너머 옆집을 기웃대듯 페이지를 거듭 넘기게 한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마 반려동물을 떠나보낼 때일 것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들이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 래리는 슬픈 이별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자’고 말했다. 이런 깨달음은 세 살 때 백혈병으로 누나를 잃은 그의 불행한 어린 시절로부터 비롯된다. 부모님은 누나를 잃자 슬픔 대신 누나가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남은 자식들에게 사랑대신 간섭하려 하고 통제하려 했다. 그는 부모의 그런 행동이 한없이 안타까웠다. 


 

  “육체적, 정신적 상처와 훼손이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너처럼 잘 말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거야. 눈에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건 바로 내면이라는 사실 말이야. 그건 충분히 자랑스러운거야. 알겠니?”

사실 문제는 우기가 아닌 나였다. 녀석은 언제나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고, 자신감이 온몸에 흘러넘쳤지만 정작 나는 아직 내가 준비가 덜 되진 않았을까 고민이었다. 하지만 나는 우기를 위해, 그리고 우기를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을 위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았다. 본문 199쪽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말한다. 다시 묻고 싶다. 당신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가?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반려동물과 생활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즉 반려동물이 성장한다면 보호자도 성장하고 있고, 내가 반려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면 나 역시 반려동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 나와 반려동물은 지금 서로 돕고 위로 하며 살고 있다. 그들이 가족이라고 감히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반려동물에 관한 책이 껄끄럽고 꺼려지는 이유는 ‘듀이’처럼 꼭 동물들이 죽음으로써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기는 아직 건강하게 살아 있다, 우리 찌비처럼. 동물을 사랑한다면 우기를 만나 보시라. 몇 페이지 못가서 우기의 매력에 푸욱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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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이 답이다 - 생각을 성과로 이끄는 성공 원동력 20
이민규 지음 / 더난출판사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세상의 의지박약자들이 읽어야 할 완소 자기계발서!

  나는 ‘독서법’에 관련된 강연을 하면 항상 ‘독서의 완성은 실천’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느끼고 배운 바가 있다면 ‘실천’을 통해 그것들을 체득體得할 때 그 때 독서는 완성된다는 뜻이다. 일본 대기업 교세라 그룹의 전회장 이나모리 가즈오 역시 독서 후 실천에 대해서 "읽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지만, 단지 읽기만 할 뿐 실행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책읽기는 '시간낭비'일 뿐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독서한 바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왜냐하면 책은 여러 장르가 있고 내용 역시 다양해서 과연 이 책이 ‘실천이 가능한 책인가’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기계발서와 같은 실용서를 읽는 ‘실용독서’는 말 그대로 생활에 활용을 하겠다는 목표가 있는 독서이기에 오히려 ‘실천’이 없다면 그 책을 읽은 의미가 없는 것이 될 것이다. 국내 출판계의 ‘자기계발서’란 장르의 분류는 따지고 보면 사실 모호하다. 자기계발의 시작을 굳이 따지자면 사뮤엘 스마일즈가 1859년에 ‘개인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조(self help)’의 정신을 주장한 자조론Self-Help이 되겠지만, 어떤 분야의 책이 되었든 독자가 책을 읽고 난 후 ‘배웠다’고 느끼면 그 자체가 자기계발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문, 문학, 정치, 경제와 같은 장르의 실천인데 여기 유념해야 할 것은 바로 체득體得이다. 어떻게 실천하면서 체득해야 할까? 어떤 장르의 책이든 완독을 한 후 인상적인 구절이나 문장이 있다면 기억하고 나중에 활용하고자 따로 옮겨 적거나 타이핑을 해 두면 실천이 된다. 아니면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할 때 책을 통해 배우고 느꼈던 바를 전한다면 그 역시 실천이 된다. 가장 정답에 가까운 실천은 역시 ‘생각한 바를 실제로 행함’이라는 사전적 의미의 실천을 그대로 따를 때 이다.   

  예를 들어 책 <히말라야 도서관>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한 청년이 만들어내는 작은 기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에서 승승장구하며 세계를 누리던 청년 존 우드는 휴가차 들린 네팔의 어느 숙소에서 만난 현지 교육가를 통해 아이들의 열악한 교육 실태를 알고 직접 목격한 후 큰 충격을 받는다. 지금까지 자신을 만든 성공은 독서와 교육에 있다고 항상 자부했던 그는 미국의 직장으로 돌아왔지만 과중한 업무와 직장에서의 치열한 생존 경쟁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네팔의 어린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 할 일이 있음을 깨달은 존 우드에게 잘나가는 지금의 IT회사는 이미 ‘남의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네팔 아이들에게 '책을 가지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잊지 못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부모님과 함께 네팔에 보낼 책과 성금을 모금하게 된다. 룸투리드 Room to Read사업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를 성공으로 이끈 독서에 대한 실천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책에서 도서관 건립 사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물질적인 부자인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정한 문제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 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젊은 나이에 성공했다. 어떤 경우는 운이 좋아서였다. 하지만 내가 물질적으로 부유해졌다는 것이 훌륭한 사람이 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문제는 그걸로 무엇을 하는가이다." 

  최고의 직장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던 그가 자신을 아껴온 상사의 믿음을 버리고, 사랑하는 여인의 반대와 부모님의 염려를 뒤로 한 채 부모수의 사회사업을 시작  하게된 것은 네팔의 적당한 도서관조차 없는 500명의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과거부터 맹세해 온 '더욱 많이 베풀면서 살 것'을 더 이상 핑계를 대며 살지 않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각박하고 혼란스러운 사회라 할지라도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진실한 메시지는 기꺼이 함께 하려는 나누는 마음으로 돌아서게 만드는 것 같다. Room to Read 사업은 10년이 채 되지 않아 개발도상국가에 150만 권의 책을 기증했고, 3,000개의 도서관을 건립했으며, 200개의 학교를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천만 명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는 그날까지 오늘도 그 숫자는 아직 진행형이라고 한다. 

  지식에 경험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된다. 그 전까지는 단순히 '알고 잇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보사회가 되어, 지식편중시대가 도래하여 '알고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듯한데, 그것은 커다란 오해이다.

  '행동하는 것'과 '알고 있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 차이를 메워주는 것은 바로 현장에서 쌓은 경험이다. 독서를 통해 배우고 익혔으면 실천해야 한다. 머리와 가슴으로 느낀 감동 역시 어떤 방법으로든 표현하고 발전시킬 때 비로소 독서행위는 완성된다. 

  “심판의 날에 우리는 무엇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고 말한 토마스 아 켐피스는 말했다. 독서는 한 곳에 앉아 두 눈을 굴려 종이 위의 활자를 읽어 내려가는 단순한 짓이 아니다. 활자가 그려낸 글을 눈으로 읽고, 마음과 머리에 새겨 오늘보다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한 밑거름으로 마련하고자 함이다. 독서의 완성이 실천인 것처럼 보다 행복한 내 인생을 위해서도 항상 배우고 느낀 대로 행동해야 한다. 

  책 <실행이 답이다>는 이 실행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다.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와 <1%만 바꿔도 인생이 달라진다>는 책을 써서 심리학 관련 자기계발서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로 잘 알려진 이민규 교수가 썼다. 그는 “평범한 사람과 성공한 사람의 차이는 지식이 아니라 실천에 있고, 성공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차이는 전략이 아니라 실행에 있다”며 실천을 위해서는 실행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한 실행력은 성공한 사람들의 ‘타고난 본능’이 아니라 ‘스킬skill'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실행력은 곧 의지력이며, 의지력은 타고나는 자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결심을 작심삼일로 중도포기하고 난 후 스스로를 ‘의지박약자’로 책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틀린 생각이다. 실행력은 타고난 자질이 아니라 배우고 연습하며 누구나 개발할 수 있는 일종의 기술skill이다. 실행력이 부족한 것은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 효과적인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피아노를 치지 못하고, 왜 운전을 하지 못할까? 배우고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실행력도 피아노 연주와 운전처럼 일종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실행력이 부족하면 실천 노하우를 공부하고 연습하면 된다.“ 9쪽

 나는 이민규의 책을 좋아한다.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당장 실천하고 싶은 욕구’가 분기탱천憤氣撐天할 만큼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글을 읽기가 쉽다. 읽고 있노라면 그가 옆에서 혹은 내 앞에서 강의를 하는 듯하다. 심리학적 이론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설명하고, 재미있고 유익한 사례를 통해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그의 전작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 역시 그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사실 자기계발서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성과의 시작은 실행할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저자는 실행력은 ‘결심 - 실천 - 유지’라는 3단계를 거치면서 만들어지고, 실천가가 되려면 이 3단계에 적용되는 효과적인 지렛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슨 이론 같이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결심 - 실천 - 유지’는 ‘배우고 느낀 바를 꾸준히 행동으로 옮긴다’는 말을 단계로 만든 것일 뿐이다. 

  이번 역시 책 전반에 걸쳐 재미있는 사례와 풍부한 자료 그리고 손에 잡힐 듯한 눈에 보이는 설명으로 가득하다. 책을 읽다가 보면 ‘아, 그게 그렇구나... 이런 방법도 있구나... 그 사람도 그랬군.’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을 집어든 독자라면 ‘실행력을 키우고 싶은 독자’일 터, 읽고 나면 자신은 충분히 실행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고, 단지 빛을 발하는데 2%가 부족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걸을 수 있고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당신은 의지박약자가 아니다. 지금 걸을 수 있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은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분 모두에게는 그런 실행력이 있다. 이 책이 당신 안에 잠들어 있는 능력을 행동으로 실행하게 해주는 지렛대를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에필로그 중에서  

 우리가 한글을 잘 읽고 잘 쓰는 이유는 수백 수천 번 한글을 쓰면서 외웠고, 새로운 낱말을 국어사전을 통해 찾았으며, 받아쓰기를 했기 때문이다. 한 번의 반짝임은 ‘재능’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큰일을 만들거나 자신의 평생을 이끌어갈 ‘능력’은 그 재능들이 ‘습관’이 될 때 비로소 생긴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은 실행력이 있고, 충분한데 문제는 스스로가 그것이 ‘실행력’인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 비슷한 문제를 만날 때 다시 활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실행력’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주저하지 않고 과거의 경험을 활용한다. 단 한 번 일등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계속해서 일등을 하는 사람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성공을 이끌어낸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차이인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독자에게 묻기도 한다. 이 책의 독서를 완성하려면 성실하게 답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처럼 저자의 물음에 답하는 동안 독자가 스스로 답을 찾아내게 되기 때문이다. 이민규의 책은 신작이 출간될수록 완성도가 더해진다. 그래서 그의 신간이 늘 기대되고 출간되면 반갑다. <실행이 답이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특히 내가 늘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실행력’을 주제로 책으로 내줘서 더 없이 반가웠다. 저자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책, 이 책을 활용하느냐 마느냐는 독자의 선택과 실행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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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클릭할수록 퇴화되는 뇌와 진화하는 인터넷의 불편한 관계

 

  책이나 긴 기사에 쉽게 집중했었던 한 사람이 어느 날, 한두 쪽만 읽어도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안절부절 못하고 문맥을 놓쳐버리기 시작했다. 그가 쉽게 몰입했던 독서는 이제 힘들어하는 뇌를 억지로 붙들고 다시 글에 집중시켜야 하는 ‘투쟁’이 되어버렸다.

세계적인 IT 미래학자이자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는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인터넷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애틀랜틱Atlantic’지에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라는 글을 기고해 엄청난 파장과 함께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논의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인터넷이 양산해내는 얕고 가벼운 지식에 대해 경고하는 그의 글들은 급기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청림출판)라는 책을 낳았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주제는 다소 진부하다고도 볼 수 있다.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에 대한 찬반양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IT 전도사라 불리는 ‘니콜라스 카’가 최신의 미디어인 인터넷이 가져온 부작용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인터넷의 부작용이 단순히 중독 수준을 넘어 인간의 집중력과 사색의 시간을 빼앗아버린다는 그의 주장은 당장 책을 들게 했다.

  또한 지금은 손 안의 작은 컴퓨터, 스마트 폰이 휴대전화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오늘이 아니던가. ‘인터넷은 우리의 뇌구조를 바꾸고 있다’는 당찬 저자의 문제제기는 우리가 한 번쯤 깊이 논의해야 할 시의적절한 논제이기도 했다. 

 

  일찍이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전화,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과 같은 20세기의 ‘전자 미디어’에 의해 종이 인쇄물 등의 선형적 사고linear mind는 소멸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저자는 선형적 사고는 ‘전자미디어가 아닌 인터넷적 사고방식 에 밀려나 구식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얻는 정보와 지식을 활용하면서 ’똑똑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만, 이것은 착각일 뿐,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지적(知的) 기량은 독서와 같이 대부분 오래 걸려 획득된 스키마에서 나오는데, 짧은 정보만을 섭취하게 하는 컴퓨터는 스키마 형성을 위한 뇌 능력을 감퇴시킨다는 것이다.

 

  저자 역시 ‘읽기’에 관련해서 한때 언어의 바다를 헤엄치는 스쿠버 다이버였지만 인터넷 때문에 지금은 제트 스키를 탄 사내처럼 겉만 핥고 있다고 자평했다. 온라인에 넘치듯 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핵심만 재빨리 훑는 방식의 스타카토staccato식 읽기’에 익숙해지고, 생각하는 방식 또한 얕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게는 ‘광서방’(http://kwang.info/988)이라는 닉네임의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는 오래전부터 e-book으로 책을 읽고 블로그에 리뷰를 올리는 e-book 유저다. 광서방은 만날 때마다 도서관을 넣어도 될 만큼 장서를 보유할 수 있고, 가볍고, 휴대가 간편하고, 중요한 부분은 잘라서 저장했다가 요약본도 만들 수 있고, 무엇보다 컨텐츠 가격이 종이책보다 저렴하다는 등의 탁월한 장점을 내게 늘어놓으며 e-book을 권했다.

  업무상 잦은 외출과 출장하는 그에게 e-book은 더 없이 소중한 플랫폼인 것만은 틀림없을 터, 하지만 기계치인 내게는 그렇지 못했다.

 

  그의 말에 혹해 고액을 주고 단말기를 구입했지만, 채 한 권을 읽지 못하고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e-book 단말기를 볼 때마다 ‘나는 구식(舊式) 인간이라 종이라는 재질이 주는 물성(物性)을 놓지 못하나보다’며 애써 자위하며 지냈다.

  하지만 니콜라스 카의 주장에 내 생각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e-book을 즐겨 읽는 광서방은 내가 종이책을 읽을 때처럼 몰입을 할까?‘ 그가 과연 전자책을 얼마나 만끽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이 책의 리뷰에서 애먼 e-book을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오늘날 인터넷 시장의 뜨거운 감자가 e-book 시장이고, 저자 또한 최고의 지적(知的) 활동은 종이책과 같은 선형적 사고라고 말하고 있어 책의 전개 양상이 전자책과 종이책의 대결구도를 띠고 있어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러다이트Luddite나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단어마다 달려 있는 링크와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첨단의 e-book이 과연 ‘온라인 시대의 읽기’를 책임질 수 있는 ‘미래의 책’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회의적이다. 그는 킨들과 아이패드와 같은 기기의 최신 기능은 우리가 전자책을 선택할 가능성을 높여주겠지만 고요함 속에서 오래 집중하고 깊이 사색하게 하는 능력은 키워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인터넷에 대한 저자의 반기는 구글Google에까지 이른다. 한마디로 구글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만나는 것 역시 점점 편리할수록 인간의 두뇌는 단순해진다는 것이다. 첫 글자만 넣어도 알아서 단어를 선택해주고, 읽기를 위한 사색이나 잠시의 침묵도 들어설 여지를 주지 않는 구글의 ‘편리한 검색’은 결국 클릭할수록 인간의 집중력과 주의력은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또한 책의 디지털화를 꿈꾸는 구글의 북서치에 대해서는 ‘구글에 있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정보 더미이며, 짧은 발췌문만 가득한 도서관’일 뿐 이라고 말했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정보와 지식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 우리가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은 누구나 공유가 가능한 정보와 지식이 아니라, 시행착오라는 경험치가 더해져서 생긴 지혜일 것이다. ‘오랜 시간의 몰입과 사색’도 경험이 될 터, 선형적 사고의 독서는 통찰력이라는 지혜를 무수히 낳았다. 하지만 무수한 링크와 하어퍼텍스트로 이어지는 정보를 서치search하고, 스킵skip하고, 스캐닝scanning하며 얻어내는 결과 속에서 인간성의 정수인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까? 이 문제점을 극복할 수 없다면 인터넷 정보사회의 미래는 밝을 수 없을 것이다. 



 

  18절 종이를 반으로 접은 후 앞뒤에 쓴 72페이지 분량의 메모로 엮어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친필 작업노트(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로 불린다)는 지난 1994년 경매에서 약 3천만 불(약 36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낙찰되었다. 이 노트의 구입자는 공교롭게도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이었던 빌 게이츠였다. 사람들은 이 엄청난 낙찰가를 두고 ‘오늘날의 천재가 과거의 천재에게 보낸 멋진 찬사’라고 평했다. 하지만 니콜라스 카가 그 소식을 들었다면 낭만적인 대답 대신 ‘낙찰가가 터무니없이 싸다’고 말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노트는 ‘인터넷 정보사회’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진귀한 보물이기 때문이다. 

 

이 리뷰는 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출판전문잡지 

 [기획회의](292호)에 실린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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