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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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엇이든 글을 쓰고 싶다면 가장 먼저 읽어봐야 할 걸작 ! 

  내 오른쪽 손의 중지는 기형이다. 손톱 옆살이 누구에게 얻어맞아 혹이 난 듯 두툼하게 살이 솟아나 있고, 돋아난 살 가운데는 점이 들어있다. 그리 보기 좋은 손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또 사내의 손가락이 딱히 보기 좋아야 할 이유 역시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 손가락을 유심히 지켜볼 때가 생기면 사이즈가 20이라서 반지 값이 꽤 들었던 유난히 굵은 약지의 굵기보다 항상 오른쪽 손의 중지에 신경이 쓰인다. 어린 시절엔 왼쪽 중지와 엇비슷하게 평범했었다. 하지만 조금 더 나이가 들면서 중지 손가락은 거의 3 년 동안 항상 벌겋게 달아올라 손만 대도 아팠고, 모양도 차츰 흉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결국 가운데 손가락은 심하게 기형이 되어버렸고, 난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흉한 가운데 손가락은 비단 나만의 소유물이 아닐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손가락을 살펴보라(왼손잡이는 왼손 중지를 보시길). 거의 대부분 반대쪽에 비해 살이 돋아있거나, 약간 비틀어져 있다. 이 모든 것은 대부분 육각의 모서리를 가진 한 자루에 70원 짜리 모나미153 볼펜 덕분이며, ‘죽도록 외워는 자가 이길 수 있도록’만든 제도권 교육 정책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의 학창시절을 되돌아 보면 하루 종일 펜을 쥐고 뭔가를 적는 모습이다. 영어단어든, 수학공식이든, 하다 못해 교과서 모서리에 낙서를 하든 뭔가를 끼적댔다. 그리고 나처럼 머리가 많이 둔해서 쓰는 만큼 외워진다고 생각한 학생은 유난히 많이 그 짓(?)을 했을 것이고, 머리가 아주 좋은 학생이거나, 아예 머리 굴리기를 포기한 학생이라면 비교적 덜 끼적댔을 것이다. 그 시절 우리는 뭔가를 하루 종일 썼다. 하지만 그 글 속에는 내가 없었다. 만약 그 시절 노트에 나의 이야기와 내 생활을 적으라 했다면, 그래서 그것을 누가 봤더라면 담임은 심각한 부모님을 불렀을지 모른다. ‘공부 없는 세상이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이라고 썼을 테니까. 

  열 두 해 동안 손에 펜을 쥐고 항상 뭔가를 긁적거렸으면서도 난 ‘글쓰기’를 못한다. 방학숙제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숙제가 ‘일기’였고, 반성문을 쓰기 싫어서 한 번쯤 할 법한 일탈도 꿈꾸지 않았다. 그랬던 요즘 들어 내가 느즈막히 글쓰기에 관한 책을 구해 읽는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간에 남아나는 빈대가 없다’고 했던가? 뭔가를 끄적이고 끼적거리는 짓에 재미가 들었기 때문이다. 재미야 둘도 없이 친한 친구와 질펀하게 술마시며 밤을 지새우는 재미만 하겠는가? 하지만 글쓰기에는 그도 따를 수 없는 묘한 재미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내가 나와 노는 재미’가 있다는거다. 그 재미를 더하고자 또 한 권을 집어들었다. 어제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한문화)를 읽었다.



 

   글쓰기는 이태백의 술잔이다. 그가 사랑한 술 속에 꿈에라도 가고 싶은 달 그림이 담겨 있듯, 내가 쓴 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글이란 것이 묘해서 쓸 때는 내가 되더니 쓰고 난 뒤에는 남이 되어 나를 보게 한다. 원래 글의 목적이란 ‘남기기’ 위함일진대 쓰다가 보면 그 목적보다는 ‘나를 살피게’ 되더란거다. 그래서 글쓰기는 맹랑한 궁싯거리기가 아니라 ‘나와 내 속의 나의 대화’란 것을 알았다. 기왕에 대화를 나눌 바에는 보다 잘 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온라인에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명저’로 소문난 책이다. 1986년에 작가이자 글쓰기 강사인 나탈리 골드버그에 쓰여진 이 책은 출간되고 백만 부가 넘게 팔리고, 세계 각국으로 번역되면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 책이다. 그녀의 글에 주목해야 할 것은 글쓰기와 저자가 체험한 선禪이 접목되었다는 사실이다. ‘덜어내고 덜어내고 더 이상 덜어낼 것이 없을 때 완벽한 글이 나온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이 있듯이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최고의 글이 되는 것과 간결하고 고요한, 그리고 심플하고 따뜻함을 추구하는 젠(Zen, 禪)은 묘하게 닮았다. 

그렇다면 다소 음산한 제목이 말하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의미는 뭘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이 책의 한 부분, 가령 모든 사물에 개별적인 정체성을 주어 접근하라는 글을 읽었다고 치자. 이 말은 추상적이거나 아주 일반적인 문체를 가진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이번에는 자신을 누르지 말고 감정의 파도에 실린 그 상태로 글을 몰고 가야 한다고 써 있다. ‘진실을 글로 나타내려면 쓰는 이가 자신의 내면 아주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만 한다는 내용이다’.” (본문 17 쪽)

  글쓰기에 있어 가장 무서운 적은 ‘자기검열’이다. 글을 써서 한 문장이 채 완성도 되기 전에 자신이 쓴 글에 대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소름이 돋는다’고 스스로 평한다던지, 도대체 맞춤법이 맞는 것인지 의심스러워 사전을 찾고 싶어진다면 내가 쓴 두 번째 문장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사람들이 저마다 울음소리가 다른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사연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실컷 울고 나면 내 마음이 편한 것도 울면서 ‘모두’ 토하듯 말을 했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주제가 무엇이든, 소재야 어떻든 우선 머릿속 생각을 비우듯 아무 제약 없이 남김없이 글로써 쏟아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글쓰기 경험과 선체험을 더해 이야기해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깊숙한 내면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글로 나타낼 수 있도록, 그리고 글을 쓸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저자가 제안하는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 손을 계속 움직이라. 방금 쓴 글을 읽기 위해 손을 멈추지 말라. 그렇게 되면 지금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 편집하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라.

● 철자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 여백을 남기고 종이에 그려진 줄에 맞출려고 애쓸 필요 없다.

●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 생각하려 들지 말라. 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들라.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거기에 바로 에너지가 있다. (본문 26 쪽)

  저자는 목표에 닿기 위해서는 이 규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목표란 ‘진짜 마음이 보고 느끼는 것을 쓰는 것‘이고, 이럴 때 바로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글쓰기 훈련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글쓰는 연습‘이다. 연습의 결과는 ’습관화‘다. 이는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지 않으면 하루를 개운하게 시작할 수 없는 것과 같고, 마치 흡연가가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과 점심을 먹는 자리를 가서도 식사 후엔 담배가 피우고 싶은 것과 같다. 하루에 단 한 단락이라도 글을 쓰지 못하면 허전해져서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가 될 때 글쓰기 훈련은 완성된다. 저자는 글쓰기 훈련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 훈련은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마음을 지속적으로 열어 나가게 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스스로에 대해 믿음을 키워 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옳았을 때만 좋은 글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글쓰기 훈련은 진정으로 쓰고 싶어하는 어떤 것을 쓰기에 앞서 몸을 데우는 워밍업 단계다. 훈련은 작품을 만들어 내기 전에 거쳐야 하는 가장 기초적이며 본질적인 바탕 그림에 해당한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법을 배운 다음 글을 쓰게 되면, 그것이 사업상의 서류이든 장편 소설이든 박사 논문이든 또는 여행기이든, 그 글에는 힘이 실리게 된다.“ (본문 30 쪽)

  세상에 천재는 없고 1만 시간의 열정과 노력을 다한 아웃라이어만 있다는 말콤 글래드웰의 말처럼, 타고난 글쓰기 천재는 없다. 독자가 읽기 쉬운 글은 필자가 각고의 고통을 감수하며 어렵게 쓴 글이다. 기상해서 양치질을 하듯, 흡연가가 식후에 담배 생각이 나듯 내 생활 속에 ‘글쓰기’가 배어 있다면 좋은 글을 쓸 준비는 마친 상태가 된다. 그렇다면 저자 만의 글쓰기 훈련법은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한 달에 노트 하나를 채우는 것으로 내 임무를 다 한다(나는 작품을 쓸 때마다 나 자신만을 위한 글쓰기 안내서를 항상 새롭게 만든다). 그저 이 노트를 채우면 그만이다. 그것이 내가 정한 나의 글쓰기 훈련법이다. 이것이 나한테만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이것을 지키지 못할 때도 스스로를 심판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으려 한다. 아무튼 자신의 이상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 몇 안 되지 않는가.” (본문 32쪽) 


   저자가 제시한 문장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조언은 바로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글을 쓰라는 것이다. 글을 쓰는 순간 우선 내가 바라봐야 할 사람은 무라카미 하루키도 아니고, 신경숙도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속에 담기 내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글로 옮길 수 있다면, 그것은 나를 비우는 작업이 된다. 기쁨과 슬픔 그리고 고민과 열정을 토해낼 때 나는 ‘후련함’을 경험할 수 있다. 글쓰기는 머릿속을 비우는 작업이요, 다시 채울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 글쓰기는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가 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 책의 독자는 ‘작가’를 꿈꾸는 이에 국한된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쩌면 우리는 이미 글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냐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댓글을 달며, 이메일을 답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아가 미니 홈피와 블로그라는 나만의 공간에서 맛집과 영화, 그리고 상품에 대해 평을 하고, 나의 일상에 대해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자 글쓰기 선배의 선험적인 고백이다. 그래서 자못 딱딱한 이론 수업이 될 법한 글쓰기론이 한 편의 수필이고 자전적 소설처럼 읽힌다.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읽는 이로 하여금 금방이라고 책을 덮고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게 하는 충동을 일으키게도 한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글쓰기의 바이블’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꾸준한 사랑을 받는 저력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저자는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라고 했다. 두 달 전에 괜찮은 글을 썼다고 해서 앞으로도 좋은 글을 쓴다는 보장은 없기에 언제나 새롭게 글을 써야 하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도 없는 여행일지라도 절대로 부러질 리 없는 지팡이와 튼튼하고 편한 신발, 그리고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는 모자가 있다면 다소 막연한 여행이라도 떠나봄직 하지 않을까? 글쓰기의 여행을 떠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더할 나위 없는 지팡이가 되고, 신발이 되며, 모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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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이야기
가와시마 고타로 지음, 양영철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잃어버린 10년의 장기 불황을 딛고 일어선 유니클로의 성장 비밀 

  세계적인 의류기업중에 베네통BENETTON이라는 그룹이 있다. 이탈리아 베네토주 트레비소에서 태어난 루치아노 베네통(Luciano Benetton)가  막내 동생의 자전거와 자신의 아코디언을 판 돈으로 구입한 낡은 편물기계로 여동생 줄리아나가 짠 다양하고 화려한 색상의 스웨터를 도매상에 팔면서부터 시작된 이 기업은 1980년대부터는 의류 뿐 아니라 선글라스, 시계, 보석, 향수, 화장품, 스키용품 등 다양한 분야로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의류기업으로 성장했다.

  베네통의 성장에는 세계패션계를 뒤바꿀 중요한 사건이 숨어있다. 1960년대 초반까지 모든 의류 회사는 선염가공한 실로 직물을 짰으나, 베네통은 획기적인 후염가공공정 기술을 개발해낸 것이다. 이 기술은 원하는 색이면 무엇이든 뽑아낼 수 있게 되었고, 화려하고 다양한 색상의 스웨터가 2차 세계 대전 이후 마치 흑백사진과도 같던 세계 패션계를 컬러사진으로 바꿔놓는 신기원을 이뤄냈다. 게다가 기계설비에 의한 스웨터 제작기술로 제조비용을 낮춰 적은 비용으로 누구나 따뜻하고 질 좋은 스웨터를 입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베네통이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의류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1984년부터 패션 사진 작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Oliviero Toscani)를 광고 책임자로 발탁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파격적인 광고 때문이었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환자, 가라앉는 배 속에서 공포에 질린 사람들, 흑인 엄마의 젖을 먹는 백인 신생아 등 사회적 이슈를 파격적으로 다룬 광고로 전 세계에 베네통의 독특한 기업 이미지를 인식시켰다. 일부 국가로부터 광고가 금지되고 판매를 불허하겠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베네통은 이러한 광고를 그치지 않았다.

  그 이유 중에는 의류홍보에 버금가는 주제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고급의류로 평가되는 스웨터를 전 세계인이 입을 수 있게 변화된 것처럼 모든 사람은 사상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근원적 휴머니즘’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기업정신은 글로벌 기업으로써 성장할 자질이 충분한 기업이라는 세계의 평가를 얻어내며 성장할 수 있었다.  



 



 



 

   오늘날 베네통의 성장에 비견되는 의류기업이 있다. 바로 ‘유니클로’다. 유니클로는 ‘잃어버린 10년’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장기불황 기간 동안 일본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국민기업’이다. 왜냐하면 얇아진 지갑에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일본 국민을 따뜻하게 지켜준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 비밀에는 바로 ‘플리스’가 있었다. 방한복의 내피로 주로 사용되던 ‘플리스’를 유통구조혁신으로 비용으로 낮추고 내피가 아닌 활동복으로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유니클로‘는 몇 년 전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수입되어 같은 이유로 이제 한국 국민들을 따뜻하게 해주며 점차 사랑을 얻으며 성장하고 있다.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이야기>(비즈니스북스)는 '유니클로’의 성장비밀과 이를 가능케 한 창업주 야냐이 다다시를 파헤친 책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유니클로와 야나이 다다시에 관련된 책이 100여 권이 출간되어 있지만 국내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책이라 유난히 반가웠다. 원제목은 ‘ユニクロ・柳井正 ― 仕掛けて売り切るヒット力 유니클로 야나이 다다시 - 걸기만 하면 매진되는 히트력‘이다. 



 

   독자로서 ‘기업의 성공스토리’를 읽는 이유 중에는 ‘알면 백 배 더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할 때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소비하는 제품들에는 제 나름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 스토리를 알고 나면 단지 필요에 의해 구입할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마치 우리가 세계적인 피켜 스케이팅 선수로 유명한 김연아 선수의 성장과정을 지켜봐 왔기에 경기중 조금의 실수에 안타까워하고 분발할 것을 응원하는 것처럼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 역시 탄생에 숨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면 소비자는 내가 좋아하는 제품을 더욱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세계적인 치킨 프랜차이즈인 KFC의 원래 이름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었다. 그리고 매장 앞에 사람 크기 모양으로 크게 진열된 인형은 바로 창업자인 ‘커넬 샌더슨’이다. KFC는 미국에서 ‘창업은 나이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진리를 잘 보여주는 케이스로 통한다. 왜냐하면 KFC는 창업자인 커넬 샌더슨이 64세에 창업을 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이라면 벌써 은퇴를 하고 손자들의 재롱을 살펴야 할 나이에 흰 양복의 할아버지는 특별한 양념과 닭튀김 기계를 차에 싣고, 차 속에서 생활하며 미국의 전역을 돌면서 ‘로열티계약’을 따내며 체인점을 늘려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공시켰다. 그럼 왜 KFC로 이름을 바꿨을까?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름이 바뀐 즈음은 튀겨내는 음식은 비만을 부른다는 의학발표가 있고 난 다음이다.

  이 밖에도 ‘마시는 소화제’로 통하는 활명수가 독립자금을 대는 기업이었고, 배탈, 설사에 먹는 특효약으로 알려진 ‘특이한 냄새’의 정로환(征露丸)의 이름은 러일전쟁때 일본병사의 물갈이에 의한 설사를 막아준다 해서 러시아(露: 일본식 표기)를 정벌(征)한 환약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재미있지 않은가? 이를 두고 ‘아는 만큼 보이고, 알면 백 배 더 즐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이야기>를 읽으면 '내가 입은 유니클로의 의류가 왜 그렇게 싼 지’를 알게 된다. 또한 입을수록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유니클로의 의류에는 어떤 ‘과학’이 숨어 있는지도 알게 된다. 또한 ‘10년 불황’에 허덕이며 맥을 맥추던 일본의 기업들 속에서 ‘독야청청’할 수 있었던 ‘유니클로의 성장 비밀’도 알게 된다. 우선 기업의 창업주인 야나이 다다시 기업가 정신부터  주목해 보자.

  야나이 다다시는 합리적인 사고로 ‘벤처경영’을 실현함으로써 업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는 ‘혁신’를 이끌었다. 유니클로의 원래 이름은 UNIQUE독자적인 CLOTHING의류 WAREHOUSE창고다. 그는 이름의 뜻 그대로 유니클로를 ‘소비자가 가까운 곳에서 조금씩 자주 사는 옷’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야나이 다다시가 유니클로에서 중점을 둔 것은 바로 패션, 사이즈, 색상, 그리고 TPO(Time, Place, Occasion)였다.

  아버지의 소매 의류점을 넘겨받은 야나이 다다시는 제일 먼저 기존의 의류매장이 추구하던 직원들의 접객태도를 바꿨다. 와세다 정경학부를 졸업한 ‘경제통’인 그에게 의류제품은 마땅이 ‘고객이 돌아다니면서 살펴보고 구입하는 물건’이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장사라는 게 온통 ‘파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비즈니스는 고객이 ‘사주어야’ 이뤄지는 것인데, 파는 것에만 집중하는 상업주의는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업가의 입장에서 ‘매장 안에 들어온 손님이 옷을 사지 않으면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태도로 접객해야 한다는 기존의 판매방법을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마음껏 고를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매장을 만들어냈다. 

  두 번 째는 바로 시간이다. 그는 개장시간을 오전 6시로 바꿨다. 모두가 출근하거나 등교한 이후인 10시에 문을 여는 업계의 관행은 ‘낭비’라고 생각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유니클로의 고객을 특정 연령대로 지정하지 않고 남녀노소 모두가 애용할 수 있는 제품이 될 수 있는 의류기업으로 전환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색상과 저렴한 가격 그리고 어느 옷에나 어울릴 수 있는 베이직한 디자인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도입된 방식이 바로 SPA 방식이다.

  SPA 방식은 Speciali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srel의 약자로 제조직매전문업체를 뜻한다. 즉 자사상표 의류 전문점으로 종전의 납품을 받아 판매하는 일종의 소매방식에서 직접 디자인과 제조 그리고 판매를 동시에 운영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이것은 생산단가와 유통비용을 줄여 제품의 생산가를 낮출 수 있었다. 게다가 노동임금이 싼 중국업체에 하청을 두되 ‘완전구매 방식’을 택해 더욱 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얻어냈다. 이런 그의 파격적인 경영을 두고 이 책의 저자는 ‘벤처 경영’이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생각은 자주 ‘상식’이라는 고정관념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외부에서 야나이 다다시 사장의 결론만 보면 매우 놀라워한다. 하지만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그의 사고 과정을 살펴보면 충분히 납득하게 된다. 유니클로가 지속적으로 성장한 원동력에는 그의 합리적인 발상과 상식을 뛰어넘는 아이디어가 큰 몫을 했다. 이는 유니클로와 야나이 사장이 고속성장할 수 있었던 최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본문 28쪽



 

  이처럼 다양한 혁신으로 저렴한 가격과 공급력을 확보한 유니클로가 비약적인 성공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플리스라는 의류소재였다. 가볍고 얇으면서 보온성이 좋은 플리스는 비교적 두꺼운 옷 보다는 얇은 옷을 겹쳐입는 레이어드룩을 즐기는 일본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플리스는 상품력을 가능케 해서 1999년 2600만 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를 이룩하며 일본내 최고의 의류기업으로 급성장하게 했다.  

  이후 폴란드제 다운 솜털을 사용한 다운재킷, 고급 캐시미어 스웨터, GIZA 45라는 이집트면을 사용한 셔츠 등 다양한 섬유소재들을 시도하며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고 마침내 2008년에는 신체에서 발생하는 수증기를 소재가 흡수하고 제체적으로 발열과 보온을 하는 상품인 히트텍Heattech을 개발해 또 한 번의 중흥기를 맞이했다. 2008년 가을과 겨울 시즌 상품으로 2,800만 장을 준비했지만, 가을이 끝나기 전에 모두 동이 나버린 것이다.

  야나이 다다시는 지난 2008년도 경영 능력이 가장 뛰어난 ‘올해의 경영자’에서 2위인 소프트방크의 손정의와 3위인 파나소닉의 오쓰보 후미오를 물리치고 1위를 차지했다. 또한 그는 2008년 말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일본 자산가 랭킹 1위에도 올랐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야나이 다다시의 ‘벤처 정신’ 때문이었다. 

  그가 쓴 책 <1승 9패>라는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든 성공스토리가 그렇듯 실패는 어느 곳이나 찾아온다. 하지만 대기업이 되어버린 유니클로에게 실패는 상상을 초월하는 큰 손실을 의미한다. 그는 실패를 감지하면 아무리 큰 손실을 입는다 해도 사업을 접었다. 작게는 재고관리등 시스템 상의 실패에서부터 크게는 외국진출에서부터 중소기업을 능가하는 브랜드까지 판단이 서기만 하면 바로 실행에 옮겼다. 저자는 실패에 굴하지 않는 그의 ‘벤처정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보통의 경영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쉽게 궤도를 수정하지 못한다. 하물며 자신의 지시로 시작한 비즈니스가 실패할 때는 그 사업에 더 집착하게 된다. 그럴수록 실패에 대한 대응이 늦어져 결국은 큰 치명상을 입게 마련이다.

그러나 야나이 회장은 실패할 경우에는 그것을 단칼에 도려낸다. 실패라는 판단이 서면 단번에 손을 빼고 방향을 전환한다. 이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경쟁이 심한 의류소매업계에서 정상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본문 103쪽

  ‘실패는 곧 수치’라는 정서가 짙게 깔린 일본, 그래서 실패할 것 같으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일본 사회풍토에서 이러한 야나이 회장의 행동은 거의 미친짓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불황의 일본’에는 가장 주효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야나이 다다시는 그의 책 <1승 9패>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실패하더라도 회사가 망하지 않으면 됩니다. 실패할거라면 빨리 실패를 경험하는 편이 낫습니다. 비즈니스는 이론대로,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빨리 실패하고, 빨리 깨닫고, 빨리 수습하는 것이 제 성공 비결입니다.” 본문 105 쪽 


   머리에서 발끝까지 철저하게 ‘벤처정신’으로 무장된 야나이 회장이지만 그에게도 문제는 있다. 이제 나이 60에 다가선 그에게 유니클로를 맡길 ‘최적의 후임자’가 없는 것이다. 능력있는 CEO를 고용해 봤지만, 야나이 다다시처럼 뼛속까지 ‘벤처정신’으로 무장된 적임자는 아니었다. 나이 50을 넘기면 경영자는 떠나야 한다고 늘 말했던 그였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평생을 경영해야할 판’이라고 말하는 슬픈 경영자다. 또한 유니클로는 규모의 경제가 불러오는 어쩌면 당연한 ‘대기업병’에 들어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대기업병 일소, 본업 강화, 업종의 다각화를 추진해 ‘매출 1조 엔 달성’을 이룩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경영을 이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오늘도 유니클로를 이끌고 있다.

  지금까지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유니클로의 이야기가 물고기의 비늘이었다면, 이 책은 내게 유니클로라는 물고기를 온전하게 보여주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성공스토리란 것이 미화되고, 기업친화적인 성격이 있어 책을 읽는 독자는 어느 정도 접어주고 읽어야 하는데,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비교적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기업과 경영인을 대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이 책의 내용 전부가 창업자인 야나이 다다시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은 오랫동안 유통업계에 몸담고 있는 경영컨설턴트이자 저널리스트인 가와시마 고타로가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나름대로 경영분석을 기록했다. 원래 유니클로에 대한 책으로는 자서전으로 통하는 <1승9패>가 먼저 출간되었고, 훨씬 더 유명한 책이다.  유니클로에 대한 책이 국내에 출간된다면 <1승 9패>가 출간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텐데, 마치 영화의 속편을 보는 듯해 아쉬웠다. 수소문을 해보니 국내의 어느 출판사가 판권을 소유하고 있을 뿐 아직 출간하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하루빨리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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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 본죽 대표 김철호의 기본이 만들어낸 성공 레시피
김철호 지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음식은 상품이 아니라, 손님이 서운함을 느끼지 않을 만큼 가치있는 정성이다!    



  기업가의 성공스토리를 읽는 것은 소설보다 재미있다. 왜냐하면 허구인 소설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같은 진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했던 한 사람이 ‘해내겠다’는 신념 하나로 소비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한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서점을 뒤져보면 이러한 ‘성공스토리’는 거의 외서가 차지한다. 소비자라면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는 글로벌 기업의 창업자나 CEO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야말로 소설 같은 사연을 가진, 그래서 자국(외국)의 많은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은 바 있는 성공스토리가 나머지를 차지한다. 국내 기업의 성공스토리는 어떨까?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아니, 희귀할 정도로 적다. 왜 그럴까?

  추측컨대 우선 우리의 기업가들은 성공스토리를 쓸 시간을 낼 수 없을 만큼 바쁜 때문 것이다. 아니면 경제적으로 따져볼 때 ‘비경제적’이라는 판단도 있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기업가가 책을 쓰기 위해 공을 들이는 시간만큼 일을 한다면 ‘인세’의 몇 곱절에 해당하는 수익을 얻을 수 있는데, 굳이 책을 쓸 이유가 뭔가? 생각해 보면 기업가의 성공스토리는 소비자나 독자에 대한 ‘이타심’이 없다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분야의 책다.

  억측일 수 있겠지만 책을 쓸 만큼 대단한 일을 했다고도 생각하지 않거나, 책을 쓸 수 없는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특히 중소기업의 CEO나 성공한 영세 상인들이 해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기업가들을 실제로 만나 ‘책으로 내도 될 만한 좋은 꺼리’라고 이야기하면 ‘에이~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고’ 손사레를 치거나, 기업의 노하우가 공개되는 것을 꺼려서 거부하곤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혹시라도 무슨 떼돈이나 번 것처럼 여겨져 세무당국의 주목을 받아 ‘세무조사’라도 나올까 두려운 때문은 아닐까?

  내 추측이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국내 기업가들의 책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가물에 콩나듯 국내 기업가의 성공스토리가 나오면 많은 주목을 받곤 한다. 일례로 지난 해 건강식품을 만드는 기업인 ‘천호식품’의 창업자인 김영식 회장이 쓴 책 <10미터만 더 뛰어봐!>많은 주목을 받아 베스트셀러로 오른 바 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끝에 맺은 천호식품의 성공스토리도 감동적이지만, 창업자 스스로가 세일즈맨이 되어 발로 뛰며 소비자를 찾은 김회장의 생생한 에피소드들이 세일즈맨으로서 가져야할 행동수칙으로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지난 IMF 구제금융 시절 길거리 창업이 붐을 이루고 있을 때 정장을 입고 호떡을 파는 사내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맛도 맛이지만 손님을 대하는 마음과 정성을 표현하기 위해 365일 내내 정장차림으로 호떡을 구워 말 그대로 ‘호떡집에 불이 난 듯’ 인기가 높다는 소식을 언론이나 TV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사내의 이름은 김철호, 지금은 유명한 음식기업의 사장님이 되었다. 바로 죽 전문업체인 ‘본죽’이다. 김철호 사장이 가맹점 1,200개의 본죽을 일궈낸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책 <정성>을 읽었다. 




 

   성공스토리의 구성은 거의 비슷하다. 직장을 나왔거나, 사업에 실패해 맨주먹으로 고생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좋은 ‘창업 아이템’을 잡는다. 전 재산을 털고, 주위에서 돈을 빌려 창업을 하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더니 대박이 났다. ‘이제 부자가 되는가보다’하고 잠깐 안심을 하고 잠시 한 눈을 팔았더니, 갑자기 쪽박일로를 치닫게 돼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사업에 매진해 결국은 성공하더라는 구성이 아니던가? 앞서 말한 대로 ‘그렇고 그런 늘 뻔한 이야기’라고 치부한다면 결코 ‘성공스토리’를 온전히 읽을 수 없다. 

  성공을 수집해서 종합한 ‘성공학’이 있듯 실패의 여러 사례를 정리한 ‘실패학’이란 게 있다. 성공이 되었든, 실패가 되었든 사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뻔한 이야기라도 충분히 들을 가치가 있다. 특히 창업을 꿈꾸고 있다면 음식점의 성공스토리는 독자들에게 의미가 크다. 최소한 한 번 이상 방문해서 식사를 한 적이 있어 ‘내가 먹어봤던 음식점’의 스토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익한 정보라는 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직장인의 꽃은 창업, 즉 점포의 사장님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창업자들 중 대부분이 업종은 ‘먹는장사’ 판매방식은 프랜차이즈를 선택하고 있다. 국내 프랜차이즈 업체의 성공스토리를 책으로 낸 사례는 많지 않기에 이 책은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은 창업에 있어 많은 여지의 시사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

저자가 성공하기까지의 수많은 역경을 따로 말하지 않으려한다. 그것은 독자가 직접 책을 통해 들어야 할 몫이다. 여기서는 본죽이 지금에 이르게 된 성공포인트를 살펴볼까 한다.

  우선 아무나 할 수 없는 ‘음식종목’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죽은 밥이다. 이 말은 곧 흔하다는 뜻도 될 수 있고, 내 어머니가 해주시는 게 아니면 어디든 딱히 다를 바가 없다는 뜻도 된다. 쉽게 말해 ‘내 엄마가 해주시는 밥과 죽이 제일 맛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죽은 어쩌면 ‘상품성’이 없는 제품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죽은 맛있는 밥을 짓는 이상의 실력과 노력이 필요한 음식이다. 특히 ‘죽’은 아이나 노인, 그리고 병약한 환자들이 주로 먹는 음식이 아니던가? 그래서 칼국수에서 심지어 묵은지까지 수많은 음식이 상품화 되었지만, 죽은 ‘사이드 메뉴’일 뿐 굳이 돈을 주고 사먹을 메뉴가 아니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점에 주목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음식, 게다가 아무리 잘 만든다 하더라도 ‘그래봤자’ 죽이라 여기고 모두 외면한 음식에 집중한 것이다. 

“사실, 왜 하필 죽이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솔직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남들이 하지 않은 거니까요.”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모든 음식을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었고, 그런 생각들이 모여 본죽의 차별화된 장점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본문 55쪽

  미용실은 이미 있었지만, 남자들을 위한 미용실은 없었다. 그래서 ‘블루클럽’이 짧은 시간에 국내를 장악하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었다. MP3 플레이어가 처음 나왔을 때 세계시장 점유율은 우리나라가 최고였다. 하지만 국내업체들이 ‘저작권’을 이유로 아예 무시했던 소프트웨어, 즉 음원시장을 아이팟은 ‘아이튠즈’라는 플랫폼으로 통합시켜 단 몇 년 사이에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을 점령해 버렸다. 블루오션은 이전에 없던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새로이 발견하는 것’이다. 본죽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성공 창업 아이템’은 기발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무시하는 아이템, 버려진 아이템, 한물간 아이템에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창업할 때의 원칙을 지켜내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죽’이라는 사업아이템을 결정하고 ‘전통을 중시하는 메뉴와 젊은 층이 즐길 수 있는 메뉴’를 개발했다. 그리고 ‘그냥 죽’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밥 대용으로 즐길 수 있도록 고민했다. 저자는 장사에서 처음 정한 원칙을 벗어나는 순간 실패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주위의 의견을 듣는 것은 중요하지만 자신의 올바른 선택이 아닌, 그저 남의 의견에 줏대 없이 이끌리게 되면 일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그는 창업 때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음식장사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고객에게 향해 있었으며 이것은 결코 나의 욕심만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맛있고 한 끼 식사로 충분한, 맞춤 죽’을 만들겠다는 나의 원칙. 이런 차원에서 볼 때, 나의 원칙과 첫 마음은 힘들지만 지켜내야 했던 중요한 부분이었다.

(중략) 어렵지만 지키기 힘든 수많은 원칙, 그것이 훗날 본죽을 본죽답게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지금 어려운 상황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면, 가고자 했던 길에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음을 느낀다면, 자신을 가장 자신답게 만드는 첫 원칙과 첫 마음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본문 107~109 쪽

  본죽 제품의 양은 대체로 꽤 많다. 그래서 양을 적게 하고 가격을 내리자고 주위에서 조언했다. 누군가는 다다익선인가, 박리다매인가를 언급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환자가 아닌 일반인이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죽’이라는 처음의 원칙을 지켰다. 그래서 여성의 경우 양을 줄이고 대신 포장을 해줬다. 노인의 경우는 세 번에 나눠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영업시간이 다 되서 찾아주는 손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 그릇이라도 더 팔자’는 심리적인 유혹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다음날 찾아주는 손님을 위해 영업시간을 지켰다.

  저자를 통해 ‘원칙의 힘’을 배울 수 있었다. 원칙의 반대말은 ‘변칙’이다. 임기응변과 융통성을 발휘한다고 말하지만 변칙은 원칙을 어긋난 것이다. 이 말은 곧 ‘시스템화’되지 못함을 뜻한다. 사업은 하루 이틀하는 것이 아니다. 내일의 손님을 위해 직원들을 위해 순간의 이익을 떨쳐내는 힘은 ‘원칙 고수’에서 나온다. 원칙을 지키는가의 여부에 따라 장사꾼과 사업가로 나뉘는 것이다.

  “음식은 상품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돈 벌자고 하는 장사인데 어떻게 상품이 아닐 수 있나. 무슨 자선사업 합니까?”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음식이 상품이라는 생각, 원가를 재고 따지며 음식 자체에서 수고와 비용을 덜어내려는 생각에 철저히 반대한다. 이는 음식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음식이란 ‘넉넉하고 푸근한 것, 절대 먹고 나서 서운한 감이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중략)

  사업을 자선사업처럼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들고 나는 수 개념을 명확히 따지되 음식 자체에 드는 원가만큼은 손대지 않고 철저히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유혹이 많은 현장에서 지켜내려면 기본적으로 주인에게는 음식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나가는 음식이 아깝지 않고 사업 또한 즐거워진다. “고객이 계산하면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절대로 들지 않도록 하라.” 본문 115~117 쪽

  소비자로부터 사랑받는 제품과 서비스의 공통점은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가치價値는 다시 말해 ‘값어치’를 뜻한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도 ‘기꺼이 돈을 꺼낼 때’가 값어치 있는 제품이다. 소비자가 이렇게 행동할 때는 ‘상품=가격’이 아니라 ‘상품>가격’일 때다. 다시 말해 가격보다 가치가 있는 제품을 구입할 때 소비자는 ‘만족감’을 느낀다. 그리고 행복해 한다. 소비자가 제품 사용하고 행복해 할 때 재구매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가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소비자 주권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가장 기본적인 말이기도 하지만, 기업가는 먼저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제품을 우선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그 제품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여기서 여건이란 ‘공간’도 될 수 있고, ‘디자인’도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 제품이 최대한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본죽의 성공요인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죽 시장’을 개척했고, ‘원칙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성공의 정도를 계량화하여 보여주지 않은 점, 그리고 직원들의 서비스와 청결, 그리고 어느 가맹점을 가더라도 같은 맛을 낼 수 있는 표준화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어 다소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거나,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창업자라면 읽어 둘 필요가 있다. 앞서 말한 본죽의 성공비결과 창업에서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에피소드등 주위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알찬 정보들이 많기 때문이다. 성공스토리를 읽으면서 독자로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성공의 크기와 정도가 아니라 성공까지의 과정이라는 점다. 책을 읽은 후 본죽을 찾아 음식을 먹는다면 이전과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어 기업을 아는 자 만이 느낄 수 있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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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위해 사는 법 - 삶과 죽음의 은밀한 연대기
기타노 다케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인생 뭐 있어? 너 답게 살다 가란 말이야, 바보야 !

  남의 장례식葬禮式을 가는 것은 책 열 권 읽는 것보다 낫다. 단 한 가지, ‘오래동안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새삼 솟구치기 때문이다. 고인故人의 영전에서 ‘잘 사는 삶’을 추구한다니 이기적이고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이보다 더 생생하게 얻을 기회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잘 사는 삶’이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렸다가 가는 삶을 말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아직 장례식장을 가보지 못한 자가 던진 질문일 것이다. 무엇인가 얻고자 두 주먹 불끈 쥐고 태어난 것이 인간의 탄생이라면, 운 좋다면 두 손 곱게 펴서 염하고 삼베 수의壽衣 하나 걸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죽음임을 알게 되는 것이 장례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잘 사는 삶’의 욕망을 느끼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죽다가 살아나는 것’이다. 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다 완쾌되거나, 사고를 당해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이라면 ‘잘 살고 싶다’고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어떤 이유이든 ‘죽다가 살아난’ 경우는 더욱 절실해진다. 제 과실로 위험에 이르렀으면서 마치 ‘새로 태어난 듯’ 감사하고 또 감사해진다. 문제는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가는가 하는 것이다. 1년? 6 개월? 한 달? 잘 나가는 일본의 코메디언이 어느 날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자신이 ‘상처투성이에 얼굴도 찌그러진 인형 옷’처럼 느껴질 만큼 크게 다친 그는 사고 후 삶에 대해, 그리고 다가올 죽음에 대해 고민하며 병상일기를 썼다. 그 코메디언은 우리에게는 영화 <하나비><기쿠지로의 여름>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기타노 다케시’다. 그의 책이 심심찮게 나왔는데, 이젠 거슬러 1995년에 쓴 책까지 나왔다. 의미심장한 제목, <죽기 위해 사는 법>을 읽었다.    




 

   기타노 다케시는 일본에서는 독설가로 유명하다. 차이는 크지만 이해를 돕자면 우리나라의 김구라의 큰형 정도라 해야 할까? 마치 야쿠자나 된 듯 고압적으로 상대를 나무라고, 심지어 주먹질까지 해서 보기에 심란할 지경인데,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인지 내재된 가학적 폭력성의 발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국의 시청자(일본인)들은 눈물을 빼고 웃는다. 독특한 캐릭터는 책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까칠하다 못해 전투적이고 혁명적인(책에서는 레디컬radical하다고 표현했다) 문장들은 좀처럼 글로 만나지 못한 것들이라 통쾌하기까지 했다(대상이 일본이 아니던가?). 하지만 남는 건 없다.

  책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건질 만한 부분은 전반부인 ‘1부 죽기 위해 사는 법’이다. 큰 사고나 병으로 말 그대로 ‘죽다가 살아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병원의 입원생활이란 것이 먹고, 싸고, 자는 것이 아니던가? (원래는 흰색이지만) 누렇게 탈색된 플라스틱 그릇에 고기반찬이 들어 있으면 ‘횡재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단순한 병원생활에 굳이 고무적인 것이 있다면 ‘생각할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잘 나가던 연예인이 병원에 누워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 삶을 돌아보고, 죽음을 내다보면서 내일을 다짐하는 생각들에 공감이 많이 갔다. 

  "그 전까지 나는 삶이라는 것에 크게 집착하지 않았고,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소리까지 하고 다녔다. 하지만 이는 자살욕구와는 다르다. 딱히 제 발로 기꺼이 죽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나에게 주어진 무거운 짐에서 언제 해방되든 상관없다는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구사일생이라 할 만한 상태에서 살아 돌아오고 보니 '간단히 자기 짐을 내려놓고 죽을 수는 없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냐'라고 누군가가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하나.

그래서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기쁘지도 않아도 가치는 있다. 살아 있다는 가치 말이다. 그렇게 다행이라거나 행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든 살아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도록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거기서 실패하면 다시 살아난 의미가 없어진다. 끊임없이 그런 생각만 맴돌았다." 본문 17 쪽 

 

  덤덤하게 말하는 재생再生의 변辯에는 죽을 때 까지 ‘잘 살겠다’는 다짐이 뭍어 있다. 어차피 죽어지면 아무것도 없는 무無가 되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살고 있기에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은 살지 않겠다는 생각은 안면이 함몰되고, 사지가 찢어지는 고통을 통해 얻은 대오大悟였다. 

  다케시는 사고 전 자신은 한마디로 ‘망나니’였다고 말했다. 성의 없이 방송을 하고 많은 돈을 받아서는 ‘언니’들의 품을 찾아다니며 밤을 새워 술을 마셨고, 그런 자신을 비난하는 팬이나 언론에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독설을 퍼붓는 바보 같은 망나니였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면서 강한 척 했지만, 걸레 같은 몸뚱이가 되어 남의 손을 빌어 밥을 얻어먹고, 용변을 해결하는 ‘단순한 동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바라봤을 때 ‘나 역시 사람 위에 사람이 아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국내에서 소개된 기타노 다케시의 모습은 교통사고 이후의 모습이다. 가끔 안면이 씰룩거리고 약간은 밸런스를 잃은 부자연스러운 모습은 사고 이후의 후유증이다. 지인들과 의사는 그에게 안면신경 수술을 권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온전히 의사가 하자고 한 대로 ‘마음대로 다 알아서 해주십시오“라고 의지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없어지는 듯 해 싫었다고 했는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사건을 평생 기억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이 교통사고를 재산으로 삼고 살아갈 의지가 있었다. 안면신경이 낫지 않아도 딱히 관계없다. 어느 정도라면. 수술하면 흉터도 남지 않는다. 예전처럼 고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정신도 옛날대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은가. 그건 싫다고 말했다. 기껏 이런 사고를 당해서 생각도 바뀌었고 인생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고민하게 되었는데,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가면 정신도 원래대로 돌아갈지 모른다. 그건 싫었다. 일그러진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면서 생각이 다시 바뀔 수도 있으니까, 이대로 흔적으로 남기고 싶다. 그런 의지가 있었기에 신경수술은 고사하기로 했다.” 본문 29 쪽

  이 대목은 내게 ‘발상의 전환’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었다. 인생을 살면 반드시 찾아오는 ‘아픔과 슬픔, 사고와 괴로움’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굳이 기억하지 않으려 애쓰며 산다. 그런 경험이 있기 전의 모습이 ‘원래의 모습’인 듯 안 그런 척하고 살려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내 생에 찾아온 것들이라면 그 역시 ‘내가 감싸 안고 살아가야 할 몫’인거다. 그렇게 살아갈 때 비로소 온전히 나다운 삶을 사는 것이다. 애써 감추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안고 살기. 그게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삶에 있던 일이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어쩌면 가장 단순하고 명쾌한 삶의 방식일 수 있다. 그런 일이 있다 손치더라도 그게 나인 것을 누가 어쩔거냔 말이다. 멋들어진 이 한 마디가 이 책에서 건진 ‘나를 흔든 한마디’였다.

  나머지 부분은 ‘살아남은 자가 바라본 우스운 세상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원래 독설가인 그인지라 표현은 무식하고 살벌하다. 말도 콩도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고, 모순덩어리였다. 하지만 그의 말을 따라 읽다 보면 통쾌한 무엇을 발견한다. 내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늘 속으로 하던 말들, 정말 허물없는 지인들과 술자리를 한다면 술의 힘으로 거침없이 배설하고 싶은 ‘독설들’이었다. ‘네 나라도 별 수 없구나’ 싶어 위로가 되고, ‘네 말이 내 말이다’ 싶어 공감을 했다. 하지만 읽고 난 후엔 뱉어낸 담배연기마냥 흩어져버렸다. 원제목도 ‘다케시의 죽기 위해 사는 법’이다. 하지만 설명이 부족하다. '다케시의 나답게 죽기 위해 나답게 사는 법'이 더 어울린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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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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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일어시라라! 

  최인호가 집필을 중단했다. 최소한 ‘샘터사’에 매월 402회를 연재하며 36년 하고도 반년을 이어온 장수연재소설 <가족>만은 그랬다. 원인은 ‘암’이었다. 2008년 연재를 잠시 중단했다가 지난 해 3월 재개했었지만 10월호를 끝으로 연재를 끝냈다. 소설<가족>은 소설판 <전원일기>요, 한국판 ‘월튼네 사람들’(30여 년 전 매주 방송하던 미국 드라마)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한 질의 대하소설’이라면, 가족의 이야기는 어떻겠는가? 바람잘 날 없는 사건과 에피소드 속에서도 항상 끝은 훈훈하고 정겨운 가족애家族愛를 느끼게 하는 국민소설이다. 이 소설이 공감을 얻는 이유는 ‘우리집에서도 일어났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최인호의 글을 읽으며 지난 날 ‘우리의 그 날’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마치 옆집 최씨 아저씨네 이야기를 담장 너머로 엿들으며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그 날 이렇게 하고 싶다’고 배우게 한다.  

  하지만 소설<가족>의 백미는 최인호의 입담이다. 그는 타고 난 글쟁이다. 글이라기보다는 ‘말’을 읽는 기분, 그래서 아이에서 노인까지, 무식쟁이에서 긴 가방끈에 이르기까지 정겨이 읽힌다. 정좌할 필요도 펜을 들고 읽을 필요도 없다. ‘말’을 듣는데 그런 것이 대체 왜 필요하단 말인가? 그냥 고개를 들어 책에 박힌 글에 눈을 대면 된다. 그러면 술술 읽힌다. 좀 더 읽다보면 중저음의 개구쟁이 같은 최인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뿔싸, 그런 그가 글쓰기를 중단했다. 타고난 재담꾼이 입을 다문 것이다. 대신 조용히 책 한 권으로 그 변辨을 대신했다. <인연因緣>을 읽었다.  



 

   인연은 만남이다. 그리고 만남을 인식하고 괘념掛念하면서 인연은 시작된다. 그래서 인연은 앎이고, 기억이고, 추억이다. 그리고 사랑이다. "우리는... 추하고 멍청하고 따분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아름답고 똑똑하고 재치있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서 '사랑'을 한다."는 알랭드 보통의 말처럼 우리가 인연이라 인식하고 기억하며 추억하는 것은 내가 갖지 못한 무엇을 가진, 그래서 똑똑하고 멋진 그를, 그녀를,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인연>은 최인호가 사랑한 사람과 물건, 공간 그리고 일들을 기록해 놓은 수필집이다. 지난 해 펴냈던 <산중일기>가 나, 최인호를 돌아보는 글이었다면, 이번 글은 스스로 ‘나는 아름다운 팔불출’이라고 말했듯 거의 평생 ‘가족’의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이야기 했던 그가 ‘또’ 사랑하는 인연들을 이야기 했다.

  지금의 최인호에게 ‘인연’은 그리움이다. 스치고 지나갔던 순간의 기억이 시간이 흐르고서야 인연인줄 새삼 깨닫고 그리워진다. 몸에 병을 달고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기 시작한 그에게 세상은 모두가 인연이고 담고 싶은 그림이었다. 그가 돌아본 인연들은 모두가 아름답고 소중했다.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는 역시 ‘가족’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연인의 그것보다 더 지극하고 간절했다. 세상 어느 자식 안 그럴쏘냐마는 기억이 정말 날까 싶은 ‘당신(어머니)과의 소중한 순간’들을 묘하게도 기억하고는 서술하는 것만으로도 둔해서, 뚱해서, 혹은 창피해서 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네와는 사뭇 달랐다.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아내에 대한 마음은 단 몇 줄에도 사랑이 뚝뚝 뭍어난다. 

  “그래도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인사와 동시에 다리를 주무르는 일은 언제나 되풀이되었는데, 그때마다 내가슴이 아팠던 것은 어머니의 다리가 점점 더 말라간다는 사실이었다. 다리를 못쓰시게 되고부터는 말라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져서 돌아가실 무렵에는 뼈만 남아 있었다. 다리를 주무르다가 나는 몇 번이고 울곤 했다. 어머니의 다리에서 생명이 희박해져가고 있는 걸 나는 손바닥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은 내 곁을 떠났다. 내가 사십여 년 동안 줄곧 안마로 모시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제 내 곁에 없다. 아직도 내 손에 남아 있는 그 촉감, 그 살의 느낌, 살아 숨 쉬던 그 생명력, 어머니의 부드러운 살결, 매듭을 꺾을 때마다 뼈마디가 분질어리는 그 경쾌한 소리, 유난히 따뜻하던 어머니의 체온, 그 모든 감촉들이 내 손안에 분명히 남아 있는데도 두 분은 내 곁을 떠나고 안 계신다.

“인호야, 어디 있니? 다리를 좀 주물러다오.”

  가끔 한밤중 잠에서 깨어 멀건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아버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본문 275 쪽

  내가 초등학교 일학년이나 되었을까... 독감에 학교를 조퇴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끄응’ 소리가 절로 날 만큼 앓는 나에게 내 엄마는 누런 양은 대야에 찬 물을 담아 유난히 희고 흰 타올을 적셔 열로 인해 강바닥같이 터버린 입술을 적시고, 정갈하게 접어 머리에 얹어주셨다. 차가운 각성 뒤에 오는 은근한 서늘함에 위로받아 잠이 들었나보다. 깨고 보니 안방 풍경은 그대로인데 있어야 할 내 엄마가 보이질 않았다. 두 세평 남짓의 방안이 학교 운동장만큼 커 보였고 휑 하는 바람소리마저 들리는 했다.

  난 울었다. 혼자 남은 무서움 때문이 아니라 혼자 남겨진 그 느낌에 울음이 터졌다. 서러움, 난생 처음 든 그 기분은 서러움이었다. ‘우왕’하고 울던 것이 곡을 하듯 늘어지고 잦아들만 하면 끊어질까 또 목청을 높여 울었다. 내 엄마가 얼마나 먼 곳에 있을까 가늠하며 ‘나 여기 있다’고 외치는 울음에 내 귀가 아팠다. 깨어나면 떠먹일 찬거리를 사러 나갔다 온 내 엄마는 “내 새끼, 언제 깬거야. 어휴 그래. 혼자 있어서 운거야?” 하며 잰걸음으로 달려와 나를 안아 등을 두드려줬다. 톡.톡.톡. 그 두드림은 ‘그래 내가 네 마음을 안다’였다.

  더 이상 누릴 수 없음은 그리움이 된다. 단 한 번이라도 더 느끼고 싶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와 숨결, 그리고 따뜻한 기운은 최인호에게 사무치는 그리움이 된다. 그의 손바닥이 기억하는 부모의 느낌들은 ‘그래 내가 네 마음을 안다’는 교감의 잔상이리라. 읽다 보면 그 간절함에 나마저도 울컥 울컥 속이 상해진다.

  인연의 시작이 만남이면 끝은 헤어짐이다. 최인호는 이 책으로 소중한 인연들에게 ‘내가 너희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을 걸고 있다. 사람 좋은 배우 안성기, 넉살 좋은 영화쟁이 배창호, 애틋한 사랑 이해인 수녀님, 그리고 삼라만상의 풍경을 만드는 자연까지. 심지어 적막마저도 ‘내가 너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를 사랑하고 있었다.

 글을 읽다가 문득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생각났다. 파킨슨 병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모리선생은 어느 날 지인들을 모두 불렀다. 자신이 떠난 후 듣지 못할 ‘애도의 글’을 미리 듣고 싶어서였다. 지인들의 낭독에 때로는 웃음으로, 한 줄기 울음으로 말없이 답하는 모리선생은 슬프도록 행복해했다.

  이 글은 어쩌면 최인호의 미리 써둔 연서戀書인지 모른다. 사랑은 먼저 주는 것이고 표현해서 드러낼 때 완성되는 것이라면, 그는 자신의 사랑들에게 글로써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글을 지으며 많은 미소와 눈물을 흘렸으리라. 하지만 그 순간 만큼은 행복했으리라. 

  “아아, 나는 돌아가고 싶다.

  갈 수만 있다면 가난이 릴케의 시처럼 위대한 장미꽃이 되는 불쌍한 가난뱅이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 막다른 골목으로 돌아가서 김유정의 팔에 의지하며 광명을 찾고 싶다. 그리고 참말로 다시 일.어.나.고.싶.다.“ 본문 266 쪽

  ‘병중인 그‘라는 사실을 몰랐을 때 나는 지난 해에 이어 ’또‘ 수필집이 나왔다는 소식에 불뚝 화가 났다. <잃어버린 왕국>과 <해신>을 통해 나라를 걱정하고,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등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지닌 청춘들을 이야기하던 그가 짧은 숨의 ’수필집‘이냐 싶었다. 한국 현대문학의 한 기둥인 그에게는 우리의 오늘을 대신 고민하고 위로를 해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코맥 매카시나 필립 로스처럼 이순耳順의 최인호만이 뱉어내야 할 글들이 아직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남겨야 할 대단원의 ’완성작‘을 은근히 기대했던 터라 부아가 나서 하마터면 이 책을 읽지 않을 뻔 했다.

  최인호에게 요구한다. 일어나시라. 천막 안에 청중이 그득한데 연사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혼이 나야 한다. 단 한 명의 청중이라고 천막 안에 있다면 연사는 아플 자격도 없다. 당신은 아직 토하고 쏟아내야 할 말들이 많다. 툭툭 털고 일어나 당신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로 천막안으로 들어오시라 요구한다. 어서 빨리 돌아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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