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노믹스 - 세계를 강타한 인터넷 문화혁명, 트위터와 소셜미디어 에이콘 소셜미디어 시리즈 1
에릭 퀄먼 지음, inmD 옮김 / 에이콘출판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셜네트워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강력한 추천시스템이다!

  2008년 TIME 지紙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은 버락 오바마 Barack Hussein Obama 대통령이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의 탄생은 게티즈버그에서의 링컨이 연설을 한 이래, 워싱턴에서 킹 목사의 대행군 이래 이런 날이 올 거라 상상하지 못했던 일대 거대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예상했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한다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대신할 ‘2008 올해의 인물’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미국 유권자의 한 목소리가 있었고, 이들 유권자의 목소리를 한 데 모으는데 큰 힘을 발휘한 것은 트위터twitter와 페이스북을 대표로 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Social Network Service)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소셜미디어Social Media로 가능해진 ‘대중이 주도권을 쥔 혁명’people-driven-revolution을 보여주는 가장 전형적인 사례였다. 



당시 페이스북facebook에 올라온 오바마 지지자들의 모임 

   오늘날은 제품은 있지만 기업은 없는 시대다. 다시 말해 기업의 의지대로 제품을 만들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 요즘 성공하는 기업의 제품들을 보면 거의 100% 소비자의 니즈needs를 반영한 제품들이다. ‘왜 이러이러한 제품은 없는 거야?’, ‘이 제품은 이런 이런 점이 부족하잖아!’라고 불평을 내놓기가 무섭게 기업은 이를 보완하고, 개선한 후 ‘자, 이렇게 바꿨습니다. 어떠세요?’라고 새로운 버전의 제품을 내놓는 기업만이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다. 겨우 ‘소비자의 사랑’이라고 낮춰볼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비자란 한 지역이나 국가 정도가 아닌 지구촌, 즉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까칠한 소비자에게는 살buy 맛 나는 세상’이 오늘날인 셈이다. 

  소비자가 소비와 동시에 생산이 가능해진 시대, 다시 말해 소비자가 프로슈머prosumer가 되는 시대를 웹web 2.0 시대라고 하면, 지금은 그보다 한 단계 발전된 시대다. 블로그나 홈피에 신문기사를 방불케 하는 내용을 자주 써야 하고, 항상 컴퓨터(노트북을 포함) 앞에서 써야하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성을 탈피해 ‘스마트폰’을 통해 나의 일상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해 언제든지 단문으로 포스팅이 가능한 ‘단문 메시지’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러한 시공간적 제약의 탈피는 실로 어마어마한 혁명에 가까운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순간’들이 의욕과 약간의 노력만 기울이면 실시간으로 ‘글과 그림, 그리고 영상’으로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셜노믹스Socialnomics>(에이콘)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SNS의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한 책이다. 이 책은 소설미디어로 인해 거시적 트렌드, 행동양식, 사회현상에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는지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원 제목, Socialnomics: How social media transforms the way we live and do business 이다.

 



 

    “소설노믹스는 거대한 사회경제적 변화다. 지난 몇 세기를 지배하온 주요 마케팅/비즈니스 이론 중 일부는 여전히 유효하겠지만, 원하지 않는 대중에게 상품을 계속 강요하는 기업은 구시대적 유물과 함께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다.” 본문 21 쪽

  이 책은 소셜미디어 경제 즉, 기업 중심의 경제를 뛰어넘은 ‘대중 중심의 경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책을 통해 다양한 관점, 즉 웹web의 발전사적 관점과, 기업/마케터의 관점, 그리고 네티즌들의 커뮤니케이션과 라이프스타일의 관점에서 소셜미디어가 현재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파악하게 된다. 나아가 소셜미디어의 미래를 예측하고, 이것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얻는다. 

  소셜미디어Social-media라는 말은 ‘블로그’를 통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진 단어다. 이 단어의 뜻은 방송과 신문을 대표로 하는 제도권 미디어 매체의 일방적인 송출을 벗어나 소규모 단체를 비롯해 작게는 개인도 ‘하나의 미디어’가 되어 송출이 가능해졌음을 말한다. 2000년 초 블로그가 출현한 후 이제 네티즌이라면 거의 대부분 개인 홈피나 블로그를 한 두 개 정도를 소유하고 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터넷 논객, 파워 블로거들은 제도권 미디어가 정보를 취득하는 대상으로까지 발전했다. 소셜 미디어의 국내 출현은 새로운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하면서 ‘온라인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했고, 이에 따라 기업환경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 책은 소셜 미디어의 대상을 블로그를 넘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두었다. ‘싸이월드 홈피’를 통해 소셜미디어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이 한국이었지만, 이보다 더 보강된 ‘페이스북’과 140글자의 단문블로그로 대표되는 ‘트위터’는 최근 2-3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현재 말하는 소셜미디어가 ‘블로그’라면, 세계는 지금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더해져 더욱 확대되고 강해진 소셜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다. 지난 연말, ‘아이폰i-phone'이 국내에 상륙하면서 아이포너i-phoner가 되는 것은 ’보다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점유할 수 있는 새로운 부류에 속하는 하나의 ’사회현상‘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도 곧 아이폰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에 의한 소셜미디어의 급속한 확산이 예상되는데, 이런 점만 살펴봐도 비즈니스맨이라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이 책을 통해 앞으로 국내에서도 펼쳐질 미래의 모습을 미리 내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으로 트위터를 불러 트위팅을 하고 있는 모습

 

    블로그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포스팅이었다면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내 주위에 있는 나를 아는 사람들(팔로우어follower 라고 부른다)’을 대상으로 글을 쓴다한다. 소셜미디어는 개인이 자신의 삶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해묵은 질문에 답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더 많은 사람이 생산적인 활동이나 자선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회적 이득을 가져온다. 블로그에서 트위터(페이스북)으로 인기가 옮겨지는 이유는 ‘넘쳐나는 정보’에 기인한다. 소셜미디어는 정보의 과다한 생산으로 인한 병목현상을 해소해준다.

  소셜미디어는 나와 비슷한 성향과 행동반경을 가진 사람들 다시 말해, ‘내 친구’로 삼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수다’를 통해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정보들을 가능하게 해준다. 실시간 업데이트, 마이크로블로그(140자 내외의 단문), 참여형 북마크, 비디오 공유, 사진, 댓글 달기 등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만들어오던 컨텐츠들을 웹상에서 공유하며 소규모 이익 집단의 수요를 보다 쉽고 효과적으로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추천 상품, 맛집도 이젠 기업이 스폰서가 되어준 검색을 통해 보지 않고 나를 아는 친구들이 추천하는 믿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된다. 소셜미디어는 네티즌 모두가 기자가 된다. 내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 그리고 업계의 뉴스를 글과 사진 그리고 동영상로 실시간으로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리는 Y세대와 Z세대에게 제일가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이메일이 아니라 소셜미디어 메시징이다. 그 이유는 이메일과 비교할 때 친구들 간의 진짜 대화와 닮아서다. 소셜미디어의 발전을 짐작하게 하는 사례다.



페이스북에 참여하고 있는 세계인의 모습

 

   내가 중점적으로 관심을 두고 읽은 측면은 소셜미디어 시대에 대한 기업의 마케팅적인 측면이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소셜미디어 환경을 이해하고 이에 대응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고, 기존의 제도권 미디어를 통한 마케팅에 주력하고 소셜미디어에 대해서는 소비자의 불만창구라고 인식해 두려워하며 아예 귀를 닫아버린 기업들도 아직 적잖기 때문이다. 과거에 익숙한 기업들의 이러한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당시의 마케팅 매체로는 좋은 점이 많을수록 고객 구매가 늘어날 거라는 생각에서 짧은 광고 안에 많은 혜택을 집어넣는데 열중했고, 고객은 ‘말을 듣는’ 쪽에 더 익숙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지금은 그럴 가능성은 점점 낮아진다. 

  저자는 아래와 같이 과거 마케팅 담당자의 철학과 오늘날 마케팅 담당자의 철학을 비교하면서 현재는 고객과 대화하고 변화하는 고객의 요구사항을 얼마나 빠르게 식별하고 대응하는가에 기업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말했다. 

과거 마케팅 담당자 철학 

- 중요한 건 메시지와 브랜드 이미지의 화끈한 성적요소다.

- 핵심은 메시지다. 좋은 마케팅 담당자라면 뭐든지 팔 수 있다.

- 고객에게 무엇이 맞는지 우리는 잘 안다.

고객은 정말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기에 우리는 고객을 도와주는 셈이다.

- 우리는 내부에서 개발한 제품과 메시지를 밖으로 대중에게 전파한다.

오늘날 마케팅 담당자 철학

- 고객 요구에 귀 기울이고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 핵심은 제품이다. 전 부서와 항상 소통해야 한다.

- 우리는 고객에게 무엇이 가장 잘 맞는지 절대 알 수 없기에 항상 물어보고 수정해야 한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한 번에 맞출 확률은 거의 없다.

- 우리보다 고객이 제품을 더 잘 마케팅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아이디어를 잘 활용한다면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다.    본문 178-179 쪽

 

  과거의 기업 성공이 규모의 경제와 엄청난 광고 물량을 동원해서 가격과 이미지로 승부했다면, 이제부터는 말 그대로 훌륭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만이 소셜노믹스의 세계에서 승리할 수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한마디로 “소셜네트워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강력한 추천시스템이다.”라고 말했다. 소셜미디어 시대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리치보이의 트위터 ID - @RichboyBook

 

  아직도 국내에는 ‘네티즌을 추천여부를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어리석고 위험한 착각이다. 우리는 소셜미디어의 탄생에 주목해야 한다. 아무런 보수도 약속하지 않은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글, 그림, 동영상으로 포스팅을 하고, 댓글을 올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좋은 것은 좋다고 말하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말하고 싶어서다. 이러한 행동의 근원에는 ‘무조건적 이타주의’에서 비롯된다.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좋은 평판을 작위적으로 만들려는 기업의 노력은 돈을 주고 표를 사려고 했던 정신 빠진 국회의원후보와 다름없는 쓸데없는 짓이다. 저자는 기업이 소셜미디어 시대에 나아갈 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누가 이 새로운 소셜노믹스의 세계에서 승자가 될 것인가? 당연히 소비자와 최고의 상품이 승자가 된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사회 전체적으로 달성하려 애써왔던 것이다. 소셜미디어는 이렇듯 유토피아 같은 사회를 가능하게 한다. 좋은 기업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더라도 이를 행동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상품과 서비스의 질을 개선한다. 나쁜 회사는 고객의 피드백을 귀찮은 일 또는 숨겨야 할 일로 간주한다.” 본문 309 쪽

  트위터를 아직도 한낱 채팅서비스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스마트폰의 출현이 휴대폰의 새로운 모델이 나온 것으로 생각했다 해도 일독을 권하고 싶다. ‘난, IT하고는 별로 상관없어’라고 쉰 소리 하지 말라. 지금 세상은 인터넷 혁명에 버금가는 새로운 변화의 문 앞에 서 있다. 그 누구라도 ‘오늘’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진기의 생존경제 - 대한민국을 위한 희망의 경제학
최진기 지음 / 북섬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장바구니 경제를 알려주는 살아있는 경제학, 이 책으로 잡아라!

  지난 2009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쓴 단어는 ‘경제’일지 모른다. 2008년 하반기부터 국내에 불어닥친 뉴욕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IMF의 끔찍한 악몽을 경험했던 국민들에게는 일 년 내내 살얼음판을 걷는 나날을 보내게 했다. ‘지금의 위기를 겪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경제’라는 코드에 걸쳐져서 영향을 받았던 만큼 국민들의 ‘경제’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 보다 뜨거웠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중은 곧 모든 두려움은 무지無知에서 비롯됨을 깨닫고 해답을 제시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최진기의 생존경제>도 많은 사람들이 경청했던 목소리중 하나다.



 

   이 책은 지난 KBS가 국민경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6개월간 28부작으로 꾸민 방송 프로그램 ‘최진기의 생존경제’의 내용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방송보기 

  입시학원인 메가스터디에서 사회탐구 영역을 강의하면서 전국 점유율 1위를 기록할 만큼 명강사로 통하는 최진기는 한때 동부증권에서 근무를 했던 증권맨 출신이다. 그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지난 2008년 7월 <환율 방어, 무엇이 문제인가>이라는 제목의 강의내용이 온라인상에 급속하게 퍼지면서부터였다. 내용은 현 정부의 잘못된 환율정책을 사례로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어려운 환율의 개념과 그 움직임을 쉽고 명쾌하며 재미있게 풀어냈다. 그 후 경제학이 현상에 얼만큼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지를 설명하고, 일반인들이 경제학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피력한 <지금 당장 경제공부 시작하라>(한빛비즈)를 출간한 바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냉정한 관찰과 우리 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라며 ‘생존경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허황된 종말론에 휩싸여 공포심에 짓눌리지도 말아야 할 것이고, 과장된 희망으로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공포와 희망, 그것은 험난한 경제현실 속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이다. 또한 그것은 언제나 경제를 극단으로 치닫게 만드는 한 요소겠지만, 그 안에서 균형을 찾아 나가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의무일 것이다.” 본문 6쪽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생존경제’의 독자는 전 국민이다. 특히 ‘경제학’을 접해보지 못한 중고교생이나 주부들을 포함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했다. 그래서 ‘경제용어’ 하나 하나 마다 쉬운 예로 잘 설명해주며 이해를 돕고 있다. 강의를 들어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강의를 그대로 필사하듯 옮겨와 책으로 접한다면 KBS의 강의를 따로 기록하거나 모두 들어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바꿔 말하면 강의를 들었던 독자라면 이 책으로 배움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이제 막 경제에 대해 관심이 생겼거나, 경제학을 공부해보려는 독자에게는 더한 나위 없는 입문서가 된다.  

  이 책은 우선 재미있다. 현장감이 생생한 사례들로 구성된 최진기만의 독특한 강의법으로 구성되어 술술 읽힌다. 어려운 그래프와 경제학 이론은 뒤로 하고 뉴스나 신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현실적인 지표와 그래프를 소재로 미시, 거시경제학에 접근하고 있다. 재미있는 그림과 사진 그리고 속풀이 토크, 경제상식 따라잡기 등 따로 마련된 코너들은 경제학 상식들을 높이는데 많은 도움도 준다. 한 장이 끝날 때마다 정리된 ‘생존노트’는 꼭 기억해야 할 점과 생존하기 위해 우리가 관심을 둬야 할 부분들을 짚어준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소제목마다 ‘국내경제상황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주고 그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도 제시한다는 점이다. 문제점에 대한 지적의 강도는 ‘미네르바‘등의 온라인 논객이나 ’위험한 경제학‘ 류의 학자들의 그것보다는 약하지만, 저자의 주장보다는 ’동의‘를 구하는 논조로 구술되는 문제점 제기와 해결책은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얻기에 충분하다. 다시 말해 ’내가 말하고 싶었던 국내경제의 문제점‘을 시원하게 대변하는 기분을 얻을 수 있다.

  책의 크기가 일반 단행본에 비해 약간 큰 듯도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쉬이 읽히는 만큼 틈틈이 한 챕터씩 읽어나간다면 어렵지 않게 완독할 수 있을 것이다(완독후 강의를 듣는 것도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다). 평소 ’경제공부‘에 유념을 두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완독 후 연이어 읽으면 좋을 책으로 2008년 파란을 일으켰던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쓴 <미네르바의 생존경제학>(미르북스), 삼성경제연구소 곽수종 박사의 <경제독법>(원앤원북스) 등을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없는 남자는 늙지 않는다 - 근엄한 남자보다 가슴 뛰는 남자가 오래 살 수밖에 없는 젊음의 비밀
와다 히데키 지음, 이정환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할아버지가 향수를 뿌리면 전두엽이 젊어진다?   



  조두진의 소설 중에 <마라토너의 흡연>이라는 단편이 있다. 다소 역설적인 이 제목은 사실 발상의 전환을 이야기했다. 다시 말해 소설 속 주인공은 ‘마라토너가 흡연을 해서 되겠는가‘라는 세인의 우려와는 반대로 흡연을 하기 위해 마라톤을 뛰는 사내다. ’그렇게까지 하면서까지 담배를 피워야겠냐‘ 비아냥거릴지 모르지만 주인공이 자신의 지극한 담배에 대한 사랑과 단명短命으로 인한 가계부양의 책임간의 적당한 타협안인 듯 해 ’그것참 대단하다‘고 나는 탄복했다.

  그 무엇이든 ’금지당하는 욕망‘은 자체가 괴로움이다. 새해를 맞아 당당히 금연을 선언했지만 흡연의 욕구를 참지 못해 몰래 숨겨피우며 스트레스를 자처한 남성들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거짓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흡연의 해악‘ 못잖게 정신건강에 해롭지 않을까 생각든다. 정 담배가 피우고 싶다면 ’마라토너‘가 되어보는 건 어떨지...

  흡연 뿐 아니라 한 살씩 나이가 더해질 때마다 줄이거나 금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연장자가 될수록 책임과 의무는 늘어나는 반면 개인적 욕망추구는 해서는 안될 ‘짓’이 되어 버린다. 가정이나 조직의 구성원으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고 납득이 가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슬프고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 먹는 것을 끔찍이 싫어한다. 그리고 이렇게 항변한다. “나이먹는 것도 죄냐?”고.

  책 <철없는 남자는 늙지 않는다>의 저자가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마라톤을 해서라도 담배를 피우겠다면, 그렇게 하세요. 욕망을 참지 마세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래야 안 늙습니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철이 든다’는 것은 ‘얌전해진다는 것’이요, ‘얌전해짐‘은 곧 ’늙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중장년층을 전문으로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이에 대해 의학적 근거를 제시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늙었다‘는 표현은 의학적 소견으로는 ’전두엽이 점점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원제목은 人は「感情」から老化する - 사람은 감정으로부터 노화된다 



 

  전두엽前頭葉은 과연 무엇일까? 전두엽은 대뇌의 앞부분에 위치한 뇌의 일부로 사고, 의욕, 감정, 성격, 이성 등을 담당하는데, 나이를 먹으면 이러한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우리가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울고, 기분이 나쁘면 화를 내고 싸우는 등의 감정표현을 하는 것은 뇌의 변연계에서 담당한다. 전두엽은 그보다 좀 더 섬세한 감정이나 감정에 바탕을 둔 수준 높은 판단을 담당하는 이른바 감정의 사령탑이다. 예를 들어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소설을 읽고 감동하거나 거기에서 촉발된 감정적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 전두엽의 활동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두엽을 활발하게 움직이게 하여 젊게 유지한다면 노인이 아닌 ‘젊은 오빠’로 오래동안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전두엽의 노화는 빠르면 40-50대부터 시작되는데, 전두엽이 노화하여 기능이 떨어지면 자발성이나 의욕이 쇠약해진다. 다시 말해 노화 예방에 흥미를 보이지 않거나 외모에 관심을 두지 않아 늙어지는 대로 방치하고 있다면 전두엽의 노화가 시작된 것이다. 저자는 ‘젊은 노인’과 ‘진짜 노인’의 차이는 ‘의욕’의 차이에서 시작되고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며 이렇게 말했다. 

“감정이 노화하면 ‘귀찮아’, ‘이제 이런 일은 하기 싫다.’ 같은 말이 입버릇처럼 튀어나온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말도 자주 하게 된다.

“더 이상 똑똑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어.”

“이 나이에 무슨...이 정도면 충분해.”

이런 식으로 스스로 노화를 인정하고 기회를 포기해 버린다. 삶에 대한 욕심이 없어지는 것이다. (중략) 어떤 새로운 일에 대해서든 ‘귀찮아’, ‘힘든 일은 이제 하고 싶지 않아.’ 따위의 말만 내뱉는다면 이제 당신은 정말로 노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잊지 말라. ‘욕망’을 유지하는 것도 감정의 노화와 싸우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본문 42쪽)

  저자의 말대로라면 ‘젊어지기 위해 노력하는 자체’는 ‘의욕’이 되고, 이 ‘의욕’이 전두엽을 활성화시켜 더 이상 늙지 않도록 유지할 수 있다. 저자는 체력뿐만 아니라 두뇌의 기능과 감정 역시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쇠약해진다고 경고했다. 자극이 없는 생활을 계속하면 감정은 녹이슬어버리는데, 뇌과학적으로는 전두엽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자연히 축소되는데, 그냥 내버려두면 감정이 더욱더 빠른 속도로 쇠약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항상 ‘감정을 자극하는 생활’을 유지해야 좀 더 젊게 살 수 있다.   


 한편 전두엽을 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때 국내에 큰 히트를 쳤고, 지금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닌텐도 DS라는 게임기에는 <뇌를 단련하는 성인용 DS 트레이닝>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있다.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인기리에 팔린 바 있는데, 이와 비슷한 두뇌 능력 개발 소프트웨어 등은 뇌의 혈류량을 증가시켜 전두엽의 활성화하는 일정한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단지 워밍업이고, 자동차 엔진을 켜 놓았을 뿐 차가 그대로 멈추어 서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한다.이렇게 전두엽을 자극했다면 ‘행동’으로 옮겨야 감정의 노화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전두엽을 젊게 하려면 활동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며 “무슨 일이든 의욕이 없는 사람과 무슨 일이든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슨 일이든 우선 행동으로 옮겨 보아야 다음에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기 쉽고 무슨 일을 해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TV에서 음악회를 듣는 것보다 직접 음악회를 찾아가 듣는 것이 좋고, 역사프로그램을 시청하기 보다는 역사적인 명소를 직접 찾아가는 것이 좋다. 낮선 문명과 문화를 직접 행동으로 경험하는 것이 전두엽을 활성화시키기에는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먹고 살기도 바쁜 요즘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행동으로 얻는 자극을 위해서는 시간적,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부유한 사람들이 유리할 수 있다.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이 인상이 편안해 보이고, 좀 더 젊어보이는 이유 역시 자신을 꾸미고, 새로운 것을 자주 경험할 기회를 얻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부유한 사람만 젊어지란 법은 없으니,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도 젊어질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일상에서 익숙했던 것들과 결별하고 그동안 주저했던 일을 해보면 전두엽의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 자주 가던 음식점을 마다하고 새로운 곳에서 외식을 하거나, 이발소을 떠나 미용을 찾고, 때로는 나이트 클럽이나 카바레 등을 찾아가 술을 마시는 방법도 좋다. 저자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범죄가 아닌 한 무엇이든 도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뇌가 젊어지는 방법은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고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책을 살펴보건대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이 나이에 무슨...’ 혹은 ‘나잇값을 해야지’라고 말하는 것은 ‘제 스스로 고려장을 치루는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늙어감을 거부하고 운동하고, 화장하고, 성형수술을 해서라도 젊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보기엔 어색하고 불편할망정 전두엽에 자극을 주어 최소한 뇌는 노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오늘날에 와서 유교가 폐해를 끼친다면 ‘늙으면 점잖아야 한다’는 말씀일 것이다. 

  오늘날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노화는 빨라지고, 의학의 발달로 노화의 진행은 더뎌지는 사회다. 나이 육십을 갓 넘겼다고 잔치를 벌이는 옛날은 더 이상 없다. 세상은 변했는데, 노인에 대한 사고는 여전해서 40-60의 장노년층이 천대를 받는 세상이 오늘날인 듯 싶다. 황진이의 시조처럼 산을 넘어가는 초승달을 나뭇가지에 걸어둘 수도 없는 것이 노화이거늘, 이것을 감지했다고 당황하거나 좌절해서야 되겠는가? 잘 알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노화를 멈추게 하지는 못할지언정 더디가게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해결책 역시 자기계발의 그것과 답이 매한가지다. 실천과 꾸준한 노력, 그것 뿐이다. 치매와 기억력, 노화에 걱정하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뇌과학적 지식을 쉽게 풀어냈다. 뚜렷한 해결책은 없어도 여러분이 갖는 궁금증 정도는 해소시킬 수 있는 그런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로드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할 일의 목록은 없었다.
그 자체로 섭리가 되는 날. 시간. 나중은 없다. 지금이 나중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 너무 우아하고 아름다워 마음에 꼭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고통 속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슬픔과 재 속에서의 탄생. 남자는 잠든 소년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는 네가 있는 거야." (본문 p.64) 

  알 수 없는 이유로 세상이 없어졌다. 아니 세상이라는 단어조차 사라진 곳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마지막 단어인 '남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가슴 속에 살아있는 불꽃을 안고...


  암울한 소설. 너무나 어둡고 암울해서 습기가 눅진거리는 지난 여름의 계절감마저 잊게 했던 소설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초반에 '이건 아니다'는 판단을 내리고 내려놓았다. '좋은 것도 다 못보고 죽는 세상, 싫은 건 억지로 할 필요가 있겠는가?'는 소신으로 살아온 내게 '우울한 기분'은 딱 질색이었기 때문이다.  

  왜 였을까? 지리한 장마비가 처량하게 들렸던 탓일까?

며칠 후 늦은 밤 나는 또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밤이 하얗게 된 후에야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차라리 죽음이 나을 법한 곳에 어린 자식을 홀로 두고 죽어간 아비가 불쌍해서, 내가 그곳에 없다는 것이 다행이란 안심에 눈물이 흘렀다. 그런 날이, 그런 상황이 내게도 닥친다면 난 어떻게 할까? 좋은 사람이 될까, 나쁜 사람이 될까? 내게도 불꽃이 남아 있을까, 그럼 난 어디로 갈까? 내 옆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  

소설의 리뷰 - http://blog.daum.net/tobfreeman/7162723
 

  무수한 여운과 자문을 던져준 소설, 로드The Road는 내게 그런 소설이었다.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개봉을 기다렸다. 개봉한 첫 날, 그 어두운 세계를 직접 목격하기 위해 다시 <더 로드the Road>를 만났다.
 










 

좀처럼 소설을 읽지 않는 편이지만 '영화화 된 소설'은 애써 찾아 읽는 편이다. 그 말은 곧 글 속에 '충분한 영상미'를 가지고 있고, 통속적이지만 무시하지 못할 '흥행성'을 갖춘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원작인 소설과 각색된 영화 사이에서 그 차이점을 찾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형만한 아우없다'는 말처럼 원작을 따라가는 영화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그래서 영화를 볼 요량으로 소설을 우선 읽지만(영화를 본 후에는 절대로 소설은 읽지 않는다), 잘된 작품을 만나면 영화를 보기가 두려워진다. 원작을 얼마나 잘 소화해 낼지 감독이 의심스럽고, 배우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부러 영화를 보러 갔다가 '원작에 누가 된 영화'를 본다면 그 실망감은 분노로까지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참고로 지난 해 봤던 연을 쫓는 아이와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원작에 비교적 충실한 작품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영화 <더 로드> 역시 원작이 보여준 영상을 그대로 소화한 보기드문 영화였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개성파 배우 비고 모텐슨의 풍부한 감정연기는 특별할 것 없는 대사를 대신하기에 충분했다. 아버지에게 남은 유일한 감정표현은 울음, 눈물이었다. 그리운 아내가 그리워도 울고, 깊은 밤을 편히 보낼까 하는 두려움에도 눈물이 흘렀다. 우연히 찾은 지하대피소에 그득한 음식들을 대한 그 때도 어김없이 눈물이었다. 아버지의 희노애락을 대신했던 눈물을 비고 모텐슨은 모두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비슷한 상황을 연출했던 윌 스미스의 <나는 전설이다>가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시종일관 '동일시'하게 하는 묵시록적인 영화였다. 암울한 배경, 두려움이 벗어나지 않는 배우들의 표정에 한기를 느껴 앞섬을 추켜올리게 했다. 그렇다, 동일시同一視. 영화 속에 내가 들어 있었다. 내가 그라면, 저 세상아닌 세상에 있다면 어떻게 할까? "난 그냥 죽어버릴 것 같아."라는 그녀의 명쾌한 대답에 모두 벗어버리고 떠나간 아내(샤를리스 테론)이 떠올랐다.
 

"그건 아니지. 개똥 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목숨이 있는 한은 살아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뭐 할껀데? 아무런 희망도 목표도 없는데 뭐할려고? 오빠도 그냥 남쪽으로 내려가?

 

딱히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튼 죽을 때까지 살고 싶은데, 왜냐면 답할 말이 없다.

그냥 살고 싶단 말 밖에는...
 



"난 오랫동안 불을 보지 못했소. 그뿐이오. 나는 짐승처럼 살고 있소.

내가 뭘 먹고 살았는지 알고 싶지 않을 거요. 저 아이를 봤을 때 난 내가 죽은 줄 알았소.

천사인 줄 아셨나요?

뭔지는 몰랐소. 그냥 다시는 아이를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저 아이가 신이라고 하면 어쩔 겁니까?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난 이제 그런 건 다 넘어섰소. 오래 있었거든.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신도 살 수가 없소. 당신도 알게 될 거요. 혼자인 게 낫소. 그래서 당신이 한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오. 마지막 신과 함께 길을 떠돈다는 건 끔찍한 일일 테니까. 그래서 그게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거요. 모두가 사라지면 좀 나아지겠지."

 

  아이가 존재할 수 없는 세상, 희망이 담긴 불꽃이 없는 세상이다.

병이 들어 죽어가는 아비는 평소대로라면 남겨진 자식의 미래가 두려워 함께 가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쪽으로 가거라, 얘야." 바로 살아있음이, 아이의 생명이 '가슴 속에 불타는 불꽃'인 것이다. 신도 포기한 듯한 버려진 세상에 존재하는 마지막은 실존이다. 살아있기에 살아야만 한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 '좋은 사람'으로 살아남는 것이 생生에 남겨진 숙제인 것이다.

 

  무서울 만큼 놀라운 영화, 원작에 견줄만한 영화였다.

코맥 메카시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그가 그리는 세상을 볼 기회다.

비고 모텐슨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그만의 완벽한 연기를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투 썸즈 업Two Thumbs Up !" 최고의 영화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헤밍웨이의 글쓰기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이혜경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는 작가作家가 아니라 구도자求道者였다

  “....때때로 새로운 소설을 시작했는데 잘 나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벽난로 앞에 앉아서 작은 오렌지 껍질을 쥐어 짜 불길 언저리에 떨어뜨리며 푸른 불꽃이 타닥타닥 피어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곤 한다. 그리고 일어서서 파리의 지붕 너머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걱정하지 마, 항상 글을 써왔으니 지금도 쓰게 될 거야. 그냥 진실한 문장 하나를 써내려가기만 하면 돼.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이면 돼.’    그러면 마침내 진실한 문장을 하나 쓰게 되고 거기서부터 다시 글을 시작했다. 그 다음부터는 쉬웠다. 내가 알고 있거나 누군에게 들었거나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진실한 문장 하나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장황한 글을 쓰거나, 뭔가를 과시하려는 것처럼 글을 쓰기 시작하면 복잡한 무늬와 장식들을 잘라내고 처음에 썼던 단순하고 진실한 평서문 하나로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본문 24-25 쪽

  이 깨우침의 주인공은 하드보일드hard-boiled의 대표작가로 알려진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다. 하드보일드란 1930년을 전후하여 미국문학에 등장한 새로운 사실주의 수법으로 원래 ‘계란을 완숙하다’라는 뜻의 형용사이지만, 뜻이 변해 ‘비정 ·냉혹’이란 의미로 쓰인 문학용어다.

  자연주의적인, 또는 폭력적인 테마나 사건을 무감정의 냉혹한 자세로 또는 도덕적 판단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비개인적인 시점에서 묘사하는 하드보일드. 불필요한 수식을 일체 빼버리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쌓아 올리는 글솜씨를 말한다. 군더더기 없이 수분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손대면 파삭파삭 부서질 것 같은 문장, 헤밍웨이의 글맛이 그렇다. 그리고 가까이에는 ‘김훈의 글맛’을 생각하게 한다. 

  헤밍웨이는 좀처럼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일생을 바쳐 글다듬기를 하다가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치열한 글싸움을 했던 그였던지라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를 배우고 닮고자 하는 추종자들이 선생을 삼기에는 영 서운한 행실이 아닐 수 없다. 반갑게도 그는 지인들에게 쓴 편지와 다른 글들 그리고 소설 속에 ‘다빈치 코드’를 숨기듯 조금씩 흘린 모양이다. 그것들을 줍고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었다니 래리 W. 필립스란 양반이 참 고맙다. <헤밍웨이의 글쓰기>(스마트 비즈니스)를 읽었다.



 

   글쓰기는 수작酬酌이다. 제가 생각한 바를 남에게 알리고 공감을 유도하는 하나의 수사修辭요, 농짓거리다. 말言로 다중多衆에게 농짓거리를 거는 것이 연설이라면, 글쓰기는 미래에 있을 대중大衆에까지 말을 거는 셈이니 글을 쓰는 작가는 연설을 일삼는 정치꾼들보다 더한 수작쟁이들이다(연설이란 것도 결국 글을 보고 읽는 것이 아니던가?). 글로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이 움직이려면 먼저 눈에 보여야하기 때문이다. 읽고 있는 불특정다수의 독자로 하여금 상상 속에서 그림과 영상을 보이도록 하려면 글을 쓰는 이가 먼저 보고 적확하게 글로 그려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 문장마다 한 장의 그림이 보이게 해야 한다.    

  세밀한 묘사와 설명이 더해지면 모든 것이 가능할 일이다. 하지만 독서는 ‘숨’, 즉 호흡과 깊은 관계가 있어 길이가 길면 숨이 가빠져 쉬이 지친다. 문장이 긴 듯 짧고, 짧은 듯 길어져서 울렁이는 파도를 따라 배를 타듯 운율이 있어야 한다. 묘사와 설명이 길면 구차해지고 함부로 상상할 수 없어 지루해진다. ‘글은 짧되, 마음껏 상상하게 만들기‘ 이것이 글을 쓰는 이들이 가장 원하는 바이고, 영원한 숙제다. 평생을 학생으로서 이 숙제에 바친 인물이 헤밍웨이다. 넘기는 한 장, 한 장이 소중했던 이유는 그만이 가진 나름의 원칙과 요령이 책 속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내 글을 모두 짧게 자르고 장식적인 요소들을 모두 없앤 다음, 묘사가 아니라 문장을 만들려고 한 후부터 글쓰기가 아주 멋진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어떻게 소설처럼 긴 글을 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 문단을 완성하기 위해 내내 작업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본문 33 쪽)

  헤밍웨이에게 글쓰기는 투쟁이었다. ‘세 시간 동안 쉼표를 찍을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내일 결정하기로 마음먹고 잠이 들었다’는 어느 작가의 고백처럼 헤밍웨이의 글쓰기 역시 단어 하나 쉼표와 마침표 하나에 각고刻苦 고민의 총합이었다. 그 끝에 탄생한 것이 단출하고 팍팍한 문장들이었고, 그 속에는 팍팍한 세상과 더 팍팍한 우리의 인생이 들어 있었다. 난 과연 문장이란 걸 그려내면서 얼마나 고민했던가 돌아보게 한다. 읽은 책을 말하는 나의 얄팍한 글쓰기가 없던 세계를 만들어내는 ‘글의 창조자’의 그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대상일테지만...

  글맛은 장맛이다. 단숨에 써내려갔다는 천재의 글은 멋지고 대단할지 모르지만, 어딘가 경박하다. 깊고 그윽한 장맛 같은 글맛은 표면에 허옇게 곰팡이가 피듯 펼친 흔적으로 심하게 구겨지고, 노출에 색이 바랜 종이에 들어있어야 한다. 쓰고, 지우고, 고치고, 또 지우고...더 이상을 더하고 뺄 단어가 없을 때 글맛은 생겨난다. 헤밍웨이의 원고가 보고싶어지는 대목이다.

  “그는 세잔이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세잔은 처음 그림을 시작했을 때 온갖 기교를 구사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부수고 진실한 것을 만들어냈다. 정말 멋진 일이었다. 그는 최고였다. 언제나 그랬다. 그건 사이비종교같은 절대적 숭배가 아니었다. 닉은 전원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세잔이 그림 속에서 표현했더 것처럼 글 속에 그 전원을 담고 싶었다...(중략)... 성스러운 일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말 심각하고 진지했다.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면 할 수 있다. 두 눈을 뜨고 제대로 살아왔다면 말이다.” (본문 40 쪽)

  그가 쓴 <닉 애덤스 이야기> 속의 글을 보면 그에게 글쓰기는 사실寫實이었다. ‘보고 듣고 느끼지 않은 글은 글이 아니다‘고 헤밍웨이는 단호하게 말한다. 짐작컨대 그가 보낸 하루는 관찰일테다. 헤밍웨이의 다리는 삼각대요, 눈은 광학렌즈, 머릿속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필름인 셈이다. 그 인생을 상상해 보니 몇 초 안되어 팍팍해진다. 날 때려죽인다 해도 그 짓(?)은 못하겠다. 하지만 이런 팍팍한 인생이란 게 작가의 인생이 아니던가? 작가들에게 경배를... 

  글쓰는 데 사전이 필요하다면 글을 써서는 안된다는 헤밍웨이. 비유법을 혐오하고, 거짓된 글을 기피했으며, 돈벌이를 위해 현실에 타협하고 정치적 성향을 띤 글을 쓰는 것을 죽을 만큼 싫어했던 그에게 글쓰기는 구도자求道者의 수행이었다. 적어도 책 속에서 만난 그는 지겨운 밥벌이를 운운하며 과시하지 않았고, 자신의 글을 넘치는 재주를 주체할 수 없어 휘갈기는 천재의 농짓거리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 그도 자신을 칭찬하고 자신의 글에 찬사를 보낼 때가 있으니 <노인과 바다>를 만든 때였다.

  “이건 제 평생을 바쳐 쓴 글입니다. 쉽고 편안하게 읽히는 짧은 글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면이 담겨져 있고 동시에 인간의 정신세계도 담고 있지요. 지금으로서는 내 능력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글입니다.” 본문 35 쪽

  작가라는 업業을 알게 하고, 글이 되는 작업作業을 알게 한 책이었다. 그리고 헤밍웨이를 알고 싶게 한 책이었다. 그가 즐기던 칵테일 모히토Mojito마저 사랑하게 될 것 같은 기분, 책을 덮고 난 기분이 딱 그렇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