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남자의 진정한 자유는 스트라이크 삼진아웃으로부터! 

 

  낄낄깔깔.. 내 웃음소리에 ‘누가 왔수?’ 동생 녀석이 문을 열었다. 내가 모를 손님이 올 리가 없다. 동생은 금방이라도 피가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한 손으로는 배를 움켜 잡고 다른 손으론 눈물을 훔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포개어진 다리 사이엔 예의 책이 펼쳐 있었고... “만화책도 아닌데...” 심드렁한 녀석에게 ‘이거 한 번 읽어봐라’ 책표지를 보여줬다. “그거, 지금에야 읽는 거에요?” 더 심드렁해져서는 문을 닫았다. 이 소설이 그런 소설이다. 나만 빼고 세상 모든 사람이 읽은 것 같은 소설, 권하지 않는 책은 절대로 스스로 읽지 않는 동생 녀석도 4 년 전 군대에서 두 번이나 읽은 소설,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차라리 밥은 굶어도 책은 안 굶는다 생각하는 내가 이 소설을 모를 리가 없다. 신문에서 서평도 본 적이 있고, 이외수의 젊은 시절을 방불케하는 히피와 힙합을 섞은 듯한 스타일의 저자 역시 사진으로 여러 번 봤었다. 만년 조연의 이범수가 첫 주연을 맡았던 ‘슈퍼스타 감사용’의 모티브도 이 소설이란 것도 알고, ‘처녀작 같지 않은 수준급 소설, 하지만 파격이다’는 아헤들의 말은 두 번 더 들으면 백 번이다. 그래도 애써 읽지 않은 건 처음 소설이 나왔을 때는 ‘소설을 읽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생각할 만큼 어숩잖은 짓들에 심취해 있었고,

  작은 이유는 ‘장명부’ 때문이었다. 소설 속의 ‘나’만큼 나 역시 대한민국 프로창단의 원년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 ‘소년구락부少年俱樂部’를 할 정도로 였으니까. 서울토박이라서가 아니라 OB맥주를 신봉하는 아버지의 권유(게다가 물주가 아니던가)에 의해 단 돈 오천 원으로 OB에 몸을 맡겨 회원이란 이름으로 모자와 점퍼를 주워입고 주말이면 학교 운동장, 삼청공원, 장충공원을 전전하며 시합을 뛰었었다, 나도. 

  아, 장명부.

장명부도 싫고 삼미슈퍼스타즈도 싫었다. 삼미슈퍼스타즈는 어숩지 않은 로고그림으로 나의 우상 첫 우상인 ‘슈퍼맨’을 욕먹였고, 투수 장명부는 조금 덜 무섭게 생겼다 뿐이지 봉준호의 ‘괴물’ 못지 않은 타자 잡아먹는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난 장명부가 프로야구의 마운드를 점령한 83년을 끝으로 내 사랑, 야구를 버렸다. 그러니 듣도 보도 못한 박민규가 쓴 젠장 맞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을 이유는 하등 없었다. 하지만 운명이란게 어떻게든 맞닥뜨리는 거라면, 그 운명은 어떤 책 때문이었다. 출간된 지 정확히 오 개월 늦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어 박민규와 그의 글맛을 알았고, 단골독자가 될 요량으로 전작前作을 뒤지던 중 원수같은 ‘삼미‘를 제목으로한 소설을 다시 만났다. 그 옛날의 트라우마로 잠시 망설였지만, 기어이 손에 들고 책장을 넘긴 건 여기에서도 죽은 왕녀.. 속의 ‘요한’이 여기에도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조성훈을 찾아냈다. 요한과 조성훈. 이들은 ‘똑똑한 꼴통’이다. 주인공은 아니면서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핵심적인 꼴통, 머리에 든 것, 말빨, 그리고 시선이 닮았다. 박민규와도 닮았다(외모는 제발 닮지 말기를). 그리고 요한을 만났을 때처럼 단숨에 읽어버렸다.

  박민규는 기발한 기억력과 기막힌 탐구심을 갖췄다(노트북에 글을 칠 때 원고 말고 대 여섯의 창을 켜고 검색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서 그보다 기발하고 기막힌 기억력과 탐구심이 없는 나를 매료시킨다. ‘정말 그 시절 그랬던가?’ 더듬게 되고, ‘그랬구나’ 싶어 탄복을 한다. 운 좋게도 박민규는 비슷한 또래여서 그가 ‘아~’하고 말하면 ‘어~’할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척~ 하면 삼천리요, 툭~ 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니 쉬이 읽히지 않을 리 없고, 재미없을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세상의 시각에선 삼미슈퍼스타즈는 시쳇말로 ‘루저’다.

허용치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버림받은 사람들. 하지만 조성훈이 보기엔 그건 안反삼미슈퍼스타즈의 판단의 오류일 뿐이다. 진정한 슈퍼맨인 그들은 소위 위너들이 만든 기준에 애써 들지 않으려 한 것 뿐이다. 제대로 입지 못하고, 먹지 못할 뿐 일본에서 홈리스(노숙자)로 지내면서 사회가 부여한 의무로부터의 자유, 책임으로부터의 자유를 경험한 그에게 삼미슈퍼스타즈는 진정 ‘사람답게 사는 방식’으로 보였다. 회사형 인간으로 살다 구조조정을 당하고 아내에게까지 버림받은 ‘나’는 그들의 판단대로 스스로를 루저형 삼미슈퍼스타즈로 여겼다가 조성훈의 교화로 다시 깨어난다. 사회로 버림을 받음으로써 그가 얻은 것은 언제나 새 치약의 퉁퉁한 몸통을 힘주어 누르는 기분을 나게 하는 자신의 시간을 얻었다.

  “올 여름은 왜 이렇게 긴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비로소, 시간은 원래 넘쳐흐르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 무렵의 시간은 말 그대로 철철 흘러넘치는 것이어서, 나는 언제나 새 치약의 퉁퉁한 몸통을 힘주어 누르는 기분으로 나의 시간을 향유했다. 신은 사실 인간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누구에게나 주고 있었다. 즉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벽하고 풍부한 시간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 - 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 5 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본문 264-265 쪽

  글을 읽다 보면 마치 노이즈 심한 흑백 영상으로 영화를 보여주듯 내 삶의 기억을 건들 때마다 고구마 뿌리처럼 줄줄 딸려나와 그에 취해 책을 덮기가 일쑤다. 박민규의 소설은 만화만큼이나 웃기고, 재미있다. 하지만 저 깊숙한 곳엔 페이소스가 진하게 뭍어있다. 그의 맛깔난 글 속엔 뼈가 들어있고, 칼이 숨어 있다. 케케묵은 옛날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이야기하고, 야구를 말하고 사랑을 말하면서도 그 시선은 세상과 사람을 향하고 있다.

당장의 해결책은 없는 문제제기일지 모르지만 그 속엔 국회에서는 절대로 발의되지 못하는 삶 속 저 깊숙한 우리의 고민과 고통들이 짙게 배어져 있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제기만으로 이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면, 그들의 믿음은 용케도 맞아들어 가는 듯 보인다. 이 소설을 통해 장명부의 대기록을 보면서 그를 다시 알게 되고, 슈퍼맨을 욕보인 삼미슈퍼스타즈를 용서(?)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꺼이 나도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기를 바라마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경 쓰지 마.”

조성훈이 그렇게, 다시 말문을 열었다. 신경이 쓰였다.

“뭘?”

“회사 잘린 거.”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시 약간의 분노와 패배감, 불안간은 것들이 재구성된 지구의 표면 위로 떠올라왔다.

“처음 널 봤을 때...내 느낌이 어땠는지 말해줄까?”

“어땠는데?”

“9회 말 투 아웃에서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 상황을 맞이한 타자 같았어.”

“뭐가?”

“너 4년 내내 그렇게 살았지? 내 느낌이 맞다면 아마도 그랬을 거야. 그리고 조금 전 들어온 공, 그 공이 스트라이크였다고 생각했겠지? 삼진이다, 끝장이다, 라고.”

“.....”

“바보야, 그건 볼이었어.”

“볼?”

“투 스트라이크 포 볼! 그러니 진루해!”

“진루라니?”

“이젠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쉬고, 자고, 뒹굴고, 놀란 말이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봐.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말이야. 제발 더 이상은 속지 마. 거기 놀아나지 말란 말이야. 내가 보기에 분명 그 공은 - 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어.” 본문 235 쪽

  이 글은 새해벽두 ‘정리해고’를 앞둔 수 천의 샐러리맨들에게 던지는 박민규의 격려로 들렸다. 컴퍼니라는 기계 속의 톱니바퀴는 다른 것과 맞물렸기에 안정적이었다. 컴퍼니를 위해 ‘나’라는 톱니바퀴를 들어냈다고 해서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더 오래 맞물려 돌았다면 곧 마모되어 정말 쓸모가 없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혼자가 된 바퀴는 더 이상 컴퍼니를 위해 1분 마다 한 바퀴를 도는 것이 아니라, 제 혼자 마음껏 구를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1분에 열 바퀴, 백 바퀴도 돌 수 있는 자유도 얻었다. 마지막으로 세상 끝까지 깨춤을 추며 구를 수 있는 자유도 얻었다.

  ‘스트라이크였냐, 볼이었냐?’ 하는 과거를 놓고 심판에게 항변하고, 컴퍼니를 원망할 것이 아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면 메두사의 저주로 돌이 되어버린다. 단 둘만 남을망정 ‘삼미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며 캐치볼을 하며 오늘을 보내는 두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오늘 ‘지금’을 느끼며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하는 듯 했다.

  지난 해 박민규를 만난 건 개인적인 행운이요, 기쁨이었다. 늦었지만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를 읽은 것 역시 장명부의 트라우마로부터 해방되고자 한 노력이 얻은 소득이었다. <아내가 결혼했다>가 축구라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야구다. 박현욱이 ‘젠장 맞게도 어쩔수 없는 남자의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박민규는 ‘빌어먹는 한이 있어도 얻고 싶은 남자의 자유’를 이야기했다. 축구와 야구가 일상의 기쁨이라면, 두 명의 소설짓는 남자들은 삶의 위안이 된다. 난 이제부터 박민규의 가장 늙은 팬클럽 회원이 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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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을 탐하다 - 우리시대 책벌레 29인의 조용하지만 열렬한 책 이야기
장영희.정호승.성석제 외 지음, 전미숙 사진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토종 책벌레들의 29 가지 책예찬론 !

  어른스러워질수록 호불호好不好는 줄어든다. 대신 그에 대한 사랑은 더욱 굳어진다(이 말은 극단적으로 변한다는 말도 되겠다). 지극히 어른스러운 스물 아홉 사람이 한 가지 물건에 대해 자신의 사랑을 예찬했다. 물건은 바로 ‘책’이다. 극단적인 그들의 책 사랑이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으로 표현되어 또 다시 책을 이뤘다. 책벌레들의 책사랑, <책, 세상을 탐하다>를 읽었다. 

“책은 내마음속의 언 바다를 깨는 도끼와 같다.” 

-프란츠 카프카



 

   오랜만에 만나는 전유성의 글(책에 관하여 중구난방 스스로 묻고 답하기)은 반가운 친구를 본 듯 반갑다. 그는 안심심하려고 책을 읽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항상 변화를 추구해서 베스트셀러 중 9번, 10번 째 책만 구입한다. 개그를 하듯 얼렁뚱땅 쉽게 받아넘기는 대꾸이었지만 그에게 책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걸작이다. 

  “중요한 질문이다. 내가 처음 책에서 무엇을 얻은 건 중학교 2학년 때 작은고모가 읽던 일본 소설<빙점>이다. 다른 건 기억이 안 나는데 초등학교 여자애가 집에 갈 차비를 잃어버렸는데, 주위 친구들이 차비 잃어버린 걸 걱정해주니까 정작 본인은 ”내가 잃어버린 돈을 주운 사람은 얼마나 기쁠까?“라고 말하던 대목!

  그래 세상은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구나! 세상 보는 시각을 여러 가지로 볼 수 있게 해준 결정적인 계기가 된 책이다. 소설 제목이 ‘빙점’인지 아닌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아기가 한 말은 확실하게 기억한다.“ 본문 30 쪽

  책을 읽을수록 귀가 얇아진다. 나중엔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는 귀 얇은 공자님이 된다. 고집을 피우기 전에 역지사지易地思之하게 되고, 내 입장이 중요한 만큼 네 입장도 중요한 줄도 알게 된다. 주관을 객관화시키기, 전유성이 책으로부터 얻는 소중한 소득이다. 한편 재담꾼 ‘성석제’는 소싯적 책도둑이었음을 책에다 고백했다. 그에 대한 변辯은 의뭉스럽기까지하다.

  “재능 있는 책 도둑은 아무 책이나 훔치는게 아니라 훔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훔친다. 다른 것이 아닌 책을 훔침으로써 문명과 역사에 대한 안목을 넓히며 지식과 감성의 이종교배로 유전자를 개량할 수 있다. 훔친 책은 가슴을 뛰게 하는 긴장이 부작용처럼 곁들여지고 잘 읽히고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나보다 수준 높은 책 도둑의 서고에서 동굴 속의 알라바바처럼 넋이 나가 서 있던 적도 두어 번 있다. 그 정선된 보물을 다시 훔침으로써 우리 책 도둑들은 시대정신을 공유했다.” 본문 46 쪽

  무슨 책을 얼마나 훔쳤는지 궁금하다. 그 책들이 덕분에 의뭉스러운 지금의 성석제를 만드는데 도움을 준 셈이다. 하지만 추억꺼리일망정 할 짓은 못된다. 가뜩이나 위축된 출판시장에 낭만을 빙자한 책도둑마저 횡횡한다면 책 짓고 파는 이들 시름은 더욱 깊어지기 때문이다(요즘 책 훔치다 붙잡히면 대체 벌(형량)은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이들의 책예찬에 겸손은 보이지 않는다. 허생전의 허생처럼 딱 10 년 동안 책만 읽고 살라한다면 ‘옳다구나’할 사람들이다. 듣도 보도 못한 ‘책벌레’로 불려도 ‘허허’ 웃고 말 사람들이다. 시인 조병준은 아예 ‘책벌레라서 행복해요!’ 하며 어느 여배우를 흉내낼 지경이다.

  “인생의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책벌레로 인생을 살게 된 건 저주다. 끝없는 배고프모다 지독한 저주가 어디 있는가. 그러나 끝없는 저주는 동시에 축복이다. 죽는 날까지 새로운 양식으로, 비록 곧 사라질망정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처럼 놀라운 축복이 또 어디 있는가. 끝없는 포만감과 끝없는 배고픔이 꽉 부둥켜안고 추는 왈츠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본문 149쪽

  이 책은 내게는 위로다. 촌각을 다투며 속도와 변화를 추구하는 이 세상에 묵묵히 한 곳에 자리를 지키고 종이에 새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책 읽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위로한다. 많은 문인과 출판인, 평론가, 음악가, 심지어 개그맨 전유성까지...이 책을 집어든 나를 격려한다. 몇 장마다 숨겨진 붉은 칠된 글자들은 내가 갖던 책에 대한 애정이었다. ‘그러게, 내말이...’ 눈에 담고 마음에 새기고 싶은 말들 고개가 함께 주억거렸다.

  가장 인상적인 글귀는 시인 이문재의 ‘척추로 읽읍시다’였다. 일주일 날을 잡아 십 수권의 책을 들고 호텔방에 쳐박히는 소설가 김훈, 매주 일요일 아침 마다 정좌를 하고 책을 읽는 황종연 교수, 일 년 중 한달을 ‘안식월’을 두는 빌 게이츠까지 아예 작정하고 자리를 틀고 책을 읽는 이들이 읽는 책은 무엇일까? 제목은 알 수 없지만 자세 만큼은 척추를 곧추세운 정좌의 독서라는 것이다.

  “척추를 곧추 세우고, 다시 말해 온몸과 마음을 집중해 읽은 책이 한두 권 있다면, 당신은 책 속에서 이미 길을 찾았을 것이고, 또 그 길 위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갔을 것입니다. 책을 몇 권 읽었느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척추를 곧추 세우고 읽은 책이, 또는 그런 자세로 읽고 싶은 책이 과연 몇 권이 있는지가 책 읽기의 핵심입니다. 척추로 읽는 책이 진짜 책입니다.” 본문 85 쪽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을 쫓다 보니 마지막 장이다. 아껴서 읽느라 애를 썼지만 헛수고였다. 읽어서 즐겁고 만나서 기쁜 책, 이 책을 두고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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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노볼THE SNOWBALL

- 앨리스 슈뢰더 저, 이경식 역, 2009, 랜덤하우스

리뷰 보기: http://blog.daum.net/tobfreeman/7162959

 

  “만일 제대로 된 눈 위에 서 있다면 눈덩이 굴리기는 이미 시작된 겁니다. 내가 그랬습니다. 이건 돈을 불리는 이야기만 뜻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친구를 만들어 나가는 문제입니다.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눈이 호감을 가지고서 제가 먼저 붙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본인 스스로 촉촉한 눈이 되어야 합니다. 잘 뭉쳐지게 말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눈을 계속 붙여야 합니다. 갔던 길을 물리고 뒤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언덕 위까지 계속 올라가야 합니다. 인생이 그런 겁니다.“ 

  워런 버핏에게 있어 스노볼은 투자를 넘어 세상을 이해하고 인생을 사는 방법을 대표하는 단어입니다. 바로 ‘무엇이든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선택하라’는 뜻이죠. 이것이 바로 워런 버핏이 살아가는 방식인 겁니다. ‘스노볼‘은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화려한 간판보다는 ’제 인생을 온전히 저다운 근성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비춰집니다. 

  이 책을 2009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 4차 산업이라고 하는 ‘금융산업’시대를 맞아 우리 대부분은 금액에 상관없이 ‘투자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지겨운 밥벌이’ 운운하며 우리가 직장을 나가고 사업을 하는 이유는 바로 ‘돈’을 벌어 지금보다 더 안정되고 풍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투자행위’ 역시 내 일과 상관없이 ‘돈이 돈을 벌어주는 시스템’을 구축해서 ‘안정되고 풍요로운 생활’을 보다 더 앞당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 한 번 생각해 보죠. 당신에게 ‘안정되고 풍요로운 생활’ 즉, 행복한 생활이란게 무엇인가요? 그저 돈을 더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쓰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돈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돈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는 일’을 벌이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 필요없어. 돈만 더 주면 뭐든 할 수 있어.’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는 겁니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돈‘만을 위해 벼랑 끝일지도 모르는 알 수 없는 길을 내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책입니다.

  워런 버핏은 세계 최고의 부자를 위해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가치투자’라는 뚜렷한 투자관을 정립하고, 자신이 가장 행복한 방법을 통해 투자했습니다. 일확천금을 벌어들일 수많은 방법이 그를 유혹했지만, 자신이 지금껏 걸어온 인생에 어긋남이 없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클릭Click산업‘으로 대표되는 IT 혁명이 있을 때도 그는 ’브릭Brick산업‘에만 투자했답니다. 당신의 투자관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어떻게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그리고 하나 뿐인 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가고 싶습니까? 이 책을 읽는다면 투자를 넘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오마하 현인‘에게 물어볼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이 죽기 전에 ’평전‘을 내도록 허락한 이유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깨우치길 바란 때문일 겁니다. 책 제목처럼 그래야 행복이라는 복리가 조금 더 빨리 늘어날 테니까요. 스스로가 투자자라면 놓쳐서는 안될 최고의 책입니다.

2.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박민규, 2009, 예담 

리뷰 보기: http://blog.daum.net/tobfreeman/7163117

  문학에는 문외한인 제가 올해 얻은 큰 수확이 있다면 아마도 소설가 ‘박민규’를 알게 된 것일 겁니다. 세상의 판단대로라면 저 역시 <1Q84>에게 손을 들어줘야 할 겁니다. 하지만 전 두 번째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 선정했습니다(저의 뒷통수에 조금 남아있는 반골기질 탓이기도 합니다). 

  저는 소설을 흔들리기 위해 읽습니다. 배우고, 익히는 것을 실용서에서 찾는다면 내 마음을 흔들어줄 무엇은 영화나 소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나이를 먹을수록 타인으로부터 흔들리기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살 만큼 살았다고, 나름의 ‘개똥철학’이 생겼다고 남의 이야기에 찬동하기 보다는 제 생각을 어거지로 우기는 ‘똥고집’을 피우게 되죠. 소설과 영화는 사고思考를 확장시켜 줍니다. 이 장르의 기본은 ‘공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동일시하게 되고, 그래서 간접경험을 얻게 되죠.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배울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저를 제대로, 그리고 많이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 소설을 한 단어로 말한다면 ‘파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문장형식을 파괴하고, 우리의 고정관념을 파괴합니다. 그리고 파격적인 시도들도 선보입니다. 하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금방 익숙해져서 다른 소설을 읽을 수 있을까 걱정하게 합니다.

  소설의 소재는 ‘외모’이고, 주제는 ‘사랑’입니다. 흔하디 흔한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구성으로 저를 흔들었습니다. 스무 살 청춘들의 러브스토리는 강산이 두 번 변할 만큼 늙어버린 제게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공감과 동감에 수없이 고개를 주억거리게 했었죠.

  또한 제가 사랑하는 ‘데미안’이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습니다. 소설 속 세 번째 주인공인 요한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눈에 밟힐 만큼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요한은 ‘박민규’더란 말이죠. 그래서 그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그의 소설을 추적해 읽어볼까 합니다. 올해 박민규를 만난 건 내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3. 주식투자란 무엇인가1 박경철, 2009, 리더스북

리뷰 보기:http://blog.daum.net/tobfreeman/7162747

 

  "주식시장을 무서운 적이라고 생각하라. 그것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어떻게 하려고 있는지, 내 속을 훤히 꿰뚫어보는 천리안과 같은 무서운 적이다. 시장은 내 머리속에 들어앉아 내 마음을 읽기 때문에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도 시장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다. ... 성공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최소한 시장이 무엇인지, 그것이 왜 무서운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단언컨대 천하의 고수든, 평범한 투자자든, 오늘 처음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이든, 이 책을 쓴 나 같은 사람이든 내일의 주식시장을 맞힐 수 있는 확률은 반반이다."

  책 속에 있는 이 내용은 개미투자자들의 친구인 시골의사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핵심입니다. 읽어보면 당연한 진리, 하지만 투자자들은 좀처럼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을 내던지기(投資) 전에는 의심하고, 부정하다가도 막상 사버린 후에는 ‘당연히 오를 것’으로 믿어버립니다. 사람이기에 갖게 되는 필연적인 오류죠.

  하지만 정작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은 이런 오류을 좀처럼 일으키지 않습니다. 주식시장이 무서운 줄을 익히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최대한 ‘시장을 읽은 후’에 투자합니다. 그리고 지수가 오르느냐 내리느냐의 절반의 상황 중에 최소한 51%의 확률을 판단했을 때 그 때 투자를 단행합니다. 51% 밖에 안되냐고요? 찌라시나 소문에 묻지마 투자를 하는 10% 확률보다는 한참 높지 않나요?

  투자에 관련된 책을 찾고, 전문가의 강연을 찾는 사람들의 가장 큰 잘못은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책을 찾고, 강연회를 찾을 때는 ‘알려고’할 것이 아니라, ‘배우려고’ 해야 합니다. 어디에도 ‘투자처’를 지목해 주지 않습니다. 혹 알려준다 하더라도 모종의 ‘작전의 술수’가 들어간 소스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배우려는 마음으로 찾는다면 지금보다 더 큰 소득을 얻을 겁니다. 

  이 책은 투자서가 아닙니다. ‘주식투자 경계서’라고 해야 할 겁니다. 왜냐하면 시골의사가 책 한 권 내내 하는 말은 ‘충분히 공부하지 않고 주식투자를 하는 것은 돈을 휴지통에 버리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올해 출간되어 많은 호응을 얻으며 팔려나갔음에도 뒷말이 없는 이유는 아마 이런 내용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한 해를 마감하면서 자신의 투자성적을 살펴본다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할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면 ‘나의 오류’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껏 주식이나 펀드투자를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를 체크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만으로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할 겁니다. 살 것인가 말 것인가의 판단에 앞서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제게도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던져준 책입니다. 시골의사가 다시 한 번 경고를 하네요.

"주식투자를 하면 안 된다. 단언컨대 주식투자는 보편적인 개인투자자가 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큰 손실이 없었던 사람들은 앞으로 다른 사람들이 주식투자로 떼돈을 벌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주식투자를 하면 안 되고, 주식시장이 지금의 10분의 1로 폭락해서 주권 한 장이 담배 한 개비의 가격밖에 되지 않더라도 투자를 해서는 안된다. 최소한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4. 월스트리트 성인의 부자 지침서 - 존 보글 저, 이건 역, 2009, 세종서적 

리뷰 보기: http://blog.daum.net/tobfreeman/7162976 

  “금융 시스템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문제는 이런 가치를 얻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그 가치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답은 명백하다. 금융산업은 우리 경제에서 가장 큰 부문일 뿐만 아니라, 고객들이 스스로 지불한 비용 수준과 비슷한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유일한 산업이다. 실제로 간단한 산수의 잔인한 법칙에 따르면, 투자자들 전체로 보면 이들은 자신이 지불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역설적으로 말해서, 투자자들이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보상을 모두 받을 것이다!).” 

  올해 제가 이 책의 저자인 존 보글을 알게 된 것도 큰 행운 중 하나입니다. 몇 해 전부터 펀드투자를 하면서 가졌던 의문과 불만을 말끔하게 해소해 준 사람이니까요. 존 보글은 투자자들의 마지막 보루인 ‘인덱스 펀드’를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인덱스 펀드는 운용비와 수수료가 가장 적게 들고, 가장 안전한 펀드 그래서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시대인 오늘날에는 가장 ‘보수적’인 투자수단으로 분류되는 펀드입니다.

  존 보글은 묘하게도 가치투자와 장기투자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한 인생’을 위한 투자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워런 버핏의 투자관과 엇비슷하게 맞물립니다. 한마디로 ‘사람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났냐?’는 말이죠. 투자에 목숨걸다 인생마저 목숨걸지 말고, 소중한 내 인생 보다 안전하고 편하게 살아가는 투자방식을 취하라고 두 사람이 전하는 듯 합니다.

  저자가 인덱스펀드를 만들었다고 해서 ‘자화자찬’하지 않습니다. 대신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간접펀드의 맹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지금의 간접펀드시스템으로는 직접투자만큼 위험하진 않겠지만, 결코 만족할 만한 수익을 얻을 수 없음을 하나하나 파헤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간접투자에 대한 여러분의 마인드가 바뀔지도 모르게 되죠. 

  중요한 것은 저자가 투자자인 독자들에게 던지는 조언입니다. 존 보글John C. Bogle은 우리에게 “충분함을 알라.”고 말합니다. 우연한 성공에 도취되어 너무 규모를 키웠다가 말 그대로 ‘거지’가 된 사업가, 상자 하나에 가득 담긴 현금뭉치에 현혹되어 평생을 일궈놓은 명성을 날리고 쇠고랑을 찬 정치인, 선무당 즉, ‘초심자의 행운‘인 것을 모르고 마치 행운의 여신 운운하며 가산을 도박으로 탕진한 사람들. 이들에게 닥친 모든 화禍의 근원은 ’충분함을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인덱스 펀드‘의 장점을 설명합니다. 간접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봐야 할 좋은 책입니다.

 



 

5. 1Q84 - 무라카미 하루키 저, 양윤옥 역, 2009, 문학동네 

리뷰 보기: http://blog.daum.net/tobfreeman/7163020

  아무리 뒤져봐도 이 책보다 더 나은 책을 찾아볼 수 없네요. 마지막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 1Q84입니다. 대학시절 ‘상실의 시대’를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난 후 제가 그에게 갖는 생각은 항상 ‘미스터리한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소설을 통해 그를 만나고 있지만, 그는 알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소설을 꽤 읽은 편이지만, 매번 읽은 내용을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들게 했었죠. 뭔가 더 깊은 뜻 숨은 의도가 있을 법한 소설가, 그래서 그를 추종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이제껏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많이 알 법 했습니다. 혹자들은 이 소설이 가장 그답게 만든 완성작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해하기 쉬웠는지도 모릅니다. 제겐 소설이 이렇게 흥미롭던가? 하는 것을 보여준 책이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미 베스트셀러적 문학 요소가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입니다. 쉽게 말해 오늘날 독자의 코드를 잘 이해했다고 봐야죠. 어쩌면 이전의 소설들은 독자들보다 조금 앞선 감이 없잖았습니다. 가장 흔한 주제인 사랑을 소재로 펼친 이야기는 드라마틱하고 SF적인 요소마저 갖추고 있습니다.

  매력적인 음악, 예술, 라이프스타일적 요소들을 소설의 곳곳에 감추어 독자들의 매료시킵니다. 만약 이 소설이 전자책으로 나온다면, 그래서 그가 말하는 요소들을 바로 검색해서 찾아볼 수 있다면, 책 만큼이나 ‘히트상품’이 될 것 같습니다(전자책이 종이책과 차별화된 점이 이런 게 아닐까요).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만들어버린 이 소설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껏 저처럼 하루키의 소설을 어려워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네요. 새로이 버전업된 하루키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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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 전2권 세트- 워런 버핏과 인생 경영
앨리스 슈뢰더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73,000원 → 65,700원(10%할인) / 마일리지 3,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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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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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 통찰 편, 시장의 거짓을 이기는 통찰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8년 10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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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성인의 부자 지침서
존 보글 지음, 이건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8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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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CEO - 상추로 매출 100억을 일군 유기농 업계의 신화 장안농장 이야기 CEO 농부 시리즈
류근모 지음 / 지식공간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농업이 낙후산업이 아니라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블루오션이다!  

  농업. 이 단어를 떠올릴 때 마다 잠깐이지만 항상 스쳐가는 기억이 있다. 대학 복학 후 대동제를 앞두고 너덧 명이 미팅을 했더랬다.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나름대로의 성장盛裝으로 미팅장소에 들어설 때 새내기시절부터 ‘농민의 자식’으로 자신을 부르던 동기 녀석도 끼어 있었다. 장학금을 타지 않으면 등록금을 낼 때마다 소 한 마리를 팔아야 한다던 녀석은 학문보다는 ‘학습’에 더 열성적이었고, 강의에 참여한 날 보다 전국에서 진행되던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날이 더 많았던 ‘상비군’급 운동권이었다. 미팅을 유치한 ‘아이들 소꿉놀이’ 쯤으로 여기고 비웃던 녀석이 그곳을 참여한 건 생리학적으로 엄연한 ‘아저씨’가 되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녀석의 파트너가 된 여학생이 ‘농업관련업을 하는 집안의 딸’로 소개하면서부터 였다.

  그녀는 얼핏 봐도 고가를 짐작케 하는 옷차림에 악세서리들, 그리고 행동과 말본새는 그 당시 강남의 멋진 젊은이들을 일컫는 ‘오렌지족’과 많이 닮았다(실제로 그녀는 강남에 거주한다고 했다). “아버님이 농업 쪽에서 어떤 일에 종사하시죠?” 농민의 자식이 던진 질문은 우리도 묻고 싶었던 당연한 의문이었다. “네에, 밭떼기 장사해요.” 

  밭떼기란 쉽게 말해 밭에서 나는 작물을 수확 전 밭에 나 있는 채로 농민에게 돈을 주고 몽땅사는 방식을 말한다. 벼농사를 짓는 농민의 입장에서는 입도선매立稻先賣 즉, 아직 논에서 자라고 있는 벼를 미리 돈을 받고 파는 것과 동일하다. 이 매매방식은 날씨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농업에서 주로 이뤄지는데, 농민 쪽에서는 당장 급전이 필요하거나, 풍수해의 자연재해와 풍작으로 가격하락의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불안한 미래를 피해 미리 적절한(과연 해피한 가격일까는 알 수 없지만) 가격을 받고 팔 수 있다는 잇점이 있지만, 수확의 결과물을 중간상인 밭떼기 장사꾼의 몫으로 돌아가 ‘영세성’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니 농민의 자식과 밭떼기 장사꾼의 자식의 미팅이 잘 될 법이 있겠나? 미팅은 고사하고 녀석의 한숨과 푸념을 들으며 밤을 새워야 했다. 

  친구가 밤을 새워 푸념했던 말들의 핵심은 농사를 지어 봤자 이익은 모두 중간상들의 몫이라는 것이었다. 품종을 개량하고 수확을 몇 배 수 늘려봤자 직거래를 할 수 있는 판로가 없어 중간상들이 알아서 매기는 가격에 수확물을 넘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높은 값을 쳐달라고 요구하면 ‘다른 곳에서 사겠다’고 발길을 돌리니 시간이 지나면 상해버리는 식물이니 눈물을 머금고 팔 수 밖에 없는 것이 농민의 현실이었다. 친구는 ‘유통구조의 개혁’만이 살 길이라고 목소리 높여 주장했다. 아무리 차별성 있는 제품을 만들어봤자 그 판단의 유무를 소비자가 아닌 중간상이 내린다면, 그리고 그 이익을 모두 그들이 취한다면 어떻게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겠나 하는 것이 친구의 판단이었다. 그런 기억이 있는 지 벌써 십 수 년이 지난 후 농업 유통의 후진성은 많이 개선되었다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일년 간 땀흘려 일한 농민들의 수고가 소비자를 통해 고스란히 소득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답을 책 <상추 CEO>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장안농장의 홈페이지에 가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 http://www.ssamnhub.com



 

   이 책은 1997년에 귀농해 유기농 상추 재배로 13년 만에 매출 100억원대의 유기농 기업으로 성장시킨 류근모 씨가 쓴 것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농업인의 미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책의 내용에는 류씨가 조경사업으로 실패 한 후 융자금 300만 원으로 시작해 지금의 ‘장안농장’을 이룩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아울러 농업인과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한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장안농장을 어떻게 일구었을까. 지난 13년을 돌이켜 봅니다. 어려웠던 많은 순간이 눈앞을 스치지만 무엇보다 다음의 말이 제가 드리 수 있는 성공 비결입니다. ‘편견과의 싸움’

농업에 승부를 걸기로 마음먹었기에, 숱한 밤을 지새우며 활로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아이디어를 얻어 실행에 나섰지만 사람들은 번번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네? 상추를 소포로 팔겠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혁신인증을 받아서 뭐합니까?”

“브로콜리를 왜 잘라서 팝니까? 품이 많이 들고 남은 것도 없잖아요?”

농사꾼이 무슨 마케팅을 하느냐, 농사꾼이 왜 빵집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느냐, 농사꾼이 서비스는 잘해서 무엇 하느냐, 농사에 무슨 비즈니스 마인드를 접목하느냐, 남들도 안 하는데 왜 굳이 우리가 하느냐...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중략)

한 물 간 사업은 세상에 없습니다. 사양사업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농사에 뛰어든 이후로 농업이 호황을 구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아무리 IMF의 위기 앞에서도 성공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다 쓰러지는 와중에도 살아남는 단 한 명은 존재합니다. 살아남은 그 사람이 희망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 한 명이 되면 됩니다. 미리 한계를 긋지 마십시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살아날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제가 바로 그 증인입니다.“ 본문 5~6쪽

  장안농원의 유기농 채소들은 마트에 가면 유기농 코너에서 볼 수 있는 채소들이다. 류씨는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트렌드를 읽고 유기농 채소를 키우는 농업으로 뛰어들었고, 모두가 괜한 짓이라고 무시하거나 불가능할거라 여기는 일을 보란 듯이 성공시켰다. 그가 이 일에서 최고가 되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 농사의 달인들에게서 반면선생反面先生으로 얻은 교훈은 세 가지였다. 

 첫째, 과거의 좋았던 시절에 연연해서는 발전이 없다.

 둘째, 객관적인 데이터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농사를 지어서는 안 된다.

 셋째, 자신이 지은 농산물이 어디로 어떤 가격에 팔리는지 몰라서는 최고가 될 수 없다.

  요약해 보면 농사꾼 역시 제품을 만들어내는 회사를 CEO가 경영하듯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농사일지를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뽑아내야 하고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또한 전자제품을 팔 듯 탁월한 마케팅을 찾아내어 소비자들의 반응을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류씨는 생각했다. 그는 ‘농사꾼이자 장사꾼이 되어야 성공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추진했던 사업방식의 대부분은 이전에는 없었던 ‘최초’로 시도하는 방법들이다. 우체국 소포를 이용한 물류 배달로 그렇고, 땅심(힘)을 높이기 위해 지하 암반수에 옥돌과 맥반석 가루를 섞어 물을 준 것 역시 처음이다. 그가 보는 농업은 낙후산업이 아니라 미개척지 즉,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던 블루오션이었다.   

  “농업이 미개척지라는 사실은, 재배 방식뿐 아니라 마케팅이나 유통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만큼 후진성을 벗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일 누군가 나보다 앞서 이 길을 개척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과연 나는 지금의 장안농장을 만들 수 있었을까? 그 사람의 뒤를 따라 손쉽게 갈 수 있는 길이었다면 나는 이 일에서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며 살았을까? 번번이 새로운 것을 개척할 때마다 왜 농사에는 이렇게 안 된다는 게 많은 것인지 답답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게 처음 가는 길이었기에 어쩌면 내 적성에 맞지 않았나 싶다.” 본문 101-102 쪽

  그의 농업 경영에 있어 주요 정보 습득처는 바로 책이었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인터넷의 발전으로 유통혁명이 있을 것을 발견하고 인터넷을 통해 대형 쇼핑몰을 공부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장안농장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김영세의 <이노베이터>, 공병호의 <10년 법칙>, 김영모의 <빵굽는 CEO>, 로버트 그린의 <전쟁의 기술> 등 그가 경영을 위해 펼쳤던 수십 권의 책을 발견할 수 있는데, 과연 이것이 농사꾼이 읽은 책이란 말인가 놀라울 정도였다. 또한 류씨는 21세기는 ‘감성의 시대’라는 것을 이미 감지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장안농장을 통해 펼치는 마케팅의 핵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상품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기억한다. 우리만 해도 그렇다. 실패의 쓰라린 가슴을 안고 좌절해 있을 때, 그때 누군가 권하는 밥 한 술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어서 평생 기억을 안고 사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맛만으로 기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농산물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상품을 파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농촌의 향수와 정을 팔아야 한다. (중략)

  ‘마케팅’하고 질문을 꺼낼 때는 도깨비 방망이 따위를 기대하는 것이겠지만 세상에 그런 마케팅은 없다. 별다른 노력 없이 단박에 수익을 거두는 방법은 세상에 없다. 머리 좋아서, 잔꾀를 부려서 돈을 벌 방법은 없다. 머리 좋기로 따지면 요즘 소비자를 누가 따라갈 것인가? 잔머리로 돈을 벌려고 하면 그 머리 때문에 망하는 게 요즘 시대이다. 싸게 판다고, 품질만 좋다고 고소득을 올리는 시절은 지났다. (중략)

  ‘좋은 상품을 만들자.’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는 좋은 상품이 넘쳐난다. 제품 만드는 기술은 금세 공유되므로 따라잡기는 시간문제이다. 좋은 상품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좋은 상품을 넘어 감동을 주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마케팅 방법이다.“ 본문 144-145 쪽

  이 책은 성공한 인물의 한 맺힌 사연을 주저리 밝힌 고백서도 아니고, 자화자찬과 허장성세가 그득한 성공스토리도 아니다. 농사꾼에게는 이룩한 자가 말하는 농업 발전을 위한 계몽서이고, 귀농하여 부농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헛꿈’ 꾸는 것을 경계하는 경험담이다. 류씨의 말을 듣고 있자니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앤드 그로브의 말과 공병호가 말하던 10년 법칙의 전형적인 사례가 이 사람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생각됐다. 1차 산업의 성공사례를 책으로 만나서 반가웠다. 저자는 물론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인물을 잘 찾아내고 책을 편 출판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과 더불어 두부를 팔아 주식상장을 이룬 일본의 다루미 시게루의 <두부 한 모 경영>(전나무숲)과 일본의 10년 장기불황기에 100엔 짜리 우동을 만들어 급성장한 '(주)하나마루' 우동 프렌차이즈의 성공기를 다룬 <하나마루 우동집 성공기>(씨앗을 뿌리는 사람)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것저것 하다 안 되면 장사를 하던지, 시골가서 농사나 짓지, 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주변에 다. 그런 친구들이 농사를 할 수야 있겠지만, 성공은 절대하지 못한다. 내게 이들의 성공여부에 돈을 걸라면 난 차라리 개가 껌을 씹어 풍선을 불고, 풀을 뜯어먹고 되새김질하기에 돈을 걸겠다. 숨막히는 도시를 떠나 귀농歸農하여 넉넉한 여생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둘 필요가 있다. 한낱 푸성귀 밖에 안된다고 생각되는 상추일망정 이것으로 밥을 바꿔 먹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언감생심 농사를 지어 부농富農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이 책을 서 너 번은 더 읽어야 할 것이다. 행간에 숨은 성공의 비밀들이 무수히 숨어있기 때문이다(책의 말미에 따로 적어둔 류근모의 ‘귀농십계명’은 필독해야 한다). ‘죽을 작정’으로 실행하는 용기는 그 다음에 가져야 할 각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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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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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을 인식하면서 노인의 말에 새삼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입장과 처지야 다를 테지만 앞서 살아온 시간 만큼의 연륜을 훔치고 싶어서다. 젊을 때는 꿈으로 가득하고, 늙어서는 후회로 가득한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노인의 후회는 내가 살아갈 미래에 적잖이 방향타 노릇을 할 거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노인의 말에 경청하는 경향은 책에도 적용되었다. 최근에 읽은 책들은 대다수가 젊은이들의 생기발랄한 글들에서 ‘컨템퍼러리 의식’에 동요되어 ‘나도 그들처럼...’을 외치기보다는 앞선 이들의 가르침이 뭍어 있는 책들을 읽었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노인이 되고 싶었다>(푸른숲)도 그런 이유에서 펼친 책이다.

 

  이 책을 펼친 데 한 몫을 한 것은 제목이었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노인이 되고 싶었다’는 제법 긴 문장의 제목은 여러 ‘뉘앙스’를 던져 주었다. 노인이 된 저자가 시간이 적어졌다는 푸념인지, 만약 시간이 아주 많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원제목은 ‘존슨은 오늘 오지 않는다’. 원제목대로 였다면 난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스위스 현대문학의 대표작가로서 스위스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저자의 소개 역시 이 책에 ‘회가 동하게 만든 이유’였다. 하지만 내가 갖은 기대에는 훨씬 못미쳤다. 아예 내가 작가를 잘 모르고 전혀 다른 관점에서 기대를 가졌던 셈이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책에서 노인의 가르침에서 깨달음을 얻으려던 내 생각은 처음부터 많이 어긋났다. 저자 페터 빅셀은 칠십이 넘은 나이에 홀로된 남자에게 보이는 주위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생각에 대해 기록하고 있었다. 그저 바라만 본 일상이라고 말했지만 저자는 깊이 관찰하는 듯 했다. 그의 관찰은 생각과 더해져 작은 주제가 되어 한 꼭지의 작은 글을 이루었다. 제법 재미있을 법한 글이지만 전혀 재미를 느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꽤 많다.

  우선 저자를 모르기에 그가 사는 스위스의 작은 동네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그가 바라본 사물 역시 내 관심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그가 안다는 사람들 역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조연들보다 눈에 띄질 않았다. 소재들이 너무나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이어서 아무리 평온한 마음이라 해도 함께 공감하며 읽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아무리 글맛이 있는 작가라지만 번역된 글은 그 맛을 온전히 전달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니, 독자가 온전히 소화하지 못한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자, 내가 사는 이곳과 정반대의 땅덩어리에 사는 푸른 눈의 노인이 자신이 사는 동네의 이모저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내가 무엇을 공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내가 지난 봄에 읽은 로버트 풀검의 <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랜덤하우스)와 많이 비교된다. 비슷한 연배라는 점과 일상 속에서 관찰되는 사람과 주변 이야기들을 엮었다는 점은 서로 비슷하지만, 서술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전자가 인생 후반부를 살아온 달관자적 입장에서 위트있고 재미있게 일상을 구술했다면, 후자는 지극히 평범하게 자신의 주변을 이야기하고 있다. 글 곳곳에서 기억이 흐릿하다, 나이 탓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독자로서는 불편했다.

  어쩌면 내가 제목에 너무 혹한 나머지 제목이 던진 화두만을 쫓았기 때문에 깊이 빠져들지 못한 채 주변만 맴돌다 투덜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작가와 공감할 만큼 깊이나 연륜이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깊이와 연륜을 갖춘다 해도 이 작가에게는 충분히 공감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작가와 독자도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말...그 말을 실감하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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