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인간의 경제학 - 경제 행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 탐구
이준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준구 교수, 전통 경제학을 버리고 행태주의이론을 채택하다!

 

  이 책은 경제학관련 분야로는 조금 특별하고 기념비적이다. 미시경제학과 재정학분야에서 대표적인 주류경제학자인 이준구 교수가 이 책을 통해 일종의 ‘커밍아웃’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간결한 문체와 친절한 설명으로 <경제학원론>,<미시경제학>,<재정학> 등을 펴낸 바 있고 경제학도라면 그가 쓴 이 책들을 최소한 한 권 이상은 읽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잠시 눈을 돌려 행태경제이론behavioral economics에바람이 났다. 기존의 연구에 대해 반기를 든 셈이다. 

  어쩌면 그는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이코노미컬한 인간‘이라는 전제에 사로잡힌 전통적 경제이론의 ’비합리성‘에 질렸는지 모른다. 한편으론 평생을 경제학 교육에만 힘을 쏟던 그가 ’삐딱선을 타고 삼천포로 흘러들어가는‘ 한국경제의 현실을 더 이상 눈뜨고 못봐주겠다는 마음에 올바른 경제정책을 제시하기 위해 강단에서 한 발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글로벌 경제시대에 걸맞게 국내는 물론 국제경제에 대한 관심이 유독 높아진 국민들의 지적 수요를 지금까지 국내 경제학자들이 충족해주지 못했고, ’괴짜 경제학‘, ’경제학 콘서트‘, ’상식 밖의 경제학‘ 등 외국인 경제학자에 의한 쉬운 ’행태주의 경제학’ 책들이 출간되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재 이준구 교수의 ‘커밍아웃’으로 만들어진 <36.5℃ 인간의 경제학>은 독자로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교수가 행태경제이론에 눈을 돌린 이유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현실의 경제정책의 불합리성은 전통 경제이론의 틀에 얽혀 있는 자들이 내린 ’합리적인 선택‘에 의해 내려진 결과물이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경제정책이 불합리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정자들은 ’경제원칙‘에 입각한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즉, 프레임이 바뀌지 않으면 보이는 세상 역시 변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였다. 이 교수는 늦게나마 행태경제이론 연구에 관심을 두게 된 변辯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틀을 짜야 좋은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인간의 본성에 어떤 결이 있다면 그 결을 따라 움직이도록 부드럽게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틀을 짜야 한다는 말이다. 그 결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정책의 틀을 짜면 비용만 많이 들 뿐 기대하는 성과는 나오기 힘들다. 바로 그 정이 행태경제이론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중략)

행태경제이론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인간이 정말로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인지를 검증해 보자고 제의한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인간 본연의 모습에 기초해 경제이론을 다시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행태경제이론에서는 인간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 전통적인 경제이론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36.5℃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다.“ 본문 7-8 쪽

  이 책은 이준구 교수가 지금껏 자신이 공부한 ‘행태경제이론’을 간략하게 요약한 책이라고 보면 된다. 저자 자신이 행태경제이론에 눈뜬 지 얼마되지 않았고, 현재 신학문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고 책에 고백하기도 했는데, 난 학문적 입지에 있어 누구도 넘보지 못할 만큼 탄탄한 위치에 있는 저자가 느즈막히 새로운 학문에 도전한 것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수백 수천 명의 학생들을 가르쳐 왔던 그에게 이러한 ‘변화’는 자못 위험스럽기까지 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저자의 이러한 변화의 이유가 경제정책 수립에 직접 참여하는 위정자들 중에는 자신의 제자들이 적잖았기에 이를 통감하고 미래의 경제 정책 입안자들을 위해 새로운 경제학 코드의 접목을 시도한 것이라면 좋겠다. 

  저자는 우선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끝없는 욕망과 완벽한 합리성을 갖춘 인간,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경제적 인간)로 가정한 주류 경제학에 태클을 걸었다. 백해무익한 담배를 끊는다고 다짐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사람들, 야식과 함께 다이어트 약을 먹는 여성들, 단지 싸다는 이유로 별 필요도 없는 상품을 충동구매하는 소비자들 등, 현실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경제행위는 결코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행태경제이론은 이러한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경제학과 심리학이 결합된 새로운 경제학의 대안이다. 행태경제이론의 시작은 바로 우리들은 주류경제학이 말하는 것처럼 결코 ‘아인슈타인처럼 생각하고 간디처럼 인내심이 많은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행태경제이론을 접하면 주류경제학이 설명할 수 없었던 인간들의 경제행위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매일같이 직접 경험하면서도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을 언급하고 있어 점쟁이를 만난 듯 놀랍고 신기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기존에 나온 행태경제이론에 대한 책들과 내용면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의미를 둔다면 서 너 권의 책을 종합하고 요약해 엑기스만을 한 권에 담았고, 국내의 경제상황에 맞는 사례를 들고 있어 이해가 쉽고, 잘못된 경제정책들의 원인을 모색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지난 봄 펴낸 <쿠오바디스 한국경제>이 국내 경제정책의 모순과 폐해, 그리고 비현실성을 낱낱이 지적했다면, 이 책은 이러한 원인이 주류경제학적 근거에 바탕하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었다. 이를 잘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 있다.  

  “나는 행태경제이론의 영향력이 이론보다 정책의 측면에서 훨씬 더 빠르게 확대되리라고 본다. 기본 골격을 바꾸기가 어려운 이론과 달리, 정책의 경우에는 기존의 체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따라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정책에 활용될 수 있는 길은 언제나 넓게 열려 있는 셈이다. 행태경제이론은 정책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의 보고라고 말할 수 있다.” 본문 288-289 쪽

  책의 전반에 걸쳐 행태경제이론에 대해 놀라고 있는 저자를 발견하게 된다. 전작들이 자신이 많은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물을 전하는 내용이었다면, 이 책은 흥미롭고 즐거운 분야에 대해 공부한 학생이 레포트를 낸 듯 하다. 마치 몇 년 묵은 체증이 가라앉은 듯 갈증을 해소한 듯 깨달음에 이른 저자의 목소리는 밝기만 하다.   

  “솔직히 말해 나 자신도 행태경제이론을 공부하면서 종전에 아맂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눈 뜨게 되었다. 전통적 경제이론에만 매달려 있던 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는 정책을 보는 내 시각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이지도 않고 언제나 이기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밑에 깔고 저액을 보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다. (중략)

  행태경제이론 덕분에 이제 나는 훨씬 더 현실성 있고 균형 잡힌 정책 평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느낀다. 뿐만 아니라 이 이론에 접하고 나서부터 경제학이 더욱 흥미로운 학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경제이론 중에는 이론을 위한 이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없는 것들이 많다. 단지 논리의 유희라고 볼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에 비해 인간 본성의 진실을 탐구하는 행태경제이론을 생동하는 현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내 학자 인생에서 행태경제이론을 만난 것은 뜻밖의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 같은 행운을 누리고 있는 사람의 숫자는 지극히 적다. 일반 대중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경제학자들 중에도 이런 이론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사람이 아직 적지 않은 형편이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비교적 일찍 이 이론에 눈을 뜨게 된 것을 큰 다행으로 생각한다.” 본문 289- 290쪽 

  이 책의 의미에 대해 저자는 독자와 함께 ‘행태경제이론’을 공부해 보자는 초대장 역할을 한 것이라고 스스로 책에 밝혔다. 이 말은 곧 기존의 경제학 교과서만으로는 경제학의 모든 부분을 설명할 수 없다는 고백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대표 경제학자인 이준구의 미래 연구과제는 ‘행태경제이론’임을 예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교수의 이 언급은 대한민국 경제학에도 ‘행태주의이론’이 많이 채택될 거라는 선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를 계기로 행태경제이론이 단순히 ‘재미 삼아 읽는 경제학’ 정도의 수준을 넘어 경제정책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칠 만큼 발전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가 <경제학 콘서트>의 팀 하포트와 <상식 밖의 경제학>의 댄 애리얼리에 버금가는 멋들어진 책을 만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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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너 - 다음 세대를 지배하는 자
김영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공상을 창조할 수 있는 상상력으로 키우는 힘, 이매지닝에 있다!  



한 사내가 커피숍의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한 곳을 응시하던 그는 다급히 펜을 들고 쓸 곳을 찾았다. 테이블 위에는 커피잔과 냅킨 뿐이었다. 사내는 쫓기든 냅킨에 빠르게 그림을 그렸다. 냅킨에 그려진 그림은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이리버의 MP3의 초기디자인이었고, 그 디자인에 대한 가치는 12억 원에 달했다. 이 짤막한 이야기는 책 제목 <12억 짜리 냅킨 한 장>의 제목에 얽힌 스토리다. 떠오르는 상상을 주체할 수 없어 냅킨에 디자인을 그려낸 사내는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김영세다. 그는 두 번째 책 <이노베이터>에 이어 얼마전 <이매지너>라는 책을 펴 냈다.

 

  사람들은 하루에 약 24,000번 정도를 생각한다고 한다. 이는 하루 종일 횡경막이 움직이는 숫자와 거의 비슷한데, 그렇다고 보면 한 번 호흡할 때(약 3초) 마다 새로운 생각을 하는 셈이다. 심지어 우리가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도 뇌는 깨어 무수히 많은 생각을 만들고 있다고 하니, 뇌의 메카니즘은 정말 놀랍고 위대하다. 

  우리가 하루 종일 만들어내는 생각의 대부분은 대부분 ‘쓸 데 없는 생각’ 즉, 공상空想, fancy이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이미지心像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이런 생각들은 거의 ‘바라는 것’ 다시 말해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은 욕망에 대한 그림들이다. 공상空想,이 헛것이라면 상상想像은 날(born, raw)것이다. 수많은 공상 속에서 ‘쓸 만 한 생각’을 걸러내고 ‘쓸 데 있는 생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상상想像이다. 우리는 이처럼 ‘쓸 만 한 생각’을 아이디어idea라고 부른다면 떠도는 공상에서 아이디어로 도출되는 모든 과정의 총합을 상상imagine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상은 인류를 먹여살리고 지켜내고 있다. 토머스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의 인구이론의 말대로라면 인구폭발로 인해 인류가 종말을 맞아야 했겠지만, 60억 인구가 넘어서는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의 ‘쓸 만 한 생각’, 아이디어idea가 있어 유한한 토지와 환경에서도 ‘생산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의 역사는 ‘필요를 충족시키는 아이디어의 발전사’라고도 볼 수 있겠다. 김영세는 상상하고 아이디어를 도출해 새롭게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이매지너imaginer'라고 불렀다. 책<이매지너>를 읽었다.   

 

  머릿속에서 생각을 떠올리기 위해 몇 시간째 혼자서 골똘히 빠져 있는 행위, 즉 소위 ‘멍~때리는 상황’을 김영세는 이매지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것을 그려내기 위해 마음껏 상상하는 일련의 과정인 이매지닝imagining은 공상이 아닌, ‘전략적 상상’이라고 보았다.  


 “이매지닝의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하자면, 일종의 ‘전략적 상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막연한 공상이나 잡념이 아닌,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가공할 힘을 지닌 두뇌 작용 말이다. 실제로 나는 이 ‘이매지닝’을 통해 이노(INNO)의 수많은 디자인들을 탄생시켰고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변화를 주도해 왔다. 10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비행기 여행에서, 혹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씩 생기는 자투리 시간에 나는 어김없이 이매지닝에 빠져든다.” 프롤로그 13쪽

  이 책은 저자가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이매지너imaginer로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야기한 책이다. 그래서 절반 이상이 지금껏 그가 창조해낸 소산물들의 스토리가 상세한 그림과 함께 마치 도록圖錄를 펼치듯 그려내고 있어 책을 읽는 재미가 쏠솔하다. 하지만 거기서 그 맛에 취한다면 책맛을 절반도 채 즐기지 못한 셈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그가 생각하는 이매지너의 개념과 이매지너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과정과 실천방법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을 온전히 체득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의 결과물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에 주목해야 한다.

  조그마한 소리상자인 MP3에서부터 각종 가전제품, 나아가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로고와 네이밍까지 그가 만들어내는 무궁  무진한 디자인제품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Design is Loving Others."라는 디자인 정신이다. 그렇다. 김영세의 디자인에는 ‘타인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조그마한 수저통의 둥근 안쪽 테두리를 열 십자(十) 모양으로 파내어 서로 뭉쳐다니지 않도록 하는 것처럼 그의 디자인에는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불편함을 편리함으로 바꿔내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또한 딸아이가 좋아할 것 같은 MP3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바비라인‘ MP3플레이어를 만든 것처럼 직접 꺼내어 보여줄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랑이 담겨 있다. 김영세에게 있어 디자인의 시작은 사랑이다. 그래서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의 대상(소비자)이 만족하고 즐거워했고, 높은 호응도는 제품의 매출을 급상승시켰다. 그에게 디자인은 다른 제품과 차별화하기 위한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사용자의 행복을 위한 사랑의 디자인인 것이다.

  “Design is Loving Others."라는 그의 디자인에 대한 마인드의 예는 비단 프로토 타입(눈에 보이는 실제상태의 물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보다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이베이E-bay'였고, 교내 동료들과 24시간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페이스북Facebook'이었다. 그들이 단순히 세상에 없던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즉 ‘돈을 위해’ 만들어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김영세에게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INNO's-Way라고 불러야할 ‘Design First'라는 그의 디자인 프로세스 방식에 있다. 그는 제품의 디자인을 수주하기 위해 기업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넘치는 아이디어를 주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A라는 제품에서 불편함을 감지하거나, 더 나은 아이디어를 찾아내면 그는 먼저 디자인을 서두른다. 그리고 그 디자인을 가장 잘 소화해 낼 기업을 찾아내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방식은 ‘사업주의 통제력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무한한 상상력이 동원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반면 ‘과연 기업이 채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채택할 수 밖에 없는 차별적이고 유니크한 디자인이 좌우되겠지만, 미래의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라고 판단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그의 설득력이 한 몫을 할 것이라 짐작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그가 생각하는 'Design'이라는 말에 담긴 뜻, 즉 디자인의 정의였다. 그 속에는 우리가 이매지너imaginer가 되고 싶다면 가장 먼저 버리고, 추구해야 할 마음가짐이 담겨 있었다.  

  “디자인(design)을 풀어 보면 ‘de+sign'이다. 즉, 기호sign의 구조를 파괴한다destruct는 뜻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 변화를 추구한다making a change는 뜻이 될 것이다. 다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본문 120 쪽

  21세기를 디자인의 시대라고 부른다. 미술가들이 순수예술에서 벗어나 생활 속에 그들의 미술을 심어나가는 시대, 첨단 디자인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아이팟과 맥북을 만들어낸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대표적인 디자인 CEO라 여기는 시대가 오늘날이다. 디자인의 시대라 해서 우리 모두가 펜을 들고 디자인 제품을 그려내라는 말이 아니다. CEO도 디자인경영을 해야 한다고 해서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공부하고, 자신의 집무실을 최첨단의 디자인 제품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는 것 또한 아니다. 그가 말하는 디자인 경영이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을 ‘디자인’에 두고, 모든 기업 활동을 디자인을 먼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었다. 디자이너는 비즈니스 감각에 맞는 디자인을 할 줄 알고, 경영자는 디자인 감각에 맞는 비즈니스를 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디자인 경영이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불편함을 참지 마라’는 것이다. 자신이 이노디자인INNO-Design과 함께 걸어온 여정을 모두 보여준 것은 자화자찬의 자랑이 아니라, 우선 주변에 있는 사물과 사람을 흘러가듯 보지seeing 말고, 주의 깊에 보라는looking 것이었다. 그러면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이게 되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해주려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불편함과 개선점을 발견했거든 누군가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지 말고 생각하고 상상해서imagining ‘내가 그린 그림이 나오도록 움직여 개선하라’는 것이다.

  김영세는 이 책에서 ‘나 혼자만 이매지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처럼 생각하고 움직여라. 그러면 당신도 이매지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노베이터>이후 4년 만에 제시한 <이매지너>는 미래의 성공은 ‘디자이너적인 창의력’에 달려 있고, 이런 창의력은 우리 모두가 지닐 수 있는 능력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자신의 상상력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거장巨匠의 또 다른 사랑의 디자인으로 비춰졌다. 그의 책을 읽는 것은 늘 반갑다. 만날 때 마다 생각의 크기가 조금 더 커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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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의 백스테이지를 엿보다 - 아이디어를 성공으로 이끄는 전략
필 베이커 지음, 조창규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제목에 낚인 책. 이 책에 '아이팟'은 없다!

  유난히 여색女色을 밝히던 대학 동기 주진이가 자취생 대여섯 명을 제 방으로 불러모은 이유는 ‘찐한 비디오’를 세운상가에서 입수했기 때문  이었다. ‘누나의 행위’ 라는 제목은 한 겨울 야심한 밤에 하릴없어 등이나 긁고 있던 복학생들을 한데 그러모으기에 충분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졸지에 호스트이자 야한 비디오의 공급책이 된 녀석은 한 명당 얼마씩 관람비를 받아 맥주와 주전부리를 깔아 두었다. 기기묘묘한 소음을 내는 VTR에 플레이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녹색 불이 들어오고, 벌개진 열 두 개의 눈들이 브라운관이라는 먹지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FBI WARNING'이라는 대문자 경고문과 함께 한참을 읽어야 해석될만한 영문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더니 서서히 페이드 아웃 되더니 요란한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I will follow him~Follow him wherever he may go~" 주인공은 수녀복을 입은 코미디언 ‘우피 골드버그’였고 영화의 원제목은 ‘Sister Act'였다.

  외서外書를 번역한 책들을 살피다 보면 가끔 ‘누나의 행위’ 사건이 떠오른다. 엄연히 책의 내용에 걸맞는 훌륭한 제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판사의 재량으로 제 멋대로 제목을 붙여놓은 사례들을 발견하면 그들이 무슨 생각에서 이런 ‘무모한 짓‘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어진다.

  켄 블랜차드의 책처럼 제목을 바꿔 성공한 케이스도 없잖아 있긴 하다. Whale done 이라는 원제목의 책이 처음에는 "YOU Excellent!:칭찬의 힘"으로 제목을 바꿨을 때 2만 부를 팔았는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제목으로 바꾸어서 20만 부 이상을 팔았던 사례는 지금도 출판계의 전설로 알려져 있다. ’칭찬의 힘이 아니라 제목이 힘’인 셈이다.

  반면 단순히 독자들의 시선을 낚기 위해 책 제목과 내용이 전혀 맞지 않은 실망스러운 책들이 너무나 많다. 책 <아이팟의 백스테이지를 엿보다>(시그마북스)은 내가 최근에 제목에 낚인 책 중 하나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From concept to Consumer 풀어보자면 ‘컨셉에서 소비자까지‘이다.

  책 자체로 보면 특별하고 괜찮은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제품개발의 아이디어부터 제품이 소비자의 손에 넘겨지기까지의 과정을 자신의 지난 경험을 토대로 구술함으로써 제품개발자들에게 시행착오를 줄이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아이팟의 백스테이지는 고사하고 ‘아이팟’이라는 단어도 몇 번 언급되지 않는다. 올 해 연말 국내에 강타한 ‘아이폰 열풍’에 대한 이해와 애플의 미래를 살펴보고자 했던 나같은 독자는 ‘책제목’에 제대로 낚인 셈이다. 

  처음 몇 장을 넘기면서는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서두가 꽤 길다’고 느꼈다. 애플과 아이팟이 언제쯤 나올까 묵묵히 지켜보며 페이지를 계속 넘겼고, 중반에 이르러 ‘뭐가 잘못됐다’는 기분에 원문제목을 확인하고 낚인 것을 알았다.

“책을 몇 장 넘기다가 아니다 싶은 책을 만나거든 가차없이 덮어라.”고 일본의 다독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조언을 했었건만, 그에 필적하는 내공도 갖추지 못했거니와 지금껏 읽었던 시간과 공력이 아까워 마지막 장까지 거의 스킵skip하듯 읽어나갔다. 책 속에서 아이팟을 찾은 내게는 아쉽고 어처구니없었지만, 제품개발자와 벤처기술자라면 일독할 만한 좋은 책이다.

끝까지 읽은 덕에 한 가지 건져낸 것이 있다면, ‘제품의 아이디어를 시장까지 이끌어가는데 유용한 10가지 규칙’(부록A) 정도가 될 것이다.   


  1. 단지 훌륭한 제품을 갖는 것만으로 성공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만들어놓는다고 고객들이 찾아와주는 법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2. 강력한 관리자와 작고 집중적인 다기능 팀을 활용해 제품을 개발해야 하며, 그들에게 빠른 의사결정을 위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3. 발명 자체 만큼이나 개발 과정에 있어서도 창의적이어야 한다.    4. 완전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빠른 시장진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5. 잠재 고객들과 얘기해보고, 실제 어떻게 하는지 관찰하는 등 간결하고 상식적인 차원의 제품 테스트를 시행하는 것이 좋다.   6. 잘 할 수 있는 일들은 직접하되, 다른 사람이 잘 하는 일은 외주를 활용하라. 이미 구현되어 있는 것들을 다시 개발할 필요는 없다.   7. 경쟁자와 같이 생각하라. 첫 제품을 만드는 동안 후속 제품을 구상하라. 그리고 당신 제품에 대한 최고의 경쟁 제품을 스스로 만들어 내라.    8. 당신이 활용하게 될 판매와 유통채널을 이해하고, 경쟁력 있는 판매 가격을 가능케 하는 생산 원가를 맞춰내야 한다.    9. 간접 판매 혹은 유통채널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지속하라. 제품이 얼마나 팔릴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부품이나 제품의 제고를 많이 가져가면 곤란하다. 과잉 재고보다는 부족 재고가 더 낫다.    10. 당신 스스로의 과대광고를 맹신하지 마라.    본문 210 쪽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한 위의 글만 보더라도 일종의 기술자(제품 개발자와 발명가)들을 위한 마케팅 입문서다. “운명이란 바로 그대들이 지닌 책, 책은 저마다 운명을 품고 있으니...”라는 오토 슈토에즐의 말이 있듯 책의 운명은 독자에 따라 변하는 법이다. 즉, 내가 보기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듯 보이는 책도 다른 독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책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책의 가치는 독자의 소용에 따라 달려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당연한 말 같은 이 진리는 한 가지 중요한 뜻을 품고 있다. 바로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의 원서는 자국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을 법하다. 제품의 개발자의 입장에서 후배들에게 자신의 시행착오를 고백함으로써 계몽을 하는 책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발명가나 벤처의 CEO등 자칫 ‘내 제품이 세계 최고의 기술이다’며 제품이 만들어지기만 하면 날개돋힌 듯 팔릴 거라 생각하는 이른 바 ‘생산자의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이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조언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책은 일반 독자들이 흥미를 갖고 읽고 박수를 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구나 이 책은 '프로토타입'(형태를 가진 시제품)‘의 제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혹 아이팟이나 아이폰 등에 연동되는 애플리케이션,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제품과 서비스를 을 제작하는 개발자가 이 책에 관심을 둔다고 해도 처음부터 '핀트가 나간' 방향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또한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제품들도 사례로 들고 있어서 작금의 마케팅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도 적절하지 않다.  아이팟의 백스테이지를 엿보다’라는 제목을 살펴보건대 이 책을 국내로 들여온 출판사는 다중을 상대로 이 책을 읽히기를 바란 것 같다. 그렇다고 보면 이 책은 독자대상의 컨셉부터가 잘못된 케이스다. 잘 살피지 않고 무턱대고 책장을 넘긴 내게 가장 큰 잘못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의 제목에는 불편함을 지울 수가 없다. “책을 고를 때 제목에 낚이지 말라”. 이 책을 통해 새삼 배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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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이솝우화
이솝 원작, 로버트 짐러 지음, 이종길 옮김 / 토파즈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50년 전에 만들어진 이솝우화의 패러디! 



<<거북이와 산토끼>> 

  공격적이고 허풍이 심한 특이한 거북이 한 마리가 산토끼에게 달리기 경주를 하자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토끼는 거북이의 터무니없는 자만에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하지만 거북이가 끈질기게 토끼를 조롱하고 자존심까지 건드리자 토끼도 끝내 달리기 시합에 동의하고 말았다.

  공정하기로 소문난 올빼미가 심판으로 선정되고 코스가 결정되자 이 시합을 구경하기 위해 인근의 동물들이 모두 몰려나왔다. 출발신호가 울리자 토끼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앞으로 튀어나갔지만 거북이는 힘겹게 한 걸을을 떼어놓는 게 고작이었다. 

  거북이가 까마득하게 뒤처지자 토끼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나무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마음먹었다.그러고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가. 토끼가 눈을 떴을 때에도 거북이는 보이지 않았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은 토끼는 입가심할 요량으로 산딸기를 따다 예쁜 암토끼를 만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에도 거북이는 쉬지 않고 터벅터벅 제 갈 길을 갔다. 늦은 밤, 토끼가 암컷을 향한 구애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사이에 거북이는 결승선을 통과했다. 올빼미는 동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북이가 이 경기의 공식적인 승자임을 선언했다. 

당신은 이 달리기의 승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믿음직학 성실하지만 융통성 없는 거북이보다

게으르지만 날쌔고 연애 잘하는 토끼 스타일이

요즘은 더 대접받아!

어디 그뿐이야?

여자들도 성실한 범생이보다

게으른 천재를 더 좋아한단 사실!

 

  이에 한껏 들뜬 거북이는 동물들에게 토끼 대신 자기를 전령으로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동물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정신이 어떻게 된 모양이군. 넌 잘 모르는 모양인데 토끼가 암만 먹으면 언제든 너보다 빨리 달릴 수 있거든?" 

훈 - 할 수 있는 자는 할 필요가 없다. 

   책 제목(엽기이솝우화 Aesop Up-to-Date)에 많이 접어주고 읽어야 할 책이라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상상한 이상으로 파격적이어서 엽기라고 아니할 수 없다. BC 6세기 그리스의 노예 이솝이 틈틈이 만들어 낸 동물의 우화를 로버트 짐러라는 듣.보.잡의 이야기꾼을 통해 환골탈태를 했다. 

  양치기 소년의 세 번째 구라에 마을 사람들은 거짓말 소년의 양들만 구하게 되고, 까마귀에게 노래를 권해 먹이를 얻어먹던 여우는 까마귀를 산속 최고의 가수로 만드는 후원자가 된다. 햇볕 정책의 주요 소스였던 해와 바람의 이야기는 나그네에게 옷을 입히는 게임을 추가해 결국 1:1의 게임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이 엉뚱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가 1964년에 써졌다하니 이 책을 쓴 양반의 두뇌를 들여다 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이렇듯 원작의 내용을 꽈배기처럼 비틀고, 앞뒤를 뒤집어 오리지널을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만드는 방법이 성공한 미국 헐리우드 애니메이션의 스토리텔링 기법이 아니던가?



 


  이 책은 이른 바 발상의 전환을 배우기에는 딱인 책이다. 헛헛한 일상에서 벗어나 상상하게 만들고 알고 있던 사실에 태클을 거는 실력은 '막시무스 선생'의 책들을 생각나게 한다. 한 세기가 지나 다시 읽는 이솝우화는 역발상이 가미된 새로운 이야기였다. 굵은 붓체로 순식간에 그린 듯한 삽화 역시 글맛을 더하는 비주얼이었다. 유치하다 말할 수 있다. 원작을 훼손했다고 불편해 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웃기를 잘하고, 주위를 둘러봐 웃음을 찾아다니는 내게는 비록 헛웃음일지언정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 주었다. 특히 '발상의 전환이란 이런 것'이라고 알려준 그런 책이었다. 
 

  하지만 원작을 읽고 싶게 만든다. 순수하게 번역은 되지 않은 듯, 글 사이에 넣은 군더더기들이 재미를 감하게 만들었다. 코멘트의 내용 역시 스토리의 내용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한 듯, 꿈보다 못한 해몽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한다. 영문의 영작과 함께 영한대역을 내었다면, 영어학습과 스토리를 온전하게 즐길 수 있었지 않았을까? 아쉽다. 원서를 찾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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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결사의 세계사
김희보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프리 메이슨의 전모는 끝내 밝혀질 수 없는 것인가?

 

"우리 주변엔 음모 과대편집증이 도사리고 있다. 이 편집증에 빠진 사람은 이들 음모가 자신의 숨통을 조여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황당한 음모는 신문 등의 인쇄매체는 물론 인터넷을 통해서도 유포되며, 음모설(conspiracism)은 일종의 사종교 같은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음모 편집증에 걸린 사람들 중엔 O.J 심슨이 일본의 마피아의 농간에 놀아났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찰스 황태자가 신세계 질서의 꼭두각시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1997년 6월 1일자 '뉴스위크'지 

  음모는 진실과 오해의 중간, ‘아직 알 수 없음’의 단계다. 음모론의 당사자가 터무니없는 오해라며 진실을 밝힌다면 확인될 내용들을 굳이 밝히지 않기에 ‘음모론’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물론 세간의 음모들이 ‘대꾸할 여지조차도 없기에’ 밝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음모가 진실의 전모에 일부 관여되어있거나, 그것이 진실로 밝혀질 경우 향후 치명적인 결과를 낳거나 그럴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어떨까?

  책 한 권이 2007년 7월 중국에서 출간된 이후 24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1년 만에 100만권 이상이 팔려나간 적이 있다. 제목은 <화폐전쟁>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화폐의 메커니즘을 통해 화폐를 지배하려는 상업은행의 권모와 술수가 곧 중세 이후의 역사라는 것을 밝히고 그 배후에는 로스차일드가를 비롯한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하는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세계 제일의 갑부는 빌 게이츠가 아닌 로스차일드 일가이고, 달러를 만들어내는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사실 민간 중앙은행이라고 밝혔다. 또한 미국 대통령의 피살 비율은 미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일선부대의 사망률보다 높은데 대통령들이 피살된 이유는 달러의 발행권을 되찾으려는 이들의 시도가 세계 금융세력에게 들통나 축출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화폐전쟁>의 저자 쑹홍빙이 주장한 이러한 주장은 그것을 수용하는 대상마다 의견을 달리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G2라 불릴 만큼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에서 이 책은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기능은 무력하고 ‘보이지 않는 그림자 정부’에 의해 조종당하는 셈이라며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보태주는 붐업 역할을 톡톡히 했다. 중국에서는 이미 유로화에 대해 언급한 후속작이 나왔을 정도다(국내에는 내년 즈음에 출간된다고 하는데, 유로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했을지 궁금하다). 

  한편 국내에서도 순식간에 경제경영부문에서 베스트셀러 부문에 오르며 높은 관심을 받았는데, 관심의 초점은 중국과는 약간 달랐다. 바로 지난 해 하반기에 전세계에 불어닥친 뉴욕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을 미리 경고했었다는 점이었다. 시의적절했던 이 내용은 금융위기의 원인과 파장에 대해 촉각을 기울였던 독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책 속에서 ‘금융위기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끝날 것인가’하는 이야기를 책에서 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보이지 않는 그림자 정부’는 중국인 저자로서 꺼낼 법한 이야기지만 음모론적 성격이 짙다고 판단했다. 

  내가 책 <비밀결사의 세계사>를 집어든 이유는 여기에 있다. <화폐전쟁>에서 언급한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비롯된 금융세력들의 규모는 어떻게 되고, 이들 단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한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를 비롯해 최근에 <로스트 심벌>이라는 책을 펴낸 밀리언셀러 작가 댄 브라운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비밀 결사에 대한 존재여부에 대해서도 이와 맞물리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해서였다. 저자는 비밀 결사에 대한 객관적 연구가 필요한 네 가지 이유를 들어 이 책이 출간되어야 하는 변辯을 대신했다. 그 네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인류의 일반적 역사를 잘 이해하자면, 비밀 결사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프리메이슨에 관하 지식은 프랑스 혁명 이데올로기의 원인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준다.

  (2) 종교사 및 사상사는 비밀 결사를 연구하지 않고는 옳게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고대 말기의 그노시스파의 근, 현대의 프리메이슨은 그 시대 사장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사회학도 또한 비밀 결사의 형성과 구조 및 의식에 관한 자세한 연구가 요구된다. 사회학적 연구는 연구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가지게 하고, 흥미로운 비교가 가능하게 한다.

  (4) 심리학 분야에서도사람들로 하여금 비밀 결사를 형성하도록 작용하는 감정을 연구하여, 인간의 종교적 감정을 연구하는 데 흥미와 아울러 크나큰 암시와 귀뜸을 줄 수 있다.

    이 책은 우리가 들은 바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비밀 결사들Secret Societies의 기원에서부터 현재까지의 발전과정을 수많은 기록적 증거를 바탕으로 제시한 책이다. 특히 프리메이슨, 유대게이트, 시온수도회 등 거대하고 다양한 비밀 결사들의 역사뿐만 아니라, 그 회원인 유명인사들의 명단과 활약 등을 밝히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주목할 점은 이 책에는 아시아와 동양권의 비밀 결사가 제외되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책의 제목이 우연히 세르쥐 위탱의 책<비밀 결사의 세계사>와 같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책의 내용 역시 아시아와 동양권의 비밀 결사가 제외된 점을 비추어보면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좀 더 들어가 보면 제 3장 유대게이트의 회원에는 작고한 명사를 비롯해 생존해 있는 인물들도 거명한 반면(우리가 잘 아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 우디 알렌, 엘리자베스 테일러, 더스틴 호프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들도 포함되었다), 프리 메이슨의 회원들의 명부는 작고한 인물들만 기록하고 있다. 짐작하건데, 저자는 더 많은 내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내용을 발췌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만약 저자가 아시아와 동양권의 프리 메이슨 회원들을 알 수 있다면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특히 우리나라에는 어떤 인물들이 프리메이슨 회원이고 과연 몇 명일까?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갖는 이런 종류의 의문이 바로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음모론을 일으키는지도 모르겠다.

  비밀 결사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을 살펴야 할 독자의 몫이다. 만약 쑹홍빙의 <화폐전쟁>나 이리유카바 최의<세계를 조종하는 그림자 정부 - 경제편>을 읽었던 독자라면 그 책들이 언급한 ‘어두운 금융세력’들에 대한 존재가 이 책이 말한 비밀결사들과 교묘하게 잘 맞아들어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S. 이것 하나는 세인들이 궁금해 하는 한 가지를 언급을 해야겠다. 우선 소설 <다빈치 코드>와 관련된 사실은 ‘다빈치 코드’가 발견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은 허위였다고 저자는 밝혔다. 다시 말해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19세기 말, 두메마을의 한 신부가 ‘렌느 르 샤토의 수수께끼’를 해독하여 땅에 묻혀 있던 보물을 발견하였는데, 그 속에 다 빈치가 어떤 신비한 활동에 관여하여 남긴 수수께끼의 그림이 있었고, 그 안에 수도회의 비밀의식을 나타내는 암호가 깔려 있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그러나 ‘다빈치 코드’에 묘사된 시온수도회가 실제로 설립된 것은 1956년 6월 25일, 프랑스의 피에로 프랑탈에 의해서였다. 그는 시온수도회의 후계자라고 주장하였으나, 훗날 ‘비밀 문서’ 등 모든 자료는 그가 꾸며낸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인류가 낳은 최고의 예술가 레오나르드 다 빈치에 대한 의혹은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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