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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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소설, 늙은 나를 만나게 하는 무서운 소설이다! 

  노인老人은 나무다. 목표를 향해 내달리는 행인行人들이 교차하는 길거리에 서 있는 나무는 행인들에게는 존재감만 있을 뿐 주목이 대상이 되지 못한다. 토악질을 하거나, 한 다리를 들고 오줌을 싸거나, 신발 밑창에 뭍은 개똥을 털거나, 홧김에 발길질을 할라치면 그제서야 인도와 차도 사이에 간격을 두고 서 있는 물체의 존재가 뭔지를 감지할 뿐. 늦가을 누런 열매를 맺고 구린내를 피우는 은행나무라면 모를까, 울긋불긋 단풍을 떨굴 줄 아는 단풍나무라면 모를까, 누구도 그 존재를 인지하지 않는다. 명절날 잠시 쉬었다가 가는 깊은 산속 별장같은 곳이 고향집이라면, 한여름 그늘을 잠시 피할 곳은 나무 아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늙어가는 노인은 늙어가는 나무와 닮았다.

  노인은 외로움과 함께 숨을 들이키고, 서글픔과 함께 한숨을 내뱉는다. 노인의 아침은 아픔이고 노인의 밤은 꺼져듦이다. 수명을 다한 장기臟器가 고장을 일으킬 때마다 저승에 이르는 버스는 한 정거장을 성큼 내지른다. 아파서 고생할 바에는 어서 가자, 빨리 가자 말할 법도 하지만 제가 들고 태어난 질긴 명命줄이란게 어디 제 맘대로 끊을 법 하더냐. 고목장승으로 살더라도 살 수만 있다면 끈질기게 살고픈 마음이 또 사람마음이다.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나역시 곧 그렇게 될 생애에 절박하고 간절한 노인이 지은 말일 것이다. 이렁저렁 말해야 뭐할까. 영화제목 말마따나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an’.



 

    소설 <에브리맨EVERYMAN>(문학동네)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노인 ‘그’의 죽음을 이야기한 책이다. 소설 속엔 그의 이름도 없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아니고, 모두기도 하다. 소설은 늙은 작가(하지만 작가는 매년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미국 현대문학의 4대 작가로 손꼽히는 필립 로스Philip Roth다)가 마치 자신의 자서전을 쓰듯 자연스럽고 평이하게, 그리고 다소 지루하게 일상을 그렸다. 소설 초반 자신의 장례식을 지키는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은 새가 되어 딸과 아들의 슬픔을 지켜보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닮은 점을 빼고는 딱히 특별할 게 없다. 눈이 가는대로 그린 듯, 생각나는 대로 뱉어낸 듯하다. 마지막 생의 순간을 그린 이 소설은 우울하고 어둡다. 그래서 몇 장을 넘기지 못해 ‘짜증날 만큼 지겨운 몇 시간이 되겠다’ 싶어 미리 우려한 것도 사실이다. 기우였다. 읽는 내내 애가 끊어질 만큼 속이 상하고, 가슴이 아팠다. 소설 속의 ‘그’가 이삼십 년 후의 내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노인이 되어 살아갈 내 모습이 책 속에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멋진 제목이다. ‘에브리맨EVERYMAN’.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시계수리를 겸한 보석상의 이름과 같다. 그는 에브리맨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대신하지만, 이는 모든 사람이 곧 ‘그’가 될 수 있음도 이야기한다. 늙음은 모두에게 찾아오는 종착지가 아니던가. 독자라고 예외일 순 없다. 그가 지켜본 자신의 장례식은 더없이 허망한 죽음과의 조우다. 나와 우리의 장례식일지 모를 모습이다. 

“ 그것으로 끝이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들이 모두 하고 싶은 말을 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또 물론 그렇기도 했다. 그날 이 주의 북부와 남부에서 이런 장례식,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례식이 오백 건은 있었을 것이다. 두 아들 때문에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간 삼십 초, 그리고 죽음이 발명되기 이전에 순수하게 존재하던 세상, 아버지가 창조한 에덴, 구식의 보석상이라는 탈을 쓴 폭 5미터 깊이 12미터밖에 안 되는 크기의 낙원에서 이루어지던 영원한 삶을 하위가 아주 공을 들여 정확하게 되살려낸 것 외에는 다른 여느 장례식보다 더 흥미로울 것도 덜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것이었다.” 본문 22~23 쪽

  차가워져 굳어버린 나를 털치고 나와 어디선가 지켜보는 나의 장례식이다. 나는 그와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며 무엇을 가지려 살았던가,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를 기를 쓰고 생을 살고 있던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엔 우리네와 같이 남겨진 사람들의 처량한 곡哭소리도 없이 무미건조하다. 하긴 까무러치는 곡소리는 떠나보낸 이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남겨진 이의 절망감 때문이라는 어느 얘기가 맞다면 그들은 그를 속시끄럽지 않게 하고 온전히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라면 곡소리를 듣고 싶겠다. 아니면 내가 곡을 할 것 같으니까.

“몇 분이 안 되어 모두 가버렸다. 지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우리 종種이 가장 좋아하지 않는 활동으로부터 떠나가버렸다. 그리고 그는 뒤에 남았다. 물론 다른 누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비통해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거나 자기도 모르게 안도했다. 또는 좋은 이유든 나쁜 이유든 진정으로 기뻐하기도 했다.” 본문 23 쪽

  그가 일생에 저지른 가장 큰 실수라면 사려깊고 관대한 두 번째 부인 피비와 살면서 결국은 마지막 아내가 되어버린 훌륭한 껍데기일 뿐, 뇌가 없는 것 같은 여인 메레테와 불륜이다. 그가 메레테와 결혼하게 된 건 이혼 직후의 상황에서 자신의 범죄를 덮어버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엔 병이 무서워 병원조차 오지 않으려고 하는 메레테 덕에 혼자서 마지막까지 병실을 지키는 뜻하지 않은 천벌을 받는다. 한때는 ‘완전한 인간’이었던 그. 비행과 실수로 결국 세 번의 이혼을 겪은 그는 이제 혼자다. 목적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그는 죽어가는 병든 노인이다. 과연 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이 소설은 절대 상상으로는 그려낼 수 없는 소설이다. 장소의 묘사를 위해 직접 현장을 찾아 머물면서 주변의 상황을 묘사했던 <하얀전쟁>의 안정효처럼 직간접적으로 자신이 당한 일(거의 직접적이겠지만)을 기록하고 있어서다. 차가운 철제침대에 이끌려 수술실로 들어설 때 한 숨마다 양파 한꺼풀 두께로 심장은 줄어드는 듯한 상황을 그린 것이나, 벌거벗긴 채 수술을 기다리며 수술도구에 그려진 제약회사의 이름을 찾아서 읽어보는 심정이나, 병마다 다른 고통에 대한 세세한 통증은 괄약근마저 움찔거리게 만든다. 하루하루 통증과 싸우며 그가 되뇌인 것은 바로 떠남이었다. 차라리 내가 대신 끊어주고 싶었다.

“떠남. 그가 고통에 질려 숨을 헐떡이며 깨어나게 했던 바로 그 말, 주검의 포옹에서 살아 돌아오도록 구해준 말.” 본문, 171 쪽

  아이러니는 ‘그’의 고통과 죽음을 지켜보면 볼수록 나는 ‘삶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구차하지만 폐세포 몇 개씩 가로막을 담배를 끊을 마음도 생기고, 신새벽 공기마시며 달리고자하는 욕구도 생겼다. 그 무엇보다 하루를, 오늘 하루를 온전히 느끼고 살고 싶어졌다. 죽기 직전 그 역시 먼저 간 그의 부모로부터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의 어머니는 여든에 죽었고, 아버지는 아흔에 죽었다.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저는 일흔하나에요. 당신네 아들이 일흔하나라고요.“ ”좋구나. 네가 살아있구나.“ 그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되돌아보고 네가 속죄할 수 있는 것은 속죄하고, 남은 인생을 최대한 활용해봐라.“ 본문 177 쪽

  태양을 마주선 내 정면의 모습이 삶이라면, 그 뒤에 내 키보다 길게 늘어선 모습은 그림자다. 삶의 영원한 동무는 죽음이다. 오늘은 슬프지만 내일이라는 희망이 있어 하루를 견디는 것처럼 삶을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 역시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선남선녀의 신들이, 그리고 영화 <벰파이어와의 인터뷰>의 브래드 피트가 분한 벰파이어가 나약한 인간을 부러워한 것도 바로 ‘인간의 유한한 삶’이다. 제 명을 다해 영원히 쉴 수 있음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은 내가 태어날 때 내 엄마가 겪은 고통의 유전이다. 정작 죽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내 생에 지은 죄들에 대한 고통이 아닐까. 마지막까지 ‘그’에게서 시선을 놓치 못했던 건 어제를 보내며 또 하나의 죄를 짓고 사는 나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잊게 만든 짧고 굵은 소설은 그를 미래의 나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대단한 소설, 늙은 나를 만나게 하는 무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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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꼴레오네의 문제해결 방식 -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오정화.최복현 지음 / 책든사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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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리더십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다!



  넉넉한 마음처럼 너른 이마, 깊숙이 들어간 눈의 깊이만큼 튀어나온 견고하고 각진 턱,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항상 같은 톤으로 평온하게 말하고, 한 번 한 약속은 하늘이 무너져내린다 해도 지켜내고, 가족을 위해서는 제 목숨을 모두 던져서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내, 돈 꼴레오네는 모든 남자의 로망이다. 패밀리 무비의 원형을 보여준 영화 <대부>의 히어로 돈 꼴레오네의 리더십를 가장 잘 말해주는 영화 속 대사가 있다.  

   “내가 내 패밀리를 책임지는 한 정당한 이유 없이 또는 부당한 도전을 받지 않는 이상 여기 기 자리에 계신 분들을 손끝 하나 건드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것은 내가 명예를 걸고 하는 약속입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내가 결코 배신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책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돈 꼴레오네의 문제해결 방식>은 제목 그대로 마피아 대부 돈 꼴레오네의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한 책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을 해나가야 하는 요즘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자질을 돈 꼴레오네에서 찾아야 한다고 저자들(최복현, 오정화)은 말한다. 저자들은 돈 꼴레오네가 갖는 패밀리(가족)의식을 비유해 늑대와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늑대는 가족중심으로 움직인다. 조직의 리더는 가장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야 한다. 돈 꼴레오네는 조직원들 중 어려운 일이 생기면 스스로 발 벗고 나서서 그 문제는 물론이고 나중에 있을지도 모를 일들까지 깨끗하게 해결해주었다. 또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대했으며, 가족처럼 다독여주는 부드러운 모습까지 보여줬다. 그런 면은 의도된 것이 아니라 살아오면서 체득된 자연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그런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꼴레오네를 대부의 위치까지 올려놓았던 것이다.”

 



 

   사실이 아닌 허구의 영화속 인물을 ‘리더십의 모델’로 설정한 이 책을 대하는 마음은 현실에서는 적합한 인물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던가 싶어 찹찹하다. 게다가 양지陽地가 아닌 폭력조직의 보스라니 과연 그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처음엔 책을 읽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영화 <대부God father>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돈 꼴레오네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수십 번을 본 사람도 있을 정도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가장으로서, 조직의 리더로서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했던 돈 꼴레오네의 면모는 현실의 세계에서는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완벽한 사내이자 두목, 그리고 가장家長의 카리스마를 지녔기 때문이다. 



 

   한 편의 영화를 소재로 리더십을 조명한 저자들의 기획력이 놀랍다. 도대체 몇 번을 봐야 이렇게 쓸 수 있겠는가 싶기도 했다. 영화 속에 돈 꼴레오네가 등장하는 신과 대사를 절묘하게 찾아내 그가 대사하고 행동한 속뜻을 잘 풀어 해설하고 있다.    이 책을 읽어볼 요량이면 먼저 <대부> 1편을 본 후에 읽는 것이 한결 낫겠다. 혹 본 적이 있더라도 대단한 기억력을 지니지 않았다면 이 기회에 한 번 더 보는 것이 좋다. 내 경험을 비춰보면 본 지도 오래 되고, 대단한 기억력도 지니지 않은 나는 기억이 가물거리고 혼란스러워 차라리 영화를 본 적 없는 사람만 못해서다.   

  돈 꼴레오네의 리더십의 핵심은 바로약속과 포용력이다. 우선 그가 강한 카리스마를 가졌던 요인 중 중요한 덕목은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었다. 그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거나 자기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따위의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그는 약속을 하되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했다. 저자들은 조직을 이끄는 리더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약속이라고 보았다. 약속은 모두 소중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다중을 상대로 한 일대다一對多의 약속은 아무나 할 수 없고 대체로 중대한 사안인 만큼 이러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바로 신뢰성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리더가 신뢰를 잃으면 통솔력도 함께 잃는다. 가장이 신뢰를 잃으면 그 가정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사장이 신뢰를 잃으면 직원들은 적당주의에 빠진다. 국가의 지도자가 신뢰를 잃으면 국민은 그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반대하므로 지지도가 현저히 떨어져 통치에 애를 먹는다.
그래서 조직을 이끄는 일이나 우정을 유지하는 일,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뢰이다. 이 신뢰는 바로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돈 꼴레오네는 자신의 입으로 한 약속은 꼭 지켰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회피하지 않고 약속을 했으며, 그 약속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켰다.“ 본문 26~27쪽

  리더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약속과 파이의 껍질은 깨뜨려지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스위프트는 말했지만, 리더의 약속은 범인凡人의 약속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리더가 조직원들에게 한 약속은 조직을 유지하는 방식이 고 조직의 미래를 알게 하는 메시지이다. 리더와 조직원 사이에서 리더가 약속을 지킬 때 조직원이 이를 따를 것을 강조할 수 있다. 하지만 리더의 약속이 신뢰감을 잃는다면 조직원들에게 따를 것을 종용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리더는 약속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지킬 수 없을 것 같다면 ‘약속을 지키는 최상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는 나폴레옹의 말처럼 차라리 약속을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 돈 꼴레오네는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했고, 그것을 꼭 지켰다. 오늘의 위정자나 기업가들이 조직원 통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불평에 앞서 ‘과연 내가 리더로서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야 하지 않을까. 



 

    다음은 ‘포용력’이다. 돈 꼴레오네는 누구든 자신에게 우정을 맹세하면 그를 패밀리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자신에게 등을 돌린 적이 있던 자에게도 ‘포용심’은 열려 있었다. 한 때 등을 돌렸던 보나세라가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진작 내게 왔더라면 내 지갑이 곧 당신 지갑이었을 거요. 당신이 정의를 이해 진작 나를 찾아왔더라면 당신 딸을 겁탈한 그 인간쓰레기들의 눈에서 벌써 쓰디쓴 눈물이 흘렀을 거요. 당신같이 정직한 사람이 운이 없어서 적을 만들었다면 그 적은 곧 나의 적이었을거요. 그랬으면 틀림없이 놈들은 당신을 두려워했을 거요.”

  이후 보나세라는 돈 꼴레오네의 도움을 받게 되고 마음의 빚은 각인되어 다른 누구보다 그에게 충성하게 된다. 진정한 리더는 ‘증오’나 ‘분노’같은 사적 감정을 배제하는 자다. 그는 남에게 부탁하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함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등을 돌렸던 자를 다시 찾는 일은 더욱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돈 꼴레오네는 그를 받아들임으로써 용기를 충성으로 승화시켰다. 이렇듯 일시적으로 손해인 듯 해도 나중에는 그 이상의 열매가 돌아오는 것이 ‘인간관계의 법칙’ 즉,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돈 꼴레오네는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 위협하지 않았다. 도움을 줄 때는 도움받는 사람이 절대로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했고,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은 끝까지 밀고 나갔다. “내가 결론을 내겠네. 모든 건 내게 맡기게. 만족하도록 문제를 해결하지.”이 말은 돈 꼴레오네가 평소에 잘 쓰는 말이다. 그는 리더로서 조직원들에게 일어난 모든 것을 책임졌다. 

  ‘꿈보다 해몽‘이란 말은 이 책을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돈 꼴레오네의 근엄한 모습에 취해 있느라 놓쳤던 <대부>의 명대사들을 잘도 찾아냈다. 돈 꼴레오네의 패밀리(가족)를 사랑하는 리더십은 유교적인 우리와 닮아 많은 공감대를 이뤘다. 그들이 민족성 면에서 열정과 기질이 우리나라와 많이 닮았다는 점도 무시하지는 못하리라. 그와 가장 대조적인 인물인 장남 소니와 비교해서 읽으면서 진정한 마피아 리더십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이 마피아 두목의 리더십을 이야기 했다면, 마피아의 생존방식을 생생하게 이야기한 책으로 <마피아 경영학>을 들 수 있다. 저자가 보복을 두려워 해 V라는 필명으로 썼을 만큼 마피아의 세계와 처세를 잘 이야기했다. 함께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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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얻은 글재주 - 고대 중국 문인들의 선구자적 삶과 창작혼
류소천 지음, 박성희 옮김 / 북스넛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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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문인들은 자신의 공명을 위해 변절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혹시 이중텐(易中天)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이 학자는 오랫동안 문학, 예술, 미학, 심리학, 인류학, 역사학 등의 분야를 두루 연구했고, 해당 분야에 대한 학제 간 연구를 통해 탁월한 글을 써온 학자로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본의 다치바나 다카시, 한국의 도올 선생과 같은 지성인에 비교할 수 있는 중국의 국보급 학자다. 그는 지난 2006년 CCTV의 '백가강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삼국지’를 강의하면서 일약 중국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비슷한 시기에 도올 선생이 TV 특강을 한 것이 우연일까 궁금하다). 고급지식의 대중화를 모트로 진행했던 백가강단 프로그램과 더불어 ‘논어’를 여러 주제로 나눠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현대생활과 접목시켜 일반대중의 시각에서 읽기 쉽게 서술했던 위단의 논어심득論語心得 역시 중국에서 화제를 낳은 책이었다. 

  공산주의 이외의 사상과 철학은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며 ‘현대판 분서갱유’로 불리는 문화혁명을 일으켰던 중국 정부가 21세기 들어 공맹을 논하고, 위인들을 살펴봄은 놀랄 만큼 의외다. 그에 더해 중국 정부가 적극 협조하여 공영방송을 빌려온 국민이 볼 수 있도록 지원했다하니 더더욱 놀랍다. 이유인 즉, 금세기 들어 어설픈 자본주의에 깊이 물들어 ‘물질만능풍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국민들을 계몽하기 위해서였다. 현재에 반기를 들어 이대로 가다가는 ‘차라리 굶주리던 모택동 시절이 더 낫겠다’는 원성이 나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근본根本이 없음은 말 못하는 금수禽獸와 다를 바가 아니다. 더욱이 중국의 사상체계라는 것이 왕조의 정통성을 수립하기 위한 실용의 사상이 아니던가? 현대에 들어 그런 실용주의적 사상마저 없던 중국 정부는 역사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쉽게 말해 중국정부가 거들어 이중텐과 위단을 스타로 만들고 그들의 책을 초장기베스트셀러로 올린 것은 쉬운 말로 ‘이제 굶어죽는 시절을 면했으니 사람다워지자’는 일종의 범국가적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민들은 살림이 힘들어 양파 몇 뿌리라도 팔러나갈라치면 행여 누가 볼세라 이쪽저쪽을 살피며 마음을 조려야 했다. 개혁개방의 구호 아래 경제가 고속행진하면서 오늘날 중국은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면서 억압으로 쪼그라든 욕망은 상품의 물결과 함께 팽창되고 또 팽창되었다. 쪼그라든 욕망도 문제였지만 부풀대로 부푼 욕망은 더 큰 무제가 되었다. 가치적 이성은 도구적 이성의 위협을 받은 지 이미 오래며, 이제는 비이성적 욕망만이 어지럽게 춤추고 있다. 돈이 생의 목적이 된 지금, 욕망으로 우리의 영성은 피폐해졌다. 욕망이 클수록 감사할 것은 줄어들고, 감사가 없으니 시흥詩興도 저만치 달아나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더 이상 시적 감동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본문 8 쪽

 

  책 <천하를 얻은 글재주>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책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다. 앞선 국보급 학자들이 국민의 근본사상을 재수립하고자 했다면, 2008년에 출간된 이 책은 잠들어 있는 고대 문인들을 깨워 그들이 사랑한 자연과 욕망을 억누를 수 있는 통제력을 밝혀 ‘그 시절의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해서 ‘천하를 얻은 글재주’라 해서 중국 최고의 문장가들의 글솜씨를 가르치는가 싶어 이 책을 집어들었던 나는 톡톡히 ‘사기’를 당한 셈이다. 하지만 원제목 또한 品中國文人, 즉 ‘중국최고의 문인‘란 뜻이어서 오십보 백보여서 괴씸했지만, 딱히 화가 나진 않았다. 그간 알지 못했던 중국 최고의 문인들의 짧은 전기와 그들의 名文들을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맛은 우선 저자에게 있다. 시와 인물에 정통한 저자는 단순히 명문가들의 전기를 읊은 것이 아니라, 동서고금의 문학을 접목해 현 시점에서 그들을 평가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과장을 빼놓으면 말이 안 되는 중국문학을 비평하는가 하면, 후대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과 아쉬운 점도 언급했다. 소설가인 저자의 문학적 감각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가독성 높은 스토리텔링을 갖춘 점은 중국문학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이 책을 읽는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해 줬다. 특히 이 책은 자국의 저자로서 문학의 최고봉에 있는 인물들의 작품들을 자신의 문학적 지식을 동원해 원전元典들을 찾고 비교해 사실 확인을 검증하고 있다는 점은 다른 책에서는 찾을 수 없는 차별성을 지녔다. 

  그렇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기라성 같은 명문가名文家들은 과연 누구일까? 간략히 소개하자면 중국최초의 자유사상가 굴원屈原, 진정한 지식인의 초상 사마천司馬遷, 고대의 지식 장사꾼 사마상여司馬相如, 당대 최고의 풍류 명사 혜강嵆康, 자연을 닮은 영성주의자 도연명陶淵明, , 광기와 야성의 유랑 시인 이백李白, 속세의 고통을 대변한 관음보살 두보杜甫, 귀족과 평민을 오간 문학거장 백거이白居易, 어질고 따뜻했던 국왕 시인 이욱李煜 과 작품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저마다 성격이 다른 이들에서 호연지기와 자연주의라는 공약수를 찾아 소개했다. 

  그 시절의 문인들은 한가로이 초야에 묻혀 시詩나 쓰는 문학가文學家가 절대 아니었다. 지식이 궁하고 책이 궁했던 그 때, 그들은 책 한 권을 내면 온 국민이 필사를 해낼 만큼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였고, 수많은 추종자들을 몰고 다니는 정치세력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한마디는 국민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기에, 여러 나라에서 제후로 스카우트 요청을 할 만큼 유명한 오피니언 리더였다. 군주의 귀에 거슬리는 진언을 하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내놔야 했던 때였기에 신하들은 군주의 질문에 전전긍긍해야 했고, 마지못해 입을 열 때는 한 마디 한 마디 입술 밖으로 나오는 말들은 그야말로 ‘칼을 입에 무는 심정’으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살벌한 시절에 굴원이 군주의 아둔함을 꼬집는 글을 살핀다면 명문가의 면모를 이해할 수 있다.


무리 짓기 좋아하는 이들 쾌락만 좇으니

길은 마냥 어둡고 험난하구나.

어찌 내 일신의 재앙만 꺼리랴.

임금의 수레 엎어질까 두려워라.“ 본문 56 쪽

 

 지금의 중국이라도 대놓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미디어가 있을까 싶다. 틀림없이 평생을 숨어 살아야 하던지, 붙잡히면 치도곤을 당할 것이다. 굴원의 삿됨이 없는 시詩만큼이나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사마천이다. 남성男性을 잃어버리는 궁형宮刑의 치욕을 당하면서까지 사기史記를 완성한 사마천에 대해 이 책은 많은 부분을 할애해 언급했다. 사기가 단순히 역사학서가 아니라 역사성을 갖는 철학서이자 문학서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마천이 민중의 언어로 집필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민중의 언어로 ‘사기’를 집필했다. 그는 궁정에서 일하는 사관이었지만 지배층이 언어 체계에 함몰되지 않았다. 권력과 언어의 함수관계, 지배자와 언어가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음을 잘 알았던 사마천은 일관되게 민중의 입장에서 역사를 기록했다. 지배 언어의 영향권 아래서 자기 언어를 갖고 또 지키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통치 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자처하며 시대에 영합하는 어용학자들을 생각하면 사마천의 지성과 용기가 더욱 위대하게 느껴진다.”

본문 98 쪽




  그들은 스스로를 왕의 신하가 아닌 ‘주체’로 여겼다. 잘못을 보면 그름을 이야기하고, 듣지 않으면 귀에 대고 말했다. 군주가 뒤로 앉아 아예 쳐다보질 않으면 돌아서서 하늘을 보며 ‘군주의 무지함’을 시로 읊고 나왔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의 군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군주를 움직이는 자신의 한마디가 온 나라 온 백성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진언이 먹혀들지 않으면 스스로 군주를 버리고 나라를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소용을 감당할 군주가 나타날 때까지 초야로 들어가 자연自然이 되었다. 저자는 이들 명문가名文家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사람은 사람답게 자연은 자연답게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인간은 어쩌면 가장 힘없고 미약한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엇이든 지배하려는 탐욕을 버릴 때 자연은 인간에게 화해의 손을 내민다는 것을 이들을 통해 배우라고 이 책을 통해 권하고 있다. 저자의 요구는 비단 중국의 독자에게만 쓸모가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오늘날의 지식인 특히 위정자나 오피니언 리더들은 자신의 공명을 위해 원칙을 버리는 변절이나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는 중국 고대 문인들을 살피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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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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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리뷰가 뭔지를 알게 하는 유시민의 고전 리뷰 모음집 

  책도 물건에 들어가는가 보다. 읽고 또 읽으면서도 내가 읽지 못한 남이 읽은 책은 내가 읽은 책보다 더 나아 보이는 듯 읽고 싶고 읽은 그가 부러워진다. 욕심.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사악한 감정은 책에도 반영되는가 보다. 유시민의 책 <청춘의 독서>은 그런 욕심에서 집어든 책이다. 오늘의 당신이 어제 읽은 것은 무엇이더냐? 궁금했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겨 차례를 읽고 속이 상했다. 최인훈의 광장을 제외하곤 제목으로만 듣던 책이었다. 고전이라 불리는 명저들. 제 잘난 척이더냐? 반문하고 싶었다. 은근히 빈정이 상해 차마 책장을 시원히 넘기지 못했다. 

  독서기讀書記란 원래 조심스러운 글이다. 글 속에 들은 책의 내용과 생각은 독자가 그 책을 읽은 시절의 느낌이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마치 여드름이 그득한 한 때 밤을 하얗게 새워 써둔 연서戀書를 한낮에 읽고 부치지 못하는 것처럼 언젠가 쓴 독서기를 읽을 때면 얕기만 한 글의 깊이에 늘 얼굴이 붉어진다. 책을 읽지 않아도 세월은 생각의 수심을 깊게 한다. 책을 읽으면 깊이는 더해질 터, 그래서 지난 날의 독서기는 늘 얕고 편협한 생각의 총제로만 보인다. 지금 쓰는 이 글도 그 길이만큼 얕아지겠다 싶어 조심스럽다.

  남이 쓴 독서기를 읽고 재차 독서기를 쓰기란 재탕한 한약 같다는 생각에 소용이 있을까 싶다만 읽고 난 감상이 많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국가대표급 운동권인 청년이 여권의 정치인이 되고 또 다시 野人이 된 지금 저자가 젊은 시절을 뒤돌아봄이 수상했다. 책을 든 다음날 ‘대선출마’에 대한 언급을 듣고야 책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시절의 열정을 재충전하게 했던 원고였던가 싶어서다. 그 생각은 틀림이 없었다. <청춘의 독서>에서 소개된 책 모두 그가 하고 싶었던 ‘오늘을 고告함’을 대변하고 있었다. 



 

  

  유시민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통해 비범한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려는 신념은 위험한 전체주의적 발상이며, 인류를 구원하는 길은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한다는 것을 말하고, 역사의 종말을 예언한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모순을 개선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찾아올 종말이 올 때 까지는 유효한 종말론임을 밝히며 경계했다. 한편 금이 간 거울이 되어버린 맬서스의 <인구론> 오늘을 논論하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과연 옳은지, 그릇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일그러지지는 않았는지 반성하는 도구로 삼았고, 보수주의의 대명사인 <맹자>의 생각엔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사상에 대한 변함없는 마음에 정적政敵인 그에게 진정한 보수주의를 찾았다.



 

    이 책은 명저名著의 줄거리 사이 마다 녹여낸 그의 글 전반은 지난 시절에 읽고 느낀 바에 대한 그릇됨의 기록이었다. 오해와 착각으로 첨철되었음을 고백하는 그의 반성은 솔직해서 멋지다. 책이 던지는 메시지의 더 깊고 너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득오감得悟感은 재차 읽은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리라 싶어 부럽기까지 했다. 글의 나머지의 절반은 오늘에 대한 성찰이었다. 그가 오래전에 책을 읽으며 느낀 세상의 모습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변함이 없거나 오히려 그 시절보다 더 후퇴한 것에 대한 회한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변화에 대한 요구도 있었다. 그 중에서 하인리히 뵐의 <카나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 대한 글은 정부와 언론이 밀월관계를 갖게 되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되는지에 대한 우려의 반영이었다.

  리뷰란 이런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줄거리를 읊어대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내게 무어라 말했는지, 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노래하는 글이다. 나아가 책을 읽기 전후로 조금 더 큰 자신을 발견했음을 깨닫는 글이다. <청춘의 독서>는 진정한 리뷰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책꽂이에 꼽혀야 할 책은 두 번 이상을 읽은 책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또 다시 읽고 싶게 만든 책이야말로 나를 키워주는 책이라는 말뜻이겠다. 한 번 읽고 난 후 책 내용과 내 생각을 한데 섞어 곰삭힌 후에 어느 때 다시 읽는다면 두 번째 읽는 책 맛은 세월이 더해져 더 깊어지리라. <청춘의 독서>에 소개된 열 네 편의 고전이 유시민을 만나 그가 보는 세상으로 거듭 태어났다. 

  지식인이란 이래야 한다. 고백의 마음을 가질 줄 아는 자여야 하고, 배움을 그치지 않아야 한다. 돌아봄에 후회할 줄 알고, 잘못을 깨달을 줄 아는 자 여야 한다. 이런 자신의 모든 생각을 글로 옮겨 세상에 알릴 줄 아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후학들이 그들의 지식을 믿고 따르게 된다. 단순히 지식인이라 해서 이미 배운 자, 이미 갖춘 자가 아니라 오늘도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후학들은 가슴으로부터 우러난 존경을 표하게 된다. 유시민은 지식인이다. 참지식인이다. 시시비비를 논리적으로 가릴 줄 알고, 옳다 그르다는 것을 당당히 밝힐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차마 꺼내어 놓고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토론장에 들어서 열변을 토하며 대신 말해주는 그에게 때로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런 그가 이 세상에 있음은 감사할 일이다. 

  유시민. 그는 책을 지도라고 평가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말처럼 무거운 짐을 어깨에 매고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필경 외롭고 두려운 여정이다. 책은 사람의 외롭고 두려운 인생의 길에 벗이 되고 희망을 준다. 그는 지도를 살펴 길을 찾았고, 찾아낸 바를 다시 모아 또 다른 지도를 만들었다. <청춘의 독서>에 소개된 사마천의 사기를 읽으면서 나는 유시민이 이 책을 쓰면서 든 마음은 사마천의 마음이었을꺼라 생각되었다. 사마천의 비분강개가 아니라, 옳음을 알려 후학들에게 깨달음의 기적을 제공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며칠 전의 대선출마 소식은 <청춘의 독서>를 통해 사그러들었던 호연지기가 일어난 걸까, 그의 말을 찾는 수많은 독자들의 손길이 그에게 열정이 다시 솟아나게 한건 아닐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가 후세가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지도를 그리는 사람으로 계속 남기를 바란다. 세상의 옳고 그름을 감히 말할 수 있는 논객, 지금의 모습으로 오래도록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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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졸업생은 마지막 수업에서 만들어진다 Harvard Business 경제경영 총서 35
하버드경영대교수 지음, 데이지 웨이드먼 엮음, 안명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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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경영대학 교수가 전하는 멋진 인생을 위한 위대한 강의 15 편



  문이 열리자 101 강의실에 모여 있던 백여 명의 학생들이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만추晩秋의 계절인데도 함박눈을 맞은 듯한 머리의 노老 교수는 늘 그렇듯 한 손에는 머그컵이 들려 있었다. 갓 볶은 커피의 구수한 향이 너른 강의실로 은은하게 퍼졌다. 강단에 선 교수는 노트를 내려놓고 머그컵을 든 채 창가로 갔다. 교수는 한참 동안 창밖을 보며 자신이 학생들이 내는 소음을 듣는 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강단으로 돌아온 교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고개를 들어 학생들을 둘러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 오늘이 마지막 강의군요. 한 학기 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다음 기말 고사의 형식에 대해서는 조교가 먼저 말씀을 드렸을 겁니다. 오늘은 수업을 하지 않고,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의 마지막 수업에는 교수님들이 수업의 마지막 몇 분을 남겨 두고, 스승으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자신의 이야기이자 자신이 최고의 조언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는 전통이 있다. 이 책은 하버드 경영대학의 어느 학생이 15명의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전해준 조언을 모은 책이다. 교수들이 학업을 떠나 곧 비즈니스의 리더가 될 예비 비즈니스맨들에게 리더로서 보다 나은 인생을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 교훈적인 책이다. 우연히 서핑을 하다가 <하버드 졸업생은 마지막 수업에서 만들어진다>라는 멋진 제목에 이끌렸고, 종강에 즈음한 계절감에 다시 ‘그 시절의 학생’이 되어 교수들의 가르침이 듣고 싶어 펼친 책이다. 책을 읽은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면 열 다섯 번의 위대한 수업을 들은 느낌, 딱 그런 기분이었다. 원제목은 Remember Who You Are: Life Stories That Inspire the Heart and Mind이다.

 



 

    이 책은 크게 세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법과 목표를 위해 자기관리를 하는 법, 그리고 리더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법과 올바른 가치를 세우는 법에 대해 이야기 한다. 교수들은 저마다 다른 개성과 스타일로 서로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리더로서 보다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교수들의 조언 중에는 내가 지금까지도 답을 찾고 있었던 화두에 대해 조언한 것들이 있어 책을 가슴에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을 만큼 고마운 대목도 있었고, 벅찬 감동에 몇 번을 고쳐 읽도록 만든 명문名文들도 있었다. 몇 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비즈니스맨이 돼서 가장 큰 고민은 어쩌면 ‘일과 생활의 균형’이다. 일차적인 고민은 시간적인 균형일테지만 더 큰 고민은 개인적 자아와 직업적인 자아의 ‘정체성’의 균형이다. 예를 들어 기업의 사장은 집에서도 사장으로 군림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외국의 어느 경영자는 이를 경계해 ‘내 집 앞 청소’ 만큼은 꼭 자신의 몫으로 남겨두었다고 하는데,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가 부하직원들이 늘어날수록 집에서도 참여하기보다는 지시하는 경향이 많아졌던 것이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예를 들어 모친 대신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가면서 ‘회사에서 기획부장을 하는 내가 말야....’라며 투덜대거나, 동생들과 부하직원을 혼동하는 등 부지불식중에 혼동하곤 했었다. 이 책에서 어느 교수는 자신은 아침에 강의실로 들어설 때는 ‘페르소나(외적인격)’가 된다고 말했다. 자신은 아니지만 매우 흡사하게 ‘닮은’ 또 다른 자신이 된다는 것이다. 직접 부연의 말을 들어보자.  


 “페르소나는 가짜가 아니다. 페르소나가 된다고 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지만 페르소나가 진짜 자신은 아니다. 그것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직업적 인격이다 ... 여러분은 자신의 직업적 삶과 개인적 삶 사이에 스크린을 설치할 수 있다. 스크린은 삶의 두 영역을 서로 배타적이거나 이중적이지 않게 구분해준다. 즉, 페르소나가 되었다가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오는 일이 스위치를 켜고 끄는 일처럼 단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스크린의 투과성은 자신이 원하고 상황이 허락한다면 언제라도 자유롭게 ‘진짜’ 자신에서 직업적 자신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해준다 ... 자신을 닮은 페르소나는 사회생활을 통해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불행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며, 내면의 자아가 입게 될 상처를 줄여 줌으로써 우리가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교수는 가정과 직장을 동일시하는 것을 경계했다. 직장생활을 가정생활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한다면, 내적인 공간을 보호한다고 보았다. 즉, 직장에서 자신을 공격했던 외부적인 힘을 피해, 내적인 공간 속으로 숨어든 ‘자신’을 지탱한다며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일하는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소유하는 것이 결정된다. 또,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누구인지 결정된다.” 자신이 하는 일로부터 진짜 자신의 모습을 분리해 내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인생을 사는 데 있어 ‘가치 있는’ 틀림없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화려한 껍데기를 위해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어느 교수의 강의 였다. 데이비드 E. 벨 이라는 이 교수는 우선 졸업을 하는 순간 ‘동창회’를 나간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했다. 그 모임은 틀림없이 다른 졸업동기들에 대한 나를 보는 ‘비교의 장場’이 되기 때문이다. 동창회와 같이 남 보기 좋은 일을 하려고 하다가는 ‘온전한 내 인생’을 살지 못한다고 충고했다. 동창회를 나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좀 더 들어보자.  

  “결국 여러분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자신의 인생을 동창회에 맞춰 끌고 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예컨대, 직장을 서택할 때에도 짧은 시간에 자신의 이력을 돋보이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고른다거나, 순식간에 떼돈을 벌 수 있는 일을 고르는 일처럼 자신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빠른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 일이라면 뒤로 미루고, 대신 ‘멋진 차를 살 수 있지만 사실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또한 여러분은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직업적인 목표를 잃어버리고, 직업과 관련된 위험한 결정을 내리는 일이나 이와 관련된 어떠한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것에 있어 지나치게 몸을 사리게 될 것이다.”

  교수는 지식과 재능이 넘치는 우수한 학생들이, 남 보기에 그럴듯하면서 돈벌이는 되지만 그들에게 적합하지도 않고 그들이 진정 원하는 자리에 도달하는 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직장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는 것을 경계했다. 최근에는 40이 넘어 요리사가 되기 위해 해외로 유학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만나게 된다. 그 어떤 이유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반면 늦게라도 자신의 ‘일’을 찾은 그들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이 땅에 내가 태어난 데에는 그 이유가 있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저마다 쓸모가 있다는 말이다. 내 삶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쓸모에 쓰이고 있는지, 그런 나는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이 강의에서 교수는 직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직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보상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성공의 의미를 폭넓게 정의하며,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수명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만큼 ’직업선택‘의 기회는 더욱 많아지는 요즘 우리가 직업을 선택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내용이었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깨달음과 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느 강의는 그동안 잊고 지내온 삶의 이정표들를 다시 찾게 해주고, 오늘까지 고민했던 인생의 화두에 대해서도 해답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 책이 제공하는 삶에 영감을 불어넣는 소중한 이야기들은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 뿐 아니라, 직장인이나, 사업자에게도 소중한 조언이었다. 세상이 얄팍한 처세와 기교를 가르친다면, 이 책은 ‘진정한 인격’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시간을 돌려 잠시 대학으로 돌아가 강의실에서 교수의 강의를 듣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뜻 깊은 시간, 소중한 교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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