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성인의 부자 지침서
존 보글 지음, 이건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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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덱스펀드>를 만든 월스트리트의 양심 '존 보글', 주식시장에 일갈하다!

 

  존 보글John C. Bogle은 말했다. “충분함을 알아라.” 우연한 성공에 도취되어 너무 규모를 키웠다가 말 그대로 ‘거지’가 된 사업가, 상자 하나에 가득 담긴 현금뭉치에 현혹되어 평생을 일궈놓은 명성을 날리고 쇠고랑을 찬 정치인, 선무당 즉, ‘초심자의 행운‘인 것을 모르고 마치 행운의 여신 운운하며 가산을 도박으로 탕진한 사람들. 이들에게 닥친 모든 화禍의 근원은 ’충분함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존 보글을 이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금융인들이 엮어낸 금융 시스템과 기업세계에 대해 일갈을 한 것이다. 그는 우리가 충분함을 모르는 민주자본주의를 살고 있기 때문에 작금과 같은 슬픈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훌륭한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훌륭한 화두를 던진 존 보글John C. Bogle이 누굴까?

  존 보글은 뱅가드그룹을 설립하여 1975년 세계 최초로 인덱스펀드를 개발한 세계 투자계의 거장이다. 그는 투자자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철학으로 투자를 해오면서 ‘월스트리트의 성인St. John’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2007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를 지켜보면서 금융인과 투자자에게 돈과 비즈니스 그리고 인생에 있어 추구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올해 책을 폈다. 원제목은 Enough: True Measures of Money, Business, and Life. 한국판 제목은 <월스트리트 성인의 부자지침서>이다. 



 

 그의 목소리를 빌려 ‘충분함’에 대해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충분한 줄 모르면 직업적 가치가 타락한다. 투자를 위임받은 수탁자들이 세일즈맨으로 전락하고 만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시스템이 계산을 바탕으로 하는 시스템으로 변질된다. 더욱 나쁜 일은, 충분한 줄 모르면 우리는 인생 전반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점이다.” 12쪽

  존 보글은 이 책에서 충분함enough을 모르면 부에 대한 숭배와 직업윤리의 타락, 나아가 인격과 가치의 파괴까지 경고했다. 의 이러한 경고는 금융 산업에 종사하는 비즈니스맨들에게는 “이봐, 금융인으로서 이건 아니잖아?”라고 반문하고, 투자자에게는 “당신은 돈을 벌려고 투자하는지 모르지만 투자회사에 돈을 맡기는 순간부터 돈을 잃고 있는 겁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 전반에 걸친 내용들은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금융시스템의 문제점과 주식시장은 급속하게 팽창되었음에도 정작 큰 이익을 본 투자자가 없는 이유(없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는 월스트리트의 산증인이자 원로로서 금융계에 던지는 경고이자 은퇴자의 양심선언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펀드매니저들이 어떤 분야의 귀재라고 굳이 표현하자면, 이들은 투자자의 돈을 빼내는 데 귀재라고 할 수 있다. 2007년에 뮤추얼펀드 시스템에서 발생한 직접 비용(주로 운용보수와 마케팅 비용)이 모두 1천억 달러가 넘었다. 여기 더해서 펀드는 증권회사에 거래수수료 수백억 달러를 지불하고 있으며, 변호사와 기타 관련 회사들에도 간접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펀드 투자자들은 투자상담사에게도 매년 약 100억 달러를 지불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략)

 이런 비용이 매년 거듭해서 발생한다는 점을 잊지 마라. 현재 수준이 유지된다면(내 생각에는 증가할 것 같지만), 전체 중개비용이 10년 뒤에는 무려 6조 달러에 이를 것이다. 이 금액을 현재 미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15조 달러이고, 채권시장의 시가총액이 30조 달러인 점과 비교해보라.” (53-54 쪽)

  현재 우리나라의 펀드상품 수는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수신고가 많은 펀드상품을 제외한 나머지 상품에는 펀드매니저들이 수시로 바뀌고 있고, 자기자본으로 투자해 본 경험도 없을 것 같은 나이의 펀드매니저들도 참여해 투자자의 돈을 굴리고 있다. 투자자에게 좋은 펀드상품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이 먼저 필요하다는 말은 차라리 그런 안목으로 ‘직접투자에 나서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더 빠르다. 평생 동안 모은 투자자의 종자돈은 투자수익은커녕 이해할 수 없는 갖가지 명목의 높은 수수료 때문에 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펀드주식투자 시스템의 실상이다. 높은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이 투자자들이 보상을 받는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존 보글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금융 시스템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문제는 이런 가치를 얻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그 가치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답은 명백하다. 금융산업은 우리 경제에서 가장 큰 부문일 뿐만 아니라, 고객들이 스스로 지불한 비용 수준과 비슷한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유일한 산업이다. 실제로 간단한 산수의 잔인한 법칙에 따르면, 투자자들 전체로 보면 이들은 자신이 지불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역설적으로 말해서, 투자자들이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보상을 모두 받을 것이다!).” 55쪽 

  그는 또한 금융산업 종사자들의 직업적 윤리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일류 펀드매니저들은 수억 원의 연봉을 챙기고, 실패해서 쫓겨나는 CEO들을 포함한 상장회사의 CEO들은 외설적인(존 보글의 표현에 의하자면) 수준의 보상을 받고 있다. 상품취급에 앞서 자세하게 이해도 하지 못한 채 투자자를 유치해 키코와 파생상품의 투자에 따른 손해를 입히고, 대마불사 운운하며 아직도 ‘투자자의 자금을 소중하게 키우겠다’고 연일 선전하고 있다. 존 보글은 금융산업 종사자들의 모럴 헤저드 즉, 도덕적 해이를 꼬집었다. 쉬운 예로 매년 금융산업으로 몰려드는 구직자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의 동기가 업業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려는 쪽일까, 아니면 사회로부터 얻어가려는 쪽에 비중을 더 두고 있을까? 땅짚고 헤엄치듯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정리해보자. 존 보글의 충고를 따르자면 투자자는 우선 ‘충분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위의 잭팟에 귀 기울이지 말라는 충고일 것이다. 두 번째는 지금의 금융 투자시스템으로는 절대로 돈을 벌 수 없다는 조언이다. 번듯한 회사와 다양한 상품, 친절한 서비스와 혜택 운운하는 매체의 광고들은 투자자들을 수익원으로 보는 투자회사들의 상술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어디에 투자해야 한단 말인가?

  존 보글은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인덱스 펀드가 무엇일까? 인덱스 펀드는 증권시장의 장기적 성장 추세를 전제로 하여 주가지표의 움직임에 연동되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운용함으로써 시장의 평균 수익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포트폴리오 운용기법을 말한다. 인덱스 펀드는 최소의 인원과 비용으로 투자위험을 효율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하여 가능한 한 적은 종목으로도 주가지표의 움직임을 근접하게 추적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자산운용의 핵심이다.

 인덱스 펀드의 장점은 효율적인 분산화 실현, 증권매매에 따르는 비용 절감, 저렴한 운용비용, 투자자 스스로에 의한 운용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단점으로는 목표 인덱스보다 낮은 투자성과, 구성종목 교체의 곤란성, 비편입종목에의 악영향, 증권업계의 침체 등이 지적되고 있다. 국내에서 발표되고 있는 주요 인덱스에는 코스피지수(KOSPI:Korea Composite Stock Price Index)와 코스피200지수, 한경지수, 매경지수 등이 있다.

  주식투자를 하는 투자자가 아니더라도 익히 아는 운영기법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좀처럼 들은 바가 없다. 왜냐하면 주식시장이 극도로 불안정해서 은행의 예금 등으로 투자금이 빠져나가려고 하면 그때서야 매체에 등장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덱스펀드는 장기투자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과 증권매매에 따르는 비용이 절감되고, 운용비용이 절감되는 점, 마지막으로 투자자 스스로에 의한 운용한다는 점들은 투자회사의 입장에서는 그리 반갑지 않은 운영기법이기 때문에 되도록 언급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전한 투자’를 원하는 투자자에게 있어서는 인플레이션을 보전하는 효과가 있는 이 상품이 제격이다. 개미투자자들의 친구인 ‘시골의사’ 박경철도 지난 해 낸 책 <주식투자란 무엇인가>에서“주식시장에 대해 충분한 공부를 하지 않고는 주식투자를 하지 마라. 그래도 해야겠다면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라.”고 조언한 바 있다. 

  ‘자기가 만든 인덱스펀드에 투자를 종용하기 위해 일부러 책까지 쓰며 금융시스템을 폄하하는 것 아닌가?’ 하고 반문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금융시스템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존 보글은 실제 시장과 기대 시장을 비교해 투자와 투기를 구분 지었다. 그리고 숫자에 근거한 투자(인덱스펀드)와 기대치가 부여된 투자(일반펀드)중 무엇이 투기인지를 독자 스스로 알 수 있도록 이렇게 물었다.  

  “어느 쪽이 이기는 게임이고 어느 족이 지는 게임인가? 실제 숫자와 실제 수익에 돈을 걸고, 주식을 매입하여 장기 보유하는 쪽인가?(이것이 투자다). 아니면 예상하는 숫자와 만들어낸 수익률에 돈을 걸고,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대신 잠시 빌리는 쪽인가?(이것이 투기다). 복권에서든, 라스베이거스에서든, 경마장에서든, 월스트리트에서든, 도박은 하면 할수록 승산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투기를 할지 투자를 할지 결정하는 일은 고민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63-64 쪽

  결정적으로 존 보글은 시점선택의 동기가 탐욕이든 공포든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든, 필연적인 사실은 투자자 전체를 놓고 보면 시점선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존경하는 워런 버핏의 내기를 예로 들었다. 

“보도에 따르면 2008년 중반, 워런 버핏은 헤지펀드를 선택해서 투자하는 히사인 프로테제 파트너스Protege Partners와의 내기에 21만 달러를 걸었다. 2017년까지 10년 동안 뱅가드의 대표상품인 S&P 500인덱스펀드의 수익률이, 프로테제의 자칭 전문가들이 선정한 5대 헤지펀드(필연적으로 투기적이고, 자유분방하며, 마구 거래를 일으키고, 시점선택을 시도한다)의 수익률보다 높다는 쪽에 돈을 걸었다.”

  또한 그는 상장지수 펀드ETF 나 펀더멘털 인덱스투자, 상품펀드, 브릭스 펀드와 국제펀드 등을 대부분 쓸모없는 혁신상품이라며 그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까지 강조한 상품은 가장 기본적인 투자수단인 인덱스펀드였다. 그 이유는 투자자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철학으로 월스트리트에서 평생을 몸바쳐온 그가 만든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시 이 상품에 투자해 차고도 넘치는 많은 부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책을 일독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인덱스펀드를 만들어낸 장본인에게서 2009년 현재의 시점에 인덱스펀드를 투자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와 함께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투자금융시스템이 누구를 위한 혁신을 이루고 있으며, 누구의 수익을 위한 상품을 개발하고 있는지 현주소를 알게 될 것이다. 

  지난달에 읽은 워런 버핏의 <스노볼>이 “직접투자하려면 어느 정도는 공부하고 덤벼야 해. 그리고 복리효과를 잊지 말라고!”라고 조언했다면, 이 책에서 존 보글은 “넉넉한 생활과 행복한 투자를 원한다면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미 죽어서 삼 대에게 물려줘도 남을 만큼 부를 축적한 이들이 굳이 ‘책을 낸 이유’는 죽기 전에 투자자들에게 ‘현명하게 투자하는 법’을 알리기 위함일 것이다. 아니면 찌라시나 유언비어에 번번이 속고 있는 개미투자자들이 답답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존 보글이 투자자들에게 던진 화두는 ‘충분함을 알라’는 것이다. 그러면 투자는 물론 사업과 인생에서도 행복함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 그릇을 알고, 제 깜량을 안다면 대박이나 잭팟이 삶의 유일한 해답이 아님도 알게 될 것이다. 투자자라면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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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시대 - 미국에 맞서는 중국의 초강대국 전략
매일경제 국제부 중국팀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중국의 현실에 대한 풀이는 좋지만 해답에 대한 고민은 없는 책!

 

  G2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미국과 중국 두 나라를 뜻하는 용어다. 용어의 근원을 찾자면 선진국 7개국 즉, Group of 7의 약자인 G7(지난 해부터 G20으로 선진국 모임이 확대되었다)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쉽게 말해 중국과 미국을 지칭하는 대명사인데, 이 용어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 세계를 내려다보며 홀로 독야청청하던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진 중국의 세계적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굳이 G2를 언급하지 않아도 국제뉴스에 중국뉴스의 비중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환율을 비롯 증시, 자원부족, 경제성장, 소수민족의 인권탄압 문제 심지어 먹거리 사태까지 다사다난한 국제뉴스 전반에 중국이 언급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아시아의 신흥경제강국을 뛰어넘어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중추적인 위치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계대전 이후가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냉전시대’였다면,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G2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경제신문지인 ‘매일경제’의 국제부 중국팀이 책을 폈다. G2 시대를 여는 중국의 현황을 살펴보고, 미국과 주변국들과의 관계도 점검했다. 나아가 G2 시대를 맞는 한국이 중국에 대응해 나아갈 바를 모색했다. 책 <G2 시대 - 미국과 맞서는 중국의 초강대국 전략>을 읽었다.



 

   이 책은 ‘오늘날의 중국을 주제로 한 종합뉴스‘다. 특히 지난 해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변화된 세계경제 상황을 중국을 메인으로 놓고 살펴보았다. 한마디로 ’팍스 차이나’,승승장구하는 중국의 현황판이었다. 자동차, 조선, 철강, IT, 항공산업, 녹색산업까지 현재 중국기업은 세계의 모든 산업지도를 바꾸고 있다. 세계 제 1의 인구 수는 그들이 가진 가장 큰 무기다. 16억의 중국인구는 오늘날의 중국을 이끌어왔던 생산자원임과 동시에 세계 제일의 소비자원이 되고 있다. 전반부에 설명되는 다양한 분야의 현황은 G2로서의 중국의 위상을 실감하게 한다. 또한 이러한 성장의 그늘 속에서 중국이 해결해야 할 내부적인 문제 역시 심도있게 조명했다. 책의 전반부에서 책장을 더할수록 중국의 외견에 대해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책을 읽었다면, 중국의 내부적 문제점들을 해부한 후반부는 아직 해결해야 할 장애가 많은 대륙의 상처들을 돌아보는 부분이었다. 문화와 혁신산업 등의 낙후를 보여주는 대목은 오늘의 중국을 잘 설명한 대목이 있다.   

  “중국이 제조업이나 일부 첨단기술 산업에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주요 도시에선 하루가 다르게 마천루가 솟아 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설들을 자유로우면서도 안정되게 운영할 소프트웨어를 갖추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이는 ‘밤길에 비단 옷을 걸친 꼴’이다.” 160 쪽

  경제신문의 기자답게 중국의 현황에 대해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잘 구성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의 핵심에 해당하는 ‘중국의 부상이 앞으로 한국에 미칠 영향’과 ‘G2 시대에 한국이 나아갈 바’를 언급한 <제 4장 G2 시대- 중국을 뚫어라>는 구성이 너무 허술했다. 현황과 문제점만 나열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기자로서의 고민이 많이 뭍어있길 바랐다면 욕심이 큰 걸까? 새로운 통일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한국의 통일 외교가 미국뿐 아니라 중국의 태도까지 염두에 두면서 슬기롭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중국 내수시장의 판로를 개척하는 해결책으로 세계적인 기업들이 중국시장을 향해 몰려 있으므로 최신 제품으로, 최고의 역량을 집중하기 않으면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힘들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차라리 ‘중국으로 부자되기’는 실용적이다. 중국의 주식시장의 현황과 투자법을 설명하고, 중국의 부동산 투자와 월세 얻는 법, 그리고 중국에서 창업하는 요령과 뜨는 아이템 등을 설명했다. 하지만 ‘G2 시대 도래‘를 운운하며 위기감을 고취시킨 것에 비해 궁색하고 미약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부록으로 마련된 ’중국 10대 부자들이 돈 번 사연’은 왜 이 책 속에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독자로서 알고 싶은 내용의 절반만 얻은 기분이다. 이 책을 펼친 이유는 온라인 논객들의 근거 없는 전망 대신 폭넓은 정보력과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경제기자들의 신선하고 깊이 있는 통찰력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제집을 펼쳐서 열심히 문제를 풀었는데, 답안지가 없는 황당함. 이 책을 읽은 지금이 딱 그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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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박웅현, 강창래 지음 / 알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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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史 哲, 광고 안에 너 있다! -  

광고짓는 사내 박웅현의 브레인 아나토미

  광고는 돈덩어리다. 광고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한여름 시청앞 분수대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양만큼 100원 짜리 동전이 토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광고를 TV 등 공중파에 태우려면 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야 할까? 9시 뉴스를 전후로 한 시청율이 가장 높은 골든 프라임 타임Golden Prime Time에는 일반적인 액면가를 넘어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줄을 서야 할 형편이라고 하니 감히 실제는 내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한가지 소원은 30초 동안의 짧은 광고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제품을 알아볼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심정이겠지만 시청자이자 소비자인 우리의 입장은 기업과는 조금 다르다. 

  우선 기업의 광고가 TV 등 매체에 실리는 것을 발견하면 우선 처음 듣는 기업인 경우에는 ‘이 기업이 광고를 할 만큼 재무상태가 괜찮은가 보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새로운 제품을 만난다면 ‘이 기업이 쉬지 않고 계속 제품을 쏟아내고 있구나.’ 하고 판단한다. 제품의 광고가 채널마다 시간을 불문하고 꾸준히 나온다면 ‘제품을 알리려고 꽤나 많은 돈을 쏟는 것을 보니 이번 시즌은 이 제품에 목숨을 걸었나보다’하고 판단한다. 이 정도면 기업이 원하는 광고의 목적을 달성한 것인가? 하지만 소비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 광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이비드 오길비는 광고에 대한 자신의 견해에 대해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바로 당시의 아내가 소비자이다. 아내를 모욕하지 마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당신(광고집행자)의 가족들이 보지 않았으면 하는 광고는 절대 집행하지 마라.”고도 말했다. 기업이나 광고회사는 소비자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요즘 TV 광고의 진실이 어떻다 하는 정도는 ‘초등학생’ 소비자도 안다.

 먹는 광고를 찍는 동안 제품을 너무 많이 먹어서 광고를 찍은 모델은 평생 동안 자신이 광고에 출연한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신이 즐겨 쓰는 외국산 화장품으로 화장을 한 채 국산 화장품 광고를 찍는다는 것 쯤도 다 안다. 어디 그 뿐인가? 수억 원의 모델료를 지급한 광고의 제품가격에는 모델료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어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는 행동이 십시일반 모델료를 나누어 내준다는 것도 안다. 앙드레 김 패션쇼에 오르기만 하면 배우나 모델의 가치는 2-3 배나 뛰어서 그의 눈에 들기 위해 모델들이 안달을 낸다는 것도, 버라이어티에 나와 맛있게 먹고, 멋있게 입어야 그 배우가 광고제의를 받는다는 것도 안다. 

  한마디로 말해 오늘날의 소비자는 기업의 마케팅 지식이 너무나 철저하게 무장되어 있어 기업이 바라는 TV나 매체의 마케팅 캠페인에 빠져들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차별되지 않으면 유치하게 ‘옛날 방식의 선전’을 한다고 바로 핀잔을 준다. 게다가 매일 노출되는 광고의 수가 무려 3,000여 개에 이르다 보니 소비자들은 ‘광고’를 소음 혹은 공해로 여기기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TV에 광고하고 일간지에만 광고노출 시키는 게 최고야.”라고 말하던 전통적인 광고 방식으로는 ‘돈 낭비’일 뿐, 더 이상 예전의 효과를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요즘이다. 소비자가 인식하기에 제대로 어필하기 위해서 다른 방식, 소비자 한 명마다 파고들어갈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까다롭고 약아진 소비자들 때문에 그 만큼 기업들이 제품 팔아먹기 힘들어진 세상, 바로 오늘날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광고가 변하기 시작했다. 30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마치 본전이라도 뽑을 요량으로 듣는 이를 무시하고 제품과 기업 선전에 열을 올리는 광고 대신 소비자에게 ‘느낌’을 주는 광고가 나타나고 있다(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광고는 전통적인 광고 방식 그대로다. 낮시간 동안 연이어 펼쳐지는 보험회사의 광고를 보고 있자면 없던 병도 생길 지경이다. 가입과 갱신에 대한 해설은 어찌나 말이 빠르던지 몇 년 째 반복해서 들어도 아직 다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이들 광고가 주는 ‘느낌’이란 다양하다.  

 소비자에게 ‘나도 공감한다’고 말하는 광고가 있는가 하면, ‘이것이 당신의 모습이다‘고 말하기도 한다. 최근에 등장하는 ’감동을 주는 광고‘는 공익광고협의회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책 한 권, 영화 한 편에서도 얻지 못하는 ’그윽하고 여운이 오래가는 감동‘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광고를 만나면 우선 그런 ’광고를 낸 기업‘에 관심이 쏠린다. 그리고 ’정말 당신(기업)이 우리(소비자)에게 이런 마음을 갖고 있어?’하고 되묻는다.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선전은 하나도 없이 그 많은 돈을 들여 이런 광고를 내 보낸다니... 신통한 기분이 든다. 이 또한 작은 감동이다. 그 다음은 이런 광고를 만든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떤 머리에서 비롯된 생각이길래 이런 광고를 낼 수 있단 말인가?‘ 궁금해진다. 어느 때는 광고를 내보내는 기업보다 광고회사가 궁금해질 때가 있을 정도다. 그들이 누굴까? 그 중 한 사람을 찾아냈다. 



 

    책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TBWA KOREA 라고 하는 광고회사의 ECD, 쉽게 말해 광고를 만드는 총책임자인 박웅현의 이야기다. 고백하자면 이 책을 알기 전에는 그가 누군지 몰랐다. 책을 펴고 저자 소개를 살피니 몇 해 전부터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TV광고는 거의 이 사람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이한 점은 저자가 '상당히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광고쟁이(그 바닥에서 그렇게 부른다)라고 하면 끼 많고 똑똑하고 감각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시장市場으로 알고 있는데, 그 시장에서 거의 Top이라고 불리는 이가 ‘나는 책을 통해 광고한다’고 말하니 흥미로웠다. 특히 '인문학'에 깊은 조예가 있다는 그가 궁금해졌다.  

  책의 전개방식도 특별하다. 주인공은 박웅현인데 이 사람은 인터뷰이(인터뷰 당하는 사람)이고, 인터뷰어는 단행본 편집계의 고수 강창래씨가 맡았다. 최근 공지영과 지승호가 공저한 ‘괜찮다 다 괜찮다’를 필두로 ‘인터뷰 형식의 도서’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알마의 인터뷰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 중에 처음 읽는 셈인데, 이런 식의 구성이 신선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든 이유는 TBWA KOREA 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광고회사는 <가로수 길이 뭔데 난리야?>,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등 몇 권의 책을 낸 바 있는데, 주제가 신선해 공교롭게 모두 읽었고, ‘좋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내가 읽은 두 권 모두 여느 책과는 다르게 파격적이고 멋들어진 책이었다. 잡지를 닮은 듯 EBS 방송국이 만들어낸 <지식 - e 시리즈>와도 닮았다. 편하게 생각하면 '블로그를 종이에 옮겼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이다. 

 <가로수길이 뭔데 난리야?>는 최근 트렌드의 메카로 자리 잡은 가로수길이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인 2007년에 출간된 책이다. 조용하고 한적했던 대로변 갓길이 술렁이자 '여기가 뜨는 이유가 뭘까?'하고 광고인의 눈으로 뒤져본 책이다. 그래서 가로수길의 인기를 통해 21세기의 젊은이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트렌드 코드를 잡아냈다(그 책이 갖는 트렌드 코드는 2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또 다른 책<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역시 특별한 책이다. 2008년 TBWA에 입사한 직원 7명을 데리고 오리엔테이션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에게 "청바지를 읽어라. 청바지는 무엇이 크리에이티브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다양하고 창조적인 답을 구했다. 광고에 전혀 물들지 않은 뛰어난 감각의 청년들이 생각하는 청바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조명되었다. 청바지를 통해 오늘날의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변화를 읽어냈는데, 하나같이 ‘물건이고, 인물이다’ 싶은 글들이 쏟아졌다. 난 이 책을 읽고 책 속의 내용과 더불어 ‘책을 만들게 된 기획’에 놀랐다. 신입사원들에게는 멋진 직무교육이자 추억이 되었고, 세상에는 훌륭한 트렌드 자료가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이 두 권을 읽은 경험은 TBWA에 대한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 책 역시 박웅현은 모른 채 TBWA KOREA를 지휘하는 인물이라는 소개글 때문이었다. 

  이 책은 광고쟁이 박웅현 한 사람을 조명한 것 뿐만 아니라 광고인이 보는 창의성, 창의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박웅현의 다독을 통한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은 ‘사람을 향하는 마음’이 되어 광고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지금껏 그가 작업해서 호응을 얻었던 광고들의 제작의도와 뒷이야기들을 통해 ‘감동을 주는 광고’ 속에 녹아있는 ‘인문학’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광고의 기법에 대해 운운하는 이전의 광고쟁이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인문학에 대한 지식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마저 알게 하는 멋들어진 책이다. 대담 형식의 대화체는 그가 이야기하는 세상을 설명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인터넷의 속도로 대표되는 오늘날 세상의 변화의 속도는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과 반비례한다. ‘바쁜 일상’이 덕담이 된 세상은 그만큼 인간이 고독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람을 향하는’ 박웅현의 광고는 ‘어루만짐’을 아는 광고다. 사람은 외로운 만큼 쉽게 감동하고, 그 여운은 오래간다. 그의 광고는 먼저 외로운 인간에게 공감하며 다가가 같은 줄에 서서 그들의 시선을 함께 했다. 그리고 그들의 어깨에 손을 얹어 마음을 덥혔다. 박웅현의 광고에 소비자들이 공감하고 감동하는 이유는 광고속에 文, 史, 哲의 인문人文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의 광고는 광고의 시선을 광고주인 기업에 두지 않고, 최종 소비자인 ‘사람’을 향한다. 최근 광고중인 한 아파트 회사의 ‘진심이 짓는다’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톱스타가 나옵니다. 

그녀는 거기에 살지 않습니다.멋진 드레스를 입고 다닙니다.우리는 집에서 편안한 옷을 입습니다.유럽의 성 그림이 나옵니다.우리의 주소는 대한민국입니다.이해는 합니다.그래야 시세가 오를 것 같으니까.하지만 생각해봅니다.있게만 보이면 되는 건지.가장 높은 시세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저희가 찾은 답은 진심입니다.진심이 짓는다.e- 편한세상

 

 

 

 

 

  이 광고에 주목해보자. 목소리는 대부분은 소비자의 마음이었다. 이 말은 한편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광고는 사실이 아니잖아?’ 라고 말하는 광고인의 ‘고해성사’이기도 하다. 충분히 공감하고 ‘옳다’고 박수칠 만하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하자. 과연 그 광고 속의 아파트가 과연 실제로 다른 아파트와 ‘차별성을 갖는가?‘ 하는 점이다. 광고회사가 이렇게 말할 만큼 진심으로 짓고 있는가 먼저 자문해 보아야 한다(앞으로 기대해 봐야 할 문제지만).

  광고가 변하듯 광고인도 변하고, 광고회사도 변해야 한다. 광고수주가 많은 광고주가 최고가 아니라 정말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회사를 ’최고‘로 삼고 진심을 광고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TV 등 매체에 광고를 토해 놓고 소비자의 반응을 얻고, 잘 만든 광고상 받는 것으로 결론을 지을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만든 광고주의 제품이 광고만큼 훌륭한 제품으로 기억되는가를 꾸준히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듯 소비자에게 다가선 광고 역시 한낱 ’수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광고주는 바뀔지 모르지만 소비자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Web 2.0으로 대표되는 21세기는 누구에게든 정보의 공유가 평등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제품이 가장 잘 팔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치 있는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만 하다면 굳이 광고를 하지 않아도 제품을 사용한 소비자가 알아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신 홍보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날 사람(소비자)를 향하는 광고는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자구책인지도 모른다. 시대를 반영하는 30초 예술의 반가운 변화 속에 박웅현이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그를 알게 된 독자로서 소비자로서 앞으로 ‘사람을 향하는 박웅현의 광고’에 주목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변함이 없기를, 그리고 진심을 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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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도시 - 21세기 차이나 신세대의 방황과 질주
한한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오쿠다 히데오는 저리 가라! 올해 만난 가장 재미있는 소설.

  20대엔 세상이 우스웠다. 뜻만 두고 손을 뻗으면 그 무엇이든 움켜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새털같이 많은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만 같아서였다. 내 안의 변화를 추구하기엔 뜻이 모호하고, 외부의 변화를 감지하기엔 촉觸이 너무나 둔감했었기에 시간이 더디게 느껴졌다는 것을 안 건 한참 후다. 늘 고만고만한 사람들과 부딪히며 엎어지면 코 닿을 데 만큼 범위에서 뒹굴거렸기에 세상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변화없는 뜻뜨미지근함이 세상을 우습게 여긴 무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밖에서 지켜본 입장에서나 알 뿐 벌려진 판 속에서 뛰어다니는 놈이 어찌 알겠는가. 설령 그런 느낌이 들거나 훈수를 두는 바깥사람이 있다 손 치더라도 온전히 제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그 속에서 뛰어다니는 것만도 하루하루가 한 편의 소설이었고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연꽃도시An ideal city>의 세 청년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 소설은 중국의 신세대를 뜻하는 ‘80後 세대‘의 소설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붉은 공산주의자의 부모에게 밥을 얻어먹고 집밖을 나오면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이후 빠르게 유입되는 자본주의 문화 속에서 서핑을 해야하는 모순의 세대가 80後 세대다. 젊은 모순 세대의 눈에 보이는 제 나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야기꺼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들의 혈액 속에는 과장과 풍자라는 아드레날린이 넘치지 않던가. 사상의 혼잡과 과장된 풍자가 한데 어우러진 중국을 파릇한 젊은이가 ’허구의 장르‘인 소설로 엮었으니 그 자체로 흥밋거리다. 

  이 소설은 ‘80後 세대’의 대표주자 한한韓寒이 쓴 소설이다.

수려한 외모와 파란만장한 학창시절, 그리고 중국고전을 방불케하는 필력으로 중국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그는 지난 2006년 2억 6천만 위한의 인세수입을 올려 <포브스>지가 주목하는 유명인에도 든 바 있다. 나는 그의 전작 <삼중문三重門>을 읽은 바 있다. 중국 문단과 교육문제을 신랄하게 꼬집으며 이를 겪고 있는 중국 젊은이들의 애환을 담은 청춘소설인데, 중국고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특유의 해학적 요소를 가미한 줄거리는 국내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신선함을 느꼈다. 책을 읽은 후 저자가 15세에 발표한 소설이란 사실을 알고 다시 한 번 깜짝 놀랐었다. 이번에는 <연꽃도시>를 통해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중국 젊은이들의 현실을 잘 표현했다. 

  <연꽃도시>를 읽으면서 ‘주성치의 영화’가 떠올랐다. 기승전결의 전통적인 형식을 걷어내고 우스개 만담 같은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희한한 것은 싱겁지도 지겹지도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한이 표현한 짧고 엉뚱한 대화는 등장인물의 성격을 표현하기에 걸맞고 가독성을 더해 책에서 시선을 거둘 수 없게 한다.

 두세 줄로 설명되는 근본 없는 태생의 주인공들은 우연한 사건에 휘말려 그것을 피해 낯선 도시로 들어섰다. 이 낯선 땅에서 그들이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돈이 필요할 뿐이다. 주인공들을 보자면 서울에서 지방으로 대학을 간 새내기의 여름방학을 생각나게 한다.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고, 둘 셋만 모이면 여유롭진 않아도 굶진 않는다. 풍족한 것은 오직 시간 뿐이다. 그래도 시간의 흐름은 감지하고 산다.

“내 시간은 젠수의 다리와 손이 회복되는 속도만큼이나 매우 천천히 흘렀다.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이 있다 보니 시간이 흐지부지하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시간은 천천히 와도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는 점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면 어제 일은 이미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이유야 어제 아무 일도 하지 않아서이긴 하지만.” 45쪽 

  소설가는 세상의 풍경과 사람의 말 그리고 행동을 훔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를 절묘하게 엮어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한한 역시 또래의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그들을 지켜보면서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를 기억했을 것이다. 개연성 없는 사건과 에피소드는 이를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주인공들이 이야기가 억지가 없고, 꾸밈이 없다. 삶에 대한 생각이 없어 대화의 깊이가 얇고, 앎과 경험이 부족해 수준이 낮다. 그래서 웃기고 재미있다. 독자로서 한한의 소설이 더욱 재미있는 것은 특별한 감동이 없다는 것이다. 슬프지도 않고 기쁠 것도 없는 날이 태반인 우리의 삶이 그렇듯 그들의 삶은 평범했다.

 이것은 내가 보냈던 젊었던 날의 뜻뜨미지근함을 자연스럽게 생각나게 한다. 그 시절 내 삶은 이끈 것은 친구와 함께 하는 나날이었다. 부족하고 멍청한 사고뭉치 젠수는 내 친구 ‘대구빡’을 닮았고, 있는 집 자식 반항아 왕차오는 선배 ‘조까치’를 빼다 박았다. 행동하기보다 지켜보면서 즐거웠고, 느끼기보다 보여주는 것으로 보람을 느꼈던 그때의 이야기가 가감없이 펼쳐진다. 그리고 사건사고의 끝에 스치는 생각은 고전에서나 만날 수 있는 깊은 성찰들이다. 이것이 중국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어느 날 주인공들은 대형마트를 찾은 중년의 남자를 인터뷰하는 모습을 TV에서 보게 된다. 

 “물건을 사러 여기까지 나온 이유가 뭡니까?”

중년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지난달 우리 회사에서 미국으로 견학을 갔습니다. 그때 가서 보니까 미국인들이 이런 식으로 살더군요. 우리도 이곳에 와서 물건을 사면 바로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이는게 되잖소.”

 “그러면 여기까지 집에서 차로 얼마나 걸리나요?”

 “한 이십 분 정도요. 미국 사람들은 ‘워즈더마’인가, ‘워마더’인가 하여든 가장 가까운 마트에 가는데 차로 한 시간씩 걸린다고 하더군요. 우린 그래도 가까운 편이죠. 겨우 이십 분 밖에 안 걸리니까요. 만약 차가 막히지 않고 시속 백이십 킬로미터로 달리면 십 분이면 도착합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한 말씀 하시죠.”

 “어쨌든 나라가 잘 살아야 됩니다! 미국 가서 보고 느낀 게 아주 많습니다. 알고 보니 미국 사람들은 소매점에서 절대 물건을 사지 않더라고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주말마다 차를 몰고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대형 마트로 쇼핑을 갑니다. 지금 우리는 이십분이면 되니까 어떤 면에서 볼 때 드디어 미국을 앞지른 겁니다.”

(중략)

 우리 셋은 그 방송을 보고 나서 삶의 재미를 만끽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함께 그 마트를 찾아갔다. 209-210 쪽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태어난 청춘은 ‘당연히’ 있는 사상적 기반에 대해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중국은 최근 십여 년 동안 사상적 괴리만큼이나 뒤틀어진 자본주의를 경험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보여지는 화려한 외형을 따르고, 그것이 전부인 양 숭상하면서. 주인공인 나는 여자친구가 들고 있는 자수를 놓은 펜디 핸드백이 오만 칠팔천 위안(우리돈 약 처이백만 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건강이 안 좋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리고 만일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인 뒤, 그 핸드백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보여주며 가방 값을 알려드린다면 아마 그 분들은 피를 토하고 숨이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저자인 한한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가 보는 중국이라는 정신없는 세상은 오늘날 중국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일치하기에 그의 표현력에 중국의 젊은이들이 그토록 그에게 열광하는지 모른다. 그는 세상을 비판하고 비웃을망정 그 속에 살고 있다고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피하지도 않는다. 눈도 쫓아갈 수 없을 만큼 빠른 변화를 제 깜량만큼 소화하며 허허실실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세상을 편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이것은 중국소설이 갖는 매력이다. 관념적인 우리 소설과 허무주의로 도배된 일본 소설과 또 다른 느낌이다. 오쿠다 히데오와는 또 다른 해학을 던져줄 새로운 작가, 한한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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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CEO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 경영의 역사를 다시 쓴 위대한 리더들의 마지막 강의
토드 부크홀츠 지음, 최지아 옮김 / 김영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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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계 대학 경영학도들의 경영입문서로 부족함이 없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꾸준히 한 가지 일만 하면 마침내 큰일을 이뤄낸다는 뜻의 고사성어인 이 말은 <열자列子> 탕문편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기주 남쪽과 하양 북쪽에 둘레가 700리나 되는 거대한 두 산이 있었다. 나이 아흔에 이른 우공이란 노인이 산에 가로막혀 멀리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덜고자 자식들과 의논해 산을 옮기기로 했다. 한 삽 한 삽 퍼낸 흙을 발해만까지 한 번 운반하는 데 일 년이 걸리는 무모한 짓(?)에 친구들이 비웃으며 만류했다. 그러자 우공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도 있고 손자도 있다. 그 손자는 또 자식을 낳아 자자손손 한없이 대를 잇겠지만 산은 더 불어나는 일이 없으니, 언젠가는 평평하게 될 날이 오지 않겠는가?”

 

자신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의 불편함을 덜고자 자자손손 운운하며 산을 옮기고자 하는 우공의 깊은 뜻을 전해들은 옥황상제는 감복하여 힘이 센 신하들을 시켜 산을 번쩍 들어 옮기게 했다고 한다.

 

  작금의 비즈니스현장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세상이다. 오늘날의 비즈니스 현장은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임시방편의 잔꾀나 권모술수로 이른 성공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성공의 잣대도 상상할 수 없는 큰 성공이어야 하고, 그것도 최단기에 이룩한 성공이어야 성공이라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폐단은 좀 더 빨리, 좀 더 많은 배당금을 지급하는 기업과 CEO를 유능하다고 인정하는 투자자들의 조급함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지만, 투자한 이후 한 번도 배당금을 받지 않고, 다시 재투자하고 있는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자들을 본다면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원칙에 기초한 경영전략과 한 발 한 발 계단을 오르듯 성실하게 비즈니스를 펼치는 비즈니스맨을 ‘시대에 뒤떨어진 경영자’로 매도하는 비즈니스 풍조가 만연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미 이 세상에는 없는 전설적인 열 명의 CEO들을 한데 모은 책 <죽은 CEO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읽고 살피면서 비즈니스에 있어서 다시 한 번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위대함을 실감했다. 이 책은 전 세계 주요대학의 경제학도에게 필독서가 된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썼던 토드 부크홀츠가 쓴 책이다. 원제목은 New Ideas from Dead CEOs: Lasting Lessons from the Corner Office 이다.

 

 



 

 

  이 책은 위대한 CEO들의 작은 평전이다. 은행업의 대중화를 이끈 아마데오 피터 지아니니, IBM을 만들어낸 토버스 왓슨 부자父子, 화장품의 대중화의 주역 메리 케이 애시, 화장품의 품위를 높인 에스티 로더, 대중매체를 만들어낸 데이비드 사노프, 맥도널드의 전설 레이 크록, 소니의 아버지 아키오 모리타, 어린이의 우상 월트 디즈니, 할인점의 대표주자 월 마트의 샘 월튼 등 토드 부크홀츠는 한 시대를 풍미하고 지금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위대한 CEO들을 찾아내어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게 한 ‘힘’을 찾아내었다.

 

  토드 부크홀츠이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여느 책의 저자와 달랐다. 오늘날의 영광보다는 글로벌 기업이 탄생하게 된 여정과 순간에 주목했다. 긴 역사를 두고 봤을 때 승승장구했던 시티은행이 한 해 만에 뉴욕발 금융위기로 사실상 ‘국영화’되는 것처럼 ‘오늘의 영화로움’은 한낱 ‘순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했음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죽은 CEO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에 등장하는 기업들을 통해 21세기의 트렌드를 생각하기 보다는 20세기를 풍미했던 세계적인 기업의 CEO(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창업자)들을 통해 ‘기업을 세움’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그리고 평생을 바쳐 기업(회계학상으로는 법적인 인격을 갖춘 법인法人)을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가를 알려주고자 했다. 책 속에 있는 글로벌 기업들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창업자는 죽고 없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지 않은가? 이것만 봐도 죽은 CEO의 영향력이 ‘죽은 관우’ 못지 않음을 알 수 있다.(참고로 오늘날 기업의 평균 수명은 10 년이 채 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도 100 년을 이어온 기업은 열 손가락 안쪽에 든다)

 

  창업 분야기 각기 달랐던 이들 10 명의 비즈니스 리더들의 공통점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기업에 대한 열정이다. 이들 모두 CEO로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실패를 거듭했다. 이들은 비슷한 업종에서 최초의 기업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경쟁자들의 훼방과 조롱 섞인 비웃음도 숱하게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파산과 빚더미 상황의 위기에서도 굴복하지 않았고, 작은 성공에서도 안심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뜻하고자 한 바를 이룩하려는 열정과 자신의 에너지를 믿는 ‘자존감’에 있었다.

 

  죽은 10인의 CEO의 두 번째 공통점은 재능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찾아내고, 그 재능을 십분 발휘했다. 처음 배우가 꿈이었던 ‘월트 디즈니‘가 그 만의 캐릭터였던 토끼 캐릭터 ’오스왈드‘를 그리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미키 마우스로 거듭 창조하지 않았더라면 디즈니 랜드와 디즈니 월드는 없었을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에도 밥을 굶지 않을 정도로 부유하게 자란 아키오 모리타가 대대로 내려온 가업인 ’사케(일본의 술) 제조업‘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소리를 전파하는 기계‘에 재능이 있음을 알고 노력한 때문이었다. 또한 자신의 재능을 죽는 날까지 썩히지 않았다. 그들은 풍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죽는 날까지 일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이룩하기 위해‘ 일을 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공통점은 행운이었다. 그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행운’을 만나게 된 것은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자신이 하고 있던 일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신문사를 입사하려던 데이비드 사노프는 ‘엉뚱한 사무실’의 문을 두드려 무선전신을 발명한 굴리엘모 마르코니를 만나 미국을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선두주자로 만들었고, 레이 크록이 캘리포니아 주 사막을 니난 샌버나디노에 있는 괴상한 팔각형 모양의 햄버거 가게을 알게 되어 맥도널드 형제로부터 프랜차이즈 사업권을 52 세에 따게 된 것도 거의 평생을 프랜차이즈를 할만한 아이덴티티(identity 유일무이한 고유성)을 찾아 헤맨 덕분이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편으로는 무식하고, 한편으로는 순진한 구석을 발견하게 된다. 결코 경제학적으로 효율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자신이 꿈꿔온 일을 할 수만 있다면 <파우스트>의 멤피스트에게 영혼이라도 팔려 했던 이들의 노력과 열정을 보면 오늘날 CEO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독자로서 이를 짐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풍부한 지식과 통찰력을 지닌 저자가 죽은 CEO들의 사례를 소개할 때마다 오늘날의 기업과 CEO들의 사례를 비교하고 문제점과 해결책을 즉답형식으로 제시하고 있어 읽어나가면서 답을 얻게 된다. 저자만의 관심에서 대답한 것이기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거나 ‘이 사람아, 그건 당신 생각이 틀렸지!’하며 반박하고 싶은 케이스들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 부분을 독자가 새로 재인식하게 하는 공간으로 배려해 두었다고 억측한다면 너무 우호적인 시선이 될까?

 

  오늘날 인구에 회자되지 않는 CEO들의 평전이어서 자칫 지루해지거나, ‘So What?' 즉, ’그래서 이들이 한 일이 오늘날과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법한 이야기들을 토드 부크홀츠만의 독특한 구성과 필력으로 재미있고 쉬이 읽히게 했다. 그의 전작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세계 대학 경제학도의 입문서‘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이 책은 ’세계 대학 경영학도의 입문서‘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겠다.

 

  이 책에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죽은 CEO의 살았있는 아이디어>의 경영인들은 온전히 ‘기술자’ 집단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은 평범한 무지렁뱅이라는 것이다(나중에 기업의 활성화를 위해 따로 공부를 한 CEO가 있긴 하다). 하지만 100 년 남짓한 ‘경영학’의 근본이 이들이 만들어낸 기업의 역사 속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CEO의 근본은 ‘경제 경영학’ 학위를 얻거나, MBA를 취득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몸소 뛰면서 얻어내는 ‘일체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특히 경영학에 있어 진정한 CEO 학습은 책상물림 이론가들의 ‘경영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땀과 노력을 통해 현장’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광우병과 미국을 주축으로한 글로벌리즘의 상징이 되어 최근 10여 년 동안 냉대받았던 맥도널드의 창업자인 레이 크록을 거론한 점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그야말로 오늘날의 프랜차이즈를 있게 한 ‘장본인’이자, 요식업의 표준을 이끌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이 크록’을 읽으면 점포수가 가장 많으면서도 가장 천대받는 국내의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나아갈 바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레이 크록에 집중한다고 해도 리뷰를 쓸 만큼 유익했다). 특히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세워 은행의 대중화를 이끈 아마데오 피터 지아니니를 알게 된 점이 인상적이었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일반에게 배포한 데이비드 사노프를 만난 점도 유익했다.

 

  한편 소니의 이키오 모리타에 대한 토드 부크홀츠의 평가는 공감하기 힘들었다. 그가 10 명의 CEO 중에서 유일하게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그러면 그렇지’라고 인정할 법도 하지만 일본을 전혀 가지 않고 일본에 대해 글을 썼음에도 지금까지 가장 일본에 대해 잘 이야기 한 책으로 손꼽히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있다는 점에서 저자가 그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갈 길을 잃은 소니Sony 호에 대한 저자의 우려에는 같은 공감을 한다. 소니의 오늘같은 부유浮游는 창업자가 가졌던 ‘기술자적 마인드’가 결여된 까닭은 아닐까? 그 마인드를 스티브 잡스에게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조언해주고 싶다.

 

  이 책은 위대한 경영자들의 작은 평전이자, 살아있는 경영학의 역사서다. 재미있고 쉬이 읽히는 면에서는 최고로 꼽고 싶다. 게다가 경영적 교훈과 가르침을 전하는 친절함에도 여느 경제경영서에 비해 단연 손꼽힌다이 책으로부터 얼마나 깊이 배우는가 하는 점은 이제 독자의 몫이자 역량이다. 토드 부크홀츠가 엮어내는 ‘21세기 살아있는 CEO'의 이야기도 기대하게 한다. 대한민국의 죽은 CEO들의 이야기도 이처럼 엮여진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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