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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 ㅣ 인터뷰 특강 시리즈 4
진중권.정재승.정태인.하종강.아노아르 후세인.정희진.박노자.고미숙.서해성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11월
평점 :
누군가 온다 리쿠의 <도서실의 바다> 리뷰에 '종합선물세트'라고 표현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덥썩 나도 선물세트를 사보고는 좀 실망했었다.
종합선물세트에 환호하기에 나는 너무 나이가 들었고, 나만의 취향이 생겨버렸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근데 내가 그 표현을 쓰게 될 줄이야..
이 책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이 " 이 책이야말로 진정한 종합선물세트다." ^^
요즘은 유기농,친환경이라는 소비패턴도 있으니 좀 더 말하자면,
생활은 친환경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돈으로 유기농을 사대는 부류가 아니라,
농민과 땅과 소비자가 서로를 살리고 함께 살아가는 대안의 삶을 찾아가는, 그런 이들이
만든 유기농(이런 식상한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짧음이란--;) 종합선물세트 말이다.
2007년도에는 소설책을 참 많이 읽었다.
너무 소설책만 읽다보면 다른 영역의 책들을 읽는 것이 좀 힘이 들기도 하다.
얼마 전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을 읽고 안주하는 책 읽기에 대해 여러모로 반성했었다.
그리고 맘속으로 사회과학,인문과학책 5권을 읽고 나서 미미여사님의 신작을 읽자고
스스로 다짐했었다.^^
(갠 적으로 올 하반기는 미미여사님의 승리^^)
그리고 첫번째 선택한 책이 <자존심>이다.
이미 한겨레 특강 교양,상상력,거짓말을 읽어 봤던지라 자존심은 나오자마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구입하게 되었다.
음......이 책은 나의 무식함을 적나라하게 깨닫게 해 준 잔인한 책이다.
세상에 대한 무지함, 나의 세계속에서 안주해버린 부끄러움, 다른 이들의 고통과 절망에 대한
무관심, 스스로는 쬐금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었음을 알게 해 준 책.
특히 정태인 선생님의 "한미 FTA와 마지막 자존심"을 읽고 나서 그냥 막연하게 우리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수준정도의 인식이 얼마나 내 앎의 짧음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그냥 흘려듣고 별 관심없이(부끄러운 일이지만) 지나쳐버린 한미FTA에 반대...
이 강좌를 읽고 깨친 것 만으로도 '책값(?)'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자가 '불패의 언어전사'라고 소개하는 진중권 선생님의 "자존심의 존재미학"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훌륭한 강의였고,(난 진중권 선생님의 팬이다.^^)
정재승 선생님의 자존심 역시 한때 엄청난 바람이었던 "황우석"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과학자로서의 이성적인 진정한 자존심의 의미를 알게 해준 강의였다.
하종강 선생님의 "이주노동자와 노동의 자존심"은 점점 '그들만의 파업'으로 점점
노동조건개선이나 노사분규에 대해 아리송하게 만드는 '그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들을 정리할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직접 쓰신 책을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정희진 선생님의 강의
"누구의 자존심?자존심의 경합"은 여성문제 관한 애기가 아니라 세상의 참으로 다양한
편협한 시각에 대한 뒤집기 한판이었다는 생각이다.
여성문제를 여성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노동문제,환경문제는 노동에 문제가 있고,
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라는 반문...
여성과 남성의 평등이 무조건적인 똑같이라고 이해하는 어리석음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평등과 비유해서 이야기 하는 부분..장애인이 비 장애인과의 평등을 위해 장애를 넘어서고
극복하는 초인이 되어야 하는지..결국 평등이란 기회의 평등,환경의 평등,정의에 관한 문제
임을 명확하게 짚어주시는 단호함...
머리는 평등주의자,페미니스트인데 몸은 봉건적이라는 일부 진보(?)적인 지식인들에 대한
확실하지만 잔인한 답변....
다음 읽을 책의 주자는 정희진 선생님의 "페미니즘의 도전"으로 결정...
책을 읽는다는 건 새로운 것들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세상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삶에 대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알아야지 자그마한 행동이지만 할 수 있는 것이고, 나의 정체성도 자존심도 진화해 갈수
있는 것이다.
고병권 선생님이 매긴 책의 네 등급..
가장 좋은 책은 세계를 변혁하는 책, 마르크스 묘비에 쓰인 말 "철학자들은 그동안 세계를
해석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두번째 좋은 책은 세계를 해석하는 책.
세번째 좋은 책은 세계를 반영하는 책, 그 자체로 세계의 거울이자 증상인 책
마지막으로 가장 나쁜 책은 세계를 낭비하는 책. 세계에 산소를 공급하는 나무를 죽이고,
그 나무로 만든 종이에 독을 담아 유포하는 책.
이 네 등급의 책은 읽는 독자에 의해 그 등급은 모호해지기도 한다.
그 이유는 내가 이 책에서 정태인 선생님의 글을 읽고 한미FTA에 대해 좀더 행동으로
대응한다면 이 <자존심>은 세계를 변혁하는 책이 되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혹은 <자존심>을 읽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라면 이 책은 두번째와 세번째의 어딘가에
있는 책이 될테니까 말이다.
책을 읽는 재미를 느낀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책을 펴기전의 나와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내가 분명히 다름을 느낄때 말이다.
그건 어떤 일로도 느끼지 못하는 쾌감이다.
어쩌면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에 쳐지지 않도록 당겨주는 내 삶의 조율사이기도 한다.
세상에 이런 책들이 많은 것이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