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나의 빨간 외투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75
애니타 로벨 그림, 해리엣 지퍼트 지음,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2002년 2월
평점 :
아이책을 읽어주다 보면 아이보다는 내가 더 많은 감동을 받는 책이 있다.
이 책도 딸아이는 줄거리에 대해서는 별로 말이 없고 오직 그림이 예쁘다며 좋아했다.
예쁜 그림때문에 학교에 동화책 한권 가져가서 소개하는 수업시간에도 이 책을 가지고 갔다.
(나는 이 책이 다른 동화책을 제치고 가져갈만큼 그림이 예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취향의 차이겠지만 난 '까치와 소담이의 수수께끼 놀이'같은 그림을 좋아한다..^^)
보통 그림책 리뷰에는 줄거리를 상세히 올려놓는데, 이 책은 <책소개>에 줄거리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줄거리는 생략...
안나의 외투는 거의 일년이 걸쳐서 만들어진다.
겨울동안 양의 털이 자라길 기다려 봄이 되서 양털을 깍고,여름까지 기다려 실을 잣고,
옷감을 짜고,외투를 만들기 까지 말이다...
중요한 건 안나와 엄마가 함께 하는 외투만드는 과정이다.
양털이 자라는 겨울동안 안나는 일요일마다 엄마와 함께 양들을 보러 간다.
가서 깨끗하고 마른 풀을 먹이고 꼭 껴안아주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때는 양들에게 종이목걸이와 사과를 선물로 주고 캐럴을 불러준다.
빨간색 외투를 입고 싶은 안나는 엄마와 함께 산딸기를 따서,
큰통에 따온 산딸기를 끓여 실을 빨간 색으로 물들이고,
부엌에 쳐 놓은 빨랫줄에 실을 말리고,
엄마와 함께 동그랗게 감아 실꾸러미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외투가 완성되고 나서는 외투가 만들어지기까지 도와주신 모든 분들-양치기 아저씨,
실 잣는 할머니,옷감짜는 아주머니,재봉사아저씨- 을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양들에게 찾아가 자신의 빨간 외투를 보여주고 고맙다고 한다.
이 책을 딸아이에게 읽어주고 나서 나는 할말이 없어졌다.
아이와 함께 하는 과정들에서 가지는 소중한 추억이 요즘 많이 없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딸아이들이 이제 '놀아주지'않아도 스스로 노는 시간이 많아져서인지
(음...핑계일것이다...아이들은 이제 엄마가 놀아주지 않음을 알고 포기해버렸는지도..--)
함께 준비하고 만들고 하던 과정들보다는 이제는 간단하게 해결해버리는 생활이 익숙해져
버렸다.
안나와 엄마가 함께 하는 과정들에서 만들어지는 소중함들을 나도 내 아이와 함께 만들어야겠다.
요즘 슬그머니 놔 버리려는 딸아이들의 "엄마"로서의 나를 반성하게 한 책이었다.
이 책의 첫 장을 펼치면 작가의 헌정문구가 세개 있다.
*이 책은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이 이야기를 있게 한 분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새 외투를 몇 달동안이나 끈기있게 기다렸고, 25년이나 흐른 뒤에 나에게 그 외투를 보여준
잉게보르크 슈라프트 호프만에게.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인내심과 결단력으로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마련하여 딸에게 준 어머니 한나 슈라프트를 그리며.
요즘은 마트에 가면 몇초만에 내가 원하는 것들을 척척 카트안에 담을 수 있다.
시장을 자주가던 우리 모녀들도 요즘은 한달에 한두번 마트에 간다.
그리고 나서 생긴 여러가지 현상들이 있는 것 같다.
학교앞 문구점에서 딸아이가 직접 사온 딱풀 하나보다 마트에서 산 3개들이 딱풀이 더 빨리
없어지게 되었다.
딸아이 둘이 우산쓰고 손잡고 가서 사온 스케치북 한권보다 마트에서 산 5개들이 스케치북이
더 빨리 없어져 버리게 되었다.
이렇게 된 물건들은 참 많다..문구류..먹거리...옷가지들...
마트에 가서 슥 보고 척척 담아내는 엄마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물건의 소중함이나
물건들을 살때의 신중함을 잊어버린듯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에 서점에 가서 몇시간 동안 둘러본뒤 한두권 사온 책을 보는데 투자되었던 시간들이
지금 한달에 두세번 알라딘에서 배달되는 책들을 읽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렸었던 것같다.
많고 풍족한 요즘이 예전의 적지만 하나하나 소중하게 보듬었던 습관들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참 많이 돌아보게 된다.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어른들은 "애를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고 하셨나보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느끼지 못하던 종류의 부끄러움과 반성들을 아이를 키우면서,
커가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느낄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건 "총체적인(?) 어려움"인가보다.
그래도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게 하게 불편하게 만드는 아이들이 고맙다.
안나와 엄마가 함께 만든 외투같은 소중한 무엇을 나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만들도록
노력해봐야 봐야겠다. 아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