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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밤 ㅣ 고래뱃속 창작그림책
퍼트리샤 토마 지음, 백지원 옮김 / 고래뱃속 / 2022년 4월
평점 :

밤의 비밀에 덮인 숲 속에 노란 반딧불이 별처럼 빛나고 있고 한 가운데에 오늘의 주인공처럼 서 있는 사슴 한 마리.
숲은 어둠과 빛이 공존하고, 홀로 서 있는 사슴은 어딘지 위태로워 보이면서 당당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림책 <두 개의 밤>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서 누구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 걸까요?

밤이 찾아온 숲은 고요합니다.
꽃도 풀도 나무도 그리고 동물들도 모두 잠이 들어 평온하기만 한 것 같은 숲의 밤이네요.
그런데 이 평온한 고요는 먹잇감을 찾는 배고픈 늑대의 등장으로 깨져 버리지요.

평화롭게 일정한 간격으로 오르내리던 아기사슴의 숨소리가 이젠 급박한 추격전으로 인해 불안정하고 불규칙하게 들리는 것만 같은데요.
아마 이 추격전을 보는 모두가 아기사슴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급하게 다음 장으로 넘기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쫓고 쫓기는 난리통에 아기사슴은 어미와 헤어지게 되고 지금까지 평화롭고 안전하기만 했던 숲은 아기사슴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장소가 되었겠지요.
사실 숲에는 늑대만이 아기사슴을 노리고 있지는 않을 거예요.
숲이라는 자연 속에는 다양한 생명이 살고 있으니까요.
그 사실을 상기시켜주듯이 드러난 나무 뿌리와 식충 식물인 파리지옥 그리고 반딧불이의 존재감이 크게 다가오는 장면이기도 하더군요.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누군가를 먹고,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먹히는 생명의 고리가 서로 얽히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삶과 죽음은 늘 우리 곁에 다른 듯 닮은 모습으로 무심하게 자리하고 있구나 싶네요.

굶주린 늑대는 끈질기게 아기 사슴을 쫓는데요.
쫓는 자도 쫓기는 자도 모두 같은 이유로 절박하게 뛰고 있습니다.
바로 '살기 위해서'라는 단 하나의 이유.
살아서 나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무사히 돌아가고 싶다는 그 간절한 마음 때문이지요.
밤의 시간이 겹겹이 쌓이고 각자의 사연이 덧대어지면서 처음에 한 쪽으로 기울었던 마음이 희미한 새벽빛을 향합니다.
온갖 생명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또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음을 밝아오는 아침에 비로소 맞이하게 되네요.

서로 꼬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걸어가는 늑대 부부의 모습이 그려진 뒷표지.
<두 개의 밤>이라는 제목과 함께 서있던 아기 사슴이 그려진 앞표지와 겹쳐집니다.
포식자와 피식자라는 이분법으로 더이상 이 존재들을 볼 수 없겠더군요.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각자의 생이, 각자의 밤이 겹치고 겹쳐서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게 됐으니까요.
그것은 작가님의 표현 방식 덕분에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는데요.
밑바탕 작업 위에 또 다른 작업물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그림은 깊이감이 생기고 그 그림을 마주한 우리들이 그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표면적인 현상만을 보고 쉽게 판단했던 세상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고, 밤은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수만큼 존재하네요.
이제 나의 밤과 너의 밤이 겹치고, 쌓이고 깊어져가는 시간이 우리 앞에 도착했어요.
이 두 개의 밤 위에 당신의 밤을 덧대어 보는 건 어떨까요?
더 깊숙하고 묵직하게 우리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삶의 비밀과 의미를 만나게 될 거랍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