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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동생이었을 때 ㅣ 어린이문학방 13
사노 요코 지음, 황진희 옮김 / 여유당 / 2022년 5월
평점 :

맏이로 태어난 저는 동생들이 무척 부러울 때가 있었는데요.
그래서인지 동생들의 입장에서 쓰여진 이야기들을 보는 게 무척 흥미로운 일이랍니다.
여기 열한 살 오빠를 영원히 마음 속에 담고 살아가는 여동생의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또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죠.
게다가 작가 사노 요코가 바로 그 여동생이라니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책이네요.
남매가 함께 그 소중한 날들의 기록이 별처럼 반짝거리는 책, <내가 여동생이었을 때>

'영원히 열한 살인 오빠를 위해'
할머니가 된 여동생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오빠는 여전히 해맑게 웃는 열한 살 얼굴 그대로입니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늘 여동생의 마음 속에 함께 살고 있는 어린 오빠.
생이 온통 반짝이는 호기심과 상상으로 충만하던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시간은 짧을지언정 그 밀도만큼은 어마어마했겠지요.

그 빛나는 어린시절의 두 아이가 쌓아올린 상상의 세계를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답니다.
둘 중 홍역에 걸린 쪽이 어느 쪽인지 모를 정도로 서로 한 몸 같았던 병원에서의 일을 기록한 '홍역', 어른들의 세계를 엿보다가 자신들의 상상으로 끌어와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한 편의 멋진 연극을 본 듯한 '여우', 자신만의 상상친구가 있는 오빠의 상상을 질투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다 결국 인정해주는 '관람차', 그만 꼴깍 삼켜버린 감씨가 몸 속에서 자라 뿔을 갖게 된 두 아이의 환상적인 꿈 이야기 '사슴', 오빠랑 둘이 목욕할 때마다 함께 하는 기차놀이를 오빠가 떠난 후 혼자 하는 쓸쓸하면서도 그렇게 단단한 하나가 되어가는 여동생의 마음이 코 끝을 찡하게 하는 '기차'까지 모두 다섯 개의 이야기를 여동생인 사노 요코 작가의 입장에서 서술해 놓았는데요.
이야기 하나 하나에서 펼쳐 보여주는 아이들의 상상도 놀랍지만 마치 서로 한 몸인 것처럼 마음이 통하는 사이라는 것을 확인할 때 더 놀라웠어요.

저는 오빠가 없지만 오빠 껌딱지라는 말이 정말 딱 그대로인 저희 집 둘째를 보면 이야깃속 남매가 어떠했을지 눈 앞에 보이는 것 같네요.
오빠를 따라다니며 좋아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흉내내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놀리기도 하고, 다가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는 그 특별하고 소중한 이 시간들을 이제는 어른이 된 여동생이 추억해 가는 <내가 여동생이었을 때>
들을 수만 있다면 나중에 제 아이들이 기억하는 둘만의 놀이와 상상의 시간들을 꼭 듣고 싶습니다.
책 속의 두 남매처럼 이렇게 기발하고 사랑스럽겠지요. ^^

이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제 어린시절을 떠올려 보게도 되는데요.
동생들과 했던 놀이 그리고 나눴던 상상의 이야기들이 어렴풋이 떠오르며 내게도 우리만의 이야기가 있음에 흥분이 되기도 하고,설레기도 하네요.
동생들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이 책을 보고나서 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는데요.
우리가 서로의 어린시절에 존재했음을, 그 일부를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고 고맙다고요.
제 품 안의 오빠인 1호와 여동생인 2호도 서로에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가 오기를 바라봅니다.
네가 있어서 즐거웠다고, 외롭지 않았다고 말이에요.
언젠가 훗날 서로가 기억하는 어린시절의 서로를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될 거라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는 두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는 게 그저 신기하게 느껴지네요.
엄마도 모르는 둘만의 서로가 있다는 게 부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데요.
이 책의 남매를 보며 혼자만의 상상도 즐겁지만 둘의 상상이 더해진 세계는 더 크고 단단한 힘을 가진 게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그런 둘만의 상상을 만들어가는 즐거움과 그때를 추억하는 애틋한 그리움이 이야기가 되어 가득 밀려옵니다.
그 이야기의 물결에 마음을 살짝 담가 보세요.
마음을 간지럽히는 상상의 출렁임에 미소짓게 되실 거예요. ^^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