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사자의 꿈 - 멀리 더 멀리까지

민들레사자의 꿈
요코 다나카 지음 / 진선아이 / 2022년 2월

아주 적은 양의 흙만 있어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민들레.

그 노랗고 말간 얼굴을 만날 때마다 기특하고 고마운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민들레를 그저 노란 꽃으로만 본 저와는 달리 그 민들레에게서 사자의 모습을 찾아낸 작가님의 상상력이 빛나는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그림책 <민들레사자의 꿈>

표지의 민들레사자가 활짝 핀 환한 웃음으로 두 팔 벌려 우리를 환영하고 있네요.

여기 민들레 한 송이가 피었습니다.

이내 민들레는 한 마리의 작고 귀여운 사자민들레가 되는데요.

이것은 이곳에 뿌리를 내린 민들레가 꾸는 꿈일까요?

변신한 민들레사자는 저 멀리 기차를 발견하고는 이끌리듯 향합니다.

신나게 기차를 타고 가며 구경을 하던 민들레사자는 기차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떨어집니다.

다행히 푹신푹신 양 위로 떨어지고 등에 업힌 채 바다로 가 배까지 타게 되지요.

바닷바람을 즐기는 것도 잠시 내리는 비에 울적한 기분이 드는 것 같네요.

무심한 듯 갈매기가 날개 우산을 씌워주고 민들레사자는 기운을 차립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너무나도 낯선 도시.

그저 모든 것이 거대하고, 빠르고, 바빠 보입니다.

작디 작은 민들레사자를 알아채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네요.

그 누구 하나 관심 가져주지 않지만 민들레사자는 이 여행을 포기하지 않지요.

민들레사자는 이 여행의 끝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까요?

제게는 민들레사자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불빛 하나하나의 반짝임이 꿈처럼 보였어요.

날아가기 위해 그 자리에서 꿈꾸는 불빛들.

붙박이처럼 한 자리에 뿌리 내리는 일이 꿈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민들레사자를 따라 가다 보니 내게도 경계를 넘어가는 일이 꿈이던 때가 있었다는 걸 떠올릴 수 있었지요.

갈 수 없는 곳,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스스로 선을 그어놓고 가면 안 된다고 믿었던 곳들을 향해 가는 일.

그런 꿈을 품고 지금 있는 곳에서 꽃을 피우는 민들레.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낮고 척박한 곳에서도 노란 꿈을 피워냅니다.

민들레사자가 누구보다 보얗고 가벼운 하얀 깃털의 얼굴을 한 홀씨로 변신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는데요.

민들레의 꿈이 현실이 되는 마지막 장면이 그래서 더 환하게 펼쳐지는 기쁨과 감동으로 다가오더군요.

꿈과 환상의 세계와 현실이 넘나드는 계속되는 움직임이 우리를 끊임없이 이끌어 주고 있어 글 없는 그림책이란 사실을 잊게 만들고, 검은색과 하얀색 그리고 노란색만으로도 충분히 몽환적인 분위기를 살려내는 작가님의 그림은 꿈처럼 보는 사람의 마음에 스며듭니다.

이제 길가에 핀 민들레를 볼 때마다 민들레사자를 떠올릴 것 같네요.

노란 갈기를 한껏 세우고 꿈꾸는 민들레사자를, 바람을 타고 세상 이곳저곳으로 흩어지는 공기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하얀 깃털의 민들레사자를 말이지요.

이동과 모임이 자유롭지 않은 요즘이라 그런지 꿈꾸는 자유로운 민들레사자가 더 부럽기도 한데요.

더 멀리, 더 높이 날아가라고 응원의 입바람을 후~하고 불어주고 싶네요.

우리의 꿈이, 우리의 상황이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아서요.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시를 읽는다 -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시를 읽는다 ㅣ 작가정신 시그림책
박완서 지음, 이성표 그림 / 작가정신 / 2022년 1월

시 좋아하세요?

다짜고짜 질문부터 해봅니다.

아니, 질문이 잘못 됐네요. 당신은 시를 읽나요?

여기 시를 읽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어요. 바로 박완서 작가님입니다.

박완서 작가님이 시를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궁금하시죠.

그렇다면 그림책 <시를 읽는다>를 함께 펼쳐 보기로 해요. ^^

당신도 살면서 그런 적이 있었나요?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쓸쓸하고 무서울 때, 죽는 게 여한이 없음에도 다음을 생각하는 내가 측은할 때 말이에요.

그럴 때마다 시를 읽는다는 박완서 작가님의 말씀.

시가 위로를 건네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고, 든든하고 단단하게 손을 잡아주고 보듬어 준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순간들을 느껴보고 싶어지네요.

사실 함축적이면서 모호한 시어들이 손에 잡히지 않아 어렵지만, 그럼에도 분명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무미건조하고 심심한 일상을 살아가는 누군가가 이런 시를 만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도대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이게 뭐지 싶은 시를 보며 물음표를 마구 떠올려보는 시간.

시를 붙잡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묻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나만의 시로 만들어가는 시간.

시란 바로 그 시간을 인생이라는 책 사이에 끼워넣어주는 책갈피 같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박완서 작가님과 같은 통찰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시를 만나는 시간은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무엇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시가 아니라 시그림책이지요.

박완서 작가님의 글로 표현된 시와 이성표 작가님의 그림으로 표현된 시, 이렇게 글과 그림이라는 매체로 어우러져 시그림책이 되었는데요.

글로 표현된 시를 가감없이 온전히 그림이라는 시로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주가 되는 청색과 녹색이 제 눈을 사로잡네요.

작가님 그림에서 자주 보이는 색이라 그런지 이성표 작가님의 색처럼 보여집니다.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는 색, 생명력이 담긴 색이 부드럽고 자유로운 선으로 또렷해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음도 맑게 개는 것 같아요.

시를 위한 시, 시적인 순간들을 건져올리는 삶을 위한 시와 그림이라는 시가 공존하는 시그림책 <시를 읽는다>

불확실한 세상에 혼자인 것만 같은 나를 안아 일으켜주는 것 같네요. 시는 그런 힘이 있나 봅니다.

당신에게 시는 어떤 의미인가요?

어쩌면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은 아닌지요.

인물이 주가 되어 서사를 이끌어가는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는 일이 아무래도 함축적인 시어들 사이에서 낯선 당황을 경험하게 하는 시를 마주하는 일보다는 수월할 테니까요.

사실 바로 그 지점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뜻밖의 발견.

삶에서 이런 발견을 하는 순간이 시적인 순간이라 생각해요.

시는 그런 뜻밖의 발견을 하는 가능성을 경험하게 해주는 기회인 것 같아요.

반복되는 고된 삶의 피로에 무뎌지고 닳아버린 감정의 감각들을 다시 깨워주는 그런 시적인 순간을 자주 그리고 자꾸 경험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가 필요한 우리들에게 두 분의 작가님이 함께 손잡고 건네주는 이 선물 같은 그림책이 그 시작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엄마는 변신 중 - 엄마의 변신을 응원합니다!

엄마는 변신중
박아림 지음 / 월천상회 / 2021년 12월

노오란 색감의 표지가 눈길을 끌고, 포도모양 바탕 위에서 땅콩으로 추정되는 작은 캐릭터들이 활력 넘치는 다채로운 동작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슬그머니 나고 호기심에 시동을 걸어주는 표지네요.

제목을 보니 <엄마는 변신 중>이라는데, 이 발랄 깜찍한 땅콩이 엄마일까요?

엄마가 슈퍼 영웅이나 마법 소녀들처럼 변신하는 이야기인가 물음표가 막 뜨네요.

저도 엄마지만 이 엄마 땅콩이 어떻게 무엇으로 변신할지 궁금해지는군요.

땅콩이 등장할 줄 알았는데 어랍쇼? 바나나 등판!

겉은 늘씬 길쭉 속은 말랑 촉촉한 이 바나나가 엄마라는군요.

이 매력 넘치는 바나나에게 반하나 안 반하나?

그렇습니다.

엄마 바나나의 매력에 퐁당 빠져버린 아빠 오이 씨.

둘은 결혼을 하게 되지요.

아니, 엄마 바나나가 올록볼록 매끈매끈 가지로 변신!

바나나가 가지로 변신하다니 정말 놀랍지 않나요?

엄마가 무슨 변신을 하나 싶어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해냈습니다. 변신을요!

작가님이 펼쳐 보이는 상상의 연결고리가 이렇게 꼬리를 물고 가네요. ^^

그런데 엄마의 변신, 그 시작에는 다름 아닌 아이라는 새 생명이 있었습니다.

변신의 마법 열쇠는 바로 아이라는 생명.

생명은 이렇게 변신을 통해 태어나는군요.

엄마 가지는 계속해서 변신을 멈추지 않아요

어느새 단단하고 거친 껍질을 가진 땅콩으로 변신하는데요.

저도 제 인생을 통틀어 체형의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 것은 임신했을 때였지요.

몸에서 가장 가는 부분은 목이었고 정말 위아래로 둥글둥글 딱 땅콩이었네요.

불어나는 배와 덩치를 감당 못하고 피부 여기저기에 튼살이 생겼는데 그게 또 거칠고 단단한 땅콩 껍질 무늬와 정말 많이 닮았다 싶어 작가님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엄마 뱃속에 작디작은 콩알 같던 아기들이 알찬 노랑노랑 옥수수로 파팟 태어났네요.

땅콩이 아니라 옥수수를 낳다니 저는 또 놀라고 맙니다. ^^

자, 아기도 낳았고 엄마의 변신이 여기서 멈추냐고요?

그럴리가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이들은 가족이 되어 함께 변신놀이를 즐겨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변신을 가족은 할 수가 있더군요.

어쩌면 변신하는 엄마를 통해 아빠도 아이들도 함께 되어볼 수 있는 존재를 경험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면 볼수록 엄마의 변화하는 모습을 다양한 식물에서 발견한 작가님의 센스에 감탄하게 되는네요.

외형적인 모습도 그렇지만 생명이 있고, 생명을 품고, 생명을 살리는 식물은 어느모로 보나 엄마를 닮았습니다.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자라듯이 식물을 먹고 자란 우리들이기에 자연스레 공감하게 되는 것 같네요.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캐릭터는 물론이고 눈이 즐거운 색들이 주는 밝은 힘에서도 어떤 생명력이 느껴져 좋았습니다.

엄마로 살아가는 시간은 기쁨과 감사함이 충만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외형적인 변화와 그로 인한 고통과 스트레스가 찾아오는 시간이기도 해요.

외적인 변화는 내면의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굴절을 가져와 스스로를 아름답게 볼 수 없는 때도 있었어요.

저 역시 사회에서 도태되고 집에 고립된 채 오직 아이만을 키우며 살아야 하는 엄마의 삶에 위기감과 불안을 키우던 시점이 존재했거든요.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그림책을 만나 다행이었습니다. 아니 행운이 맞겠네요.

<엄마는 변신 중>을 만약 그때 만났더라면 얼마나 더 큰 위로가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변신이 멋지고 대단해 보이겠지만 엄마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변화가 얼마나 대단하고 귀한 일인지를 알려주는 참 고마운 그림책이네요.

변신은 슈퍼영웅이나 마법소녀만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저 같은 엄마들도 할 수 있는 거였군요.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는 말이에요.

정말 대단합니다.

오늘 엄마가 혹은 엄마인 내가 어딘지 달라 보인다면 변신 중인 거예요.

그러니 기대해 주세요.

그리고 엄마의 변신을, 엄마인 나의 변신을 응원하기로 해요. ^^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따끈따끈 찐만두 씨 - 온기 가득한 만남

따끈따끈 찐만두 씨 ㅣ 사계절 그림책
심보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2월

명절이 끝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손 가득 음식들로 가득해요.

어떤 음식은 냉장실로 또 어떤 음식은 냉동실로 들어가는데요.

문득 냉동실 안에 석고처럼 굳어 있는 검은 봉지들이 눈에 띄네요.

저것들이 도대체 무엇인지 집어 넣은 저 자신도 모르겠어서 잠시 머릿속이 검은 봉지가 됩니다.

손에 든 새로운 검은 봉지 속 음식들을 과연 제가 나중에 다시 꺼낼 날이 올까요?

검은 봉지 타령을 하는 이유는 바로 지금 만나 볼 그림책 <따끈따끈 찐만두 씨> 때문이랍니다.

자, 발그레한 두 볼이 사랑스러운 찐만두 씨를 따라 여행을 다녀와 볼까요?

뜨거운 김이 푹푹 솟아오르는 찜통마을에 사는 찐만두 씨가 후끈후끈기차를 타고 꽁꽁 찬 공기 가득한 냉동마을에 갑니다.

무슨 볼 일이 있어서 얼음에 찰싹 달라붙어 그대로 얼어버릴 것 같은 냉동마을로 가는 걸까요?

바로 얼마 전에 쉰만두 되기 거부 선언을 하시고 냉동만두가 되신 할머니 만두를 만나러 온 거랍니다.

차디찬 할머니를 꼬옥 안아 따스한 자신의 온기로 치이익~ 녹이는 따끈따끈 찐만두 씨.

두 사람 아니 두 만두를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숩고 포근포근해지네요.

할머니 댁에서 정다운 하룻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발길을 잡아끄는 이상한 소리.

냉동실에 들어온 후로 잊혀진 꽁꽁 언 떡들과 가래냐옹 떡을 만나 꽁꽁연못에 가게 됩니다.

꽁꽁 아니 꽝꽝 얼어붙은 친구들을 녹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꽁꽁연못을 뜨끈한 온천으로 만들어 주는 우리의 따끈따끈 찐만두 씨.

꽁꽁연못 속에는 미스터리깜장봉지들이 잠들어 있는데 이분들의 정체는 과연 밝혀졌을까요? ^^

자꾸 움츠러들게 만드는 추위와 쉬이 사그라들 줄 모르는 코로나의 여파에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은 우리들이 마치 냉장고 속에 화석처럼 굳어있는 음식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냉동나라의 친구들을 따끈따끈한 자신의 온기로 녹여주는 따끈따끈 찐만두 씨를 보고 있자니 부러워집니다.

굳어버린 몸도, 딱딱해진 마음도, 텅빈 뱃속도 따끈따끈 온기로 말랑말랑 풀어주고 훈훈하게 채워주는 따끈따끈 찐만두 씨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면 좋겠다 싶어졌거든요.

누구보다 제가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생각해 봅니다.

추운 겨울이면 붕어빵, 호떡, 군밤, 군고구마 간식으로 챙겨먹으면서 따사로운 봄을 기다렸는데요.

이제 간식거리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우리의 따뜻 말랑 속 촉촉 말캉 씹히는 식감까지 좋은 따끈따끈 찐만두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겠죠.

아이들과 따끈따끈 찐만두 씨 따라 여행을 다녀왔더니 배가 출출해지네요.

아이들도 약속이나 한듯이 따끈따끈 찐만두 씨 이름을 불러대는군요.

이참에 냉장고 속 미스터리 검은 봉지들도 길고 긴 잠에서 깨워보도록 해야겠어요.

여러분도 <따끈따끈 찐만두 씨>가 전해주는 따스함으로 마음도 몸도 덥히시기를 바랍니다.

가능하다면 배도 채우시기를... ^^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도시 악어 - 내가 내가 되는 순간

도시 악어 ㅣ 당신을 위한 그림책, You
루리 그림, 글라인.이화진 글 / 요요 / 2022년 1월

대도시의 한복판, 어딘가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줄기 하나를 스포트라이트 처럼 받고 있는 악어 한 마리.

<도시 악어>라는 제목을 보니 도시의 동물원에 사는 악어의 이야기일까요?

외계에서 온 악어 이야기인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악어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어서 <도시 악어>를 만나 봐야겠네요.

밀림도 아니고, 동물원도 아니고 우리가 사는 도시에 살고 있는 악어.

이 장면에서 저는 어째서인지 고독한 악어 한 마리가 저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제부터인가 내가 있는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맞는지 자꾸 의문이 생기곤 했으니까요.

어쩌면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생각에 잠긴 악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스로 원해서 도시에 사는 게 아닌 악어에게 이 도시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생존을 위해 적응해야만 하는 곳이었을까요? 아니면 세상 어느 곳보다 살기 좋을 곳이었을까요?

인간이 아닌 악어라는 이유만으로 거부당하고 차별받는 곳.

악아에게 도시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악어는 정말이지 부단히도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말 그대로 고통스러운 노오력을 하지요.

인간의 외모로, 이 도시에서 환영받기 위해 말이에요.

꿈 꾸고 노력하면 된다는 것은 그것이 가능하고 허용되는 상황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을 어른이 되면서 알았습니다.

도시 악어도 결국 그 사실을 깨닫지요.

악어가 인간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제 악어는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악어에게 남아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요?

아주 어릴 때부터 도시의 인간을 보고 자라온 악어에게 자신이 악어라는 사실은 언제나 인간과 비교할 때 두드러지는 최악의 단점이자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드는 사실이었지요.

자신이 악어라는 사실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순간을 맞이 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어쩌면 이대로 끝일지 모른다 생각한 순간 악어는 악어로서 각성을 하고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해요.

불행한 삶을 살던 도시 악어에게 찾아 온 일생일대 최고의 행운은 바로 이 순간이었지요.

가장 위기의 순간에 악어는 마침내 해방을, 자유를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되찾습니다.

그런 악어를 보고 있자니 내가 나임을 부정하던 내 안의 내가 악어를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더군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던 내가, 그저 다른 사람들 흉내내기에 바빴던 내가 말이에요.

도시 악어는 이제 더이상 자신이 악어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도시에 사는 악어로서 살아갈 것입니다.

악어가 아닌 다른 것이 되려는 노력은 할 필요가 없게 되었지요.

책을 활짝 펼쳐 보니 악어의 몸통이 물 속에 편안하게 잠겨 있네요.

그래서였나 봅니다.

표지의 악어 표정이 유난히 편안해 보이던 이유가요.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요.

다름에 유별나게 선을 긋고 외면하고 심하면 날을 세우고 공격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더더욱 말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악어 혹은 고슴도치 혹은 뱀으로 이 도시에서 자리잡지 못한 채 괴로운 처지에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도시 악어>의 이야기가 그저 그런 자아찾기 이야기로 보이지는 않을 거예요.

부디 악어가 도시인이 아닌 도시 악어로 자신을 되찾았듯이 자신을 되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