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대상 수상작 밝은미래 그림책 52
린롄언 지음, 이선경 그림 / 밝은미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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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뜹니다.

곁에는 두 아이가 고른 숨을 쌕쌕 거리며 자고 있고, 신랑은 벌써 출근을 하고 없지요.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잠을 자고, 누군가는 출발을 하고, 누군가는 일을 하는 여기는 우리집이에요.

여러분의 집은 어떤가요? 다른 듯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림책 <집>에는 어떤 집들이 나오길래 '집'이라는 한 단어를 얹어 놓았을까요?



앞면지를 펼치니 도시 위를 날아가는 붉은 새 한 마리가 눈에 띄고 새가 날고 있는 하늘이 박스 골판지라는 걸 발견하게 되네요.

건물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니 작가님이 인쇄물들을 자르고 찢고 그림을 그려 하나 하나 세운 게 보이고요.

사용된 재료들이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라 친근감이 들고 이런 재료를 사용한 작가님의 의도가 뭘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붉은 새가 전선에 앉아 학교에 가는 아이와 일하러 가는 아빠를 배웅하는 엄마를 바라보고 있네요.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출발을 하는 곳.

매일 아침 우리를 배웅하는 엄마 같은 여기는 집입니다.



일터로 가는 아빠의 파란 트럭을 계속해서 따라 가는 붉은 새.

이 새가 트럭을 따라 가는 이유가 그림책의 제목인 집과 연관이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실 거예요. ^^

그리고 이 그림책이 단순히 사람들의 집뿐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의 집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그림책을 처음부터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세상은 집들이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있네요.

한 채의 작은 집에서 출발해 점점 멀어지면서 희망이, 사랑이, 꿈이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공간들을 내려다 보고 있자니 집들의 집은 마을이나 도시가 되겠구나 생각해 보고요.

그리고 우주에서 내려다 보는 지구는 모두의 집이겠구나하며 집의 의미를 확장시켜 봅니다.



길을 따라 흐르고, 물을 따라 흘러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따라 따라 가다 보면 언제나 도착하게 되는 곳.

수많은 곳을 돌아다니다가도 우리가 결국 돌아가는 곳.

집을 채우는 우리들의 온기와 소리에 기지개를 켜는 집.

돌아온 우리 모두를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우리의 시작을 응원하고 우리의 마무리를 안아주는 집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일.

우리 삶에서 참 중요한 일이기에 이곳이 더없이 소중해집니다.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가장 자유로운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고, 휴식과 회복이 가능한 집들을 하나씩 보고 있자니 이 세상이 집들로 채워진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림책 <집>은 단순히 물질로 존재하는 형태의 집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살아 있는 집에 대한 이야기도 품고 있는데요.

인생이란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만 생각했는데 <집>을 보고 나니 인생이란 집에서 집으로 오고 가는 시간들일 수도, 한 사람이 한 사람의 내면의 집에 들어와서 살다가 나가기도 하는 경험이겠다 싶습니다.

지금껏 살았던 집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내가 존재했던 집의 시간과 또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을 집의 시간도요.

문득 그림책 역시 글과 그림이 살아가는 집이구나 싶은 생각에 앞으로 책을 펼치기 전에는 꼭 노크를 해야겠다 마음 먹어 보았어요. ^^

집이라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살아 가는 숨 쉬는 공간.

그림책 <집>이 자신의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똑!똑! 노크, 잊지 마세요. ^^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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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
아나 크리스티나 에레로스 지음,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정원정 외 옮김 / 오후의소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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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도 아니고 고양이와 결혼을?

이건 정말 궁금해서 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그림책이 아닌가요!

세상에 어떤 쥐이길래 혹은 어떤 고양이이길래 둘은 결혼을 할 수가 있는 건지 저는 정말 상상이 안 됩니다.

<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 도대체 어떤 그림책일까요?



깔끔하고 성실한 쥐 한 마리가 등장하는군요.

매일 같이 열심히 쓸더니 어느 날 동전 하나를 줍고 고심 끝에 양배추를 사서 아늑한 집을 만들기로 하지요.

그리고 그렇게 마련한 집 덕분에(?) 여러 동물들로부터 청혼을 받습니다.

쥐의 결혼 조건은 단 하나, 노래를 잘 부를 것!

자, 과연 누가 쥐의 집에서 살게 될까요?

갸르릉 갸르릉 가장 연약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장 작은 새끼 고양이와 결혼하는 쥐.

'둘은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습니다.' 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닐 거라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을 거예요.

안타깝게도 이들에게 위기가 닥칩니다.

죽을 위험에 빠진 쥐를 간신히 구해낸 고양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쥐는 상처를 입지요.



작고 연약한 새끼 고양이는 쥐의 상처를 꿰매줄 실을 얻으러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계속되는 요구들을 따라가며 고양이는 몸집이 점점 불어나지요.

거대해진 고양이는 이제 더이상 쥐가 결혼해 함께 살고 싶어하던 새끼 고양이가 아니에요.

이들의 결혼은 파국을 맞습니다.

여기까지는 스페인의 설화 '잘난 체하는 쥐'로 부터 변주된 다양한 이야기들 중 하나를 작가님들이 다시 쓴 것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이제 그 뒷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작가님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요.



고양이와 쥐.

그렇습니다.

이들은 먹고 먹히는 관계 속의 존재들인 거죠. 잠시도 함께 있는 것이 불가능한 관계.

사랑이 있다면 괜찮을 거라고, 어쩌면 그래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앞서 잠시 했더랬습니다. 이들의 결혼이 협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 걸리더니 결국은 끝이 정해진 시작이었네요.

적어도 이 결혼에 사랑이 있었느냐 묻는다면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결혼의 끝이 새드 엔딩인지, 해피 엔딩인지는 보는 이마다 다르게 해석할 것 같은데요.

어쨌든 결혼이라는 관계는 끝났지만 각자의 삶은 계속됩니다.

여자는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것으로 마음 속에서 고양이와 결혼을 끊어내요.

자세히 방을 살펴보면 고양이와 쥐의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에 등장했던 물건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림을 그린 비올레타 로피스 작가님이 단순화된 그림 속 사물로 서사를 쌓아가는 방식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관계와 사건의 진열장 같은 집을 떠날 수 있게 문을 활짝 열어준 것이 제게는 마치 쥐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두 작가님이 옛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지금의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이 이야기는 그 옛날 끝나지 않은 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그래서 우리에겐 새로운 결말이 필요했지요.

모든 관계에서 우리는 서로 상처 주고 상처 입기 마련이지만, 존재가 삭제당하는 순간 그 관계에서 로그 아웃해야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책 속의 여자가 머리카락을 싹뚝 잘라내고, 관계 속에서 머물렀던 시간과 공간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뿐하게 떠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그림책의 새로운 결말이 마음에 드네요.

여러분도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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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언제나 돌아와
아가타 투신스카 지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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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랑하는 이와 잠시 떨어져야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서로를 기다리는 애틋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돌아온다'는 약속과 믿음 뿐이지요.

그러나 '돌아온다'는 약속이 죽음의 손바닥 위에 놓인 가냘픈 꽃잎에 불과하다면 어떨까요?

그 약속과 믿음은 지켜질 수 있을까요?

그림책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는 그 약속과 믿음이 지켜지는 기적 같은 실화입니다.



어떤 이야기들은 계속되어집니다.

또 어떤 이야기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지요.

반면 누군가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듣고 싶어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반드시 이야기 되어야 하는 것들과 들어야 하는 이야기들이 존재하는데요.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폴란드에 세워진 게토의 지하실에서 살아남은 아이 조시아가

시간과 공간을 지나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앞면지를 펼치면 조시아의 엄마가 품 속에서 꽃을 꺼내 면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조시아가 갖고 있던 인형 머리에 이어 붙여 원피스를 만들어 준 천의 꽃 무늬랍니다.

아이를 감싸 보호하던 엄마의 사랑이 꽃처럼 아름답게 펼쳐지는 것 같네요.

또 이렇게 이 이야기가 모두에게 전해지면 좋겠다 생각해 봅니다.



척박한 게토에서도 엄마는 아이를 웃게 하려고 애씁니다.

이 대목을 보고 있자니 영화 '인생은 즐거워'의 아빠 귀도가 떠오르더군요.

그들이 처한 상황을 게임하는 중이라 말하는 귀도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난쟁이 요정처럼 사는 거라고 주문을 거는 조시아의 엄마.

하지만 아이는 꽤 오랜 유년의 일부를 때때로 찾아오는 엄마를 제외하고는 홀로 숨겨진 채 완전히 박탈당하지요.

오로지 결핍과 고통 그리고 외로움만이 기록된 어린시절을 예상하게 되지만, 놀랍게도 엄마는 어둠 뿐인 현실의 세상에 사랑과 희망이 있음을 들려 줍니다.

홀로 남겨진 조시아는 상상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지켜가지요.

또 다른 안네 프랭크 혹은 더 어린 안네 프랭크를 보는 것 같아서 더 놀랍고 아프게 다가오더군요.



묵묵한 기다림 속에서 아이는 자신을 지키려는 엄마의 주문 같은 문장을 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했을 테지요.

"엄마는 항상 너에게 돌아와."

적막과 고독, 육체와 정신의 허기, 막연한 기다림... 이런 것들을 고작 서너 살 된 아이가 감내합니다.

두 사람은 얼마나 깊고 넓은 슬픔과 고통의 시간을 건너와야 했을까요?

두 사람이 그 시간 속에 그대로 잠겨버리지 않게 손을 잡아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죽음이 늘 바짝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도 언제나 삶 쪽으로 아이를 바짝 당겨주고, 살아야 할 이유를 엄마 손에 꼭 쥐어주는 것은 서로였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의 의지를 꼭 품고 폭력이나 전쟁, 가난이나 기아 같은 척박하고 고통스러운 장소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아이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 아이들 곁에 오로지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목숨뿐 아니라 정말 모든 것을 걸고 지옥을 살아내는 엄마들도요.

부디 그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이 멈추지 않기를, 더 많은 이들이 잘못된 선택을 멈추기를 바라봅니다.



이보나 작가님의 그림이 조시아의 상황을 시적으로 그려주고 있는데요.

조시아가 갇혀 있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그렇지 않기도 한 불투명한 상황과 조시아의 기분과 생각들이 오래되고 낡은 트레이싱지의 투명도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기억들이 존재하겠지만 그저 잊고 싶은 그러면서도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그림 한 장 한 장.

정말 오래도록 기억될 그림들입니다.



책은 덮었지만 조시아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상 어디엔가 감춰진 또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가 우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조시아의 이야기를 글로 읽고, 그림으로 보는 이 한 권의 시간 동안 우리는 투명한 존재가 되어 조시아와 함께 합니다.

기적처럼 가까스로 살아남고, 계속해서 살아 준 조시아라는 이야기 덕분에 우리는 여기에 있어요.

그저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참혹한 세상에 대해 담담하게 발화된 이야기가 우리를 조금 더 깊고 넓은 슬픔의 존재를 만나게 해줍니다.

조시아가 살아남고, 살아 내고,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고통과 어두움 그리고 기적 같은 기다림과 사랑도요.

아가타 작가님과 이보나 작가님을 통해 우리에게 온 이 귀한 이야기가 우리 모두를 지켜주면 좋겠습니다.

조시아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를 감싸고 있는 띠지가 엄마의 보호막처럼 보이네요.

살아남기 위해, 살리기 위해, 돌아가기 위해, 맞이하기 위해 엄마와 딸이 힘겹게 버틴 사랑과 인내라는 꽃이 연약하지만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지요.

참 소중한 그림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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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미누스 : 달과 철학을 사랑한 토끼
레베카 도트르메르 지음, 이경혜 옮김 / 다섯수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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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깊은 눈동자, 쫑긋 위로 솟은 크고 길쭉한 두 귀를 가진 토끼 한 마리가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덩달아 숨을 죽이고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자니 이 작은 토끼의 사려 깊고 다정한 성격이 보이는 것만 같네요.

이 아이는 그림책 <자코미누스>의 주인공 자코미누스입니다.

커다란 그림책 표지 전면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니 이 책은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같군요.

자코미누스가 엄청나고 대단한 역사적인 사건이라도 일으킨 걸까? 궁금해집니다.



모든 존재는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름을 갖게 되지요.

저와 여러분이 그랬듯이 자코미누스의 삶도 그렇게 시작되는군요.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나라는 존재로 지금 이 시간 속에서 연결된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듯이요.

우리는 다르지만 또 이렇게 닮아 있고 닿아 있네요.

어쩌면 이 그림책은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자코미누스는 달나라 여행을 다녀오다 계단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한쪽 다리를 다치는데요.

예기치 않은 사고로 자코미누스는 평생 목발을 짚게 됩니다.

그렇게 무언가를 잃거나 얻고, 어딘가를 다치거나 회복하고, 어디에선가 출발하거나 도착하고, 누군가를 보내거나 만나면서 자코미누스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채워가지요.



자코미누스는 날마다 조금씩 뭔가를 배우게 됩니다.

살아가는 방법들, 존재하는 이유들, 다른 언어의 울림들, 소박한 행복의 의미 같은

크고 작은 삶의 이야기들을 매일 찾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스스로 만들기도 하면서요.

작가님의 빛바랜 듯한 사진 같은 섬세한 그림 한 장 한 장과 짧지만 선명한 문장들은 달의 인력처럼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요.

그래서 하나씩 자세히 들여다 보게 만들고 길고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젊은 자코미누스는 미쳐 버린 세상을 마주합니다.

어린 시절 가장 좋아하던 영어책 <밤의 검은 기사>와 똑같은 이름의 검은 기사호에 올라 세상이라는 전쟁터에 나가지요.

자코미누스는 수많은 이들을 만나고 전쟁에서 승리할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그는 또 수많은 것들을 기다렸어요.

자코미누스는 사랑을 하고, 아빠가 되고, 치열한 삶의 열차에 올라타 되풀이 되는 일상을 살아가며 힘든 시기를 견디지요.

"나는 이제 모든 걸 이해해. 시간은 흘러가고, 우린 변하거든. 그게 전부야."

모든 것을 이해한 자코미누스는 더이상 기다리지 않습니다.

저는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랑을 갖기 어려울 때 자신이 가진 것을 사랑하라는 자코미누스가 사랑하는 할머니의 말씀과 자코미누스의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작가님은 삶 속의 자코미누스를 멀리서, 자코미누스의 삶을 가까이에서 오고 가며 '온 힘을 다해' 아름답고 정성스럽게 그려놓았는데요.

그래서 한 존재의 삶이 그것대로 고유하면서 소중한 동시에 다른 존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 자코미누스.

그런 자코미누스의 일생을 따라가며 그림책을 들여다 보는 자신의 삶을 포개어 봅니다.

내 삶이라는 역사는 참 소박하지만 아름답고, 작지만 사랑스럽고, 평범하지만 따뜻하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만들어 주네요.

평범한 날들이 주는 충분한 행복을 만끽한 토끼 자코미누스의 일생을 담은 그림책 <자코미누스>

쌍둥이 그림책처럼 내 이름과 내 얼굴이 놓인 내 일생을 담은 그림책을 한번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 안은 어떤 것들로 채워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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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계절
최승훈 지음 / 이야기꽃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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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그림책에서 찾았습니다.

<엄마의 계절>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표지에 열무 다듬는 우리 엄마가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요.

모두가 좋아하는 우리 엄마, 나비도 좋아서 엄마 곁을 맴돌고, 고양이 나비도 엄마 곁이 제일 편합니다.

그런 우리 엄마의 계절에는, 세상에서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는 엄마의 계절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까요?



여기는 엄마가 계신 곳, 고향.

차로 몇 시간 또는 기차로 몇 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지만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 오는 동안의 피로가 모두 사라지는 기분이 들지요.

엄마의 품 같은 자연의 품, 고향은 늘 포근하고 정겹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까치 한 마리.

엄마는 늘 까치를 반가워 합니다.

엄마는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책을 펼치는 누군가를 반갑게 기다리는 작가님의 마음도 느껴지는 것 같네요.



봄이 찾아왔습니다.

졸졸졸 냇물이 간질거리며 냉랭한 추위를 누그러뜨리고 다독이는 시간.

자식들 찾아온다는 따스한 소식 들려오는 봄이라 엄마는 더 반가울 것 같아요.

그 반가운 마음, 보고픈 마음 담아 음식 넘치게 장만하는 엄마.

자식들에게는 다 주고도 더 줄 것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엄마지요.



그렇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자식들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엄마는 타박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기다리지요.

엄마의 또 다른 이름이 기다림이구나 생각하게 되더군요.

<엄마의 계절> 속에서 저 모습 그대로 앉아 기다리고 있을 엄마를 떠올리고,

그 엄마의 기다림이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외로움이 쌓인 시간의 더께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소리없이 내리는 눈처럼 연락없이 찾아온 반가운 손님들로

엄마의 겨울은 더없이 따듯합니다.

춥기만 한 겨울이라 생각했는데 따듯한 엄마 품이 가장 빛나는 시간이 되는 계절임을 깨닫게 되네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네 개의 자연의 계절과 닮은 엄마의 계절이 흐릅니다.

생명이 시작되는 봄, 쑥쑥 싱그럽게 자라나는 여름, 실한 열매들을 맺는 가을, 수고했다고 쉬라고 다독이는 겨울.

그 모든 계절을 통과하면서 엄마는 생명을 심고, 기르고, 돌보고, 기다리더군요.

저 역시 엄마의 아이에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사랑을 받던 존재에서 이제 누군가를 사랑하는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을 거치고 있지요.

그래서 더욱 엄마의 계절을 지나온 그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고마웠습니다.

그림책 <엄마의 계절>에는 온통 기다림과 그리움이 가득합니다.

엄마라는 살리고 키워내고 기다리는 사람의 계절이 오롯이 담겨 마치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본 기분입니다.

사실 이 그림책은 그냥 우리 엄마를 그대로 그려놓은 그림책이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거예요.

<엄마의 계절>을 보는 모두가 그 기다림과 그리움에 응답하게 되길 바라봅니다.

우리 모두는 엄마의 계절을 통과하며 자라난 생명들이니까 말이지요.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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