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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프리다 칼로 지음, 안진옥 옮기고 엮음 / 비엠케이(BMK) / 2016년 6월
평점 :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그림으로 만난 프리다 칼로를
가장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글인 일기를 통해 만날 수 있다니
그녀는 어떤 글을 썼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 마음으로
그녀의 영혼이 담긴 글로 들어가 볼까 한다.
표지의 한 가운데 동그랗게 난 구멍.
그 구멍을 통해서는 그녀의 일부만이 보이지만
구멍을 통과하면 그녀의 모습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그녀를 이 책을 통과함으로
그러니까 그녀의 일기를 읽음으로 그녀의 전부에 가깝게
그녀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프리다 칼로(1907~1954)는 멕시코의 여성 화가이자
자신을 가장 많이 그린 화가.
여섯 살에 소아마비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절게 되고,
열여덟 살 때 교통사고로 인해 부서진 육체는 끊임없는 수술과 고통에 시달려야 했고
스물한 살에는 '디에고'라는 사랑이자 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운명과의 만남으로
그녀는 고통 바로 그 자체인 삶을 살다 갔다.
그런 그녀가 죽기 전 10년 동안 기록한 일기가 바로 이 책이다.
시 같은 운을 맞춘 단어들의 나열, 데칼코마니와 뒷면의 비치는 것들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내용들과 다양한 형태로 표현한 그녀의 생각과 감정 그 모든 것들이
들어 있어 단순히 일기라고 하기보다는 일종의 작가노트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림 자체도 강렬해 수많은 화가들의 그림 중에서도 쉽게 프리다의 그림을 알아볼 수 있지만
지금까지 봤던 그녀의 작품보다 훨씬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그녀 내면의 소리가 더 거침없다는 점에서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를 보는 일은 프리다를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프리다만큼 자기 자신을 매순간 고통으로 인식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싶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고통 속에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했다.
그런 삶과 디에고에 대한 사랑, 번뇌와 좌절,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희망이 빛나는
프리다의 또 하나의 작품이 바로 이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라는 생각이 든다.
고대 문화와 신화, 그리고 과학과 정치, 사상과 철학, 언어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드러난 그녀의 박학다식함은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했기에 그녀 스스로 신화를 만들고 자신이 신화가 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프리다의 대표작 <두 명의 프리다>를 암시하고 있는 일기 속의 겹쳐져 있는 세 얼굴.
그녀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얼굴이라 설명해 주고 있다.
프리다의 시선이 앞쪽을 내다보면서 동시에 이쪽을 바라보는 이 그림을 보며
그녀가 고통에 침몰하지 않고 생을 열정적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려는 멈추지 않는 생애(生愛)와 자애(自愛)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해 본다.
프리다는 자신의 내면을 늘 향해 있으면서 자신을 관찰했지만,
동시에 그녀의 뿌리에 대해서도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
전통 문화와 멕시코 예술을 보호하기 위한 디에고 활동을 지지하고,
이상적인 공산주의를 꿈꾸는 프리다였다.
그녀는 육체적인 한계는 사랑에 있어서도 그 영향을 미쳤고
- 두 번의 유산과 동생과 디에고의 외도 - 그녀를 외롭게 만들었지만,
생에 대한, 죽음에 대한 그리고 사랑에 대한 열정을 꺼뜨리지는 못했다.

작품에서도 그렇지만 일기에서도 디에고에 대한 프리다의 사랑이 차고 넘친다.
색을 가진 프리다, 그 색을 보는 디에고.
색을 발하는 프리다, 색을 흡수하는 디에고.
프리다에게 디에고는 사랑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녀에게 영원한 사랑인 디에고.
프리다의 사랑은 디에고여서 가능한 사랑이었고, 디에고여서 안타까운 사랑.
그녀를 끝도 없이 외롭고 괴롭게 만든 그가 밉다가도
프리다를 프리다로 존재할 수 있게 한 것도 그라는 생각에
원망만 할 수 없는 애매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부서진 날개를 가진 프리다,
타오르는 불꽃으로부터 그 고통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겠다고
결연하게 'NO'라고 말한다.
그녀가 비록 부서진 연약한 육체를, 고통만 안겨주는 육체를 가졌음에도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단지 하나의 기능 - 혹은 전체의 일부일 뿐이다.
삶은 지나간다. 우리는 쓸데없이 걸음을 낭비하지 말고 주어진 길을 가야한다. (158쪽)"
"아직 휠체어에 앉아 있다. 언제 다시 걸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석고로 된 코르셋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나를 무시무시한 양철 깡통으로 만들지만,
척추를 지탱하는 데 도움을 준다. 통증은 없다. 단지... 만취한 듯한 피로가,
그리고 당연하게도 매우 자주 절망이 찾아온다. 절망은 그 어떠한 단어로도 정의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고 싶다. 벌써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170쪽)"
인간의 삶이 고통의 연속이라고는 하지만
삶의 순간 순간이 어쩌면 이렇게 고통으로부터
잠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인생이었을까?
그러나 프리다 칼로, 그녀는 그 고통을 겪는 자기 자신을
멈추지 않고 그리고 또 그렸다.
살고 싶다는 생의 의지와 희망 그리고 사랑과 열정을 가진
고통 속에서도 살아 있는 여신이었다.
고통의 순간이 찾아올 때 나는 프리다의 그림을, 프리다를 떠올릴 것이다.
그녀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를 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