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네가 준 꽃다발을
외로운 지구 위에 걸어놓았다
나는 날마다 너를 만나러
꽃다발이 걸린 지구 위를
걸어서 간다 (P.43 )
* 정호승
식사법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 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날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것 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을
잘 넘길 것 (P.52 )
* 김경미
줄포
농사꾼 대서쟁이 김장순씨에게
뻘밭에 갈매기만 끼룩대는 폐항
길다란 장터 끝머리에 있는 이층 대서방은
종일 불기가 없어도 훈훈하다
사람들은 돈 대신
막걸리 한 주전자씩을 들고 와
진정서와 고발장을 써 받고
대서사는 묵은 잡지 뒤숭숭한 시렁에서
마른 북어를 안주로 꺼내놓고 한마디한다
사람은 착한 게 제일이랑께
그저 착하게 사는 게 제일이랑께
그래서 줄포 폐항의 기다란 장터
술집에서 사람들은 나그네더러도 말한다
사람은 착한 게 제일이랑께
그저 착한 게 제일이랑께 (P.57 )
* 신경림
내 안의 정원
꽃을 보러 정원으로 가지 마라.
그대 몸 안에 수많은 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다.
거기 연꽃 한 송이가 수천 개의 꽃잎을 품고 있다.
그 수천 개의 꽃잎 위에 앉으라.
그 수천 개의 꽃잎 위에서
정원 안팎으로 가득 만발한 아름다움을 바라보라. (P.74 )
* 카비르
그리운 시냇가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길고 아득히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 섞여내려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P.125 )
* 장석남
-신현림 ,<아가야, 엄마는 너를 기다리며 시를 읽는다>-에서
작년, 노란 은행잎들이 황금빛으로 땅을 물들인 늦가을
성당에서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해, 혼인서약서 대신
부부가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며( '경애하는 그대에게'
라는 시작에 약간은 놀랐지만) 혼인을 하고, 이번에 또 아기를
가진 대녀에게 선물하기 위해 신현림 시인이 엮은 <아가야, 엄마
는 너를 기다리며 시를 읽는다>를 오늘 받아 읽었다.
신현림 시인이 늦은 나이에 뜻하지 않은 임신과 헤쳐 나가야 할
인생의 문제가 가득한 상황에서 잠을 설치는 밤마다 유일하게 한
태교는 책장에 꽂힌 시집들을 꺼내 읽는 일이었다 한다.
시를 꺼내 읊다 보면 시의 아름답고 긍정적인 기운이 퍼져 오고
그리고 고난과 아픔마저 씩씩하게 이겨 낼 힘이 생겼다며, 그리고
시를 통해 삶의 소중한 순간을 음미할 용기도 다시 얻으며, 그렇게 아이가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
는 순간을 만끽하고 열렬히 껴안다 보면 풍요로워진 인생 자체가 한 편의 시가 되리라 믿으며.
이 詩集을 선물 받을 대녀는, 내달 초에 신랑의 박사학위 공부를 위해 독일로 함께 떠나 5년 후에
돌아 올 예정이다. 12월에 출산을 하고 아기가 다섯 살이 되어 돌아온다.
요즘 의학에 의해 아기는 딸아이고 태명은 '복덩이'다. 학부전공이 첨단의료기 엔지니어라 남자
들만 들끓는 환경에서 일하는 직업에 대해 많이 지겨워했는데(그래서 매일 고민을 하곤 했다. 아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 벌고 살순 없을까? 하고. 그래도 신랑이 모교 연구원이라 맞
벌이를 했는데, 아기가 생긴 그날로 당장 사표를 냈다. 그리고 "넌 정말 복덩이야! 이젠 지겨운
회사를 때려칠 수 있구나!" 하며 다소 황당한 소감의 기쁨을 나타내 주변을...ㅎㅎ
그리고는 아기가 다섯 살이 되야 돌아 오니까, 그 기간동안 아기에게 읽힐 그림책, 동화책을 부
지런히 모우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내일 만날 대녀에게, 나의 선물은 가지고 있던 <전래자장가 자미 잠이>와 <아가야, 엄마
는 너를 기다리며 시를 읽는다>를 준비했다.
언제나 개성과 창의력과 용기가 무궁무진한 소영 카타리나!
독일에서 이 태교시집 즐겁게 잘 읽고 순산 해서
전래자장가도 음반과 함께 즐겁게 불러주며 행복하게 또 네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고
발전시켜 5년 후, 더욱 보람차고 행복하게 만나자꾸나~
이 詩集 읽으니 참 좋더라, 너도 복덩이와 함께 즐겁게 읽고 좋은 시간 보내면 고맙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