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구름보다 더 늙은

                            책이 내 얼굴을 쳐다본다,

                            내 얼굴을 들이마시고 어루만진다,

                            내 마음을 제본하여 읽어 보라고 내민다.

                            책의 손가락이 내 속을 더듬으며

                            뒤틀린 내 영혼의 손목에 봉침을 놓으며 웃는다.

                            병원 복도에서 소리 지르는

                            반 귀머거리 노파,

                            귀먹은 책이 나를 향해 소리친다,

                            생의 계절은 늘 그늘이었다고.

                            앞을 못 보는 책은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면

                            낡은 귀를 쫑긋 세운다,

                            책의 행간을 바람이 지난다,

                            책의 밭고랑에 시간이 흐르며

                            물결친다, 책에 해일이 일어

                            사랑이 묻히고 죽음도 묻히고

                            책에 눈이 내려 어둠이 진다.  (P.15 )

 

 

 

 

 

 

 

                               단체사진

 

 

 

 

 

                              이렇게 서 있으면 숨결 소리 들려오고 꼭 지난날 동료

                           들과 어깨를 서로 부딪히며 얼어붙은 강을 건너던 한 마

                           리 들소 같다. 캄캄한 밤, 눈은 내리고 폭풍우 불어닥쳐 눈

                           에 잘 보이진 않지만 느껴진다. 복잡한 재래시장, 생선 냄새

                           는 풍겨오고,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엔 옷가지가 비치고, 콧

                           속으로 팔짝 뛰어드는 노란 새우튀김 냄새, 그 위로 하늘

                           은 전봇줄에 싸인 싸구려 생선의 등처럼 약간 푸르다. 이렇

                           게 서 있으면 시골 집 마당의 외눈박이 채송화 같다. 장미

                           가 알을 배는 소리도 들린다. 나는 떡시루의 한 톨 밤알로

                           박혀서 발가락 끝에 살짝 힘을 준다. 꼭 예쁜 꽃 옆에만 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마리 매미가 아무리 울어도 전체

                           나뭇잎은 시들지 않는다. 자, 여길 보세요! 눈 한 번 깜박

                           하고 나면 우리는 봄날 벚꽃처럼 흩어진다.  (P.37 )

 

 

 

 

 

 

                                      딴생각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한 발짝 떼어 놓을까. 가만있을

                            까. 다 그만둬. 딴생각이 펼쳐 놓은 마당가 바지랑대에 잠

                            자리가 앉았습니다. 잠자리의 눈이 닿는 곳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사는 일은 역시 팍팍합니다. 저만치 옛사랑이

                            흘러갑니다. 옛사랑은 비안개에 젖어 있습니다. 또 한 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그냥 마구 걸어갈까. 다 그만둬. 멀

                            리 가로등 불빛이 안개 속에서 숨을 고릅니다. 술래의 등

                            뒤로 딴생각이 펄떡입니다. 길가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누군가 술래가 되면 딴생각은 그의 등뒤에서 발걸음을

                            살짝 죽입니다. 곳곳에 딴생각들이 무궁화꽃을 피웁니다.

                            사람들 마음마다 몰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P.63 )

 

 

 

 

 

 

                              번역의 유토피아

 

 

 

 

 

                             이곳엔 사랑이 넘실대지요.

                             고통도 바지를 걷고 함께 개울을 건넙니다.

                             수초들은 뒤엉켜 있고,

                             가끔 미끄러운 돌이 딛는 발을 밀쳐 내는군요.

                             모두 사연을 갖고 사는 세상입니다.

                             사연들은 글자로 서서 머릿속을 헤맵니다.

                             글자들에게 사연을 물으면

                             모두 담배나 피워 물 뿐,

                             수초 속에 숨은 그리움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건넌다는 것은

                             늘 실패한 첫사랑입니다.

                             그래서 아쉽지요. (P.69 )

 

 

 

 

 

                                                               -김재혁 詩集, <딴생각>-에서

 

 

 

 

 

 

 

 

 

 

   늦더위가 옆에 앉아 가위 바위 보,라도 하고 놀자고 착 들러붙어

   있지만 끄덕도 않고 앉아 내내 일을 한다. 가위 바위 보,를 하면

   어쩔 것인데..어차피 낼 모레면 떠날 너인데,

   가만 생각해보니...우리는 어쩌면 너라는 책을 나라는 책을 열심

   히들 읽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는 아니더

   라도. 서로의 책을 열심히 읽어가다 때로는 내가 미처 모르는

   너의 다른 나라 글자가 난독으로 나타나면은 또 사전을 펼쳐놓고

   번역을 해보고. 어느날 김재혁 시인이 '번역은 연옥에 말을 빠트린

   후 다시 길어 올리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라고' 말했듯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의 등 뒤에서 사람들 마음마다 몰래

   무궁화꽃이 피었듯이.  떡시루의 한 톨 밤알로 박혀서 발가락 끝에

   살짝 힘을 주며 단체사진을 찍듯.

   누군가의 마음을 건넌다는 것은 늘 실패한 첫사랑이듯, 그래서 아쉽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이 다가오고, 나는 사랑하는 이가 자신의 뜨락에 심고 따서 슴슴하고

   달큰하게 소금물에 삭혀 보내온 청홍고추 마늘편 동무까지 담겨 있는 깻잎장아찌를 반찬으로

   식구들과 저녁밥을 먹으리라. 생활은 양식과 같다며 밥솥에게 말하며 우리의 가슴에 던지며

   당신의 몸이 당신의 밥상이듯 나의 몸이 나의 밥상이듯, 그래서 사랑은 밥상인 것을 생각하며.

   이제 곧 가을이 도착할 것이다. 나의 손목에 터널증후군이 찾아오면 또 다시 가을이 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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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3-08-17 19:46   좋아요 0 | URL
더위에 입맛을 일으니 새콤달콤짭쪼름한 장아찌류들이 많이 생각나긴해요.
장아찌는 저만 좋아해서, 참 얻어먹기도 힘들어요. ㅎㅎ 가끔 친정 엄마나 어머니께서 저 때문에 살짝 챙겨주시면 잘 먹긴하는데, 정작 만드는법 배우려하지 않는건... 아직도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인것 같아요. ^^

장아찌로 맛있게 밥먹고, 맛있게 책 읽고 싶은 날이네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appletreeje 2013-08-19 10:34   좋아요 0 | URL
요즘같이 무더운 날은 물 말아서 장아찌랑 밥 먹는 것도 개운하니 좋아요.^^
제가 장아찌 담을줄 알면 보슬비님께도 보내드릴텐데...ㅠㅠ
그래도 두 어머님들께서 챙겨주시니 부럽습니당~~

숲노래 2013-08-18 09:15   좋아요 0 | URL
서로서로 아름다운 이야기 한 자락 되어
즐겁게 만나는 하루 되리라 생각해요.
여름도 한철이니
곧 새로운 철 다가오겠네요.

appletreeje 2013-08-19 10:36   좋아요 0 | URL
예~함께살기님께서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가을이 멀지 않았습니다. ^^

2013-08-18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19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3-08-19 13:45   좋아요 0 | URL
<딴생각> 벌써 읽어보셨군요.^^
정말 빠르십니다~!!
정말 가을이 멀지 않았습니다.
저는 가을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랍니다.ㅎㅎ

appletreeje 2013-08-19 20:27   좋아요 0 | URL
이 시집, 참 좋더라구요~^^
<여름 거짓말> <더 리더>를 번역하신 분의 시들이라 더 반가웠구요.
예~이제 조금만 참으면 가을이 오겠지요~?^^
후애님께서 좋아하시는 가을이요~

후애님! 서늘하고 좋은 밤 되세요. *^^*
 

 

 

 

 

  좀 전에 여전히 날은 덥고 바쁜 일을 하며 허덕이고 있는데, 택배 아저씨께서 알라딘 책상자를

  주고 가셨다.

  열어 보니, 아~사랑하는 보슬비님께서 보내 주신 행복한 책선물이었다. *^^*

  일전에 보슬비님께서 책선물을 주신다는 말씀에 미안하고 쑥쓰럽기도 하였지만...히히, 그냥

  읽고 싶은 책들을 말씀 드렸는데 그 책들이 오늘 도착했구낭~!!!

 

 

 

 

 

 

 

 

 

 

 

 

 

   내가 읽고 싶다고 말씀 드렸던 책들과,

 

 

 

 

 

  또 따로 보슬비님께서 즐겁게 읽으신 책들 중에서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손수 골라 보내 주신 또 두 권의 책들.

  이 책들을 보니 더욱 마음이 뭉클하다.

  보슬비님의 마음이 환하게 전해오는구나, 아...보슬비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장 기쁜, 고운 편지와... 셜록 북마크와 매드 포 갈릭 교환권까지....*^^*

  이 선물들을 받고, 책들을 넘겨 보고 편지를 읽어 보고 북마크를 만져 보고...

  갑자기 무덥던 날씨마저 확~날아가버리듯 정말,  참.좋.다...^^

 

 

 

 

 

 

 

 

 

  애서가이자 이야기 구연가인 웬디와 남편 잭은 언제나 작은 책방

  을 여는 날을 꿈꿔오다 어느날, '독사 굴'같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애팰래치아 산맥의 시골 마을 빅스톤갭으로 여행을 간 두 사람은

  뜻밖의 기회와 맞닥뜨리고, 오랫동안 품어 온 꿈을 우여곡절끝에

  실현한다.

 

  사람과 책에 관한 이야기와, 사람과 책의 힘으로 죽어가는 한

  마을을 활기로 가득 채운 실화의 기록이며,

  무엇보다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는 책.

 

 

 

 

 

 

 

  '도서관'이란 장소가 주는 즐거운 관심과,

   대출만 주로 하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일은 별로 없는 지라

   어떻게 도서관에서 3년 동안 책만 읽었는지도 궁금했고, 그리고

   이제 '도서관'하면 저절로 보슬비님이 떠올라 더욱 궁금했던 책.

   저자처럼 책을 줄줄이 낼 소망도, 인생의 변신도 그리 원하지는

   않지만, 한 번쯤 다른 이들의 삶의 간접경험도..즐겁지 않을까?^^

 

 

    

 

 

 

  충청남도 보령군 달밭골에서 펼쳐지

  는 충청도 어르신들의 인생극장.

  페이스북에 연재되어 순전히 입소문

  으로 유명해진 에세이를 엮은 책. 

 

 

 

 

 

   

 

 

 

 

 

이슬람의 극렬한 반미의 뿌리이기도 하며 여전히 분쟁이 진행 중인 팔레스타인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은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팔레스타인 사람들, 더 나아가 아랍인들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게 해주는 작품이다.

지은이인 조 사코는 젊고 호기심 많은 미국인 청년으로, 1991년 말 이스라엘 땅에 맞붙은 이집트를 통해 이스라엘의 점령 지구인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와 웨스트뱅크의 거리들을 돌아다니며 경험한 그들의 지치고 누추한 삶을 만화로 표현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사진보다 더욱 강렬한 그림으로 표현해낸 그는 '코믹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1996년 미국 도서출판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전 세계의 뛰어난 작가들과 삽화가들이 뜻을 함께 하여 펴낸 책으로, 삽화가 곁들여진 150여 편의 시와 이야기로 전쟁과 평화를 묘사하였으며, 이를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전쟁 속에서 소중한 일상을 희생하였던 소시민들의 비애를 작가 특유의 시각으로 포착하여 그려내었다.

멀게는 13세기 십자군 전쟁에서 20세기 초에 두 번이나 겪은 세계 대전, 다소 최근인 나이지리아 내전과 포클랜드를 둘러싼 영국-아르헨티나 간 갈등, 코소보 사태,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전, 또 가장 가깝게는 2003년 이라크 전쟁까지를 소재로 하여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있다.   책을 넘겨보다 156쪽의 <게르니카>에서 화들짝 반가움에 얼른 셜록 북마크를 살짝,

 

 

 

 

 

 

 

 

 

 

 

  사랑하는 보슬비님!! 정말 기쁘고 고맙게, 책 잘 받았습니다~

  한 권 한 권, 보내주신 그 마음 잘 간직하며 즐겁게 잘 읽겠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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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3-08-15 01:25   좋아요 0 | URL
ㅋㅋ appletreeje님 저 <충청도의 힘>읽으며 방언터질뻔 했어요..
저 충청도 사람이잖아요~~
어찌나 입에 착착 붙는지 눈으로만 읽기 너무 아쉬워서 책 전체를 소리내서
충청도 사투리 착착 달라붙게 읽었더니 스트레스가 싸악~~풀렸어요..
너무 재미있는 에세이..
충청도 사람이라는게 이렇게 행복한지 진즉에 좀 알껄 그랬네요...ㅋㅋ

좋은분께서 좋은분께 주신 좋은책 읽으시며 좋은 시간 보내셔요~~

appletreeje 2013-08-15 23:49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오늘 <충청도의 힘> 조금 읽었는데 정말 읽는내내 웃음이 마구
터졌어요~ 어쩜 어르신들의 말씀들이 그리도 재미난지요. ^^
정말 입에 착착 붙는게~ ㅋㅋ
표준어와 사투리, 그런 단순한 구별 말고 각 지역 고유의 정다운 말들이
이젠 제각각의 개별성과 고유성으로 싱싱하고 즐겁게 살아 숨쉬기를, 유쾌함
속에서 다시 한 번 생각도 들었구요.

좋은 분께서 주신 책, 좋은 블루데이지님께서 주신 댓글로 너무나 좋은 시간
감사드리며... 블루데이지님! 편안하고 좋은 밤 되세요. ^^

마녀고양이 2013-08-15 11:39   좋아요 0 | URL
아우, 멋진 선물...
보는 저도 기쁘네요. 더운 여름, 한줄기 바람 같았겠어요. ^^

appletreeje 2013-08-15 23:54   좋아요 0 | URL
히히...마녀고양이님!
함께 기뻐해주셔서 더더욱 기쁘고 감사드려요..^^
마녀고양이님께서도
한줄기 바람같은, 시원하고 좋은 밤 되시길 빌어요~*^^*

2013-08-15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15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3-08-16 17:27   좋아요 0 | URL
정말 멋진 선물을 받으셨네요.^^
저까지 기분이 좋고, 행복합니다.*^^*

appletreeje 2013-08-17 09:30   좋아요 0 | URL
예~후애님! 책선물은 언제나
기분이 좋고 너무 행복해요~~정말!!
 

 

 

 

 

 

 

 

 

 

로빈손 크루소 같은 행색으로 들어오셨다. 삼복엔 타잔, 태풍엔 로빈손 크루소...니까 한겨울엔 고산자 김정호 같은 패션을 휘날리실 것인가. 아무튼 예의 그 로시난테 닮은 자전거에 기대어 비척비척 들어오셔서는 본당마루에 앉아 망연한 눈길로 하늘을 바라보고 계셨다. 영락없는 로빈손 크루소였다. 도무지 여기가 어디쯤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 오랜만에 들어오셨네요. 어디 멀리 다녀오셨어요?

아저씨      아침은 자셨슈?

            네? 아, 네......아직요.

아저씨      그나마 다행이유. 난 유씨가 뜨건 밥 자시구 식은 소리 하나 싶어 걱정했슈.

            (또 시작이다) 그, 그게 무슨 말씀......

아저씨      유 씨야말로 그새 어디 먼 데 다녀 오셨나 봐유. 태풍 왔다 간 것도 몰르구.

            걸 모를리가 있나요. 저도 며칠 전전긍긍했는데요.

아저씨      그런 냥반이 그런 소릴 해유? 태풍이 오는데 농사꾼이 가긴 어딜 가겠슈.

               갈 데가 어디 있겠냔 말유, 시방.

            아, 그럼 그동안.... .

아저씨      뽕밭에 가서 울었슈. 뽕밭에서 울었단 말유.

            (급 당황) 울어요? 뽕밭에서요?

아저씨      유 씨는 뽕밭의 세계를 몰러유. 진짜 몰러유.

            그, 그야 뭐 제가 뽕밭의 세계를 잘 알진 못하지만......아무튼 그 비바람이 몰아치

               는데 며칠 동안 집에도 안 오시고......정말 뽕밭에서..... .

아저씨      나야 한 이틀 못 들어와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지만, 뽕나무 잎사구들은 한 번 떨

               어지면 그걸로 끝장 아녀유. 그냥 생사가 갈리는 거 아녀유. 어디 잎사귀뿐이겠슈

                ? 뿌리까지 뽑혀져 나갈 판인데, 울어야지유. 껴안고 울어서 그 힘으로 뽕나무들

               이 살게 해야지유. 주인의 울음소리 듣구서 뽕나무들이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

               남게 해야지유.

            (왠지 조낸 심오한 얘기 같은데 뭐라 할 말이 없다)

아저씨      그래서 나는 울었네유. 뽕밭에서 울었네유.

 

 

 

 

동화를 쓴다더니 숫제 트로트 가사를 쓰자는 거? 내가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란 걸 눈치채셨나. 아무튼 아저씨도 나도, 아저씨 울음소리 듣고 살아남은 뽕나무들도, 비바람에 쓸려가지 않은 로시난테 자전거도, 부추밭도, 지붕도, 채송화도, 우체국도, 철길도, 길고양이들도, 조낸 반갑다. 살아남았으니 되었다. 살아남았으니 그것으로 다 된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다. 오늘은 나도 죽도록 안 넘어오는 그녀를 붙들고 하염없이 울어나 볼까. 뽕나무 같은 그녀 손목을 붙잡고 하염없이 하염없이 울어나 볼까. 아아, 내게 뽕나무 같은, 푸르른 뽕잎 같은 여자여.  (P.182~184 )

 

 

 

 

                                 -류근 산문집,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에서

 

 

 

 

 

 

 

 

 

 

 

   날씨는 겁나 더운데 할 일은 많은데, 그러면서도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

   음을'의 노랫말을 쓴... 류근 시인이 황막한 세상에 던지는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를

   며칠을 짬짬히 붙들고 읽었다.  

   염천의 개,처럼...여학교때 가사 시간에 올올이 수놓은 십자수처럼, 나팔꽃처럼 피어나는,

   숙취에 절어 술냄새가 책 밖으로까지 새어 나오는 습하고 뜨거운 시인의 산문을 읽는데

   왜 나는 또, 자꾸만 북풍한설 처럼 마음이 시리고 시린지.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의 아름다운 詩들이..새삼스레 아득하다,

 

 

 

 

 

            상처적 체질

 

 

 

 

          나는 빈 들녘에 피어오르는 저녁 연기

          갈 길 가로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내가 쓰러져 새볔까지 울던

          한 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치고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번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의 별빛들 때문에 깊이 다친다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

 

          안팎에서 수많은 봄날을 이룩하지만 봄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꽃들이 세상에 왔다 가듯

          내게도 부를 수 없는 상처의

          이름은 늘 있다

          저물고 저무는 하늘 근처에

          보람 없이 왔다 가는 저녁놀처럼

          내가 간직한 상처의 열망, 상처의 거듭된

          폐허.

          그런 것들에 내 일찍이

          이름을 붙여주진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으므로

 

          내 저무는 상처의 꽃밭 위에 거듭 내리는

          오, 저 찬란한 채찍  (P.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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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8-14 11:56   좋아요 0 | URL
여름하늘도 높고 파랗습니다. 곧 구월이 오며 가을빛 감돌 테지요.

appletreeje 2013-08-14 19:11   좋아요 0 | URL
예~~함께살기님께서 보여 주시는
여름하늘은 정말, 높고 파랗습니다~
예, 곧 구월이 오고 아름다운 가을빛도 만나겠지요~?^^

비로그인 2013-08-15 09:43   좋아요 0 | URL
내키는대로(꼴리는대로) 어디서 막 굴러먹다 온 것처럼 굴다가 그러면서도 낯가람을 꽤나 할 것 같은 사람,은 도처에 많겠지만 류근도 어쩌면 그런 시인 중에 하나일 것 같네요.^^

appletreeje 2013-08-16 00:07   좋아요 0 | URL
예~잘은 모르겠지만 컨디션님의 예리한 시각이 포착하신 것처럼 저도
류근 시인은 아마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ㅎㅎ

컨디션님! 좋은 밤 되세요~^^
 

 

 

 

 

 

 네가 나의 개인적인 일을 축하해주러 와서, 무척 반가웠고 행복했다. '태양의 노래'.

 둘이서 아구찜 하나 시켜놓고, 이슬 두 병 맛있고 시원하게 잘 먹어서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알로카시오,를 낑낑 차에 실어서 너의 집 베란다까지 잘 옮겨 놓고 와서 더욱 기뻤고.^^ 

 

 

 

 

 

 

 

 

 

 

 

 

 

 

 

 

 

 

그리고 네가 나의 모습,이라 말하며 직접 가마에 구워서 저 바구니에 담아 놓은 그 마음도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따로 내 작고 예쁜 이케아 책장에 놓았어.

우리, 잘 살자...지금처럼. 나도 저 컵처럼 잘 살려 애써볼께,

 

 

그리고 나는 내일, 네게 이 책을 선물로 보낼께야.

미팅때...Y에게 받았어.

너와 내게 너무 익숙한 사람의 책이잖아. '익숙해지지 않는 삶'.

세상은 이 밤도 여전히 저희들끼리.. 너무 소란해..그치? (아마, 속으론 저마다.. 외로운가봐, 아무리 소셜 네트워크나 스맛폰으로 소통한다고 믿어도.) 

그래도 델리 스파이스의 '챠우챠우'처럼, 너의 목소리가 들려...

굿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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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8-11 00:10   좋아요 0 | URL
마음과 마음으로 주고받는 선물이란
삶을 새삼스럽게 북돋우는 아름다운 빛이 되지 싶어요.

appletreeje 2013-08-11 09:58   좋아요 0 | URL
예~함께살기님 그래요. ^^
선물은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 일이니까요.

2013-08-11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12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3-08-11 20:51   좋아요 0 | URL
마음이............ 너무 따스해져서,
가끔, 아니 자주 알라딘 서재를 들러서 여유란 놈을 찾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아, 여름.........
내 여유는 여름이 뺏어가서 그래, 이렇게 탓을 하는 중이지만,
실제로는 제 자신 탓이겠지요. 줄창 달리는... ^^

넘 더워요, 그래도 여름이.. 헥헥.

appletreeje 2013-08-12 09:33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의 글이야말로 늘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시는....
늘, 기쁘고 반갑습니다~^^

아..아...정말 너무 더운 여름이예요...헉헉..
마녀고양이님! 소나기 같은, 팥빙수 같은 시원한 한 주 되세요~*^^*

후애(厚愛) 2013-08-13 11:14   좋아요 0 | URL
너무 아름답습니다~!!!^^
제가 다 행복합니다.*^^*

대구는 정말 덥습니다.ㅠㅠ
대구에서 도망가고 싶어요~ ㅋㅋ

appletreeje 2013-08-13 16:54   좋아요 0 | URL
아아~~후애님! 후애님!!
후애님께서 좋아하시니 제가 더욱 기쁩니다.

아침마다 대구 날씨 보며 걱정하곤 해요...
조금만 참으시면 또 곧, 서늘하고 아름다운 가을이
오겠지요~^^ ㅎㅎ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길찾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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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에 눌려 패배를 거듭한 인간, 그럼에도 자유를 지향하는 인간 본성을 마지막까지 움켜쥐었던 한 아나키스트의 이야기를, 아버지의 분신인 아들이 쓴, 깊은 헌정의 그래픽 노블.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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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9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10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3-08-09 17:57   좋아요 0 | URL
나무늘보님의 평을 읽으니 더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랑도 재미있게 읽고 있는 중이라 더 궁금해집니다.

appletreeje 2013-08-10 18:09   좋아요 0 | URL
요즘 만화책을 많이 보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으로 실감을 하며 읽었던 책이었던 것 같아요. 보슬비님께서도 그러실 것 같은, 좋은 책!

숲노래 2013-08-09 21:38   좋아요 0 | URL
'역사'는 여러 갈래로 보아야지 싶어요.
정치권력 흐름 하나,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밥과 옷과 집을 지으며 아름다움을 찾던 흐름 하나.

아무튼, 정치권력이란
작은 사람들을 짓누르거나 짓밟으면서 바보스레 흘러왔구나 싶어요..

appletreeje 2013-08-10 18:21   좋아요 0 | URL
예...이 책의 주인공이야말로 제국주의의 폭력과 정치권력 앞에서 가장 짓눌리며 자신이 원치 않는 지난한 삶을 살다가, 90세의 어느날 요양원 창문에서 하늘로 날아 갔어요. 그리고 요양원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로 아버지가 1일이 아닌 4일에 죽었기 때문에 월 시설 이용료인 34유로를 지불하라는 기막힌 편지를 보냈지요..이 일로부터 이 책의 태동이 시작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