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여론매체부 기자입니다. 한겨레에 글을 써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2005년, 갑자기 날아온 한 통의 메일에 화들짝 놀랐다. 진보신문의 대명사인 한겨레신문에 나 같은 사람이 글을 쓰는 게 말이나 되는가. 더 말이 안되는 건 메일의 마지막 대목이었다. "최근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나왔으니 천우신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 이 사건이 내가 칼럼을 쓰는 것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단칼에 거절했다. 다시 메일이 왔다. 또 거절했다. 이 과정을 한 번 더 되풀이하자 그쪽에서 연락이 왔다. 한번 만나자고. 얼굴이 안보일 때라면 모르겠지만 마주보고 앉아 부탁을 하는데 어떻게 거절을 하겠는가?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그와 난 굳은 악수를 나눴다. 앞으로 잘해 보자고.

 

 

 그 기자가 날 주목했던 건 인터넷 서점 사이트인 알라딘에 내가 썼던 글들 때문이었다. 내가 알라딘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기자는 내 글에 기본적으로 유머가 깔려 있다면서 그런 점이 좋다고 했다. 게다가 난 글을 쓰는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소재 발굴에 대한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었기에 3주마다 한 편씩 칼럼을 쓰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그 기자의 판단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마감을 넘기고 만 첫 번째 글부터 시작해서 글을 연재하는 1년 동안 난 시종 헤맸으며, 기자의 기대와 부응한 글을 쓴 건 두 번에 불과했다.

3주마다 있는 글 마감은 내게 지옥이었다.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가 지나치다보니 나머지 2주도 편히 지내질 못하기까지 했다. 알라딘에서 하루 3~4편씩 글을 쏟아내던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이유는 '너무 잘 쓰려고 발버둥을 쳐서'였다. 홈런을 치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타자가 삼진을 당할 확률이 높은 것처럼, 좋은 글을 쓰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재미있는 글이 나올 리는 없었다. 수만 명의 독자가 내 글을 본다는 생각에 난 잔뜩 주눅이 들어 버렸고, 20분이면 글 한 편을 뽑아내던 평소와 달리 컴퓨터 모니터 앞에 몇 시간을 앉아 있어봤자 몇 줄을 쓰기 힘들었다.

 첫 번째 칼럼을 쓰던 저녁, 참다못한 난 악마와 손을 잡는다. 이전에 동창 사이트에 써서 칭찬을 받은 글을 칼럼으로 우려먹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글의 요지는 이랬다.

 

 

TGI 프라이데이스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는 여러 종류의 음식을 시켜 서로 나눠 먹음으로써 상생의 정신을 기를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대표 음식인 삼겹살은 불판에 젓가락질이 난무하는 경쟁적인 음식이다. 우리나라 정치가 싸움질로 일관하는 건 혹시 우리나라가 삼겹살을 좋아하기 때문 아니냐.

 

 

 이 글을 읽은 동창들은 재미있다고 넌 정말 천재라고 날 칭찬했지만 한겨레 독자들은 달랐다.

 " 대학교수가 서양 물을 조금 먹었다고 저 정도니.....쯧쯧. "

 "우리 식문화에 대한 제대로 이해조차 없는 사람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요?"

 오마이뉴스의 한 기자는 장문의 반박글을 쓰기도 했다.

 "문제는 우리의 식문화를 천대하는 그의 의식에 있다. 글을 쓴 교수님께 묻습니다. 당신들이 채 익지 않은 핏빛 벌건 쇠고기를 즐기실 때 돈 없는 서민은 겨우 삼겹살로 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글들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 난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미국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데다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갔다. 또한 내가 삼겹살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삼겹살을 가르치는 건 아니다. 내 전공은 엄연히 기생충학이며, 학생들에게 당연히 기생충을 가르친다. 게다가 난 친구들 사이에서 삼겹살 매니아로 통하며, 그간 먹은 돼지들이 저승에서 단체로 날 기다리고 있을까봐 걱정하는 중이다. 물론 다음 댓글에는 격하게 공감한다.

 "이따위 글이면 나도 신문 칼럼 쓸 수 있습니다."

 이후에도 내 칼럼의 수준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1년이 다 되어갈 무렵에 한겨레에 전화를 걸어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안 그래도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 그만 쓰시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한 답변이 서운하면서도 고마웠고 역시 내가 있을 곳은 알라딘밖에 없다고, 앞으로는 다시 이쪽으로 발을 딛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칼럼을 그만두고 나니까 세상은 다시금 잿빛에서 푸른빛으로 변해 있었다. 원래 그랬던 것 처럼 여기저기에 부담 없는 글들을 쓰면서 살았는데, 그러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신문에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를 거의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칼럼을 썼다고 해 봤자 '그래서 어쩌라고?'란 반응이 돌아왔다. 직장 동료들이야 그렇다 쳐도 친한 친구들까지 내 칼럼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신문 아홉 부씩을 사서 친구들에게 돌리셨던 어머님밖에 없었다. 아무도 안 보는데 왜 나는 그렇게 신경을 썼을까 하는 아쉬움은 그로부터 3년 뒤 경향신문에서 제의가 들어왔을때 오래 생각하지 않고 수락하는 이유가 됐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기회라는 건 자주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한겨레에서 철저히 실패한 내게 경향에서 손을 내밀어 줬다는 건 고마운 일이었다. 제의가 왔을 땐 나 역시 손이 좀 근질근질하던 터였는데, 바로 거절하면 없어 보일까봐 생각해 보겠다고 전화를 끊었다가 10분이 채 못 돼어 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서민의 과학과 사회'라니, 테마도 근사했다. 이번엔 3주가 아니라 2주마다 칼럼을 보내야 했지만 난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화요일 점심이 마감이었는데, 난 대부분 그 전 주말에 글을 보내 줬으며, 심지어 두 편씩 보내서 "마음에 드는 글 실으세요."라고 부탁하는 여유를 부렸다. 만 3년간 글을 쓰면서 마감일에 쫓겼던 건 손에 꼽을 정도였고 글 한 편을 쓰는데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게 다 아무도 안 본다는 걸 알았기에 가능한 거였다.

 여유가 생기자 '평소 실력'이 그대로 나왔다. 한겨레 칼럼 중엔 특별히 주목받은 게 없었지만, 경향에 쓴 글들 중엔 그래도 널리 회자된 쪽이 더 많아졌다. "어쩌면 비판을 이렇게 재미있고 웃기게 할 수 있는지, 벤치마킹 하고 싶은 분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로 유명한 우석훈 선생은 어느 글에선가 이렇게 얘기하셨다. "서민 교수, 존경한다." 그렇다고 해서 길을 가다가 알아보는 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글을 쓰는 걸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어 보면 글쓰기에는 특별한 왕도가 없고,

 

다만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게 글을 잘 쓰는 유일한 방법이란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백일장에서 단 한 번도 상을 타지 못했던 내가 신문에 고정 칼럼까지 쓰게 된 건 순전히 알라딘 덕분인데, 거기서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읽게 됐고, 남들과 경쟁을 하며 하루 3~4편씩 글을 썼던 것도 아주 좋은 글쓰기 훈련이 되었다. 명색이 교수인데 연구도 별로 안하고 블러그질만 했다고 후회하던 그 시절이 사실은 오늘의 영광을 만든 셈. 그래서 젊은 학생들한테 말한다.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고, 블로그를 만들어 하루 한 편씩 글을 쓰라고. 블러그에 글을 쓰는 건 낭비가 아니라 먼 미래를 위한 저축이며. 10년쯤 그렇게 하면 나중에 큰 돈을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학생들 중에 내말을 새겨듣는 이는 드물었는데, 요즘엔 스마트폰이라는 엄청난 장난감까지 나왔으니 글과 가까워지기는 더 힘들어진 듯싶다. "아직도 그런 전화기를 쓰냐?"는 비아냥에도 내가 스마트폰을 안 사는 이유는 다 오래오래 칼럼니스트의 자리를 지키기 위함이다. 젊은이들이여, 칼럼니스트가 되어 보고 싶지 않은가? 내가 해 봐서 아는데, 굉장히 보람 있다.  (P.113~118 )  /  서민은 기생충학과 교수이자 칼럼니스트다.

 

 

 

                                                             -<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에서

 

 

 

 

 

 

 

 

  어제 보내온 <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를 읽다가, 문득 마태우스님의 글을 만나

  더욱 반갑고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 이 책을 읽었다. 

  꼭 책을 낸다거나 칼럼니스트가 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알라딘에서의 시간들이 내게도

  冊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또 다른 분들이 쓰신 훌륭하고  좋은 글들을 읽는 즐거움을

  매일매일 만날 수 있었으며... 또 공감할 수 있던 덕분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읽고 쓰는 일은, 어쩌면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보다 더

  재밌고 즐겁고 충만한 가치의 지향과 유연함으로 확장시키기도 하며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

  는 기쁨과 함께, 어쩌면 스스로에게 보내는 '즐거운 편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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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24 21:44   좋아요 0 | URL
글을 쓸 적에는
살가운 벗과 이웃과 살붙이한테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음이 되지 싶어요

appletreeje 2013-07-25 10:02   좋아요 0 | URL
예~~그래서 그 글들을 읽을때는
더욱 정답고 참 좋습니다~

2013-07-24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5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4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5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3-07-25 00:19   좋아요 0 | URL
ㅎㅎㅎ 나무늘보님 서재에서 마태님 글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요즘 넘 잘나가셔서 말걸기 망설여지기까지 하지요

appletreeje 2013-07-25 10:3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다가 깜짝!! 괜히.. 더 반갑고 좋았습니다~
아마 하늘바람님 글도 어느 책에선가 만나면,
다른 알라디너님들의 글들을 만나도 굉장히 기쁘고 반갑겠지요~?^^

하늘바람님! 오늘도 상쾌하고 좋은 날 되세요!~
 

 

 

 

 

 

                              탱자나무 카페

 

 

 

 

                           유자는 얽어도 손님상에 오르고

                           탱자는 고와도 똥밭에 구른다는 옛말 있다지만

                           탱자나무 제 처지 탓한 적 없을지니

                           그것만으로 그 심성 족히 짐작 가리라

 

                           햇빛을 좋아해서 저무는 석양 오래 기웃거리며

                           가만히 얼굴 붉히는 게 일과이고,

                           오전마다 계모임 하는 참새들의 수다를 묵묵히 들어주

                        면서

                           자릿값으로 고작 햇살 몇웅큼 받는 게 전부,

                           어쩌다 호랑나비 신사가 몸에 묻은 햇빛을 털어내며

                           어둑한 입구에 들어서기라도 하면

                           마담은 얼른 거울을 반짝이며 매무새를 고치곤 했다는데,

 

                           탱자나무 카페엔 가시 굴형 사이로 난 비밀통로와

                           허파꽈리 같은 밀실들이 하도 많지만

                           퇴폐업소 따위로 단속된 적은 한번도 없다는데,

                           스쿠루지 굴뚝새할아범이 들락거리며 맡겨놓은

                           금화들을 지키는 비밀금고라는 소문도 떠돌았고,

                           어떤 이는 거길 지날 때마다

                           촛불 빛이 창밖으로 새어나오는 걸 보았다 하고,

                           또 어떤 이는 익어가는 술 냄새가 제법 그윽했다는데,

 

                           탱자나무 카페엔 그 누구도 들어가본 적 없는

                           밀실 중의 밀실이 있으니

                           수다쟁이 참새들은 감히 얼씬도 못하는 곳이라네  (P.20 )

 

 

 

 

 

 

                              햇볕 아래 2

 

 

 

 

 

                             무덤 옆 풀밭 공터 귀퉁이에

                             이주노동자의 것인 듯한 여행가방 하나 버려져 있다

                             그 옆에 단정하게 놓인 낡은 구두 한켤레는

                             주인이 마치 허공으로 사라져버린 것을 증명하듯

                             땡볕 아래 환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어쩌면 육체이탈*중인지도 모르겠다

                             구름 속에 머리를 밀어넣자**, 신발만 남겨둔 채

                             온몸이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버렸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구름마저 사라지고, 쨍쨍한 햇빛이다

 

                             그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인가?

                             생각하노라니, 문득 내가 전생의 어느 별에선가

                             가방마저 버린 채, 신발마저 벗어놓은 채

                             허둥지둥 떠나왔던 것은 아닌가 싶다

 

                             호기심 많은 누가 열어보았는지

                             반쯤 벌어진 가방에

                             내의며 남방 몇벌 흐트려져 있다  (P.24 )

 

 

                             * '유체이탈(幽體離脫)'에 빗대어 만든 신조어.

                             ** 박진형 시인의 시, 홍창룡 화가의 그림제목.

 

 

 

 

 

 

                           노래

 

 

 

 

                            가설식당 그늘 그 늙은 개가 하는 일은

                            온종일 무명 여가수의 흘러간 유행가를 듣는 것

                            턱을 땅바닥에 대고 엎드려 가만히 듣거나

                            심심한 듯 벌렁 드러누워 멀뚱멀뚱 듣는다

 

                            곡조의 애잔함 부스스 빠진 털에 다 배었다

                            희끗한 촉모 몇 올까지 마냥 젖었다

                            진작 목줄에서 놓여났지만, 어슬렁거릴 힘마저 없다

                            눈꼽 낀 눈자위 그렁그렁 가을 저수지 같다

 

                            노래를 틀어대는 주인아저씨보다

                            곡조의 처연함 몸으로 다 받아들인 개가

                            여가수의 노래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

 

                            뼛속까지 사무친다는 게 저런 것이다

                            저 개는 다음 어느 생에선가 가수로 거듭날 개다

                            노래가 한 생애를 수술 바늘처럼 꿰뚫었다  (P.39 )

 

 

 

 

 

                                    -엄원태 詩集,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에서

 

 

 

 

 

 

 

 

 

 

 

 

 

이 아름다운 순간,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바치는 레퀴엠
육체적 고통의 삶을 끌어안는 ‘견딤의 시학’과 소멸하는 생에 대한 ‘쓸쓸한 긍정’을 서정적 명상의 언어로 노래해온 엄원태 시인의 네번째 시집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가 출간되었다. 12년의 공백기를 거쳐 나온 <물방울 무덤>(창비 2007) 이후 6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소멸의 운명을 타고난 존재들의 한계를 껴안으며 고통의 삶을 따듯한 시선으로 감내하는 마음을 성찰의 언어에 담아 소멸의 아름다움과 삶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다. “덧없이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기록이자 애도”(시인의 말)로서 애잔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간절한 시편들이 ‘지금 여기’ 살아 있음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가슴 서늘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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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23 11:56   좋아요 0 | URL
새도 개도
나무도 풀도
저마다 사람들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며
온누리에 고운 빛 뿌려 줍니다.

appletreeje 2013-07-23 15:07   좋아요 0 | URL
1987년부터 만성신부전증을 앓아온 시인의...그러나
병마에 시달린 자의 쓸쓸한 정서가 아니라 생의 순환을 정당하게
수용하려는 온화함의, 아름다운 詩集을 비가 많이 내리는 날..세상의 '빛'으로
감사히 읽습니다.
새와 개와 나무들과 타나 호수와 사람들의 이야기를요..

2013-07-23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3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3-07-23 20:27   좋아요 0 | URL
오늘 수락산에 장어 포장하면서 잠깐 청상병시인님 시가 있는곳까지 걸어가보았답니다. 살짝 산안개가 끼고 시를 읽으니 참 좋더라고요. 이제는 시하면 나무늘보님 생각이 나요. ^^

2013-07-23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는 내 친구 마이쑥 씨네 감자를 심고 우리 감자도 다섯 고랑 심었다. 친구네 마당가에 서 있던 분홍 상사화랑 컴프리도 몇 주 우리 밭으로 제금나왔다. 컴프리는 잎이 아주 크고 길쭉한데 비올 때 부침개를 하면 그만이다. 잎에 거칠거칠한 작은 털들이 나 있어서 뒤적이지 않아도 밀가루 반죽이 참 잘 묻는다. 바로 후라이팬에 올리면 큰 접시 가득 찬다. 내가 해본 것 중 세상에서 가장 간단하고 쉽고 부피도 많고 맛난 것이 컴프리부침개다. 참, 내 친구는 쑥국, 쑥버무리, 쑥인절미, 쑥부침개 등 쑥이 들어가는 것은 죄다 좋아해서 마이쑥이다. 나는 뽕잎, 오디, 하다못해 뽕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도 좋아해서 마이뽕으로 불린다.

 

 

 모종 끝내고 민들레랑 씀바귀를 채취했다. 씀바귀가 어릴 때는 왕고들빼기랑 비슷해서 이 초보 농사군은 아직 구별을 못한다. 그냥 맛있고 보드라워 보이는 어린 나물만 골라 놀아가며 신나게 캔다. 그 보드레하고 불그스레한 빛이 새나오는 씀바귀가 암세포를 억제하고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데 약효가 있어서 '신초'라 불린다는 것만 안다. 아직 잎과 뿌리가 작아서 먹기는 좀 그렇다. 데치고 덖어 차로 만들 생각이다. 우리 밭엔 왕고들빼기가 엄청 많다. 설탕을 넣고 발효시키면 박테리아도 억제시키고 면역력도 키워주는 아주 좋은 효소가 된다. 작년 여름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아까워서 효소를 담갔었다. 왕고들빼기가 내 키만큼 커서 햇빛을 가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몇 개 솎아냈는데, 그냥 버리기엔 아깝고 양도 무지무지 많았다. 그래서 마침 지심맬 때 나온 쇠비름과 함께 층층히 설탕과 함께 쟀다가 몇 개월 후에 잎은 건져내고 액체만 항아리에 보관했는데 아주 맛있고 담백하다. 오래될수록 항암효과도 높아진다니 식물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고 신비하다.

 

 

 오늘은 토란과 해바라기와 붓꽃을 심었다. 해바라기는 입구부터 울타리용으로 심고, 풀이 감당이 안 되는 윗밭에도 두 고랑 심었다. 올 여름엔 해바라기집이 되겠다. 토란을 심는데, 만나면 늘 기분이 쫙 퍼지는 콩할머니가 나물 몇 줌 쥐고 웃으며 지나가신다. "파마 하셨네. 예뻐요" 했더니 "그려? 이뻐?"하며 환하게 웃으신다. "저기 아래 비닐하우스 가서 달래랑 열무랑 상추랑 뽑아다 먹어. 아주 많어. 많이 갖다 먹어"하며 훠이훠이 내려가신다.

 

 

 농사라고 말하긴 겸연쩍지만 그래도 배우는 농부니까 열심히는 한다. 심어놓은 것도 보살피고 물도 주고 달래도 밭에 더 옮겨 심고 치마상추 옆에 콩할머니네 붉은상추도 옮겨 심었다. 일 끝내고 윗밭에 올라가서 쑥이랑 씀바귀랑 지칭개랑 냉이랑 민들레를 캤더니 오늘 밥상은 나물 밭이다. 냉이 달래 씀바귀 민들레는 야생초 김치를 담그고 민들레랑 냉이 조금은 장아찌 담그고 열무와 상추는 겉절이 하고, 야생초에 둘러싸여 이것저것 맛보다 보니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옛날 어머니들은 일하다 잠깐 짬내서 나물 캐다 데치고 무치고 겉절이 해서 상에 올렸다. 식구는 많고 먹는 건 금방이고 일거리는 지천인데 참 힘들었겠다. 하지만 행복은 일의 양과 물질의 풍족여부에 달려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단순비교는 못하겠지만 절대빈곤만 아니라면 옛날처럼 사는 게 훨씬 평화롭고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30년이 채 안 된 사이에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것들이 너무 많다. 고샅 나룻배 점방 물레방아 사립짝 바자울 까치밥...도리깨질 하는 소리 다듬이 소리 방아 소리 외양간 황소 울음소리 우물 두레박 똬리 물동이 부삽 부지깽이 지게...방울장수 엿장수 성주단지 터주 장독 뒤란...콩 볶는 소리와 화로에 군밤 튀어 오르는 소리 풀피리 불고 팽이 돌리고 깨금발 싸움하며 팔랑개비 들고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은 어디로 갔을까. 팔방놀이 줄넘기 하다 소나무에 매어놓은 그네를 딛고 하늘로 땅으로 오르내리던 그 시절이 있긴 했을까. "00야 노올자?" 담 너머 부르던 소리에 고샅으로 나가면 늘 놀 친구가 있던 그 봄은 어디로 갔을까.

 

 

 "00야 밥 먹어라!" 해걸음 이 집 저 집 아이들 불러들이는 어머니들의 목소리. 느티나무 아래 정각정에서서 놀다보면 담 너머 들려오던 그 따뜻한 소리. 외로울 시간이 없었던 가난하지만 풍요로운 곳. 늘 가마솥은 끓고 아궁이에서도 타닥타닥 무언가가 익어가던 날. 어울려 일하고 빙 둘러 앉아 먹던 밥상과 그 너른 마당은 어디로 갔나. 멍석 위에 누워 모깃불 연기 따라 올라가면 저 높이 하늘에 뿌려놓은 메밀꽃같은 별들이 하늘 가득 달려 있던 그곳, 그곳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P.18~21 )

 

 

 

                                            -김해자 산문집,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에서

 

 

 

 

 

 

 

 

 

 

 

 

 

  • 저자 : 김해자    
수상 : 2008년 백석문학상, 1998년 전태일문학상
최근작 :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휴먼필>,<당신을 사랑합니다> … 총 5종 (모두보기)
소개 :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조립공 미싱사 학원강사를 전전하며 노동자들과 시를 쓰다 1998년에 등단하여 시집 『무화과는 없다』, 『축제』, 민중열전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펴내고 전태일문학상과 백석문학상을 받았다. 김해자 시인의 최근 5년 동안의 이름은 나르시소스. 자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식음을 전폐하고 타자의 소리를 듣지 못한 신화 속의 미소년이 아니라 자기를 진실로 들여다보고 사랑하는 자만이 자기 안에 들어온 모든 형상과 형상 너머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노동자, 장애인, 사회운동가 들과 함께 문학과 예술치료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짬짬이 농사를 짓고 바느질을 하며 사는 노동자 나르시소스는 물속에 비친 자신과 세상과 사람들의 활동사진을 모은 책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를 기점으로 노동과 놀이와 밥이 일치하는 코뮤니타스를 본격적으로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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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21 19:04   좋아요 0 | URL
오, 김해자 아주머니(아주머니가 맞나......)가
예쁜 책을 새로 내셨나 보군요.

김해자 님 글은 그냥 믿을 만해서
즐겁게 찾아 읽는데,
고맙고 반갑습니다~

appletreeje 2013-07-21 21:49   좋아요 0 | URL
ㅎㅎ 아주머니 맞죠~ 1961년생이시니까요.^^
그런데 함께살기님께서 부르시는 아주머니,란 호칭이 참 정다워요.~
저도 <無花果는 없다>와 <축제>를 읽고 너무 좋았어요.
믿을 만한 글.
오늘 또 다시 이 책을 읽으니...참으로 행복했습니다. ^^

2013-07-21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1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녕미미앤 2013-07-21 23:05   좋아요 0 | URL
저도 씀바귀랑 고들빼기 구분 못하는데요^^;; 식물이름 다 아시는 분들 보면 부럽고 신기해요. '가난하지만 풍요로운 곳이 다 어디갔나..' 비슷한 글을 보면 괜히 배부르게 살고 있단 글 같아 갸우뚱 할 때가 있어요. 가난하지만 풍요롭게 살고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으로서 말이죠^^;; 정말 부러울까 싶은 ㅋㅋ ^^ 보통 부러워하긴 커녕 걱정만 해주시죠.

appletreeje 2013-07-22 10:27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씀바귀와 고들빼기 구분못해요.^^;;

드림모노로그 2013-07-22 12:19   좋아요 0 | URL
와 나무늘보님 덕에 좋은 책을 다시금 알게 됩니다.
김해자님의 책이 딱 제게 필요한 책 같아요 ㅎㅎㅎ~
제가 꿈꾸는 삶의 모습이 보여요 ㅎㅎ
나무늘보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고
더운 여름 건강 챙기시면서 ^^ 행복하게 보내세요 ~ ^^

appletreeje 2013-07-22 14:30   좋아요 0 | URL
와~드림님!! ㅎㅎ
언제 시간 되시면 꼭 읽어 보세요.^^
드림님께서도 참 좋아하실 책이지요~
그리고 시인의 <축제>도 꼭 권해드리고 싶어요.
이 詩集으로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수상여부를 떠나서
정말 좋았던 詩集이었어요. 좋은 책은 함께 하고 싶은...ㅎㅎ
드림님께서도 여름 건강 잘 챙기시고,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드림모노로그 2013-07-22 15:33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땡스투를 누른뒤 북카트에 담아놓았습니다 ㅎㅎㅎ
구매는 휴가 갔다와서 하려구요 ㅎㅎㅎ
언제나 좋은 책을 알게 되서 정말정말 감사드려요 ^^ ㅎㅎ
 

 

 

 

 

            이 슬픔을 팔아서

 

 

 

                 이 슬픔을 팔아서

                 조그만 꽃밭 하나 살까.

                 이 슬픔을 팔면

                 작은 꽃밭 하날 살 수 있을까.

 

                 이 슬픔 대신에

                 꽃밭이나 하나 갖게 되면

                 키 작은 채송화는 가장자리에

                 그 뒤쪽엔 해맑은 수국을 심어야지.

 

                 샛노랗고 하얀 채송화

                 파아랗고 자주빛 도는 수국,

                 그 꽃들은 마음이 아파서

                 바람소리 어느 먼 하늘을 닮았지.

 

                 나는 이 슬픔을 팔아서 꽃밭 하날 살거야.

                 저 혼자 꽃밭이나 바라보면서

                 가만히 노래하고 살거야.

 

 

 

                                                -李庭雨 詩選集, <이 슬픔을 팔아서>-

 

 

 

 

 

    시인이자 카톨릭 사제인 이정우 신부님의 詩 '이 슬픔을 팔아서'를 다시 읽어 본다.

    아까 아침에 함께살기님의 서재에서 대구 대륙서점 글을 읽다가, 올려주신 사진들속

    책방의 책꾸러미들 속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고 반가웠다.

  ' 이 슬픔을 팔아서'는 시인께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슬픔을 자식의 애달픈 마음으로 쓰신

    詩라 그때 전해 들었다. 그리고 이 詩를 가사로 '사랑의 이삭줍기'가 부른 '이 슬픔을 팔아서'도

    잔잔하고 참 좋다.. 1998년 어느 날, 산에 오르면서도 부르고..또 내 생일날인가 수화기 너머로

    좋은 사람이 이 노래를 불러줘서 가만히 들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 무렵 시인의 <앉은뱅이꽃의 노래>나 <흰 치자꽃을 머리에 꽂고>도 즐겁게 읽었다. 

    그리고 이 詩集들은 다 수녀님들께 선물을 하고, 몇년 전부터 다시 구하고자 하니

    이미 다 절판이라 더욱 애틋했다. 작년에 알라딘에 있길래 주문을 했는데..며칠 지난 후, 이

    책을 구할 수 없으니 자동으로 주문취소가 되었다는 문자만 떨러덩...그럼 왜 주문신청은

    받았나 화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좀 안타까웠던 일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특별한 추억이나 기쁨으로 읽었거나 지녔던 책들을 어찌어찌한 사연으로 보내고

    난 후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또 그 책들이 왈칵 생각나고 필요해지는 일들이 종종 있곤

    한데...그때는 이미 구하기가 어려워 안타깝고 아쉬움만 가득한데, 오늘 대륙서점의 책들을

    보니 왠지 괜히... 잃었던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반가움에 정말 좋았다.

    헌책방,은 그런 곳이로구나. 오래된 나무들로 된 책들을 갑자기 선물로 와락 만나는 곳.

    나뿐만 아니라 누군가도 그 책을 기쁘게 읽고 또 다시 그 책들을 마음밥으로 내 놓은 곳.

    이제 나도 이곳에 있는 헌책방들을 고운 벗과 함께 설레는 나들이를 해야겠다.

    그리고 나의 책들도 그런 마음으로 함께 헌책방에 내 놓으면서 말이다.

    어느덧 비가 내리고 날이 흐려진 토요일.. 저녁이 다가온다.

    다시금 '이 슬픔을 팔아서'를 읽으며, 저녁밥을 정성껏 지어야겠다. 좋은 저녁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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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20 19:5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아마 그 시집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 않으랴 싶어요.

대구 대륙서점을 언제 다시 찾아가서
그 책들 만날 수 있기를 빌어야겠어요 @.@

appletreeje 2013-07-20 21:05   좋아요 0 | URL
정말 함께살기님 덕분에 오늘
'이 슬픔을 팔아서'를 보게 되어 너무나 기뻤습니다~.

저도 대구 대륙서점, 불현듯 찾아갈 듯 싶습니다..^^

2013-07-21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1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패밀리마트

 

 

 

 

                             불 다 꺼졌다. 한 작은 젊음에게 맡겨두고 세상 잠들었

                          다. 밤새 편의점에서 젊음이 팔린다. 겉이 말끔한 비싼 가

                          게에서 겉이 말끔한 값싼 젊음이 팔린다. 있을 건 다 있는

                          가게에서 있는 건 젊음뿐인 젊음이 하루를 판다. 폐쇄회

                          로 카메라가 스물 네 시간 젊음을 팔고, 스물네 살 젊음이

                          스물네 시간 내내 팔린다. 까만 밤, 어항처럼 투명한 방에

                          갇힌 젊음이 뜬눈으로 꿈을 꾼다. 도저히 깨지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저 유리벽 속에서 갈 곳 없는 꿈이 뻣뻣한 지

                          느러미를 꿈틀댄다. 이력서 한 줄 채우지 못할 스물네 살

                          의 고단한 밤, 패밀리미트.  (P.38 )

 

 

 

 

 

 

                     늙은 개

                                 - 7월

 

 

 

 

                           홑이불

                           빨래 그늘 속에

                           늙은 개

                           배 깔고 누웠다

                           툇마루 낡은 기둥

                           중복 날짜 콱 박힌

                           종묘상 달력

                           실눈으로 꼬나보다가

                           일없다고

                           지그시

                           눈 감고 잔다

                           개가 저 정도는 돼야지

                           요즘 도시 개들은

                           개도 아니다   (P.108 )

 

 

 

 

 

 

                                      메밀국수

 

 

 

 

                             아버지가 내 나이를 먹었을 때였나. 농사꾼들 다 그렇듯

                           좋게는 못 먹어도 많이는 먹어야 힘을 쓰는 법인데, 하루

                           는 무슨 일로 아버지와 농사꾼 친구 하나가 서울엘 왔다

                           가, 밥때가 되어 이 집 저 집 식당을 찾다가는, 만만한 국

                           수로나 푸지게 배를 채울 요량으로 국수집 문을 밀고 들

                           어갔더랍니다. 칼국수 콩국수 잔치국수야 촌에서도 일쑤

                           먹는 것, 서울 사람 먹는 것 한번 먹어보자고 메밀국수를

                           한 판씩 시켰다지요. 한데 메밀국수 나온 걸 보니 손바닥

                           만 한 채반에 사리 한 덩이 달랑. 이걸로 무슨 요기가 되

                           나, 기가 차더랍니다. 서울 사람들 원래 많이 안 먹는다더

                           군, 물가가 비싼 데니 그럴 만도 하겠군. 둘은 서로 그럴

                           듯한 짐작을 주고받으며 섭섭한 식사를 마쳤답니다. 어쨌

                           거나 마뜩찮아도 먹긴 먹었으니 주머니 털어 돈을 내고

                           문을 나섰는데 식당 주인이 부리나케 부르더랍니다. 저

                           밑에 한 판은 왜 남기셨느냐, 먹다말고 왜 갑자기 나가시

                           느냐, 주인은 빤히 쳐다보고, 서울 사람들 턱마다 주렁주

                           렁 국수를 매달고 웃더랍니다. 오십 평생 메밀국수 처음

                           먹어 본 그들, 복 달아나게 무슨 음식을 포개주느냐고

                           들으란 건지 말라는 건지 툴툴거리며 서로 말도 없이 남은

                           국수 삼켜버리고는 바쁜 일이나 있다는 듯 나왔다는 겁니

                           다. 아버지 지금도 오다가다 그 얘길 하며 메밀밭처럼 흐

                           드러진 웃음 쏟아놓곤 합니다.  (P.52 )

 

 

 

 

 

 

                                     뉘우침

 

 

 

 

                              불국사 부처님을

                              뵈러 갔더니

                              삼십 년 만인데도

                              옛적 그대로

                              아래만 내려보고

                              계셨습니다

 

                              그동안 턱 치켜들고

                              이겼다 생각하며

                              살았던 날들이

                              치욕인 듯 아파 와

                              석탑 따라 우두커니

                              겨울비 맞고

                              서 있었습니다   (P.64 )

 

 

 

 

 

 

                           연리지(連理枝)

                            -어느 신부에게

 

 

 

 

 

                          연리지 되시기를

 

                                햇살이 반듯한 언덕에

                                미더운 깊이로 뿌리를 묻고

                                가장 실팍한 가지 내밀어 서로 맞잡고

                                똑같이 키 크는 나무 한 쌍 되시기를

 

                                푸르른 날에는 함께 숲을 이루고

                                바람 찬 날에는 함께 바람을 이기는

                                그렇게 손 붙잡고 하늘 향해 돋움하는

                                맑은 잎 주렁주렁한 나무 한 쌍 되시기를

 

                                겨울 오면 제 잎 떨궈 짝의 몸 덮어주고

                                빈 들 스산해도 얘깃거리 더 소복한

                                그때 뿌리는 언 땅보다도 더 굳게

                                서로를 참으로 꼭 쥐고 놓지않는

                                힘센마음 가진 나무 한 쌍 되시기를   ( P.82 )

 

 

 

 

 

                                            -오성일 詩集, <문득, 아픈 고요>-에서

 

 

 

 

 

 

 

 

 

 

 

 

   햇님이 쨍하게 나왔다가

   실컷 울고도 미처 남은 아기 울음들이 흑흑..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이 또 다시 낯빛이 흐리다가, 또 햇님이

   미련을 가진 듯 얼굴을 내미는 그런 날. 창밖에서는

   새가 짹짹짹..울고.

   오성일의 차분하고 아름다운 詩集 <문득, 아픈 고요>를

   읽다, [영주사과]란 시에 마음이 오랫동안 머문다. 영주사과

   는 아주 오래전의

   내 시간들 속에서 사과껍질에 촘촘히 박힌 점들조차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보였던 그런 아름답고도 각별한 추억

   으로 언제나 마음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꽃이 진다고 너를 잊을 수 있나,'

   그런 영주사과가 이 詩集안에선, 영등포 청과시장 길바닥에

   굴러 떨어진 난생 처음 서울 올라온 경상도 영주 사투리로 자란 촌놈으로

   두 볼이 한껏 발그레해져 때깔 좋은 과일마다 눈침을 놓고, 그것도 모자라 지나가는 처자

   몸매가 꼭 부석사 선묘낭자마냥 좋다고 엉큼스런 눈길을 흘리다가는 화들짝 놀란 치맛자락에

   쓸려 영등포 청과시장 길바닥에 보기좋게 나가떨어진 영주사과, 저 저 촌놈.으로  따순 웃음을

   주는구나~.

   부석면 북지리 볕 좋은 언덕/ 봉황산 정기 먹고 힘 좋은 저 놈/ ... / 알도 안 여문

   것이 발랑 까져서/ 그 동네 꽃사과 여럿 건드렸던 놈/ ... / 서울 간다고 물색없이 들떠서/ 사과

   박스 작은 구멍으로/ 말똥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온 놈/ 서울 와서는 촌놈 행색 감춘다고 이마

   를 반질반질 매만지고 두 볼이 한껏 발그레해진 저 놈/ .

 

 

 

 

 

 

'문학의전당 시인선' 157권. 시집 <외로워서 미안하다>를 펴낸 오성일 시인의 시집. '화선지에 물감 번지듯 눈물이 스미고 미소가 퍼지는 소박한 詩' 한 줄을 꿈꾸는 오성일 시인은 외로움 너머에서 시의 언어를 건져 올리는 시인이다. 그의 시 속에서 소박한 삶 속에 머무는 시혼과 구김 없이 참된 목소리를 내장한 한 사람의 조용한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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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미미앤 2013-07-19 14:48   좋아요 0 | URL
크학, 패밀리마트 읽으면서 저 SF인줄 알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아닌 거 맞죠? 끝까지 읽다보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하하하하 서글픈 글이었네요^^;;

appletreeje 2013-07-19 23:26   좋아요 0 | URL
오오...SF!
이 시를 SF로 아신 울 안녕미미앤님은 사랑스러운 분이에요. ^^
정말...누구든지 이 詩를 그렇게 만날 날을 울 미미앤님덕분에 순수하고 기쁘게
소망하는 밤입니다~

2013-07-19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19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7-20 00:05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이제 '패밀리마트'는 사라졌군요.

하나도 '패밀리'스럽지 않으면서
그나마 이름은 '패밀리'였는데요..

appletreeje 2013-07-20 00:36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이제는, CU.
상호가 어떻게 바뀌었든 그 안의 젊음은 여전히 고단하게 젊음을 팔겠지요..

보슬비 2013-07-20 13:42   좋아요 0 | URL
우리집 늙은개는 개껌 달라고 둥그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불쌍한 눈빛으로 제 동정심에 매달리고 있어요. ^^;; 역시 도시개는 개도 아니네요. ㅎㅎ

appletreeje 2013-07-20 14:34   좋아요 0 | URL
토토 사진 보면..눈빛이 넘 애절해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것 같아요~ㅋㅋ
위의 '늙은 개'를 읽다가 행복한 개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생각은
토토가 더 행복한 개같아요.^^ 보슬비님 가족의 사랑 듬뿍 받으며 사니까요~
도시개는 개가 아니지요, 사람이지요..ㅎㅎ

오성일 2013-09-13 17:5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나무늘보님, 부족한 시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을 안부 전합니다. 자연과 더 많이 눈 맞추고 귀 기울이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오성일 드림

2013-09-13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