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가면 그녀는 다른 과일에 대해서는 까다롭지 않는데 복숭아는 무척 까다롭게 고집한다. 참외나 수박이나 자두는 과일가게 주인이 골라주는 대로 받아오는데 복숭아는 황도, 백도, 천도, 수밀도를 종류별로 이렇게 비교해보고 저렇게 비교해본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복숭아를 까다롭게 고른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그녀는 몰라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남편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20년 전 그녀의 집에 처음 인사 갔을 때 마당가에 커다란 복숭아 나무가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나무에 주먹만 한 복숭아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보통 가정에서는 복숭아나무를 울 안에 잘 심지 않는데(복숭아나무가 귀신을 쫓아 조상의 혼령까지 집에 못 들어오게 해서), 그런 걸 가리지 않는 그녀의 아버지가 여름 과일 중 유독 복숭아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아예 마당가에 심은 나무라고 했다.

 그 복숭아는 그녀의 부모님이 살아계시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마다 여남은 개씩 아주 특별한 포장과 특별한 이동경로를 거쳐 서울로 올라오곤 했다. 남편의 입엔 다른 복숭아와 별 차이가 없는데 아내는 시장에 가면 그 복숭아와 빛깔도 맛도 비슷한 것을 찾아 이 복숭아 저 복숭아를 만진다.

 원래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과일은 어린 날 자기 집 마당가에서 내 손으로 따 먹던 과일이다. 그것은 어린 날의 꿈과 사랑과 추억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나무에 남다른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남보다 아름다운 시절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   (P.206~207 )

 

 

 

 

 

에필로그

나의 별친구에게

 

 

 

 예하님.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계시나요? 햇수로 벌써 17년이나 지났습니다. 우리는 예하 님이 서른 무렵, 그리고 제가 서른아홉살 때, 아직 이 땅에 인터넷이 시작되기 전 PC통신에서 만났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하 님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대략 미루어 짐작하는 나이와 그것이 본명이 아닌게 분명한 예하라는 닉네임뿐입니다.

 돌아보면 그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로 '하쿠타케'라는 이름의 혜성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혜성 소식을 듣던 날 저는 어떤 책의 서문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북쪽 끝 스비스조드에 높이와 너비가 각각 1마일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인간의 시간으로 1,000년에 한 번씩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날카롭게 다듬고 가는데, 그렇게 해서 바위가 닳아 없어질 때 영원의 하루가 지나간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사람은 참 작지요. 그렇지만 저는 우리 인간의 인연과 사랑도 저런 불멸의 시간과도 같은 우주의 한 질서로 파악하고 그런 운명과 인연과 사랑의 연속성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의욕만 그럴 뿐 그러나 저는 천문학이나 혜성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커녕 그것을 소설에 활용할 일반적 지식조차 없었습니다.

그때 예하 당신을 알았습니다. 제가 먼저 다가갔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 그때 이미 잊었습니다. 그 시절 PC통신이야말로 우주의 바다 같았습니다. 당신은 우주의 먼 별에 있는 친구와 교신하듯 몇 달 밤을 새워가며 PC통신으로 우주와 별과 천문에 관한 지식과 일화를 얘기해주었습니다. 제 소설 [은비령]에 쓰여 있는 별과 우주와 천문에 관한 짧은 지식들이 모두 그때 예하님께 듣고 배운 것입니다.

 그 작품으로 어떤 문학상을 받게 되었을 때 수상 소감에 예하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후에도 몇 번 더 그런 기회가 있었지만 당신은 비껴지나가는 혜성처럼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7년이 흘렀습니다.

 며칠 전 파란닷컴에 접속했다가 파란닷컴 서비스가 2012년 7월 31일 24시에 종료한다는 안내장을 보았습니다. 파란닷컴이 바로 우리가 만났던 PC통신 HITEL을 이어받은 것인데, 제가 예하 님을 만나 [은비령]에 도움을 받았던 것도 이제 PC통신 추억 저편으로 사라지는구나 싶은 묘한 기분 속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당신을 참 오래 생각했습니다.

 예하 님.

 강원도 인제군에 가면 이제는 소설 속의 지명이 아니라 실제 '은비령'이라는 마을도 있고 고갯길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제가 예하 님의 도움을 받아서 쓴 소설 [은비령]이 나온 다음 소설 속의 고개 이름과 마을 이름이 그곳을 찾는 독자들과 마을 주민들에 의해 실제 지명으로 바뀐 것입니다.

 나는 이땅에서 내게 주어진 삶을 다하면 그곳 은비령으로 갑니다.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이미 말해두었습니다. 가서 묻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흰 뼛가루로 뿌려져 그곳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하루타케 혜성처럼 한번 떠난 다음 영원히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않는 별을 기다릴 것 입니다.

 그리고 예하 님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게 언제일지 모르지만 내가 은비령으로 아주 떠난 다음 혹 설악을 찾거나 한계령을 찾는 길에 은비령을 지날 일 있으면 예전 PC통신 시절 우리가 별과 우주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던 방제 그대로 '어느 별에서의 들꽃 통신'처럼 제 이름 한 번 불러주고 그 고개 은비령을 지나가길 바랍니다.

 예하 님이 부르면 제가 그곳의 나무로 바람으로 꽃으로 잎으로 손을 흔들어 나 여기 있다고, 여기서 당신을 기다렸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별이 쏟아지는 밤에 그 길을 지나며 제 이름을 부른다면 그때는 하늘에 흐르는 꼬리별처럼, 혹은 당신이 설명해주었던 살별처럼 소리 없는 빛으로 당신 가슴에 제가 있는 곳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어디에 있든 예하 님, 당신은 늘 건강하셔요.   (P.272~275 )

 

 

 

 

                                            -이순원 한모금 소설, <소년이 별을 주울 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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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6-10 11:32   좋아요 0 | URL
모든 아이들이 태어날 때에
부모가 아이한테 나무 한 그루씩 심어서
오래오래 돌보며 아끼도록 해 주면
모든 아이들이
시인 되고 소설가 되며
삶 일구는 살림꾼 되겠지요

appletreeje 2013-06-10 18:31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게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나무 한 그루씩 심어 준다면..참 아름다운 삶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

2013-06-10 12: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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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0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3-06-10 20:19   좋아요 0 | URL
나무늘보님께서 색을 입히신 ' 나무에 남다른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남보다 아름다운 시절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 ' 말에 많이 공감하고 갑니다. 이제 나무만 보면 나무늘보님 생각나요.^^

appletreeje 2013-06-10 20:59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나무에 매달려 사는, 나무늘보. ㅋ,

2013-06-10 2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0 2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1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1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눈먼 올빼미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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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도록 매혹적,인 책이다. 20대초 ` 청춘`이었을 때처럼 순수하고 흡족한 독서였다. 폐부를 찌르는 深淵의 아름다운 문장과, 아름다운 삽화와, 독특한 장정도 뛰어나다. 여러 번 되풀이 해 읽어야 할 소설. 혜화동의 밤에 내게, 이 책을 가져 간 그분께도 좋은 선물이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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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9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9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3-06-09 15:15   좋아요 0 | URL
책정보 살펴보면서 북디자인을 봤는데, 정말 독특하네요. 궁금해서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어요. 아마도 이번 분기에 신청하는 마지막 도서가 될듯 싶어요.

좋은책 소개 감사합니다.~~

appletreeje 2013-06-09 15:38   좋아요 0 | URL
정말 독특하고 마음에 쏙, 드는 책이에요. ^^
책이 거의 270도로 펼쳐져 그냥 앉아서 허벅지(ㅋ,)위에 놓고
읽어도 정말 편하니 좋더군요. ㅎㅎ 책의 앞 뒤 표지그림도 아름답고,
실밥이 보이고 그 위에 천으로 덧댄 타이틀도 새롭고 좋았어요.

내용은 아주 어두운 내면과 환영을 이끄는, 인간이 지닌 여러가지 가면을
놀랍도록 환상적으로 보여주는데...여러 번에 걸쳐 다시 읽어야 할 그런 책이지요.
게다가 책 안의 올빼미 삽화,가 정말 아름답고 신비해 보면서 매번 감탄이 나왔어요. 보슬비님께서도 읽으시면 아주 마음에 드실 책 같아요.~*^^*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개울물이 밤새 닦아놓은 하늘로

                          일찍 깬 새들이

                          어둠을 물고 날아간다

 

                          산꼭대기까지

                          물 길어올리느라

                          나물들은 몸이 흠뻑 젖었지만

                          햇빛은 그 정수리에서 깨어난다

 

                          이기고 지는 사람의 일로

                          이 산밖에

                          삼겹살 같은 세상을 두고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나는 벌레처럼 잠들었던 모양이다

 

                          이파리에서 떨어지는 이슬이었을까

                          또 다른 벌레였을까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P.40 )

 

 

 

 

 

                         별 만드는 나무들

 

 

 

 

                           내설악 수렴동 들어가면

                           별 만드는 나무들이 있다

                           단풍나무에서는 단풍별이

                           떡갈나무에선 떡갈나무 이파리만 한 별이 올라가

                           어떤 별은 삶처럼 빛나고

                           또 어떤 별은 죽음처럼 반짝이다가

                           생을 마치고 떨어지면

                           나무들이 그 별을 다시 받아내는데

                           별만큼 나무가 많은 것도 다 그때문이다

                           산에서 자 본 사람은 알겠지만

                           밤에도 숲이 별처럼 술렁이는 건

                           나무들이 별 수리하느라 그러는 것이다  (P.63 )

 

 

 

 

 

                         국수가 먹고 싶다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 자국 때문에

                            속이 휜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P.52 )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 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P.72 )

 

 

 

 

 

                             어둠

 

 

 

 

                             나무를 베면

 

                             뿌리는 얼마나 캄캄할까   (P.80 )

 

 

 

 

 

                         기러기 가족

 

 

 

 

 

                          - 아버지 송지호에서 좀 쉬었다 가요.

 

                          - 시베리아는 멀다.

 

                          - 아버지 우리는 왜 이렇게 날아야 해요?

 

                          - 그런 소리 말아라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 것들이 많단다.  (P. 82 )

 

 

 

 

 

                                          - 이상국, <2013 제2회 박재삼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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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6-08 09:48   좋아요 0 | URL
나무는 고운 씨앗 널리 흩뿌렸을 테니
'나무'줄기가 잘리더라도
뿌리는 '나무'뿌리로 남아
어린'나무' 자라는 모습
즐겁게 지켜보리라 믿어요

appletreeje 2013-06-08 10:32   좋아요 0 | URL
그렇겠지요~?
함께살기님의 아름다운 말씀을 들으니
오늘도 제 마음이 환하게, 웃음 짓습니다. ^^

2013-06-08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8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3-06-08 13:21   좋아요 0 | URL
애플님, 초록색으로 시를 읽으니 참 좋네요.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에서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제 바람을 건드렸나봐요.

시란, 참............... 참..............
언어도 그렇구요. 즐거운 주말되셔요.

appletreeje 2013-06-09 03:56   좋아요 0 | URL
요즘 날이 너무 무더워서 그런지
초록의 서늘함과 고요함이 좋아요. ^^
.. .
가만 생각해보면..늘 누군가...이름을 부르고 있는 듯 해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에..늘 함께 하는 마치 새벽같은 얼굴들이요,

마녀고양이님! 좋은 주말 되세요.~*^^*

보슬비 2013-06-08 16:53   좋아요 0 | URL
기러기 가족 읽다가 웃음이 났어요. ㅎㅎ
마지막에 올려주시는 센스... ^^

좋은 주말 보내세요~~

appletreeje 2013-06-09 03:59   좋아요 0 | URL
기러기 가족. ^^
.....
보슬비님! 께서도 좋은 주말 되세요.~*^^*

2013-06-08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9 0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벽에 불현듯, 오래 전

    이철수님의 판화  --이 마음,을 깨웠다.

    그리고

    2000년, 11월 늦가을 저녁

    인사동 학고재에서 열린 '이렇게 좋은 날' 판화전을

    보고 나오는 저녁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당신이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르겠지-

    문득 오늘,의 내가 묻는다.

    나는 '그렇게, 걷고 또 걷고' 있는가.  지금,

    어느덧, 나의 길을 그렇게 온 몸과 마음을 다해 걷지 않게 된

    부끄러움이 깊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당신의 길을/ 함께 걸으면/ 언젠가/ 우리들의 길이라/ 부르게 되겠지 -

    라는,-우리들의 길-

    그대들과 함께 걸어갈 수 있어,  참 감사하고 다행이다.

    오늘 저녁은, 사랑하는 그대들과 함께 하는 기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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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6-06 08:56   좋아요 0 | URL
오솔길은 작은 짐승과 함께 걷고
숲길은 나무와 나란히 걷고
마을길은 이웃과 같이 걷고
삶길은 아이들과 즐겁게 걸어요

appletreeje 2013-06-06 10:31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함께 걷고, 나란히 걷고
이웃과 같이 걷고, 아이들과 즐겁게 걷는
길이겠지요. ^^

2013-06-06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6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3-06-06 21:46   좋아요 0 | URL
요즘 신랑과 걷기 시작하면서 대화도 더 많아지고, 우리동네 주변도 더 살펴보게 되면서 더 애정이 생기게 된것 같아요. 나무늘보님 글을 읽으니 더 행복해지네요. *^^*

appletreeje 2013-06-07 08:57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런 듯 싶어요. ^^
이제는 함께 길을 걸어가는 삶이
참 감사하고 행복해요.~*^^*
 

 

 

 

 

                누가, 인간에게 원숭이를 죽일 수 있는 권리

                를 주었나

 

 

 

 

                        1985년 대학 1학년 일반 물리학 중간고사 때 일이다

                        y축으로 y높이의 전봇대가 서 있고, X축으로 X거리 떨

                       어진 곳에 포수가 서 있다. 전봇대 위의 원숭이 한 마리가

                       앉아 있다가 실수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원숭이를 맞추려

                       면 포수는 몇 도 각도로 총을 쏘아야 하는가?

 

                         정답이 아크탄젠트 y분의 x이든, x분의 y든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정답대신 질문을 해야했다

 

                         사람에게 원숭이를 죽일 수 있는 권리를 누가 주었나요

                       사람이라면 떨어진 원숭이를 치료해서 다시 숲으로 돌려

                       보내야 하지 않나요

 

                         F학점을 맞고 결국 공학도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 28년

                       이 지난 지금 아크탄젠트를 정확히 푼 친구들은 대학 교

                       수도 되고 대기업 임원도 되고 잘 살고 있다 나는 삼류 시

                       인이 되었고 여전히 그때의 질문을 풀지 못하고 있다

 

                        누가, 인간에게 원숭이를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주었나  (P.13 )

 

 

 

 

 

                      식구

 

 

 

 

                         사납다 사납다 이런 개 처음 본다는 유기견도

                         엄마가 데려다가 사흘 밥을 주면 순하디순한 양이 되

                      었다

 

                          시들시들 죽었다 싶어 내다버린 화초도

                          아버지가 가져다가 사흘 물을 주면 활짝 꽃이 피었다

 

                          아무래도 남모르는 비결이 있을 줄 알았는데,

                          비결은 무슨, 짐승이고 식물이고 끼니 잘 챙겨 먹이면

                       돼 그러면 다 식구가 되는 겨   (P.15 )

 

 

 

 

 

                        아내

 

 

 

 

                             다림질 하던 아내가 이야기 하나 해주겠단다

 

                             부부가 있었어. 아내가 사고로 눈이 멀었는데, 남편이

                          그러더래. 언제까지 당신을 돌봐줄 수는 없으니까 이제

                          당신 혼자 사는 법을 배우라고. 아내는 섭섭했지만 혼자

                          시장도 가고 버스도 타고 제법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

                          게 되었대.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버스에서 마침 청

                          취자 사연을 읽어주는 라디오 방송이 나온거야. 남편의

                          지극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아내가 혼잣말로 그

                          랬대. 저 여자 참 부럽다. 그 말을 들은 버스 기사가 그

                          러는 거야. 아줌마도 참 뭐가 부러워요. 아줌마 남편이

                          더 대단하지. 하루도 안 거르고 아줌마 뒤만 졸졸 따라

                          다니는구만. 아내의 뒷자리에 글쎄 남편이 앉아 있었던

                          거야.

 

                              기운 내 여보

 

                              실업자 남편의 어깨를 빳빳이 다려주는 아내가 있다

                              영하의 겨울 아침이 따뜻하다    (P.41 )

 

 

 

 

 

 

                         그때는 미처 몰랐제

 

 

 

 

 

                            젊었응께 어렸응께

                            정말로 그때는 미처 몰랐제

                            서른둘에 이장 되어서 내가 처음 한 게

                            나무를 벤기라

                            마을 어귀 삼백 년 된 늙은 느티나무를 베어낸 기라

                            길을 내야 했거든

                            봐라 저 휑한 길을, 저 흉한 걸 내가 만든기라

                            어르신들 반대를 무릎쓰고

                            공약을 지킨 기 그땐 그리 자랑스러울 수 없었는데

                            젊었응께 어렸응께

                            저 신작로를 따라 사람들이 하나둘

                            마을을 떠날 줄 몰랐제

                            이리 될 줄은 이리 텅 빌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제

 

                            내가 사람을 벤 기라

                            나무를 벤 기 아니라 사람들을 벤 기라   (P.85 )

 

 

 

 

                                                                 -박제영 詩集, <식구>-에서

 

 

 

 

 

 

    自序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는데 의지하는 것이니, 만

   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을 먹는 이치를 아는 데 있다 天

   依人 人依食, 萬事知食一碗"는 해월 선생의 말씀은 일종의 생태우

   주론이다. 식구론이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흡사 가마솥 같다는 생각을 한다.

   흙과 물과 공기 그리고 거기에 기댄 모든 생명체들이 한솥밥

   을 먹고 사는 식구라는 생각을 한다.

 

   식구

                                          한솥밥을 먹는 둥글고 둥근 입이

                                          한울이다

 

                                          한 식구가 모여 한 세상을 이룬다.

                                          그 한 마음으로 시집을 묶는다.     

 

                                                                                                         2013년  봄날

                                                                                                                 박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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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4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5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4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5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6-05 07:07   좋아요 0 | URL
나무와 시골과 삶과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와 사람(이웃)을 만나면
참 즐겁고 반갑습니다.

appletreeje 2013-06-05 11:2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함께살기님.
요즘은 감각적이거나 멋을 부리려고 하는
시나 사람들보다
나무와 시골과 삶과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시나 사람(이웃)이.. 더 반갑고 마음속으로 정말 좋습니다. ^^

후애(厚愛) 2013-06-05 15:38   좋아요 0 | URL
늘 좋은 책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appletreeje 2013-06-05 22:11   좋아요 0 | URL
제가 더 감사해요. ^^
후애님!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