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연인들

 

 

 

 

                         당신의 눈동자가 지워지고 있다 내 오른 손이 당신을 향

                       할 때 눈동자에서 피어나는 꽃잎

 

                         당신의 발이 놓였던 길목마다 그늘이 놓였다가 사라지

                       고 꽃잎이 부유하는 순간

 

                         고개 숙인 발밑에 작은 우물이 생긴다 우물 위로 쏟아

                       지는 당신의 눈빛 그리고 잠시 머리위에 머무는 구름

 

                         당신과 나의 관자놀이를 겨눈 방아쇠, 수천의 꽃잎이 제

                       목을 꺾으며 낙하한다 흩날리는 꽃잎 사이 몸을 숨긴 피카

                       소가 어린 애인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P. 27 )

 

 

 

 

                        물고기의 노래

 

 

 

 

                         지금 내 몸을 흔드는 것이

                         네가 지나간 여정이라면

                         나는 기꺼이 이곳에서 길을 잃을 텐데

                         수초처럼 긴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후렴구처럼 오래오래

                         네 귀를 쓰다듬어 줄 텐데

 

                         물살을 끌어안으며

                         투명한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물고기의 노래를 듣는다  (P. 30 )

 

 

 

 

                        덤보로부터 덤보에게

 

 

 

 

                            난 또 다른 무게에 대해 생각 중이야 엄마, 오래전 엄마

                          의 겨드랑이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든 적이 있어 겨드랑이는

                          어둡고 좁았지만 내겐 늪처럼 아늑했어

 

                            매일 밤 눈을 감으면 코끼리가 하늘을 날아다녔지 커다

                          란 귀가 펄럭일 때마다 아이들은 발을 구르며 함성을 질렀

                          어 최고의 비행사 우리의 덤보. 하지만 엄마, 하늘을 나는

                          덤보의 몸은 왠지 쓸쓸해 보였어 덤보는 바람에 쓸려 다니

                          는 푸대 자루 같았거든 그런데 오래전 내가 놓친 풍선들은

                          지금 어디쯤에서 비행 중일까

 

                            지금 나는 발목이 드러나는 살구색 담요를 덮고 큼큼

                          엄마 냄새를 떠올리는 중이야 그리고 커다란 귀를 펄럭이

                          는 덤보를 상상해 너무나도 가벼운 자세로 하늘을 날아다

                          니는 거대한 푸대 자루와 그 가벼움이 주는 어색한 웃음

                          에 대해, 엄마 어쩌면 난 매일 같은 꿈을 꾸기 위해 잠이

                          든 건지도 모르겠어 내가 덤보가 되는 꿈 그런데 엄마, 누

                          가 우리의 귀를 모두 잘라간 것일까   (P. 59 )

 

 

 

 

                         로빈슨 크루소에게

 

 

 

 

                           비오는 거리예요

                           저만큼 내려앉은 하늘을 봐요

                           명징한 것은 모두 구름 위에 있어요

                           이곳의 풍경은 너무 낯익어서

                           사람들은 자주 길을 잃어버려요

                           단장을 쥔 노인의 등은 조금씩 기울어지고

                           엄마 손을 놓친 아이의 눈동자는

                           친구 몰래 주머니에 감췄던 유리구슬을 닮았어요

                           구름 속을 누군가 지나가고 있어요

                           여기예요,

                           여기까지가 나랍니다

                           창밖의 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어쩌면 이곳은 지나치게 관대한 곳인지도 모르겠어요

                           고여 있는 빗물이

                           발자국을 지우고 있거든요

                           여전히 비오는 거리예요

                           섬이예요

                           발자국의 시작이자 끝인,   (P. 74 )

 

 

 

                                                                    -한세정 詩集, <입술의 문자>-에서

 

 

 

 

 

 

   비가 온종일 잠결처럼 내리는 날,

   민들머리 형형한 눈빛의 피카소와 그의 총천연색,들 같은

   연인들을 생각한다. 총천연색으로 제각각의 사랑을 쏟아 붓던,

   민들머리 피카소의 연인들..울고 웃고 성내다 다시 미소짓는..,

   물고기들에게 물 속은 공기 속, 일 것이다.

   자유롭게 헤엄을 치며 놀며 먹으며 배설을 하며 살아가는.

   그런데 우리 집 물고기들은 날랜 몸짓으로 춤을 추며,

   고막속의 나팔꽃,처럼 노래를 부르지만

   나의 귀는 그 노래를 듣지 못해 다만..뻐끔뻐끔 웃고 있다.

   빗소리는 수영장에서 유영을 하듯 잘 듣고 있으면서 말이지,

   < 아기 코끼리 덤보>는 나에게도 아들들에게도 서커스단

    속에서  엄마코끼리가 덤보를 바라보는 것처럼 여전히 커다란 

    귀를 펄럭이며 신나게 하늘을 날아 다니는데, 왜..디즈니가 동화

    를 환각처럼 만들었을까? 비가 오는 날 만들었을까?

 덤보하니까, 또 '꼬마 깜둥이 삼보'까지 떠오르네. 깜둥이가 뭐야, 에잇.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한없이 돌다 버터가 되어 버린 호랑이 버터,로 만든 핫케익을 삼보가 169개나 먹고도 여전히 배고파

 했을 때, 철모르던 꼬마 나는 그저 맛있게만 보여 그림책을 읽으며 침을 꼴깍, 삼켰어. 요네하라 마리가

 '미식 견문록'에서 <꼬마 깜둥이 삼보>를 얘기하기 전에, 이미 나도 그 기막힌 속얘기를 알아차린

 슬픈 어른이 되었지만 말이야..  그래서 자주 술을 푸는 거야..슬퍼서 말이지..

 나는 이렇게 비 오는 날, 한세정 詩人의 <입술의 문자>를 읽으며 놀고 있지만 정말

 로빈슨 크루소,는 비 오는 날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냈을까, 

 앗, 비 온다고 그곳 혜화동에서 회포좀 풀자고 연통이 오는구나..할 수 없지.. 비 오는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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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5-27 16:19   좋아요 0 | URL
봄이 저물며 여름을 부르는 빗물이 시를 부르고,
시는 사람을 부르고,
사람은 아름다움을 부릅니다.

appletreeje 2013-05-27 17:21   좋아요 0 | URL
예..비가 퍼붓는 잠처럼 와서
시집을 읽으며 혼자, 놀고 있습니다.. ^^
벼리와 보라는 비 오는 날, 무슨 즐거운 놀이를 하며 지낼까요~?

2013-05-27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7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7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7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이렇게 고요한 여름밤, 각자 자기가 살아온 날들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모두 눈을 감고 저마다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였다. 내 오른쪽에 앉은 시영이가 눈을 감고 제가 살아온 날을 조금 생각하다가 바로 호주머니 속 과자를 떠올리고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시영이는 호주머니 속으로 자꾸 손을 넣어 과자를 조금씩 꺼내 선생님 몰래 입 속에 살짝살짝 집어넣었다. 내 왼쪽에 앉은 영환이에게서 나는 방귀 냄새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시영이의 몰래 과자 씹어 먹는 소리, 영환이의 방귀 냄새 때문에 내가 살아온 날들에 대해 자꾸 방해되긴 했지만 나는 최대한 허리를 곧추세우고 내 십오 년 인생을 생각하였다. 선생님이 잔잔한 음악을 틀었다. 음악은 약간 슬펐다. 생각하기에는 역시 신나는 음악보다 좀 슬픈 음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나도 최대한 감정을 잡아 보려 애를 썼다. 감정이 잡히는 순간, 선생님이 갑자기 혼잣말로, 에이, 음악은 무슨 음악이냐, 자연에 오면 자연의 소리를 들어야지, 하면서 기껏 틀었던 음악을 탁 꺼버렸다. 선생님의 변덕스러운 행동으로 감정 잡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려 다시 한 번 허리를 곧추세웠다.

 -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생각해 봅시다.

 우리 동네서 와서 우리 동네로 가는데요, 영환이가 대꾸했다.

 - 생각해 보라고 했지 대답하라고는 안 했다. 자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집에서 와 집으로 가는 건가,라고 영환이가 혼자 중얼거렸다.

 엄마 배 속에서 나와 무덤으로 가요,라고 승빈이가 말했다.

 아, 자식들, 말 되게 많네, 거. 말하지 말고 생각해 보라고, 생각.

 드디어 선생님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모두 조용해졌다. 풀벌레 소리만 가득하고 사위가 조용한 속에 별들이 저희끼리 소곤거리는 것 같았다. 몇몇은 졸기도 했다. 한참 만에 선생님이 손바닥을 탁탁 치면서, 일어나라, 일어나, 조는 아이들을 깨웠다.

 - 자아, 각자가 살아온 날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했는가?

 처음부터 졸기만 한 경수가 제일 크게 대답했다.

 그러면 경수부터 말해 봐라. 말할 때는 되도록 솔직 담백하게.

 경수의 이야기는 이러하였다.

 우리 엄마와 나는 스무 살 차이가 난다. 내 생일은 3월이다.  (P. 10~11 )

 

 

 

 

 -여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제가 말해 보지요. 보리밭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밭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한여름에 낮잠 자다 깨어났는데 문득 보이는 대청마루 가의 푸른 하늘, 그 푸른 하늘가의 감나무, 감나무 속에서 우는 매미, 매미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울자울 졸고 있는 닭 볏 같은 맨드라미.... . 맨드라미 꽃잎과 이파리로 묻들인 떡은 정말 아름다워서 함부로 먹을 수가 없었어요.

 

 - 오매, 감나무, 강릉에도 감나무가 있고만요. 우리 고향에는 감나무가 너무 많아서 산에 올라가서 보면 집은 안 보이고 감나무만 보였단게요. 감이 노랗게 물들면 다서 소금물에 재워 우린 감도 만들어 먹고 태풍 불어 떨어진 감식초도 만들고 겨울에는 홍시를 갈무리해 뒀다가 하나씩 꺼내 먹고.... .  (P. 28~29 )

 

 

 

 

 

 나는 화장실로 안 가고 숲으로 갔다. 이야기 시간이 끝나고 노래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켜는 기타 소리에 맞춰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무리와 떨어져서 듣는 음악 소리는 아름다웠다. 무리와 떨어져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들도 아름다웠다. 열 다섯 살이면 외로움이 뭔지도 아는 나이지만, 아름다움이 뭔지도 알 나이라는 걸 나는 그 숲에서 알았다. 숲에서 나가면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노래 불렀다.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였다. 가슴 한 편이 싸해지면서 눈물이 나왔다. 나는 지금 강릉의 숲에 와 있다. 밤이 깊을수록 별들은 더욱 영롱하게 반짝였다.  (P. 30~31)

 

 

 

                                                                           -공선옥, <아무도 모르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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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5-26 10:24   좋아요 0 | URL
밤에 숲에 깃들었으면
아무 얘기 안 하면 더 좋을 텐데요.
그러면 아이들은 지난날도 생각할 테고
우주도 생각할 테고
꿈도 생각할 테고
사랑도...
또 주머니에 있는 과자도 배가 아파 방귀 나오는 것도
골고루 다 알아서 생각할 테지요...

appletreeje 2013-05-26 11:41   좋아요 0 | URL
참으로 맞는 말씀이세요...

2013-05-26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6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으로 집을 지은 악어 저학년을 위한 꼬마도서관 47
양태석 지음, 원혜진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0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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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말더듬이 악어는 책 모우기가 취미이고 책만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사람들은 악어네집으로 책을 다 버리고 쓰레기장이라 시청에 고발을 한다. 시청에서는 악어의 집을 무너뜨리고 담을 쌓아버리지만 악어는 그 책들로 도서관을 만드는 이야기가 뭉클하고 따뜻하게 마음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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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3-05-23 21:13   좋아요 0 | URL
정말 읽지 않은 책이 아닌 읽은책으로 지은 집을 갖고 싶어요. ^^
나무늘보님 댓글만으로도 책이 참 재미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appletreeje 2013-05-23 22:04   좋아요 0 | URL
그림도 글도, 매끈하거나 세련되진 않았어도
오히려 그 때문에 이 책의 의미가 더 잘 전달된 것 같아요.
왜 그런 것 있잖아요, 보슬비님! 별다른 수식없이도 진솔하게 전해지는 감동. ^^
요즘같이 책도 정보도 넘쳐 흐르는 세상에서
진정, 책을 좋아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따스하게 잘 보여준 것 같아요.~^^
 

 

 

 

 

                       訃告

 

 

 

 

                          돌담 아래 국화를 심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촛불 든 사람들이 뉴스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화면 가득 비친 여자가 활짝 웃고 있다

 

                          국화가 시퍼렇게 자라고 있다

                          (한 송이 국화꽃을 더, 더 피우기 위해?)

 

                          소 키우는 한씨는 여름 내내 풀을 베러 다니고

                          트랙터 가득 실어도 저녁먹이와 이튿날 한 끼란다

                          고구마 밭을 매는 내게 고구마 덩굴은 자기 것이라고

                       소리친다

 

                          국화가 어떻게 자기를 가지치기 하는지 아세요?

                          잎이 대 여섯 장 자라면 우듬지 시들시들해지지요

                          어느 순간 모가지가 툭 떨어집니다 스스로 목을 자르

                       는 거지요

                          그리곤 겨드랑이에서 새파랗게 순이 돋습니다

                          (간밤에 바람이 퍼붓고 비가 오셨다)

 

                          촛불 따위는 모른다는 한씨가 트랙터를 몰고 논둑으로

                       사라진다    (P. 30 )

 

 

 

 

 

                        잠에 대한 보고서

 

 

 

 

 

                           톨게이트 옆에서 콩농사를 짓는 할머니는 도로 정비과

                        에서 유명하다 불빛에 콩이 잠을 못 잔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가로등을 깨버리기 때문이다

                         '할머니 한번 더 깨면 경찰에 고발할 겁니다 공무집행

                        방해예요'

                           '또 민원이 들어왔어요 사고가 났잖아요 두 명이 다쳤

                         다구요'

                           '이것도 다 세금이거든요 자꾸 이러시면 저희들 모가

                         지가 남아나겠어요?'

                            전등을 끼우러 간 기사들이 어떤 말을 해도 할머니는

                         '그냥 달고 가' 한마디다

 

                           할머니가 처음 정비과에 전등을 꺼달라고 간 것이 몇

                         년 전이다 그때 정비과에서는 황당한 할머니라면서도

                         노인의 절절한 설명에 며칠 전등을 껐었다 하지만 초행

                         길인 운전자나 급회전에 서툰 사람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사고가 나고 밤새 불을 켜 놓도록 지시가

                         내려졌다 그날부터 할머니와 정비과 직원들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전등을 끼러 가면 할머니는 기사가 딛고선 사다리를

                         잡아준다

                           '잠 안 자고 왜 댕긴다냐? 눈을 두개나 달고도 못 댕길

                         길이 불 켜면 보여야?'

                           '할머니, 요즘 사람들 밤낮 따로 있나요?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느그들 발소리에 저것들 잠 깨니께 살박살박 다녀, 환

                         한 불빛에 저 놈들 보랫빛눈 깜짝이는 거 보이쟈?'

                            기사의 뒤를 좇던 할머니가 소곤거린다

                            '세상에 잠 안자고 맺어지는 열매 어디 있다냐? 느그

                         들도 훤하면 잠 안오쟈?'

 

                          가로등에 불이 들어온다 할머니가 또 전등을 깬다   (P.16 )

 

 

 

 

                                                           - 김종옥 詩集, <잠에 대한 보고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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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3-05-23 21:16   좋아요 0 | URL
마음이 참 아팠는데, 할머니 덕분에 힐링이 되었어요. ^^

appletreeje 2013-05-23 22:08   좋아요 0 | URL
저도요..보슬비님,
아무렇지도 않게 뱉는, 소 키우는 한씨가 얘기한 국화의 '가지치기'에
마음이 몹시 아팠는데
또, 할머니 덕분에 힐링이 되었어요.~*^^*

2013-05-23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3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5-24 04:25   좋아요 0 | URL
너무 빨리 달리지 않으면
자동차들은
사고 나지 않을 테지만,
너무 빨리 달리다 보니
온갖 곳에 불을 다 켜도
사고가 나지 싶어요.

할머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시를 읽을 수 있는
공무원 언제쯤 생길까요.

고시 시험 과목에 '시읽기'가 들어가면
달라질까요...

appletreeje 2013-05-24 11:06   좋아요 0 | URL
할머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알고
시도 즐겁게 읽는 공무원님, 많이 생기셨으면
정말 좋겠네요. ^^

2013-05-24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4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데미안

 

 

 

 

                      시간은 알을 깨고 나온다

 

                      가스레인지 모서리에 계란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을 깨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자신이 낳은 알을 쪼고 있었다

 

                      琢탁琢탁

 

                      계란이 가장 맛있는 프라이로 되는 시간은 2분이며

                      세상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이분법이지

                      헷세가 탁자 위에 계란을 돌리며 말했다

 

                      돌던 계란을 잡았다가 놓았을 때

                      그대로 탁, 멈추면 삶은 알

                      멈추는 듯 다시 돌기 시작하면 날 것이다

                      젊은 괴테가 슬펐던 것은 관성 때문이었어

                      헤, 헷, 헷세가 말을 더듬었던 것도 같은데

 

                      관성이 삶에 적용한다는 것은

                      그 삶이 삶겨지지 않은 까닭이므로

                      젊은 시인이 슬픈 것은

                      관성 때문이 아니라

                      네가 가진 계란은 죽었니 살았니 묻는 이분법

                      어느날부턴가 누군가 묻지 않아도

                      그 물음이 얼마나 편한 것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P.16 )

 

 

 

 

 

                      쌍칼이라 불러다오

 

 

 

 

                      쌍칼,

 

                      그의 결투는 잔혹하다

                      어지간히 무거운 상대라도

                      높이 들어올리면

                      전혀 맥을 추지 못한다

                      지게차의 작업은 그렇게 냉정하다

                      일말의 동요도 없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상대의 중심 깊숙이

                      두 개의 칼날을 밀어넣는다

                      아무 표정 없이 들어올린다

                      그의 무게중심을 흩뜨리지 않는다

                      그를 자신보다 높이 추켜올린다

 

                      쌍칼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완벽한 전술이다

                      그를 오래 보고 있으면

                      결투의 원리를 알 것 같다  (P.22 )

 

 

 

 

 

                     화석표본

 

 

 

 

 

                       어젯밤엔 주정(酒精)과 막역하여

                       기억을 주점 카운터에 두고 돌아왔나보다

                       아침에 따귀를 맞은 듯 번쩍 일어나

                       허겁지겁 챙겨 입고 뛰쳐나온다

                       한참을 달려 전철에 올라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넌 누구인가

 

                       배내옷마냥 냅킨에 곱게 싸인 노가리 한 마리였다

                       너는 누구냐

                       어제 마지막 주점은 거기

                       서해였구나

                       바다에서 슬쩍 주머니에 넣어온 어족을 손에 쥔 채

 

                       너도 살 만큼 살았구나

                       어린 나이에 주점이나 드나들다 겉늙어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끼어들더니

                       주둥이는 살아

                       날카로운 이빨로 어제 기억을 씹어먹는다

                       전철에서, 어류의 화석을 씹는다

                       박물관처럼 굳어가는 나이를 씹는다  (P.26 )

 

 

 

 

 

                      영구차

 

 

 

 

 

                        골목에서 만났다 그의 얼굴

                        생전에 살았던 집을 들렀다 나오시는 길인지

                        검은 리본 리무진 한 대

                        좁은 길에서 내 뒤를 채근하며 따라붙길래

                        먼저 가신 사람 또 먼저 지나가라고

                        담벼락에 등을 붙이고 서

                        길을 내주었다

                        차가 나를 스쳐지나가는 단 1초

                        안이 보이지 않는 차창, 안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청춘이

                        나를 빤히 치어다보고

                        먼저,

                        간다   (P.43 )

 

 

 

 

 

                        목요 문화산책

 

 

 

 

 

                        혜화면옥에서 칼국수를 먹고 나오니 목요일이었다

 

                        5월인데 길에서 우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나는 오래 걸어도 된다

                        마음이 야트막한 사람들이 사는 동리를 지날 때

                        골목은 깊고 어두워 어린 짐승들이

                        그 안에서 몸을 기대기에 합당해 보였다

 

                        고궁은 몸에 빗장을 걸어 저녁을 가둔다

                        어서 5월이 가기를 바라는지

                        가지 않기를 바라는지 알 수 없어서

                        대학병원 앞 약국을 지나는 사람의 수를 세어보았다

                        가로등 불빛으로 앞모습에 제 이면(裏面)을 인화하는

                        버즘나무 잎새들을 올려다보았다

                        손가락으로 내 이름을 적었다가

                        나중에 누군가와 함께 여기 와서 들킬지 몰라

                        얼른 손바닥으로 문질러 지웠다

                        묘비명은 몸안에 돌을 세우고 손가락으로 쓰는 문장

                        그래서 잘 써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았다

 

                        담벼락을 따라 걷다보니

                        금요일이었다

                        누군가 길에서 운다 해도 알은척하지 않은 채

                        지나도 되는

                        밤이었다   (P.94 )

 

 

 

 

                                                     -윤성학 詩集, <쌍칼이라 불러다오>-에서

 

 

 

 

 

 

 

 

   詩集의 제목인, '쌍칼이라 불러다오'를 보고는

   우선 '장군의 아들'이나 '야인시대'에서 종로2가 야시장

   왕초인 '쌍칼'을 맡은 배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데 시를 읽다 보니 그 '쌍칼'이 아닌, 지게차에 대한

   詩임을 알고는 절로 '아,'소리가 나왔다. 왜냐하면 한 10년

   전쯤, 어떤 일로 심야의 대형유통센터에서 푸쉬풀장치가 부착된

   지게차가 파레트에 올려진 그 무거운 물건들을 아주 높이높이

   가뜬하고 정연하게 올리는 광경을 넋이 나가게 감탄하며 바라 본

   그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게차의 작업을 이처럼 절묘하게

   詩로 재탄생하게 할 수 있다니..'어지간히 무거운 상대라도/

   높이 들어 올리면/ 전혀 맥을 추지 못한다.../ 그를 높이 추켜

   올린다/. '그를 오래 보고 있으면/ 결투의 원리를 알 것 같다/.

   윤성학은 자주 도시의 비의, 인공물의 상징체계로 하나의 윤리학

   을 만드는 시인이다. 그러나 차갑지 않게 심금을 때린다.

   '배내옷마냥 냅킨에 곱게 싸인 노가리 한 마리' 는 심심치 않게 

 나의 주머니에서도 나왔던 '화석표본'인지라, 시인처럼 서해를 만나지도 못했고 나이를 씹지도

 못했던 나는 몹시 캥긴다.

 원로 문학평론가이신 <잘 표현 된 불행>,의 황현산님의 해설 역시, 그 따로 자주 들여다 볼 문장이

 라 기쁘기 그지 없다.

 이번 토요일에는 아마 대학로에서 밤을 보내게 될 듯하니, 우리도 오랫만에 '혜화면옥'에

 가서 수육을 안주 삼아 술 한 잔 해야겠다.

 우리에게도 언젠가, '누군가 길에서 운다 해도 알은척하지 않은 채/ 지나간'  그러나 늑골 한쪽

 엔 그 밤이 야트막하게 저장되어 있는 그런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윤성학 시인의 <쌍칼이라 불러다오>를 읽는 오늘은, 참으로 좋구나...

 

 

 

 

 

 

 

“해를 등지고 저의 그림자를 경작하는 자의 뒷모습은 환하면서 외롭고
자신을 사랑하는 자의 앞섶은 그리하여 어두운데”
윤성학 두번째 시집 『쌍칼이라 불러다오』


윤성학은 도시의 경작생이다. 그의 경작은 평범하지만
그림자의 경작은 그의 창안이며 우리 시대의 업적이다.
―황현산 해설 「도시의 토템」에서

도시인의 비애로 만들어낸 생활 윤리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버둥대는 현대인의 애환을 시로 표현해온 윤성학 시인. 그의 두번째 시집 『쌍칼이라 불러다오』가 출간되었다. 2006년 첫 시집 『당랑권 전성시대』를 펴낸 지 7년 만이다. 시인이라는 이름보다 직장인의 이름이 더 오래된 그. 두 이름을 가지고 산다는 건 어떤 거냐 물으니 ‘짜파구리’와 같단다. 전혀 다른 두 이름이 만나 새롭고 특별한 맛이 난다는 뜻.(윤성학 시인은 농심 홍보실에 근무한다.) 생의 부조리와 생활의 균열, 매일을 꼬박꼬박 살아내는 직장인의 비애를 소재 삼아 때로는 관조로, 때로는 익살로 끌어가는 그의 시와 똑 맞아떨어지는 답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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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2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3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5-22 21:54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시골에서 살며 시골살이 노래하는 시인도 참 많았는데
이제는 거의 하나같이 도시, 게다가 거의 서울에서만
시인들이 살아가지 않나 싶을 만큼
도시 삶만 노래하는구나 싶어요.

그렇다고 무엇이 좋고 나쁨이라는 뜻이 아니고,
삶과 사랑과 꿈을 바라보는 결이
자꾸 좁아진달까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요즈음 시를 읽으며 가슴으로 젖어드는 작품 거의 못 보는데,
appletreeje 님은 시를 읽으며 가슴 뿌듯하고 너른 이야기
건져올리시는 모습 보면
참으로 따사로운 생각 잘 보듬으시는구나 싶어요.

appletreeje 2013-05-23 09:56   좋아요 0 | URL
정말 맞는 말씀이세요.
도시나 서울의 생활환경은
자의든, 타의든 삶과 사랑과 꿈을 바라보는
결이 좁을테니까요. ^^

보슬비 2013-05-22 23:09   좋아요 0 | URL
데미안..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지금은 예전만큼 고전소설을 잘 못 읽겠어요. 책에도 때가 있는것 같아요. ^^

'목요문화사책'을 읽으며 저도 혜화면옥이 궁금했는데, 주말에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appletreeje 2013-05-23 10:00   좋아요 0 | URL
데미안..저도 읽은지 아주 까마득한 듯 해요. ^^
아프락사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꿈꾸던
그 순수한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혜화면옥은, 구 금강산가든이지요.
요즘은 가끔 대학로에서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고나서 가벼운
저녁으로 냉면이나 갈비탕을 먹고 옵니다. ^^